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국면, 민중운동 세력에게 어떤 의미인가
최 경 희
연구위원
15대 국회가 1996년 말에 ‘안기부법과 정리해고제’를 날치기로
통과시켰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도 민중운동 세력과 시민운동
세력은 날치기 통과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였다. 특히
‘정리해고제’ 입법이 가져올 미래의 사회적 효과에 대한
즉자적 반응들이 표출되었다. 이러한 분노와 두려움은 이후
한국에서 전개된 사태로 인해, 정치적 결실을 맺지 못하고 다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바로 금융위기로 가시화된 IMF 관리체제와
김대중 정부의 집권이었다. IMF 관리체제로 인해 일반 국민의
공포와 두려움은 김대중 정부에 대한 기대로 전화되면서 이전
국면에서 민중운동 세력과 시민운동 세력이 보여준 기존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분노와 실망은 정치적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김대중 정부 시기 내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민중운동세력의 주도권을 놓치게 되는 결과를
갖게 된 점이다.
지금 현재 그 사회적 결과는 비정규직의 일반화, 구조적 청년
실업 문제, 급증한 신용불량자, 손배가압류 등 노동운동탄압으로
인한 노동조합운동의 위축, 민주주의의 역행인 집시법의 개악,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생은 파탄에
이르렀고, 한국사회에 대한 전면적 불신은 쌓여만 갔고,
이민열풍으로 가시화되기도 하였고, 또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삶에 대한 희망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16대 국회가 17대 국회의원 선거 한 달여를
앞두고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였다. 이로
인해 16대 국회에 대한 불신은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국민적
분노로 드러났다. 이러한 국면은 4․15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여당 및 야당의 올인 전략이 빚어낸 결과이다. 탄핵
가결 이후 여론 조사와 광화문 촛불 시위에서 보여진 것처럼,
국민들은 이 정국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야3당에게 있으며, 이차적 책임은 대통령의 대응이라고
파악하고 있고, 또한 국민들은 탄핵가결까지 온 현 사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탄핵 이후 야당은 예상치 못한
국민들의 반응으로 탄핵카드의 역풍을 맞으면서 곤욕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검찰에 의한 17대
대통령 선거 불법대선자금 수사결과가 공표되면서, 차떼기
정당이자 부패 비리의 주범인 한나라당으로서는 4․15
총선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고, 열린우리당과 분당한
민주당으로서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갖고 있었고,
그리고 노무현과 열린우리당과의 차별화를 전략으로 선택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민련은
막판 이 정국을 틈타 기사회생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자민련에게 지역주의 청산은 정치적 지지기반을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5대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이나 실패한 기존 보수세력은
행정권력이 아니라면 4․15 총선을 통해 적어도
다수당으로서 의회권력을 틀어쥐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중대한
생존게임에 처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 수구보수
세력의 언론 플레이와 거대 여당의 횡포에 대한 전면적 승부수를
던졌으며, 또한 이 국면을 돌파하여 향후 정국을 주도하고자
하는 전략을 갖고 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국면은 총선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온 노무현 및 여당과 야당의 올인 전략의
정면충돌의 결과이다.
2004년 3월 12일, 16대 국회의 ‘탄핵가결 사태’는 15대 국회
때의 ‘날치기 통과’ 시기와 같이 크나큰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1996년 당시도 시민사회단체와 민중운동 세력은
민주주의의 폭거라고 항변했으며, 날치기 통과에 대한 전면적
비판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날치기
국회에 대한 민중운동 세력의 저항은 정치적으로 승리하지
못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저항적 운동의
성격이 의회정치의 비민주적 작태에 대한 비판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갖고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명확히 그것은 한계적
성격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형식적 절차를 파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형식을 뛰어넘어 그 형식 안에
담아있는 내용, 그 실질적 내용의 함의를 비판하고 정세를
주도할 능력과 비판의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가온
IMF 관리체제의 사회적 영향과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전략에 대한 실질적 비판과 사회적 영향력의
이니셔티브를 놓쳤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당시는 민중운동
세력에게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음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초유의 국가부도사태라는 경험하지 못한 역사적 시기를
관통하면서 국민들의 공포와 두려움은 극도에 달했고, 이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빨리 통과하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 국면은 그 때와 상황은 다르다. 탄핵이
가결된 그 당시 국민들의 심리적 공황상태는 급속도로 사라진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불안과 공포보다 유권자로서 4․15
총선에 대한 일대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결과를 고스란히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게
줄 것인가? 아니면 민중운동 세력에게 이니셔티브를 갖고 올
것인가? 이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의 대중적 분노는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연민, 끈질긴 보수우익 세력의 폭거에 대한
분노, 4․15총선을 통한 정치개혁에의 기대 등 복합적인
심리의 작용이다. 그러나 민중운동 세력은 이 국면에서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노동정책, 경제정책이 결코 친민중적이거나
친노동자적이지 않았다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 FTA 비준, 노동정책 등에 대해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 민주당 등의 정책적 차별은 없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단 그들의 대립점은 소위 ‘정치개혁’이다.
정치권력을 나눠먹는 치열한 싸움에서만 그들은 이해관계를
달리하고 있었을 뿐이다.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기득권
세력으로서는 거의 차별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혹여 지금 이 시기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이러한 정치적
지배계급의 권력분점 시기에 단순한 들러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고 촛불시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국민들의 분노를
조직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더
조직적으로 보수언론과 보수우익 세력과 싸워 이겨내야 한다.
사회 곳곳에 뻗어있던 이들 권력의 촉수와 먹이사슬들을
끊어내어 그들을 타격하고, 고립시키는 것이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내용과 경험을 축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민중운동 및 사회운동 세력이
한국정치사의 국면국면마다 의미 있는 저항적 정치투쟁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늘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꼴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민중운동 주체세력이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지배계급 내의 온건파 또는 자유주의 세력은
민중의 자발적 저항과 운동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권력 내의 자유주의 분파들은 민중운동의 정치적
결과들을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이다.
1987년 이후 정치적 지배계급의 위기 때마다 민중운동은
저항하였고,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민중운동의 저항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차기 정권창출의 정당성을 더해주는 결과를
갖게 되었다. 현재도 보수우익 세력에게 봉쇄되어 있는 노무현
정권이다. 현 시기 민중운동이 보수우익의 포위망에 놓여있는
노무현 정권의 구출작전으로 전락한다면, 민중운동이 의도하는
정치적 결과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민중운동은
장기집권의 탐욕을 갖고 있는 보수우익 세력의 의도를 분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단순히 이 국면의 결과가 노무현 살리기로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이 시기 민중운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피폐화된 노동자․민중의 삶과 생존을 다시
제기하고, 따라서 4․15 총선 이후 민중운동 세력과
시민운동 세력이 정국에 개입할 수 있는 주도권을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향후 하나의 독립된 권력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