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문제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이해
전 성 식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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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악화되는 노동자․민중의 비참한 삶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어렵지만 단란하던 가족이 붕괴되고, 평범하고 선량하던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자신의 목숨을 끊고 있으며, 심지어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참극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들 여러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자본주의 그 자체이며, 이것이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은 현재 한국자본주의가 처한 위기의 정도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얼마 전까지도 주택문제는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심각한 사회문제 가운데 가장 첨예한 문제의 하나였다. 부동산에 대한 투기가 격화되고, 그 결과로 주택가격과 전․월세가격이 폭등하여 노동자․민중의 삶이 팍팍해지고 이에 견디다 못한 가장의 자살이 속출하고 또 가족이 함께 자살을 했던 것도 그다지 먼 과거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주택문제는 그다지 큰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왜일까? 문제가 해결되었거나, 그 정도가 많이 완화되어서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주택문제는 과거보다 더욱 심각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심각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사회문제의 심각성이 너무나 커져서 이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아비규환인 현재의 상황에서 주택문제에 대한 고민은 일종의 사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택문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작아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주택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주택가격의 급속한 상승과 이에 동반하는 임대가격(전․월세가격)의 급격한 상승에 의해 사람들이 겪는 이러저러한 고통이다. 여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장만하려면 수십 년 동안 저축을 하거나 혹은 비슷한 기간동안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는 것이 들어있다. 또한 이것조차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의 전개와 때로는 임금소득의 많은 부분을 주거비로 지출해도 현재의 열악한 주거상태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 고통은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소부르주아 층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주 거론되며 원인에 대한 여러 견해와 온갖 다양한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과학적 관점을 결여하고 있거나 그것을 견지하려고 하지만 철저하지 못하여 문제의 해결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주택문제가 노동자․민중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이기에 무관심에 대한 비판, 관심의 촉구와 해결책에 대한 모색은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견지해야할 관점과 태도는 주택문제의 해결을 통해 사회문제의 해결을 꿈꾸는 박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편협한 소부르주아지의, 또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파렴치한 부르주아지의 관점과 태도일수는 없다. 우리는 주관적 희망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 기초하여야 한다. 이 짧은 글은 주택문제와 관련된 몇 가지 기본적인 경제학적 문제에 대한 해명과 엥겔스의 글(엥겔스, 「주택문제에 대하여」,『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4권)을 검토하는 것을 통하여 주택문제에 대한 노동자적 관점과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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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주택가격과 임대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과 주기적으로 폭등하는 양상을 갖는다. 경험으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현실에서의 주택가격과 임대가격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극히 예외적이며 일시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줄기차게 상승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의 원인을 인구의 도시집중과 주택의 절대부족이라는 현상에 근거하여, 흔히 언급되듯이, 수요-공급 관계와 인플레이션에서만 찾는 것은 토지가격의 본질과 운동에 대한 이해 부족의 증거이다. 물론 수요-공급관계에 의해서 토지 및 주택의 가격은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문제를 속류경제학의 견해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수요에 대한 공급의 부족, 이것은 분명 가격의 상승을 유발하며, 이 경우 공급을 늘리는 것을 통하여 그 가격의 상승을 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되풀이하여 문제 자체를 새롭게 산출하므로 전혀 해결이 아닌 해결을 통하여” 해결하려는 속류적 사고방식이고 자본주의적 해결방법이다.2) 따라서 우리가 여기에 머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약간의 경제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1) 지대
자본가가 그의 자본을 투하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토지가 필요하다.(농업자본가가 대표적이다.) 이 자본가는 그가 이용하는 토지의 소유자에게 특정의 생산분야에 자기의 자본을 이용하는 것을 허락한 대가로 일정한 기간에 계약상으로 확정된 화폐액을 지불한다. 이 화폐액이 지대이며 이것이 경작지․건축지․광산․어장․삼림 등등의 어느 것에 대하여 지불되더라도 이것은 지대라고 불린다. 또한 지대는 토지소유자가 토지를 자본가에게 계약에 의해 임대한 기간 전체에 걸쳐 지불된다. 그러므로 토지소유자의 경우 지대는 ‘토지소유의 경제적 실현’이며 가치증식의 형태이다.3) 이러한 지대는 일정한 화폐액으로 나타나게 된다.4)
(2) 토지가격의 본질
상품들이 가격을 갖는 것은 그것이 노동의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지는 본래 자연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결코 노동생산물이 아니다. 따라서 토지가 가격을 갖는다는 것은 불합리하다.5) 하지만 현실에서 토지는 다른 상품들처럼 가격을 갖고 있으며 거래되고 있다. 토지가격은 다른 상품들의 가격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고, 따라서 결정원리도 다르다. 앞서 본 것처럼 토지의 소유자는 지대를 수취하며 이것은 “매년 얻고 있는”, “일정한 화폐액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일정한 화폐수입은 자본화될 수 있으며 가공의 자본에 대한 이자로 간주될 수 있다. 예컨대 평균이자율이 5%이라면 연간의 지대 200원은 4,000원이라는 자본에 대한 이자로 간주될 수 있다. 이처럼 자본화된 지대가 토지의 구매가격 또는 가치를 형성하”6)게 되는 것이다. 즉, 정확히 다시 말하면 “사실은 토지의 구매가격은 토지의 가격이 아니라, 토지가 낳는 지대를 현행의 이자율에 따라 계산한 가격이다. 그러므로 지대의 이러한 자본화는 지대 그것을 전제하는 것이며 지대가 그 자신의 자본화로부터 도출되고 설명될 수는 없다.”7) 즉, 토지가격은 지대의 크기와 일반이자율의 관계에서 결정되고 변화하는 것이다. 또한 토지가격(지대의 자본화)이 지대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은 토지소유자에게 지대란 아무런 자본의 투하 없이도, 그가 단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발생하는 것으로 바로 지대 때문에 토지가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에서 가격이 먼저 존재하고 이를 근거로 토지소유자가 지대를 청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른 많은 경제현상들처럼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8)
(3) 토지가격의 운동
노동생산물로서의 상품은 노동생산성의 변화에 따라서 가격이 변화한다. 그리고 이들 상품은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토지의 가격은 이와는 전혀 다른 운동을 하게 되는데, 앞서 말한 대로 경향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이것은 ‘자본환원된 지대’로서의 토지가격(지대의 자본화)의 본질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토지가격이 지대의 크기의 움직임과 일반이자율의 움직임에 의해서 규정되기 때문이다. 토지가격에 관해 “경쟁에 의한 일체의 가격 변동, 일체의 토지투기 그리고 소토지 소유를 무시”하더라도 “토지가격은 지대가 증대하지 않아도 상승할 수 있다. 1) 단순히 이자율의 하락에 의하여. 이자율의 하락은 지대로 하여금 보다 고가로 판매되게 하며 따라서 자본화된 지대인 토지가격은 상승한다. 2) 토지에 합쳐진 자본의 이자가 증대하기 때문에”9) 그러하다.
앞서 본 것처럼 토지가격은 지대를 일반이자율로 나눈 값이므로 “지대가 불변의 크기라면 토지의 가격은 이자율에 반비례하여 등락한다. … 토지가격의 이 운동은 단순히 이자율에 의해 규제되며 지대 그것의 운동과는 무관하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사회의 발전에 따라 이윤율은 저하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이자율도 [이윤율에 의해 규제되는 한] 저하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리고 이자율은 [이윤율에 의한 영향을 도외시하더라도] 대부가능화폐자본의 증가에 따라 저하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토지의 가격은 지대의 운동이나 토지생산물의 가격[지대는 이것의 일부를 이룬다]의 운동과는 무관하게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10)
후자의 문제, 즉 토지에 합체된 이자가 증대함으로써 토지의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자본은 토지에 고정될 수도 있고 토지에 합쳐질 수도 있다. 이처럼 토지와 일체가 된 자본을 ‘토지자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고정자본의 하나이다. 이렇게 합체된 자본이나 토지에 더해진 개량에 대한 이자는, 진정한 지대는 아니지만, 차지자본가가 토지소유자에게 지불하는 지대의 일부를 이룬다. 또한 토지에 합쳐진 모든 개량은 토지라는 실체의 불가분의 부속물로서 차지기간이 지나면 토지소유자의 소유로 되어버리며, 이것은 다음 번 임대계약 때 토지에 합쳐진 자본에 대한 이자로서 진정한 지대에 추가된다.11)
또한 “토지가격은 지대가 증대하기 때문에 상승할 수 있다.”12) 지대는 토지생산물의 가격이 올라가면 증대할 수 있다. 토지생산물의 가격이 올라가면 자본가에게 초과이윤이 발생하며, 이러한 상황이 다음 계약 때까지 계속된다면 이후 발생하는 초과이윤은 지대로 전환되어 지대가 증대하게 된다. 이 경우 이자율이 지대의 상승률만큼 올라가지 않으면 이 지대의 상승의 결과로 토지의 가격은 올라간다. 그런데 “토지생산물의 가격이 불변이면서 지대가 증대할 수 있는 경우”13)도 있으며, “토지가격은 토지생산물의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상승할 수 있다.”14)
이상에서 보았듯이 토지에 대한 경쟁이나 투기, 인플레이션을 무시하더라도 토지가격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경향적으로 상승하고, 토지소유자는 전혀 아무런 추가된 노력 없이도 사회적 생산의 결과 중 더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토지는 확실한 투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4) 토지가격에 대한 투기와 인플레이션의 영향
앞서 확인한 것처럼 토지가격은 경향적으로 상승하게 되며 이러한 까닭에 토지는 확실한 투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토지가격이 폭등하여 사회적 문제로 되는 것은 늘 있는 일은 아니다. 토지에 대한 투기는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하게 되며,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순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즉, 토지에 대한 투기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순환과정에서 그 호황의 말기에 이르러 집중적으로 격화되고 공황국면의 일정한 진행과 더불어 진정되는 특징을 가진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윤을 위한 무정부적 생산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징적 성격은 주기적으로 과잉 생산과 공황에 이르는데, 번영 즉 생산의 확대가 급격하게 진행되면 시장의 포화에 의한 자본간의 경쟁의 격화, 생산부문간의 불균형의 확대에 의한 원료가격의 등귀, 이자율의 등귀, 사업예비군의 감소 혹은 고갈에 의한 임금의 등귀 등으로 급격히 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한다. 토지투기를 비롯한 일체의 투기의 격화는 자본의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 곧 자본의 과잉생산과 관련이 있다. 호황기의 막바지에 자본의 이윤율이 급격히 떨어지면, 수많은 소자본은 더 이상 자본으로서 기능할 수 없게 되고 투기의 길로 쫓겨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호황 말기에 보여지는 부동산 투기의 격화와 주식시장의 팽창의 이유이다.15)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에서의 토지가격은 인플레이션이 없어도 경향적으로 상승하게 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토지가격에 반영되어 그것을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것은 토지문제를 사회문제의 가장 심각한 부분의 하나로 만든다.
(5) 건축지지대
주택이 건설되는 토지인 건축지 역시 지대를 발생시킨다. 건축지지대의 근거 역시 다른 비농업용토지의 지대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농업지대의 원리에 의해 규제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위치가 차액지대에 대하여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소유자가 완전히 수동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 대부분의 경우 독점가격이 지배적이고 빈곤을 가장 무자비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건축지지대를 필연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은 인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주택수요의 증가뿐만이 아니라 건축지 등에 투여되는 고정자본의 증가에 의해서이다.16)
(6) 주택가격과 주택임대가격
주택가격은 그것을 세우는데 들어간 건축비용과 건축비용에 대한 이윤으로 구성되는 주택건물가격과 그 건물이 차지하고 있는 토지가격의 합으로 나타난다. 주택소유권과 토지소유권이 일반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혼란에 빠지기 쉽지만, 앞서 본 것처럼 이 양자는 엄연히 다른 경제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도시들에서의 건축업은 주택 그 자체로부터 이익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지대의 상승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 한다.17) 이렇게 결정되는 주택가격은 주택임대가격 결정의 기초가 된다. 주택임대가격은 주택에 투하된 자본(고정자본)에 대한 이자와 감가상각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진정한 지대와는 다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건물의 임대는 토지의 임대를 이미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임대료에는 지대성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보다 엄밀히 말하면 ‘주택임대가격’이라 하는 것은 그것의 본질은 고정자본으로 대부된 화폐자본의 이자이다.18)
(7) 토지소유와 토지국유화
한마디로 토지소유란 “어떤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배제하면서 지구의 일정한 부분을 자기의 개인 의지의 배타적인 영역으로 지배할 수 있는 독점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전제한다.”19) 그리고 지대의 취득은 토지소유가 자신을 실현하는 경제적 형태이며, 토지소유를 전제한다는 공통적 특징을 갖는다.20) 그러나 지구는 어느 누구의 노동생산물이 아니고 전세대에 걸쳐서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일반적인 관념 속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배제하면서 지구의 일정한 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크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높은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보면, 토지에 대한 개개인의 사적 소유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적 소유(노예―인용자)와 꼭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심지어 사회전체․한 국민․동시에 존재하는 사회들의 전체도 땅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들은 다만 땅의 점유자․이용자일 따름이며, 선량한 가장으로서 땅을 개량하여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21)
자본주의적 생산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기초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한편으로 직접적 생산자가 토지의 단순한 부속물의 지위로부터 해방되는 것,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대중으로부터 토지를 수탈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토지에 대한 사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이러한 한도 내에서 토지소유의 독점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적 전제이며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영속화시키는 토대이다.22)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국유화’는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자본의 효율적인 축적을 위하여 필요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어서 토지의 사적소유는 자본주의 발전에 주요한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토지소유는 기본적으로 기능자본(산업자본과 상인자본)과 분리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토지구입에 투여되는 자본은 생산과 유통에서 기능하지 못하고 비생산적 토지에 동결되게 된다. 또한 토지소유자는 토지를 자본가에게 임대하여 주고 임대료를 받는데 이것은 사회적 평균이윤율을 초과이윤으로 토지에 대한 사유가 없다면 자본가의 몫으로 되는 부분이다. 토지소유가 없으면 지대도 없다. 따라서 토지소유는 자본의 축적을 방해하는 것이고 결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방해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토지의 국유화까지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일반적으로 현실성이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적소유’의 신성불가침을 훼손시키고 많은 경우 자신이 토지소유자이며 자본가와 토지소유자는 지배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23)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토지국유화는 노동자적이기보다는 자본가적이다. 물론 토지의 사유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누르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24) 따라서 토지의 국유화가 노동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착취의 증가는, 노동자들의 각성과 조직의 발전에 따라서, 사회적 긴장과 대립을 유발하고, 자본주의의 존속에 유해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도 토지의 국유화는 노동자적이기보다는 자본가적이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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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일반의 안정적이고 최대한의 축적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토지국유화’에 대한 이념적 필요성과 현실적 불가능성간의 모순은 여러 형태로 외화하는데, ‘토지공개념’이 그 대표적 표현이다. 토지공개념이 절대지대와 관련한 토지국유화의 필요성과 비현실성간의 대립의 타협이라는 것은 앞서 살펴본 대로 토지가격이 ‘자본환원된 지대’이기 때문에 자본가가 토지를 임대할 때 절대지대를 지불하는 것은 물론이고, 취득할 때조차 그 가격 속에 절대지대를 지불한다는 사실과 토지투기를 통해 자본가 자신들이 주요한 투기가이고 그 투기로부터 많은 이익을 얻지만, 그 투기가 자본의 재생산에 주요한 교란의 원인이 되고 사회적 긴장과 대립을 유발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즉 ‘자본 일반의 안정적이고 최대한의 축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 일반 혹은 총자본의 입장에서는 토지투기를 일정한 한계 내에서 억제할 필요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철저히 계급적인 토지공개념은 현실에서도 국가를 매개로 자본의 안정적이고 최대한의 자본축적을 위한 방편으로 실행되어 왔다. 즉 국가는 효율적인 국토관리의 명분으로 토지소유에 대한 제한을 가함으로써 자본가에게 유리한 제반 토지․주택정책을 통해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도록 한다. 즉, 산업 및 노동력의 창출을 위해 공업용지 및 택지의 대량개발은 사실상의 토지소유자인 농민과 도시 소부르주아지들에 대한 토지의 강제수용, 토지소유․사용권의 제한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과정은 자본과 일부의 토지소유자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고 자본축적에 도움을 주지만 사실상의 토지소유자인 농민이나 도시빈민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에도 진행되는 도시재개발이나 신도시 건설 역시 모두 이에 다름 아니다.
국가와 자본은 법과 정책을 동원하여 소위 ‘공시지가’에 준하는 매우 낮은 가격으로 토지나 주택을 강제로 판매토록 한다. 혹은 필요하다면 공권력을 포함한 물리적 힘을 동원한 강제철거로 토지나 주택을 사실상 강제수용하고 이를 개발하는 과정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남긴다. 이렇게 개발된 토지나 새로 건설된 주택의 가격은 엄청나게 상승하고 그 개발주변의 토지가격은 폭등한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건축지 지대의 상승원리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이다. 즉 개발과정 속에 투여된 모든 자본은 결국 건축지 지대화하고 이것은 모두 지가에 반영된다. 그리고 이렇게 개발되어 가격이 상승한 토지와 주택은 그 분양에 있어 일정 수준이하의 사람들을 그곳으로부터 몰아내고 배제한다. 결국 자본가와 그의 다른 모습인 투기가들이 그 토지와 주택을 값싸게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토지(주택)소유자들은 살기 좋아진 자신이 살던 땅과 집을 버리고, 개발되기 전 자신이 살던 곳과 비슷하여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을 찾아 떠돌게 된다. 이 때문에 도시재개발이나 신도시개발은 언제나 피를 보게 된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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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스는 1872년부터 1873년에 걸쳐 「주택문제에 대하여」를 썼다. 당시에도 심각했던 주택문제에 대하여 푸르동주의자인 뮐베르그와 박애주의적 부르주아지 에밀 작스가 해결책을 제시한데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이 그 내용이다. 비록 오래된 글이고 역사적 조건과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그 글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마지막으로 엥겔스의 글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겠다. 엥겔스는 주택문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신문 지상에서 그렇게 큰 역할을 맡고 있는 이른바 주택난의 요체는 노동자 계급이 일반적으로 열악하고 과밀하며 비위생적인 주택에서 살고 있다는 데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주택난은 현재에 고유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의 모든 피억압 계급들과는 달리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에 고유한 고통들 가운데 하나인 것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모든 시대의 모든 피억압 계급들에게 거의 비슷한 정도로 해당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택난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오직 하나의 수단이 있을 뿐이다: 지배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전반적으로 제거하는 것―오늘날 사람들이 주택난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이렇다. 대도시로 인구가 갑자기 몰려듦으로써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택사정이 특별히 심해진 것; 임대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한 것, 개별 가옥에 거주자들이 더욱 밀집하는 것, 일부 사람에게는 거처를 구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게 된 것. 그리고 이러한 주택난이 이렇게 떠들썩하게 화제로 되는 것은, 그것이 노동자 계급에 국한되지 않고 소부르주아 층에게도 해당되었기 때문이다.(강조―엥겔스)”27)
우리에게도 주택난은 역사적으로도 현재에도 엥겔스가 말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 산업화 정책으로 불리는 공업화 도시화 정책은 엄청난 이농현상과 도시의 과밀화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것은 도시에서 주택문제를 발생시켰다. 또 이를 해결하려는 과정은 주택가격 및 임대가격의 상승과 투기를 불러와 더욱 심각한 주택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도시에서 거처를 구하지 못하고 도시 외곽으로 쫒겨 나가거나 혹은 말 그대로 사람이 기거하기 어려운 곳에 빌붙어 살게 되며 빈민이라 불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도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발생하는 주택문제의 ‘요체’다.
엥겔스는 주택문제를 “비교적 작은 이차적 폐단들 가운데 하나”라고 폄하(?)한다.28) 그리고 자신은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하며 그러한 자신을 비난하는 것에도 변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29)
또 엥겔스는 주택문제의 해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렇다면 주택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다른 모든 사회 문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해결된다: 수요와 공급의 점진적인 경제적 조정을 통하여, 즉 항상 되풀이하여 문제 자체를 새롭게 산출하므로 전혀 해결이 아닌 해결을 통하여. 사회혁명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그때 그때의 상황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대립의 폐지를 가장 본질적인 것들 가운데 하나로 하는 훨씬 광범한 여러 문제들과도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미래 사회의 수립을 위한 유토피아주의적 체계를 만들어 낼 필요는 전혀 없으므로, 그것을 다루는 것은 전혀 무익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미 지금 대도시에는 합리적으로 이용할 경우 모든 현실의 “주택난”을 즉각 시정할 수 있기에 충분한 주택용 건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은 물론 오늘날의 소유자들로부터의 몰수를 통해서만, 즉 숙소가 없는 사람들이나 이제까지의 주택에 과도하게 밀집해 있는 노동자들을 그들의 가옥에 수용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는데, 공공의 복지가 필요로 하는 그러한 조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전취하자마자, 마치 오늘날의 국가에 의한 다른 몰수 및 수용이 그렇듯이 쉽게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30)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현존하는 한, 그런 한, 주택 문제나 노동자의 운명과 관계되는 다른 어떤 사회 문제라도 개별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반대로 해결은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폐지, 노동자 계급 자신에 의한 모든 생활 수단 및 노동수단의 전유에 있는 것이다.”31)
“덧붙여 말하자면, 근로 인민 측에 의한 모든 노동 도구의 “사실상의 점유 획득”, 전체 공업의 점유는 프루동주의적인 “상환”과 정반대의 것임을 확인해 두어야 하겠다. 후자의 경우에는, 개별 노동자가 주택, 농가, 노동 도구의 소유자가 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근로 인민”이 가옥들, 공장들, 노동 도구들의 총소유자로 남게 되며, 적어도 과도기 동안에는 이것들에 대한 용익이 비용의 변상 없이 개인이나 조합들에게 양도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토지 소유의 폐지가 지대의 폐지가 아니라, 수정된 방식이긴 하지만 지대의 사회로의 위탁인 것과 똑같다. 따라서 근로 인민에 의한 모든 노동도구의 사실상의 점유 획득은 임대차 관계의 유지를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32)
주택문제에 대한 엥겔스의 이러한 태도는 “본질주의”라고 비판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올바르다는 생각이다.33) 여기서 엥겔스가 증명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겠다는 그 문제―“우리 현대 사회의 생산이 모든 사회 성원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할 만큼을 조달하고 있으며 가옥들이 근로 대중에게 당장 널찍하고 위생적인 거처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는 것”―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매우 의미심장하다. 적어도 엥겔스의 “현대 사회”보다 우리의 현재가 훨씬 더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의 국가(이것은 자본주의 국가다―인용자)에 의한 다른 몰수 및 수용이 그렇듯이 쉽게 실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토지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와 연관하여 생각해보아도 또한 의미심장하다. 몰수 및 수용이란 말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부르주아지들이 아니다. 아마도 그런 자들은 소부르주아적 속물들뿐일 것이다.
또한 절대지대의 폐지를 위한 토지국유화가 자본주의의 근본을 전혀 거느리지 못하는 것처럼, 지대 일반의 폐지를 위한 노력은 전혀 사회주의적이지 못하며 때로는 반동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지대가 존재할 것이며 임대차 관계도 유지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권력을 전취하”여 “합리적으로 이용할 경우 모든 현실의 주택난을 즉각 시정할 수 있기에 충분한 주택용 건물”을 “오늘날의 소유자들로부터의 몰수를 통해서”, “즉 숙소가 없는 사람들이나 이제까지의 주택에 과도하게 밀집해 있는 노동자들을 그들의 가옥에 수용함”으로, “쉽게 실행”하여 주택난을 해소하겠지만 그들 주택들은 임대될 것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집을 소유하지 않을 것이며 사회로부터 임대할 것이다.34)
엥겔스는 노동자들의 주택소유가 주택문제의 해결의 핵심이 아니며 오히려 대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들의 해결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35)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자와 부르주아적 사회주의자들은 주택소유를 통해 주택문제를 해결하여 사회를 안정화시키고 노동자들을 고통에서 구제하려고 한다. 엥겔스는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경제학에 기초한 것이 아닌 법학과 도덕에 기초한 것으로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라고 비판한다. 또한 엥겔스는 노동자의 주택(토지)소유를 반동적이라고 비판한다.36) 엥겔스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한편으로 노동자가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해도 그 경우에는 주택비용이 재생산 가치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해서 결국 노동력가치 하락에 조응하는 임금삭감이 발생할 것이고37), 다른 한편으로 일부의 노동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 경쟁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노동자 보다 적은 임금으로도 일을 하게 할 것이고, 결국 다른 노동자들을 압박하여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일하도록 하는 저임금을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38)
엥겔스는 이외에도 주택문제의 해결을 위한 여러 방법과 주장들, 예를 들면 “노동자 이민지(신도시개발―인용자)”, “노동자 자조”, “국가 보조”, “오스만(도시재개발―인용자)”등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는데, 지금의 우리에게 주택문제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준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주택문제는 노동자․민중의 삶과 긴밀히 연관된 중요한 사회문제이다. 그것이 그다지 커다랗게 보이지 않는 것은 주택문제가 심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현재 노동자․민중의 삶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문제의 근본원인은 한국자본주의 자체에 있다. 우리는 한시도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사회적 악의 제거를 위한 이 실제적 제안들, 이 사회적 만병 통치약은 언제 어디서나,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아직 유년기에 있을 때 등장한 종파들의 창시자들의 제조품이다. 프루동도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은 곧 이런 미리 생각해 낸 ‘실제적 해결’만큼 비실제적인 것도 없으며 또 실제적 사회주의는 오히려 자본주의 생산 방식을 그 다양한 측면에서 올바로 인식하는 데 있다고 하는 통찰을 노동자 계급 자체에서 산출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 밝은 노동자 계급은 어떤 주어진 경우에든, 주된 공격을 어떤 사회제도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가해야 하는 가를 놓고 절대로 곤란을 겪지 않을 것이다.”39)
1) 이 글은 다음의 두 글에 많은 부분 의존하였음을 밝혀둔다.
1) 이 글은 다음의 두 글에 많은 부분 의존하였음을 밝혀둔다.
민족민주운동연구소 정세분석과, 「‘토지공개념’ 소동의 본질에 대해서」,『정세연구』제3호, 1989. 10.; 채만수, 「자본주의적 생산과 토지문제」,『주택문제의 인식과 대안』, 민족민주운동연구소, 논장, 1990.
2) “그렇다면 주택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다른 모든 사회 문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해결된다 : 수요와 공급의 점진적인 경제적 조정을 통하여, 즉 항상 되풀이하여 문제 자체를 새롭게 산출하므로 전혀 해결이 아닌 해결을 통하여”. 엥겔스, 「주택문제에 대하여」,『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4권, p194.
3) 맑스, 김수행 역,『자본론』3권, p.764.
4) “지대는 [토지소유자가 땅의 한 조각을 임대하여 매년 얻고 있는] 일정한 화폐액으로 표시된다.“ 앞의 책, p.770.
5) “이처럼 자본화된 지대가 토지의 구매가격 또는 가치를 형성하는데, 이것은 노동의 가격이 불합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명백히 불합리한 범주이다. 왜냐하면 토지는 노동의 생산물이 아니며 따라서 가치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앞의 책, p.770.
6) 앞의 책, p.770.
7) 앞의 책, p.770.
8) 앞의 책, p.954.
9) 앞의 책, p.955.
10) 앞의 책, pp.770~771. 여기에 덧붙여, 같은 책, pp.433~447.
11) 앞의 책, pp.765~6.
11) 앞의 책, pp.765~6.
“이것이 경제발전의 진행에 따라―지대 그것의 변동과는 별도로―토지소유자들의 부가 증대하며 그들의 지대가 끊임없이 팽창하고 그들의 소유지의 화폐가치가 증대하는 비밀의 하나이다.”(맑스, 같은 글, p.766)
12) 앞의 책, p.955.
13) 앞의 책, pp.955~6.
14) 앞의 책, pp.958~959.
15) “이윤율의 저하와 함께, 노동의 생산적 사용을 위해서 개별자본가가 가져야 할 자본의 최소한도도 증대한다. 이 최소한도의 자본은 노동의 착취 일반을 위해서도 그리고 상품의 생산에 지출되는 노동시간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노동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동시에 집적도 증대한다. 왜냐하면 어느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면 이윤율이 낮은 대자본이 이윤율이 높은 소자본보다 더 급속하게 축적하기 때문이다. 이 집적의 증대는 어느 일정한 수준에 달하면 다시 이윤율의 새로운 저하를 야기한다. 그리하여 소규모 분산된 수많은 자본들은 모험적인 길에 들어서지 않을 수 없게 되어 투기, 신용사기, 주식사기, 공황이 발생한다. 이른바 자본의 과다는 언제나 기본적으로, 이윤율의 저하를 이윤량에 의하여 보상하지 못하는 자본-새로 형성되는 자본분파들은 항상 이렇다-의 과잉을 가리키거나, 또는 스스로 행동할 능력이 없어 신용의 형태로 대기업의 지도자들에게 그 처분이 위임되는 자본의 과잉을 가리킨다.” 맑스, 앞의 책, pp.298~9.
16) 앞의 책, pp.950~951.
17) 맑스, 김수행 역,『자본론』2권, pp.268~269. 『자본론』3권, p.952.
18) “건물의 소유에 관한 위의 실례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중요하다. (1) 그것은 진정한 지대와 [토지에 합쳐진 고정자본에 대한] 이자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밝혀 주는데, 이자는 지대에 대한 추가분을 이룰 수 있다. 건물에 대한 이자는 [농업의 경우 차지농업가가 토지에 투하한 자본에 대한 이자와 마찬가지로] 차지계약기간에는 산업자본가[건축투기업자 또는 차지농업가]에게 귀속하며 그 자체로서는 [매년 특정일에 토지의 사용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지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업다. (2) 위의 실례는 토지에 합쳐진 타인의 자본이 결국 토지와 함께 토지소유자의 것으로 되며 이 자본에 대한 이자가 지대를 증대시킨다는 것을 밝혀 준다.” 맑스, 김수행역, 『자본론』3권, pp.768~769.
18) “건물의 소유에 관한 위의 실례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중요하다. (1) 그것은 진정한 지대와 [토지에 합쳐진 고정자본에 대한] 이자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밝혀 주는데, 이자는 지대에 대한 추가분을 이룰 수 있다. 건물에 대한 이자는 [농업의 경우 차지농업가가 토지에 투하한 자본에 대한 이자와 마찬가지로] 차지계약기간에는 산업자본가[건축투기업자 또는 차지농업가]에게 귀속하며 그 자체로서는 [매년 특정일에 토지의 사용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지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업다. (2) 위의 실례는 토지에 합쳐진 타인의 자본이 결국 토지와 함께 토지소유자의 것으로 되며 이 자본에 대한 이자가 지대를 증대시킨다는 것을 밝혀 준다.” 맑스, 김수행역, 『자본론』3권, pp.768~769.
“임대가격, 즉 속칭 임대 이자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지대 부분, 2. 건설 기업가를 위한 이윤을 포함하는, 건설 자본에 대한 이자 부분, 3. 수리 비용 및 보험 비용을 위한 부분; 4. 가옥이 점차 마모되어 감에 따라, 건설 자본을 이윤까지 포함하여 연부 지불금으로 상각하는(감채하는) 부분.” 엥겔스, 같은 글, p.198.
19) 맑스, 김수행 역, 『자본론』3권, p.761.
20) 앞의 책, pp.783~790.
21) 앞의 책, p.954.
22) 앞의 책, p.762.
23)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있어서는 자본가는 생산에서 기능하는 필요한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지배적인 당사자이다. 이와 반대로 토지소유자는 이 생산방식 에서는 전혀 쓸 데 없는 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필요한 모든 것은 토지가 공동소유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노동계급에 속하지 않는 생산조건으로서 그와 대립한다는 것이며, 이 목적은 토지가 국가의 소유로 되고 따라서 국가가 지대를 받는 경우에 완전히 달성된다. 고대 및 중세기 세계에서 그렇게 본질적 기능을 수행한 토지소유자는 공업적 세계에서는 쓸 데 없는 혹이다. 그러므로 급진적 부르주아지는(나아가 기타의 모든 세금의 폐지를 바라면서) 이론적으로는 사적 토지소유를 부정하는데로 나아가고, 그것을 국가소유의 형태로서 부르주아계급 즉 자본의 공동소유로 전환시켰으면 한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는 그들에게는 용기가 없다. 왜냐하면, 한 소유형태에 대한―노동조건의 한 소유형태에 대한―공격은 다른 형태에도 매우 위험한 것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자신이 토지를 소유하였던 것이다.” MEW 26, 제2부, 현실과 과학 판, p.46. 채만수의 글에서 재인용.
24) “그러나 이 이자를 제외하더라도, 차지료의 일부 또는 어떤 경우에는 전부가 평균이윤으로부터의 공제분 또는 정상적인 임금으로부터의 공제분 또는 이 두 개 모두로 구성될 수가 있다. [이 경우 진정한 지대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토지의 가치는 0이다]. 이러한 부분 [이윤의 일부든 임금의 일부든]이 여기에서 지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그 부분이 정상적인 경우에서처럼 산업자본가나 임금노동자에게 귀속하지 않고 차지료의 형태로 토지소유자에게 지불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이 부분은 지대를 구성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 부분은 진정한 지대와 마찬가지로 토지소유자의 수입 [그의 독점의 경제적 실현]을 구성하며 토지의 가격결정에도 동일한 영향을 미친다.” 맑스, 김수행 역, 『자본론』3권, p.773.
24) “그러나 이 이자를 제외하더라도, 차지료의 일부 또는 어떤 경우에는 전부가 평균이윤으로부터의 공제분 또는 정상적인 임금으로부터의 공제분 또는 이 두 개 모두로 구성될 수가 있다. [이 경우 진정한 지대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토지의 가치는 0이다]. 이러한 부분 [이윤의 일부든 임금의 일부든]이 여기에서 지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그 부분이 정상적인 경우에서처럼 산업자본가나 임금노동자에게 귀속하지 않고 차지료의 형태로 토지소유자에게 지불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이 부분은 지대를 구성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 부분은 진정한 지대와 마찬가지로 토지소유자의 수입 [그의 독점의 경제적 실현]을 구성하며 토지의 가격결정에도 동일한 영향을 미친다.” 맑스, 김수행 역, 『자본론』3권, p.773.
“그러나 훨씬 더 일반적이고 중요한 사실은 특히 농업노동자의 임금이 정상적인 평균 이하로 인하되고 이리하여 노동자 임금의 일부가 노동자로부터 공제되어 차지료의 한 구성부분을 이루어 지대라는 가면을 쓰고 토지소유자에게 귀속한다는 것이다.” 맑스, 김수행 역, 『자본론』3권, p.775.
25)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마디 덧붙이겠다. 토지가 국유화되면 토지에 대한 투기는 분명히 사라진다. 또 토지국유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니다. 왜냐하면 토지가 국유화되면 다른 상품들, 예를 들면 쌀이나 기타 생필품 혹은 주요 공업원료 등이 투기의 대상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26) 서울시는 ‘강북 뉴타운’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명분이야 무엇이든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자본과 권력의 속셈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막대한 이익을 얻는 것은 앞서 말한 방법과 원리에 의해서다. 그들이 시급히 개조되어야 한다는 그토록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은 그곳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처지 때문이다. 개발과 함께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자명하다. 그곳에 살고 있는 절반이 훨씬 넘는 세입자들은 이번 개발에서 얻는 것은 모든 점에서 더 나빠지는 곳으로 쫒겨가는 이사비용뿐이다. 그렇다고 주택이나 건물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더 나아질 것인가? 결코 아니다. 그들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더 나아질 것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일부분은 집을 임대해 월세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이제 자신의 주택을 자본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분양권이나 주택을 팔고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살 수 있게 된다. 물론 그것도 그전보다 더욱 나빠진 조건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전세를 놓고 있는 사람들도 새로운 주택을 받기 전에 먼저 전세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현재의 관행상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대부분 이미 써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도 월세를 받는 사람들과 마찬가지 처지가 될 것이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공용지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소유 일부를 심지어 빼앗기기까지 할 것이다.
27) 엥겔스, 앞의 글, pp.179~180.
28) “우리의 현대 대도시에의 노동자들과 일부 소부르주아들의 주택난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생산 방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수많은 비교적 작은 이차적 폐단들 가운데 하나이다. 주택난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노동자들로서 착취하는데 따른 직접적 귀결이 결코 아니다. 이 착취는 사회혁명이 자본주의 생산 방식을 폐지하면서 폐지하기를 바라는 근본적 악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주춧돌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우리의 오늘날의 사회질서는 자본가로 하여금 노동력의 대가로 치른 가격의 재산출에 필요한 시간보다 더 오래 노동자를 일하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그 가치대로 구매하면서 그보다 훨씬 많은 가치를 노동력으로부터 뽑아 낼 수 있게 한다.” 엥겔스, 같은 책, p. 180.
29)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오늘날과 같은 불명예로운 주택 사정이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로 보인다는 비난에 대해 나는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영국에 현존하던 것과 같은 그 고전적인 발전 형태로 그러한 사정을 독일어로 가장 먼저 서술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것은 뮐베르거가 생각하듯이 그러한 사정이 “나의 정의감을 모욕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정의감을 모욕한 모든 사실을 책으로 만들려는 사람은 할 일이 대단히 많을 것이다-, 나의 책 서문(잉글랜드 노동 계급의 처지―인용자)에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현대의 대공업이 창조한 사회 상태를 서술함으로써, 당시 성립해 있던, 공문구만을 들고 우왕좌왕하던 독일 사회주의에 사실적 기초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른바 주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사실 내게 들지 않았는데, 그것은 내가 훨씬 더 중요한 식량 문제의 해결을 상세하게 다루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현대 사회의 생산이 모든 사회 성원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할 만큼을 조달하고 있으며 가옥들이 근로 대중에게 당장 널찍하고 위생적인 거처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미래사회가 식량과 주택의 분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직접 유토피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강조―엥겔스)” 엥겔스, 같은 글, p. 264.
30) 엥겔스, 같은 글, pp.194~195. 엥겔스는 또한 주장한다. “주택 문제의 해결을 바라면서 현대의 대도시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은 배리이다. 그런데 현대의 대도시는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폐지에 의해서만 비로소 제거될 것이며” 엥겔스, 같은 글, p. 215.
31) 엥겔스, 같은 글, p.239.
32) 엥겔스, 같은 글, p. 261.
33) 엥겔스에 대한 비판은, 최형익,「엥겔스의「주택문제에 대하여」에 대한 비판」, 『사회복지와 노동』제2권, 2001년 봄. 최형익씨 글에 대한 비판은 전성식, 「엥겔스의 ‘주택문제에 대하여’를 옹호한다」,『사회복지와 노동』제4권, 2001년 겨울. 김두한,「자본주의의 주택문제와 노동계급」, 『사회복지와 노동』제4권, 2001년 겨울.
34) “일반적으로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얻게 될 때 생산 도구, 원료, 생활 수단을 단순히 폭력적으로 접수 할 것인지, 아니면 그에 대해 즉각 변상하거나 그 소유를 장기 분할 지불을 통해 상환할 것인지가 아니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 미리 그리고 가능한 모든 경우를 상정하여 대답하려 하는 것은 유토피아를 꾸며내려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엥겔스, 같은 글, p.261.
35) “‘주택문제’에 대한 대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의 해결의 핵심은 노동자가 자기 주택을 소유하는 것이다.” 엥겔스, 같은 글, p.169.
36) “우리 대도시의 노동자들에게는 이동의 자유가 제일의 생활조건이며, 토지보유는 그들에게 오로지 족쇄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자신의 가옥을 마련해주어 그들을 다시 흙덩이에 잡아맨다면, 공장주들의 임금인하에 대한 저항력을 꺾게 할 것이다.” 엥겔스, 같은 글, p.211.
37) “어떤 주어진 공업 지역에서 노동자 각자가 자기 자신의 소가옥을 보유하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그 지역의 노동자 계급은 무료로 거주하고 있는 셈이 된다. 주택 비용은 더 이상 그들의 노동력 가치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그런데 노동력 산출 비용의 일체의 감소, 즉 노동자 생활 필수품의 지속적인 가격하락은 “국민 경제 학설의 철의 법칙을 기초로 하여" 노동력 가치의 저하와 같은 것이 되며, 따라서 결국 그에 조응하는 노임의 하락을 가져오게 된다. 노임은 그리하여 평균적으로는 절약된 평균 임대료 수익만큼 떨어질 것인데, 즉 노동자는 자기 자신의 가옥에 대한 임대료를 치르게 될 것이지만 이전처럼 가옥 보유자에게 돈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노동하는 공장의 공장주에게 불불 노동으로 치르게 되는 것이다.” 엥겔스, 같은 글, p.212.
37) “어떤 주어진 공업 지역에서 노동자 각자가 자기 자신의 소가옥을 보유하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그 지역의 노동자 계급은 무료로 거주하고 있는 셈이 된다. 주택 비용은 더 이상 그들의 노동력 가치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그런데 노동력 산출 비용의 일체의 감소, 즉 노동자 생활 필수품의 지속적인 가격하락은 “국민 경제 학설의 철의 법칙을 기초로 하여" 노동력 가치의 저하와 같은 것이 되며, 따라서 결국 그에 조응하는 노임의 하락을 가져오게 된다. 노임은 그리하여 평균적으로는 절약된 평균 임대료 수익만큼 떨어질 것인데, 즉 노동자는 자기 자신의 가옥에 대한 임대료를 치르게 될 것이지만 이전처럼 가옥 보유자에게 돈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노동하는 공장의 공장주에게 불불 노동으로 치르게 되는 것이다.” 엥겔스, 같은 글, p.212.
“덧붙여 말하자면, 이제까지 말한 것은 노동자의 생활 수단의 절약 또는 저렴화로 귀착되는 모든 이른바 사회 개혁에 대하여 타당하다. 사회 개혁이 전반적으로 된다면 그에 조응하는 노임 하락이 뒤따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개혁이 완전히 개별적인 실험에 그칠 경우에는, 개혁이 다만 개별적 예외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것의 대규모적 실행이 현존하는 자본주의 생산 방식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엥겔스, 같은 글, pp.212~213.
38) 엥겔스, 같은 글, pp.169~173.
39) 엥겔스, 같은 글, pp.266~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