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 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
현대자동차 경일기업 투쟁을 되돌아본다
1만여 명의 사내하청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조합의 조직률은 아직까지 10%를 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경일기업은 특히 조직화 수준이 낮은 업체
중에 하나였다. 조합원은 한두 명 정도였으며 이들 또한 그저
조합원에 가입한 것에 불과했다. 평소 비정규직선봉대가 노조
가입을 촉구하기 위해 찾아갈 때면 간담회 자리를 하나둘씩
빠져나가 어느새 아무도 남지 않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억압이 심한 곳에서 폭발
경일기업 사장의 군대식 통제에 대한 악명은 드높았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비정규직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경일기업
노동자는 좀체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경일기업 노동자들이 일제히 파업에 들어갈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2003년 8월 정규직 노사간의
임단협 타결 이후 이렇다 할 현장투쟁이 없었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경일기업의 ‘작업거부’ 소식은
화제꺼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맨 뒤에 있던 노동자가 선봉에 나서기까지
경일기업 투쟁은 누군가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인격적 모독을 참아가며 쌓아두었던 울분이
자발적인 투쟁으로 터져나왔다.
경일기업 노동자 11명은 2월 3일 작업거부에 들어간 다음날부터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하였다. 이들은 3공장 비정규직선봉대와
함께 매일 아침 주야간조 출근투쟁, 현장순회, 중야식
식당선전전, 작업거부 농성을 벌여나갔다. 뒤늦은
조합가입이었지만 이들은 가입과 동시에 비정규직노동조합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조합원이 되었다.
2월 3일 라인이 서자 현자 회사는 한 시간여 만에 직영
조반장들을 대체투입했다. 이어 다음날 경일기업측은
파업노동자의 일부를 회유하여 파업대오에서 이탈시키는 한편,
남은 11명의 작업거부 인원에 대해서는 신규채용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파업의 효과를 무력화시켰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절실한 요구
경일기업 노동자들은 작업거부에 들어가기 한 달여 전부터
지난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위원회 때의 업체별 요구와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사장과 협상을 해왔다.
(작업거부에 들어간 경일기업 요구안)
① 연․월차 자유로운 사용 ② 본인 의사와 무관한 상시
주간조 전환 금지 ③ 1일 8시간 정취 외의 잔업 강요
금지 ④ 관리자에 의한 작업자 인격 모독 금지 ⑤ 본인
요청이 아닌 경우 1인 개별 면담 금지 ⑥ 18반 키퍼 외 사이드
1명 인원 추가 ⑦ 각서 및 시말서 등 각종 부당 징계 서류
폐지 ⑧ 회식장소는 작업자가 원하는 곳으로 결정 ⑨ 산재법에
의거 근무 중 부상을 입었을 경우 3일 이하는 공상, 4일 이상은
산재 처리할 것 ⑩ 여유인원 부족시 조반장이 우선순위로
작업자와 동일하게 작업할 것 ⑪ 조반장 공개 사과 및 직위
해제, 이후 선출시 작업자 추천과 투표를 거칠 것 ⑫ 상기
사항에 대해 사장 및 소장의 공개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할
것
이상의 요구로 우리는 경일기업 노동자들이 그간 얼마나
비인간적 대접을 받았는지, 노동권 탄압을 받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각각의 요구는 하나하나가 절박한 사정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회식장소는 작업자가 원하는 곳으로 결정하라’는 요구를
보면, 언뜻 보기에 ‘그게 무슨 요구냐’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틈만 나면 조장
동서가 운영하는 고기집, 소장 동생이 하는 노래방에 원치 않는
회식자리에 불려가서 그 돈을 갹출해야만 했다. 또 1년에 한번
회사가 돈을 내는 회식은 매년 경일기업 소장이 운영하는
고기집으로 가야 했는데, 오리백숙 한 접시를 20여명이 나누어
먹기도 하고, ‘털이 숭숭박힌 불량고기’에다가 ‘빨리 먹고
나가라’는 식의 성화를 받아야만 했다. 회식 분위기는
즐거웠느냐하면, 조반장에게 “느그가 잘하면 내가 욕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 내 입에서 욕 좀 안나오게 해라”는 따위의 말을
들어야 했다.
작업 중 인격적인 모독은 예사로 당해야했는데, 한참 일하고
있는 도중에 “씨발놈아. 니는 작업을 좆으로 하나, 그것도
똑바로 못하나?”라고 하거나, 업체 방침인 시업 40분전(07시
20분) 출근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야 이새끼야 장난하는 거야,
시계 한 번 봐라, 싸인을 니가 제일 늦게 한거 알지”, 일하다
조반장에게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하면, “좆빤소리 하고 있네.
야 개새끼야 내가 너거 화장실 바꿔줄라고 출근하나? 좆같으면
너네가 반장하고, 조장하던가 꼬우면 노동청에 신고해라”는
식이다.
투쟁경과
경일기업 노동자의 작업거부는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죽고 싶었던
심정, 폭압적인 탄압과 통제를 뚫고 터져나온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간선언이었다.
그러나 사장은 작업거부에 들어가서도 끝내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처음에 당황하던 경일기업 사장은 하루만에 버티기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배후에는 현대자동차 회사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현자 회사는 이참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항을
짓밟겠다는 태도로 고압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한편 비정규직노조는 경일기업 투쟁이 단지 경일기업에 국한되는
현안이 아니라, 현자 비정규직 전체의 요구와 같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경일기업 투쟁에 대한 전면 결합을 결정했다. 이제
경일기업 투쟁은 그 내용으로 보나 형태로 보나 현자회사와
비정규직노조의 전투가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경일기업
노동자의 요구는 3공장 현장을 중심으로 폭넓은 공감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경일기업 투쟁이 장기전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비정규직노조
안기호 위원장은 2월 11일 경일기업 노동자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단식노동에 들어갔다. 12일부터는 경일노동자가 3공장
대의원회의실에서 무기한 철야농성에 돌입했고, 13일에는 해고자
이영도, 김형기가 정문 앞 단식철야농성에 들어갔다.
이러한 투쟁이 진행되는 도중에 비보가 날아왔다. 14일
현대중공업의 비정규직 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분신자결한
것이다. 열사의 숭고한 죽음은‘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불러오면서, ‘하청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외치며 투쟁에 나선 경일노동자를 투쟁기간
내내 보살피고 엄호해주었다.
요구의 관철
투쟁이 계속되면서 경일기업 노동자의 12개 요구항은
“▲악덕업체 경일기업 퇴출 ▲경일기업 노동자 11명 전원
고용승계”로 집약되었다.
경일기업 노동자의 투쟁이 예상외로 완강하게 지속되자 마침내
회사도 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2월 19일 경일기업 노동자들이
3공장 안에서 농성천막 설치를 시작하자, 현자 회사는
현자노조를 통해 “▲경일기업 11명은 1개월 이내에 타업체로
전환배치한다. ▲경일기업 11명은 ‘향후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쓴다. ▲비정규직노조는 본건에
대하여 출퇴투, 농성, 단식, 집회 등을 중단한다. ▲이상의
요구를 수용하면 경일기업 퇴출을 고려한다”는 요지의 안을
던져왔다.
경일기업 노동자의 요구와 회사측 안은 서로 충돌하다가 24일
합의에 이르렀다. 경일기업 사장, 비정규직노조 위원장,
경일기업 노동자 11명 대표, 3공장 대의원 대표, 현자노조
조직강화 팀장 이름으로 최종 합의한 내용은
“▲작업거부자(경일기업소속) 11명에 대하여 1개월 내에 6명은
경일기업에 재취업하고 5명은 3공장 내 타업체에 재취업한다
▲재취업자 11명은 향후 건의 및 애로사항 등이 있을 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진행할 것이며 불법적인
작업거부 행동 등을 하지 않는다 ▲본건에 대하여 상기내용을
상호 성실히 이행하고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치 않으며
사내협력업체 노조도 단식, 출퇴근집회, 농성 및 텐트설치 등
제반 단체행동 등을 하지 않는다 ▲본 사항 종료시 경일기업은
계약해지 검토한다”는 것이다.
휘두르지 못한 칼
경일기업 투쟁은 회사측 안이 처음으로 나온 19일을 기점으로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20일 회사는 회사측 안을
거부한데 대한 보복으로 현자노조를 통해 “▲경일기업 퇴출
▲경일노동자 11명 전원 해고”라는 협박성 선전포고를
해왔지만, 이는 심리전의 성격이 강했다.
21일~22일 주말을 지내면서 또 다른 중대한 국면의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현자노조가
사태해결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회사도 19일 던졌던 회사측 안을 수용하라며 마무리를
종용해왔다.
경일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노조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요구의 100% 쟁취를 위해 비정규직 스스로 어쩌면 힘에
부치는 투쟁을 밀어 가느냐? 현자노조의 중재를 받아들이고
마무리로 가느냐?
만약 앞의 길을 택하게 되면 지금까지와 다른 수준의 투쟁이
결정되어야 한다. 파업 첫날 이후로 사실상 파업의 효과가
없었던 경일기업 라인을 실질적인 파업현장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의 선전, 캠페인, 여론전 등의 상징적 투쟁을 넘어서는
현장의 승부수, 실질적인 작업거부 투쟁이 벌어져야 한다. 이에
따라 손배, 고소, 고발 따위의 자본의 공격은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뒤의 길을 걸으면 자본의 탄압으로부터는 안전하지만,
요구의 100% 쟁취는 어려워지고, 무엇보다 여전히 정규직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결국 2월 24일 비정규직노조는 고심 끝에 뒤의 길을 택했다.
이런 결정이 경일투쟁의 승리라는 결과를 뒤바꾸지는 않았지만,
경일기업 노동자 11명의 내적 동요와 불안감을 일정하게 반영한
것이며, 비정규직노조의 대중투쟁에 대한 자신감 부족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이번 경일투쟁의 한계이다.
또 이 결정에는 사태해결에 나선 정규직노조에 대한 입장도
주요하게 고려되었는데, 실제로 협상과 합의는 정규직 노사간에
있었으며, 정규직노조가 대리인으로 나서고 경일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노조가 동의한 수준에서 합의서가 작성되었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경일기업 투쟁이 3공장 안의 다른 업체로, 다른 공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경일노동자의 대중투쟁 없이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사라졌다.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스스로 해결하는 것도 미완에
그쳤다.
이것이 비정규직노조 출범이래 최장기간 투쟁이었고 노동조합이
처음으로 합의 주체로 인정받은 투쟁이었던 경일기업 투쟁이
아직까지 뚫고나가지 못한 난점이다. 비정규직노조가 꼭 딛고
일어서야 할 한계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