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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기 노동운동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94호
조돈희



현 시기 노동운동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조 돈 희/ 울산현중해고노동자






지난해를 돌아보며

지나간 2003년은 한국노동운동이 조합주의(또는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해였던 것 같다.
형성되는 투쟁의 성격은 분명 양대 계급이 대립하면서 터지는 계급 투쟁이었지만 투쟁의 전반적 과정이 보여준 상황은 계급투쟁을 양상으로 전화시키지 못했다.

03년 연초, 배달호 열사투쟁으로부터 한 해의 투쟁이 사실상 예고되었던 노동과 자본의 대 격돌은 아산 현자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발목 테러사건과 세원테크 투쟁으로부터 다시 부상하게 되었고 급기야 9월 들어서면서 국가권력과 자본계급의 노동탄압에 맞선 열사투쟁 정국으로 돌입되었다. 하반기 투쟁이 그렇게 전개 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몰고 올 상황을 수년 전부터 예고했을 뿐 03년 하반기 같은 상황(노동자․민중들의 목숨 건 항거와 이에 대한 자본과 노동의 계급대립 전선을 확고하고도 완강하게 설치하지 못하는)이 전개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울산 태광에서 어용노조 사무국장 박동준 열사가 “부당노동행위 중단하라!, 사측의 노조개입 중단하라!”는 요구를 유서로 남기고 투신자결, 한진중공업의 김주익 열사, 세원테크의 이현중, 이해남 열사, 한진중공업의 곽재규 열사, 근로복지공단의 이용석 열사로 이어진 열사정국에서 우리는(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급 운동진영) 실제 무기력했다.

노동자들의 열사투쟁 정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03년 말 노동계급의 투쟁이 소강상태로 돌입하면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여타 부문과 계층의 투쟁은 자본과 국가권력의 기획에 의해 분리되어 방치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죽음으로 항거하는 상황은 ‘남의 일’로 치부되면서 그 어떤 대항조치 조차 취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며, 상도동 철거민중들의 처절하고도 완강한 투쟁과 농민들의 투쟁, 부안 민중들의 투쟁은 노동계급으로부터 실천적 엄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03년 11월 9일 노동자대회 이후 사실상 대중투쟁은 실질적으로 조직하지도, 조직되지도 않았다. 그나마 한진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세원과 근로복지공단의 투쟁은 완전히 패배한 모양새 아니었던가. 이것이 단사와 연맹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
이 책임의 중심에는 민주노총이 있고 노동계급 운동세력에 있는 것이다.
그 밑으로 내려가면 민주노조를 자처하며 대중의 시민적 정서에 영합하고 대중을 기만하는 단위노조 간부들에게 그 심각성이 확인되며, 더 이상 희생을 담보하지 않으려 하는 노동현장의 소위 민주파 활동가들과 집단(현장조직)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03년 투쟁평가는 대중적으로 조직되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에서의 문제들

1. 강화되는 형식주의와 관료주의
1989년 1월인가 2월에 노무현은 1만 명 이상의 노동대중이 모인 현대중공업 파업투쟁 현장에서 “만 명이 감옥 갈 각오로 투쟁하면 투쟁은 승리한다”고 선동했다.
우리는 당시 실제 그럴 각오로 싸웠고 우리의 투쟁은 승리했다.
비록 1989년 3월 30일 새벽 국가권력의 육․해․공 입체작전에 의해 파업현장이 파괴되었지만 노동자들의 사상까지 파괴하지 못했다. 오히려 1989년 현중노조의 투쟁 승리와 노동자들이 현장의 질서를 통제하는 권력(현장에서 노동자의 힘)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88, 89년 ‘128일 투쟁’을 승리한 투쟁이라 일컫는다.
물론 당시의 이 투쟁에 전국노동자들의 ‘계급적 연대’와 조직적 엄호가 없었으면 투쟁의 승리는 있을 수 없었다.

연이은 90년 골리앗 투쟁은 또 다른 의미에서 평가된다.
그것은 전국적 계급투쟁을 선도한 투쟁이었고 이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집중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우리는 그 후 그룹별, 업종별, 산업별 공동투쟁과 전국적 연대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전노협을 넘어 민주노총을 건설하는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2004년에 와 있는 우리의 모습,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집중되지 않는 민주노총, 민주노총은 종이호랑이가 되어 버렸고, 대기업 민주노조운동의 불꽃은 꺼져가고 있다. 동지가 분신을 해도,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항거하여 투신자살을 해도 과거처럼 긴장도 없고, 형식적 결의는 있으되 온몸으로 함께하는 투쟁은 조직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본과 국가 권력은 노동자들에게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내부에서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생의 노사관계’에서 ‘합리적인 노사관계’ ‘실리주의적 노조운동’ 등 자본에 투항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철저한 노사 협조적 기업별 조합주의 조류들과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각 세력의 각축장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 민주노조운동을 선도했던 대기업 노조운동은 이제 그 생명을 다해가고 있다.
특히 금속산업 조선업종의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노조는 그 생명을 다 한 지 10여년을 지나고 있고 자동차업종에서 그 뒤를 받쳐 왔으나 이제 자동차업종 또한 힘겨워 하고 있는 현실이다. 두 차례씩이나 부정에 휘말려 지도부 총 사퇴와 불신임 총회에 휘말린 기아자동차 노조, 실리주의를 대표하는 세력과 정통 민주를 자처했던 민주세력과의 싸움에서 힘겹게 정통 민주노조를 지킨 03년 12월 현대자동차노조 선거결과는 한편의 다행스러움과 함께 어두움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음을 감지한다.
공공부문의 서울지하철은 ‘상생의 노사관계’를 노골적으로 지향하는 대표적인 노조로써 이미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이탈한지 수년을 지나고 있고, 최근 전투적 조합주의의 대표적 조직이었으며 현장조직력의 힘을 과시했던 사회보험노조 조차 국가권력으로부터 조직력 파괴의 주요대상이 되어 힘겨운 내부문제에 휘말려 있는 상황이다.
공공부문의 거대 공룡 한국통신은 03년 5천5백여 명을 기만적으로 명퇴시키는 구조조정에서도 손 한번 쓰지 못하고 당하고 마는 모습 속에서도 민주노총은 그 어떤 지도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이제 대기업 노조에 의존하며 투쟁을 전개해왔던 민주노총은 그 중심을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돌입해 있다. 오히려 대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가 못하는가에 따라 대기업 노조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가 아닌가가 관건이 되었다. 따라서 대기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2. 정치노선의 차이와 분열
적(자본과 국가권력)을 이롭게 하는 이적단체와 이적행위
패권주의와 종파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사업기풍에서 그러한 모습을 본다면 아이러니일까?
상대를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하려하는 발상과 잘못 형성된 운동기풍.
운동의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무원칙한 모습을 보이는 가련한 인생들을 나는 운동내부에 기생하며 운동을 말아먹으려 생존하는 기생충이라 부르고자 한다.
그러한 기생충들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져야한다.
왜냐하면 실제 그러한 문제들 때문에 운동이 사분오열되어 투쟁이 집중되지 않고 적을 오히려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힘으로!
노선의 차이, 정치적 관점의 차이는 상호의 견해를 적을 향한 하나의 방향으로 조직화 되어야한다. 우리는 수많은 깃발을 따로 들고 투쟁을 함께 하고 있다. 그렇듯이 다양성을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단결투쟁의 기풍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것 같다.
적과의 관계에서 투항이 아니라 공격적 내용이나 의견이라면 모든 화살을 주적을 향해 쏘는 과정에서 다양한 내용을 전술적으로 배치하는 용병술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적을 향해 화살을 쏠 때 여러 가지 색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빨간색도 심장을 뚫을 수 있고 노란색도 심장을 뚫을 수 있다면 굳이 빨간색만이 더 강력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정면돌파냐 우회돌파냐에 대한 문제는 상황에 따른 전술적 판단의 문제이지 정면돌파론이 더 원칙론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왕왕 그러한 논쟁에서 동지를 너무도 쉽고 몰지각하게 개량주의 또는 나약한 인간으로 매도하면서 동지와의 관계를 구분하고 분열을 조장한다.
이는 끝내 분열되면서 패권주의로 나타나게 되고, 대중에 대한 불이익을 안겨주면서 적을 이롭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이 아주 못된 종파주의의 전형이며 이러한 운동 양태의 혁신 없이는 발전은 없다.


희망 2004

1. 새롭게 부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
끝내 조직된 힘으로 남기지 못하고 사안별, 사업장내 투쟁으로 끝났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개된 이랜드 투쟁이나 캐리어 사내하청투쟁과 한통계약직 투쟁은 비정규직 운동의 출발을 촉구한 커다란 투쟁들이었다.
이어서 전개된 2002년을 달구었던 화물연대투쟁, 건설노동자 투쟁으로 알려진 레미콘 노동자투쟁이 이어졌다. 2003년은 아산 현자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선두로 현자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화되면서 현중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조직화 전망을 넓혀 가고 있다. 세원테크와 근로복지공단 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화되어야 함을 죽음으로써 전체 노동계급 대중에게 그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제 민주노총과 계급적 노동운동세력은 새롭게 형성되는 노동계급 조직화 운동에 희망을 걸고 적극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죽어있는 정규직 노동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노동해방의 전망을 열어 가야한다. 그렇게 희망을 열어가자!


2. 계급대중의 역동성
2003년 계급대중의 역동성은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철저히 무력화되었다.
노동계급의 힘이 역동적으로 터져 오르기 전에 봉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거기에 민주노조운동이 한몫했다. ‘열사정신을 계승하자! 는 구호는 말뿐이었다.
이것이 나에게 객관적으로 비춰진 03년 초부터 열사투쟁 정국에서 드러나 민주노조운동에서 읽힌 평가이다.
아무런 긴장감 없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비상한 결의 없는 각종회의, 패배감과 회의감과 인간적 비애감만이 맴돌았던 상황 상황들.
비상한 긴장과 계급적 분노로 투쟁을 전개한 해당사업장의 동지들과 소수의 동지들만이 정당하다.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조의 허울 쓴 간부들은 계급대중의 역동성을 조직하지 않았다. 오히려 통제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계급의 역동성은 조직되어야 한다. 계급의 역동성이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올라와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대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희망을 만들어 가자!! 한/노/정/연

2004-01-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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