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장은
제발 지키는 약속을 해라!
- 전국타워크레인 기사 노동조합 최동주, 이기석 동지 인터뷰 -
최동주 / 전국타워크레인 기사
노동조합 비대위위원장
이기석 / 전국타워크레인 기사
노동조합 조직국장
박혜림 / 연구원
오늘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가까운 공원에라도
가야할 이 시간에 70미터, 100미터 높이의 타워에 고공농성에
돌입하는 저희 타워기사 노동자들의 심정은 분노를 넘어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어린이 날이고, 대통령
선거일이고, 팽팽 돌아가는 현장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저희
타워기사 노동자들의 의지는 진정 아빠다운 아빠가 되고 싶다는,
엄마다운 엄마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타워노조 고공농성 돌입 선언문 中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건설산업연맹 소속
전국타워크레인기사노동조합은 2000년 8월 6일,
전국타워크레인기사노동조합 발기인 총회를 거쳐 같은 해 8월
8일 설립되었다. 전국 타워크레인기사는 3,000여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1,164명(2004. 01. 현재)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상태이다.
‘하늘로 출근하는 사람들’이라 불리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건설자재이송에 필요한 타워크레인을 조종하는 사람들로
70~100미터 높이의 0.3평 공간에서 일을 한다. 화장실도 맘 편히
갈 수 없고, 다리 한 번 마음 놓고 펼 수 없는 공간이 그들의
작업장인 것이다. 대형 사고의 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어
한시도 타워에서 시선을 뗄 수 없다는 그들에게, 그러한
작업환경보다 ‘고용 불안정’이라는 상황이 더 힘들다고
한다.
정부와 민간연구기관은 금년에 건설경기가 약 23.55% 하락하고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침체의 불경기를 겪게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전망과 더불어, 타워기사들의 90%이상이 비정규직
신분이라는 문제와, ‘파주교육원
인력배출/불법파견/용역,소사장제/천정크레인기사 면허를
타워기사면허와 병행’ 하는 문제들은 고용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에 전국타워크레인 노동조합은 2004년
임단협에,∥불법용역/소사장 강경대응∥임금실태조사
전면착수∥고용불안 문제 근본적 해결∥전 조합원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등의 요구를 핵심으로 하여 사측과의
협상에 임하였다. 그러나 4차에 걸친 교섭이 결렬되자, 2004년
4월 28일 총파업으로 돌입하였다. 이후 5월 5일 새벽 500여명의
조합원들이 고공농성에 돌입하고 같은 날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다음날인 5월 6일 잠정합의안이 나오면서 84.7%의 조합원
찬성으로 파업은 일단락되었다. 이로써 149개 업체가 현재
단체협약을 체결한 상태이다.
한 낮의 열기가 한껏 기승을 부릴 무렵, 타워크레인 기사
노동조합 사무실 문턱에 들어섰다. 아직 파업의 열기가 가시지도
않은 채 다들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환한 사무실 한 켠, 침낭이
쌓여있는 공간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노동조합활동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냥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다고….
총파업으로 가는 길
▶ 그간의 투쟁 및 파업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이기석동지 : 2001년도에 우리가 파업을 했는데, 그 때는
노동조건에 대한 게 아니라 정말 생존권에 대한 거였어요. 기본
월급이 평균 세금 때면 120~130만원 이었어요. 그런데
노동시간은 하루에 10시간 이상이었고, 한 달에 한 번 두 번
쉬는 게 어려웠어요. 눈치 보면서 쉬었어요. 그래서 파업을
2001년도 4월 28일에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27일 간을 했는데,
그 마무리도 고공농성이었어요. 그 때 내놓은 협상조건이 임금
10%인상, 주 1회 휴무였죠. 휴무일 원칙은 일요일로 하지만
탄력적으로 할 수 있다고 양보했는데 안 지켜졌어요.
그래서 2002년도 7월 14일에 광주․전라지부를 선두로
일요일은 무조건 휴무 하겠다고 투쟁을 시작했어요. 3달 정도
하니까 너희들 깡패냐, 왜 딴 지역에선 아무도 안하는데
너희들만 이러냐. 광주전라지부 간부들하고 조합원들이 터지기
시작을 한 거에요. 그래서 대의원 대회를 개최해서 10월 26일
투쟁을 전국으로 확대했어요. 결과는 굉장히 성공적이었어요.
그런데 조합 활동이 조금 주춤하는 사이에 거대 자본 시공사들이
돈으로 친 거예요. 비조합원들한테, 조합원들한테 일요일에
나와서 일을 하면 30만원을 주겠다고 한거죠. 지금은 20만원까지
내렸지만요. 돈으로 매수를 시작한거죠. 그러다보니 휴무일
지키는 게 흐지부지 되었어요.
그래서 다시 싸움이 시작되어서 2003년을 맞이하게 된 거죠.
2003년 4월 10일부터 단체협약에 들어갔는데 약 19차정도 교섭을
하다가 안 되어서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로 조정신청을
넣었어요. 중노위에서 10일 정도 조정 기간을 갖다가 마지막 날
파업을 하려 하니까 타결이 되었어요. 75개 조항이 타결이
되어서 승리했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단체협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어요. 제가 사용자라 하더라도, 그 협약을 다
들어주면 간접비용이 많이 드는데 반해 벌금은 한 2,30만원
맞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벌금 맞을 걸로 작정을 하고 안 들어 줄
거예요.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죠.
이런 전반적인 문제들을 안고 2004년도에 임금협상을 하면서 총
파업으로 가게 되었어요.
2004년 총파업!
▶ 어떠한 정세 판단 속에서 총파업을 하시게 되었는지.
이기석동지 : 사실상 올해는 임금협상 해인데, 작년에 맺었던
단체협약이 정말 75가지 조항 중에 한 가지도 안 지켜지는
거예요. 100가지 중에서 1,2가지 들어주면 악덕기업이라 하는데
75가지 중에서 한 가지도 안 들어주니까 이건 악덕 위의 악덕
인거죠. 사업주는 임금협상을 하는 것이지 단체협상이
아니라면서 교섭을 하지 않으려하고, 그래서 불법 용역
소사장제, 근로계약서에 대한 부분, 파주 교육원에 대한 부분을
이하 중노위에 조정 신청을 했어요. 솔직히 임금협상보다
파주교육원, 근로계약서, 불법용역소사장 이런 부분에서 협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파주 교육원 문제는 전국 타워기사 중에서 교육원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그들은 자격증이
없거든요. 타워기사들은 국가 자격증을 다 따가지고 일을 하는데
교육원생들은 하루에 5분~7분 타워크레인 연습해가지고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 거예요. 산업안전보건법에 보면 위험기계,
기구에 대한 자격 조건이 “교육을 이수한 자”라는 명목으로
되어 있는데, 단순히 교육이라는 명목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고
전문성을 지녀야 한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법 개정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요. 왜냐하면 타워크레인은 건설현장에서 전복되는
등의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인거거든요. 실제로 타워크레인에서
작년, 재작년 사고율이 꽤 높았어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을 하루, 이틀 교육을 했다고 해서 교육원생들을 쓰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파주교육원생들은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아르바이트생들도 근로계약서를 쓰게 되어있는데
타워노동자들은 그런 게 없어요. 2003년도에는 표준 근로
계약서를 체결하도록 근로계약서를 만들었는데 사측에서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레미콘 기사들처럼, 학습지 교사들처럼, 보험
설계사들처럼 노동자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거죠.
뿐만 아니라 불법용역소사장들은 불법 파견을 하고, 임금을
중간에서 착취하고 그런 상황인거죠. 불법용역소사장들을
철폐한다는 단체협약이 2003년도에 있었는데 역시나 안 지켜지는
거예요. 파주교육원에서 교육원생들이 나오면
불법용역소사장들이 이들을 낚아채서 불법 파견 시키고,
업체에서 한 290-300만원 받으면 파주 교육원생들한테 120만원을
줘요. 그리고 나머지 180만원을 자기들이 먹어요. 그 다음에
기술자들, 경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230-240정도 줘요. 그러면 또
5,60만원은 자기들이 먹어요. 4대 보험 없이, 퇴직금 없이, 각종
수당 그런 거 없이. 임금보다는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서
불만을 표현하게 된 것이고, 임금협상이니까 임금은
기본이구요.
▶ 파주교육원을 없앤다는 슬로건을 내 걸었을 때,
교육원생들과의 마찰은 없었습니까?
이기석동지 : 5월 1일 메이데이 본 대회 때 파주교육원생 1기가
찾아왔어요. 그 사람이 파주 교육원은 없애야 한다고 해요.
교육원생들도 파주교육원을 없애야 한다고 느낀다는 거죠.
파주교육원을 보면 부정, 부패가 많아요. 한 예로 3기, 4기를
받을 때, 국가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것을 가지고 운영을 해야
하는데 따로 교육원생들에게 100~300만원을 받은 거예요.
최동주동지 : 파주교육원이 생긴 것 자체가 자본가들이 자기네들
이권을 만들기 위해서 만들기 시작을 한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입장에서 보면 모순점이 많이 있어요. 원래 타워기사들을
보면 자격증을 따고 현장에서 짧게는 2, 3개월 경험을 쌓고 일을
나가게 되는데 파주교육생들은 바로 현장에 투입되다 보니까
현장에 들어가서 적응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또 현장에서도
그러한 상황에서 일을 진행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고요.
이기석동지 : 구조적인 모순이거든요. 노동부
인적자원개발부에서 하는 얘기가 사용자 단체가 자격조건을
갖춰놓고 연수를 한다고 하면 정부에서는 실업극복대책에 대한
사업으로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하는 것이 법으로
있대요. 실제 건설경기가 다운되고 있는데도 실업극복대책을
악용해서 자본측은 이익을 보고자 하는 거고, 노동부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발뺌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구조적인 모순이 있기
때문에 교육원생들도 교육원을 없앤다는 것에 동의를 했죠.
파업을 마무리하면서
▶ 파업 마무리를 하고 계신데 어떻게 평가 하시나요?
이기석동지 : 노사 신뢰를 이야기 하는데 사측에서 지켜지는
약속을 했으면 좋겠어요. 한마디로 약속을 했으면 지키라는
거죠. 이번에는 정말 고마운게 조합원들이 잘 싸워줬어요.
2001년도 파업 때의 의식수준과 2004년 파업의 의식수준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지도부들 보다, 집행부들 보다
조합원들이 더 나았다고 생각해요.
처음 노조 설립당시에 조합원 수가 600여명이었는데 2001년도
파업이 끝나고 난 뒤에 470명까지 떨어졌어요. 따낸 성과를
지키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죠. 그때 조합원들은 본인들이
나서서 지키려 하지 않고 노조에 많이 의존 했었고, 노동조합은
뒷마무리 하는 과정에 관공서에서 오라니까 그쪽으로만 매달리고
하면서 조합원들 피부에 와 닿는 부분에 정말 신경을
못섰었어요. 아직 신생노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노동조합 해체위기까지도 오고 그랬는데, 이번
파업을 통해서 이제는 타워노조를 해체 하자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동주동지 : 참 타워기사들이 순박하고 착해요. 그런 면에서
단체협약이 잘 안 지켜지고, 사측에서 매수하려고 하면 흔들리고
그러는 것 같아요. 작년 파업에서 사실상 조합원들이 피부에 와
닿는 직접적인 투쟁 참여가 적었어요. 그러나 보니 어떤 결과만
떡 하니 나타났지 자신들의 권리를 끊임없이 주장해야 된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뀌는
구나하고 생각했죠. 그 만큼 순박한 거예요.
하지만 2004년도 투쟁은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선 것이고
투쟁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직접 나서서 고공투쟁을 진행 할
정도였기 때문에 기존의 투쟁과는 다르다고 판단해요. 교육을
진행하는데 있어서도 사업장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면이 있어요. 그런데 조합원들이 그런 부분을
조금은 해소를 해주고 있어요. 예를 들어 A라는 현장에
조합원들이 2명 있고 비조합원이 5명이 있다고 하면, 이 2명의
조합원들이 비조합원 5명과 함께 일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얘기하면서 비조합원들의 생각을 바뀌게끔 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어떤 현장에서는 성공적으로 되고, 어떤 현장은 안
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지금 타워노조의 조직화는 조합원들의
그런 방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우리 조합원들도 작년처럼 하지 않고 아주 결연한
눈빛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투쟁을 보면 우리 조합원들한테 너무 고맙고, 정말 평생
가도 잊지 못할 투쟁이 될 것 같아요. 이때 집행부가 되었다는
게 개인적으로 영광이라 생각하고 있고, 그만큼 조합원들에게
고맙고 감사해요. 파업 끝나고 조합원들과 술자리를 몇 번했는데
서로들 잊지 못한대요. 그 때 생각하면은 서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그래요. 앞으로 우리 조합원들이 더 잘할 거라고 믿고
있고요. 조합원들이 잘 하는 만큼 또 배로 집행부들이 더 노력을
할 것입니다.
▶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동주동지 : 지금 파업이 승리를 했지만 마무리를 잘 해야
되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비조합원들을 어떻게 끌어오고,
노조를 신임할 수 있도록 만드느냐 하는 부분이 아직도 남아있는
거죠. 사실 타워기사들은 혼자 현장에서 모든 걸 해결하기
때문에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지난번
파업 때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번
총파업을 통해서 서로가 뭉쳤던 경험을,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 비조합원들이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해야죠.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형제보다 아픔을 더 잘 알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경험을 나누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이기석동지 : 정말 조직화 하는 게 관건이거든요. 끊임없이 제가
주장을 하는 게 365일 교육을 전진배치 해도 모자르는 게
교육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조합원들이나 비조합원들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전국에 3,000명 중에서 2,500명만 조직되면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예요. 저는 어떤 투쟁 사안을 만들어
투쟁해서 쟁취하고 지켜내는 것도 맞다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교육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타워기사들은 한 단사에
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에 교육을
함에 있어, 어떤 방법으로 효율성있게 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전까지 해왔던 온라인상으로의 교육은 한계가 있고,
이제 오프라인 상으로 이 사람들과 어떻게 만남을 갖고 이
사람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키고 이끌어 낼 것인가 그것이
남아있는 과제라고 생각해요.
▶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교육상을 잡고
계시는지.
이기석동지 : 기초적으로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타워노조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인가 왜 뭉치면 좋은가 등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 뭉치면 좋은가의 교육은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고
일컬어지는 만큼 한 번 파업을 해보면서 교육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최동주동지 : 작년에 사실상 타워노조는 조합원들의 교육에
대해서 크게 배치를 하지 못했어요. 워낙 조합원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고 모이기도 쉽지 않고. 그래도 몇 번의 교육을
조합원들 모아놓고 진행한 적이 있는데, 제가 교육을 하면서
느끼는 부분은 아직까지는 노동조합 정체성 같은 교육보다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육을 하는 것이 보다 피부에 와 닿는
교육이다라는 거예요. 87년 노동자 대투쟁에 대해서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투쟁이었고 전투적이었다는 교육을 한다고 해도
조합원들 가슴에 와닿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자신들이 몸 담고
있는 타워크레인에서 했던, 01년 총파업 비디오 한 편을
보여주면 동감하고 열의를 가진다는 거죠, 앞으로도 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물론 노동자성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우리 내적인 부분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교육을 좀 더 많이 배치를 해야지 어느 정도 교육의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냐는 물음에 어서 인터뷰를
끝내고 파업 마무리를 해야 한다며 웃음으로 대신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파업 뒷이야기를 떠올리며 이 땅에 투쟁하고자
하는 노동자가 있는 한 세상은 반드시 바뀔 것이라고 가슴 가득
희망을 담아본다.
- 2004 타워크레인 총파업 뒷이야기 -
1.
애가 두 살이고 애 엄마가 남○○라는 분인데, 부산경남지부소속
타워크레인 기사예요. 남편되는 분은 노동조합 활동하다 빚을
많이 져서 이번 파업에 함께 하지 못 했는데, 남○○기사는
쟁의가 시작되니까 애를 업고 나와서 애기와 함께 비 맞아
가면서 애기하고 같이 노숙하고 그러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더라구요.
2.
한 조합원이 심장하고 간이 안좋아 지병이 있었어요. 배낭이 한
이만한데, 그 배낭 안에 약을 일주일치 싸가지고 온 거에요.
그리고 투쟁하다 약이 떨어지니까 집에 가서 약 챙겨 오겠다고
하더니 정말 약속을 지켰어요. 집이 가까운데 있고 몸이
불편하면 집에서 잘 만도 한데 같이 노숙을 계속 했어요. 그러다
나중에 잠정 합의안 나와 고공농성하던 기사들이 타워에서 다
내려왔는데, 그 조합원은 자기가 고공투쟁을 못한 것이 미안해
경찰서 항의 방문을 4,5군데를 돌아다녔어요. 밤 10시까지
혼자서 굉장히 열성적으로 하더라구요.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