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에
민주노조에 대한 갈망은 살아 있다!
김 유 나
회원
제1회 포항시민의 날을 맞아 30만 명 이상의 인파들이 모인
가운데 6월12일 포항에서는 초 매머드급 규모의 불꽃 축제가
열렸다. 아름다운 불꽃들이 펑펑 터지고 'I love pohang'이라는
글자가 밤하늘에 새겨지자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포항시는 떠나갈
듯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환호성을 자아내고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감동의 순간도 사람들에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불꽃 축제에 투여된 비용. 국내
최대 기업인 포스코는 불꽃 축제를 위해 무려 10억이나 되는
돈을 투입했다. 이 어마어마한 돈은 연봉 1천800만원 받는
노동자가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55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으로, 포스코는 40분간의 멋있는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돈을 허공에 뿌렸다.
포스코에 민주노조에 대한 갈망은 살아 있다!
이날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불꽃은 한순간의 감동으로
끝났지만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가슴엔 평생 잊을 수 없는 악몽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악몽의 시작은 노동조합이 생겨나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 노동조합 운동의 시작
포스코 협력 노동조합 정상화 추진위원회(이하 노정추) 장영태
위원장에 따르면 포스코 노조는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던
1987년에 3번의 설립 시도가 있었고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후 1년이 지나 1988년 6월26일 제철정비(현 포철산기),
삼풍공업, 선일기업 등 포스코 자사 및 협력업체 3사 노동자들이
모여 공동의 노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노조 설립의
기쁨도 잠시, 다음날인 6월27일 새벽 포스코에서 고용한 구사대
300명이 들이닥쳐 도끼와 낫으로 노동자들을 협박,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노조원 70여명이 농성을 벌여
노조탄압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자 당시 민정당
최고 대표위원이었던 포스코 창립자이자 회장을 역임한
박태준씨는 그해 대선을 의식해 29일 '노동조합을 인정
하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로 인해 생겨난 포스코 노조는 회사측의
꼭두각시인 어용노조로,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노동자들간의
갈등과 대립이 생겨났다는 것뿐이었다.
1988년 11월경에는 노동조합 초기멤버인 3사 외에 5개 노조가
합쳐 8개 업체 노동자들이 포스코 협력업체 노동조합연합회를
결성한다. 하지만 이 조직도 사측의 탄압으로 인해 와해되고
만다.
드디어 1991년, 포스코 노조에 민주 집행부가 들어서지만 사측은
노조원들을 해고와 구속으로 탄압하고 "전세자금, 주택자금을
회수 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집행부를 모두 탈퇴시켜 버리는
작태를 저지른다.
지금현장은
이 당시 상황에 대해 장영태 위원장은 "어용노조를 무너뜨리고
민주노조를 찾았다는 기쁨에 3개월 동안이나마 노동자의 가슴은
뜨거운 정열로 넘쳤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찼다"면서
"그러나 사측은 노동자의 이러한 노동조합에 대한 열정을 해고와
구속으로 탄압하고 민주노조를 압살해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했다"고 회상했다.
이때부터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포스코 노조는 어용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2. 포항에서, 광양에서
노동조합 가입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노정추가 지난 5월부터 공개적으로 노조가입운동을 하겠다고
밝히자 포스코는 노정추 회원 3명에게 같은 날 3일씩 서울과
군산, 한보철강 등으로 강제 출장명령을 내려 노조가입운동을
방해했다. 이 뿐 아니라 노조가입운동을 전개하는 조합원에게
경비, 노무부직원, 각 부서장 등 300여명을 동원해
노조가입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7월14일에는 광양의 노정추 회원 4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으나
부서장을 동원해 회유와 협박을 하고 급기야 사측은 나이든
부모에게 찾아가 "아들이 노조운동을 하면 해고를 당한다"고
협박, 결국 2명이 탈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같은 사실과 함께 더욱더 분노가 치밀게 만드는 사건은,
포스코 노동자의 대표(?)라고 일컬어지는 노경협의회 대표는
노정추가 노조가입운동을 했던 복지센터에 나타나 회사간부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악수를 하면서 "(노정추 활동에 대해)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라며 말끝을 흐렸다는 것. 포스코에
민주노조에 대한 갈망은 살아 있다!
이뿐인가! 지난 5월11일, 포스코노조와 노경협의회는 강창오
사장과 함께 임금동결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 작태까지
저질렀다.
이처럼 사측이 만들어낸 노사협의회의 구도가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으며 노동자간의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3. 무원칙 인사가 포스코 윤리 경영
포스코 이구택 회장은 '회사 이익보다 기업윤리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밝혀 많은 찬사(?)를 받았다면서 각종 언론이 보도했다.
하지만 '소리 없이 움직이는' 포스코는 포스코 건설 박득표
전회장을 등기이사로 재 선임하는가 하면, 포스코의 에어콘을
수리하는 용역업체 포항세기의 경우 포스코 주임출신을
과장으로, 포스코 차장출신을 상무이사로 발령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 같은 족벌경영과 낙하산 인사로 인해 포스코
협력‧용역업체는 포스코의 퇴직인사로 넘쳐흐르고
있다.
이에 따라 협력업체 상무이사는 연봉이 1억원이 넘는 돈을
받으며 호화롭게 생활하고 있는 반면 노동자들은 최저 임금에
허덕이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4. 포스코 협력업체 임금 실태 및 노동조건 보고
지난 15일 노정추 장영태 위원장이 내민 것은 세무서에서 발간한
계산서로 노동자들의 연봉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자료였다.
3조 3교대 근무로 한달에 2~3일밖에 쉬지 못하는 18년차 한
노동자의 연봉은 2천200만원.
94년부터 근무해 올해 10년차가 된 한 노동자의 연봉은
1천800만원이었다. 여기에서 각종 보험료와 세금을 제하고 나면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임금은 더욱 열악하다.
지금현장은
현재 포스코 협력업체 노동자의 임금은 올해 9월1일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 64만1천840원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상되기
전 최저임금 56만7천원보다 밑돌아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식대를 성과금으로 변칙 적용해 현 최저임금보다 약간 웃돌고
있는 실정이다.
또 3조 3교대에 특휴 2일이 휴가의 전부이며 잔업과 대근을 하면
휴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에 신음하고 있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휴일은 가족과 함께' '휴식과 재충전' '취미생활'
등을 운운하는 것은 사측이 지껄이는 사치스러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5. 이후 과제와 전망
포스코 노조 위원장 선거가 8월에 진행될 예정이다. 노정추는
이번 선거를 통해 어용노조 15년을 끝장내고 민주노조 출발의
원년으로 만들고자 계속적으로 노조 가입운동을 벌이고 있다.
장영태 위원장은 "노정추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도발해
오는 사측의 노동탄압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 대응할 것"이라며
"무능과 유착으로 얼룩진 어용노조를 끝장내고 반드시
민주노조를 쟁취 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한편 포스코 노조는 7월15일 현재 조합원 27명중 9명이 노정추
회원이거나 노정추 활동에 동조하는 조합원이고 18명이 사측의
노동정책에 길들여진 어용 조합원이기 때문에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10명의 조합원 가입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 침묵에서 벗어나 당당히 일어서야 할 때다. 묵묵히
현장에서 일만 하고 한숨쉬는포스코에 민주노조에 대한 갈망은
살아 있다!
일, 매년 반복되는 일로 분노를 삭이는 일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현장에서, 거리에서 노동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고 탄압에도 단결투쟁으로 맞설 수 있는 민주노조를
건설해 노동자들의 당당한 권리를포스코 복지센터 앞에서
노조가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노정추 회원들
쟁취하자! 포스코에서 민주노조에 대한 갈망의 소리들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