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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의 얼굴, ‘연대기금’ 창궐의 배경과 전망

현장에서 미래를  제100호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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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점검


야누스의 얼굴, ‘연대기금’ 창궐의 배경과 전망


이 정 현
노동자의 힘 경제분석팀






올 임단투에서 민주노총이 추진하고 있는 ‘연대기금’이 노동조합운동의 핵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조직 가운데서는 가장 먼저 지난 2월 산별 특별요구안으로 노동연대기금 조성안을 결정하고 이를 추진해온 보건의료산업노조는, 13일간의 파업 끝에 6월22일 ‘산별 교섭’을 타결지으면서, “보건연대기금 조성을 위한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기금을 마련하기로” 보건의료산업노조, 기자 회견문, 2004.6.22.
합의했다. 그런가 하면 금속산업연맹 자동차 분과에서도 지난 3월 22일과 4월 완성차 4사 노조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세월 대공장 노동조합들의 투쟁은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켜 왔습니다. 이제는 산업차원에서 기금을 만들고 그것이 산업발전은 물론이요 그 혜택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완성차 4사 노조 위원장들이 조합원여러분께 드리는 글, 2004.4.
라면서 산업발전․사회공헌기금 마련에 나서기로 하고 각 단사별로 임단협 요구안에 이를 포함시켜 투쟁에 나서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노조는 사측과의 교섭이 결렬되어 6월 1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쟁의발생을 결의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낸 상태이다. 이어 5월 10일에는 여수석유화학단지 노조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사회발전기금’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주노총의 위기의식과 엉뚱한 처방전

이처럼 각종 ‘연대’ 기금운동들이 노조운동 내에서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것은 왜인가? 무엇보다도 노조운동의 위기의식을 들 수 있겠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 머뭇거리게 되면 계급적, 사회적 연대기반 상실’과 ‘노조운동의 진보성, 도덕성 상실’이 우려되기 때문에 연대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산하조직에 촉구하고 있다. 즉 “현 단계 한국 노동조합운동은 확대되는 임금격차, 임금소득 불평등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적극적, 구체적, 실천적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더 이상 머뭇거리게 되면 계급적, 사회적 연대의 기반을 상실할 것이고, 노동자 계급 내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립을 면키 어려울 것이며, 노동조합운동의 진보성과 도덕성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노동계급 내부 평등과 연대를 달성하기 위한 한 방편이 연대기금 조성을 통한 연대임금 추진방안이다. 올해부터 이를 도입하기 시작해 모범사례를 창출하고 이를 전산업 전 지역으로 확산해야 한다.” 「민주노총 요구와 과제 해설 2004년」, 225쪽, 2004.3.
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위기의식은 그 자체로 현실이다. 사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통계수치를 들이댈 것도 없이 심각한 수준이다. 비정규직의 임금이 거의 바닥을 기면서 정규직 임금의 약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격차는 노동자 내부에서의 위화감을 부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계급적, 사회적 연대기반’이라는 것은 이미 상실돼 있는 상태다. 민주노총은 그 대책으로 ‘연대기금’을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위기는 다른 데 있다. 바로 민주노총이 ‘연대기금’ 조성을 제안하고 있는 그 상황이다. ‘연대기금’은 결코 민주노총이 지적하고 있는 ‘위기’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없는 엉뚱한 처방전이기 때문이다.
연대기금이 노조운동 내부의 위기현상들에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민주노총의 연대기금 조성 방안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민주노총이 “기금의 목적은 비정규직에 대한 복지기금, 직업훈련,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기금 등으로 사용” 민주노총, 상동.
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목적이 아무리 선의에 입각한 것이더라도, 기금을 어떤 취지에서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따라 목적 자체가 뒤집힐 수 있다.
민주노총이 말하는 연대기금의 조성 방안을 살펴보면, “2004년 정규직 조합원 임금(인상분) 중 일정액(비율)을, 산업별(또는 업종별) 단위로 적립하고, 조합원이 조성한 기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업에게 갹출 요구” 민주노총, 「민주노총 요구와 과제 해설 2004년」, 2004.3. 17쪽, 225쪽.
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전국-전산업 차원에서 민주노총이 먼저 ‘정규직 조합원의 임금’에서 기금을 조성하고 자본측으로 하여금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갹출하도록 요구하여, 말하자면 노사 공히 절반씩 내서 기금을 만들자는 내용이다. 통념 그대로 본다면, 광고주들인 자본측에 기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제도언론들이 끊임없이 유포하는 논리처럼 ‘합리적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이러한 발상은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서도 대규모 사업장에서의 이른바 ‘고임금’ 정규직 조합원들이 앞장서서 임금을 반납할 것을 종용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서도 월 임금 100만원 미만자와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허다하다. 이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빠듯하여 기금 조성은커녕 기금 수혜층이 되어야 하는 판이기 때문이다.
생산직에 대한 사무전문직의 상대적 고임금은 자본측의 산업전략적 고려뿐 아니라 매우 오래된 학력․성․직종별 임금차별과 사회적 인습․관행에 의해 뒷받침된 구조화된 것이라는 점,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사무전문직에 대한 특혜성 임금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최근의 임금격차에서 더 이상 생산직-사무직간 격차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대규모 사업장의) 정규직과 전체 비정규직간의 격차에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의 ‘연대기금’ 조성추진에서 배경이 되고 있는 노동자간 임금격차, 그리고 중심적으로 기금납부자가 되어야 하는 정규직의 ‘고임금’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대표적으로 고임금 사업장이라고 자본측에서 아우성대고 있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인 완성차 공장들에서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5,000만원 이상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임금은 연간 3,000시간 이상을 일해야 얻어지는 시간급의 누적일 뿐이다. 이번 호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의 강연자씨 글,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는 출발은?」을 참조할 것.

2002년에 어느 자동차 공장에서는 연간 3,100시간(주당 60시간) 이상을 일한 사람이 1,000명이 넘는다. 2003년에도 900명이 넘었다. 지금은 주40시간제 시대니까 주40시간씩 일한다고 치면 1년에 52주니까 2,080시간이면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급제 노동자들은 2,080시간만 일한다면 시급 기본급이 5,000원일 경우 연간 1천40만원, 월 86만6천원, 상여금이 700%라면 월 50만5,000원씩 가산돼서 136만원 수준이 된다. 각종 수당을 포함한다고 해도 정시근무로 연봉 5,000은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다.
부르주아 언론에서 “고졸 노동자가 연봉 6,000”이 어쩌구 하는 보도에서 누락시키고 있는 점은 바로 이점이다. 그들은 공장에서 적어도 15년 이상씩 밤낮없이 일해 온 노동의 전사들이다.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 걸까? 물론 정시근무(하루 주간 8시간)만 해서는 먹고살기 어렵기 때문에 임금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자본측은 고임금 때문에 기업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왜 이렇게 고임금을 ‘보장’하는 걸까? 그게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시급을 낮게 책정해놓고, 시간을 몇시간 하느냐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도록 만들어 놓은 시간급제를 적용함으로써 장시간노동을 해야만 그나마 ‘고임금’을 확보할 수 있게 해 놓고, 될 수 있는 한 정규직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 대신에 노동자 수가 부족하면 비정규직을 채용한다. 비정규직에게는 상여금 적용이나 각종 수당 및 기타 ‘노무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정규직과 똑같이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측은 비정규직이 노조조직화 움직임을 보이면 극렬하게 탄압하고 노조를 완전히 때려잡는 것이 아닌가? 비정규직이 노조로 조직화된다면 자본측은 비정규직을 지금처럼 유린할 수 없을 테고 더욱이 정규직까지도 지금처럼 마구 부리기 작전을 펼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자본측은 결사코 노조가 강력해지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이다.
바로 자본의 ‘노동자 마음껏 부려먹기’ 고용전략과 자본간 경쟁의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전형적 수법인 ‘고용불안 야기하기’ 경영전략이 그것이다. 그런 전략에 동원되는 수단이 주야맞교대 24시간 착취체제와 시급제임금, 그리고 노동을 전반적으로 비정규화 시키는 고용유연화․노동유연화다.

대기업노동자의 ‘고임금’의 실체는 이것이다. 결국 자본측이 조장하고 만들어온 임금구조이고 임금격차다. 물론 노동조합이 완전 어용이었다면 그러한 얼토당토않은 ‘고임금’이라도 ‘고임금’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민주노총이 뽑아놓은 4인 가족 기준 표준생계비는 360여만원이다. 연봉으로 한다면 약 4,300여만원이 된다. 설마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에게 이 표준생계비를 연간 3,000시간씩 시급제로 밤낮없이 물불 안 가리고 일만해서 벌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주40시간제 투쟁을 벌여오고 있는 민주노총 아닌가?
그렇다면 민주노총이 비정규직과 연대하고 사회적으로도 ‘도덕적 정당성을 확대’하고 ‘조직 발전에도 기여할 것’ 민주노총, 상동, 226쪽.
이라고 기대하면서 ‘연대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정규직 특히 생산직 노동자들은, 작년에 대우조선과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사업장에서 집단적으로 근골격계(골병) 질환자가 발생하여 직업병 판정을 받고 있다. 그보다 심한 사람들은 노동능력을 상실하거나 과로사하고 있다. 주5일제로 여가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임금노예성만 가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하는 현대카드 광고카피가 한창일 때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골병들어 일터를 떠나거나 사고를 당해서 팔다리가 잘리거나 죽어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통계수치상의 현상적인 임금격차를 들먹이면서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는 자본측과 정부측이다. 이런 판에 민주노총이 나서서 ‘2004년 정규직 조합원 임금의 일정액을 산별․업종별 단위로 적립한다.’는 방식으로 이른바 연대기금을 조성한다고 하니 이런 역설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민주노총은 한 가지를 더 누락시키고 있다. ‘정규직 조합원’들이 기금을 위해서 지금보다도 더 일을 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그래야 자본측이 이익을 내고 그래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나마 떡고물을 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또다시 비정규직을 양산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 수밖에 없다. 그것은 생산성 향상의 결과가 지금껏 어떻게 귀결되어 왔는지를 보면 자명해진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고 비정규직 일자리는 늘어왔다. 그러고도 이주노동자를 산업연수생이라는 명목으로 벌써부터 들여와서 저임금 구조를 온존시켜왔다. 기업의 인건비 줄이기 전략은 생산성 향상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계속돼 왔다. ‘연대기금’이라니, 이 얼마나 자본측이 반색을 하면서 반길 일인가?

정규직 노동자들의 부채(負債)의식과 노조운동의 ‘우경화’

앞에서 본 것처럼 엉뚱하다 못해 노동자계급을 통째로 자본의 철그물에 옭아매는 ‘연대기금’이라는 처방전을 제출한 것 자체, 그리고 그것을 산하조직들이 받아 안고 ‘투쟁과제’로 올려놓고 있는 상황 자체가 거꾸로 현 단계 노조운동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87년 이후 이제까지 한국의 노조운동은 ‘정규직’이 이끌어왔다. 노조운동의 주력인 이들 정규직 노동자들은 조직적인 투쟁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위상을 높여냄과 동시에 임금 등 노동조건의 향상을 이룩해왔다. 그러나 그 ‘향상’이란 물론 어디까지나 8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하여 절대다수가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미조직노동자들과 비교했을 때의 ‘향상’일 뿐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본측의 노동강도 극대화 속에서 혹사당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대립 축에 서 있는 자본측의 ‘병 주고 약주기’ 전략이라는 철그물에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결코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그 결과는 현장에서 정규직 노동자가 갖게 된 패배감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부채의식, 노조운동의 전반적 ‘우경화’로 귀착되었다.

지금 현장을 지키고 있는 중년의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주된 구성은, 노조운동의 급격한 활성화 기간(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에 대중적 투쟁을 경험함과 동시에 그 투쟁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갖가지 방식으로 가해진 자본측의 탄압을 겪어온 층이다. 이들, 그 중에서도 현장 활동가들은 현재, 한편으로는 그간의 투쟁들에 대한 깊은 패배의식을,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엄청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패배의식과 부채의식의 직접적 배경은 무엇보다도 자본측의 ‘신노사문화-신경영전략’을 꼽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신노사문화-신경영전략이라는 양날의 칼을 빼들고, 조직(노조)과 대중투쟁의 무력화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는, 기가 막힌 지금의 현장 상황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월등히 올라가는 한편 비정규직 고용이 크게 확대되고, 조합원과 노조집행부와의 결합력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은 그 허리라고 할 수 있는 대의원에 대한 노조의 장악력을 회사측에 거의 대부분 내주는 상황이 되면서, 조합원과 노조집행부간의 조직적인 연결고리가 끊어져버리게 된 데 있다.
거제도의 대우조선에서 1994년에 도입 완료된 ‘신인사제도’ 같은 것은 전국의 규모 있는 사업장에서 뿌리를 내리고 지금은 또 다른 개선안을 적용시키고 있는 판이다(이른바 ‘신경영전략’의 일반화). ‘능력주의 임금’체계의 확대강화와 ‘노-자 합의주의’ 그리고 ‘노동자 개개인에 대한 관리’ 강화를 축으로 한 이와 같은 자본의 전략은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친회사주의(애사주의)로의 포섭과 그 경계선 안에 들어오지 않는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극렬한 탄압을 반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힘을 얻어갔다. 그 과정에서 직권조인을 하고도 버젓이 ‘조합원을 위해 한 일’이라고 강변하던 인물들도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15년여 “조합원을 배신한” 그들의 납득할 만한 대중적 반성과 자기혁신과정을 조직할 여유를 갖지 못했던 과정은, 현장의 패배의식과 부채의식을 확대재생산하는 토양으로 작용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신경영전략에 의한 비정규직 확대 양상은 놀라운 것이다. 조선산업만 하더라도 1998년까지만 해도 전체 인원의 20~30%에 머물렀던 하도급인원이 2002년 현재에는 40~50%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나서, 현장생산직의 정규-비정규 인원비율은 동일하거나 비정규직이 더 많은 상황이 되어 있다. 1998년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를 본격 집행한 DJ 정권 출범 직전에 정부 및 경총과 ‘대타협’한 정리해고제 도입 등의 결과 정규직은 이제 안팎으로 몰리게 되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한편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전국적 정세에서 정권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울타리를 쳐주는 가운데 현장에서 벌어진 자본측의 ‘신경영전략’의 확대적용은 그보다 더한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안겨주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부터 한동안(아마도 전노협 시기 초반 3년간)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에서는 전반적으로 적과 동지가 분명했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전반적으로 원칙적이고 전반적으로 투쟁적이었다. 논리는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숨죽여 누적되었던 불만들이 폭발하기 시작하자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투쟁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실 그 자체가 적과 동지를 구분해 주었다. 투쟁의 장이 그대로 학습의 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과정을 겪은 뒤로 자본측은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 포항제철과 LG그룹(당시 럭키금성그룹) 계열사에서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신경영전략’ 프로젝트다. ‘신경영전략’의 수법들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측면에서 분석되었지만, 그 요체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노동자들이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게, 아니면 아리송하게 만들어버리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신노사문화’라든지 ‘노사 상생의 문화’라든지 하는 용어들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전체 임금노동자의 1/8 가량 되는 조직 노동자, 1/17 정도 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에 대한 정권과 자본측의 공격과 회유는 이미 제도화를 끝마친 지 오래되었다. 노조운동의 활성화와 거의 동시에 시작된 자본측의 ‘신경영전략’ 프로젝트는 지금에 와서는 현장의 노동조합운동 조건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1987년 이후 투쟁의 역사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규모 사업장들의 현재 상황은 그 점을 말해주고 있다. 현장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완전히 양분할되어 있고, 현장활동가들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1998년까지도 그나마 활동기반을 유지해왔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가 요즘에는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만 보아도 노동조합운동의 현실을 가늠할 수 있다.
‘현장 투쟁동력 약화’라거나 ‘현장 공백’ 등이 노동운동 현안으로 떠오른 지도 5년 이상의 기간이 지난 상황이다. 그동안 현장활동가들이 거저 놀고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입체적이고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들어왔던 자본측의 공격들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현장활동가들의 패배의식과 비정규직에 대한 부채의식의 진앙지는 이러한 배경들 속에서 형성되어, 해소할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틈바구니에서 급속하게 ‘현실성’을 획득하면서 등장한 것이 ‘정책참가론’ 같은 류의 이른바 사회적 합의주의, 노자담합주의, 정부와 재계에서 말하는 “노사 상생의 길” “윈윈 전략” 등에 들러리를 서는 다종다양한 세력들이다. 그들에 의한 노조운동의 전반적 ‘우경화’는 깊은 패배의식과 부채의식에 시달리고 있는 현장 활동가층에게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정부와 재계가 아킬레스건을 잘랐다. 바로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 틀’이다. 시절이 바뀌어 정권이 두 번이나 갈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과거의 노조운동 출신자들이 정권의 노동관련 요직과 실무진들에 포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노조운동을 가르쳤던 당사자들이다. 대표적으로는 김금수 노사정위원회 현 위원장을 꼽을 수 있겠다. 그는 화려한(?) 경력의 ‘노동운동가’였다. 그는 명문대학 명문학과에서 말하자면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70년대라는 엄혹한 시기에 한국노총 민주화를 추구하면서 ‘노동교육협회’를 창립하고 오랜 기간 현장교육에 독보적이다시피한 활동력을 조직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1994년에 한국노동사회연구소로 노동교육협회를 확대 재편했다. 그의 수십 년에 걸친 활동의 결과는 지금 온전히 노무현 정권하의 노사정위원회로 귀결되고 있다. 그가 수십 년에 걸쳐 뿌려온 씨앗들은 현재 노무현 정권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전략, 즉 자본측의 위기관리전략들을 집행하는 어느 한 구찌들로 포진되어 있다. 바로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제기하고 있는 ‘연대기금’이 현장에서 창궐하게 된 배경이다. 부르주아 언론이나 자본측이 주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집단 이기주의’와 구분이 되지 않는, 더욱이 적과 동지가 애매한 상황에서 현재의 고달픔, 즉 패배의식과 부채의식에 허덕이게 된 현실에서 달콤한 하나의 ‘묘책’처럼 ‘연대기금’이 등장한 것이다. 현장의 비정규직에 대한 부채의식도 덜어줄 것 같고, 자본측에게 지금까지 착취한 것의 일부만이라도 내라고 ‘공세’를 취할 수도 있고, 노조도 출혈을 감수하겠다고 해서 ‘집단 이기주의’라는 더러운 이름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되면 “계급적, 사회적 연대의 기반을 상실”할 우려도 해소될 것 같으니, 완전히 꿩먹고 알먹고, 가재잡고 도랑치고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망상은 망상으로 그쳐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누가 이 땅,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대화’를 통해 노동자계급에게 가재잡고 도랑까지 치는 걸 허용하겠는가?

사회담합주의에 휘말릴 운명의 자동차 산업발전기금 제안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기업의 신경영전략의 근본적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자본의 이윤증대에 있다.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려고 하는 이유가 자본의 이윤증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윤증대 경쟁에서의 “경쟁력 강화!” 이것이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이 추구하는 핵심 화두다. ‘국가경쟁력 강화’ ‘기업경쟁력 강화’ 그리고 ‘개인의 경쟁력 강화’ 등등, 사람까지 상품으로서 남보다 우위에 서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사람들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다.
이러한 논리들이 현장에서 정규직들에게는, 서로 정리해고 당하지 않기 경쟁과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감내하기 경쟁으로 전이돼서 나타났다. 노조고 뭐고 짤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과 사측이 일을 주는 한 무조건 묵묵히 죽어라고 일하는 게 임금을 많이 받을 수 있고 짤리지도 않는 방법이라는 생각들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들에게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어떻게 해서든 일자리를 구하고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고용계약이 불평등해도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게 되고, 어떻게든 좀 더 나은 계약관계로, 될 수 있으면 정규직으로 상승하기 위해 정규직보다도 더 열심히 일함으로써 이른바 경쟁력을 키워 가려는 모습으로 전이되어 나타났다. 이러한 현장의 분위기와 모습들은, 그것이 아무리 작고 사소한 분야에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부르주아 언론과 정부 그리고 재계에서 열렬히 칭송을 받는다. “근로의욕 충만”과 “근로자의 미덕” 같은 표현들이다. 설날 같은 명절 때 철야 근무하는 현장을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것은 아주 흔한 레퍼토리다.
주야 맞교대를 기본으로 하는, 말하자면 철야노동을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에게도 ‘연대기금’의 물결이 몰아닥쳤다. 그것이 들어오게 된 근본배경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현장 노동자들의 패배의식과 부채의식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수준에서 제기하는 것과 산하 연맹조직들에서 제기되는 것은, 구체성이라는 면에서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보건연대기금’으로 나갔듯이, 금속연맹 자동차분과에서는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되었다.
금속연맹에서 기금을 제기한 정세적 문제인식은 민주노총과 마찬가지로 ‘위기의식’이다. 바탕에는 “고용불안”의 그늘이 있고, 그것의 진앙지는 “산업공동화” 문제이며, 노조운동 기반 상실 우려가 동반돼 있다. 투쟁을 선동하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볼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인식이 깔려 있고, 정부와 기업이 납득할 만한 내용을 갖춘 ‘대안’을 찾아내서 그것을 무기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금속제조업이 요즘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 생산거점을 이동하는 문제가 재계의 화두로 등장한 것은 오래된 얘기다. 하지만 요즘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에 주도되어 노임(勞賃)이 전반적으로 너무 높아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기업의 일상화된 하소연(?)이 되어 있고 실제로 대거 해외로 생산거점을 이동하고 있다. 중고기계를 거간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팔려고 내놓은 기계들이 쌓이고 있다는 보도에서부터 자동차 조선 등 대규모 장치산업 각 기업들이 해외에 대규모 생산설비를 짓고 있다거나 이미 가동하고 있고 조만간 해외생산 비중을 몇 십 프로로 하겠다느니 하는 보도들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지금까지 짤리지 않고, 시급임금을 받으면서도 밤낮없이 일해 온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이제 새로운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동해 버리면 노동자들은 짤리는 것도 문제일 뿐 아니라 비정규직 일자리까지 없어질 판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나? 바로 “고용안정”이라는 것은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절체절명의 과제로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자본측이다. ‘생산성의 극대화와 효율경영’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노동강도의 극대화와 비정규직 양산’에 앞장 서오면서 이윤증대를 추구해왔던 자본측이 이제는, 고령화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의 노동강도를 기대할 수 없게 되고, 그렇다고 지금까지 ‘고임금’을 주어가면서 유지해온 정규직이기에 새로 정규직을 뽑아 쓰려면 젊더라도 이전의 ‘고임금’ 수준을 보장할 수밖에 없겠고, 비정규직을 더 쓰자니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조조직화에 나서면서 투쟁대오를 만들어가고 있고…. 이렇게 된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현실이다. 자본측은 이제 해외에서 임금노예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차분과 노조위원장들은 지난 3월 22일 공동기자회견을 열어서 다음과 같이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한국사회는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한 실업, 빈부격차가 확대됨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차떼기’를 비롯하여 정치권과 재계에서 수백억의 비자금이 오가는 등 막대한 자금이 여전히 부패한 정치에 들어가고 있다. … 사회 각 영역에서 실업과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이 절실하다. 이에 우리는 … 대규모 회사들에서부터 비자금을 통한 비리정치자금조성과 불필요한 접대비 등을 없애고 이를 사회적으로 환원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고용비중과 산업연관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 기업의 이익을 해당종업원과 주주 및 재투자로 분배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 우선 완성차 업체부터 순이익의 5%(2003년 실적 기준 제안액 1,781억원)를 기금으로 적립하고 노사가 공동기구를 통해 운영하자. 기금이 조성된다면 우선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한 곳에 집중 투자되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기초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없다. 노동자의 삶의 질, 노동의 질을 높여내고 그에 기초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나가야 한다. 이에 기금은 자동차산업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고용과 숙련향상 등 자동차산업의 노동시장에 쓰여 져야 한다. … 아울러 우리는 자동차산업의 노동조합이 임단협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높여 ‘더불어 함께 가는’ 공동체 실현을 위한 모든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임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언한다.”
그리고 완성차 4사 노조들은 이 기금요구를 올 임단협에 특별요구로 포함시키면서, 조합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공동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다시 한번 알렸다.

“존경하는 조합원 여러분! 그동안 우리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당해 왔지만 다가올 미래도 만만치 않습니다. 시장개방, 산업공동화, 모듈화와 외주화 등 지속적인 도전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산업 전체의 미래를 전망하고 대책을 차곡차곡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완성차 노조들은 연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금속산업연맹 자동차분과를 중심으로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2일 저희는 완성차 노조의 공동요구로 ‘산업발전 및 사회공헌기금’을 만들 것을 공개적으로 제안했습니다. 산업연관성이 큰 자동차 대공장이 앞장서서 사회적인 책무를 실현하자는 취지입니다.” (완성차 4사 노조위원장들이 조합원여러분께 드리는 글, 2004.4. 금속산업연맹 자동차분과 완성차 4사 노조위원장 연서명)

자동차노조들이 요구하는 기금은 기업단독 출연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민주노총의 ‘연대기금’과는 기금조성 내역이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기금의 사용처는 고용안정과 비정규직 지원을 위한 사업 등으로 되어 있어 민주노총의 맥락과 비슷한 취지를 가지고 있고, 기금운영주체도 ‘노사공동운영’으로 상정하고 있어서 동일하다.
요컨대, 금속연맹 자동차분과 담당자와 자동차노조 위원장들은 ‘너희들이 만들어 놓은 덧은 너희들이 책임져라’라고 자본 측에 기금출연을 ‘압박’하고 있다. 현장노동자들을 쥐어짜서 남긴 순이익을 비자금이나 조성해서 정치권에 갖다 바치는 대신에 사회로 환원하라고 요구한다.
문제는 자동차산업이 향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구체적인 사용방법은 자동차산업 발전에 필요한 노사공동의 프로젝트나 그 외의 다양한 사회공헌에 사용하는 것을 포함하여 업계와 자동차산업노조들이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 3월 22일 기자회견문.
는데서 핵심적으로 나타나 있다.
자동차산업을 고부가가치화 해야 한다는 것은, 자본의 해외생산 확대 계획 등과 전혀 모순 되지 않고, 오히려 자본 측은 반색하며 반기는 주제어이다. 게다가 자동차산업발전? 대대적으로 반기는 자본 측의 핵심 코드이다. 자동차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윤을 많이 남겨야 한다. 정규직 핵심노동자를 필요최소한으로 한정하고 깨끗하고 노동강도 쎈 작업장을 만드는 일? 자동차산업 ‘발전’의 견인차가 될 것이다. 다가올 ‘고용불안’에 대비해서 고용불안을 가속화시키는 안이 아니고 무얼까.
그러나 금속연맹에서 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조건준씨는 한 토론회에서 “노동자들이 무슨 얼어 죽을 산업발전이냐. 이런 얘기하는데 이런 논의는 사실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논리라고 생각한다. 원칙을 벗어난 원칙적인 주장이냐, 원칙을 벗어난 주장이냐.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산업정책에 개입할 필요성이라는 것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대단히 많이 제기되고 있다. 구조조정, 매각 문제가 걸리는 투쟁을 하면 대우자동차 같은 경우가 그랬다. 도대체 국가가 산업정책을 어떻게 하는 거냐. 그 문제를 가지고 싸울 수밖에 없다. 과거의 노사간의 임단협 문제와 전혀 다른 범주의 문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산업정책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산업정책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동차 분과, 자동차 내에서도 금속도 그렇고 초기에는 산업정책 얘기했을 때 굉장히 많은 논란이 벌어졌지만 이제는 산업정책이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이런 문제를 논란으로 논쟁하는 것은 저는 아주 개인적으로 피곤한 문제다. 생각하는데 … 그리고 앞으로 한일FTA에 저항하는 문제로 산업정책이 관련된 문제라고 본다.”

“피곤하다”니…. 아무튼 그만큼 노조운동에서 ‘산업발전’ 문제는 논쟁이 되는 쟁점이고, 조합원의 ‘고용안정’ 입장에서 보면 현안이며, 자본 측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는 핵심코드이고, 사실상 노동자계급에게는 대책이 있을 수 없는, 더욱이 노동자가 대책을 낼 경우 자기발목을 자기가 쇠사슬로 묶어버릴 수밖에 없는, 그래서 이만큼 뜨거운 감자도 없는 쟁점이다. 조선산업에서도 이미 1999년에 영남노동운동연구소에서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대책으로 ‘조선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제시되었고, 꼭 그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금의 자동차공장보다도 더한 노동강도에다가 비정규직의 거의 폭발적 증가를 경험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언변과 지식과 논리력을 가지고, 풍부한 현장활동 경력을 가지고 쏟아내는 조건준씨의 ‘현장친화적’이고도 ‘현실적’이면서 ‘조합원대중에 충실한’ 그리고 투쟁만을 능사라고 생각하고 정책도 대안도 없는 ‘피곤한’ 사람들이 여전히 “노동자들이 무슨 얼어 죽을 산업발전이냐”고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논리’로 나가고 있는 것이 천 번은 옳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기금조성이라는 노동자 살해프로젝트, 당장에 걷어치우자!

결론은 현재 창궐하고 있는 ‘기금’논의들을 당장에 걷어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명백하게 노동자 살해 프로젝트이다.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달콤한 대책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무엇인가는 환상일 뿐이다.
민주노총은 ‘연대기금’ 조성이 아니라 시간급제 철폐, 고용 및 노동유연화 정책 폐기, 교대근무제 등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변형노동시간제 폐기 투쟁을 축으로 ‘계급적, 사회적 연대기반’을 만드는 것에 즉각 착수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민주노총 산하조직들에서는, 기왕 이번에 보건의료노조에서 산별요구로 내세운 ‘보건연대기금’이 합의되었으니, 그것이 이후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아 가면서 채택 여부를 가름해도 전혀 늦지 않을 것이다.
금속연맹 자동차노조들에서는 기금조성 제안을 철회함으로써 자본 측을 대차게 압박할 필요가 있다. 자본 측은 아마도 기금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조 측이 기금에 매달리고 있는 한 절대로 그냥 내지는 않을 것이다. 노조가 자본 측을 ‘압박’하는 한 자본 측은 결코 기금을 조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 측은 노조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고, 자신들이 출연할 수도 있는 기금(순이익의 5%)의 수십․수백 배 이상 되는 이익을 목표하면서 노조들을 압박할 것이다.
자동차노조들은 현장의 조직력이, 조선산업에서처럼 노조집행부와 조합원의 연결을 대의원 수준에서 단절시켜내는 상황이 전개됨으로써 무력해지는 상황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노동강도 문제에 대한 정면 돌파와 임금 및 노동시간에서의 각종 변형을 곧게 펴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심야 교대제노동과 시급제 임금 철폐가 핵심이다. 비정규직의 처우가 정규직과 버금가는 것으로 만드는 길도 거기에 있다.
제조업뿐 아니라 사무전문직 노조운동, 철도와 지하철 등 궤도부문, 운수부문 등 전 산업적으로 변형노동시간제는 현 시기 최대의 철폐과제이다. 더불어 노동강도 문제와 노동자 건강 문제, 능력․성과주의 임금체계의 확대적용 문제, 사고재해와 직업병에 대한 요구들로 투쟁과제가 넘쳐나고 있다. 산별노조가 만일 건설된다면, ‘기금’이 아니라 현장의 산적한 투쟁과제들에 대해 전면적으로 대책을 제시하고 산하조직들에서의 자본 측의 공격에 대항하는 투쟁을 아래로부터 조직하는 데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임단협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결코 다른 이른바 ‘사회적 의제들’에 의해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
각종의 ‘기금’ 조성 논의를 확실하게 걷어내고, 노동자의 이성을 되찾자!
한/노/정/연

지금현장은


금호타이어 비정규직노동조합의 투쟁과 교훈
지금 현장은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투쟁과 교훈


박 광 욱
금호타이어 비정규직노조 전사무처장






들어가며

박일수 열사의 분신은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급부상한 상황에서 그것이 자본의 야만적 수탈이라는 본질적 성격은 물론 노동자계급 내부의 갈등까지 보여준 사건이라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반성과 성찰을 불렀다.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는 열사의 마지막 외침은 과연 자본에게만 보내는 절규였을까? 열사를 비웃는 현중노조의 가련한 양심은 단지 ‘어용 탁학수 집행부’이기에 가능한 뻔뻔함이었을까? 열사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계급적, 전투적 노동자운동을 자임하는 우리들이 보여준 무기력한 연대와 협상에 목메단 투쟁전술, 단사내에서 분향소 하나 달랑 설치하는 단촐한 실천은 탁학수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달랐는가?
신자유주의라 명명되는 현대자본주의는 이윤율의 저하의 악순환을 가혹한 착취로 돌파하려한다. 그것은 비정규직 및 중소영세사업장의 저임금, 고강도노동, 고용불안을 부르며, 그것의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 소수 정규직의 상대적인 우월성을 부각시켜 분열을 통한 통치를 안정화시킨다. 하지만 그 소수의 정규직 역시 안전하지 않다. 이들이 안전한 시기는 단지 비정규직의 일반화(저들의 매끈한 표현대로라면 ‘노동유연성의 제고’)가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시기까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투쟁은 ‘춥고 배고픈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라는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투쟁이 아니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근본적으로 구조조정 분쇄투쟁이며 전계급적 역량을 집중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총자본과 총노동의 격돌지점이다.
한라중공업 사내하청투쟁으로 촉발된 비정규직 투쟁은 한통계약직, 캐리어 등 한국사회를 뒤흔든 굵직한 투쟁으로 현상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와 공동투쟁이라는 틀을 뛰어넘지는 못하는 “비정규직 주체들에 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금호타이어의 사례가 중요한 시사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물론 금호타이어 역시 집행부의 연대에 머무른 한계 역시 존재한다. 더구나 정규직의 정파싸움에 비정규직이 휘둘리는 취약성도 드러낸다. 또한 정규직과의 연대는 말 그대로 “민주노총 운동의 현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조합”과의 연대를 의미하는 바, 교섭과 합법성의 틀에 얽매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전투적이고 변혁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한 한계 역시 명백하다.
노조의 설립과정에서부터 04년 임단투에서의 45명 추가 정규직화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굵직한 대목을 중심으로 금타 투쟁을 돌아보고자 한다. 물론, 필자의 실력상 이 투쟁의 공과를 논하기에는 미력하다. 동지들의 냉정한 평가를 기대한다.

1. 비정규직노조의 설립 - 정규직 노조의 준비된 사업.

금호타이어 비정규직사업은 금호타이어노동조합 본조(광주공장)에서 2003년 3월부터 시작한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사업기획안’에 따라 정규직노조가 조직한 사업으로 먼저 초동주체를 발굴하여 주체역량을 형성하기 위한 집중학습을 하였다.
또한 정규직을 대상으로 집행간부와, 조합원교육을 준비하여 실시했다. 이에 크게 반발 없이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하여 비정규직사업계획과 예산을 결의 받았다.
이후 2003년 9월 연맹미조직특위에서 비정규직관련사업 상황을 보고하고(불법파견 면접실태조사와 초동주체관련) 광주-곡성 비정규직 담당자를 선정하여 사업공유와 준비를 하기로 하고 초동주체 형성에 대한 노력을 하기로 하였으나 곡성은 주체형성을 하지 못한다.
한편 비정규직 조직사업에 돌입한 정보를 입수한 회사는 업무지원팀에서 전문노무사를 고용하여 불법파견에 따른 요소들(혼재와 작업지시, 도급계약서 갱신)을 없애고 있었다.
이로 인해 예정보다 빨리 노조설립을 추진하였고, 비정규직노조설립에 따른 초기집행부 공개를 최소화하기 위해 2명으로 설립신고(11월23일)를 하고 회사의 탄압으로 인한 징계와 해고가 자행되고 구속이 되어 지도 집행력에 차질이 생기면 2기 지도부에 대한 준비로 초동주체 일부를 남기게 되었다.

회사의 대응과 상태

출범이후 도급사 사장이 “노조에 가입 하면 해고하거나 업체를 폐업 시키겠다”는 등의 협박과 회유가 있었으나 정규직노조 간부가 함께 가서 도급사장의 협박에 항의하고 부당노동행위고발로 강경히 맞서는 가운데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원청에서는 도급사노조에 대한 입장으로 대자보(도급사의 일로 규정)정도 붙이고 정규직노조 때문에 별다른 대응을 찾아볼 수 없었다.
노동청 시정지시(118명 불법파견자)에 따라 시정계획서를 제출하고 기습적으로 53명(이외는 완전도급)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이후 김홍제 연맹부위원장, 배현수 위원장, 안지섭 지부장, 이한섭 노무상무와의 면담과정에서 유보하기로 한다.
회사는 다른 사업장의 경우처럼 징계 및 해고와 도급사폐업 등의 강경한 대응은 없었으며 이는 정규직노조가 함께 해서 상대적으로 무기력했다라고 판단된다.
또한 회사는 교섭에서도 밝혔듯이 극단적인 해결방식(파업투쟁)보다는 대화와 교섭으로 합리적으로 해결하자고 요구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에 상당한 부담을 갖는다. ꡔ정규직 : 투쟁계획서 中ꡕ

비정규직노동자,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가입 첫날, 100여명이 넘게 조합에 가입한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참한 처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규직조합의 협조가 없었다면 실현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규직노조 간부들이 현장을 돌며 조합원 가입을 받아주고, 비정규직노조를 보호하고 함께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 조합가입의 물적 기반이 되었다.
대공장노조가 갖는 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조합원들은 ‘정규직의 보호와 지원’을 무엇보다 신뢰한다. 이는 투쟁과정에서 다소 희석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비정규노조의 자주성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된다.
한편 정규직 주도형 비정규노조는 특성상 ‘현장 활동가’ 풀을 갖기 힘들다. 목적의식적으로 현장에 들어간 활동가가 없다보니 6개월여의 교육은 ‘원론에 대한 개괄적 교육’이나 ‘조합실무교육’ 수준에 그치고 만다. 당연히 비정규노조의 정규직노조 의존도는 설립 이후 더욱 커진다. 현장에서 시시각각 발생하는 다양한 사태에 대해 비정규노조는 대응할 실력도 여력도 되지 않는다. 또한 투쟁, 조직, 교육 등에서도 자기 방향을 갖기 힘들다. 이런 과정에서 정규직노조의 연대는 자칫 개입으로 확대되기 쉽고, 비정규노조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것과 현실적인 한계를 보완해주는 것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극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2. 정파구도

정파문제는 우리 운동의 고질적 문제임에도 섣불리 지적하기 힘든 문제다. 상대편의 평가와 관점도 경청해야 하고, 무엇보다 글을 쓰는 자신은 과연 정파로부터 자유로운가 하는 점에서 당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금호타이어는 런닝메이트를 채택하지 않아 본조-지부간 정파문제가 고질적이다. 현재 광주본조는 소위 좌파계열이, 곡성지부는 소위 자주계열이 집행하고 있다.
본조와 지부의 정파적 경쟁은 때로 운동의 건강한 발전을 추동하기도 하지만 대개 ‘주도권 쟁탈’ 혹은 ‘상대방 흠집 내기’로 변질되곤 한다.
비정규노조를 주도하고 ‘선점’한 광주공장과 ‘후발주자’인 곡성의 경쟁은 각 공장 비정규직노조 조직의 급격한 확대에 무엇보다 큰 성과를 내오게 했다. 한편 각 현장조직은 서둘러 규약을 개편해 비정규직 노동자도 현장조직에 가입할 수 있게 하였으며 경쟁적으로 지지성명 및 유인물을 배포하여 초기 조직화와 여론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각 조직과 집행부 간의 주도권 쟁탈은 추후 커다란 질곡이 되었으며 더구나 자립성이 취약한 비정규노조 역시 광주와 곡성 각 집행부의 성격에 따라 동일한 입장을 형성하게 되었고, 비정규노조마저 광주와 곡성간 앙숙이 되다시피 했다.
특히 투쟁전술논의에서 이 대립은 극에 달했다. 사측이 일방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한 53명을 어떻게 처리할지의 문제에서 시발되어, 비정규직 독자투쟁 노선의 곡성(자주계열)과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 전술을 채택한 광주(좌파)간의 전술논쟁은 무려 한 달 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어떠한 전술도 내놓지 못했다. 이런 혼란을 ‘무마’하기 위해 연맹이 개입하여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대책위’가 건설되었고, 대책위는 ‘불법파견 시정지시자의 정규직화’에 관한 교섭 테이블을 이끌어 냈다. 이로써 상당한 성과가 도출되기는 하였지만, 이는 성과의 수혜자층이 법률적 규모로 축소된 것이다.
그러다 최근의 ‘노무사 해임 및 간사 해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파행국면은 정파간의 갈등을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출범초기부터 무리한 개입과 종파적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켜온 일부 세력이 2기 지도부의 출범을 전후해 1기 지도부를 어용으로 매도하고 소위 ‘좌파’로 분류되는 노무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간사를 해고하는 등 공공연하게 친정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심지어 수십명의 조합원들의 생존이 걸린 각종 구체신청과 진정건 등이 계류중임에도 불구하고 노무사와의 계약을 해지한 것과 04임단투에서의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안”을 폐기하고 ‘임단투 후 점거투쟁에 돌입한다.’는 황당한 안을 내민 것 등은 정파가 종파로 타락할 때 그것이 계급투쟁의 전진이나 조합원들의 생존은 외면하고 얼마나 ‘조합권력’에만 눈이 멀게 되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정파구도의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실력상 논의를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 다만, 금호타이어에서 드러난 정파문제는 현재의 민주노조 운동 및 추후 비정규직 투쟁에 시사하는 바가 큰 만큼 정파의 정당한 경쟁과 타락에 대해 객관적이고 치밀한 검토와 평가가 필요하다.

3. 정규직의 연대

금호타이어 비정규직투쟁의 성과로 많은 이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꼽는다. 조합은 실제로 각종 교육과 자료 등을 통해 비정규직 철폐의 당위성을 꾸준히 해설하였고 그 성과가 축적되어 비정규직과의 연대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객관적 수치로 최근 임단협에 대비한 정규직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조합원 중 57.3%는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적극 지지한다는 답변을 내놓았고, 비정규직 투쟁에 참여하겠는가는 질문에 33.2%가 적극참여, 47.9%가 상황에 따라 참여하겠다고 밝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호응을 보였다.
이것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안정적으로 유지된 물적 토대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상적인 의사소통도 중요한 원인이다. 조합설립 초기,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이 사고치고(?) 정규직이 수습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자주 발생되기도 했다. 이는 노동조합운영과 연대의 기본 룰에 익숙하지 않은 비정규직의 미숙함에서 비롯하였다. 정규직 역시 비정규직노조를 독자적인 노조가 아니라 ‘일개 부서’ 혹은 ‘사업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가 빈번해지자 양 노조는 ‘정규직-비정규직 공동전술회의’ 테이블을 마련하여 세세한 부분까지 협의하였고, 일주일에 두 번 정규직 조회 후 티타임을 가지며 일상적인 소통구조를 확보하였다. 물론, 이런 구조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 불협화음을 불식시킬 수 있었다.
한편, 정규직의 연대가 형식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정규직 집행부가 비정규직 투쟁 내내 ‘주5일제 별도요구안’이나 ‘성과금 투쟁’ ‘임단협’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진행해 왔고 비정규직 투쟁은 한 두 명의 간부가 자신의 업무와 병행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규직 노조는 매주 수요일을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날’로 정하고 출퇴근 선전전, 중식집회 등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하였으나 실제로 잘 되지 않았다.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정규직이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비정규직이 건드리거나 조합주의적 틀을 뛰어넘는 투쟁을 계획하고 있을 때의 정규직의 반응이었다. 예컨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상적 갈등 ― 그러니까 작업과정에서의 고압적인 태도나 업무지시 등으로 현장 내에 다툼이 있을 때 정규직은 ‘비정규직에서 또 사고 친다.’는 반응을 보이며 ‘조합원 눈치 보기’로 후퇴하기도 한다. 또한 5자회의(정규직, 비정규직, 상급단체)의 결정사항을 보자면 대개 ‘교섭’과 ‘보여주기식 투쟁’의 범주를 넘지 못한다. 물론 논의과정에서야 항상 전투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이 운위되지만 언제나 결론은 ‘통제가능한’, ‘합법적’ 투쟁의 틀에 머물렀다. 일례로 2월의 ‘크릴룸 점거투쟁’이 계획되었을 때, (물론 후에 이는 ‘시기적으로’ 오판이었음이 판명 나 폐기된다) 비정규직노조는 결사전의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정규직은 대단히 껄끄러워한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충분한 논의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투쟁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집행부가 비정규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기꺼이 손에 쥐었다는 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긍정성이다. 특별한 이견 없이 초지일관 비정규직 노조의 활동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준 정규직 노조가 없었다면 과연 이 투쟁이 가능했겠는가? 비정규직 투쟁 담당자 역시 정규직 내 불협화음이 있었다면 이 사업을 완강하게 수행하지 못했을 것임은 자명하다.

4. 교섭의 성과와 한계

앞서 지적했듯, 정파문제와 함께 투쟁동력의 미력함으로 교섭의 폭이 축소되었다. 4월 29일의 ‘도급직 관련 합의서’(소위 282명 정규직화)는 전체 비정규직노동자의 정규직화와 처우개선이 아니라 ‘불법파견 시정대상자’로 국한된 것이다. 또한 53명은 3월 5일자로 정규직화, 75명은 4월 29일자로 정규직화, 나머지는 올해, 또 일부는 2005년 말까지 정규직화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도대체 왜 이렇게 정규직화의 기준도 원칙도 없는 합의서가 나왔는지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물론 이런 지적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설령 타협을 인정하더라도 이것이 최선이었는지 지적하는 것도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4월 합의의 성과 역시 명확하다. 무엇보다 2년 이상과 이하를 가리지 않고 전원 정규직화를 확보했다는 것과 인원은 물론 공정까지 정규직화 하였다는 것이다. 공정에 대한 정규직화는 특히 주목되어야 한다. 이는 추후 비정규직의 채용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04임단협에서의 ‘비정규직 별도요구안’은 크게 5가지 항목으로, 4월 합의에 담기지 못한 내용을 포함하였다. 공정의 정규직화와 추가 정규직화, 정규직전환자의 근로조건,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처우개선, 비정규직 건강권 보장, 비정규직 노조활동 보장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일각의 종파행위로 04임단투는 아무런 투쟁도 없이 흘러버렸고 비정규직 문제는 임단투의 쟁점으로 부상하지 못했다. 그 결과 성과는 대단히 축소되었다. 그나마 주목할 점은 추가로 45명이 ‘불법파견 등 법률적 조치와 무관하게’ 정규직화 되었다는 점이다.
금호타이어 비정규직노조와 관련된 교섭은 다양한 정세적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투쟁 속에 이루어지지 않는 교섭, 교섭 그 자체를 위한 교섭이 얼마나 허무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성과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싸워 쟁취할 수 있는 성과들”에 비한다면 금타가 쟁취한 <330여명의 정규직화 및 128개 직무의 정규직화>는 어쩌면 세발의 피에 불과하다.

이상으로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개략적으로 훑어보았다. 아직 다룰 수 없는 이야기도 있고 필자의 능력상 알지 못하는 것도 있다. 특히 교섭과 정규직의 연대에 대해서는 해봐야 ‘입바른 소리’에 불과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게 말 할 수는 있지만 그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때 400명을 상회하던 조합원은 이제 8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경비, 운수, 미화 등 간접부서의 고령자들이다.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은 이제부터다.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들 역시 이번에 검증될 것이다. “노동자는 하나다!” 투쟁기간 내내 목이 터져라 외쳤던 이 구호를, 정규직으로 전환된 동지들의 실천적으로 증명해낼 수 있을지, 그리하여 비정규직 노동자가 새로운 투쟁의 주체, 현장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검증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망을 덧붙이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금호타이어 비정규직노조를 조직할 때와 마찬가지로, 조합원들이 보여준 극심한 불안심리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로 우리의 ‘화려한 성과’가 돋보여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통계약직’, ‘캐리어’, ‘기아’ 등에서 활동가는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지만 대중은 그렇지 못하다. 해고와 징계, 각종 탄압의 위협은 조합원들의 활동을 극도로 위축시킨다. 우리 역시 그랬다. 다양한 문제로 내부는 곪아가더라도 겉은 화려한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가 새롭게 비정규직 투쟁을 결의하는 동지들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한/노/정/연

2004-06-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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