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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 정상회의 반대투쟁 참관기

현장에서 미래를  제100호
안재훈


1999 시애틀 그리고 2003 칸쿤 그러나 2004 서울
참관기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정상회의 반대 투쟁 참관기>
1999 시애틀, 그리고 2003 칸쿤,
그러나 2004 서울


안 재 훈
고려대 사회학과






Prologue

지난 6월 13~14일 “아시아의 번영과 평화”라는 주제로 세계경제포럼(WEF)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서울의 한복판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자본가들의 잔치가 또 한 번 열리는 구나라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 세계 노동자민중에게 가져다준 총체적 삶의 파탄을 볼 때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WEF는 IMF, WTO, G8, UN, NATO 등과 더불어 초국적 독점자본의 영향력 하에 작동되는 대표적인 자본가들의 기구이다. 또한 WEF는 자본가들의 올림픽이라고 불릴 만큼, 전 세계 자본의 지배전략을 논의하고 자본의 계급투쟁 지침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미들을 볼 때 이번 WEF 동아시아 정상회의는 한국의 노동자민중에게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노동자민중에게 있어 함께 투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 한국의 노동자민중 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노동자민중운동 단체 및 개인들이 이번 회의에 맞선 투쟁을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그리고 세계경제포럼에 맞서 전세계 노동자 민중의 대안을 논의하는 ‘세계사회포럼’을 조직했던 것처럼, 이번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맞서 동아시아 사회민중운동회의 조직을 동아시아 민중들이 함께 준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애틀 투쟁이후 계속되는 전 세계 민중들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일련의 투쟁의 흐름의 연속이 이번 반WEF 투쟁에서는 어떻게 될 것인지도 관심이 아닐 수 없었다.

#1. 투쟁전야

6월 12일 밤, 저들의 회의가 열릴 예정인 신라호텔이 훤히 보이는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에서는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정상회의 반대 공동행동 전야제’가 열렸다.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된 전야제는 세계화반대와 전쟁반대라는 두 가지 큰 주제로 진행되었다. 아시아 각국 참가단 150여명을 포함한 2000여명이 함께 “세계화반대, 전쟁반대” 등을 외치면서 참여했다. 문예공연과 함께 발언들도 많이 이루어졌다.
전농, 보건의료단체연합, 전교조 등에서는 농업, 의료, 교육 등 FTA, WTO 개방이 진행되고 있는 부문에 대한 문제점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일본, 태국, 인도, 홍콩 등에서 온 반세계화 활동가들은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공부문 사유화와 FTA 협정체결, WTO개방의 문제점들에 대해 말하면서 아시아의 민중들이 함께 투쟁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일본 참가자들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각색하여,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한일FTA 반대’를 표현한 촌극을 선보여 관심을 많이 끌었다.
3시간이 조금 넘게 진행된 전야제는 재미와 의미들을 담으며, 그리고 결의들을 다지면서 끝이 났다. 유난히도 환하게 불빛을 비추고 있는 신라호텔을 바라보면서, 함께 일어나 인터내셔날가를 부르면서 내일 투쟁을 준비했다. 전야제의 공식행사가 끝난 뒤에도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않고 모여앉아 노래와 이야기, 그리고 술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하지만 주말저녁을 집이 아닌 차가운 강의실 바닥에서 보내야 하는 노동자민중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2. 대학로-본대회

전야제 장소였던 동국대에서 이동해 대학로로 향했다. 두 시에 시작되는 본 대회전에 11시부터 교육개방반대, 한일FTA반대 등의 사전대회가 진행되었다. 마로니에 공원과 대학로 거리에서 진행된 사전집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각 부문의 요구들을 가지고 투쟁을 호소하며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힘차게 투쟁해야 함이 이야기되었다.
한일FTA 반대 집회에 참가한 일본인들은 한일 FTA 협정이 체결될 경우 한국의 노동자민중뿐만 아니라, 일본의 노동자민중들의 삶도 파괴되기 때문에 한일 노동자민중이 함께 연대해서 싸울 것임을 말했다. 현재 한일 FTA 협상은 특정분야가 아닌 전 분야에 걸쳐 논의되고 있다. 이는 아시아지역 자본블록화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근거이다. 이에 맞서는 이번 공동 집회는 한일 노동자민중의 연대투쟁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교육대책위원회의 주최로 열린 교육개방반대 집회에는 교육대책위, 전국대학생공동행동, 전국학생연대회의 소속의 대학생들이 참여하였다. 작년 ‘WTO 교육개방 양허안’이 제출된 이후 교육개방의 흐름은 더 가속화되고 있는데, 특히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예정인 ‘사립학교청산특별법’과 ‘외국인학교설립특별법’ 등은 교육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문제를 담고 있어 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올 한해 많은 대학에서는 등록금 인상 반대와 교육여건 개선, 학생자치권 쟁취, 교육개방 반대 등을 기치로 교육투쟁을 힘 있게 전개하였다. 하지만 학교당국과 정권은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들을 무시하며, 오히려 징계와 가압류, 학생자치권 탄압 등으로 일관해 학생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교육개방은 이런 교육의 현실을 더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더 강도 높은 교육개방반대투쟁의 흐름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사전집회를 마치고 본집회가 시작되었다. 장충단공원 앞까지 4시까지 행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회는 간결하게 진행되었다. 1시간 정도 진행된 본 집회에서는 정광훈 민중연대 대표가 대회사를 하고, 이수호 민주노총위원장,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문경식 전농의장 등이 정치발언을 하였다. 사실 오후 두시의 불볕더위와 아스팔트의 끓는 온도는 앞의 연사의 발언에 귀 기울이기보다 무언가(?)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나게 만들었다. 손수 글씨를 써서 피켓을 만들어온 학생들과 가지가지 선전물을 제작해온 사회단체들 그리고 페이스페인팅을 한 노동자는 한마디 발언보다 우리의 요구가 무엇인지 더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았다. 짧은 본대회가 끝나고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 신라호텔을 향한 행진이 시작되었다.

#3. 행진(대학로-장충단공원)

WEF반대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이 행진해야할 대학로에서 장충단공원 앞까지는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또한 2만 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행진하다보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행진이 시작되었다. 경찰은 평소와는 달리 대학로의 전차선을 내주었다. 양방향의 차선을 모두 활용해 행진대오는 “WEF 반대, 세계화 반대”, “전쟁반대, 파병반대”, “WTO 반대 FTA 반대” 등을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경찰의 협조 때문인지 행진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무더운 날씨와 노동자민중의 반세계화 투쟁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충돌 없이 행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4시경에 집회대오는 장충단공원 앞에 도착을 했다. 예상했던 대로 경찰은 전경차를 이용해 도로를 전면봉쇄 해 놓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무서웠는지, 전경차위에는 굵은 나무판자로 만든 방어막이 쳐져있었고, 물대포를 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주변 골목골목에도 까만 전경들의 모습이 빼곡히 들어차 있음을 볼 수 있었다. WEF가 저들에게는 이렇게도 많은 전경들이 나와서 물대포까지 동원하여 지켜야 할 만큼 중요한 회의이구나.

#4. 신라호텔이 저 앞인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WEF 동아시아정상회의가 개막하고 노무현이 개막연설을 한다고 한다. 2만여 군중들은 일단 다시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야 했다. 무언가 지도부의 계획이 있는 것 같다. 민주노동당 대표와 전국연합 상임의장 등이 나와서 발언을 한다. 사실 여기까지 또 힘들게 와서 무슨 발언을 듣고 있어야 하는지. 여기까지 행진한 노동자민중들이 WEF에 왜 항의해야하는지 몰라서 그 이야기를 또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노동자민중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저들 자본가들과 그들의 하수인 관료들에게 들려주고 싶고, 저항하고 싶은 것이다.
지루한 발언이 몇 개 끝나고 나서 지도부가 계획을 발표하였다. 대표자들이 신라호텔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간다는 것이다. 무언가 그림이 이상하다. 그럼 우리는 여기 왜 온 거지. 우리가 힘들게 행진해서 어렵게 아시아의 활동가들과 전국의 노동자민중들이 모였는데,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항의서한 전달인가.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로 한 대표자들이 경찰과의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신라호텔로 향하였다. 다시 WEF 반대 투쟁에 함께 한 노동자 민중들은 대표자들을 기다렸다. 조금 뒤에 지도부가 신라호텔 앞에 도착했으나, 항의서한을 전달하는데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무대의 사회자가 “신라호텔로 우리가 갑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앞에서 대오를 지키던 선봉대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대오도 움직일 태세가 보이지 않는다. 전경들과 몸싸움이 붙었다. 전경들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던 학생들을 향해 방패와 곤봉을 휘둘러 댔고, 몇몇 학생들은 방패와 곤봉에 찍혀 다치기도 하였다. 분노한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항의용 물감풍선을 전경들을 향해 던졌다. 몸싸움은 간간히 계속되었다. 그때 무대에서 분위기를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에서 싸우는 대오는 싸움을 멈추라는 것과 무대 앞에 있는 참가자들은 무대를 향해 뒤로 돌아앉으라는 것이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니 어서 정리집회하고 가자는 것이다. 전경들과 대치 중이던 집회 참가자들의 반발도 있었으나,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 등은 정리발언을 계속해나갔고, 흐지부지 집회는 마무리 되었다. 할말은 “앞으로 열심히 투쟁하자!!”는 말뿐이었다.

#5. 그러나 2004년 서울

1999년 시애틀의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부터 2003년 칸쿤의 투쟁까지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며 거세어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2004년 WEF 반대 서울투쟁은 아쉽게 끝났지만 노동자민중에게 중요한 성과들을 남겼다. 무엇보다 아시아 노동자민중의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맞서는 저항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150여명의 아시아지역 활동가들이 WEF 반대 투쟁과 동아시아 사회민중운동회의 참가를 위해 서울에 왔다. 작지만 국제연대투쟁의 실물적인 흐름들이 이제 더욱 빈번하게 현실화되고 있으며, 실질적 연대의 흐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기간 한국에서 진행되었던 반전,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초국적 독점자본에 직접 저항하는 투쟁으로 상승시켜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 세계화, 신자유주의 이들을 묶는 단하나의 원리는 바로 자본이다. 이 모든 것은 노동자민중에게 오직 빈곤과 노동의 불안정, 환경파괴, 생존권박탈, 차별, 인간성파괴 등을 가져다준다. 자본의 야만성을 극한으로 드러내고 있는 제국주의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중요한 투쟁은 바로 초국적 자본과 그 지배네트워크인 WTO, WEF, G8 등에 저항하고 타격하는 것이다. 이번 WEF반대 투쟁이 그 적을 분명히 밝혀나갔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번 투쟁을 통해 이런 성과지점 외에도 한국의 노동자민중운동이 극복해야할 여러 문제들이 드러났다. 먼저 조직위를 주도했던 민주노총, 민중연대를 비롯한 반WEF의 대중투쟁 조직이 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선전행사처럼 진행하였다는 점이다. 현재 시애틀 이후의 반세계화 투쟁이 의미를 조망 받고 있는 것은 단지 반세계화운동의 내용선전을 잘하고 이슈파이팅을 잘해서가 아니다. 직접적으로 노동자민중이 자신의 과제를 가지고 초국적 자본과 제국주의에 맞서는 대중투쟁을 조직하였기 때문이다. 집회가 끝나고 한 참가자가 피켓에 썼던 “WEF와 쇼부친 민주노총 해체”라는 말을 다시는 볼 수 없기를 희망한다.
두 번째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과제들을 모아내는 투쟁조직화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WEF반대 투쟁기간 동안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파업투쟁 중이어서 WEF 반대투쟁에 참가하기는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로 더욱 피폐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노동유연화 분쇄 투쟁이 아직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투쟁전선구축으로 이어지고 있지는 못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을 함께 저지하는 투쟁전선의 구축 없이, 하나의 사업장에서의 투쟁은 그 거대한 파도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Epilogue

투쟁을 평가하다 보면, 경험이 없어서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아직 한국사회는 반신자유주의 세계화 투쟁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은 경험을 하는 단계이다.” “이번에 이 정도 했으니 다음에 더 잘하자.” 과연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우리의 투쟁을 강고하게 만들어줄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번 투쟁에서 부족했던 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평가하고, 또 그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평가하고, 앞으로의 투쟁에서는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하는 문제는 자본과 정권과 대화를 통해서, 타협을 통해서, 협상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과 정권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전략이며, 노동자민중에게는 삶을 더욱더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이번 투쟁의 한계들을 극복하고 현재 노동자민중이 안고 있는 노동유연화분쇄, WTO/FTA 반대, 파병반대 등의 과제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 투쟁을 전국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그럴 때만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뛰어넘는 우리의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

2004-06-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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