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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노조 임원선거, 그리고 힘찬 집행을 위하여

현장에서 미래를  제94호
허성관


현자노조 임원선거, 그리고 힘찬 집행을 위하여
허 성 관/ 현대자동차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 의장






현대자동차 임원선거가 끝나고 인수인계까지 마친 11대 집행부는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임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5개팀으로 난립하면서 치열한 선거투쟁을 벌였던 후유증을 하루 빨리 치유하고 노동자라는 하나로 단결된 모습으로 사측과의 투쟁을 통하여 고용안정과 노동강도 저하, 사상최대의 성과에 걸 맞는 실리 쟁취를 이루어 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11대 집행부의 통 큰 아우름을 필요로 한다.


야합과 분열로 간 혼란
이번 선거에서 현장의 우려와 함께 노조 무용론까지 들고 나온 이면에는 후보들의 선거 연합과 갈등, 그리고 분열의 현상이 저간의 우려를 더욱 깊게 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장의 여러 조직은 선거 확정공고 이전부터 자파 승리를 위한 선거연합이 꾸준히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어차피 동상이몽의 조건 속에서 치루어졌는데 주요하게는 몇 개의 상황으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자리싸움의 양상이다. 서로가 위원장 자리를 놓고 심각한 내홍을 겪던 연합파 측은 자신이 선택되지 못한 상황을 넘지 못하고 파행으로 끝난 것. 특히 노연투와 실노회가 선거연합을 시도하다가 스스로의 내분을 견디지 못하고 무산된 것에서 이번 선거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하여 전국적인 관심을 들끓게 하면서 급기야 민주와 반민주의 구도를 완전히 흐리게 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한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또 하나는 활동의 원칙이나 사상이 다른 조직의 연합이라는 것. 현장투와 자주회의 선거연합이 그것인데 이로 인하여 자주회는 임원진이 사퇴하고 전국단위에게서도 탈퇴를 하느니 퇴출 당하느니의 논란을 가중시킨 결과로 이어졌다.

또 중소 조직들을 흡수하여 거대한 조직의 세로서 현장을 장악하고자하는 시도였는데 민노투의 끝없는 세 확장의 욕심은 전체 운동진영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상황으로 가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확장의 이면에는 운동의 검증이나 활동의 원칙들을 무시하고 오로지 크면 이길 수 있다는 욕심을 불러일으키면서 현장을 혼란으로 몰아갔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민주와 반민주의 경계를 허무는 사건들
연초의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선거에서 현자노조는 흔히 어용이라고 부르짖었던 현중노조와 연계하여 그동안 깊은 동면에 빠진 울산본부의 정상화를 노골적으로 막아나갔다는 것에서 운동의 위기를 재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결국 현자노조 위원장 자신이 스스로 울산본부장을 겸임하게 되면서 사실로 들어 나게 되었는데 노동귀족화의 부추김을 가속화시킨 것에 평가가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전체 조합원들에게 민주와 반민주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져 버리고 스스로의 운동의 원칙들까지 버렸다는 것으로 파악되어진다. 또한 이러한 시도들은 전체 조합원들을 노조 무력증으로 빠지게 하고 이로 인하여 희망을 잃은 조합원들이 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일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자’라는 것으로 통하면서 위기를 가속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투쟁을 통한 정면돌파의 정통성을 고집한 민투위
민투위는 그동안 현자노조 내에서 유일하게 정통성을 잃지 않고 현장에서 치열한 투쟁을 벌여 내었다. 특히 열사정국에서의 전국적 흐름을 이어가는 연대투쟁의 전개는 단일 현장조직으로는 그 활동의 깊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투쟁의 원칙은 4월에 있는 근골격계 독자검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투위는 10대 집행부가 진행하는 근골격계 투쟁이 원칙과 정의를 벗어나서 오히려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사측이라는 집단과 공동의 사업을 벌였던 것은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 사안이다. 결국 여러 차례에 걸쳐 내용을 바로 잡을 것을 요구하였으나 묵살 당하면서 독자적인 검진에 이르게 되었고 현장조직으로서는 전국 최초로 요양신청자 전원의 승인이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도 심각하여 10명의 동지가 고소 고발되어 그중 3명이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지난 1월 12일 0시에 출감하는 상황도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열사정국 속에서 치러진 11월 9일의 전국노동자대회에서는 정권의 폭력성에 맞선 투쟁 전개로 12명에 달하는 조직원 동지들이 정권에 하수인인 폭력경찰에 의해 큰 부상을 당하였다. 이러한 불굴의 투쟁 전개는 조합원들로부터 ‘투쟁하면 민투위구나’라는 공감대를 일으켰으며 이러한 공감대는 지금의 내외적 정세가 투쟁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는 인식 하에서 임원선거에서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민주와 반민주, 분명한 구도 속에 펼쳐진 11대 임원선거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펼쳐진 현자노조 11대 임원선거는 5개 팀이 후보로 나섰지만 그동안 민주와 투쟁의 정통성을 지켜왔던 민투위와 수정된 반민주의 행태를 보여온 노연투의 대결로 좁혀져 갔다. 이러한 구도를 토대로 하여 정책적 내용에서 전반적으로 고용안정을 앞에 두고 실리와의 쟁점을 만들어가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최대의 쟁점이 된 것은 희망퇴직제를 받아들이느냐, 희망퇴직제는 또 다른 구조조정으로 절대 반대해야 하느냐를 놓고 민투위와 노연투의 확실한 쟁점이 형성되면서 조합원의 관심을 불러들였다. 결국 노연투에서 희망퇴직을 우회하고 가면서 쟁점에서의 민투위의 압승을 불러왔고 이것을 기반으로 선거 전 민투위의 확실한 고전을 예상하던 이들을 잠재우며 2차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1차 선거에서 민투위와 노연투의 표 차이는 약 5,200 표가 발생하며 거의 배에 가까운 표 차이를 뒤집어엎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민투위 내부에서도 1, 2위 간 사상최대의 표 차이를 뒤집어엎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했을 만큼 절망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이 오히려 조직원들과 조합원들을 준동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연투는 이미 승리의 환희를 만끽하며 울산본조에서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으로 그동안 약세로 되어온 판매본부 공략을 위하여 전조직원을 전국에 흩어 버렸다. 그러나 판매본부의 특성상 쉽게 표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한 민투위는 또한 그동안의 약세로 되어온 울산본조를 공략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전 조직원을 동원하여 울산을 공략하였다. 또한 마지막까지 희망퇴직제에 대한 논란을 앞세우면서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은 노사협조주의가 아니라 투쟁밖에는 없다는 것을 깊이 각인시켜 나갔다.


뒤집어진 5,200표 차이 그리고 민주의 승리
또한 2차 투표에서는 민주와 반민주의 구도를 확실히 하면서 조합원의 위기의식을 확실히 불 질러 나갔다. 그러나 끝까지 움직이지 않은 조합원들의 표심이 마지막 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현장을 목이 쉬게 내지르면서 민주노조의 위기를 부르짖은 민투위 조직원들의 헌신적인 선거투쟁은 마지막 날 민주노조 사수의 결의로서 민투위에 마음을 움직이는 상황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적 같은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졌던 것이다. 지난 9대 임원 선거 당시 판매본부에서의 확실한 득표로 승리할 수 있었던 민투위는 11대 임원 선거에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현장을 파고들었고 이것이 주효하여 결국 승리하였던 것이다.
또한 현장에서는 그나마 민주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조직들이 말로는 도와준다고 한 상태에서 정작 기명의 문제가 불거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면을 바꾸어 외면해 갔고, 2004년 4월 총선에 도전하는 제 세력들 또한 오직 금뺏지에 대한 생각으로 중립선언을 하며 민주의 정통성을 외면해 갔었다. 결국 민투위의 승리는 전체 민주의 승리라는 등식을 자기들 스스로 거부하면서 민투위의 선거투쟁 자체를 고립화시킨 책임은 확실해진 것이다.


노동조합의 보수화, 우경화를 날리는 조합원의 투쟁의지
지난 2002년 10월, 11기 민투위는 2003년 핵심투쟁 과제로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자 건강권 쟁취’ ‘기득권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내걸었다. 그중에서도 근골격계 투쟁은 전국의 사업으로서 그 폭발력이 대단할 것이라는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지면서 노동자 계급의 관점에서 비정규직과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를 같이 걸고 가고자 하였다. 이러한 투쟁과제들은 결국 2003년 민투위 근골격계 투쟁을 실천하면서 결코 이러한 과제들이 헛구호가 아님을 전국에 실천해 보였던 것이다. 특히 전국적으로 다단하게 일어난 투쟁의 중심에 전국 최강을 자랑하는 현자노조가 거의 방관하는 상태로 2년여를 이끌어 오면서 조합원들의 투쟁에 대한 목마름은 단순히 바라볼 수 있는 사안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오직 조합원들의 보수화로 인한 투쟁회피를 자신들의 논리로 가져가던 것은 오히려 노동조합이 스스로 보수화, 혹은 우경화하면서 조합원을 대상화한 결과인 것은 이번 현자노조 11대 임원선거의 표심이 보여준 분명한 결과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할 것이다.
특히 전국이 열사종국으로 술렁일 때 조합원 스스로가 지금 투쟁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반문하는 것에서 지도부의 주저함보다 조합원의 실천에의 강력한 요구가 더 컸다는 것은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의 결말이 현재 집권하고 있는 민노투가 겨우 꽁지를 면하고 4등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인 것이다.


민투위 근골격계 투쟁 정신을 이어받는 현장실천투쟁
민투위의 실천적인 투쟁의 성과는 비단 ‘근골격계 승인을 얼마나 받아내느냐’에 그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민투위의 근골격계 투쟁이 의미하는 것은 ‘현장의 노동강도 저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노동강도 강화 저지’의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현장을 살 맛 나는 일터로 만들어 낼 ‘노동강도 저하’라는 능동적이고 공세적 입장에서의 투쟁을 예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조직적 과제로서 받아 안고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11대 집행부의 집행과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강도 저하는 집단요양 신청을 넘어 생산량, 작업물량, 작업속도, 인원배치, 모듈화, 자본이동 등에 대한 노동자 통제권을 확립하는 일상적인 투쟁으로 배치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장기적인 사업으로서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등으로의 제도적 형태를 바꾸어나가는 밑거름을 다지는 초석으로 가져가야 한다.
주간연속2교대의 주된 밑그림은 노동강도 강화 없고 실질임금 삭감 없는 야간노동 철폐에 맞추어 져야 한다. 야간노동이 얼마나 우리에게 건강을 해치는지는 저간의 연구발표에서 충분히 담겨져 있다. 특히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급속한 건강악화로 이어져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과로사 사업장이라는 달갑잖은 이름을 달고 다니는 상황에서 야간노동 철폐는 우리의 목숨이 담보된 중요한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가야할 기나긴 여정, 실천투쟁
2003년 비정규직 투쟁이 아산공장이나 본조에서의 지지부진함을 교훈 삼아 즉흥적이고 인기몰이식 투쟁의 전술을 획책해서는 안 된다. 연속적인 현장제조직과의 회의체계를 통하여 이완되어 가는 계급적 운동지향성을 공고히 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산안담당자 회의 같은 실무단위의 논의 틀을 강화 조직토록 민투위를 그 중심으로 세우고 사업부 공투위를 일 중심으로 강화해야하며 현장 속에 꾸준한 토론과 교육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벽을 없애고 규약개정을 통한 비정규직의 조합원 직가입을 관철시킬 수 있도록 민투위를 중심에 세워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투쟁이라든지 근골격계 투쟁 등 모든 투쟁은 현대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계급적인 투쟁의 문제로 만들어 가면서 전국에서 땅에 떨어진 현자노조의 위상을 재정립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인 문제제기와 투쟁을 만들기 위해 민투위가 중심이 되는 목적의식적인 연대와 개입을 위한 사업적 배치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실천적 투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당선시키고 방관하는 조직이 아니라 같이 만들고 실천하는 모습 속에서 현장의 희망으로 우뚝 설 민투위와 현자노조를 꿈꾸어 본다.
한/노/정/연

2004-01-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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