ꡔ자본론ꡕ 세미나를 듣고
임 덕 영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정치경제학비판” 8기
수요반
연구소의 ꡔ자본론ꡕ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 것은
작년 4월 중순. 6년 동안의 학생회 활동에 지쳐 무엇인가를 다시
부여잡고 싶은 마음과, 얼마 남지 않은 학창시절 걸쭉한 고전
한편은 마스터해야 되지 않겠느냐 라는 다소 건방진 생각에
시작한 세미나. 짧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이렇게 장거리 마라톤일 줄이야. 매 세미나가
끝날 때마다 맑스주의 개론서만을 달달 읽고 아는 척 해왔던
그간의 활동에 대한 자괴감(!)과 앎의 즐거움에 대한 희망으로
‘다음 커리는 사수한다’를 늘 가슴에 새기곤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가 뭉게뭉게 커져 결국 ꡔ자본론ꡕ 3권에
들어와서는 이 글을 쓰기 민망할 정도로 결석을 더 많이
해버렸다.
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무엇인가를 끝낸 것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유의미한 고로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ꡔ자본론ꡕ 세미나에 대해 느낀 점을 가볍게
서술해보고자 한다.
1. 百聞不如一見!!
금융공황이다, 청년실업문제다, 빈곤이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더욱 심화될수록 현대 사회를 분석함에 있어 맑스의
사상은 빠지지 않는다. 수다한 사람들은 그 머릿수만큼이나
수다한 자신의 생각에 맑스를 ‘활용’하여 때로는 맑스의
한계를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때로는 백과사전식으로 여러
사상중 ‘꽤 유의미한 사고’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또 특정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적’ 맑스가 유행할 때도 있다.
어려운 문구들이 나열되고 서로 낡았다라는 지적이 횡횡하는
요즘, 이러한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무엇인가? 뭐니 뭐니해도 자본주의를 가장 과학적으로
분석하였다는 ꡔ자본ꡕ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다.
온갖 잡다한 사상이 내 눈과 귀를 솔깃하게 하긴 해도 내 나름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아류작을 보는 것보다 원작을 보는 것이
의외로 쉽고도 도움이 많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험난한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해내기 위해서는 단지
신자유주의 반대 등 추상성을 넘어서 보다 과학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메커니즘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또한
절감했다. 다만, 다만, 내가 원작의 진국을 게으름 탓으로 뼛속
깊숙이 느끼지 못하고 맛만 본 듯한 느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 마의 코스 37km
마라톤에서 37km가 가장 고비라고들 한다. 과연 내가 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속도를 더 내야 하는데 다리는 말을 안
듣고. 나에게는 3권 초반이 37km가 아니었을까. 선거다 뭐다
겹치는 일정 때문에 책 읽을 짬을 내지 못했고, 책을 읽지
않았으니 아무도 구박을 주지 않아도 세미나 시간이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두 번 빠지다 보니 페이스를 잃기
시작했고, ‘아, 이제 늦은 게로군’ 하는 체념까지. 나의
체념과 무관하게 맑스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제 종반으로 치닫기
시작했고, 어느새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이별에까지.
ꡔ자본론ꡕ 5권(비봉출판사 판)의 부피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사실 책 안에 들어가서 요기조기 살펴보면 그렇게
낙담할 정도이지는 않은데, 약간 거리를 두고 무심코 쳐다보면
어마어마한 두께에 주눅이 든다. 장거리 페이스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음에서 멈추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마라톤은 끝난다는
것. 이제부터 열심히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면서
자본주의 사회를 냉철하게 알아가는 즐거운 여행을 계속하는 것.
세미나에서 출석은 생명이다!!
3. 겸손함 배우기
세미나 구성원은 정말 다양하다. 각자의 영역은 다르지만,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사실,
학교를 벗어나 이렇게 다양한 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세미나는
처음이었다. 학교 안에서의 지식과 경험은 그다지 풍부하지
않았음을, 앞으로 배워야 할 삶의 자세와 지식의 양이 많음을
세미나를 통하여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우물안 개구리는 우물
밖으로 나와야 하는 법인가보다. 자본이 단순한 단락의 합이
아니라 거대한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고, 추상적 수준에서 구체적
수준까지 하나의 완결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역시도 그동안의
곳곳에서 ‘수집’한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선무당이 오히려 더 무서운 법이다. 일상생활에서 또 학습의
장에서 보다 겸손한 마음을 늘 견지해야 할 것이다.
4. 사회복지와 ꡔ자본론ꡕ
세미나 도중, 전공을 사회복지로 변경했다. 사회복지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상정하고, 이를 위해 공사간
자원을 조직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학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른다. 사회복지는 이 불가능한 일을 그나마 어떻게
효율적으로 완화할지를 연구한다. 다만, 사회구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대적 과잉인구, 노동권의 불안정화, 사회적
소수자의 주변화 문제를 사회복지에서는 인간조정의 문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의 문제로 접근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복지는 자본주의 모순의 완화에서 비롯된 학문인데,
역설적으로, 구조적 문제는 회피하고 개별적, 사례적 접근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사회복지만의 문제는 아닐 듯
싶다. 사회의 제문제를 총체적, 역사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분절적, 초역사적, 초사회적으로 깊게 깊게 연구하려는 경향은
학문적으로 과학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곧바로 체제 유지의
이데올로기로 작동된다.
사회복지와 관련되어 최근 더욱 문제시되고 있는 상대적
과잉인구, 빈곤의 만연화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ꡔ자본ꡕ은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을 밝혀내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분석해낸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맑스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의 유럽에서뿐 아니라,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사회의 현재의 문제임을 강력하게 직시하게
한다. 사회복지는 체제내적 경향이 다분히 강하기 때문에 그동안
‘개량’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빈민
1,000만의 시대, 우리의 삶이 자본주의의 총체적 모순 그 자체가
되어버린 지금, 사회복지는 자본의 이익과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민중의 복지를 고민하는 나에게, ꡔ자본론ꡕ 학습은
앞으로 풍부한 자양이 될 것이다. 때문에 아! 못다한 3권을
보충하는 세미나를 꼭 함께 하고 싶다. 9기 분들은 12월 즈음에
생소한 사람이 나타나도 당황하지 마시길.
5. 앎과 실천의 즐거움으로
비록 개인적으로 많은 부족함 속에 진행되었던 세미나였지만,
혼란과 무기력에 빠져있던 나에게 큰 힘을 안겨준 세미나였다.
단지 ꡔ자본론ꡕ을 알아간다는 것 뿐 아니라, 이후
자본주의 사회를 극복해내고자 하는 삶 속에서 지난 1년은
나에게 소중함으로 남을 것이다.
아.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창시절이 더
길어졌다. 이제 ꡔ맑스-엥겔스 선집ꡕ 세미나를 할
생각이다. 이제 마라톤 풀코스의 경험이 한번 있었으니,
자신감이 붙었다. 앎과 실천의 즐거움으로 안내할
ꡔ선집ꡕ 세미나가 이제는 또 기다려진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