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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험노조 박동진 동지 관련자료

현장에서 미래를  제96호
사회보호법 폐지를 촉구하는 사회 원로 및 대표, 인사 312인

노조탄압 원흉 박태영은
마침내 한 노동자를 죽이고야 말았다!
……………………………………………………………………………… …사회보험노조 박동진 동지 관련자료






건강보험공단 비리구조의 정점에 있었던 박태영 전 이사장에게 해고된 공단 노동자가 오랜 수배생활에 지친 육신으로 2월13일 운명을 달리했다. 한 노동자의 비극을 배태했던 박태영은 2000년6월 이사장 부임 직후 노동조합에 무쟁의선언을 강요하고 노동조합의 반발을 악용, 공권력투입을 요청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자였다. 그리고 그의 임기 동안에 공단은 비리부패의 거대한 집단먹이사슬로 조직화되지 않았던가.

당시 노조직책이 서울본부장이었던 고 박동진 동지는 공권력 투입으로 공단복도에서 노사협상결과를 기다리던 1,600여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연행되어 박태영의 해고칼날에 희생된 10명 동지들 중 하나였다. 조합원들이 영문도 모른 채 개 끌려가듯 닭장차에 내팽개쳐진 것은 박태영의 잔인무도한 노조말살의 전주곡일 뿐이었다.

이후 박태영이 자행한 대량해고와 징계, 고소고발은 노동조합을 제물로 한 광란의 피의 제전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그는 악랄한 언론플레이로 자신을 공단의 수호자로, 노동조합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함으로써 노동조합 말살시나리오를 진행시켰다. 박태영의 노조말살 정책은 ▲235명의 대량해고, ▲500여명의 대량징계, ▲수백 명의 고소고발 남발, ▲노조원에 대한 무차별 원거리 전보, ▲노조통장 압류 등 끝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자행한 1,000여명이 구조조정은 그가 노사협상에서 제시한 고용보장약속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거짓된 속임수였는지를 증명해 주었다.

2001년10월 박태영은 전남도지사 출마를 위해 이사장직을 사직했다. 그의 이사장 재직시인 2000.7월부터 2001.10월까지 거대한 부패비리집단이 되어버린 공단의 일차적 책임자 자리에 있었던, 노조탄압 주범인 자의 화려한 이사장 이임식은 일만 공단노동자를 우롱하는 것이었다. 노조는 박태영의 이임식을 저지하려 했고, 이 건으로 고발당한 고 박동진 동지는 긴긴 수배생활로 들어간 것이다.

박태영에게 해고된 후 40살 늦깍이로 시작한 2001.4월부터의 신혼생활은 박태영으로 인해 수배자가 되면서 8개월 만에 끝이 났다. 수배생활은 그 흔한 건강검진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고단한 수배생활과 출생도 보지 못한 아이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고 박동진 동지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고 있었다. 극심한 고립감과 뼛속까지 파고드는 병마의 고통 때마다 변변한 치료도 없이 견뎌야만 했다. 고통에 지쳐 처음 병원을 찾은 것이 사망하기 바로 한달 전이었으니 그간 당한 고통이 어떠했겠는가.
하지만 공단부패비리구조의 중심에 있었던 박태영은 아직 수사 한번 받지 않고 건재하기만 하다. 박태영을 정점으로 한 핵심부서의 심복들이 부패비리로 챙긴 돈으로 기름진 배를 살찌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고 박동진 동지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신음하며 죽음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었다. 박태영이 공단이사장 직위에서 노조를 말살하며 영달을 꿈꾸고 있을 때, 박태영으로 인해 해고․수배된 고 박동진 동지는 장기수배를 겪으며 엄청난 스트레스와 열악한 건강관리로 서서히 사그라져 가고 있었다.

이 땅은 왜 이다지도 불공평한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자는 천지를 활보하고, 불의에 저항한 자는 왜 법에 쫓기며 사랑스러운 가족과 끝없는 생이별을 해야 했단 말인가. 노조탄압의 원흉이자 부패비리구조의 중심인물인 자는 전남도지사로 자리를 옮겨 또 다른 권력을 향유하고, 그가 자행한 폭거에 저항했던 한 노동자는 왜 새 생명을 잉태한 아내마저 와도 영원한 이별을 고해야 한단 말인가. 법은 권력자들만의 전유물인가.

이제 박동진 동지는 이승에서 뒤바뀐 선과 악을 바로 잡으라 하고 있다. 이를 가로막는 어떤 것에도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 투쟁으로 마침내 정의의 심판을 쟁취할 것이다.

우리는 치떨리는 분노와 피맺힌 한으로 공단과 검찰에 요구한다.
공단은 고 박동진 동지의 명예를 즉각 회복시키라!
공단은 유족들에게 상응한 위로금을 지급하라!
공단은 해고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동지들을 즉각 복직시키라!
검찰은 비리부패구조의 중심이었던 박태영을 즉각 구속 수사하라!

2004. 2. 16.
전국사회보험노동조합 5,400조합원 일동

■ 고 박동진 동지 약력
1989.2 서울 동작구 의료보험조합 입사
1989.5 서울지역의료보험노동조합 창립, 초대 법규부장으로 70일 파업 지도
1990.2 서울지역의보노조 사무국장
1992. 지부 투쟁으로 해고
1994-1995 의료보험연합회 앞 텐트가설, 복직투쟁
1996-97 사회보험노조 본조 상집위원으로 활동
1997.12 노사합의로 원직복직
1999.12 사회보험노조 서울본부 본부장 당선

■ 고 박동진 동지 수배 등 경위 및 투병일지
2000.7.1 사회보험노조 서울본부장으로 마포 건강보험공단 파업농성 지도 중 경찰특공대 침탈에 의해 1600여명 연행시 함께 연행되어 1차 구속자 9명과 함께 구속
2000.11.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실형선고
2001.3. 2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석방
2001.4 주정애 동지(현 안양동안지사)와 결혼
2001.10 비리원흉 박태영, 정치권진출 위해 퇴임, 사회보험노조 이임식 저지
2001.12 해복투 순회투쟁 및 박태영 이임식 저지 건으로 10명 수배자에 포함
2003.5 노무현 정권의 일부 사면조치시, 수배자라는 이유로 사면 제외
2004.1.14 수배지에서 암발병 진단됨
2004.1.17 서울대병원 진료
2004.1.25 서울대병원 및 강남성모병원 진료
2004.2.10 치료 불가 진단에 따라 강남성모병원 퇴원
2004.2.13 10:10 퇴원 3일만에 박동진 동지 운명

* 가족관계: 부인 사회보험노조 안양동안지부 노조원 주정애, 딸(3살), 5개월 된 태아

2004-02-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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