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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주의 비판

현장에서 미래를  제98호
정병기



사회적 합의주의 비판 (Ⅰ)



정병기 ∙ 코포라티즘의 개념과 외국의 사례





코포라티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 :

독일과 네덜란드의 예

정 병 기/ 연구위원




차  례

I. 서론

II. 코포라티즘의 개념

III. 코포라티즘의 전환과 주요 조건 및 성격

1. 국가 코포라티즘에서 사회 코포라티즘으로

2.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에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으로

IV. 코포라티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 네덜란드와 독일

1. 네덜란드

1) 전형적 사회 코포라티즘의 전통

2) 네덜란드 사회 코포라티즘의 위기

3)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의 등장

2. 독일

1) 사회 코포라티즘의 경험

2) 코포라티즘 종언론의 대두와 배경

3)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의 등장

V. 결론



◀ 요  약 ▶


코포라티즘은 국가기구의 적극적 중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자본주의 질서 유지를 부정하지 않는 노ㆍ사ㆍ정 3자의 정치적 협상과 교환이 사회갈등 해결의 핵심적 수단으로 제도화되거나 적어도 장기적ㆍ지속적으로 기능하는 사회ㆍ정치적 운영 원리와 과정이다. 이러한 운영 원리와 과정은 사회경제구조의 변화를 배경으로 국가의 성격과 노사간 힘관계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 성격을 달리해 왔다. 그 중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이다.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사회 코포라티즘의 한 변형으로서, 노자간 힘의 일정한 균형 상태에서 자본의 양보를 강제한 결과라는 성격과 노동자들에 대한 순치와 통제의 성격이라는 사회 코포라티즘이 가지고 있는 야누스적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후자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띤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수요조절 사회 코포라티즘의 노사간 힘의 균형을 깨트려 나가는 과정으로서, 계급간 역관계가 더욱 자본측으로 기울 경우 코포라티즘 자체가 폐기되는 전단계라고 할 수 있다. 사민당의 우경화와 노조의 약화를 배경을 배경으로 등장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의 네덜란드와 독일의 사례가 그것을 증명한다.




I. 서론

1970~80년대 코포라티즘1)이 주요 논쟁적 주제가 된 이래 소멸론을 거쳐 1990년대 네덜란드 코포라티즘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함께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노사정 위원회의 등장과 함께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이름으로 그 존재 여부까지 논쟁의 초점이 되는 커다란 관심을 보여 왔다.

코포라티즘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전제로 자율적 직능집단들(corporations)의 정책결정 참여를 통해 안정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자 했던 중세 장원제도에서 연원하였다. 그후 이 개념은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에 의해 유일정당의 전일적 정책 조정과 사회적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 코포라티즘 형태로 도입된 것이다(Hancock 1989, 3; 이호근 2002, 101).

반면 제2차대전 이후 등장한 사회 코포라티즘의 연원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적지 않지만, 현대 산업사회에서 사회ㆍ경제적 기능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단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사민주의 정치가 대두한 것을 중요한 정치사회적 배경으로 등장하였다는 데에는 커다란 이견이 없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정치가 더욱 강화되고 세계화 경제가 심화됨에 따라 사회 코포라티즘은 위기와 전환을 동시에 겪으면서 ‘공급조절(supply-side) 코포라티즘’이라는 새로운 변형으로 나타났으며,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거세어지고 있다.2)

이 글은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에 초점을 두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추세에 따른 유럽의 코포라티즘 정치의 전개와 변화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에 따라 코포라티즘의 조건과 성격을 먼저 살펴보고, 이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을 어떻게 받았으며, 그 결과 등장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의 성격과 본질은 어떠한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고찰하고자 한다. 구체적 사례로는 과거 사회 코포라티즘의 강성 국가의 하나였던 네덜란드와 중성 국가의 하나였던 독일을 선택하였다. 양국 모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영향을 받아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으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II. 코포라티즘의 개념

코포라티즘의 개념에 관해서는 크게 경제체제나 구조로 보는 입장과 이해관계 조정(interest intermediation) 체계로 보는 입장, 사회ㆍ정치적 과정으로 보는 관점 그리고 구조주의적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와 동일하나 구체적으로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 기타 구조주의적 관점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경제체제나 구조로 보는 입장은 코포라티즘을 사민주의 정부가 노동조합운동을 자본주의 국가에 순치시키는 수단으로 도입한 기제(Panitch 1977; 1986), 국민들의 경제적 기능을 토대로 구성된 사회단체(corporation)라는 형태 속에 대표와 개입이 제도적으로 융합된 국가형태(Jessop 1979; 1990), 혹은 사적 소유에 기반하나 공적 통제가 작동하는 체제로서 자본주의와 다른 경제체제(Pahl/Winkler 1974; Winkler 1976; 1977)로 본다.

두 번째 관점으로는 코포라티즘과 다원주의를 대당으로 놓고 산업자본주의 국가에서의 통치가능성에 관한 이론틀을 가지고 조직론적으로 개념화함으로써 특히 사회 코포라티즘을 구조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이해관계조정기제로 보거나(Schmitter 1974; 1977), 이와 유사한 입장에서 ‘조직내적·외적 네트워크’로 보아 투입 면의 이해관계 대표유형이자 국가정책의 형성과 집행에도 참여하는 제도화된 정책형성으로 보는(Lehmbruch 1977; 1979; 1982; 1984) 입장이 있다.

한편 코슨(Cawson)으로 대표되는 세 번째 관점에서 코포라티즘은 기능적 이해관계들을 독점적으로 대변하는 단체들이 조직원들의 이해관계 대표와 공공정책 집행을 결합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국가기구들과 공공정책 산출에 관해 정치적 교환을 하는 특수한 사회ㆍ정치적 과정으로 이해된다(Cawson 1986, 38).

마지막으로 기타 구조주의적 입장은 자본주의 체제의 정치적 하부구조 중의 하나로 파악하거나(Kastendiek 1981), 포드주의적 축적양식과 연결하여 케인즈주의 양식이 사라지고 포스트포드주의로 이행과는 과정으로 파악하는가 하면(Hirsch and Roth 1986), 수렴이론의 입장에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대체한 것(Harrison 1980), 혹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제3의 체제적 대안으로 보거나(Wiarda 1997), 적절한 위기관리 방식으로 본다(Esser et al. 1979).

이와 같이 다양한 여러 입장들 중에서도 코포라티즘의 공통적 특징이 되는 이론적 핵심은 ‘국가기구의 적극적 중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사회집단들의 독점적ㆍ기능적 이해관계 대변조직들이 이해관계대변과 국가 정책집행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노ㆍ사ㆍ정 3자의 정치적 교환에 참여하는 사회ㆍ정치적 과정’이라는 것이다.3) 그러나 이 사회ㆍ정치적 과정은 전체주의 혹은 사민주의 정당의 단순한 정치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구조화된 정치 체제로도 기능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코포라티즘의 개념을 더 포괄적으로 규정하면, ‘국가기구의 적극적 중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독점적ㆍ기능적 사회단체들이 자본주의 질서의 유지에 합의하고 이해관계 대표(정책 형성)와 공공정책 집행에 참여하는 노ㆍ사ㆍ정 3자의 정치적 협상과 교환이 사회갈등 해결의 핵심적 수단으로 제도화되거나 적어도 장기적ㆍ지속적으로 기능하는 사회ㆍ정치적 운영 원리와 과정’으로 볼 수 있다.



III. 코포라티즘의 전환과 주요 조건 및 성격

1. 국가 코포라티즘에서 사회 코포라티즘으로

양차 세계대전 사이 기간의 나치즘과 파시즘 등 독재정치의 사회통제 메커니즘을 의미하는 국가 코포라티즘은 의회민주주의 체계에서 더 이상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 코포라티즘은 부르주아가 약해지거나 분열되어 자유민주주의 지배질서에서는 비특권계층의 합법적 요구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억압적 방식으로 지배계급을 대신해온 것이었다.

반면 제2차대전 이후 유럽의 자본은 파시즘 경험의 실패와 새로운 노동투쟁의 압력 속에서 노동과 화해를 모색하였다. 즉, “투쟁을 겪고서 개혁을 하기보다는 우월한 입장에 있으면서 양보를 통해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항상 더 안전하며”, “협력이 전체적으로 볼 때 강력한 상대와의 장기적인 투쟁보다 더 낫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Wells 1991, 181). 그에 따라 안정된 의회민주주의적 부르주아 지배체제에서 피억압 계급을 체제에 통합시키는 방식으로서 사회 갈등을 평화적 방법으로 해소하려는 사회 코포라티즘4)이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 코포라티즘은 강력하나 전체주의적이지 않은 국가 그리고 대개 수와 기능이 한정된 구조화된(총체적으로 통제되지도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은) 이해관계집단(사회단체)이 존재하고, 이 이해관계집단이 국가의 일부로 기능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Wiarda 1997, 7). 그리고 사회 코포라티즘의 주요 당사자인 노동과 자본간에 타협을 통한 정치적 교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첫째, 단위노조와 기업 및 노동과 자본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노사 양측에 권위 있고 중앙집권화된 포괄적 정상조직이 존재해야 하고, 둘째, 협상이 가능할 수 있을 만큼 노동의 정상조직과 자본의 정상조직간 일정한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며, 셋째, 양자의 협약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중재하고 협약 준수를 보장하며 협약에 따르는 단기적 희생을 복지 및 사회안전망 등 사회정책을 통해 보상해줄 수 있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넷째, 그러한 구체적 국가 행위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으로 ‘친근로자적 국민정당’5)이 집권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양보와 타협의 문화가 정착한 합의 민주주의의가 발전해 있어야 한다(김인춘 2002, 175-6 참조). 구체적 사례로 살펴볼 네덜란드와 독일의 역사는 이러한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음을 증명한다.



2.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에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으로

1970년대 중후반에 시작되어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자본시장의 자유화와 자본이동의 증대, 생산방식의 변화와 산업구조의 변화 및 이에 따른 계급구조의 변화 등은 코포라티즘의 또 다른 전환을 가져왔는데, 그 결과가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이다.6) 그에 따라 기존의 사회 코포라티즘은 완전고용, 노사관계 안정, 사회복지의 확대를 주요의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수요조절 코포라티즘(demand-side corporatism)’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물론 이 전환은 국가 코포라티즘에 대한 사회 코포라티즘의 핵심적 전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두 유형 모두 사회 코포라티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조응이라는 점에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그 구체적 성격을 달리한다.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의 성공은 성장과 물가안정, 고용과 인금인상자제가 제도적 보장과 사회적 힘의 균형을 통해 합의되고 달성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세계화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구조 변화(제조업 약화와 서비스업 증대, 기업별 단협 증가, 노동자계급의 분화, 특히 사무직 노동자층의 증가로 사무직노조와 각종 자율노조 분리, 린생산방식과 외주 등의 생산합리화, 국제적 상호의존 증대)에 의해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의 성공조건들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반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생산성 증대 그리고 사회복지지출 통제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는 한편, 노동시장의 열패자에 대한 보호 및 재취업 기회의 제공, 불공정해고의 제한 그리고 경제성장 과실에 대한 공정한 분배 등의 이슈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서(김용철 2000, 5),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양립 가능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표 1> 수요조절 코포라티즘과 공급조절 코포라티즘

 

수요조절 코포라티즘

공급조절 코포라티즘

주도정당의 유형과 성격

친근로자적 국민정당

(케인즈주의적 사민주의 정당)

현대적 경제정당

(슘페터주의적 사민주의 정당: ‘제3의 길’)

노동시장조직

중앙집중화

조직화된 분산화

협의의 수준

거시적

(중앙수준)

중위적

(산별/부문별 수준)

협의의 내용

재정팽창, 공공고용 확대, 국유화, 사회보장망 확대

직업교육, 재교육, 고용증대, 소득보전

교환의 근거

노: 정책결정과정 참여

자: 임금억제, 노사관계 안정

노: 고용안정, 소득보전

자: 노동시장 유연화, 노사관계 안정

국가의 역할

크고 강력한 개입국가

작으나 강력한 국가

출처: Traxler 1995; 김용철 2000, 4를 참조하여 보완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이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에 입각한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인 케인즈주의적 사민주의 정당의 선택이라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이 사민주의 정당이 ‘제3의 길’로 포장한 현대적 경제정당, 즉 슘페터주의적 사민주의 정당으로 변화한 이후의 선택이다. 따라서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은 노동과 자본이 모두 중앙집중화된 조직을 통해 재정팽창, 공공고용확대, 국유화, 사회보장망 확대를 두고 전국 차원의 거시적 협의를 하며 이해관계를 상호 교환해 가는 형태라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노동과 자본의 조직이 소산별이나 기업 수준으로까지 분산화된 조직을 통해 직업교육, 재교육, 고용증대, 소득보전을 두고 산별 혹은 부문별로 중위적 협의를 하며 이해관계를 상호 교환해가는 형태이다. 이 때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의 제3의 행위자인 국가의 역할은 사회경제정책적 개입에서 범위가 넓고 기능적으로 강력하며, 이러한 크고 강력한 개입국가의 조절 아래 노동측은 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를 위해, 자본측은 임금억제와 화해를 통한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교환에 응한다. 반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에서 국가는 시장에 대한 개입의 범위를 축소하고 그 축소를 위해 기능적으로 강력하게 개입하며, 이러한 작고 강력한 국가의 조절 아래 노동측은 고용안정과 소득보전을 위해, 자본측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교환에 응한다. 따라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에서는 더 이상 정책결정 과정에의 참여라는 노동측의 거시적 이익은 포기된 것으로 간주되며, 임금인상의 자제도 고용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당연시된다. 결국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사회 코포라티즘의 전제인 노사간 힘의 균형에 기반하고 있으나 신자유주의적 질서에서 강화된 자본이 고용을 인질로 하여 과거 케인즈주의적 노사관계의 균형을 깨트려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IV. 코포라티즘의 신자유주의적 변형: 네덜란드와 독일

1. 네덜란드

1) 전형적 사회 코포라티즘의 전통

네덜란드 사회 코포라티즘의 중요한 정치경제적 배경은 ‘합의 민주주의’와 ‘협의 경제’이다. 노자간 자본주의적 균열 외에도 신ㆍ구교간의 오랜 종교적 균열이 존재하고 파시즘의 침략이라는 정치적 외환을 겪었으며, 상업과 무역에 의존하는 작은 국가로서 해수면보다 낮은 국토를 가진 네덜란드는 정치적 합의와 경제적 타협의 모델을 도출하여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러한 특수성은 노동당, 자유당, 기민당이 항시적으로 연립을 통해서만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경쟁지형과 비례대표제라는 정치적 여건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코포라티즘적 차원을 넘어 사회의 모든 계층과 집단을 아우르는 포괄적 합의주의(consociationalism)를 형성하게 되었다(Crouch & Menon 1997, 154; 진영재 1990, 5). 이러한 합의주의가 경제적으로 현상한 것을 협의 경제라 일컫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른바 ‘국가중심적 협의 경제(etatist concertation economy)’로도 불리는 네덜란드의 경제체계는 국가주도적이고 중앙집중적인 코포라티즘의 성격도 띠어 갔다. 이러한 협의 모델은 폴더 모델(Polder Model)이라고도 불리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해면보다 낮은 네덜란드 해안 간척지(‘폴더’)를 형성하기 위한 네덜란드 국민들의 협동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좀더 구체적인 기원은 나치 독일의 점령기간에 노동과 자본의 대표가 비밀회동을 통해 전후 경제재건을 위한 사회 파트너의 관계를 형성하기로 합의한 데 있다. 그 직접적인 결실로 나타난 것이 2차대전 이후 네덜란드 사회 코포라티즘 모델의 양대 핵심 기제의 하나로 작동해온 양자협의 기구 ‘노동재단’의 설립(1945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자발적 합의에 기초한 경제적 협의가 1950년에는 정부의 본격적인 개입과 지원으로 확대되어 3자 협의체적 산업관계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법제적 표현이 네덜란드 코포라티즘의 핵심 기제인 ‘사회경제평의회’이다.

이 사회경제평의회를 통해 국가는 완전고용과 사회복지의 확장 정책을 대가로 강력한 임금 가이드정책에 의한 임금자제를 요구했고, 노동재단도 이를 지지해 온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정부 중앙계획청이 경제전망치와 임금권고안을 제시하면 사회경제평의회가 검토하여 노동재단과 노동부에 사회경제평의회 권고안 형태로 임금인상안을 다시 제안한다. 그리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노동재단과 정부의 정례 간담회를 통한 임금 관련 협의를 거친 후 정부가 최종 가이드라인을 공표해 왔다.


2) 네덜란드 사회 코포라티즘의 위기

적어도 10여년을 넘는 기간 동안 사회보장과 완전고용을 대가로 임금자제정책은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1960년대 초가 되자 완전고용을 토대로 한 노동조합의 영향력 증대와 노동자들의 임금상승 욕구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던 임금 수준을 더 이상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1963년 국가의 임금 가이드라인이 철회되고, 정부중재원이 보유하고 있던 임금결정권은 노동재단에 위임되었으나, 노동재단을 통한 노사간의 중앙 집중적 임금결정 메커니즘조차 교착상태에 빠져 들었고, 노동자들의 임금상승 요구는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정부는 1970년에 황급히 ‘임금협상법’을 제정하여, 임금을 동결 혹은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다시 장악하였다. 그에 따라 1970~82년 기간 동안 정부는 5차례에 걸쳐 임금결정과정에 개입하였지만, 강력한 파업에 부딪혀 정부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였다. 유럽 전역이 자발적 파업투쟁에 달아오르고 있던 시기로서 네덜란드의 1970년대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의 투쟁이 고조되던 때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는 두 차례의 유가 파동에 따른 충격을 직접적 계기로 하여 자본주의의 축적 위기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다. 자본측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었고, 노동 진영에서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 효과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채 직종과 지위에 따른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노동시장이 급속히 탈규제되고 유연화되는 가운데 노동조합은 급격한 조직률 하락7)과 힘의 약화를 막지 못했다. 더욱이 오랜 복지국가적 운영의 전통에서 1970/80년대의 경제 위기는 국가 재정의 파탄을 경고하고 있었다. 결국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와 정부의 재정위기 해소 및 노동조합의 영향력 회복이라는 각자의 요구로 인해 기존의 코포라티즘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3)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의 등장

실업과 경제 위기로 인해 중도-좌파 연립정부는 1982년 선거에서 실각하고 기민당(CDA)과 자유당(VVD)의 중도-우파 연립정부가 출범하였다. 루버스(Lubbers)의 중도-우파 연립정부는 우선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존의 노사정 협의체제에서 탈피하여 건전 재정 회복, 기업의 채산성 향상, 일자리 공유(work-sharing)를 통한 고용안정 등 산업 전반에 걸친 정부주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노사간 자율교섭의 영역을 더욱 좁힌다는 의미에서 노동과 자본에게 모두 충격적인 것이었다. 실업률 증가와 조직률 하락에 직면한 노동조합은 자신의 노동시간단축 제안과 자본이 요구하는 임금자제를 교환하고 실업률을 최소화하여 조직률의 회복을 꾀하였고, 자본측도 기업의 인사관리 및 영업전략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의 물가 및 임금 동결에 지극히 부정적이어서 노동과의 자율적 협상을 선택하였다.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해 재빨리 대응한 노동과 자본은 같은 해 11월 24일 노동재단의 결정을 통해 이른바 ‘바쎄나 협약’(Wassenar Accord)을 체결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네덜란드 병’을 치유한 새로운 ‘네덜란드 모델’의 시작을 알리는 첫 협약이었다. 1993년 임금자제와 단체교섭의 분권화를 촉진한 신노선 협약(Een Nieuwe Koers Accord), 1996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함과 동시에 파트타임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장체계의 강화를 가져온 ‘유연화와 보장에 관한 협약(Flexibiliteit en Zekerheid Accord)’ 및 그 후 일련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에 관한 협약과 법령들은 이 협약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전형적인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의 성격을 띤다(Wilthagen 1998 참조).

바쎄나 협약8)의 핵심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로 집약된다(김용철, 2000). 첫째, 노동자대표는 임금물가 연동제의 폐지 등 임금인상 억제에 협력하는 대신 사용자 대표는 정규직의 주당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확보를 약속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회생시킨다. 둘째, 정부는 임금억제와 노동시간 단축에 대응하여 기업에게 각종 세금과 사회적 부담을 줄여주고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생산과 고용의 확대를 유도한다. 셋째, 기존의 중앙수준 노사교섭을 산별 혹은 부문별 차원의 교섭으로 전환시킨다.

‘신노선 협약’은 기본적으로 1982년 바쎄나 협약을 계승한 것으로서, 노조의 노동시간 단축과 파트타임 노동자 보호를 수용하되 공급조절 측면을 더욱 강화시켜 유연화를 확대한 것이다. 곧, 노조는 추가적인 노동시간 단축에 기초한 고용확보를 통해 유연화에 대처하였고, 사용자는 직업훈련제도의 확충을 통해 종업원의 채용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었으며, 정부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사회보장제도의 정비와 확충으로 이들의 합의를 보완했다. 일례로 정부는 임금과 휴가 및 연금에 대해 파트타임 노동과 풀타임 노동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전창환 2003, 217).

1996년 이후 일련의 조치들은 1996년 노동재단에서의 유연성과 안정성에 대한 합의, 이후 1997년 제출되어 1999년 1월부터 발효된 유연성과 안정성에 관한 법(Wet Flexibiliteit en Zekerheid), 2000년 노동시장조정법(Wet Aanpaasing Arbeidsduur: 파트타임노동 보호법) 및 2002년 11월 ‘2003년 노사간 고용조건 정책’으로 대표된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진전에 대해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었다.  ‘유연안정성’에 관한 이 협약과 조치들은 이미 전 단계에 시작되고 강화된 노동비용 감축과 유연화 및 그 결과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가운데 그 부작용들을 흡수하는 형태였다.

네덜란드 모델은 실업률의 해소와 비정규직에 대한 고려 및 경제회복을 이룬 성공적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 새로운 네덜란드 모델의 효과가 가리키는 지표는 적어도 1990년대말과 2000년대 벽두까지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에 해당하는 이 모델의 근본적 한계는 신자유주의적 탈규제 공세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아니라 그 결과를 인정하는 가운데 선택된 수세적 대응이라는 데에 있다.

그에 따른 네덜란드 노동시장의 변화는 일시해고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초과시간근무, 해고, 단기고용계약 및 그 갱신의 고용계약절차를 완화함으로써 임시직과 비상근직의 확대로 현상하였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 총고용에 대한 그 비중과 1983년 이후 10여년간의 증가율은 유럽 전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1983년부터 1994년 사이 임시직 비율은 유럽연합 국가들에서 일정하게 유지되었던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5.8%에서 2배 가까운 10.9%로 증가하였다(OECD Employment Outlook, 1996, 이장규 2000, 24에서 재인용). 비상근직의 비율도 1983년에서 1996년 기간 동안 21.2%에서 36.5%로 증가하여,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OECD Employment Outlook, 1996, 이장규 2000, 24-5에서 재인용).

전반적인 사회복지 혜택의 감소도 적지 않았다. 질병, 고령 및 실업에 대한 사회복지 혜택이 물론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기는 하나, 종전의 최종소득대비 80%에 비하면 10%나 감소하여 70%로 하락한 것이다(Becker 1999, 이장규 2000, 27에서 재인용).

이러한 일련의 결과들은 신자유주의적 탈규제의 공세에 근본적으로 대처하여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켜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작용만을 봉합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정규직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감축한 후 자본의 공세가 넘볼 곳은 당연히 비정규직의 영역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2002년에 실업률이 다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향후 10년간의 경제 침체를 걱정하며 내놓은 것이 ‘2003년 노사간 고용조건 정책’임을 고려해 볼 때,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시장 전체를 넘보는 자본의 공세와 노조측의 또 다른 양보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독일

1) 사회 코포라티즘의 경험

독일은 사회 코포라티즘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라틴유럽 국가들에 비해 강력하지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나 오스트리아에 비해서는 약한 코포라티즘 국가이다. 그러나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국가 코포라티즘의 전형적인 예에 속했으며,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중반의 독일은 사민당 주도의 연립정부아래 사회 코포라티즘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국가의 하나였다. 이른바 독일 모델이 독일의 특수한 제도적 특성과 정책적 특수성으로 인해 분명한 사회 코포라티즘의 형태를 구성했던 것이다.

당시 독일의 사회 코포라티즘은 1966/67년의 경기후퇴에 대한 대응으로 사민당과 기민/기사연의 대연정이 ‘경제안정·성장 촉진법’을 도입하여 경제에 개입할 것을 시도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에 따라 1967년 6월에 연방의회는 가격안정, 완전고용, 외부재정균형, 적절한 경제성장을 국가정책의 4대 경제목표로 설정하였고, 정부로 하여금 5개년 재정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협주행동(Konzertierte Aktion)의 도입을 규정하였다(Hancock 1989, 104).

특히 협주행동은 사회 코포라티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조절기제였다. 당시 경제장관이었던 칼 쉴러(Karl Schiller)가 경제전문가위원회, 연방은행, 사용자단체, 독일노련 등 관련 6개 부문의 대표들을 소집하여 거시경제적 목표와 구조정책 및 소득정책에 관해 토론하고 협의한 것이다(김수행 외 2003, 140 참조). 쉴러는 관련단체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사용자측으로부터 가격안정을 보장받고 노동자측으로부터는 임금인상의 양보를 얻어내어 인플레이션 억제와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했다. 그에 대해 사용자측은 조세부담인하와 공공비용절감을 기도했고 노동자측은 실업문제의 해결과 정책참여를 요구했다.

독일의 초기 사회 코포라티즘의 결과는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다. 1967년 봄에 62만9천명이었던 실업자가 같은 해 10월에는 34만1천명으로 감소하였으며, 이 해의 경제성장률도 5%에 이른 것이었다(Hancock 1989, 104). 또한 공동결정법이 확대되었고 중하층 국민들의 교육기회도 증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972년 쉴러 장관이 사임한 후 협주행동은 형식화되었으며, 1974년 이후에는 노동시장 파트너들에게 국내외적 상황을 알리는 데에만 이용되었다. 그에 따라 노조 내에서도 비판이 거세어져 결국 독일노련은 1977년에 불참을 선언하였다. 사용자측도 같은 해에 공동결정법 확대(1976년)에 불만을 품고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Hancock 1989, 138).


2) 코포라티즘 종언론의 대두와 배경

독일식 사회 코포라티즘의 특징은 조직된 이해관계집단들보다 정부가 주요정책결정을 발의하는 데 중심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사회 코포라티즘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조건은 안정된 행정지도력, 지속적 경제성장, 고용 등 노동시장 조건의 안정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의 쇠퇴기를 거쳐 1980년대에는 기민/기사연과 자민당의 신보수주의 정권이 등장한 이후 독일도 이른바 코포라티즘 종언론의 대두와 그 정치경제적 배경의 성숙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첫째, 서비스업의 확대, 화이트칼라층의 증대 등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노동의 분화와 내적 이질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둘째, 포스트포드주의와 작업장의 유연적 전문화 등 자본주의 축적양식의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되었다. 셋째, 1980년대 초반 이후 국제화와 세계화 물결이 거세게 불어닥치자, 국민국가적 중앙교섭이 기피되고 기업 혹은 초국적 기업 수준의 분산적 임금·고용협상이 더욱 선호되기 시작했다. 넷째,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가 심각한 재정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업 혹은 노동자그룹 수준에서 노동과 자본간의 교환합의인 생산성연합(productivity coalitions)이 코포라티즘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되면서, 노동측이 경영측과 협력하여 기업의 생산성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그 대가로 고용안정과 기업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으려는 경향이 확대되어 갔다(김용철 2000, 3-4).

1980년대 초중반은 독일 노동조합운동의 수세기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치적 수세기와 탈정치화의 극복은 참으로 어두운 긴 터널을 마주하게 되었다. 코포라티즘의 관점에서도 독일은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세계화의 광풍 속에서 노사정협의체제의 종말을 극복하지 못했다. 물론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성공적인 주35시간제 투쟁은 노사정협의체제의 종말이 아니라 코포라티즘과 노사정협의체제 자체를 극복하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한 그 투쟁조차 노동시장 유연화와 교환된, 반쪽의 성공에 불과했다.


3)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의 등장

코포라티즘 종언론을 종식시킨 것은 전통적 사회 코포라티즘의 새로운 등장이 아니었다. 1998년 사민당의 집권과 적녹연정의 성립은 한때 기존 사회 코포라티즘의 재시도를 예측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3의 길’과 ‘신중도’로 포장된 사회조절정책은 이미 수요조절정책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사회 코포라티즘은 이제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으로 치부되면서, 슘페터식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독일의 새로운 좌파정부정책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경제정책에서 탈규제, 민영화, 조세인하를 중심으로 하고, 사회정책에서 재정적자 해소와 복지제도의 효율화와 감축을 추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강조하는 탈규제 정책을 대폭 수용한 점이 경제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이라면, 이른바 ‘근로를 촉진하는 국가’를 추구하며 실업을 해소한다는 명분아래 열악한 일자리조차 복지혜택의 조건으로 강제하는 것이 사회정책의 실상이다(김수행 외 2003, 187-207 참조).

2002년 재집권에 성공한 슈뢰더 총리는 적녹연정 2기의 출범에 즈음하여, 연정의 정책목표는 ‘개혁과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 및 사회적 통합’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지켜온 복지국가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정 절약을 비롯한 복지국가의 감축은 그 이후에도 지속되어 왔을 뿐 아니라, 적녹연정의 핵심적 사회정책의 하나인 고용창출정책은 임시노동과 비정규직 노동에 집중되었다.

이와 같이 ‘개혁, 정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노동시장 개혁과 경제회생’에 중점을 둔다는 2기 적녹연정의 정책기조도 1기의 사회경제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재정정책과 관련해서는 긴축정책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정병기 2003 참조).9)

적녹연정의 정책 중 임금단협정책과 연금 및 의료보험 정책을 대표적으로 살펴보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적 전환이 명확히 드러난다. 우선, 임금단협과 관련된 적녹연정의 노동ㆍ고용정책은 일반 임금수준의 하락, 일괄단체협약에 따른 단협안의 보편적 적용 폐지, 부문내 또는 부문간 임금격차의 확대, 지역간 임금격차의 확대라는 네 가지 성격을 띤다(Heine & Herr 1999 참조).

적녹연정의 연금관련 개혁조치중 이미 시작된 중요한 변화는 ‘직장연금(Betriebliche Altersversorgung)’을 통해 법적 연금제도를 보완케 한 것이다. 그에 따라 2002년부터 노동자들은 성탄절수당이나 휴가수당 등을 직장에 적립하여 연금보험료를 대체할 수 있게 하고, 직장평의회나 노조가 사용자와 협상을 통해 연금의 크기와 종류를 선택하게 하였다.10) 물론 구체적인 사항들의 결정은 노사간 교섭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겠지만, 노동자들이 이러한 제도를 수용할 경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결정뿐만 아니라 연금 기구와 크기의 선택에 대한 사용자의 권한이 커지게 된다.

의료보험과 관련해서도 적녹연정은 의료보험의 민영화 수준을 높여 거주지별로 의료보험 수가를 협약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처는 보험가입자들의 보험기금 선택권을 증대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의료보험의 구체적 내용을 보험기금과 의사단체에 일임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보험가입자의 참여권과 결정권을 제약하고자 한다.11)

코포라티즘의 관점에서 보면, 적녹연정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중반 ‘협주행동’의 경험을 살려 노사정간 새로운 고용협정도 추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중도’ 노선의 고용협정은 ‘협주행동’의 수준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으로서 그 성격을 완전히 달리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적녹연정은 처음부터 고용협정의 협의 내용을 정책에 반영한다는 의지를 갖지 않은 채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정책적 동원기제를 구상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국가 개입의 측면에서 직접 개입을 피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이 협의기제를 통해 간접 개입은 확대함으로써 경쟁력뿐만 아니라 제반 분배조건도 개선하려는, 공급측 개입을 위주로 하는 코포라티즘적 사회통치(corporatist social governance)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으로 불리는 사회 코포라티즘이 완전고용, 노사관계안정, 사회복지의 확대를 주요의제로 삼았다면,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노동시장의 유연성확보, 생산성 증대, 사회복지지출의 통제를 통한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는 한편, 노동시장의 열패자에 대한 보호 및 재취업 기회 제공, 불공정해고의 제한, 경제성장 과실에 대한 공정한 분배 등의 이슈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김용철 2000, 5). 한마디로 독일 정부의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친화력을 가진 것으로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위한 사회적 동원과 통제의 기제로 이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V. 결론

개념에서 살펴보았듯이 코포라티즘은 국가기구의 적극적 중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자본주의 질서 유지를 부정하지 않는 노ㆍ사ㆍ정 3자의 정치적 협상과 교환이 사회갈등 해결의 핵심적 수단으로 제도화되거나 적어도 장기적ㆍ지속적으로 기능하는 사회ㆍ정치적 운영 원리와 과정이다.

이러한 운영 원리와 과정은 사회경제구조의 변화를 배경으로 국가의 성격과 노사간 힘관계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 성격을 달리해 왔다. 국가 코포라티즘이 전체주의적 국가정당의 통치전략이자 파시즘적 체제의 운영원리 및 방식이라면, 수요조절 (사회)코포라티즘은 친근로자적 전통사민주의 국민정당의 통치전략이자 케인즈주의 복지국가 체제의 운영원리 및 방식이며, 공급조절 (사회)코포라티즘은 슘페터적 경제정당으로서의 현대사민주의 국민정당의 통치전략이자 신자유주의 국가체제의 운영원리 및 방식이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국가 코포라티즘과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의 경험은 달랐지만, 사회경제구조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배경으로 등장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양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국가 코포라티즘의 경험 없이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이 강력했던 네덜란드와 국가 코포라티즘을 경험했고 그에 따른 부정적 효과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쳐 수요조절 코포라티즘이 약하게 현상했던 독일에서 신자유주의적 사회구조 재편이 심화되자 사회 코포라티즘의 성격이 동일한 방향으로 변형된 것이다.

또한 네덜란드와 독일의 공급조절 코포라티즘 등장의 배경에는 노자간 힘관계의 변화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변화에 힘입어 강화된 자본에 비해 노조는 수세적 전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노동자 이익의 대변자로서 사민당과 노조가 정부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발휘하였지만, 노동자들의 타협 불가능한 이해관계를 대변할 조직은 성장하지 못했다. 독일에서도 1952년 공장법 제정이후 특히 심화된 노조의 순치와 지속적인 관료화의 문제로 인해 사민당의 우경화에 대처할 조직 노동자들의 힘이 충분하지 못했다.

사회 코포라티즘이 노자간 힘의 일정한 균형 상태에서 자본의 양보를 강제한 결과라는 성격과 노동자들에 대한 순치와 통제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야누스적 측면이 있다. 공급조절 코포라티즘도 사회 코포라티즘의 하나라는 점에서 그러한 양면성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그 통제적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띤다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경험은 사민당의 집권을 정치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사민당의 우경화와 노조의 약화라는 측면에서 부정적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곧,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은 노자간 힘의 균형상태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자본측의 이익을 더욱 강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장차 이 힘의 균형추가 자본측에게 더욱 기울어진다면 코포라티즘 자체가 폐기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자본측이 충분히 강하다면 더 이상 화해와 타협을 통해 노동자들을 동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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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kler, J. T. 1977. “The Corporatist Economy: Theory and Administration,” R. Scase, ed. Industrial Society: Class, Cleavage and Control, 43-58. London et al: Unwin Hyman.


1) 코포라티즘은 20여년 전에 ‘조합주의’란 용어로 우리나라에 번역ㆍ소개되었고(한배호 1983, 211-5), 최근에는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용어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조합주의’라는 용어는 노동조합주의(trade unionism)나 생디칼리즘(syndicalism)과 혼동되는 난점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조합’이라는 말은 계약에 기초한 근대사회의 다원주의적 이익대표 개념에 더 가깝기 때문에 코포라티즘이 함축하고 있는 유기체적이며 공동체적인 의미를 표현하지 못한다.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용어도 코포라티즘적 협상의 핵심요소인 정치적 교환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며 국가와 관련된 논의가 배제된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못하다. 따라서 적절한 번역어가 발견될 때까지 코포라티즘이라는 영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자 하는 한국국제정치학회의 한 결정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최장집 1983, 365와 1988, 11-2 참조).


2) 안재흥(2002)은 세계화의 영향을 받아 사회 코포라티즘 기제가 변해간 사례를 스웨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의 사례를 고찰하면서 밝힌 반면, 김인춘(2002)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의 예를 들어 경우에 따라 세계화의 영향과 코포라티즘의 위기는 유의미한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3) 이 때 사회집단은 물론 사안에 따라 의약 집단이나 종교집단 등 다양한 사회집단들을 포괄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 국가에서 노사의 대표조직은 다원주의자들이 비차별적으로 등치시키는 사회 내의 무수한 다른 조직들과는 상이한 핵심적 이해관계대변조직이라고 보아야 한다. 노사 대표조직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 요소인 자본과 노동을 대표하는데, 특히 코포라티즘적 체제에서는 독점적으로 대표하고 통제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정부정책의 정치적 정당성의 확보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4) 네오 코포라티즘이나 사회 코포라티즘 혹은 민주적 코포라티즘으로 불리지만, 여기에서는 국가 코포라티즘의 대당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사회 코포라티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5)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은 계급정당의 대당개념으로서 계급정당을 포기한 사민주의 정당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친근로자적’이라는 수식어도 계급성이 탈각되었다는 의미에서 ‘친노동자’란 개념 대신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이란 노자간 계급갈등에서 노동자계급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중립적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아야 한다.


6) 공급측면에서의 정부개입을 강조하면서 코포라티즘 모델을 언급한 예는 이미 Katzenstein, Peter J. 1985. Small States in World Market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에서 있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 Traxler 등의 오스트리아 연구에서 공급조절 코포라티즘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코포라티즘의 종언을 주장하는 입장의 대부분은 공급조절 코포라티즘을 인정하지 않는다.


7) 물론 1970년대의 조직률은 주로 남성들만이 사회노동으로 진출하여 있었으므로 주로 남성들만을 위주로 계산된 반면, 1980년대에는 여성들이 대거 노동시장에 진출한 요인도 통계에 감안된다(주진우 1999, 32).


8) 헤이그 근처의 바쎄나라는 마을에 있는 사용자총연합회 회장 자택에서 체결되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9) Koalitionsvertrag von Oktober 2002: Erneuerung, Gerechtigkeit, Nachhaltigkeit fur ein wirtschaftlich starkes, soziales und okologisches Deutschland. Fur eine lebendige Demokratie.


10) Die neue Rente: Solidaritat mit Gewinnen. Broschure vom Bundesministerium fur Arbeit und Sozialordnung. 2001; “Reform der Alterssicherung: Gunstige Bedingungen fur Betriebsrenten.” 2001.


11) 정병기 2001; Pressemitteilungen 2001. Bundesministerium fur Gesundheit, Nr. 74.


2004-04-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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