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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반전과 노동자 민중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96호
채만수


한노정연 10차 총회기념토론회 :

노무현 정권 1년과 노동자 민중 운동


채만수 ∙ 반미․반전과 노동자․민중운동

김명록 ∙ 신자유주의 6년과 민중 삶의 변화

선지현 ∙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 1년,

           노동자 민중의 상태와 노동운동의 과제




반미?반전과 노동자?민중운동

채 만 수/ 소장






신자유주의와 빈곤, 그리고 저항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따라서 한국에서도, 노동자․민중의 생활과 생존권 자체를 파괴해오고 위협해온 지 이미 오래다.

한국에서는, 1979년 공황을 격화시켜 마침내는 박정희를 죽였던 신현확 경제부총리 팀의 신자유주의적 긴축정책을 제외하면,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신인사제도’니, ‘신경영전략’이니 하는 이름 하에 독점자본의 새로운 노동자 관리 정책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가 이제는 사실상 모든 경제․사회 정책을 지배하고 규정하는 기초로 되어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 우루과이라운드 타결과 세계무역기구(WTO) 성립,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그것이 ‘신노사관계’ 등을 내세우면서 본격화되더니, 특히 1997년 말의 외환․금융위기 이후 전면화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무엇보다도 ‘노동의 유연화’ 혹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목표 하에 반노동자적인 정책으로 전개되어 왔고, 그들 정책은 노동 관련 법률의 개악을 통해서 제도화되어 왔다.

애초 1950년대 초에 한국에서 노동조합법이나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을 때 이들 법률은 꽤나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이들 법률은, 물론 주요한 계급적 억압장치였지만, 8시간 노동일이나 ‘노동3권’ 등 그 형식상의 법률적 내용만을 보자면, 세계의 노동자들이 장기간의 역사적인 투쟁을 통해서 획득한 성과와 권리를 상당히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법률은 말하자면 당시 이승만 정권의 백색공포정치, 즉 신식민지 파쇼 하에서의 한국 노동자계급의 절대적 무권리 상태를 은폐하기 위한 치장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비현실적이었던 법률은 노동자계급 및 그 투쟁의 성장과 더불어 차츰 현실적인 것으로 되어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 열사의 절규에서처럼 그것이 부분적으로 노동자계급의 투쟁도구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노동 관련 법률의 법제사는 기본적으로 그 개악사가 되었는데,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면서 그 개악 역시 본격화되어 오늘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주요한 도구로 되었다.

특히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의 정리해고와 광범한 비정규직화, 그리고 독점자본 이익 위주의 여러 경제․사회정책은 노동자계급은 물론 농민이나 도시 자영업자 등 여러 계급․계층의 생존권을 파괴하면서 사회 전반의 빈부격차와 빈곤화를 심히 확대․심화시켰다. 그리하여 3%대라고 하는 비교적 낮은 공식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고율의 구조적 실업 및 60%에 이르는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적인 사회문제로 되어 있고, 대도시의 노숙자만도 수천 명이다. 이른바 ‘신용불량자’가 400만 명에 육박하면서 범죄가 만연할 뿐만 아니라 생계 압박에 따른 자살자가 연간 수천 명에 이르고, 일가족 집단자살도 드물지 않은 뉴스로 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의 전개에 따른 빈곤문제는 세계적으로 보자면 더욱 심각하다. 서남 아시아나 아프리카, 그리고 중앙아메리카 일부 국가들에서의 기아상태나 기타 제3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에서의 빈곤은 이루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에디오피아나 말라위, 아프가니스탄, 볼리비아와 같은 전반적인 극빈국은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예컨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두 나라인 중국과 인도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도입으로: 인용자] 불평등이 급속히 증대하고 있다. 예전엔 극히 평등주의적인 국가였던 중국에서 소득의 불균등은 이제 미국의 그것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중국에서는 역사상 아마 가장 거대한 소득 재분배를 경험 중에 있다. 인도에서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 혜택은 대부분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20%에게 돌아가고 있다.” 거기에서는, “3억5천만 명―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극단적인 빈곤상태에서 살고 있고 … 캘커타에서만도 25만 명의 어린이가 매일 밤 길거리에서 자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1)


제3세계 국가들만이 아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 그러니까 미국이나 서유럽, 일본 등에도 수천 명에서 수만 명까지의 노숙자가 역이나 공원의 벤치에서 한뎃잠을 자고 있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 그리고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규정한 이른바 ‘빈곤선’ 이하의 생활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 최강국이자 최부국인 미국의 경우, 예를 들면 “농무성(Department of Agriculture)이 계산한 최저 식품비의 3배” 이하의 소득을 “가족이 심각한 문제없이는 살아가기 어렵고, 또한 아이가 아프거나 작업 중 다치는 것과 같은 어떤 경제적 위기를 맞았을 때 실질적인 위험에 처하게 될” ‘빈곤 소득 수준’으로 공식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2002년 현재 인구의 12.1%인 3천4백6십만 명이 그러한 빈곤상태에서 살고 있다.” “흑인의 빈곤율은 24%이고, 중남미계(Hispanics)의 그것은 21.8%이다. 2001년 현재(...) 6살 이하 흑인 어린이의 35.2%가, 그리고 6살 이하 중남미계 어린이의 29.1%가 빈곤상태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공식적인 빈곤 규정은 다소 비현실적이어서 “보다 현실적인 규정을 사용한다면” 1997년 현재 미국의 빈곤율은 전체 인구의 “17%, 혹은 4천5백만 명 이상으로 극적으로 증대할 것”2)이라고 한다.

서유럽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10%대의 고율 실업이 지속되고 있고,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갈수록 기존의 사회보장제도가 파괴돼 가고 있다. 그것도 보수당 정권에 의해서 뿐만이 아니라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 등과 같이 이른바 ‘제3의 길’, 즉 신자유주의적 길을 부정직하게 추구하는 사민주의 정당들에 의해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생산력 덕분에 1980년대까지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면서 승승장구하여 일부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그들에 의해서 모범적인 ‘평생고용’ 체제처럼 제시되던 일본 자본주의도 1991년 이후 지속되는 장기적 위기․불황으로 이제는 공식 실업률이 5%를 훨씬 넘는 고율 실업 상태에 있고, 경제적인 이유의 자살자가 연간 2천 명을 넘고 있다.

세계적인 상황을 간단히 요약하면, 현재 약 60억의 세계 총인구 가운데 약 30억은 도시에, 약 30억은 농촌 지역에 살고 있는데, “세계 인구의 약 반이 하루 2달러(약 2,200원) 이하로써 살면서, 그들 대부분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이거나 다음 식사는 어떻게 때워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다.” 약 10억은 깨끗한 물이 없는 곳에서, 약 20억은 전기가 없이, 약 25억은 위생적인 화장실이 없이 살고 있다. “약 30억의 도시 거주자 가운데, 최근의 한 유엔(UN) 보고서3)에 의하면 거의 10억이 슬럼에서 살고 있고, 그 숫자는 이른바 호경기였다는 1990년대에 엄청나게 증가했다. 다음 50년 동안에는 슬럼에서 사는 사람의 수가 대략 300%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4)

그런데, 이러한 광범한 빈곤 그 자체도 물론 심각한 문제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1980년대 이후, 그리고 특히 1990년대 이후, 그러니까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이후, 국가 간의, 그리고 계급 및 계층 간의 불평등과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돼가고 있다는 점이다.5)

게다가, 쏘련과 동유럽에서의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제국주의의 세계 재분할 전쟁, 식민지 침략 전쟁에 대한 억제장치가 사라지자 1991년의 ‘걸프 전쟁’에서부터 발칸 전쟁,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략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 특히 미국에 의한 침략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바로 “자유로운 시장을 전세계에 수출하고, 지구화된 자본에게 새로운 활동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서 부시가 선언한 ‘해방전쟁’”6)이다.

당연히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제3세계의 저항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중반에 부활한 한국에서의 노동자․농민․빈민 투쟁이 다소의 부침을 수반하면서도 꾸준히 전개되고 있는 것도 물론 신자유주의의 그러한 생존권 파괴 때문이다. 나라에 따라서는 일본에서처럼 “스트라이크―…이 말은 죽어버렸는가 하고 오인하게 하는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7)며 한탄할 만한 상황도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예컨대 서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눈에 띄게 활성화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기투쟁의 끈질김과 격렬한 전투성도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몇몇 투쟁만을 소개하더라도, 지난해 10월 24일 이탈리아에서는 “정부의 연금제도 개악에 반대하여 수백만 명이 총파업에 참가”하고 있고, “11월 1일 베를린에서는 약 10만 명이 게르하르트 슈뢰더 수상의 사회보장 공격에 항의하여 거리로 몰려 나갔다.” 또한 대처 정권 이후 신자유주의에 억눌려온 영국에서도 지난해 10월 말~11월 초에 전국적으로 2만 명을 넘는 우편노동자가 노동조건의 악화와 자본측의 횡포에 항의하여 ‘비공식 파업’을 벌였다.8) 그리고 당장 지금도 미 서부지역에서는 7만 명의 식품판매 노동자들이 3개월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9년 말 씨애틀 투쟁 이후 지난해 칸쿤 투쟁까지 신자유주의와 그 세계화에 반대하는 노동자, 민중, 시민, 사회단체의 ‘국제적인 연대투쟁’9)도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고, 특히 최근에는 미국 등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반전투쟁이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나아가, 예컨대 ‘세계사회포럼’과 같이 신자유주의를 돌파․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여러 갈래로 활달하게 벌어지고 있다.



주체의 정치적 혼란과 투쟁의 ‘불임성’

그런데 이러한 투쟁의 전망은 어떤가?

개개 투쟁에서의 경제적 승리는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디에서도 ‘해방’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대처에 의해서 정식화된 신자유주의의 합리화 구호인 소위 TINA, 즉 “다른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를 염두에 둔 TATA, 즉 “수천 개의 대안이 있다!”(There Are Thousands of Alternatives!)는 구호나,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구호 등등, 평론가적이고 그리하여 전혀 구체성이 없는, 공허하기 그지없는 구호만 난무할 뿐, 노동자계급의 해방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이 부재한 것이 지금 노동자․민중운동의 세계적인 상황이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여, 독점자본에 의한 착취와 억압의 강화, 그리고 그에 따른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파괴에 반대하여, 그리고 제국주의가 벌이는 침략전쟁에 반대하여 세계 도처에서 노동자․민중이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들 투쟁이 사실은 어떤 혁명과 해방도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不姙)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 불임의 원인을 찾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원인은 기본적으로 ‘주체’에 있고, 따라서 그 정치적 혼란과 무능에 있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진단은 지극히 당연하다.

왜냐하면, 지금 전쟁 책동을 강화하고 세계적으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파괴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고 있는 객관적 조건으로서의 신자유주의란 다름 아니라 ‘전반적 위기’가 고도로 재격화되어 있는 자본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10) 그리하여, 객관적으로는 ‘전반적 위기’가 격화되어 있는데도 혁명과 해방의 전망은 부재한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무능을 조장하는 그 정치적 혼란은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혼란의 많은 부분은 다분히 계급사회로서의 자본주의 사회에 필연적인 이데올로기의 상황 그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지하는 것처럼, 자본에 의한 착취와 억압이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자극하고 배양하는 객관적․물질적 조건이라면, 계급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그 사회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여서 부르주아적 지배 이데올로기가 끊임없이 그 계급의식을 왜곡시키고 혼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지배 이데올로기와 그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혼란은 1960년대 이후 특히 강화되었다.

첫째로는, TV, 라디오, 상업신문 등 부르주아 대중매체가 사회 전반의 정서와 이데올로기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거대 산업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미 1960년대부터, 섹스(sex)․스크린(sreen)․스피드(speed) 등 소위 ‘3S 산업’의 대중적 악영향이 여러 사람들의 우려하는 바로 될 만큼, 이들 상업적 대중매체가 대중의 비판적 사고력을 마비시키고 파괴하면서 그 정서와 이데올로기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오고 있다.

둘째로는, 부르주아 국가와 독점자본이 목적의식적으로 대중조작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성립으로 사회주의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위협이 강화되자 부르주아 국가와 독점자본은 한편에서는 CIA 등 각종 국가 정보기관이나 이른바 ‘씽크탱크들’(think-tanks)을 통해 온갖 정보를 왜곡․날조․조작하여 유포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그들 왜곡․날조․조작된 정보에 대중적 설득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온갖 정치공작을 해 왔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와 독점자본에 비판적인 지식인이나 기타 인사들에 대해서는 암살, 합법적인 투옥․사형 등에서부터 모함, 함정, 회유 및 매수까지 온갖 탄압과 공작을 다 벌여 왔다. 경찰이나 검찰․법원 등 국가 사법기구는 차치하더라도, 거대화한 상업적 대중매체가 그러한 공작의 수행자 혹은 전달벨트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국가와 자본의 수중에 있는 온갖 것들, 예컨대 각종의 이권이나 대학의 교수직 등까지 그러한 공작의 도구로, 대중의 이데올로기를 조작하는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셋째로는, 독점자본이 자신들의 수중에 집중된 거대한 부를 이용하여 노동운동과 노동자계급의 상층부를 매수하고, 그들이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역동성을 거세․오도하는 데에 성공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1930년대로부터 1950년대 초까지 대공황과 전쟁 등 위기 시대의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확보한 사회보장제도와 제2차 대전의 대량파괴 및 대량 살육에 기초하여 형성된 1950년대~60년대의 이른바 ‘장기호황’, 그에 따른 노동자 대중의 실질소득의 대폭적인 상승이 물질적인 기초로서 작용했다. 그리하여 1970년대가 되면, 주지하는 것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반적 위기가 재격화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상 누구에게나 명확해졌지만, 자본주의 선진국의 관료화한 노동조합 간부들은 물론이고 전통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당으로 자체해 온 사민주의적 정당들도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부대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갔다. 그리고 이른바 ‘유로 코뮤니즘’의 서유럽 공산당들은 변혁성을 상실하고 무기력․무능력해져 갔다.

그리하여 이러한 모든 이데올로기 조작은 마침내 대중뿐만 아니라 비판적․진보적 지식인들도 지배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지배는 그들로 하여금 예컨대 쏘련의 여러 내부 사정이나 정치 관행, 외교․군사 전략 등에 관해서 미 CIA와 헐리우드가 합작해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현실로 믿게끔 하는 상황을 조성하는 데에까지 이르러 완성되었다. 서유럽에서 사민주의 정당들이 완전한 독점자본의 정당으로 되고, 이른바 ‘68혁명’ 이후 반동적이고 소부르주아적인 각종 잡사상들이 ‘진보’와 ‘변혁’을 내세우며 ‘신좌파’․‘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이름으로 전개되어 온 사실 등을 고려할 때, 이미 1960년대 중반이 되면서 그러한 상황이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이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혼란은 동유럽과 쏘련에서의 20세기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오늘날 그 ‘극’, 즉 정점에 달하고 있다.



시급한 과제로서의 정치적 전위 형성

현재의 상황은 이렇게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가 전반적으로 격화되어 가고, 그에 따라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파괴 또한 확대․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한 객관적 위기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에 의해서 촉발․활성화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혼란 및 무능 때문에 그러한 투쟁이 불임성의 투쟁으로 머물고 있다. 따라서 그 불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동자계급이 해결해야 할 가장 당면한 전략적 과제는 그 정치적 전위를 형성하는 것일 것이다.

노동자계급을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적 혼란은 물론 이러한 명제, 즉 과거에는 소부르주아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노동운동의 선진 활동가들 사이에서라면 전혀 이론의 여지가 없었을 명제를 부정하는 데에까지 달해 있다. 이른바 ‘당 일괴암주의에 대한 비판’이니, ‘자율주의’니, ‘(당 운동을 부정하는) 평의회 운동’이니 하는, 소부르주아 급진주의적인,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관념적이고 반동주의적인 사상․이론․담론이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노동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까지 상당히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것들은 외견상 모두 쏘련에서의 사정이나 그 상황 전개를 비판하는 형식으로, 혹은 그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바의 것들은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 조작과 그들의 소부르주아적 근성이 결합하여,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거기에 다시 진한 종파주의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자신들의 주관, 즉 라만차의 풍차일 뿐 실제의 쏘련에서의 사정이나 그 상황 전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아니면 기껏해야 사물의 어느 한 측면만을, 그러한 측면이 형성되고 발전되게 된 전반적인 그리고 특히 역사적인 연관으로부터 분리하고 그것을 부당하게 확대한 것이거나, 다시 그 위에 자신들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형성해낸 관념일 뿐이다. 그것들은 대부분 맑스주의의 이름으로 제기되지만, 사실은 맑스주의를 크게 왜곡하고 있는 것들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예컨대, 쏘련을 가리켜서 ‘국가사회주의’니 ‘국가자본주의’니 하고 ‘비판’하는 주장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우선, 앞에 붙는 수식어가 무엇이든 쏘련의 사회․경제체제를 ‘자본주의’로 규정하는 주장은 무시해도 좋다. 자본주의의 개념을 그토록 무정형하게 확대할 수 있다면, 고대 노예제나 중세 봉건제, 또 그 어떠한 사회제도도 자본주의로 규정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그러한 한에서 그것은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른바 ‘국가사회주의’라는 ‘비판’에 대해서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그들은 쏘련에서 국가가 사회생활의 사실상 전체 영역에서 규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에서 그 ‘사회주의’로서의 한계를 발견하고 비판하면서 이른바 ‘비국가 사회주의로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라고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계급적 지배와 억압의 도구’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러한 주장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리고, 또 바로 그렇게 때문에 그것은 오늘날 ‘비국가 사회주의’ 혹은 ‘자율주의’ 등의 이름으로 상당한 청중․독자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국가의 문제를 아주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서, 사실상 국가를, 따라서 이미 19세기 중엽에 이루어졌던, 비과학적인 소부르주아 급진주의자들인 아나키스트들과 맑스 사이의 논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맑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그 역사를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 조건에 의해 규정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쏘련을 위시한 20세기의 사회주의가 국가라고 하는 틀 속에서 그것을 주요한 지렛대로 하여 발전했다면, 그것은 그 길만이 유일한 현실적인 길이었고, 국가가 ‘소멸’될 수 있는 조건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 ‘국가사회주의’를 사회주의의 본래의 모습으로 지향했기 때문이 아니다. 국가는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는 것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일부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른바 ‘자율주의자들’ 혹은 ‘비국가 사회주의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아주 부정직하다. ‘국가’사회주의를 비판하려면, 사회주의 초기의 계급투쟁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그러한 계급투쟁에도 불구하고 어떤 ‘비국가적’인 발전의 길이 가능하다는 자신들의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는 대신에 ‘자율주의’ 혹은 ‘비국가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그 문제를 슬그머니 비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하자면, 마치 몰이꾼들의 추격에 쫓긴 겨울 꿩이 눈 속에 머리를 처박음으로써 자신에게 닥친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듯이, 그러한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같은 것은 요즈음 일부에서 주장하는 ‘당 일괴암주의에 대한 비판’이니, 당에 의한 혁명의 주도를 거부하는 ‘평의회 운동’이니, 혹은 ‘거대담론’을 거부하는 각종의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모두 다 소부르주아적 관념론, 주관주의의 소산인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전위로서의 혁명적 정당. ―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역사, 새로운 세상의 주체로 나서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적 전제조건이다. 이것이 없이는 노동자계급은 결코 전진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의 노동운동이 오늘날 전진하지 못하고 답보하고 있는 이유도 사실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전위정당’에 대해서는 자본의 이데올로그들에 의해서 온갖 중상과 모략이 다 행해져 왔다. 그들은 그것을 마치 소수 인텔리들의 음모적인 조직으로, 그리하여 극히 비민주적이고 음침한 비대중적인 조직으로 묘사해 왔는데, 쏘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는 노동운동 내부에도 이러한 날조되고 왜곡된 전위정당의 상(像)이 보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당 일괴암주의’ 운운하는 비뚤어진 비판도 그 예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전위정당을 그러한 존재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저들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 조작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생각해 보라. 만일 노동자 전위정당이 그렇게 비대중적인 소수 인텔리들의 음모적 조직이라면, 그 조직이 어떻게 사회의 변혁을 주도할 수 있으며, 저들 독점자본이 그것을 모욕하기 위해서, 그것을 분쇄하기 위해서, 그 형성을 봉쇄하기 위해서 어찌 그토록 광분하겠는가를 말이다.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에 대해서 저들이 그토록 악의를 드러내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 전위정당이야말로 자신들에게 진정한 위협임을 저들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전위정당이 해방의 전위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광범한 대중의 동의와 신뢰 위에 구축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전위정당이야말로 가장 대중적인 정당이다. 그러나 그 전위정당이 그것을 중상 모략하는 자들이 그 대체물로서 제시하는 이른바 ‘대중정당’과 다른 점은, 그것이 조직원들의 철의 규율과 헌신, 그리고 과학적 세계관, 강령, 정세분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리한 과학적 세계관, 강령, 정세분석에 기초한 철의 규율과 헌신적 실천만이 대중의 동의와 신뢰를 획득하면서 전위정당다운 전위정당을 주관적인 소망이나 환상으로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실체로서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사에서 그러한 전위정당은 아직까지 성립되지 못했다. 그 주요한 원인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극악을 극한 파쇼적 탄압이었다. 즉, 단기간의 ‘해방’ 공간을 제외하고 이후 쭉 지속된 극악한 파쇼적 탄압이 바로 그러한 노동자 전위정당을 봉쇄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주지하는 것처럼,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파쇼적 탄압이 기가 꺾이고 ‘민주화’되면서 노동자계급에게도 차츰 정치적 공간이 확대되었지만, 아직도 전위 형성의 전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노동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분열과 과학적 세계관 및 정세 분석의 부재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앞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쏘련 및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 확대․심화돼 가고 있는 이론적 사상적 혼란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고, 그 때문에 이들 20세기 사회주의, 특히 쏘련의 전개와 그 붕괴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분석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그 외에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을 이른바 ‘NL’과 ‘PD’로 크게 분열시키고 있는 ‘민족문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시각에서의 이해도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 문제를 특히 왜 ‘반미․반전’의 문제가 한국에서 노동자계급 운동의 핵심적 강령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간단히 보고자 한다.



반미․반전 문제와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

“혁명적 이론 없이는 혁명적 운동도 있을 수 없다”11)는 것은 당연하다. 혁명적 이론이 없이는, 역사와 정세에 대한 올바른 분석이 없이는, 광범한 대중의 동의도 신뢰도 획득할 수 없고, 따라서 전위정당 자체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반미․반전’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이론과 역사인식, 정세인식을 획득하는 데에 있어서,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그 정치적 전위조직을 획득하는 데에 있어서 주요한 이론적․실천적 문제의 하나로 되어 있다.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은 80년대 중반, 대략 1986년 이후부터 이른바 ‘NL’과 ‘PD’로 분열되어 있다. 민족문제, 즉 ‘반미, 반제, 자주, 통일’의 문제를 운동의 중심적 과제로 삼고 있는 ‘NL’, 즉 ‘민족해방파’와 계급문제, 즉 계급적 착취와 억압의 폐지를 운동의 중심적 과제로 삼고 있는 ‘PD’, 즉 ‘민중민주주의파’로의 분열이다.

애초에 1980년대에 노동자․민중운동이, 그리고 그와 더불어 자본주의적 생산과 한국 사회의 구성과 운동에 관한 과학적 이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이전에 미분화 상태에 있던 ‘NL’과 ‘PD’적 사고가 발전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의 분화․발전이 노동자․민중운동의 정치적 분열과 대립으로 발전하면서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은 서로 상대를 ‘좌파’와 ‘우파’로 규정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운동은 한국 사회와 그 모순에 대한 총체적 이해로부터 멀어져 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NL’ 측의 일부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등에 거침없이 참여․협력하는 등 국가의 계급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를 드러내고 있고, ‘PD’ 측은,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고 ‘반미․반전’ 운동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긴 하지만, 그때그때의 정세에 대한 미봉적인 대응으로서 일 뿐 민족문제와의 진지한 대결을 외면하고 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후 미군에 의한 점령과 지배. 그것은 정말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당해온 사실이고, ‘반미’는 절대금기의 성역이었다. 오죽 했으면 1980년 광주 학살의 배후 책임을 물으면서 1985년에 학생들이 서울의 미 문화원을 점거했을 때에조차 “반미는 아니다”고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그러한 의미에서 민족문제, 즉 ‘반미, 반제, 자주, 통일’의 문제를 전면에 내건 ‘NL’의 등장은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의 커다란 진전이었다.

그런데 이 민족문제, 즉 ‘반미, 반제, 자주, 통일’의 문제는 제국주의 시대의,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적인 한국 사회의 특수한, 그러나 정세에 따라서는 ‘주요한’, 모순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기초에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보다 더 근본적인 모순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러한 인식 위에서 이론과 실천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대신에 오로지 민족문제만에 매달릴 때, 그것은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지면서 노동자․민중운동 내부의 분열과 혼란을 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운동 혹은 남북교류를 내세운 ‘NL’ 측 상당 부분의 김대중 정권 혹은 노무현 정권에의 참여 혹은 협력이 그것이다. 이는 ‘민족의 자주’를 내세우면서도 바로 그 자주가 어떻게 해서 유린되고 있는가에 대한 인식의 불철저를 드러내는 것이고, 바로 그 자주를 유린하는 대리통치 기구에 참여․협력하는 것을 의미하며, 반제국주의를 주장하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계급적인 것인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반미’를 외치고 ‘반미투쟁’을 벌이지만, 사실은 투쟁의 대상이 되는 자들 속에 참여하고 그에 협력하는 것이다.

예컨대, 용산의 미8군사령부 앞에서, 동두천의 미군부대 앞에서 ‘반미’ 시위를 벌일 때, 자신들을 폭력으로 막아서는 전경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정보경찰이 바로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의 수족이라는 사실. 미 제국주의의 이라크 침략에 동조하여 군대의 파견을 발의하는 행정부나 그것을 합법화시키는 국회가 바로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이라는 사실. 농민들의 필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산업이나 전자 산업 등 독점자본의 이익을 반영하여 칠레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구하고 체결․비준하는 것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라는 사실. ‘수구’니 ‘개혁’이니 하고 다투는 여야는, 그 다툼이 아무리 치열하고 험악하더라도, 결국 동일한 계급적 이해관계 위에 서 있고, 단지 보다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착취․억압 방법과 착취한 잉여노동의 분배를 둘러싼 투쟁을 벌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 ―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서 그들의 인식은 철저하지 못하고 자가당착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노동자․민중운동 속의 이른바 ‘NL’과 관련한 문제는 그들이 민족문제, 즉 ‘반미․반제․자주․통일’ 문제를 중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투쟁을 계급문제와의 관련 속에서가 아니라 ‘민족주의적으로’, ‘국가주의적으로’, 그리하여 몰계급적으로 벌이는 데에 있다. 따라서 과제는 그들의 인식과 실천을 계급문제에 대한 보다 철저한 인식 위에서 재확립하는 것이다.

한편, 계급사회로서의 한국사회의 기본모순은 당연히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간의 모순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계급문제, 즉 계급적 착취와 억압의 폐지를 운동의 중심적 과제로 삼고 있는 ‘PD’, 즉 ‘민중민주주의파’의 문제의식은 일단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PD’ 측이 민족문제, 즉 ‘반미, 반제, 자주, 통일’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경시하고 있는 점이야말로, 혹은 ‘NL’을 견인하고 포용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계급적 대의에 설 수 있도록 유도하는 대신 그들을 외면하고 경원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노동운동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 있어서 민족문제, 즉 ‘반미, 반제, 자주, 통일’의 문제는 결코 환상에 근거한 문제가 아니라 계급문제와 더불어 한국 사회의 근본적 모순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반미․반제 없이 한국 사회의 계급적 모순을 극복․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극히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이다. 왜냐하면 이는 다름 아니라 현실적이고 규정적인 힘으로 존재하는 민족모순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40년대 후반 이후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제국주의로서의 미국은 한국에서 자본가계급에 의한 노동자계급의 착취와 지배라는 계급관계를 강제하고 보장하는 궁극적인 힘인데도 이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미․반제 없는 계급투쟁은 그 계급관계를 강제하는 궁극적인 힘을 무시한 것으로서 성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로 동일한 이유 때문에 노동자․민중의 단결과 통일을 이끌어낼 수도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반미․반제 없는 노동운동은 그 정치적 편협성 때문에 노동자․민중의 한 분파의 생존권 투쟁, 경제주의적 투쟁으로 협소화될 수밖에 없고, 정치투쟁으로의 발전 전망이 없다. 계급모순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근본모순인 민족모순을, 반미․반제․자주․통일의 문제를 노동자․민중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의 기초 위에서 이론과 실천이 전개되지 않으면, 노동자․민중운동의 통일․단결도, 따라서 그 정치적 발전도 불가능한 것이다.



신식민지적 지배와 계급 및 민족 문제, 그리고 전쟁

오늘날 계급문제가 민족문제와의 결합 속에서 제기되어야 하고, 민족문제가 특히 반미․반전의 문제로 전개되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제국주의란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함에 따라 격화되는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에 따른 시장의 부족, 그리고 원료의 부족을 정복과 지배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고, 따라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계급적 모순의 국제적 확장이다. 제국주의적 지배와 착취는 그 성질상 당연히 그 종주국보다는 그 종속국 혹은 종속민족에서 보다 가혹하고 근본적인 모순으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이러한 제국주의의 지배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두 가지의 결정적인 형태변화를 겪었다.

하나는, 전쟁의 결과 서유럽의 전통적인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이 미 제국주의의 하위 파트너의 지위로 전락하고, 미국의 사실상 전일적인 지배가 확립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독일과 일본, 이태리의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패전의 결과였고, 승전 연합국인 영국이나 프랑스 등도 전쟁에서의 대대적인 파괴와 노동자계급의 제국주의에 대한 적대 때문에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지원이 없이는 전후 그들 국가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사회주의로의 혁명운동에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2) 특히 제2차 대전 이후 계급 대립의 한 주요한 형태로서의 제국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립은 ‘미-쏘 대립’, 즉 제국주의를 대표한 미국과 사회주의를 대표한 쏘련의 대립이라는 형태로 발전했고, 그에 따라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헤게모니도 그만큼 강화되었다.

다른 하나는, 식민지 지배․경영 형태의 신식민지적 형태로의 전환이다. 구 식민지 지역에서, 많은 경우 쏘련의 지원을 받아, 치열하게 전개된 민족해방투쟁의 결과 제국주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직접적인 식민지 경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제2차 대전 이후 특히 1960년대까지 활발하게 전개된 구 식민지 피지배 민족의 정치적 독립이 그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결코 그 착취와 지배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종주국의 정책에 따라, 그리고 식민지 현지의 조건에 따라 구체적인 전략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가능한 한 직접지배의 지속을 꾀하되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형식적으로 정치적 독립을 부여하고 현지의 대리인들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지배한다고 하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지배․경영 형태가 신식민지적인 그것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신식민지적 지배는 당연히 제국주의 종주국의 독점자본과 그 현지 대리인으로서의 신식민지의 지배계급의 강한 유착, 신식민지 지배계급의 제국주의 종주국에 대한 강한 종속적 동맹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배는 어떤 형태의 제국주의적 지배에도 저항하는 노동자․민중에 대한 억압 위에서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제 ‘새로운 독립국가’에서는 제국주의를 대리하는 지배계급, 신흥 자본가계급과 노동자․민중 사이의 계급투쟁이 전면에 부상하면서 그 정치체제는 부르주아 정치학자들이 ‘제3세계의 권위주의 정치체제’라고 규정했던 것과 같은 억압적․파쇼적인 것으로 된다. 그것은 당연히 식민지 종주국의 지시와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지원에 의한 것으로서, 상황에 따라서는 내전이나 수만에서 수십만․수백만의 참혹한 대량 학살로 발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지배계급이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반란을 제압하지 못할 경우에는 물론 제국주의 종주국의 군대가 직접 나서고, 그 현지 주둔이 그 지배를 보증하는 장치가 된다.

신식민지 지배는 이렇게 제국주의의 현지 대리인으로서의 그 지배계급의 제국주의와의 유착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에 침략한 후 그 지배를 안정화시키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 있는 이유도 “이라크에는 주민 가운데 아랍 민중의 다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는 그만두고라도 그들의 어떤 신망을 받는 믿을 만한 미국의 동맹자가 없기”13) 때문이다.

신식민지적 지배는, 물론 새삼스러운 지적이지만, 이렇게 현지의 지배계급에 의한 대리통치이다. 그런데 민족문제 혹은 ‘자주’의 문제를 민족주의적 혹은 국가주의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 지배와 대립을 ‘민족’에 대해서는 외재적(外在的)인 것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민족 내부의 제국주의 동맹자를 보지 못하거나 간과하고, 투쟁의 대상을, 즉 그 현지 지배계급과 지배도구를 ‘자주롭게 세워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반해서, 계급 대립을 단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앙상한 추상 속에서만 바라보게 되면, 그 계급관계를 강제하고 그 지배․착취를 가혹하게 만들고 있는 제국주의, 민족문제를 간과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노동운동 내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편향이 바로 그러한 것들일 것이다.

한편, 제2차 대전 후 미국 패권 하의 제국주의에서는 제국주의 상호간의 대립과 갈등은 미국의 절대적 우위 때문에 일정한 한계 내에 제한되면서 전쟁으로까지 전개되고 있지는 않다. 그 대신 전쟁은 제국주의에 의한 제3세계 침략 전쟁의 형태로 발발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만을 예로 들더라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소말리아, 코소보 등에의 침략 전쟁이 그것이다. 나아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처럼, 그리고 1990년대 발칸반도에서처럼, ‘내전’의 형태로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에도, 그 배후에는 (신)식민지 지배를 유지 혹은 재건하려는 제국주의, 특히 미국이 있다.

오늘날 미국이 갖은 모략과 함께 ‘불량국가’, ‘깡패국가’, ‘테러 지원국가’, ‘악의 축’ 등으로 규정하면서 적대하고, 침략하고, 침략과 전쟁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국가들이란 다름 아니라 미국의 그러한 신식민지 지배를 거부하고 그에 저항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물론 그 사회체제는 다를 수 있어서 어떤 나라는 초급 사회주의 체제이거나 그것을 지향하고 있고, 어떤 나라들, 특히 중동의 몇몇 나라들은 민족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어떠한 형태의 식민지적 지배와 착취도 거부하면서 ‘자주’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국주의가, 특히 미국이 여러 이유를 날조하면서 그들 국가를 봉쇄하고, 공격․침략하는 것은 그들 국가를 자신의 (신)식민지로 삼아서 그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일 뿐이라는 것은 최근의 이라크 침략에서 드러난 대로이다. 자신은 세계 전체를 다 합한 것보다도 더 많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WMD(대량살상무기)가 어떻고 하면서 침략의 구실을 찾는 것도 언어도단이려니와, 이라크에 어떠한 WMD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절실히 입증하고 있다.

우리가 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그리하여 우선 자주를 지향하는 그들 민족․인민과 연대하는 것이고, 그러한 과정과 투쟁을 통해서 제국주의적 그리고 계급적 지배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확대․심화하고, 그에 대한 투쟁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해방을 향해서 진군하는 데에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반미․반제․반전을 노동자․민중운동의 주요 부분으로 포용함으로써 노동자․민중운동의 정치적 통일과 비약을 획득해 내자.

한/노/정/연


1) Michael D. Yates, "Poverty and Inequality in the Global Economy", Monthly Review, Vol. 55, No. 9, Feb. 2004, p. 42. 이 인용문 속의 인용문은 원래, Paul Watson, "In India, No Job is Too Small," Los Angeles Times, Oct., 25, 2003.


2) 이상, Michael D. Yates의 같은 글, pp. 37~38 참조.


3) UN Human Settlements Peogram의 The Challenge of Slums―Global Report on Human Settlements 2003.-― (인용자)


4) Fred Magdoff, “A Precarious Existence: The Fate of Billions?”, Monthly Review, Vol. 55, No. 9, Feb. 2004, p. 1.; 다만, 다음 50년 후에 그러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자․민중의 저항이 결코 이러한 상황이 50년이나 지속되도록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5) 이에 대해서는 위에 소개한 Fred Magdoff와 Michael D. Yates의 글들을 참조. Michael D. Yates의 글은 이 책에 번역․게재한다.


6) 안드레아 카토누, “미국: 고전적 제국주의 ― 모든 세력이 결집하여 부시 도당을 고립시키자”, ��社會評論��, 제136호, 2004년 겨울, 도쿄: 小川町企劃, p. 68.


7) ��社會評論��, 같은 호, p. 81.


8) 이상의 사례들은 위 ��社會評論��, pp. 81~86의 “정부와 자본의 횡포에 대항하는 유럽의 노동자”에 의거했다.


9) 씨애틀 이후 칸쿤까지 이어져 왔고, 어떤 면에서는 ‘국제적 연대’ 혹은 그 투쟁의 ‘새로운 전형’으로까지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최근의 연대․투쟁 방식이나 그 형태․경향에 대해서는, 그러나 그것이 과연 ‘마땅한 길’인지, 보다 신중하고 진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0) 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제3판>(도서출판 현장에서 미래를, 2003년)의 “제7장 신자유주의” 참조. 


11)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レ-ニン全集�� 제5권), p. 389.


12) 예컨대, 전후 미국에 의해서 유럽에 제공된 거액의 원조인 마샬플랜이 그러한 경제적․군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대로이다. 패전 독일과 일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서술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제2차 대전에서 패배한 거대한 두 나라에서는 자기 사회에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가진 커다란 자본가계급이 점령자인 미국과 협력하고 그 후견과 원조로 국가를 재건하고자 하였다―그들은 ‘공산주의’의 위협 속에 살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원했다.”(Gilbert Achcar, “U.S. Imperial Strategy in the Middle East”, Monthly Review, 같은 호, p. 32)


13) Gilbert Achcar, 같은 글, p. 32.


2004-02-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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