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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세력화 이제 시작인가? 파탄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10호
김종배

열 린 마 당




정치세력화 이제 시작인가? 파탄인가?


김 종 배 (회원, 전노협 백서발간위)


1. 새로운 국면, 새로운 시작

많은 활동가들은 선거를 불신한다. 결코 선거를 통해서는 승리할 수 없고, 설사 승리하더라도 그 승리는 쿠데타나 외세의 개입에 의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은 투표제도가 만들어진 고대에서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적중해 왔다. 미국에서는 쿠데타의 위협이 없는 반면, 노동자 계급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남미에서는 칠레의 아옌데정권이 미국과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고, 아주 최근에는 파나마 원주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안토니오 노리에가가 수에즈 운하의 재계약을 거부한 죄로 미국의 포로가 되었다. 선거는 국가권력 행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김세균, “선거와 노동자․민중정치”,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7호. 33-35쪽 참조.
이외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과정은 자본주의의 지배력을 부분적으로 이완시킴으로써 보다 확대된 언론, 집회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는 점, 제도권이 지니는 다양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제도에 대한 부분적 개입이 가능하다는 점 등의 이유로 노동자 계급의 적극적인 모색이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는 이를 사회변혁의 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나, 노동자들의 현상태를 개선하려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나 꽤나 폭넓은 교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괄목할만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도, 그리고 그 선거에 대한 평가에서도 나타났던 “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 노동자 바른 투표하기 운동을 전개” 국민회의 전국노동자 선대본, 「국민회의 전국노동자 선거대책본부 활동평가서」, 1993년 3월, 3쪽
하는 ‘민주대연합론’의 태도변화와 쇠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1987년 이래 독자세력화를 주장해온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국면이 계속된 패배 끝에 예기치 않은 작은 승리로 기록될 것이고, 반면에 군부통제 아래서 치루어진 2․12총선에서의 승리와 그에 따른 ‘민주제세력의 연합에 의한 정권교체’의 희망은 약기운을 다한 것이다.
1992년 대통령선거로부터 불과 4년이 경과되었지만, 그사이 결코 유리하지 않았던 정세를 뚫고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가 전면화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첫째, 그 4년간 노동조합운동이 민주노총이라는 단일한 조직체로 통합, 발전하여, 명실상부한 상급조직으로 자리매김되면서 이 사회의 변화와 관련해 노동자 계급이 그 어떤 집단보다도 주목받는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그간의 ‘민주대연합’의 성과가 전무함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운동가들이 집권당을 비롯한 제도권 정당에 편입함으로써 , ‘민주대연합’보다는 소속정당 중심의 운동으로 전환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민주대연합의 대상이 되었던 제도권 야당의 분열과 야합도 민주대연합에 대한 명분을 약화시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민중의 독자세력화’를 주장해 온 세력의 분열, 지배세력으로의 투항은 진보정당운동의 고립화를 자초함으로써, 결국 대안세력으로서 노동자 계급이 관심의 초점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대통령 선거로부터 불과 4년이 경과된 1996년 4월 11일의 국회의원총선거는 ‘민주대연합론’이냐 ‘독자후보론’이냐는 논쟁보다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교두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국면의 조성과 그 속에서 노동자 계급이 어떻게 정치세력화할 것인가하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2. 상식적 평가를 우려한다.

노동운동 내부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동의가 폭넓게 이루어진 시점에 이루어진 노동자후보 전술은 과연 정당했는가? 성동(을)구에 출마한 김명희 후보의 경우 출마가 공식화되기 전에 노동운동 내부의 통일된 견해를 모아내지 못한다면 동일한 입장을 담아낼 수 있는 ‘정치활동 실천가조직’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 김명희, “민주노총 시대의 노동자 역할”,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7호, 16쪽 참조
할 수밖에 없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히기도 했지만, 지하철해복투의 조직적 추천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민주노총 지원후보로서 노동운동 내부의 동의를 통해 선거에 참여하면서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득표 결과는 유효득표율의 4.4%에 불과했고, 노동운동 내부의 분열이나, 동의없이 참여했던 그 이전 시기의 득표율에도 못미치는 저조한 결과로 나타났다. 특히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 야당의 분열로 새로운 정치질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나온 결과로 본다면, 이는 기대치를 훨씬 못미치는 결과임에 분명하다.
이제 이러한 결과를 보다 냉정하게 분석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1987년 대선에서의 독자후보전술, 1991년의 총선과 지자체선거에서의 독자후보전술, 1992년의 대선에서의 독자후보전술, 그리고 1995년의 지자체선거와 1996년 총선에서 독자후보 전술은 아주 조금의 진전도 없었다는 점을 가슴 아프겠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매번 되풀이 되어온 “졌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 동안의 선거전술에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매장시킬 때만이 보다 객관적인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전반적인 준비의 부족이 낳은 결과다”라는 평가이다. 즉, 참여를 결정한 시기나 후보결정이 늦어졌다거나, 선거본부 구성이 늦어졌다는 식의 평가 잣대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더 빨리 후보를 결정하고, 선거본부를 결성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열악한 조직, 열악한 자금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다”는 평가이다. 이러한 평가는 선거과정의 동고동락을 자위하는 평가에 불과하며, 명백한 실패를 자인하지 않음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셋째, “후보자 인지도가 떨어졌다. 다른 인지도 높은 후보자였다면…?” 경상도와 전라도에 꽂은 말뚝도 의원이 된다는 참담한 지역감정으로의 설명이 아니라, 무엇을 매개로 했던 확고한 지지기반이 없는 한, 실패하고야 만다는 점이 간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철 의원이나, 박계동 의원의 탈락은 명분과 인지도를 넘어 지지기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극적 사건인 것이다.
넷째, “노동자후보 전술을 통해 노동자후보의 필요성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키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기초를 놓았다”는 평가이다. 이러한 평가야말로 지금까지 되풀이된 독자후보전술의 실패를 은폐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적어도 이상의 평가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간 독자후보 전술을 통해 빠짐없이 평가되었던 이상의 내용이 상식수준의 자기위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참담한 실패로 규정짓지 않는다면, 되풀이 되는 땜질로 부실해진 건축물에 의해 우리의 운동이 질곡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3.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제

노동자 후보 한 명이 당선되어 국회에 나간다면 얼마나 할 일이 많을까? 또 노동자들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을까?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가 한 노동자를 국회로 보내면서 갖는 상징적 승리를 별개로 한다면, 그가 다음 임기까지 제도정당에 의해 포섭되지 않는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극히 한정된다. 이 한정된 일 속에는 물론 연행된 노동자들을 면회할 때, 노동탄압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요구할 때, 노동악법에 대한 개정을 청원할 때의 일들이 포함된다. 때로는 대정부 질문을 통해 부패한 정치권력이나,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는 자본가를 보다 강력하게 질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일들도 제도정당내의 우호적인 국회의원들에 비해 별로 수월해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노동자의 정치참여란 당선된 후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상시적인 힘과 조직, 그리고 일상적으로 지지, 지원하는 세력이 없는 한 공염불에 불과하다. 민주노총과 산업별 조직의 건설은 적어도 세력화된 노동자 계급 조직을 일상적으로 지지,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원과 지지를 항시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조직, 즉, ‘노동자 당’ 없는 노동자 후보는 당선도, 그리고 당선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 당’이 노동자후보의 출마와 그 출마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세력들을 조직함으로써 태동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계급을 전면으로 한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에 반한다. 설사 그러한 시도가 성공하여 ‘노동자 당’이 출현한다 할지라도, 부르조아 정당처럼 파벌정치의 재판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나는 ‘노동자 당’ 건설을 위한 조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4.11총선에서 노동자 후보들의 참패는 지금까지 있어온 독자적 후보=정치세력화라는 정식의 파탄을 객관적으로 확인한 것이지, 역시 아직도 노동자들이 정치에 참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증명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 당’을 건설하여 본격적으로 정치에 진출하면, 필요조건이 만족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어쩌면 ‘노동자 당’으로 참여해도 민주당은 커녕, 무당파연합만큼의 득표에도 실패할 것이라는 믿음이 더 클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으로는 진보정치연합이나 민정연(혹은 그 이후의 분리된 몇 개의 조직을 포함해서)과 같은 조직들이 ‘노동자 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건설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노동자 당’의 추진주체도 그러한 곳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러한 믿음에는 분리되었던 독자후보, 독자정치세력화등이 모두 하나로 합쳐진다고 해도, 나아가 진보적 연구진영까지 참여한다 해도 조금의 변함도 없을 것이다.
. 적어도 건설되어야 할 ‘노동자 당’이 운동권 내부의 자기만족을 위해 건설되지 않는 한, 과거운동의 한 유산인 정파조직들의 재결합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동맹세력을 끌어들여 그 조직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자본가 정당에 대항하고, 전 지역을 아우르는 ‘노동자 당’이 아닌 한 실패는 연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점에서, 정당에 의한 노동조합운동의 지원과 역량의 재수급이라는 정당운동의 고전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이념에 기초한 정당경험이 전무한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 역으로써 노동조합운동이 정당건설운동에 개입하는 방식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87년 이후 전노협과 업종회의를 거치면서 적어도 50만 노동자들을 단일한 조직으로 포괄해낸 민주노총만이 다양한 동맹세력을 좌우로 배치하고, 산하 조직을 지역기반으로 한 ‘노동자 당’ 건설의 주도력을 이의없이 집행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 내의 정치위원회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이라는 한정된 역할을 넘어서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 더나아가 ‘노동자 당’의 건설이라는 과제를 수행할 만한 무게와 참여 산하 산별, 업종조직의 정치위원회의 참여를 넘어,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에 동의하는 세력의 참여를 조직하고, 분야별 자문단, 연구단등을 폭넓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를 조직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와 민중의 중심세력으로 자신을 위치지울 수 있을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 민주노총의 조직강화에 여타 세력이 복무할 수 있는 전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4.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가 파탄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기 위해서는 ‘정치세력화=노동자후보를 통한 선거참여’라는 공식은 단연코 배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정치참여에 대한 발상도 전환되어야 한다. 정치참여와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는 동전의 양면이지만 그것이 다시 노동자 후보를 통한 선거참여로 단순화되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만 한다.
자본가계급에 의해 주도되고, 노동자들이 참여할 여지가 없는 정치체계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성공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달걀로 바위치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출발은 바로 자본가 계급에 의해 주도되는 선거판에 노동자 계급이 집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체제를 확보해 내는 투쟁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미 현재의 정치체제, 즉, 보스중심의 독선적 정당운영, 갈수록 악화되는 지역적 투표성향은 점차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이는 지배세력조차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한 지배세력의 정당성 확보라는 부르조아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심각한 파멸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국민당의 내각제 개헌 주장, 국민회의의 이원집정부제 구상등은 바로 이러한 위협에 직면해 자신들이 집권하기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정치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소선구제도는 선거구내에서 단 한명의 후보자를 다수결로 선출함에 따라 때에 따라서는 단지 10%의 득표만으로도 당선될 수 있는가 하면, 49%의 득표로도 탈락할 수 있다는 점외에도, 소위 지역구 활동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불필요한 정열의 낭비 “상가에서 설거지를 돕고, 시장바닥에 엎드려 표를 구걸하는 것은 약과다. 후보자의 부인이 목욕탕에서 때를 밀었다는 후일담까지 들었다“ 일요신문, 최일남 일요칼럼에서.
와 공약의 남발에 따른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 포기, 그리고 지역감정, 소지역감정의 조장, 학연, 혈연의 난무 등 이러한 현실 속에서 결과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정치진출은 가로막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노동자 계급이 정치에 참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 개입이 가능한 제도로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정치참여의 시작으로 배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입가능한 정치제도의 한 예로서 현행투표제를 ‘정당투표제’ 정당투표제의 경우 각 정당은 국회의원 정족수 만큼의 후보들을 순번을 매겨 제출하고, 그 후보자들 전체에 대한 투표를 실시한다. 이러한 투표형태는 적어도 소선거구제가 같는 단점을 보완하고, 나아가 이념적(그 당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후보자들의 면모를 통해 드러남으로)이고 계급적인 투표가 가능해 진다. 물론 여전히 지역감정의 문제는 남지만, 적어도 산하 노동자계급에 대한 투표행태를 강제하고, 투표결과를 집중할 수 있으며, 나아가 정치자금이나 지구당중심의 선거제도를 와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로 개정하는 투쟁,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법에 대한 철폐투쟁 등은 현실 정치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즉각적인 정치활동의 시작이며, 자신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하나의 전제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시작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한 정치위원회를 활성화시키고, 이 정치위원회에서는 노동자들의 정치개입이 가능한 제도개선을 공개적이고 지속적으로 요구, 투쟁해 가며, 마치 내각제를 당의 주요 정치형태로 주장하면서 후보를 내세우듯이, 그 이전의 부르조아 정당과 완전히 구분되는 정치제도를 전면에 내거는 ‘노동자 당’으로서 선거와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5. 글을 맺으며

아무리 작은 패배도 어느 정도의 사기저하, 절망, 현상태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동의를 낳는다. 크리스 하먼, “오늘날의 노동자계급”, 갈무리, 1994년
지금 우리는 계속되는 패배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패배가 주는 중압감과 절망, 현상태에 대한 포기와 외면에 동요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 새로운 희망이 있다면,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가 파탄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현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속에는 건설 과정에서 가졌던 다양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실체로 민주노총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합법화 역시 시간문제로 다가와 있다. 다양한 정치조직들의 정치적 진출을 위한 수많은 시도들이 완전히 실패한 지금, 과거 전노협과는 달리 산업별 조직들의 명실상부한 중앙조직으로, 그리고 전체 민중운동의 구심으로 활동해 갈 수 있는 여건을 민주노총은 갖추고 있다. 그리고 또한 그만한 지위와 덩치에 걸맞는 활동을 요구받고 있다. 여전히 축소되는 전체 노동자들의 조직력을 어떻게 확대해 낼 수 있는지, 또한 어떻게 조직노동자들의 다수를 획득해 낼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자본의 경영합리화와 노동시장의 분단화에 맞서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인지와 더불어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이 걸머져야 할 가장 무거운 짐이며, 민주노총의 미래와 성공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그리고 1년 반 뒤의 대통령 선거와 16대 총선에서 ‘노동자 당’으로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참여를 위한 세밀한 프로그램에 근거한 운동, 적어도 노동자 계급의 참여가 가능한 형태로 선거제도와 투표제도를 개정하는 투쟁은 지난 십년간의 정치세력화의 실패를 반성으로 즉각 착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한/노/정/연

1996-04-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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