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이번 5월호 자료란에는 전국노운협 국가보안법 사건(이적단체건)
공판에 제출된 감정서(작성자:김세균 교수, 연구소 소장, 서울대
정치학과)와 지난 4월 26일 외국인노동자 대책협의회에서 채택한
성명서를 싣는다.
‘감정서’의 경우 분량상 2회에 걸쳐 실을 예정이다. 참고로
전국노운협 사건은 지난 4월 27일 면소판결로 관련자 전원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석방되었음을 알린다.
감 정 서
의뢰기관 : 서울지방법원 형사합의 제21부
감정인 성명 : 김세균(金世均)
직책: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교수
주소: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서울 서초구 방배3동 경남아파트 5동 1007호
전화: 880-6339(연구실), 597-1801(집)
감정의뢰 문건[이하의 서술에서는 문건에 대해 언급할 경우
아래의 문건번호로써 표기함]:
(1)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이하 노운협으로 표기)의
공식문건들
[문건 1.1] : 노운협, “제1기 정기대의원대회 자료”, 1990. 3.
3.
[문건 1.2] : 노운협, “제2기 정기대의원대회 자료”, 1991. 2.
28.
[문건 1.3] : 김영곤, “비상중앙집행위원회 소집 공문”,
1992.7.30
[문건 1.4] : 노운협, “노운협 제3기 3차 중앙위원회(임시)”
자료집, 1993.3.15
[문건 1.5] : 노운협, “제3기 제5차 중앙위원회 소집공고”
자료집, 1994. 2.19.
[문건 1.6] : 노운협, “94년 노동자 자주통일운동
실천강령(안): 민족의 평화와 자주통일, 노동자의 힘으로!
노동자를 위하여!”, 1994.
[문건 1.7] : 노운협, “노운협 제3기 제22차
중앙집행위원회”자료집, 1994
[문건 1.8] : 노운협, “노운협 제3기 제24차 중앙집행위원회”
자료집, 1994. 12.6.
[문건 1.9] : 노운협, “노운협 제4기 대의원대회 준비위원회
수련회” 자료집, 1995. 1.3.-4.
[문건 1.10]: 노운협, “노운협 제4기 대의원대회 자료집”,
1995. 2.18
(2) ‘노운협’ 관계자들이 개인자격으로 발표했거나 좌담한
내용을 수록한 문건들
[문건 2.1] : 김익진, “남한사회는
식민지자본주의사회이다”,[노동운동], 92년 1월호
[문건 2.2] : 김영곤, “민주대개혁을 기반으로 ‘진보’와
‘변혁’으로 나아가자”, [노동운동], 93년 2월호
[문건 2.3] : 박용식, “민주대개혁투쟁을 기반으로 반전반미
자주통일투쟁으로 전진하자!”, [노동운동], 93년 6,7월호
[문건 2.4] : 김승호, 문성현, 김영곤, “신년 특별좌담:
국면전환을 돌파하는 노동운동의 전략”, [노동운동], 94년
1,2월호
[문건 2.5] : 박용식,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전망과
당면과제”, [노동운동], 94년 5.6월호
[문건 2.6] : 박용식,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약이 시작되고
있다 - 94 상반기 노동자 대투쟁의 중간 총화 -”,
[노동운동], 94년 7,8월호
(3) 기타문건
[문건 3.1] : 일제 식민지통치 사죄, 보상과 군국주의 부활
저지를 위한 노동자대회 참가자 일동, “일제 식민지통치 사죄,
보상과 군국주의부활 저지를 위한 노동자대회”, 1992.8.15
감정의뢰 사항
: 위의 감정의뢰 문건의 내용 중 국가의 존립과 안정 및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부분이 있거나 북한의
활동에 동조하는 내용이 있는지의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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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내용
1. 들어가면서
-. 본인에게 감정의뢰된 문건들의 총수는 매우 방대하다.
그런데 이 문건들은 크게 보아 (1) 노운협의 공식문건들과 (2)
노운협 관계자들이 개인자격으로 발표했거나 좌담한 내용을
게재한 문건들 및 (3) 기타 문건으로 구분될 수 있다.
-. 본인의 견해로는, 노운협의 이적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일차적인 중요성을 지닌 문건들은 (1)의 문건들이다. 이와는
달리 (2)의 문건들은, 글을 발표했거나 좌담한 개인들의 이적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노운협이라는
단체의 이적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어디까지나
참조-보완자료의 성격을 지닌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3)의
문건은 문건 작성의 주체가 불명료하다.
-.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본 감정서에서는 먼저 (1)의
문건들을 감정한 이후에 (2)와 (3)의 문건들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1)의 문건들의 경우 문건의 내용들이 많이
중복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문건들을 ‘문건별’로가 아니라,
‘주제별’로 나누어 감정하려고 한다.
2. 노운협의 공식문건들에 대한 감정
본인은, 본인의 학문적 양심과 식견에 입각하여 감정의뢰
문건들을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동 문건들로부터 노운협을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하거나 북한의 활동하는 동조하는
이적단체로 볼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점에서 설령
노운협의 활동방침과 사업내용 등이 정부당국의 생각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고 할지라도, 사상, 양심의 자유 등을 보장하고,
‘다원적인 견해들과 활동들’을 합법적인 것으로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 동 단체의 활동은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문건들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전에, 본인은 문건의
내용을 판단함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가지 점에 대해
먼저 언급할 필요성을 느낀다.
(1) 노운협이 노동운동단체라는 사실:
‘노운협’이란 단체는 노동운동단체이다. 다시 말해,
노운협은 노동자들의 권익신장과 사회적-정치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우리 사회를 노동자들 역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체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은 기본적으로 현실비판적이고
현실의 변화를 추구하는 용어들인 바, 현실옹호적인 보수적인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그들이 왜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가를
이해해 보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의 주장을 아예 처음부터
무조건 용공좌경시하고 이적시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본인은, 사회의 보수층이 그렇게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할지라도, 사법부도 그러한 시각에서 사건을 다룬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와는 달리 본인은
사법부만은 적어도 그 양 시각의 어느 편에 서기 보다는 다원적
견해들을 포용하는, 참으로 자유민주주의적인 입장에 서서
사건을 다루어 주기를 바란다.
(2) ‘계급’, ‘계급적 노동운동’ 등의 용어:
감정의뢰를 받은 노운협의 공식문건의 내용 중에는 ‘계급’,
‘계급적 노동운동‘, ’계급의식‘이나 ‘계급적 각성’과 같은
용어들이 나오고 있다.
-. 그러한 용어사용 자체가, 동 단체를 이적용공단체로
규정하는 판단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카알 마르크스(Karl Marx)가 ‘계급이나 계급투쟁의 존재는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이전의 학자들이 발견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현대의 유명한 ‘자유주의적’ 사회학자인
루돌프 다렌도프(Rudolf Dahrendorf)가 쓴 주저서의 책제목이
[산업사회에서 계급과 계급갈등](Class and Class Struggle in
industrial societiy)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서독의 사민당 당수로서 서독 수상직을 맡은 적이 있는 빌리
브란트(Billy Brant)가 “우리가 ‘계급투쟁’을
‘노사분규’라고 부르든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지에
상관없이, 그것이 계급투쟁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오늘날 사회과학에서 사회구성원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직업별, 소득수준별 분류와 같은 여러 방식이 있지만,
사회구성원을 큰 범위에서 분류할 때에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하여 ‘계급별’로 분류하는 것이
노사분규의 출현 등을 설명하는 가장 과학적인 분류방식으로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인정받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임금노동자층이 자신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조직하는
‘노동조합’과 그들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행동권 등을
인정하는 것은 기업가층 내지 자본가계급의 이익과 구분되는
임금노동자층 내지 노동자계급의 이익이 존재함을, 그리고
계급적 차이에 따른 갈등, 즉 계급갈등 내지 계급투쟁이
존재함을 국가 자신이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고 항상적으로 발생하는 그러한 계급갈등 내지 계급투쟁에
대해서 언급한다고 해서, 그리고 누가 자신은 노-자관계에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옹호한다고 해서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행위
등으로 처벌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노-자 관계에서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만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엄밀히 말한다면, 노-자관계와 관련하여 기업가층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 역시 노동자계급에 대항하는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행위인 바, 노-자관계에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행위를 처벌한다면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행위 역시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행위로서 당연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이와는 달리 후자의 행위가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면, 전자의 행위 역시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것이다.
-. ‘계급의식’이나 ‘계급적 각성’ 등의 용어는 노운협의
공식문건에서 노동자들 전체의 사회적-정치적 이익이 무엇인가를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노동자들 전체의 이익을 인식하고 그러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산업별 단결을 추구하고 전국적 노조조직을
만들거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고 정당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지니거나 계급적으로 각성하여
‘계급적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러한 용어 사용법은 사회과학에서도 대체로 인정되는 보편적인
용어사용법이다. 계급이라는 개념은 기업수준을 뛰어넘는
노동자들 전체의 이익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계급의식’이나 ‘계급적 각성’과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헌정질서를 위협하거나 용공이적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3) ‘(민주)변혁’, ‘변혁적 노동운동’과 같은 용어:
감정의뢰된 노운협의 공식문건 속에서는 ‘변혁지향적
노동운동’ 또는 ‘변혁적 노동운동’과 같은 용어가 나오고
있으며, 공식문건들의 내용을 검토해 볼 때 ‘(민주)변혁’의
추구를 자신의 이념적 지향성의 하나로서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 ‘변혁’ 내지 ‘민주변혁’이라는 개념은, 노운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재야운동권에서는 오늘날 한편으로는
개혁의 혜택이 노동자-기층민중에게 미치지 못하는 ‘보수적
개혁’이나 ‘불철저한 개혁’에 반대하는 개념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일거에 바꾸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관념상으로만 과격할 뿐인
‘혁명’에 반대하는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이 점에서
‘(민주)변혁’은 노동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일하는 대중
역시 개혁의 정당한 혜택을 입는 ‘보다 철저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입장, 그것도 한번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꾸준한 노력에 의해 그러한 개혁을 성취해 나가려는 정치적
입장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 따라서 ‘변혁의 추구’를 ‘혁명의 추구’와
동일시한다면, 그것은 변혁이라는 용어를 우리 사회에서
‘불철저한 개혁’ 만이 아니라, ‘혁명’에 대해서도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문맥을 고려치 않는, 그야말로 그
용어의 진정한 내용을 왜곡하는 아전인수격의 견해이다. 이와
관련하여 ‘노운협’이 추구하는 ‘(민주)변혁’의 내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게 될 것이다.
-. 우리는, 노동자들이 우리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회층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노동자의 입장에서
개혁을 요구한다면 당연히 ‘보다 철저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 설령 그 입장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지적을 전제로 하여, 이제부터는 노운협의
공식문건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려고 한다.
2.1. 노운협의 조직적 위상
노운협’은 [문건 1.1.]에 실린 규약의 제1조에서 자신의
조직적 위상을 노동단체들의 ‘협의회’로서 규정내리고
있다.([문건 1.1.], 15쪽). 그리고 조직의 위상을 ‘조직의
성격과 위상이 다른 노동운동단체들의 상설공투체’라고 밝히고
있다.([문건1.2], 27쪽)
-. 이 규약의 규정에 의거한다면, ‘노운협’은 개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단일 지도체계를 지닌 중앙집중적인 조직이
아니라, 자율성을 지닌 제단체들이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모인 노동단체들 간의 협의체이다. 이러한 협의체의 경우,
이적성 여부를 가리는 일차적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중앙의
협의기구라기보다는 소속 단체들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된다.
-. 이 점은 노운협이 ‘조직의 성격과 위상이 다른
노동운동단체들 간의 협의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1995년 2월 18일부의 [문건 1.10]에 실린 규약개정안에
보면 노운협이 ‘그간의 발전과정을 통해 협의체적 수준에서
연합적 수준으로까지 통일성이 높아져 왔다’([문건 1.10],
17쪽)는 언급이 나온다. 이 언급에 의하면, 노운협이 그간의
활동을 통해 소속 단체들 간의 견해의 차이 등을 좁히는 과정을
밟아 왔지만, 그 문건이 나온 시점인 1995년 2월에도 협의체를
연합체로 전환시키는 수준까지 발전한 것은 아니다.
2.2. 조직의 목적으로 내건 ‘자주, 민주, 통일, 노동해방’에
관하여
노운협은 규약 제2조에서 조직의 목적이 “노동운동의 발전을
도모하고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 민주, 통일, 노동해방을
실현하는 데에 있다”([문서 1.1.], 15쪽)고 밝히고 있다.
-. 먼저 유의해야 할 점은 ‘자주, 민주, 통일’이란
‘노운협’만의 지향목표가 아니라, 그간 스스로를
‘민족민주운동’이라고도 불리운 재야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제창해온, 그들의 열망과 염원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보편적인 구호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증거제시가 사실상
불필요하다.
-. 더구나 ‘민주’는 물론 ‘자주’와 ‘통일’ 역시 단지
재야 운동단체들 만이 아니라,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도 국정의
지표로서 주창해 온 이념들이다. (예를 들어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9월 11일 국회에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대해
언급하면서 “통일을 이루는 원칙은 어디까지나 민족자결의
정신에 따라 자주적으로, ... , 그리고 민족대단결을 도모하고,
민주적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8월 15일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면서 “통일은 우리 민족의 뜻에 따라, 우리 민족의
역량에 의해, 자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 이 점에서 노운협이 ‘자주, 민주, 통일’을 조직의
목적으로서 내세웠다는 사실만으로는 노운협을 이적단체로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노운협이 ‘자주, 민주,
통일’을 내세우면서 활동한 내용이나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과연 이적성을 지닌 것인지의 여부인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 ‘노동해방’이라는 구호 역시 그간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가장 많이 제창된 구호로서 노동자들도 이 사회에서 평등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을 표시하는 용어이다. 실제로 1987년
이후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제일 많이 제창된 구호를 든다면,
그것은 단연코 ‘노동해방’이라는 구호이다. 그런데
‘노동해방’이라는 구호는 단지 하나의 내용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기업수준에서 노동자들이 보다 인간답게 대접받는
것’으로부터 ‘자본주의 질서의 혁명적 전복’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내용들을 담을 수 있다. 이 점에서 ‘노동해방’을
주장했다고 해서 곧 바로 ‘사회주의’를 옹호했다고 볼 하등의
이유는 없다.
-. 사회주의의 내용 역시 매우 다기다양하다. 따라서 설령
‘노동해방’의 내용으로서 사회주의를 주장했다고 할지라도, -
‘사회주의’를 ‘북한식 사회주의’나 구 소련에서 성립한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한국의
냉전적-흑백논리적 사회주의관과는 달리 - 사회주의를
주장했다는 사실만으로써는 그 행위를 용공 이적행위로서 미리
단정할 수 없다. 실제로 예를 들어 유럽의 사민당들이 중심으로
조직된 사민당계열 정당들 간의 국제적 연대 조직의 명칭이
‘사회주의자 인터내셔널’(the Sociailist International)임이
상기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있는지의 여부 자체가 아니라, 어떤 사회주의를
주창하고 있는가이다.
2.3. ‘노운협’의 이념적 지향성과 활동
‘노운협’은 ‘자주, 민주, 통일, 노동해방’이라는 조직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규약 제3조에서는 (1)민주노조운동을
강화하는 사업, (2) 민중연대와 정치적 진출을 위한 사업,
(3)노동운동의 전국적 단일대오 형성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문건 1.1.], 15쪽)
-. 공식문건들을 검토해 보면, ‘노운협’은 규약에 근거하여
민주노조운동을 지원하고 노동운동의 전국적 단결 및 노동자들의
정치적 진출을 도모하거나 민중연대를 추구하는 것과 같은 매우
다양한 사업들을 그간 정력적으로 추진해온 것으로
보인다.(‘노운협’의 공식문건들에 수록되어 있는 ‘사업평가’
부분이나 ‘사업계획’ 부분을 참조)
-. 그런데 노운협은 자기 조직의 이념적 지향성을 주로 매
특정시기에 한국의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당면과제들’을
중심으로 제기해 왔고, 그 이상을 넘어서는 논의는 기본적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해 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노운협’의
이념적 지향성과 관련하여서는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제기하고
주장해 왔는지가 중요하지, 그 주장들을 기존의 이념적 틀에
억지로 꿰어맞추어 해석하는 것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서 노운협의 이념적 지향성과
활동 내용을 파악해 보면, 그 이념적 지향성과 활동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검토될 수 있다.
2.3.1. ‘노동해방’의 추구
-. 앞에서 본인은 87년이후 그간 한국 노동운동의 보편적인
구호로서 등장한 ‘노동해방’이란 매우 다양한 내용들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전에는 이적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그런데 ‘노운협’은 노동운동단체이기 때문에 그 사업의
내용은 주로 ‘노동해방’의 추구와 관련되는 사업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노운협이 그간 주로 행해온 활동내용들은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사업, 민주노조 운동을 지원하거나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적 발전을 지원하는 사업, 노동운동 탄압에 대항하는
사업, 노동악법을 개폐하기 위한 사업, 노동운동을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 노동운동의 정치적
진출을 이루기 위한 사업, 민주노조운동 속에서 성장한
선진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통일단결을 이루기 위한 사업 등이다.
-. 이러한 사업들은 노동자들의 사회적-정치적 권익의 신장
등을 위해 조직된 ‘노운협’과 같은 노동운동단체라면 당연히
추진해야 할 사업들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업들을 추진하는 중에
‘3자개입 금지’를 규정한 노동관계법 등에 저촉되는 행위를
행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활동 자체를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는 활동이나 용공이적의 행위로서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
-. 공식문건에서 노동운동이 (사업장별 노동자의 이해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별 노조중심의 노조운동’ 내지 ‘전투적
민주노조운동’으로부터 (사업장을 뛰어넘는 노동장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계급적 노동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특히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1월 3,4일에
개최된 노운협 제4기 대의원대회 준비위원회 수련회의 자료집에
수록된 “WTO 출범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진로”라는 글이라고
판단된다.( [문건 1.9.], 5쪽 이하 참조; 아울러 1995년 2월
18일 부의 [문건 1.10]에 실린 ‘대회사’ 및 30쪽 참조할 것)
여기서 ‘계급적 노동운동’과 같은 용어는, 노동자들에겐
자신이 소속한 기업적 수준의 이익을 넘어서는 노동자 전체의
이익이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운동이란 그러한 기업적 수준의
운동만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기업적 수준을 넘어서는 노동자들
전체의 이익을 옹호하는 노조운동이나 정치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위에서 밝혔다.
-. 노동자들이 노동자 전체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산별노조나 전국적 노조조직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이룩하여(이에 대한 노운협의 방침과 관련되는 문건으로는 [문건
1.9]에 실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과 과제, 그리고
노운협의 조직적 혁신” 참조) 정당과 같은 정치조직을 건설하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노동운동 발전의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발전추세이다. 이
점에서 그러한 ‘계급적 노동운동’을 추구하는 행위는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거나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 실제로 세계 노동운동사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예를 들어 유럽의 노동운동이 운동의
성장과정에서 그러한 형태의 운동을 발전시켜 왔다는 점, 그러한
운동이 초기에는 국가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바로 그러한 ‘계급적 노동운동’의 존재를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국가가 노-자간의 ‘계급타협’ 등을
유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대 유럽의 국가는 ‘계급타협’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
전제로서 ‘계급적 노동운동’의 실체를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계급적 노동운동’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만이 사실은 국가가 산업평화를 가능케 하고
노사협력체계를 출현시킬 ‘계급타협’을 유도할 수 있는 전제가
된다는 점을 가리킨다. 또한 우리는 그러한 계급적 노동운동이
존재해야만 자본만이 특권을 누리고 심각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구조를 개선해 우리 사회를 진정으로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 공식문건에서 ‘노동해방’의 의미를 재규정해보려는 시도
역시 1995년 1월 3-4일 날짜로 된 [문건 1.9.]에서 나타나고
있다. 동 문건에 실린 “WTO 출범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진로”에서 글쓴 이는 그간 한국의 노동운동은 ‘반자본
지향으로서의 노동해방’을 주로 ‘개별적 노사관계와
개별사용자와의 집단적 관계’의 차원에서 제기해 왔지만,
이제는 그 내용을 풍부히하여 ‘자본주의가 파생시키는 불평등
문제, 실업의 문제, 환경의 문제, 퇴폐적 문화의 문제, 부패한
정치권력의 문제’는 물론 ‘독점적이고 천민적인 소유의 문제
및 부르주아정권의 문제’까지 포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건 1.9.], 5쪽 참조) 이러한 파악은 노동운동이 이제는
노동자들이 처한 보다 구조적인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 노운협이 파악하는 바의 그러한 의미의 ‘반자본
노동해방’이란 결코 자본주의의 타도 등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노운협이 사용하는 바의 ‘반자본
노동해방’이란, 자본주의 그 자체의 타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제반 ‘구조적 문제들’을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위에서 인용한
문건 속에서 노운협은 그러한 ‘반자본 노동해방’을
‘대내적으로는 독점재벌의 지배력을 해체시키는 것을 지향하는
것’, 즉 ‘독점자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통제’를 그 내용으로
하는, ‘반보수-수구의 민주적-진보적 대개혁, 즉 진보적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문건 1.9.], 5쪽
참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동문건이 ‘독점재벌의 지배력의
해체’(내지 독점재벌 해체)에 대해 말하고 있지, 독점자본 그
자체의 해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따라서
독점자본에 대한 노동자적 통제를 확보하여 ‘진보적 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하자는 것이지, 자본주의 그 자체를 타도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보적 자본주의’ 역시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본주의의 타도 등과는 상관없다. 이 점에서
노운협이 주장하는 바의 ‘반자본 노동해방’의 내용이란
‘독점재벌 중심의 천민적 자본주의’를 노동자-민중의 권익이
보장되고 독점자본운동에 대한 노동자적-사회적 통제가 구현되는
‘진보적 자본주의’로 대체하자는 것인 바, 그러한 주장은 우리
사회의 헌정질서를 결코 위태롭게 하는 것과는 물론 자본주의를
타도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과도 무관하다.
-. 독점재벌의 해체 등은 그간 사실 정부도 그 필요성을
인정해 주식의 분산과 상속세의 강화 등을 통해 독점재벌을
해체시키려는 일정한 시도를 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간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리사회가 당면한 핵심적인 경제개혁의 내용으로
독점재벌의 해제를 제기해 왔다. 이 점에서 노운협이 그것을
주장했다고 해서 문제삼을 근거가 없다.
-. 다른 한편, 감정의뢰된 문건은 아니지만, 노운협관계자가
쓴 다른 글을 보면, ‘소련식 사회주의’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운동] 91년
9, 10월호에 노운협 정책실 전문위원 김익진의 명의로 쓴
‘페레스트로이카의 실패와 소련사회주의의 미래’라는 글에서는
소련식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 ‘소수 엘리트들이 전위와 지도를
자임함으로써 정치엘리트와 관료의 특권화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노운협의 관계자들이
현실사회주의체제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임을 나타내는 것인 바,
그 글은 노운협이 주장하는 ‘반자본 노동해방’이 이적행위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2.3.2. 민중연대의 추구:
노운협의 공식문건들을 살펴보면, 노운협이 민중연대 사업을
대단히 중요한 사업 과제로서 설정하고 활동해 왔다는 점이
발견된다. 이와 관련하여 노운협은 농민, 빈민, 학생 단체 등과
같은 타 단체들과의 연대를 강화해 ‘민중연대전선’을
형성하고, 조세, 물가, 토지, 주택 등 민생, 민중 전체의 삶과
관계되는 사항들을 중심으로 민중연대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문건 1.1.], 10쪽; [문건 1.2.], 8, 29족 등
참조) 그리고 이를 위해 노운협은 전민련의 강화와
국민연합에로의 주도적 참여, 민중연대회의의 발전 도모와 같은
사업을, 그리고 전국연합 결성 이후에는 전국연합의 발전 도모와
같은 사업을 추진해야 하고, 민족민주운동 진영 내부의
패배주의적-개량주의적 조류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문건 1.4., 6쪽 참조)., 민생-민권의 확보를 위한 각종
민중대회에 적극 참여하는 활동을 행해 온 것으로 보인다.
-. 노동자들의 삶이 다른 기층민중의 삶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노동자를 비롯한 기층민중
전체가 우리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때에만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복지사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단체인
노운협이 그러한 민중연대사업을 적극 전개해 온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노운협이 민중연대사업을 중시하는 것은
그러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감으로써만 노동자들이 단지
자기 자신의 이익 만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주의적 세력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민적 세력으로
성장-발전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노운협과 같은 노동운동단체들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의식으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 노운협이 민족민주운동 내부의 패배주의적-개량주의적
조류를 비판하는 까닭은 그러한 조류가 보다 나은 사회적 삶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의 노력에 찬 물을 끼얹고
노운협이 비판하는 바의 ‘불철저한 개혁’에 안주하려는
경향성을 만들어 낸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노동자-기층민중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판단하는 노운협의 입장에서 그러한 조류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바, 그것이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거나 적을
이롭게 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2.3.3. 민주변혁의 추구:
-. 앞에서 본인은 ‘(민주)변혁’이 노운협이 추구하는 이념적
지향성의 하나로서 판단되며, 이때 ‘(민주)변혁’이란
‘불철저한 개혁’에 반대하지만, 사회적 관계를 일거에
뒤바꾸려는‘혁명’에 반대하면서 노동자-기층민중에게도
실질적인 개혁의 혜택이 돌아가는 ‘보다 철저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옹호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것이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나 용공이적 행위로서 간주될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
-. 민주변혁의 문제와 관련하여, 노운협은 김영삼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에는 노동악법의 개폐나 국가보안법의 철페를 위한
운동과 더불어 주로 (이전의 군부정권을 연장한 정권으로
파악한) 노태우정권에 반대하는 반독재민주화 운동과
‘민중주도의 민중연합 구축에 기초한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을 적극 전개해 왔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그러한 운동은
전두환, 노태우 등이 군사반란과 내란의 죄를 지은 자로서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면 그러한 법적
심판을 가능케 한 밑거름이 된 운동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에서 노운협의 그러한 운동은 우리 사회에
민주헌정질서를 회복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운동으로서
높게 평가되어야지, 그 운동을 민주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일 등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 반면, 문민정부인 김영삼정부가 들어 선 이후부터 노운협은
김영삼정부의 개혁이 불철저한 것으로 보고 정권퇴진 운동이
아니라, 노동자의 입장에 선 ‘보다 철저한 민주대개혁’의
실현을 목료로 삼는 활동을 전개해 왔다고 판단된다. 노운협이
추구한 그러한 민주대개혁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실리기 시작한
공식문건은 1993년 3월 15일부의 [문건 1.4]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금융실명제 즉각 실시, 독점재벌 규제 강화 및 재벌 해체,
토지공개념의 확대 및 토지개혁, 중소기업 육성, 쌀 개방
반대
2. 부패구조의 청산
3. 임금억제, 노동통제를 강화하는 신노동정책-총액임금제
반대
4. 양심수 석방, 사면-복권의 전면적 실시, 국가보안법 등 제반
반민주악법 철폐, 안기부-기무사의 해체
5. 자본 전횡에 맞서고 노동자계급의 권익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진보적 요구들 -- 예컨데 실업보험제 즉각 실시,
완전고용, 경영참가 등 - 의 제기 등 ([문건 1.4, 13쪽 참조)
그리고 이후에 발표된 다른 공식문건들 속에서도 위와 유사한
내용을 지닌 민주대개혁을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문건 1.10]에 실린
“95년 민주노조운동의 과제와 방향”, 13쪽, 17쪽 등 참조)
-. 노운협이 주장하는 민주대개혁의 내용 중에는 어디에도
우리 사회의 헌정질서를 허물어뜨려 자본주의를 타도하자는 것과
같은 내용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민주대개혁의
내용이 김영삼정부가 추진한 개혁의 그것에 대해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란 단지 노운협이 노동자-기층민중의 직접적인 이해와
관계되는 사항을 중심으로 한 보다 철저한 진보적 민주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을 지지할 자유만이 아니라,
정부의 개혁을 비판하고 정부의 개혁을 넘어서는 개혁을 요구할
자유와 권리도 당연히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 우리가
노운협의 요구를 찬성할 것인지의 여부를 떠나 - 노운협 역시
자신의 민주대개혁 요구를 주장할 자유와 권리를 당연히 지니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 나아가 노운협이 주장하는 민주대개혁의 내용을 보면,
‘노동해방’과 ‘민중연대’를 추구하면서 내세우고 있는
내용들이 그들이 주장하는 민주대개혁의 요구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노운협이 주창하는 ‘노동해방’과
‘민중연대’가 그러한 민주대개혁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실현 등과 무관함을 아울러 가리키는
것이다. 한/노/정/연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