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컬럼 > 목록보기 > 글읽기

 
현중노조의 제명과 금속산업연맹의 오류

현장에서 미래를  제99호
안윤길

열․린․마․당

편집자 주 : <박일수 열사투쟁>이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러나 투쟁의 과정에서 반노동자적 행위로 노동운동진영에 커다란 실망과 충격을 주었던 현중노조에 대한 징계문제는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안윤길동지가 두개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첫 번째 글은 금속연맹의 현중노조제명결정에 관한 글입니다. 두 번째 글은 현중노조가 어용세력에게 장악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글은 총선전에 쓰여진 글이라 시기가 약간 지났지만 현장의 문제의식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의미있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두 글을 연속하여 게재합니다.

현중노조의 제명과 금속산업연맹의 오류


안윤길 / 현대중공업 노동자


들어가며…

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17년이 흐른 지금, 노동자의 삶은 철저히 망가져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다. 신 경영전략의 일환인 무한경쟁체제 속에서 현대중공업노조는 87년부터 내리 7년 동안 파업을 했다. 그러나 자본의 총체적인 탄압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현중노조는 결국 95년에는 무쟁의 원년을 기록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현중자본과 노조의 작태

무쟁의 10년에 이른 오늘, 현장조직은 무너지고 노조는 어용에게 빼앗겼다. 자본의 분할정책으로 현중의 하청노동자는 150여개 업체에 1만 5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정규직은 이렇게 망가졌지만 그러나 한편으론 비정규직 운동이 새롭게 일어나는 분기점에 서 있기도 하다.
이런 시기에 지난 2월 14일, 사내하청노동자인 박일수동지가 분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위에서 밝혔듯이 현중의 현장이 완전히 죽은 상태에서 열사투쟁은 투쟁자체가 최악의 조건이긴 했다. 그랬기에 동지의 분신현장조차도 지켜내지 못했고 동지의 시신은 울산 북구 변두리 현대병원에다 내팽개쳐지는 치욕을 당해야했다.
우리의 힘이 너무도 미약했기에 이런 수모까지 당했겠지만, 명색이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현중노조는 열사분신대책위에 합류했다가 하루 만에 탈퇴했다. 또 현대병원에서 현중 노조간부가 유가족을 납치하려는 사건이 있었다. 뿐만 아니다. 죽음을 결심한 한 인간이 술 먹은 게 죄인가! 열사가 만취된 상태에서 분신했다는 국과수결과가 나왔다는 따위의 내용을 대문짝만하게 홍보물로 내는 등 실로 자본가나 할일을 서슴없이 행하는 반노동자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하청노조를 비롯한 지역 활동가들과 분신대책위에서는 이러한 현중노조의 작태에 크게 반발하였고 상급단체인 금속산업연맹에서는 현중노조 제명안을 중앙위원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그러자 열사가 누워있는 영안실에 현중노조 간부들이 대거 몰려와 난동을 부리는 사태가 있었고, 어쨌든 이제 6월에 있을 금속산업연맹 대의원대회에서 현중노조 제명안이 상정되어 처리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연맹의 오류

판단하건대 열사투쟁에서 저지른 현중노조의 행태를 보면 당연히 제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론에서, 또한 현중노동자들(어용과 조합원 포함)에게 얼마만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 따라서 이 문제를 풀자면 본질을 잘들여다보고 거기서 해답을 찾아야한다는 생각이다.
지난 2002년, 13대 김덕규집행부때 ‘강호동비리사건’을 뒤돌아보자. 물론 당시 김덕규집행부는 윤리와 도덕적인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다. 그러나 그때 연맹은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김덕규집행부의 사퇴 이후 보궐선거로 뒤를 이은 14대 최윤석 집행부 때 해고자를 청산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 때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박일수열사 투쟁관련해서는 현중노조 제명안이 이미 표면화되었고 대의원대회에서 처리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 이 ‘제명안’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요컨대 현중노조 제명안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연맹의 오류가 있었다는 말이다.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2년 ‘강호동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비록 김덕규집행부가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위노조 차원의 해결방법이었다. 연맹은 상급단체로서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공장위주의 한국노동운동 형편상, 가맹비에만 의존하는 상급단체가 대공장노조를 제명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징계라는 게 꼭 제명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경고, 견책, 정권 등 여러 종류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쨌든 연맹은 운동의 원칙에 입각해서라도 상급단체로서 당시에 비리사건을 비판하고 역사적으로 규정하고 어떤 형태로든 제재를 했어야했다.
그랬다면 그 뒤를 이은 최윤석 집행부가 조합원총회에 상정한 ‘해고자청산안’에 대하여 연맹은 떳떳하게 징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에도 사람들 입에 회자되기를, 당시에 해고자청산은 조합원총회에서 가결되었기에 해고자청산 거부투쟁이 설득력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조합원총회 이전에 ‘해고자청산 안’을 상정한 행위만 해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반노동자적인 행위이다. 이 행위를 연맹은 떳떳하게 징계를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렇듯 ‘강호동 비리사건’ 과 ‘해고자청산 안’을 연맹차원에서 제재를 했었더라면 오늘에 와서 박일수열사투쟁 관련 ‘현중노조제명안’에 대해 당당했을 것이고 어용세력들에게 반박할 빌미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징계를 못했기에 오늘날 현중노조 제명을 놓고 어용세력에게 빌미도 주면서 당당하지 못한 것이다. 이미 첫 번째, 두 번째 단추를 잘못 끼워놓고 세 번째 단추를 바로 끼우려하니 그 모양새가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현중노조의 오류.

너무나 부끄러운 과거라 되돌아보기 싫지만, 강호동비리사건이 터지던 그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고 통탄스럽다.
비리사건이 터진 그 날 저녁, ‘전노회’(전진하는 노동자회) 사무실에서 비상회의가 있었다. 거기서 이런저런 많은 말들이 있었다. ‘오랜 무쟁의에서 현장조직이 그만큼 관료화 되고 썩었기에 이런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으니 철저히 반성해야한다’는 얘기도 있었고, 한편에선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날벼락 맞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데 해결방안을 두고는 또 두 편으로 갈렸다. 한편은 일단 비리사건에 대한 내용을 다음날 홍보물로 내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쪽과 ‘내일 당장 집행부 사퇴 표명을 하라는 쪽이었는데 결국,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쪽이 다수결로 채택되었다. 그 결과는, 다음날 대의원들이 조합사무실로 대거 몰려와 난동을 부리는 등 위원장이 볼모로 잡히는 수모를 겪었고 결국 어용들의 강요에 의해 사퇴를 하게 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하고 말았던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노동자의 전투적 실천적인 저항의식은 오직 기계를 멈추는 파업 속에서만 단련된다고. 이것을 역으로 말한다면, 파업을 하지 못하는 노조는 비 전투적이고 관료화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성립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통탄할 일이다. 오랜 무쟁의에서 그동안 나태했던 현중노조는, 운동판에서 가장 부끄럽고 치명적인 비리사건이 터졌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사퇴할 생각보다 집행권에 미련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곧 어용세력에게 기선을 빼앗기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 민주파는 모든 투쟁에서 주눅이 들어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었던 것이다.
만약 그 때 재빠르게 집행부사퇴를 표명하고 연맹에서도 제재를 하는 등 현명하게 수습을 했더라면 적어도 어려움은 있을망정 오늘날까지 모든 투쟁에서 자본과 어용세력에게 옴짝(?)못하는 지금의 형국은 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랬더라면 그 이후에 최윤석 집행부가 ‘해고자 청산안’을 조합원총회에 상정했을 때 바로 연맹에서 징계를 표명하고 현중의 민주제세력들이 힘있게 투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해고자 청산안’이 조합원총회에서 쉽게 가결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늘 겪어왔듯이 어용은 타도대상이지 협상대상이 아니다. 위에서 열거했듯이 우리의 운동이 원칙을 지키며 제대로 투쟁했더라면, 오늘날 박일수열사투쟁 관련해서 그렇게 반대했던 현중노조가 동참한 가운데 초라한 협상성과물을 챙겨야하는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맺으면서

우리는 늘 말한다. 남을 비판하기는 쉽되 배려하기는 어렵다고. 우리의 운동은 스스로는 잘하는지 못하는지 들여다보지 않고 그저 남을 비판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 그것이 오늘날 참담한 운동판의 결과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원칙에 의한 실천이 바로 섰을 때 거기에 따른 융통성과 유연함이 빛을 발하지 않겠는가. 오늘의 운동판에 어려움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기에 지금에 와서 서로에게 책임론만 펼칠 일은 아니지만, 지난날의 오류는 철저히 비판하여야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난날의 오류로 현중노조 제명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연맹도 현중의 현장조직 민주세력들도 오늘날 많은 어려움을 싸안고 있는 것이다. 금속산업연맹은 현중노조 제명을 다루기에 앞서 상급단체로서 지난날의 오류를 겸허히 반성하고 그 토대위에서 제명 처리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에게는 너그럽고 남에겐 엄격하지 않았나 싶다. 나에겐 엄격하고 남들에겐 너그러워야할 정신자세는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에도 필요할 것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책임지는 자세가 되어있을 때 우리가 나아갈 미래가 보이고 희망이 보이지 않겠는가.한/노/정/연

2004-05-27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