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반대하는 세력이 탄핵 세력이라구요!?
김혜란 [ 2004년03월20일 ]
오늘 50살이 넘은 한 여성활동가와의 얘기에서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런 여성운동의 현실을 보았죠.
그 여성운동가 왈 “지금의 탄핵국면을 보면서 여성의 관점에서
무엇이 옳을까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열린우리당은 호주제
폐지를 발의한 곳이고, 한나라당은 반대한 곳이었습니다.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호주제 반대세력이 탄핵세력인 거죠.”
(그러니 여성의 관점에서 보아도 탄핵반대를 해야 합니다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노골적으로 그렇게까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으~악!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네? 여성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비정규직으로 내몰면서, 생리
휴가 다 없애면서 한참 후퇴시킨 노무현이는요?”
“호주제는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는 것이지만, 근로조건문제는
노동하는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폭넓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권리에 맞추어져야 합니다란 말을 하고 싶었겠지요)
(스팀이 팍 올라오면서)
“강남의 돈 많은 여성과 구로 3동 벌집 촌 여성의 고통이
똑같나요?”
“그렇지는 않지만...”
(이제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마음으로)
“여성운동이 여성만의 운동이 아니듯이 여성만의 진보란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진보적 관점을 갖지
않고서는 여성운동에도 진보란 없습니다.”
(그리고는 이 자리에 도저히 더는 있을 수 없어서 먼저
가겠노라고 말한 뒤 1시간이 더 남은 토론일정을 뒤로 하고
돌아와 버렸습니다.)
탄핵국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구 꼴보수들이 노무현을 탄핵하는 것도 화가 치밀지만,
노무현도 탄핵받아 마땅한 놈이죠.
호주제 찬성하는 한나라당도 꼴통이지만, ‘여성’을 신자유주의
세계화, 노동의 유연화 저변으로 융단깔듯 깔아가는 노무현도
용서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둘 다 날려버릴 수 있어야
진정한 여성운동이겠지요. 게다가 한나라당은 뒷덜미를
잡아당기지만, 노무현이는 앞섶은 끌어당기고 있는 현실
아닙니까. 발등에 떨어진 불은 노무현이 틀림없죠.
제가 가슴 아팠던 것은, 20년 이상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일해
오신 이분들의 진심성은 읽히는데, 이런 분들이 한국의
여성운동을 대변한다면 이 땅의 여성운동은 어쩔껀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더 있기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운동권 마초들은 “거 봐! 계급이 있고, 여성이 있는 거야”
따위로 씨부렁 거리겠지만...)
그 여성에게는 정치경제학적 관점도, 변혁의 관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웃지 못할 희극 같은 상황에 더 이상 여성운동이
매도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저는 오늘 그걸 느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여성운동이 이제 이 땅의 ‘대세’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성(姓) 안 쓰기 운동을 시작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적극 동의합니다. 가부장제와 호주제에
반대하기 위해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이 소수에게는 성 자체를
안 쓰는 문화, 이름을 스스로 지어 쓰는 문화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름만 부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