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윤길 동지의 글을 읽고
박 병 규
금속산업연맹 부위원장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에 실린 안윤길 동지의 글「현중노조의
제명과 금속산업연맹의 오류」을 읽고 갖게 되는 생각을
적어 봅니다. 주장의 요점은 열사투쟁과 관련해 현중노조에 대해
연맹이 중앙위에서 제명을 결의하고 결의사항이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인데, 징계에 대해 이의는 없지만 연맹도
지난날의 오류에 대해서는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는 내용 입니다.
틀린 지적이 아니라는 생각 입니다. 특히 현중노조에서 벌어진
그전 사안에 대해 어떤 태도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갑작스레
징계를 한다고 하니 당당하지도 못하고 어용세력들에게 빌미를
주고 있다는 주장이 공감이 됩니다. 즉 현중노조 징계에 앞서
연맹의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죠.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조그마한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모두 맞는 말이고 사실이니까요.
솔직히 지금 제 심정은 부끄럽습니다. 저는 작년 2월부터 연맹
부위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단위노조위원장과 지역본부장까지
지냈습니다. 책임이 막중한 위치에서 약 5년 정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 활동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십 수
년을 금속조합원으로 살아온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연맹의
상태가 이렇게 악화된 것으로부터 결코 자유스러운 처지가
아닙니다. 안윤길 동지의 글을 보면서 내내 반성도 했고 후회도
되었습니다. 지난날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활동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적지 않았습니다. 모두 저의 운동의 불철저함에서
기인한 것이라 누구에게 원망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안윤길 동지의 글에 대해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냥 넘어가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침묵하는 것이 진정으로 반성하거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앞으로 제 자신뿐만 아니라
노조운동이 올바로 전진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드러내고 반성과 혁신을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싸워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은 안윤길 동지와 저 둘만이 “계란으로 바위
깨기”식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투쟁이 승리 할 거라고 확신 합니다. 선뜻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의 주장에 동의 하는 많은 동지들이
자신감을 갖고 함께 할 날이 멀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것이 올바른 노동운동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새롭게 동의 하는 동지들이 차츰 늘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윤길 동지가 지적한 전반적인 문제제기에 대체로 동의 합니다.
그러나 동지의 글에서는 그간의 상황을 연맹과 현중노조 간의
문제로만 보는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또 연맹이라는 표현도
제게는 너무나 모호 하게 들립니다. 더 나아가 안윤길 동지가
주장하는 것처럼 연맹이 반성할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잘못한
사실이 없어서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성을 하면 그에
따르는 많은 것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연맹 내 현 상태를
보면 반성은커녕 오히려 올바른 지적을 한 동지가 왕따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난 연맹중앙위 이전이나 이 후에
연맹 내에서 반성하는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상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똑같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동지의 문제제기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연맹의 현실이
그것을 받아드릴 만큼의 정상적인 상태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현중노조 징계 건과 유사한 사례를 통해서 현중노조 징계
건이 현중노조와 연맹간의 문제를 넘어서는, 즉 연맹전체의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사례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연맹으로 표현되는 모호함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책임 있는
단위는 누구인지, 또 동지처럼 정당한 주장이 어떻게 왜곡되고
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제 의견을 밝히고자 합니다.
2001년 캐리어 사내하청투쟁을 할 때의 일입니다. 캐리어
원청노조가 하청노조를 탄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지역본부장이었던 저는 노조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반노동자적인 행위를 한 캐리어 노조를 징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니 징계에 앞서 이를 규탄하는 상급단체의
입장이라도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단위노조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이에 대해 연맹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규약과 규정에 의거해 절차를 밟아 가면 될 일이고,
하청노조의 투쟁은 투쟁대로 해야 했기에, 캐리어노조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투쟁하는 하청노조에 대해 지지하는
연맹의 입장이 우선 필요 하다고 판단했었습니다. 상급단체가
캐리어노조의 잘못을 규탄하고 징계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
캐리어 노조집행부는 상당한 부담을 가질 것이고 더 이상
하청노조원에 대한 탄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또 우리 내부에서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과제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기회가 될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주장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모두가 동의 할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상급단체의 입장이 유보되면서
캐리어노조를 직간접적으로 옹호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지역에 있는 일부노조 대표자들이 캐리어 노조위원장을 은밀히
만나고 있다고 하는 소식이 들리더니 급기야 지역대표자
회의에서는 하청노조의 투쟁이 잘못되었느니, 요구가
잘못되었느니, 조직화 시기가 빨랐다느니 등의 이유를 대며
진상을 조사해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진상조사를 통해 투쟁을 잘못 지도한 사실이 드러나면 저도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해댔습니다. 너무나
명명백백한 사건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또 자초지종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이것저것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함구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중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나 뻔한 상황을 가지고
원청을 설득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명분은 하청문제를
풀려면 원청의 협조가 절대적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저도
하청노조의 투쟁에 원청노조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말은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것일 뿐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상급단체 간부에게 폭행을
휘두르고, 조합원이 구사대 역할을 할 것을 노조의 방침으로
가져갔으며, 수차례에 걸쳐 하청노조원을 폭행하고 상급단체를
비방한 원청노조를 설득해 하청노조문제를 풀겠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행동은 오히려
원청노조에게 일시적으로 면죄부를 줄 뿐만 아니라 그 후
원청노조의 태도에서 보았듯이 더욱 기고만장하게 함으로서
하청노조의 투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를 들어 원청노조의 반노동자적인 행위를 옹호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조합원 총회까지 거친 단위노조 결정사항을 외부에서 제기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연맹이 단위노조의 결정사항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점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사항이 옳은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단위노조 결정사항일지라도 잘못되었으면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급단체의 역할은 단위노조가 올바르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도하며 견인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단위노조의
잘못된 결정사항에 대해 시정할 것을 권고하거나 바로 잡아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떤 일이든 중요한 것은 결정사항만이
아닙니다. 결정사항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
입니다. 또 합법성을 따져 보는 것도 필요 합니다. 그러나 옳지
않은 경우에는 이것 역시도 예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맹이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잘못 되었습니다.
아무리 연맹산하에 있는 노조일지라도 투쟁하고 있는 노조에
대해 탄압을 일삼는 노조는 곧바로 상급단체에서 입장을 밝히고
징계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상식 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에야 중앙위가 열리고 또 몇 달이
지나서야 대의원대회가 열렸습니다. 그것도 중앙의 판단이 아닌
지역본부의 요청에 의해 징계가 상정된 것입니다. 조합원들과
대의원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거나 관심사항에서 밀려나 있을
때 대의원대회가 열린 것입니다. 당연히 참석한 대의원들은
충분한 논의는 고사하고 상정된 원안대로 제명에 동의 하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캐리어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인지,
제 2의 캐리어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의 노력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단 한마디도 없이 그냥 만장일치로 통과
시켜버린 것입니다. 상급단체의 잘못된 대응과 원청노조의
잘못된 행위를 묵인하거나 옹호하는 주변의 영향으로 캐리어
노조 집행부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반성 할 기회조차도 상실
했던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를 원망하고 있다는 말은 가끔씩 내
귀에 들리지만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일부세력 때문에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게 되었다는 생각뿐일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이것은 잘못된 행위에 대해 따끔하게 나무라기보다는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피해가려 했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자들의 책임이 훨씬 더 큽니다.
현중노조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상급단체인 연맹에 책임이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 입니다. 그러나 연맹이라고
표현하면 너무나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연맹의 임원이 해당될 수도 있겠으나, 연맹의 지도부 못지않게
각종 의결단위에 참여해 모든 결정사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노조대표자들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이 사실상 연맹
지도부를 선출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연맹지도부도 이들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외려 눈치 보기 급급할
때도 있습니다. 상급단체에서 현중노조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옳고 그름의 문제는 늘 현실 앞에서 좌초되기
일쑤였습니다.
또 연맹으로 표현하면 열심히 활동하는 노조나 활동가까지도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도매금으로 넘어가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연맹 내에서 실질적으로 자신들이 힘을 갖기 위해
줄 세우기하고, 힘 있는 노조에 대해서는 권력유지를 위해
적당히 관계 맺는 선에서 행동했던 사람들의 잘못들이 감춰지게
됩니다.
저는 이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윤길 동지의
지적처럼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고 본질을 알아야 해답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안윤길 동지는 연맹이 현중노조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공장 위주의 한국노동운동 형편상, 가맹비에만
의존하는 상급단체가 대공장노조를 제명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저는 이런 이유는 외형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핑계에
불과 합니다. 설사 현실이 이렇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노조운동을 하기 위해서라면 반듯이 고쳐야 할 일이지 결코
인정되어서는 안 될 잘못된 관행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물론 안윤길 동지도 현실이 이럴지언정 꼭 제명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제재를 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단위노조의 잘못된 결정에 대해 상급단체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가맹비 운운 하는 것은 핑계일 뿐만 아니라 이런 태도야
말로 노조운동에서 배척되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맹비가
걱정되어 옳지 못한 일에도 눈감거나 오히려 동조한다면 이런
집단은 더 이상 노동운동하는 세력이 아닙니다. 수구 꼴통일
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집단에게 힘이 증가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이런
상태에서 이들에게 권력이 쥐어졌다면 노동자들에게 총구를 겨눌
것이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조직률이 낮아서, 실력이 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늦었지만, 기회마저 상실해버린 것은 아니니까요.
아무튼 현실은 안타깝게도 노동운동의 발전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운동적 대의는 상실되고 조직보존논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조직에 해를
끼치는 사람” “선거를 겨냥한 음모”라고 매도당하기
일쑤입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선거와 권력에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80년대 노동운동 내의
대동단결 논리에 대해서는 이제 많은 것을 고민해야 하고 새롭게
바뀌거나 폐기되어야 합니다.
노동자가 조직하고 단결하는 것은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반대하는 세력과 싸우는 것입니다.
조직하는 것도, 단결하는 것도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조직하고
단결하기 위해서 싸우거나, 싸우기 위해서 조직하고 단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조직하고 단결하고
투쟁하는 것입니다. 가치가 상실된 조직과 단결과 투쟁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내부의 조직논리와 단결논리는 이래서 심각
합니다. 지금처럼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하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노동운동의 대의도 알지 못하면서 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치부해 버리는 풍토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기본도 지키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기술적으로 접근을 하니
노동운동이 바로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바꿔내지
못하면 우리 노조운동도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이런 현실을 바꿔낼 힘이 없다면 이런 세력이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도록 하는 운동이라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물론 후자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면 불가피한 일입니다.
결국 어떤 상황이 만들어질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옳은 일이라면 소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행동이 필요할 때
입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