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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련 영웅적 투쟁과 쓰라린 패배(마지막회)

현장에서 미래를  제94호
바만 아자드

기/획/번/역


쏘련―영웅적 투쟁과 쓰라린 패배 :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승리 이후의 80년(7)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달에 이어, 바만 아자드(Bahman Azad)의 󰡔영웅적인 투쟁과 쓰라린 패배―쏘련의 사회주의 국가를 해체시킨 요인들󰡕(Heroic Struggle Bitter Defeat―Factors Contributing to the Dismantling of the Socialist State in the USSR)의 “결론: 붕괴는 불가피했는가”와 “후기”를 번역한 것이다. 번역에는 일본어 번역판(󰡔쏘련은 왜 붕괴되었는가―영웅적인 투쟁과 쓰라린 패배󰡕, 도쿄: スペース伽倻, 2003)을 참고하였다. 또한, 독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일본어 번역자들의 ‘역자후기’도 여기에 함께 번역(抄譯)했다.

결론 : 붕괴는 불가피했는가?
기획번역: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승리 이후의 80년(최종회)


결론 : 붕괴는 불가피했는가?

바만 아자드/ 사회주의 이론연구가





사회주의 파괴로의 의도적인 방향 전환이 결코 쏘련의 노동자계급 및 인민의 바램이 아니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쏘비에트 인민의 절대다수가 쏘련의 존속에 찬성표를 던진 찬성표를 던진 1990년의 인민투표(referendum)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 전개 모두가 위로부터 그리고 쏘련 공산당의 지도부 내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질서나 사회주의 국가, 혹은 공산당 자체를 반대하는 대중시위나 인민의 조직적인 사회운동 사례는 이 기간 전체를 통해서 하나도 없다.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해체가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당원의 대다수도 이러한 상황 전개를 반대했다고 하는 사실 역시 많은 기록이 증명하고 있고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1990년 7월에 개최된 쏘련 공산당 제28회 대회는 이러한 정서가 반영되었는데, 거기에서는 당 지도부의 정책들이 준열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대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28회 대회에서 쿠데타 지도부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밀어 부치는 데에 성공했다. 고르바초프의 정책에 대하여 원칙적인 입장에서 반대함으로써 그 후 1990년에 그 지위에서 쫓겨난, 쏘련 공산당 정치국원이자 중앙위원회 서기였던 이고르 리가초프(Igor Lygachev)는, 그와 다른 당 간부들의 “재판”을 위해서 개최된 “헌법 법정”에서, 고르바초프와 그 동료들이 자신들의 진정한 의도와 심지어 결정들을 어떻게 중앙위원회 및 쏘련 공산당 전체에 은폐했는가를 설명했다.

… 당의 단결과 국가의 통합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중앙위원회의 임시회의를 소집할 필요가 있다는, 정치국에 대한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키에프 및 기타 당조직의 요구와 나의 메모는 중앙위원회에는 비밀에 부쳐졌다…. 1990~91년에 쏘련 공산당은, 시장경제로의 이행이나 소유제도의 사유화 등과 같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의 결정과정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그것들이 모두 결정된 후에야 중앙위원회는 이들 문제를 알게 되었다…. 국가 정책의 이러한 전환을 방지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나는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 Nameh Mardom, No. 388, 19 Aban 1371 (1992년 11월 10일)에서 번역.


사회주의 파괴의 책임은 공산당원들에게 있다는 ‘신사고자들’의 주장을 리가초프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경제질서는 당 지도부에 의해서 파탄되었다”고 하는 대통령 대리인들의 법정에서의 주장은 철두철미 거짓이다. 그것은 정부의 파괴적 행위의 책임을 공산당원들에게 지우려고 하는 민주개혁파의 책략이다.
2차 대전 후 국가의 공업생산은 24배 증가했고, 국민소득을 16배가 상승했다는 것을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초기 수년간(1985~1989) 공업 및 농업 생산 수준이 그 최고도에 달했다는 것을 나는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주택 건설 역시 유사한 성장을 보여 주었다.
그 수년 동안 인민은 최고의 생활 수준을 즐겼다. 사회주의의 기반 위에서 그리고 쏘비에트 체제라는 틀 내에서 사회의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개선되고 있었다.
그런데, 재편 과정이 사회주의적․민주주의적 방향성을 상실하고, 부르주아 체제로 회귀하는 방향이 채택되었다. ‘신사고가들’과 민주개혁파들이야말로 국가에 현재의 상황을 창출한 장본인들이다. 같은 자료, pp. 6-7.


역사적 사실 역시 리가초프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해체는 쏘련의 과거의 경제적인 문제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쏘련 공산당은, 비록 뒤늦기는 했지만 1982년에 이미, 위기를 초래한 객관적 조건들을 신속하게 제거하기 위한 적절하고도 필요한 조치들에 착수했고, 실제로도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중요한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조치의 긍정적인 성과가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서 갈수록 눈에 띄게 되었고, 사회는 비능률의 극복을 위한 중요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었다. 이 수정 과정을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 과정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파괴로 전환시킨 것은 과거 당 지도부의 오류와 무관심 때문에 규모와 힘이 성장한 특정한 사회계층의 음모행위였다. 이들 계층은 시간이 흐르면서 교묘하게 당 지도부를 장악했고, 위로부터의 자본주의 쿠데타를 수행하기 위해서 제국주의로부터 받은 거대한 물질적․선전적 지원을 이용했다.
바로 그 때문에, 많은 역사적 사실이 밝혀진 오늘날 우리는, 쏘련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된 원인은 사회주의의 위기를 야기했던 객관적인 조건과는 기본적으로 무관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는 사회주의 체제 내부에서의 적대적이고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이 전개된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일부가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른바 ‘새로운 지배계급’ ― 예컨대, 관료층 등 ― 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의 탈취의 결과도 아니고, 또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사회주의 체제의 성격이 전체적으로 무언가 다른 체제 ― ‘국가 자본주의’ 등과 같은 ― 로 전환된 결과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당 지도부 내부의 어떤 분파에 의해서 행해진 의식적인 파괴활동의 결과였는데, 그 분파는, 그들의 협소한 이해가 자본가 및 제국주의자들의 이해와 일치하고, 쏘련에서 음험하게 사회주의를 파괴하는 활동에 대해서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음으로써 거대한 이익을 누렸다.
하지만, 이러한 반노동자계급적․반사회주의적 음모의 승리가 처음부터 예정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산당원들이 만일 방심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수백만 노동자를 동원하여 시의 적절한 행동을 취했다면 음모를 좌절시키고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하지만, 예컨대 다음과 같은, 해명해야 할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상황 전개로 인하여 그 객관적인 계급적 이익을 직접적으로 위협받은 쏘비에트의 노동자계급은 왜 사회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당과 다수의 공산당원들은 왜 이 음모를 적시에 폭로하여 그에 대항한 유효한 저항을 하지 못했는가?


‘신사고’의 역할

공산당원과 근로인민을 우유부단하게 만든 주요 요인의 하나는 ‘신사고’라고 하는 현상이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사회주의 체제의 기존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서 쏘련 공산당 자신이 취한 일련의 시정조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근로대중 및 공산당원들에게 ‘신사고’의 진정한 본질이 은폐되어 있었다. 특히 이 현상의 반노동자계급적 측면이 그랬었는데, 그것은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시정조치 속에 도입되었기 때문에 대중은 그 즉각적인 효과를 알아챌 수 없었던 것이다.
동시에 ‘신사고’라고 하는 견해가 당 지도부 자체에 의해서 표명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러한 현상의 진정한 본질을 흐리게 하고 그에 대하여 대중을 무장해제 시키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10월 혁명 이후 쏘련의 인민은 오직 하나의 당 ― 쏘련 공산당 ― 과 그 지도부만을 알고 신뢰해 왔다. 무엇보다도 친자본주의적 쿠데타가 위대한 ‘레닌의 당’의 이름으로 수행되었기 때문에 인민은 혼란에 빠져 저항하지 못했다. 쏘련 인민은 쏘련 공산당에 대한 역사적 신뢰에 기초하여 변화를 받아들였던 것이고, 재앙이 닥친 후에야 그들은 이들 변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고르바초프와 그 일당의 기만적 행동이야말로 대중을 혼란시키고 무장해제 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은밀히 반사회주의적 음모를 수행하면서도 그들은 공개적으로는 사회주의적 진보의 옹호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이들 변화가 근로인민에게 ‘더 많은 사회주의’를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쏘련의 노동자 대중과 인민이 처음부터 ‘신사고’의 진정한 본질과 쏘련의 사회주의를 해체하려는 ‘신사고가들’의 계획을 알았더라면, 그들이 다르게 대응했으리라는 것은 한 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신사고가들’의 경제정책이 유발한 객관적인 효과들 또한 근로인민 사이에 무관심을 만연시키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빈곤과 실업의 유례없는 증대, 근로인민의 구매력을 심히 저하시켜 그들을 기아와 궁핍으로 몰고 간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루블화 가치의 극적인 저하가 인민 사이에 커다란 불만을 조성했다. 그리고 이 모든 파멸적인 변화가 당의 이름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근로인민은 자신들의 악화되는 처지를 당과 사회주의 국가 탓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적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한 초기의 정책들이 인민대중을 고무시킨 반면, 이러한 정책으로부터의 이탈과 자본주의로의 곤두박질은 인민의 환멸을 사 그들이 당과 그 지도부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와 동시에, 계속되는 생필품의 부족과 대중의 빈곤의 악화는 노동자들의 관심을 정치적 동향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의 어려운 생계를 유지하는 문제로 돌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인민이 사회적․정치적 문제에 대응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맑스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진실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입증했다. 즉, “… 모든 인간적 존재의, 따라서 모든 역사의 제1의 전제는 … 인간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첫번째의 역사적 행위는 그리하여 … 물질적 생활 자체의 생산이다.” Karl Marx u. 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MEW, Bd. 3, S. 28); MECW, Progress Publishers, pp. 41 - 42.

이런 식으로, ‘신사고’와 그에 따른 정치적․경제적 정책들은 근로인민 대중 속에 혼란을 야기하고 그들이 자본주의 옹호자들에 반대하는 단호한 정치적 태도를 취하지 못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생계 자체를 위협하고 그리하여 그들을 정치적 과정으로부터 멀어지게 함으로써 친자본주의적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창출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신사고’는 노동자계급의 적들의 수중에서 양날의 검으로서 작용했다. 한편에서 그것은 그 사회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인민의 마음에 혼란을 일으켰고,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경제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일상의 주요 관심사가 되도록 인민의 생활조건을 악화시킴으로써 그들의 정치적 저항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친자본주의적 쿠데타 지도자들이 성공한 비결은 바로 그들이 이 양날의 검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데에 있다.


공산당원들의 단호한 대응의 결여

대중이 대응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혼란과 생활조건의 악화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공산당원들의 단호한 대응이 없었던 것을 같은 논법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대중은 ‘신사고’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기에는 이론적으로․이데올로기적으로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공산당원들은 그 교활한 현상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식이 결코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사고’와 그 전제들이 맑스­레닌주의 및 공산주의의 학설과는 전적으로 이질적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까? 그것은 국가관료의 관점과 이해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인식하고 있었을까? 계급투쟁이라고 하는 현실의 부정, 사회주의의 정치적 기구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의 부정, 노동자계급 권력의 부인과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몰계급적 접근, 계급에 기반한 이데올로기적 국가 개념의 부인,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 간의 국제관계에 대한 ‘탈이데올로기화’ 요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부인, 제국주의 개념의 부인 및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수렴’에 대한 강조,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사회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인 생산수단의 사회주의적 소유에 대한 공공연한 부인 ― 모든 것이 맑스­레닌주의적 세계관의 이론적․이데올로기적 기초와 직접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사고’ 옹호자들의 모든 노골적인 일탈행위에도 불구하고 쏘비에트 공산당원들은 의미있는 저항을 하지 않았고, 이고르 리가초프가 말한 것처럼, “자신들의 자원을 동원하여” 음모를 폭로하고, 다가올 위험을 대중에게 경고하여 그들을 행동하도록 하지 못했다. 공산당원들이 이러한 일탈행위를 시의 적절하고 단호하게 거부했다면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고,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의 적들은 공산당원들의 망설임을 완전히 악용하여 대중을 더욱 혼란시키고 쏘련의 사회주의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신사고’와 그 일탈적인 정책들에 대해서 쏘비에트 공산당원들이 경계하거나 단호한 대응을 취하지 않은 근원적인 이유는 아직 더 완전히 분석되어야 하지만, 보다 일반적인 역사적 추세에 기반하여 일정한 요인들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이 기간 전체를 통해서 공산당원들은 “사회주의 건설과정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잘못된 역사적 전제에 기초하여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의 사회주의의 잠재력과 능력, 위대한 성과에 대한 과대평가와, 다른 한편에서의 사회주의의 적들의 파괴력 특히 제국주의 국가들의 그것에 대한 과소평가가 서로 결합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회주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진정한 위협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2. 지난 수십 년 동안 쏘련 공산당의 전망과 기본정책을 지배했던 ‘전체 인민의 당’이라는 개념은 당의 대열 내부에서 이데올로기적 경계심을 둔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비프롤레타리아적 분자들의 침투에 문호를 넓게 개방함으로써 당 내부의 비프롤레타리아적 경향에 대항하는 공산당원들의 상대적 힘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이들 비프롤레타리아적 분자들이 갈수록 당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고, 그리하여 당 지도부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일탈행위에 대한 일관되고 단호한 저항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했다.

3. 애초에는 사회의 모든 근로인민이 광범하게 참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던, 사회주의적 성장을 ‘가속’하도록 발전을 지도하는 임무가 실제로는 서서히 당의 지식인과 전문가들의 수중으로 옮겨갔는데, 이러한 상황 전개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계급에 기반하거나 이데올로기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었고 실용주의적이었다. 그들은 이 과정에 노동계급이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결정을 당의 상층지도부가 배타적으로 지배하도록 제한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재편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사실상 차단해 버렸다. 이는 이 재편과정에서 공산당원들의 위치를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관주의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정책들을 채택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신사고’가 당의 정책을 최종적으로 지배하도록 길을 열었다.

4. 공산당이나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어떤 형태의 공개적인 비판도 금기시해 오던, 세계 공산주의 운동 내부의 정치적 현실주의(pragmatism)가 다시 쏘련 공산당 지도부에 의해서 수행되던 파괴적인 정책 앞에서 세계의 많은 공산당과 노동자당을 소극적인 침묵으로 몰아 넣었다. 이 침묵은 많은 부분 ‘신사고’ 자체가 초래한 혼란에 연유했지만, 초기에는 세계적 차원에서 당과 당의 관계를 규율하던 이 전통적인 규범이 이들 많은 당으로 하여금 침묵하게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의심할 수 없다. 경험에 의하면, 몇몇 당을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공산당과 노동자당들이 “쏘비에트 동무들이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고,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상투어를 되풀이하면서 이러한 일탈행위에 대해서 명확한 반대 입장을 취하기를 회피했다. 쏘련 공산당 지도부의 일부가 이들 정책에 대한 반대를 선언한 후에야 그들은 공개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소수였고, 너무나도 뒤늦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쿠데타에 대해서 기선을 제할 기회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더 연구해야 할 다른 많은 역사적 원인들이 있겠지만, 이들 모든 요인들이 쏘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의 쇄신과정을 그 파괴과정으로 전환시킨 파괴적인 정책들에 대해서 공산당원들을 우유부단하게 만들고 시의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결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적 원칙들을 방어하는 데에 있어서의 공산당원들, 특히 쏘련과 기타 사회주의 진영 공산당원들의 영웅적 투쟁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쏘련 공산당을 금지하고, 당의 자산을 몰수하고, 전국적으로 공산당원들을 체포․박해하고, 그리고 국가의 의회를 폭격하고 나서야 겨우 쏘련에서 친자본주의적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쏘련 공산당과 공산당원들이 사회주의와 그 위대한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 수행한 영웅적 역할을 생생하고 의문의 여지없이 입증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파괴도, 어떤 역사적 좌절도 사회주의 국가 및 세계의 근로인민을 위한 지난 80년 동안의 공산당원들의 투쟁의 가치와 거대한 성과를 부인할 수는 없다.


장래

오늘날, 쏘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해체된 이후, 우리가 10월 혁명은 끝났다, “공산주의는 죽었다,” 맑스­레닌주의는 망했다, 노동자계급은 그 혁명적 잠재력을 잃었다, 계급투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제국주의는 세계적으로 대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단념했다는 것을 믿기를 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역사에 의해서 “버림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과학적․혁명적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사회민주주의나 부르주아 민주주의,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기회주의와 허무주의에 편승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의 그러한 선전을 자신의 간판으로 삼았던 자들의 애처로운 운명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그러한 주장의 어리석음은 입증된다. 사회주의 국가가 해체된 지 10년이 채 못돼서 누가 역사에 의해서 버림받고 있는가가 이미 아주 명백해지고 있다. 그것은 ― 꾸준히 그 힘을 다시 획득하고 있는 ― 공산주의자나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10월 혁명, 사회주의에 등을 돌렸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모든 것은 이렇게 묻는 것이다. “고르바초프, 야코블로프(Yakovlev), 세바르나제(Shevardnadze), 옐친(Yeltsin) 같은 자들을 역사는 어디에 자리매김했는가?”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10년은 대단히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배반하고 인류의 미래에 등을 돌린 자들을 역사가 심판하는 데에는 그 시간으로 충분했다.
실제로, 역사적 현실이 전세계적으로 대중을 급속히 다시 각성시키고 있다. 근로인민, 특히 이전의 사회주의 국가들의 인민은 그들이 제국주의 및 그들과 동맹한 사이비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받은 부당한 대우의 진정한 본질을 빠르게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타지키스탄, 헝가리, 불가리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공화국에서의 최근의 상황 전변(轉變)은 역사의 전진은 역전될 수 없다고 하는 것, 그리고 역사를 역전시키려고 시도하는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은 인류 역사 자체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그리고 엄중하게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하였다.
사실, 10월 사회주의 대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과정은 역사적 필연성에 뿌리를 박은 것이고, 일정한 역사발전단계에 있는 인간사회의 일정한 객관적 요구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들 객관적인 역사적 요구는 자본주의에 의해서는 충족되지 않았고 ‘충족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10월 혁명, 즉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인류 진보과정에서의 최근의 좌절이 계급간의 국제적 역관계에 일시적인, 그러나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바로 지난 80년 동안, 발전하고 있던 사회주의의 강력한 자력(磁力)이 중산층의, 그리고 특히 진보적 지식인의 중요한 부분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대의로 끌어당겼듯이, 오늘날에는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의 좌절과 제국주의의 일시적인 세계 지배로 인해 자본주의가 다시 이들 계층에 대한 강력한 중력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에 대한 패배감 및 무력감에 기초하고 있는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우경적이고 사회민주주의적이며, 많은 경우, 기회주의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계급투쟁이나 제국주의, 국제주의와 같은 개념과 자본주의적 착취를 폐절해야 할 필요성을 부정한다. 근로인민의 투쟁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단순한 방어와 자본주의의 ‘개혁’에 제한하려고 하는 이러한 경향은 이제 공산당의 ‘해산’이나 사회민주당으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맑스주의자’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레닌주의와 근로인민의 과거 80년 간의 투쟁을 부정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레닌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맑스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회주의적 경향과의 단호한 이데올로기 투쟁이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전면적인 공격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투쟁에서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위한 계급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 승리는,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을 방어하고 모든 공산당과 노동자계급 정당의 합법적 활동을 방어하기 위한 공산주의자․노동자계급․반제국주의자의 광범한 국제적인 통일전선을 다시 구축하는 데에,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와 구 사회주의 국가 모두에서의 공산주의 운동과 노동자계급운동의 과거 성과를 지키고, 저개발국 근로인민의 반제국주의․민족해방투쟁을 지원하는 데에 달려 있다. 이를 통해서만 국제 공산주의 운동과 노동자계급운동은 현재의 좌절을 극복하고, 전세계적으로 착취․억압받고 있는 수십 억 근로인민을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마침내 해방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후기

공산주의 건설이라는 의식적 과정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이론적․이데올로기적 한계를 정신적으로 얼마나 초월했든, 아무튼 구질서의 산물이며 따라서 그 구질서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담당되어 왔다. 헤겔의 ‘절대정신’과는 달리, 그들은 역사의 완결점에서 역사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이 역사의 산물이자 이 역사의 제약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그러한 것처럼, 그들의 어깨에 과거의 짐을, 그들의 운동을 방해하고 제한하는 짐을 지고 있다. 한 세대나 두 세대 내에 이 짐을 벗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진보적인 사람들의 장기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그것은 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은 동시에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투쟁하는 모든 사람들의 교육과 진보의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사회에 관한 이 사람들의 주관적 전망은, 그들의 심중에서는 완벽할지 모르지만, 역사적 현실이라는 객관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자마자 그 완벽성을 잃게 된다. 사회주의의 건설과정에서는 자각과 주체적 요소가 우위를 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객관적 현실이 인류의 진보를 지향하는 전위의 의지 앞에 무조건 항복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의 건설과정과 과거의 역사의 발전과정과의 유일한 차이는, 맑스가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살아 있는 현재가 죽은 과거를 지배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살아 있는 현재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유산은 언제나 현재에 대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객관적 현실을 지배하는 법칙에 정통하고 이들 법칙의 요구에 일치해야만 이러한 유산을 극복하고 그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중력의 법칙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서야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를 향해서 꾸준히 전진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법칙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것들을 제어할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지 않으며 안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의식과 주관이 이들 객관적인 법칙 및 요구와 ― 일치하지 않고 ― 모순되게 되면, 언제 어디에서나 죽은 과거가 다시 살아 있는 현재를 다시 지배하게 되는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다. 가장 깊은 철학적인 의미에서는 이것이 사회주의의 위기의 궁극적인 원인이다.
나아가, 공산주의자의 주체적인 오류는, 그것이 아무리 크고 결정적일지라도, 제국주의 및 그 음모와의 극히 곤란하고 불리한 투쟁 속에서 발생했다고 하는 것, 그리고 어떤 이정표도 없는 완전히 전인미답의 역사적 길을 개척해 가는 도정(道程)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것을 망각한다면, 이는 커다란 오류일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류 진보의 진정한 전위들이 그들의 숭고한 투쟁 과정에서 범한 오류와 과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투쟁 속에서 유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긍정적․부정적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해방의 전위로서의 공산주의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위해 부단히 투쟁하면서 과거로부터 배울 수밖에 없다. 어려운 투쟁 속에서 또 다른, 유사한 장애에 부딪칠 것이며, 몇 번이고 타도될 수 있으며, 가다 보면 좌절의 쓴맛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모든 장애를 극복할 것이며, 다시 한번 일어설 것이고,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역사에 계속 추가할 것이라는 것도 역시 잘 알고 있다. 10월 혁명의 승리 후에 레닌이 다음과 같이 강조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시작했다. 언제, 어느 날 어느 때에, 어느 민족의 프롤레타리아들이 이 과정을 완성할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얼음이 깨졌고, 길이 열렸고, 길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10월 혁명 4주년에”, Collected Works, English edition, Vo. 33, p. 57; 󰡔レ-ニン全集󰡕 第33卷, 大月書店, p. 43.

일본어 역자후기

1917년의 러시아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은, 제국주의에 의한 세계의 식민지 분할이 기본적으로 끝나고 그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적 세계전쟁의 시대가 시작된 가운데,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물론 제국주의 및 자본주의의 착취 하에 있던 전세계 인민 모두가 감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사건이었고, 또 실제로도 자각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그렇게 받아들여진 혁명이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세계적으로 사회주의적 개혁의 물결이 20세기를 뒤덮기 위한 투쟁의 거대한 첫걸음이었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동유럽에 사회주의 국가들이 성립하고 중국혁명이 성공함으로써 사회주의 세계체제를 구축하는 데에까지 나아갔지만, 제국주의의 집요한 공격과 사회주의 국가들 내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의 오류나 그 과정에서 생긴 곤란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좌절돼 버렸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패배’하고 나서 십수 년, ‘승리’를 구가한 자본주의가 세계에 초래한 것은 무엇인가? 이 기회를 타고 추진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세계질서’와 자본의 지구화는 갈수록 그 반인민적․반환경적인 추악하고 잔학한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가 막다른 길에 들어서 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고, 그것을 대신할 ‘대안’이 지금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착취를 폐절하고 인류를 해방하는 이론과 실제적 경험을 쌓아온 사회주의의 가치는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은 자본 측으로부터 아직도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악선전과, 쏘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의 붕괴에 의해서 야기된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환멸감이 어울려 ― 특히 여기 일본에서는 ―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사라져 있다.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은 과거 사회주의의 역사를 노동자․인민의 관점에서 총괄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이끌어내서 다시 한번 새롭게 사회주의 혁명을 전세계적으로 전개해 가는 과제이다.
그러나 “10월 사회주의 혁명과 더불어 개시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과정은 세계 전체로 확대되고, 100을 넘는 공산당과 노동자당이 이에 가담하였다. 그 때문에, 그들 모든 당과 국민 ― 특히 쏘련과 쏘련 인민 ― 의 경험을 정리․검토하고 분석․통합하지 않는 한 그 역사적인 성과와 결함에 대한 포괄적인 평가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방대한 작업에는 막대한 양의 자원이 필요하고, 단기간에, 적어도 한 세대 동안에 실현할 수는 없다”(본서의 ‘서문’으로부터). 항간에 유포되어 있는 과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라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독선․독단적인 것인가는 이 한 구절만으로도 명백할 것이다.
쏘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해체에 의한 타격을 틈타서 그 후 급속히 추진된 자본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공산주의 운동은, 그리스 공산당의 주도로 공산당․노동자당의 국제회의가 매년 아테네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게 된 데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태세를 재건하고 있지만, 과거의 사회주의 건설과정에 대한 분석과 평가작업은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원저자 자신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그를 위한 하나의 ‘시도’이고, 원서의 부제에도 있는 것처럼 “쏘련의 사회주의 체제를 해체시킨 요인들”을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견지하면서, 또한 역사에 대한 과학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쏘련의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에 따라서 찾은 것이다.
한편, 사회주의 혁명운동은 국제적인 운동이고, 특히 제2차 대전 이후에는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과 중국혁명의 성공에 의해서 성립한 사회주의 세계체제, 주로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노동운동과 공산주의 운동, 그리고 제국주의의 멍에를 잘라내려고 하는 민족해방운동이라는 3대 혁명조류의 상호관계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저자도 당연히 그것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 책의 성격상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있지는 않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최대의 문제의 하나는 국제주의에 기초해야 할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전개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의 강한 영향을 완전히는 극복하지 못하고, 역으로 그것에 의해서 운동이 크게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그것이 분명한 형태로 나타난 일례를 들자면,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사회주의가 세계체제로서 확립되는 중요한 시기에 쏘련과 중국이 대립하고, 그것이 단순한 이데올로기상 혹은 이론상의 의견 대립에 머물지 않고 운동 전체의 국제적 분열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서는 사회주의 국가끼리의 대립까지 불러일으킨 사실이다. 더욱이 그 ‘분열’은 사회주의 체제와 그 진영 내부에 머물지 않고, 평화․노동․민족해방 외에 세계의 모든 운동을 분열시켰다.
제국주의에 의한 국제적인 포위 속에서 시작된 쏘비에트 혁명은, 특히 유럽의 혁명이 좌절된 후에는, 압박해 오는 파시즘의 위협 하에서 혼자의 힘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전개해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전술한 것처럼, 거대한 희생을 지불했지만 살아남는 데에 성공한 사회주의는 그 역사적인 제약조건에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에 대응하여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에 관해서도 재점검하고, 동시에 새롭게 태어난 사회주의 세계체제를 발전시키는 관점에서 역사를 총괄하며, 세계혁명의 새로운 조건을 이론적으로도 정리하고 실천적으로도 그 태세를 정비해가야 할 시기에 열린 쏘련 공산당의 제20회~제22회 대회의 전개를 보면, 그러한 사항을 공산주의적인 각도에서 올바로 총괄하는 이론은 제시되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혁명에서 공산주의자의 기본인 국제주의의 논리가 관철되지 못한 결과, 쏘련에서는 후르시초프의 수정주의가 지배하여 그때까지의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청산주의적인 총괄이 강요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총괄은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의지와 경험을 민주적으로 정리․통합하는 작업이 전혀 없이 이루어졌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의 민주주의의 파괴가 쏘련 공산당 내부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중쏘 대립의 또 다른 당사자인 중국 역시 중국사회의 역사적 제약을 반영하여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였다. 이 민족주의는 중국혁명의 승리에 일정하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방향에서 극복되지 못한 채 발생한 중쏘 대립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쏘련 공산당의 모습에 대한 중공 공산당의 비판에는 일정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제주의가 아니라 거꾸로 중국의 민족주의적 경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또한, 20세기 전반기부터 전개된 중국 혁명의 과정에서는, 맑스주의에 기초한 공산주의의 원칙을 지키고 발전시켜 가려는 세력과, 좌우로 일탈해 가는 기회주의 세력과의 대립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자본주의적인 것의 박멸을 내걸고 60년대 중엽부터 전개된 문화대혁명은, 그 이념과는 달리 당내의 노선 대립 속에서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과정에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고 타격을 주어, 마침내 그 극복과정에서 채용된 시장경제=자본주의화 노선은 커다란 모순을 잉태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무튼 중쏘 대립이 생긴 결과, 새롭게 태어난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중심이 되어야 할 쏘련과 중국이라고 하는, 사회주의 국가와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도상 국가 사이에 당과 국가에 걸쳐서 전면적인 대립이 발생하고, 그것이 국가 대립으로서 전쟁상태까지 야기했다. 베트남 혁명은 승리했지만, 이후 1974~75년의 공황을 거쳐 반격에 나선 제국주의는 70년대 중엽부터 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를 파괴하는 경제정책과 그에 기초한 정치외교노선을 전개했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은, 본래는 보다 크게 발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조건 속에서 통일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상한 곤란에 봉착했다. 이를 상징하는 일례를 들자면, 1975년 이후 제국주의 국가들은 상호 이해 대립을 안고 있으면서도 매년 정기적으로 정상회담을 계속 개최했음에 비해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진영의 측은 결국 그러한 회의를 한 번도 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동안 제국주의 국가들 내부의 공산주의자들의 동향은 어떠했던가? 후르시초프의 노선은 한편에서는 중쏘 대립을 야기하는 한 원인이 되었고, 서유럽에서는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의 나유럽 3당을 축으로 한 이른바 유로코뮤니즘이라는 조류에도 영향을 주었다. 60년대 자본주의의 고도성장기에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공산당 내에 이론적 영향력을 넓혀갔던 이른바 구조개혁론의 조류는 60년대 중엽부터 급속히 우경화되어 쏘련 공산당을 위시한 국제공산주의 운동과는 일선을 긋게 되었다. 그것은 70년대에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거기에서의 탈출을 목표로 한 부르주아지의 새로운 정책에 따라 계급투쟁이 격화되는 속에서 대중에 영합한 의회주의 노선에 의해서 정권을 획득하려고 하던 당들이 빠진 우익 기회주의적이고 수정주의적인 조류였다.
결과적으로 이 조류는 1968년 프랑스의 ‘5월 혁명’,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 1970년 포르투갈의 혁명에 이르는 노동자계급의 공격을 견뎌낸 부르주아지에 의한 70년대 후반에 걸친 반동 공세의 성공에 기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유럽에서의 혁명운동 이론으로서의 유로코뮤니즘은 그 파탄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국주의의 사회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와 결합해 쏘련과 동유럽의 반체제 세력 속에 침투하고, 이윽고 그것은 페레스트로이카에서 쏘련 공산당의 ‘개혁’ 이론과 이데올로기의 지배적 경향으로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회주의의 쇄신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를 이론적으로 붕괴시켜 가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 책 속에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페레스트로이카는 쏘련이 당시 그 필요에 쫓겨 사회주의를 현대화 혹은 자기쇄신하고, 그를 통해서 보다 높고 보다 민주적인 사회주의로 재편․재건하기 위한 운동으로서 출발한 것이었다.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착수한 그 개혁은 후임인 고르바초프 서기장 아래에서 86년 2~3월의 제27회 당대회에서 거당적(擧黨的)인 방침으로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윽고 당내의 노선 대립이 현재화되고 마침내 우파인 ‘민주개혁파’가 주도권을 장악하자 페레스트로이카는 애초에 목표로 삼았던 사회주의의 쇄신․재생과는 실로 정반대의 것으로 변질되어 쏘련의 파괴로 돌진해 갔다.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한 것의 귀결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대로이다. 누구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세계 인민에 대해서 자신의 의사를 강요하는 자유를 획득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개발도상국 인민들을 마음대로 착취하고 있고, 제국주의 국가 내의 노동자․인민에 대해서는 ‘자기책임’이나 ‘규제완화’의 미명 하에 의료․교육․연금을 위시한 모든 사회보장과 사회 써비스를 삭감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사회주의를 견지하여 계속 싸우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집요한 전복책동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인민이 제국주의의 일원적인 지배에 전면적으로 굴복해 버렸을 리 없다. 제국주의 국가들 내부에서는, 그 운동이 아직 장래에 있어야 할 사회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IMF․세계은행․정상회담 등의 회의에 대한 항의행동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이 고양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들도 엄연히 살아남아 있다. 그 중에서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에 의해서 가장 곤란에 시달려 온 것은 사회주의 쿠바일 것이다. 실로 미 제국주의의 앞마당에 위치한 인구 1천만 명의 소국인 이 나라는 쏘련과 동유럽권의 붕괴에 의해서 과거 무역 거래처의 85%를 일거에 상실하고, 혁명 이후 계속되는 미국에 의한 경제봉쇄 속에서 석유를 위시한 에너지와 기계류 등 대부분의 중요 물자의 공급이 두절된다고 하는, 실로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으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사회주의를 견지하면서 계속 투쟁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타파하는 방향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20세기를 통해서 자본주의를 지양하기 위해서 수행된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계속 분투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인민의 투쟁을 대안의 불을 보듯이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과제와 결부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이 그러한 관점을 획득하는 데에 일조할 것으로 확신한다.
(이하, 생략) 한/노/정/연

2004-01-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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