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봄이건만 …
송 태 수
연구위원장
고 김진균 교수님의 명복을 빈다.
맘과 몸 모두를 노동자, 사회적 약자층,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 그리고 평화를 위하여 사신 분.
고 김진균 교수님의 빈소는 당연히 여러 문제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였다. 민주노총의 문제에 대해서나
현장운동의 문제 등. 문제는 명확해졌다. 우리의 머리 속에,
우리의 생각 속에 분명한 문제들을 어떻게 대중과 함께
공유하면서 조직화해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현대자동차 노조 선거에서 ‘민투위’의 정통성을 갖는 이상욱
후보가 2차 결선투표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5팀이
출마한 금번 선거의 1차 투표에서 실리파 이경훈 후보가 지난
2001년 4팀이 출마한 10대 임원선거에서보다도 약 5% 이상 더
많이 표를 얻어(약 35%) 조합원들의 실리주의적 기대심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긴박하게 당면과제로 떨어져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정책과 대응전략의 제시에 있어
미흡한 탓에 이데올로기적 대응의 측면에서 수세적인 입장에
놓였다는 문제점 또한 얘기되었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 구성된
민주노총 연구원에 대한 기대가 표출되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 것은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진보적 지향성을 갖는 연구자 집단의 재생산의
문제였다. 시급히 구체적 대안마련이 요청되는 많은 주제에 대해
민주노총은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연구자 풀을 제대로 견인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 맞는 사람들만으로 제한된 인적 편중성을
보였다. 한편으로 현장의 구체적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전문집단을 자극하여 견인해내지 못하였다면, 그 반대편에
전문가집단의 고민은 더욱더 추상적인 차원의 고민으로 멀어져간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이하: 한노정연)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할까?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이에 대해
정리해본다. 한노정연은 크게 두 가지 활동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기능이다.
전자의 연구사업은 크게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되었다기보다
결합되는 연구위원들의 개인적 관심에 따라 다소의 편차가
있었다. 여기에서 문제점은 연구위원들의 연구주제가
교육담당자나 현장과의 결합점을 찾지 못함으로써
비효율적이었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연구원들에게 일상적으로 과부하가 걸려있다는 점을 원인의 다른
하나로 지적할 수 있겠다.
교육은 현장대중에 대한 교육과 다른 한 축으로 외곽에서의
교육지원으로 나누어진다. 현장교육은 그 나름대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문제는 교육을 수행하는 연구원들의 전문분야가 너무
폭넓은 관계로 전문성을 추구하기에는 개인의 헌신성이 너무
강하게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외곽교육은 한노정연의 사업의
중요한 한 부분인데, 이 또한 세미나 참가자들의 윗 단계
세미나팀으로의 발전이 현장과의 결합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진행되거나, 아예 지속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예비연구자의
관심과 현장에의 이해를 충분히 자극하여 향후 현장문제에
진입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여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원생이나 학부생들이 세미나에 참가하긴 하지만, 이후
현장과의 결합지점을 자신의 전공에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문제는, 개인 생각으로, 연구(위)원들의 개인적인
전공영역의 개발을 통해서 해결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전문영역의 개발이란 아주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제도권 교육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한 조건의 확보가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가 심각하게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 한노정연 연구(위)원들이 제도권
교육에 자신의 현장경험을 정확하게 제공하여 학문적으로
가공해내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것이며, 어느 다른 집단도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체를 잘 파악도 못한 상태에서 늘어놓은 한담일 수도 있으리란
위험을 감수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이의제기를 바란다.
아래에는 근일 너무 격앙된 감정으로 경험해야 했던 것을
적는다.
이른 아침 출근길, 공영방송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뉴스에 귀가
기울여졌다. 국내 대학생 중 상당수가 최근 청년실업 해소를
위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업의 투자확대를 유도하는 것이 두 번째 시급히
요구되는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경련의
여론조사에 따른 것이란다. 그런데 나를 놀랍게 한 것은 그 다음
말이다. 이 설문은 최근 전경련이 실시하는 ‘시장경제’
교육과정에 참가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기사의 문제점을 보자. 237명의 설문대상자는 전경련이
실시한 ‘시장경제’ 교육 참가자들이다. 이 설문이
‘시장경제’ 교육 전과 후 언제 실시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추론컨대 교육 후인 것 같다. 이 교육에서 어떤 내용이
실시되었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설령
교육 전에 실시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들이 뉴스에서 말하는
것처럼 국내 일반 대학생의 의견을 대변한단 말인가? 특정
이익집단이 실시하는 시장경제 교육을 참가한 대학생 집단은
결코 표본의 공정성을 확보한 집단이 아니다. 설문대상 집단의
선정 자체가 문제가 있는 이 설문은 공정성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뉴스로서 부적합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공영방송 라디오 뉴스로 전파를 타고 보도된다는 말인가.
이 뉴스를 아침 7시 조간 뉴스의 기사로 채택한 데스크 기자와
이것을 뉴스로 생산해 배포한 전경련 홍보실과 기타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어떻게 이런 설문결과가 뉴스로 되어
정확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포장되어 아침 출근길
뉴스거리로 방송된단 말인가?
이런 것을 뉴스거리로 생산하는 집단도 물론 무지함(?)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기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무지함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열심히 공부하거나,
이러한 질타의 의미를 잘 모르겠으면 기자직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97․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지식인 집단에 대한
대중적 신뢰의 완전한 붕괴를 경험했다. 그 후 지식인 집단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그에 따라 만들어진 공백에 언론집단이
들어섰다. 특히 공중파 매체가. 요즈음 특정 전문인의 생각과 그
가치의 사회적 유의미성을 평가하는 집단이 누구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언론에 종사하는
집단이 너무도 노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단지 감각과 입맛에
맞는 것만을 ‘뉴스’로 취하여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쪽으로 주류의 방향이 정해졌다 싶으면 모두가 그쪽에 줄서기
바쁘다. 수십 수백 개가 그러한데 내가 하나 더 더해주는 것
어떠하리라는 판단에 근거해서일까? 정말 가십(gossip)성 기사
하나 더해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이런 뉴스를 보고 들어야 할 때는 짜증을 너머 참담한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진정 균형과 공정함을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매일의 일상에서 듣고 접해야 하는 기사 내용이 이러한
경향을 고려해 취사선택하는 기자들의 판단에 따라 정해지고
있다면, 우리는 또 다른 취함이나 마비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편견에 입각한 자동적인 사고(思考)의 여과장치 중 우리사회에서
가장 심하게 작동하는 것은 노사문제나 노동문제에 관한 것이다.
노사갈등은 시장경제체제에 내재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해동과 아울러 몸도 서서히 풀리는데, 마음은 더 긴장한다. 금년
‘춘투(春鬪)’는 얼마나 심하게 두들겨 맞게 될까?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