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을 경계하자
채 만 수
소장
[필자 전주(前注) : 이 글은 2004년 3월 17일 오후2시(실제로는
2시 20분경)부터 ‘철학마당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전국교수노동조합․학술단
체협의회․시민의신문․오마이뉴스 공동주최’의
“탄핵관련 긴급토론회 : 탄핵정국과 한국민주주의의 위기”에서
내가 발표한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이다.
김정인 학술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의 사회로 발표는 3․12
탄핵 가결을 “‘의회쿠데타’ 시도로서의 3․12탄핵의결”
혹은 “반민주적 ‘의회쿠데타’”로 규정하는, 정해구
교수(성공회대 정치학)의 “3․12 탄핵의결의 정치적
의미”, 차병직 변호사의 “탄핵안 의결의 부당성 확인과 항의
지속의 필요성을 위한 법률적 검토”, 그리고 나의 “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을 경계하자” 순으로 이루어졌고, 조희연(성공회대
사회학)․정상호(한양대 정치학)․홍성태(상지대
사회학)․최민희(민언련 사무총장)․김명호(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 순으로 토론이 이루어졌다. 어떠한 대립구도로
토론이 이루어졌을 것인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되,
다만 나와 나의 발제 내용에 대해서 홍성태 교수님께서 극단의
적대감을 감추지 않았다는 것만을 특기하고 싶다. 토론회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얻은 바를 얘기하자면, 토론자들 각자의
정치적 성향과 ‘실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발표했던 내용을 가능한 한 최대한
‘중계하듯이’ 그대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물론
발표를 위해서 준비해 갔던 메모를 제외하고는 기억에 의존해서
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대면하여 말로 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본래의
발표와 약간 표현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발언하고 싶었던 바가 실제로 발언한 것과는 다르면서도 실제
발언한 것으로 기억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격앙되어서든 아니면 의도적으로든 내가 내뱉은 인품(?)없고
비난받을 소지가 있는 격한 표현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 쓰려고 노력하였다. 그것을 생략하고
표현을 바꿈으로써 내 허물을 덮는 것은 내가 할 짓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발표 때는 발언하지 않았으나 글로
쓰면서 보충한 부분은 이 ‘필자 전주’처럼 각괄호로 묶어
두었고, 독자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서 필요한 곳에 소제목을
달아두었다. 실제의 토론장에서의 발언도, 여기에서의 기록도
모두 당연히 내 개인의 책임임을 특별히 밝혀두고 싶다.]
《발표 내용》
전국을 휩쓸고 있는 집단적인 정치적 광기
어제 아침에야 오늘 여기 나와서 발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어제는 어제대로 다른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발제문을
준비 못하고 메모만 들고 나왔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어제 발제 요청을 받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1990년 여름에 겪은 한 사건, 아니 한 경험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제가 전민련의 간부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당시 역시 정치적 격동기였고, 많은 ‘민주인사들’이
앞 다퉈 서명 등을 통해서 김대중 씨의 무슨무슨 ‘국민회의’와
기타 분열돼 있던 야당들의 통합을 촉구할 때였습니다. 전민련의
최고․핵심 간부들도 그렇게 서명과 성명에 나섰고, 저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그런데 급기야는
‘중앙위원회’라는 전민련의 공식 의결기구에서 ‘야당통합
촉구’를 결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제는 당연히 이를
의제로 삼는 데에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제 동갑내기 하나가
저를 보자 더니 “내 칼로 니 뱃대지를 쑤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실제로는 쑤시지도 안 했고, 불행히도 단명해서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서 영화를 누리지도 못한 채 모란묘원에
누워 있습니다만, 그의 패거리들은 김대중 정권에서, 그리고
지금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 등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정국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 격앙되어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집단적인 정치적 광기가 지금 전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컨대 탄핵이 가결되었던 지난 12일에 실천문학사
사무실 이전개소식에 모였던 ‘진보적’ ‘민주적’ 작가들 중에
어떤 시인[임동확]은 “나는 총을 들고 싶었다” 했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컨대, 정혜신이라는 정신과
전문의는 3월 15일 ꡔ한겨레ꡕ에 실은 “당신들은
미쳤다”는 칼럼에서, “의회 쿠데타라고까지 표현되는 야3당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보면서 한 시인은 ‘나는 총을 들고
싶었다’고 절규한다. 그의 목소리는 바늘처럼 가슴을
찌른다”며 복창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연 오늘 내가 이 느티나무 카페를, 그리고
이 탄핵정국의 긴 터널을 칼질 당하지 않고, 총 맞지 않고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3․12 쿠데타’?
현재의 정세 형국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다툼․이해대립이 마치 전국민의 혹은 전계급의
결정적인 이해의 대립이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되어 선동되고
있고, 그 광기가 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을 향해서 줄달음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에서 발제했던 분들이 규정하는 것처럼, ‘3․12
쿠데타’라고 합시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기획하고
연출했습니까? 기본적으로 노무현․열린우리당의
총선적전이요, 권력강화 음모 아닙니까?
아까 얘기했던 정신과 전문의, “탄핵안을 가결시킨 193명의
의원들이여, 당신들은 미쳤다”고 외치는 그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의 진단을 들어 봅시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정신병은 현실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능력인 ‘현실 검증력’에
손상이 온 경우를 말하는데 이것이 정상인과 정신질환자의 변별
포인트다. … 현실 검증력이 손상되는 구체적 계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모든 경우를 관통하는 근본축은 ‘자아소멸의
심각한 내적 위협을 느낄 때’이다. 내가 부서져버릴 것 같은
느낌, 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극단적인 존재감의 위협이 현실
검증력을 교란시켜 정신병적 사태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야
3당의 탄핵안 가결은 그런 자폐적 구도에서 발생한 착란증세처럼
보인다.”
자, 어떻습니까? 대선자금 수사나 총선에서의 열린우리당 지지
호소 등으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등에게 “내가 소멸해버릴 것
같은 극단적인 위기감’을 조성하고, 그리하여 ‘현실
검증력’을 손상시켜서 이 상황을 유발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형이나 수족을
변호하기에 바빴던 3월 11일의 도발적 기자회견은 저들의 최후의
‘현실 검증력’을 말살시켜버린, 그런 ‘마지막 몰이’
아니었습니까?
아무튼 이 문제는 정황상의 심증일 뿐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히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뭐, 상관없고,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현실 검증력’을 상실한 광분의 전제
예의 정신과 전문의에 따라서 저도 ‘현실 검증력’의 문제를
“정상인과 정신질환자의 변별 포인트”로 삼아서 얘기를
풀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열린우리당이나 ‘탄핵규탄’에 광분하는 사람들의
전제, 그것은 이른바 ‘수구부패세력 대 개혁세력’,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를 조성하면서, 노무현 정권이나 열린우리당은
‘수구부패세력’과는 질이 다른, 무언가 긍정적인
‘개혁세력’이라는 것, 노무현 정권은 ‘민주세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연합처럼 어떤 사람들은 ‘사대매국세력
대 민족자주세력’이라는 대립구도도 설정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러한 전제가 성립해야만,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노무현 정권을 옹호하여 ‘탄핵 무효화’를 주장하는 데에
정당성이 있겠지요.
그러면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정말 그러한 세력일까요?
민주세력?
우선, 노무현 정권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민주세력’입니까?
그 정권은 대표적인 반민주 악법이라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그것을 폐지하거나 개정하려는 어떤 움직임이라도 보여주었나요?
아니지 않습니까?
예, 좋습니다. 한나라당이나 기타 ‘수구꼴통 세력’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앉아서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노무현 정권이 주물러 놓은 집시법은 어떻습니까?
테러방지법은 어떻습니까? 그것들이 민주적인 법률입니까?
아니면, ‘수구꼴통 세력’이 주도하여 개악하고 제정한
것입니까? 노무현 정권의 정부 발의로 개악되고 제정된 것
아닙니까? 그런 파쇼 악법 아닙니까?
부안 사태는 어떻습니까? 네이스 파동, 등등등은 어떻습니까?
‘현실 검증력’을 상실하고 미치지 않고서야 이러한 노무현
정권을 어떻게 ‘민주세력’이라고 옹호할 수 있습니까?
바로 ‘개혁’이 민생파탄의 원인
다음엔, ‘개혁’ 혹은 ‘개혁세력’이라는 것에 대해서
봅시다.
3월 16일 그러니까 어제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단위노조대표자 결의대회 참가자 일동’ 명의의
‘결의문’[“민주노총이 앞장서서 정치 폭거 탄핵 만행,
민생파탄 수구보수 부패정치 청산하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것은 중대한 범죄행위이며,
폭력행위”라고 규탄한 후,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판이랍시고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역시 오늘의 국정 혼란의
원인을 제공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총선 승리만을 추구하고
개혁정책을 외면해 온 결과는 노동자 민중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민생파탄으로 이어져 왔다.”
저는 여기에서 노무현 정권이 “개혁정책을 외면해 온 결과는
노동자 민중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민생파탄으로 이어져
왔다”고 쓰고 있는 대목을 주목합니다.
이는 완전히 현실에 대한 도착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고,
그것이 오늘날 이 소동의 인식상의 근본원인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노무현 정권이 “개혁정책을 외면해 온 결과”로 노동자
민중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민생파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무현 정권이 바로 개혁정책을 강행해 왔기 때문에,
김영삼 정권 이래, 특히 김대중 정권 이래 신자유주의 개혁
정책을 강행해 왔기 때문에 노동자 민중은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민생파탄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노동자․민중생활의 파탄 원인은 사실은 자본주의적 생산
그 자체의 성격과 법칙 속에 있다.]
바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노동 유연화’,
규제완화․자유화 등등 그 개혁 정책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60%나 되고, 신용불량자가 400만 명에 육박하고,
노동자 농민들이 목매달아 죽고, 분신해 죽고, 할복해 죽고,
‘일가족 집단자살’이 드문 얘기가 아닌 상황이 조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노조 조직률이 그토록 낮고,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이 그토록
열악한 우리 상황에서 ‘노동귀족’ 운운하며 비난하는, 그런
사람과 그런 정권입니다.
노무현 정권이나 열린우리당이 자임하는 ‘개혁세력’이란 바로
그런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인 것이고,
따라서 ‘현실 검증력’을 상실하고 미치지 않은 바에야 도저히
옹호할 수 없는 세력인 것입니다.
농업․농민을 포기하는 ‘한-칠레 FTA’ 강행에 대해서는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정치개혁? ― 바로 정치자금 싸움
그들은, 그리고 그들의 외곽세력인 ‘시민운동’ 세력은
‘정치개혁’을 내세웁니다. ‘수구부패 세력’과 다르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이미 박정희․김종필 등의 5․16 쿠데타
이후부터 ‘구악일소’니, ‘부정부패 척결’이니 ‘사회정의
구현’이니, ‘숙정’이니 ‘사정’이니 하던, 해묵은 농담이고,
농간이고, 정치자금 재분배를 위한 추악한 투쟁에 다름 아닌 것
아닙니까.
‘10분의 1’이니 ‘리무진 대 티코’니 하는 뻔뻔스러운
지껄임을 들으면서도 노무현 정권이나 열린우리당이 무언가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순진한
바보가 아니면, 교활한 사기꾼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고백’을 했다고 해서 찬양 받는 모양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에서도 나이 든 분들은 보신 분들이 있겠지만, 할리우드
서부영화 중에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The good, the
bad, the ugly)라는 게 있습니다. 거기 ‘추한 놈’의
행동거지가 어떤지 아십니까? 드르륵 긁어 대고는 “하나님,
용서하십시오,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드르륵 긁어 대고는
“하나님, 용서하십시오,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 그런
것입니다. 반복적인 고백과 속죄야말로 ‘추한 놈’의 장기이고
그가 ‘추한 놈’으로 규정되는 이유입니다.
그가 ‘고백’하고, “내가 물정 모르고 정치판이 들어 왔지만,
나 정치인 생활 청산하겠다”고 했다면, 나는 그의 진심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거기 그렇게 있지 않습니까?
[아니, 사실은 더 높고 귀한 자리를 위해서 ‘고백’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의사당 본회의장 책상에 올라서서 비장한
어조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우리 애국가를
부릅시다” 한 것 아닙니까?―저 진한 국가주의!!!] 그가
금권정치라는 범죄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게다가 사실은,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민중으로부터의 착취 자체이지, 그 착취된
잉여가치가 이건희의 주머니로 들어가든, 노무현이나 이회창의
주머니로 들어가든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문제이고, 그들의 투쟁이고,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개혁’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실 검증력’을 상실하고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그들의 ‘정치개혁’을 옹호할 수 있습니까?
민족자주 세력?
일부에서 얘기하는 소위 ‘사대매국세력 대 민족자주세력’의
대립이라는 구도에 대해서도 봅시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 때 보여준 그런 굴욕적인 친미
발언 친미 행각이 ‘민족자주’입니까? 수많은 사람의 반대를
무릅쓴 이라크 파병 강행 등이 ‘민족자주’입니까?
눈뜬장님, 청맹과니가 아니고서야, ‘현실 검증력’을 상실하여
미친 자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친일진상규명법’을 열린우리당이 주도한 작은 성과라고
인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그 법을 주물러서 껍데기만
남겨 놓은 한나라당 등에 대해서 누구 못지 않게 분노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생각해봅시다. ‘해방’ 60년만에
친미분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친일 진상 규명’이 과연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들의 친미행각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닙니까?
위험은 침몰 중인 난파 해적선인가, 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의
가능성인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의 얘기는 여러분의 얘기하고 전적으로 다릅니다.
여러분은 [과거의 기억에 가위눌려서]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등 ‘수구부패 세력’이,
그들의 ‘의회 쿠데타’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라며 침몰하는
해적선에 가열차게 돌멩이질을 하여 끝내 가라앉히고 말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상하다.]
그러나 현실적인 위험은 바로 최근의 그러한 집단적 정치적
광기가 몰고 올 ‘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러한 집단적 정치적 광기를 조성하고 그렇게 몰고
가고 있습니까? 바로 [현재의
집권세력․열린우리당․노사모], 그리고 언필칭
진보적이고 민주적임을 자임하는 문화예술인들, 그러한
교수․지식인들, 시민운동단체의 지도자들 ― 한 마디로,
1990년대 이후 성장해 온 지배계급 내부의 신주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하에 있는
소부르주아 천둥벌거숭이들]입니다.
따라서 ‘현실 검증력’을 상실하고 미친 것은 193명의 의원뿐만
아니라 “당신들은 미쳤다”고 외치는 정신과 전문인을 포함해서
오늘날 노무현․노사모․열린우리당의 음흉한 장단에
열을 내서 어릿광대 춤을 추고 있는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
모두입니다. ― 아니면, 내가, 여기 내가 미쳤겠지요.
여담
여기서, 몇 가지 여담을 하고 싶습니다.
다름 아니라 이렇게 ‘현실 검증력’을 잃고 미친 지식인들
중에는 3월 12일에 ‘실천문학사’에 모여 “총을 들고
싶었다”는 등 비분강개한 일단의 작가들, “엄혹했던 80년대
펜과 붓으로 시대에 저항해 온”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작가들도 포함되는데, 그 중에서 예컨대 김영현(소설가)는
“청산 없는 개혁은 없다! 지금이 기회다! 국정원 당신들
뭐하냐? 저 거짓 세력들 내란음모죄로 구속하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 ― 이것이 저들의 민주주의입니다.
그 중에 또 예컨대 이승철이라는 시인은 “역사는 알고 있다.
우리가 과연 누구의 음모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는가를!”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 그렇습니다. 역사는 알고 있고,
또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발언하고 있는
이승철이라는 시인 등은 그것이 누구의 음모인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음모를 꾸미고 연출한 자는 필시 이승철이라는
전혀 ‘현실 검증력’을 상실한 사람이 염두에 두고 있었을
사람이 아니라, 그가 ‘의인’으로 알고 그를 위해 비분강개하고
있는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또 예컨대 문학평론가 황광수라는 사람은 “탄핵을
당하더라도 소신과 기질을 굽히지 않은 노무현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되기 전 언행 다르고 되고 난 후
언행 다르며, 탄핵을 유도해내는 교활함이 기질이고, 친미,
이라크 파병 등이 소신이고, 그러한 소신과 기질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한평생 그렇게 사랑하며 살다 가도록 냅둘
수밖에요.
두어 달 전에 “조두증후군을 경계하자”는 글을 ‘디지털말’에
썼습니다. 시민운동 지도자들을 향해서, 대략 “지금 당신들이
범죄자들로 지탄하는 국회야말로 바로 당신들의 ‘성공적인’
낙천․낙선운동으로 만든 국회다,” “수백 년 부르주아
정치라는 게 언제나 그렇게 썩고 악취 나는 것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금권정치로서의 부르주아 정치 아니냐,”
“그런데 왜 어제 한 일도 기억 못하고 선거철만 되면 사회적
의제를 그렇게 오도하느냐,” “새대가리 짓 아니냐”고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 아주 흥미 있는
리플이 달렸습니다. 내용으로 봐서, 필시 실명이었더라면 고매한
인품과 지성을 뽐내면서 거들먹거렸을 어느
시민운동지도자․진보지식인 중의 한 분인데 익명에 숨어서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에 가득 퍼부은 후에 저뿐만 아니라
제가 속한 연구소까지 “경멸한다”고 끝맺고 있는 그러한
고매한 익명의 리플이었습니다.
어제 3월 16일 ꡔ한겨레ꡕ에 보면, 민교협, 학단협,
교수노조, 대학비정규직노조 등도 혹시나 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으로 가는 역사에 이름이 빠질까봐 노사모의 외곽으로
떴습니다. ― 분명 역사에 잊지 않고 이름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저 고매한 리플의 표현을 빌어서 제 입장을
간명하게 말하면, “나는 그러한 지성을 경멸합니다.” ―
이상입니다.
《토론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답변》
홍성태 교수께서 자기 말만 쏟아 놓고 자리를 떠서 유감이고, 또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홍 교수는 마치 내가 자신들의 잔치에 끼워달라고
애걸하고 그렇게 와서는 헛소리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지난 14일에 인터넷상에 공개적으로 이 정국에
대한 나의 입장을 표명했고, 그것을 읽고 내 입장을 충분히
파악한 이 토론회의 조직자가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충분히 알면서 여기 나와서 얘기를 해달라고 해서, 그런 요청을
받고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사람을 불러 놓고 도대체 그런
무례가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홍 교수 식의
의도였다면, 자신들끼리 ‘단합대회’든 ‘결의대회’든 할
것이지, 왜 사람은 불러놓았으며, ‘토론회’는 또 무슨
얼어죽을 ‘토론회’람?]
홍 교수는 이 탄핵사태가 ‘총선정국’과 관련이 있다고, 맞닿아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홍 교수의 여러 발언 중에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총선정국과 관련이
있고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총선정국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홍 교수는 지금의 소동은 절대 노무현 정권이나 열린우리당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 사태의 정치적 효과가 이번
총선에서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이익으로 수렴될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
여러분들의 주관이 크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움직임의 객관적인 효과가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노무현
정권의 권력강화, 절대적인 권력강화, 신자유주의적 개혁
파시즘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토론자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앞 뒤 모순을 범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한편에서는, 한나라당 등이 ‘차떼기’가
폭로되고 그리하여 이번 총선에서 몰락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의회 쿠데타’를 시도했다고 얘기하고, 그러나 그 때문에
그들은 몰락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한나라당의 수구부패세력이 한국민주주의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고 위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ꡔ한겨레ꡕ 신문의 만평도, 오늘날 이
정치적 광기를 조성하고 몰고 가고 있는 핵심 세력의 하나인
ꡔ한겨레ꡕ 신문의 만평도 연이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을 난파하여 가라앉고 있는 초라한 배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열린우리당은 예컨대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는 거함으로 그리고 있다.]
도대체 난파하여 침몰하고 있는 ‘수구세력’이 민주주의에
현실적인 위험입니까? 필경 무한권력으로 될 신자유주의 개혁
파시즘이 위험입니까? [‘현실 검증력’을 상실하지 않은 대답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는 이런 자(尺度)를 들이대고, 저기에는
저런 자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예컨대, 정해구 교수는
“1990년에 있었던 … 3당합당은 국민주권에 반하는 심각한
반민주적 행동이 아닐 수 없”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당적이 3당합당으로 인해 국민의사에 반해 일거에
바뀌었”다고 비판하면서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당적 변경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지난 번 총선연대의 ‘낙천대상자
명단’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로서야 저들 정치가들이
당적을 변경하든 합당을 하든, 그 정치적 목적이나 효과를
별문제로 하면, 그 자체로서야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아무튼 저명한 정치학 교수의 그런 편리한 논법은
흥미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저들이 서슬 퍼렇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국회가 감히 숫자가 다수라고 해서”
운운할 때 보면, 저들은 국회의원 역시 ‘국민이 뽑았다’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러분들은 시민이, 대중이 선동에나 넘어가는 그런 수준 낮은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도
물론 시민 모두가, 대중 모두가 그렇다고 얘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얘기하는 당신들은, 그리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썩어 빠진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감히’ 운운할
때, 스스로 모순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 국회의원들이야말로
바로 그 시민들, 그 대중이 뽑은 것 아닙니까? [물론 당신들의
‘대의민주주의’ 이론에 의하면 말이다.] 그리고 당신들은 바로
그 시민들, 그 대중들이 뽑은 국회의원들을 규탄하고 있고요. 또
당신들은 그 시민, 그 대중을 못 믿어서 그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지금 정치적 소동을 벌이고 있고요.
어떻습니까? 당신들이 지금 시민, 대중 운운한 것이 앞뒤가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이 벌이고 있는 지금의 이 소동이, 노무현 정권 옹호가
내용적으로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그들의 ‘개혁’이
민중적이라는 것,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것, 그들이
민주세력이라는 것, 그들이 ‘민족자주세력’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오늘 그것을 증명도 못했고,
또 누구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들의 근거 없는 주관이나
당신들이 스스로 만들어 싸우고 있는 풍차가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한다면 그것은 결코 증명될 수 없는
것입니다.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정반대의 사실뿐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근거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인 분석이나
과학이 아니라 ‘신앙’일 뿐입니다. 객관과 과학 대신 신앙이
지배할 때 어떻게 되는가는 인류의 정신사가 말해 주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다들 아시겠지만, 예를 들어, 인류는 2천5백년 전에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말하게 되면,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종교재판을 받아야 했고,
화형대 위에서 죽어가야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바로 그러한
신앙을, 그러한 광기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시간 제약으로 못했던 얘기 세 가지》
하나.
그들은 역시 ‘국제사회주의자들’ 다웠다. ‘다함께’는, 지금
그들의 의미만을 살려서 대략 옮기자면, ‘코로닐로프 반란 때에
볼쉐비키는 케렌스키 정권을 방어하여 반군과 싸웠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대중을 전취, 혁명을 성공시켰다,’ ‘따라서
지금 노동자의 힘과 사회진보연대 등 좌파가 오불관언하는 것은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오불관언’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잘못이다,’ ‘보수야당에 대해 전면적인 비판을
수행해야 한다,’ ‘탄핵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시위와
동맹파업, 총파업을 조직하자,’ ‘3․20반전행동의 날에도
우익쿠데타 저지 슬로건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난파해 몰락해 가는 한나라당 등이 의사당에서 벌인, 그것도
계략에 빠져서 절망적으로 벌인 비극적인 코미디 한 토막을
러시아군 최고사령관의 군사반란과 대등하게 취급하다니! “아는
것이 병”이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은 꼭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혁명적 공문구를 남발하면서
‘이적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둘.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그리고 민주노총 등은 모두 ‘탄핵
무효’를 주장하면서, ‘17대 국회에서 탄핵 취하하겠다, 탄핵
취하할 수 있는 인물을 뽑자’거나, ‘총선에서 심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주관적 의도나 구차한
설명․레토릭이 무엇이든, 객관적으로는 누구를 뽑자는
것으로 될까? 십중팔구는 ‘열린우리당을 뽑자’로 되는 것은
아닐까?
셋.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관련하여 다소
‘평론가적인’ 얘기를 하나 하고 싶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거나 부결시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혹은, 요즘 솔솔하게 나오는 얘기처럼, 야3당이
탄핵소추를 취소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묻는 게 바보일
것이다. 당연히 노무현 정권은 ‘결정적으로 승리’한 것으로
되고, 그만큼 그 권력은 엄청나게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이야 별로 없지만, 혹시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면 어떻게 될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자민련 등
야3당의 승리일까? 아니면, 나처럼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
저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비판적인 사람들의 승리일까?
천만이다. 그 역시 노무현 정권의 ‘결정적인 승리’로 된다는
데에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심각성이 있다. 최근의 집단적인
정치적 광기에 비추어 추측컨대, 만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결정하면, 노무현을 황제로 추대하는 사태까지야 안 가겠지만,
필경 그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저들의 움직임 가운데 이러한 불행한 상황을 그나마 막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씨나리오는 아마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대중에게 진심으로 진정할 것을 호소하면서 사임하고 은퇴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 의사가 있는 인물, 그만한
그릇이었다면 이런 소동은 아예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