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스승 김진균 선생님을 보내며
손호철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민중의 벗이자 스승이신 김진균 선생님,
오늘 저희는 이렇게 모였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어깨를 두르고 노동해방을, 인간다운 세상을 목청
높여 외치던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오늘은, 다른 것도 아니고 선생님을 보내드리기
위해 이렇게 모였습니다.
선생님
해직과 복직의 파란만장한 직장생활을 해 오신 서울대
사회학과를
지난해 정년 퇴직하시고 기념모임에서 활짝 웃으시던 것이
엊그제 같은 데
일 년 만에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선생님, 기억하시겠지만,
선생님이 건강을 보살피지 않으시고 사회운동에 매진해 오시다가
2000년 총선 당시 민중운동의 대응방안에 대한 심포지엄을
끝내고 함께
즐거운 뒤풀이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속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셔서 암을 발견하시고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며칠 뒤 듣고 너무도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건강하시고 그 동안 투병도 잘 해오셨기에
툴툴 떨고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선생님.
모든 인간은 한번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지난해에야 정년을 하실 정도로 아직도 너무도
젊으시고,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잇단 전쟁이라는 자본의 공세
앞에서
선생님이 저희들을 이끌고 해 나가셔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는
점에서,
선생님의 죽음을 대하는 저희들의 심정은 참담하기만 합니다.
선생님, 왜 이리 빨리 저희들을 떠나시는 것입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한 인간의 삶에 대해 저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선생님은 군사독재시절 민주화 투쟁 속에 해직 등 어려움을
겪으셨을 뿐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산업사회연구회,
학술단체협의회, 교수노조 등을 만들어
진보적 학술운동, 진보적 교수운동의 초석을 세우셨습니다.
특히 이는 그 동안 개별적 수준에 그쳤던 비판적 지식인의
작업을
소위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집단적 작업으로 발전시킨 중요한,
역사적인 일이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뿐만 아니라, 민중운동의 진정한 벗으로
진보적 민중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이의 발전을 위해 일관되게
투쟁해 오셨습니다.
전노협 고문으로부터 민주노총 지도위원, 사회진보연대 대표,
진보네트워크 센터 대표, 민중연대 공동대표 등의 경력이 이를
웅변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세월이 흐르고 소위 민주정부들이 들어서면서
적지 않은 원로운동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체제에 포섭되고 보수화
되고 있을 때,
선생님은 오히려 갈수록 진보적이 되어 가시며
꿋꿋이 외로운 진보운동과 함께 해 오셨다는 점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그렇다고 진보운동에 따라다니는 이미지중의 하나인
고루한 벽창호였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선생님은 신세대의 변화하는 감성을 잡지 않으면
진보운동은 도태된다며
새로운 변화에 가장 먼저 눈뜨시고 앞서가신,
진보진영의 청년, 진보진영의 신세대, 시쳇말로 진보진영의
영계였습니다.
선생님은 젊은 저희들보다도 훨씬 먼저 인터넷의 중요성에 눈을
뜨셨고,
일찍이 시위현장에 디카를 가지고 다니시며 디지털 사진을 찍어
올리시는가 하면,
거짓말 등 신세대의 화제작에 예리한 분석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훌륭한 운동가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스승, 훌륭한 선배, 훌륭한 동지, 훌륭한 친구,
무엇보다도 훌륭한 인간이셨습니다.
비판과 공격, 거센 주장이 난무하기 마련인 운동판에서 선생님은
항상 웃는 얼굴로
분위기를 잡아 주셨고 조용한 목소리에 실린 외유내강의 힘으로
어려운 결정을 이끌어 내고 또 이끌어 오셨습니다
요즈음 얼굴이 예쁜 사람을 얼짱, 몸매가 뛰어난 사람을 몸짱,
마음이 예쁜 사람을 마음짱이라고 부르지만,
선생님은 수려한 용모와 뛰어난 풍채에 따뜻한 마음과 인격까지
갖추신
민중운동, 진보진영의 얼짱이자, 몸짱, 마음짱이셨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떠나시던 날 현대중공업의 하청노동자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을 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국회는 반전평화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추가
파병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또 선생님이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 계신 동안, 국회는 한-칠레
FTA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떠나가고 없지만 선생님이 삶을 걸고 싸워온
비정한 현실은 이처럼 냉엄하게 우리를 옥죄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자리, 선생님의 가르침과 격려, 이끌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립습니다.
이제 시위 현장에 나타나면 보는 이들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던
조각같이 아름답던 선생님의 얼굴과 풍채, 그리고 따뜻한 미소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은 평소 불나비라는 노래를 좋아 하셨고
인터넷 아이디도 불나비를 사용하시는 등
불을 향해 돌진해 자신을 불사르는 불나비 같은 뜨거운 삶을
살고자 하셨고,
또 그렇게 사셨습니다.
선생님은 이제 가고 안 계시지만,
우리 모두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위해,
모든 억압과 착취, 차별과 배제가 없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작은 불나비가 되어 불을 향해 돌진하겠습니다.
선생님, 편안히 잠드십시요
2004년 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