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중앙 지도부에게는 노동현장이 없는 것인가
김 영 수
연구위원
1. 힘찬 약속의 이중적 속성
힘 있게 준비하여 투쟁다운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힘찬 약속을
내세우면서 등장한 민주노총 중앙의 새로운 지도부들. 준비된
투쟁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힘찬 약속들. 민주노총 중앙의
지도부들과 조합원들이 힘찬 약속을 믿고 현장을 꿋꿋하게
지키면서 강고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야말로,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하는 환상의 트라이앵글이다.
민주노총 중앙의 지도부들이 노동현장의 다양한 투쟁을 책임
있게 조직하고 집행해 나간다면, 노동조합운동의 힘은 바로
이러한 약속을 바탕으로 하는 상호간의 신뢰에서 한층 강화될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의 조직력을 판단하는 여러 지표 중에
하나가 바로 지도부와 조합원간의 ‘신뢰’이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후보들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힘을 지도부들에게
위임하고, 지도부들은 위임받은 힘을 하나로 모아 조합원들의
이해를 전취하기 위해 투쟁의 전선에서 노력한다. 그러한
전선에서 지도부들과 조합원은 계급적으로 하나가 된다.
노동조합운동이 발전하게 되는 기본적인 원칙이자 노동자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동력이다.
특집
지도부든 조합원이든 약속이 그냥 하나의 약속으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있다. 지도부로 나서고자 하는 사람들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아주 많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믿은 조합원들이
지지하지만, 정작 당선이 되고 나서는 후보자였던 사람이든
후보자들을 지지했던 조합원이든 그러한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노동현장에서 만들어지고
노동현장에서 실현되는 약속이 거의 없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도부가 조합원과 함께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제시되는
약속만큼은 다르다. 공약의 형식으로 제기되는 약속이
추상적이고 중장기적인 과제라고 한다면, 투쟁의 현장에서 한
약속은 조합원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만 하는 상황에서
제시되는 구체적이고 단기적이다. 조합원들은 공약의 형식으로
제시되는 약속에 대해서는 그리 민감하지 않지만, 투쟁의
현장에서 제시하는 지도부들의 약속만큼은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힘찬 투쟁을 전개한다.
그러나 투쟁의 현장에서는 종종 약속의 진위나 실행의 여부를
둘러싸고서 지도부와 조합원간의 싸움이 벌어진다. 싸움이
벌어지는 순간,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약속을 배반하는 지도부들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조합원들에 대해 서로 분노와 허탈감에 빠져들곤 한다. 문제는
전자의 현상과 후자의 현상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동전의 앞뒷면에 불과하다. 지도부는 지도부대로 조합원은
조합원대로 할 말이 많다고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보편화된
경우를 관료화된 노동조합운동이라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중앙 지도부에게는 노동현장이 없는 것인가
공약의 형식으로 제시되었던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의 힘찬
약속을 돌이켜 보면, 힘을 준비한 민주노총이 힘 있는 투쟁을
전개해서 다양한 성과들을 가시화하고, 그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투쟁들을 준비해 나가는 발전의 법칙을 제시했던 것
같다. 공약의 형식인 만큼 지도부의 임기 동안에 지켜야 할
약속이다. 그런데 투쟁의 현장에서 제시되는 약속은 투쟁하는
조합원들을 위해서라도 혹은 투쟁을 책임지는 지도부들을
위해서라도 단기간에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다. 문제는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 할지라도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지도부들이 있다면, 신뢰를 전제로 권리를 위임했던 조합원들은
위임했던 권리를 철회해야 한다는 점이다. 약속을 어기는
지도부들을 노동현장에서 수용하지 않았던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복권하기 위해서라도, 특히 분노와 허탈감이
쌓이고 쌓여 ‘껍데기만 남은 혹은 무늬나 거품만 있는’
민주노총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기업별
노동조합운동의 특성 중에 하나이기도 하지만, 조합원과 했던
약속을 어기는 지도부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한
경우가 너무나 많았던 것 아닌가?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의 힘찬 약속이 노동현장이나
투쟁현장에서 이행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투쟁의 현장에서 제시된 약속을 그 현장에서 지도부
스스로 무시하고 배신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도부들 스스로가 조합원들의 투쟁력을 와해시키거나
조합원들의 투쟁을 도구화 혹은 형식화하는 경우가 있었다면,
민주노총의 전체 조합원들은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 이 글에서
밝히는 사례만을 가지고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의 공약으로
제시된 힘찬 약속을 결코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쟁의
현장에서 조합원과의 약속을 지도부 스스로가 무시했던 너무나
중요한 사례나, 노동현장과 동떨어진 민주노총 중앙의 일부
사업들에 대해 이 글에서 밝히지 않을 수 없다.
특집
2. 투쟁의 현장과 너무도 동떨어진 지도부들의 약속
민주노총 중앙이나 업종산별연맹의 지도부들은 투쟁의 현장에서
적지 않은 약속을 한다. 선전과 선동을 목적으로 하는 약속이든,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 힘을 불어 넣기 위한 약속이든. 예를
들면,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하여 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을 끝까지 관철시키겠다는 약속은 너무나 일반화된
약속이다. 조합원들은 투쟁의 현장에서 너무나 일상적으로 듣는
지도부들의 힘찬 약속이다. 문제는 그러한 약속들이 커다란
앰프를 통해서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경향성은 지도부든 조합원이든 그
메아리를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투쟁을 책임지겠다는 지도부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겠다고 하지 않으면서 투쟁의
약속을 하지만, 조합원들 역시 너무나 추상적으로 제시하는
지도부들의 약속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집회투쟁의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정치적 연설로 간주할 뿐이다.
노동조합운동의 투쟁을 ‘집회와 행진’으로 형식화하는 것 또한
아주 자연스럽게 간주할 뿐이다.
민주노총 중앙은 지난 7월 1일을 앞두고서 ‘정부와 자본의
주5일제’를 ‘노동자의 주5일제’로 바꾸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올 상반기 내내 주5일제와 관련된 각종의
해설지침과 투쟁지침 등을 제시하고, 그러한 지침에 걸맞은
투쟁을 준비하였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중앙의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은 당연한 것이었고, 새롭게 투쟁을 위한
‘전략기획단’까지 구성하였다. 소위 ‘6말 7초 투쟁’을
총체적으로 구상하고 집행하겠다는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마도 ‘전략기획단’은 민주노총의 전체
투쟁역량을 하나로 모아 내는 구상에서 시작하여 그러한
투쟁역량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것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힘찬
투쟁의 약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약속을 이행하고자 민주노총의 중앙 지도부에게는
노동현장이 없는 것인가
하는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전략기획단의
구성이다. ‘전략기획단’은 중앙의 상무집행위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구성은 출발부터 중앙 지도부들의 의지를
실현하기에는 투쟁의 현장과 너무나 동떨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하였다 할지라도, 민주노총 산하 업종산별연맹의
상무집행위에서 단 한번의 논의조차 없이 구성된
‘전략기획단’은 현장의 투쟁조건을 실질적으로 반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투쟁전략과 투쟁역량은 중앙의
상무집행위원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산하 업종산별연맹의
투쟁역량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누구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의 결정과 지침을 하달하고, 산하 업종산별연맹에서는
그것을 수용하라는 관료적 방식에 다름 아니다. 투쟁의 계획과
일정을 구상하였으니까, 조합원들은 그 구상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6말 7초’투쟁을 구상한 내용이다. 민주노총 중앙은
6월 투쟁의 계획과 일정을 커다란 포스터에 일자별로 명시하여
전체 조합원들에게 배포하였고, 그 계획과 일정대로 각종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문제는 그러한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화하고 집행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전략기획단의 활동이
거의 가시화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가시화된 것 중의 하나가
중앙의 지도부들을 투쟁의 현장에 연사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투쟁을 기획하고 조직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6월에 두 번에 걸쳐 전개되었던 민주노총
중앙의 총력집회투쟁에서 나타났다. 총력집회투쟁은
위력적이지는 않았지만, 무난하게 전개되었다. 문제는
보건의료노조나 공공연맹 산하 궤도연대 노동자들의 파업과 같이
이미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하는
집회투쟁이었지, 민주노총의 전체 조합원이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집회투쟁이 아니었으며, 민주노총 중앙이 산하 조합원의 파업을
조직하는 투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물론 중앙의 지도부들은
투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현장의 조합원들에게서 그러한
전략의 원인을 찾으려 하겠지만, 조합원들은 투쟁의 목표에 대한
총연맹 지도부들의 의지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할 것이다.
특집
이와 같이 노동현장과 동떨어진 채, 지도부들의 약속만을
이행하려 했던 대표적인 경우가 노사정위원회와 관련된 중앙의
지침이다. 민주노총 중앙은 지난 5월 7일 ‘한국의 노사관계
현황과 노동조합의 사회적 대화 전략’이라는 주제로
노사정위원회의 참여를 둘러싼 토론회를 개최하고 난 이후, 5월
28일 산하 업종산별연맹에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조합원
토론지침을 공문으로 하달하였다. ‘사회적 교섭’의 필요성
여부를 중심으로 제기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지침이었다. 7월 20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가 개최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총연맹은 2004년 1차 중앙위원회(2004.3.3)와 2004년 제3차
중앙집행위원회(2004.4.1)의 결정에 따라서 이 공문을
하달하였다. 문제는 중앙의 사업이 6말 7초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산하 업종산별연맹의 조건을 고려하고 있느냐라는 점이다.
공문에서도 제시하고 있듯이, 민주노총 중앙은 전체 조합원의
토론을 요구하고 있었다. 중앙의 지도부들이 공약의 형식으로
약속했던 것을 이행하려는 힘찬 몸짓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민주노총 중앙의 이수호위원장은 새로운 형식의 노사정위원회를
논의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노사정지도자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 중앙의 지도부들은 한편으로는 상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
조합원들에게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조직적 토론을 시행하라는
조치를 취하였다. 노동조합의 조건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중앙의
지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6말 7초 투쟁도 준비하면서
노사정위원회의 참여와 관련된 토론도 집행하라는 지침을 하달한
것이다. 민주노총의 지도부든 조합원이든 이 두 가지의 사업을
동시에 전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두 가지의 사업을 동시에 민주노총의
중앙 지도부에게는 노동현장이 없는 것인가
추진할 경우에 두 가지 사업이 모두 부실공사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노동조합의 조건을 고려하면,
투쟁을 조직하는 것도 토론을 조직하는 것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할 지침이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잘 알고 있는 중앙의 지도부들이 그러한
공문을 하달한 것에 대해 두 가지의 의도를 추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은 새로운 형식의
노사정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조합원들이 편승할 것을 바라는 의도이다. 물론
사회적 교섭을 정착시키기 위한 중앙 지도부들의 사업 그 자체를
문제로 삼는 것이 아니지만, 왜 하필 산하 업종산별연맹이
2004년도 핵심적인 투쟁을 준비하는 마당에서 또 다른 한 판의
토론 마당을 개최하려 하는가이다.
둘째로는 필요 충분한 조건이 마련되지 않더라도 8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반드시 노사정위원회의 참여 여부를
결정하려는 의도이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도 민주노총
지역본부장들 대다수가 토론이 전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사정위원회와 관련된 문제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다루자고
주장하였다. 만약 조합원 토론이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민주노총의 8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안건으로
상정하지 말자는 의견이 제시된다면, 중앙의 지도부들은 다음과
같은 답변, 즉 ‘지난 5월 28일에 이미 토론을 조직하라는
공문을 하달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으로
일관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논리만으로 노사정위원회의 문제를
8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강행하려 한다면,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중앙의 지도부들에게 현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반드시 8월에 결정해야만 할 객관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중앙의 지도부들은 노동현장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지도부들의
이러한 행태는 투쟁의 현장에서 6말 7초 투쟁을 책임 있게
수행하겠다는 중앙 지도부들의 약속을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투쟁의 현장에서 하는 약속과 중앙에서 이행하려는 약속이 서로
이율배반적일 수 있는 것이다.
특집
3. 투쟁의 현장에서 약속을 하고 약속을 배신한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
지난 6월 24일-5일에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은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앞에서 노숙 농성투쟁을 전개하였다. 예년과는 달리 약 1,5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노숙 농성을 하면서 힘차게 투쟁을 전개하였다.
단지 몇 십 명이 참여하거나 많아야 몇 백을 넘지 못했던 예년의
투쟁과 비교하면, 올 해의 투쟁은 계급적 노동조합운동의
필요성을 조합원 스스로 인식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자리였다. 단지 여성연맹에 소속되어 있는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만을 위한 투쟁의 자리는 분명히 아니었다.
한국노총과 공동으로 전개한 투쟁이기도 했지만, 민주노총에
소속되어 있는 다양한 업종산별연맹이 참여한 투쟁이었다.
저임금 장시간의 노동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비정규 임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투쟁의 자리였다.
그래서인지 이 날 많은 연사들의 연설 내용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이 투쟁은 단지 최저임금 몇 푼을 더 올리려 하는
것이 아니다. 약 8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 임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계급적 투쟁이다. 최소한 77만원을
쟁취해야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60%,
70%, 아니 그 이상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확보하는
투쟁이다.’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이 비정규 임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이나 글로만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계급적 노동조합운동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투쟁의 약속’들이었다.민주노총의 중앙 지도부에게는
노동현장이 없는 것인가
6월 25일 아침, 조합원들은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투쟁의 약속을
하였고, 최저임금심의위원회 노동자 위원들도 조합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투쟁의 약속을 하였다. ‘노동자 위원들은 절대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77만원의 최저임금을
획득하고 더 나아가 비정규 임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까지 확보할 것입니다.’ 조합원들은 노동자
위원들에게 열렬한 투쟁과 환호의 박수를 치면서 노동자
위원들을 투쟁의 현장으로 보냈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 교섭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중앙 지도부들은 번갈아 가면서 집회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집회가 진행되는 중간 중간에 다음과 같은 보고를
하였다. ‘우리의 노동자 위원들은 결코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고, 그 결과 경총의 대표들이 몇
번의 수정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2%의 인상안을
제시했던 경총의 대표들이 8%대까지 수용하겠다는 수정안을
제출하였답니다.’ 등의 내용이었다. 조합원들은 그 보고에
열렬한 격려의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약속을 어기지 않는 투쟁의 지도부들을 투쟁의
현장에서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진입을 시도했던 예년의 투쟁과
달리, 집회투쟁만으로도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한국노총에 소속된 한 사회자는 12시가 되자 조합원들에게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 투쟁을 지속하자는 말을 하면서 6월
25일의 오전 집회투쟁을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밥을 먹고서
13:00 경에 집회 장소로 모여든 조합원들은 넋이 나갈 수밖에
없는 소식을 접하였다. ‘노동자 위원들이 13.1%(약 80,000원
정도)의 인상안을 수정안으로 제출하였고, 공익위원들이 그
수정안에 찬성하여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종결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투쟁에 참여한 1,500여 조합원들은 노동자
위원들이 수정안을 제출하고 그 수정안을 가지고 투표에
들어갔다는 말을 단 한마디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약속을
배신하는 지도부들의 모습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집
투쟁의 현장에서 겪는 배신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집회 장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민주노총 중앙의 이석행
사무총장은 교섭투쟁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최저임금심의위원회는
실질적인 임금교섭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정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제도개선을 위한 논의를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냈으니, 투쟁의 불씨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고가 이루어지는 중간에, 한 노동자는
연단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다음과 같이 항의하였다. “xxxx들아
그렇게 보고하지 말고, 잘 했어야 할 거 아니야. xxxx들아.”
사회자는 정리 집회를 하려 하였지만, 조합원들은 xx하면서
스스로 해산하였다. 해산하는 노동자들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다음에 다시 오나 봐라,
xxxx들아.”
보고가 진행되는 동안 xx라고 한 노동자의 행위를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그 노동자는 이미 계급적 투쟁을 포기한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했던 것인데. 이번 투쟁에서
보여준 중앙 지도부들의 배신으로 인해, 앞으로는 비정규 임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쉽지 않을
것이고, 투쟁의 현장에서 제시하는 총연맹의 지도부들의 약속을
결코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경우를 너무 과대 포장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최저임금 현실화 및
최저임금법 개정투쟁’은 결코 사소한 투쟁이 아니었다.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이 연사로 나와서 약속을 하였듯이, 향후
민주노조운동의 성쇠를 좌우할 수 있는 계급적 투쟁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은 결과적으로 계급적 투쟁의
불씨와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하고 말았다.
물론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들은 노동조합의 교섭투쟁에서 최선의
선택, 차선의 선택, 차차선의 선택을 할 민주노총의 중앙
지도부에게는 노동현장이 없는 것인가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고, 또한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전술적 차원의 협박용 카드였다고 반문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반문을 한다면, 중앙의 지도부들은
‘최저임금 현실화 및 최저임금법 개정투쟁’의 전략적 기조를
수정했어야 했었다. 적지 않은 조합원들도 이러한 반문을 수용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투쟁의 전략적 기조를 교섭의
과정에서 조합원들과 단 한마디의 상의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중앙 지도부들의 과감한 용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합원들은 그 자리에서 그저 지도부들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동원의 대상에 불과하였고, 지도부들의 어떠한
결정일지라도 그것을 수용해야만 하는 무능한 사람들에
불과하였다. 민주노총 중앙의 지도부들을 포함한 노동자
위원들은 순식간에 계급적 투쟁의 실질적인 주체들을
노동조합운동의 ‘한정치산자 혹은 금치산자’로 만들어
버렸다.
4. 현장이 없는 노동조합은 무늬만 노동조합
노동조합운동의 초자라 할지라도, 현장이 없는 노동조합이나
현장이 죽어가는 노동조합을 상상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자들은
현장이 살아 숨쉬는 노동조합운동 혹은 현장의 이해를 반영하는
노동조합운동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노동조합운동의
적지 않은 지도부들은 그러한 초자들을 한편으로는 경원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무능한 사람으로 치부하곤 한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치기에 불과하다든지, 이미 오래 전에 다 경험했다느니,
조직이란 원래 그런 거라느니 등등.
이러한 지도부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지도부들이 정말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책임을
져야만 할 부분에 대해서는 조합원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문제로 전이시키고, 조합원들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지도부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문제로 전이시킨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 반대현상이 정착되어도
노동조합운동의 역량을 강화하기가 쉽지 않은 판국에, 이러한
방식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지도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조합원에게 전이시키고 조합원이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지도부가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행태를 자연스럽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조합원이 지도부들에 의해 대상화되고
소외되는 현상이자, 노동조합운동의 관료화가 고착화되는
현상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부르주아 세력의 전통적인
통치전략과 궤를 같이 하는 현상인 것이다.
특집
노동조합의 지도부들이 종종 조합원 대중을 말하면서도 그
대중을 지도부들의 대중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면, 이것이야말로 부르주아 세력의 관료조직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부르주아 세력의 관료들은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부들을 자신들과 같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려 한다. 그것의
계기는 대부분 교섭투쟁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부르주아
세력에게 저항할 수 있는 노동조합운동의 계급적 역량을
약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세력은 노동자들의 계급적 투쟁을 무마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부들은 그러한
부르주아 세력과 투쟁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대중권력을
장악한다. 문제는 대중권력을 장악하고 난 이후에 부르주아
세력과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조합원과의 약속을 배신하는 행위가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조합원을 아주 잘 속이는 부르주아 세력의
관료들과 똑같다는 말을 듣고 싶은 노동조합의 지도부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 중앙의 지도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동조합은 부르주아 세력의 관료조직으로 변화될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 굳이 해외의 다양한 사례를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1970년대의 한국노총을 돌이켜보면민주노총의 중앙
지도부에게는 노동현장이 없는 것인가
잘 알 수 있는 문제이다. 노동현장과 유리되는 노동조합일수록,
노동현장과의 약속을 배신하는 노동조합일수록 그러한 가능성은
현실화된다. 조합원과 현장이 존재하지 않는 노동조합, 즉
무늬만 노동조합인 경우가 보편화되면 될수록, 노동조합
지도부들의 관료적 권력이 강화되면서 동시에 조합원들의 고통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조합원들의
고통스러운 삶만이 존재할 뿐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