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사면 및 외국인노동자 보호법(가칭)
제정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에 임하는 우리의 입장
명동성당 농성 이후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우리 사회가 가진 또
하나의 치부로 부각되었으나 정부는 별다른 대책이나 제도개선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외국인노동자가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한지
5년이 넘는다. ‘우리도 인간이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외국인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는 그들이 지나온
5년의 역사가 곧 불행이었음을 이야기한다.
한국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외국 인력을 도입하여 착취함으로써
아시아에서 외국인노동자가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로 낙인찍혀
있다. 외국인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으로 부족한 인력을 메우고
높은 이윤을 남겨 보겠다는 추악한 자본의 논리와 이를 적극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이 지속되는 한 이 불명예스러운 낙인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지금도 외국 인력 수입 제도인 <산업기술연수생제도>가
만들어낸 불법체류자들이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온갖 차별과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도 불법체류자가 일하는
작업장에서는 상습적인 폭행과 계산되지 않는 강제노동,
임금체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제도만으로는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가난한 나라
국민’이니 차별해도 된다고 하지 말자. 애니깽 가시에 손, 발을
찧기며 눈물을 훔치던 우리 할아버지와 독일에서 광부,
간호원들이 겪었던 설움을 잊었다고 하지 말자.
96년 3월에 우리는 스스로 목을 맨 한 외국인노동자의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고국에 있는 아들이 사고로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을 서둘렀으나 출입국은 벌금 200만원을 내라고
하였다. 당시 그는 3개월 동안 월급도 받지 못하여 비행기 표도
급전을 마련하여 구했다. 좌절한 이 노동자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단속과 벌금 책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한 정부정책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정부가 불법체류자를 관리한다는 방법이란 단속과 강제출국
그리고 과중한 벌금이다. 인력이 부족하면 연수생을 추가로
도입하여 메우면 그만이고 그 연수생이 사업장을 이탈하여
불법체류자가 되면 단속하여 벌금 받고 강제 출국시키면
그만이다. 이 얄팍한 수법으로 불법체류자를 증가시키면서도
되려 책임은 연수생 이탈을 방조한 중소기업체로 떠 넘기고
있다. 대다수 불법체류자들이 한국에서 일한 지 2~3년 되었고
기술 숙련도나 생활 적응도가 높아 이들을 합법적으로 채용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단속과 도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내년은 UN이 선포한 ‘이주노동자의 해’이다. 전세계가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를 중단하고 동등한 권리
보장과 상호 공존의 질서를 정착시키고자 제정한 해인 것이다.
우리 나라 또한 이 취지에 발맞추어 <산업기술연수생>제도 등
불합리한 외국인 노동자 관련 정책을 중지하고 동등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
이에 우리는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사면 및 외국인노동자
보호법(가칭) 제정’을 국회에 입법 청원하기 위하여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인다.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안정되고 살맛나는
일터를 주고, 국민에겐 세계인과 함께 하는 삶의 풍요로움을
주기 위해 그 첫발을 내딛는다.
1996년 4월 26일
외국인 노동자 대책협의회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