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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 획 ◦ 번 ◦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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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Globalisierung)’
문제에 대하여
프랑크 데페(Frank Deppe) (독일 마브룩대학 교수)
이 글은 독일 마브룩대학의 프랑크 데페 교수의 논문
‘지구화(Globalisierung)’를 완역한 것이다. 데페 교수는
마브룩대에서 정치학과 정교수로 재직중이며 저서로는
독일노동조합운동사(편저), 공동결정비판(1969),
마키아벨리(1987), 체제경쟁을 넘어서(1993) 등이 있다.
데페 교수는 이 글을 통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를 자본주의 위기
극복의 무기로 규정하면서 그 계급적 본질과 이념적 포장에 대해
명쾌하게 반박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우리나라에서도 교육개혁, 노사관계 개혁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공세의 배경과 본질, 그 대응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번역하여 싣는다.
자본주의 위기 극복의 무기 -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20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는 “대 변혁기”, 즉 위기로 가득찬
격변의 시대이다1) 80년대 이래의 이 시대적 격변은 여러
시각에서 분석되고 토론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가령
사회학자들의 다음 글들을 보라. J Habermas, Die neue
Unübersichtlichkeit, Frankfurt/Main 1985 ; A. Giddens,
Beyond the Left and the Right. The Future of Radical
Politics, London 1995 ; H. Kern / M. Schumann, Das Ende der
Arbeitsteilung ? München 1984 ; 그리고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의 다음 글을 보라 : E. Altvater, Sachzwang
Weltmarkt, Hamburg 1987 ; Ders., Die Grenzen des Marktes,
Münster 1991 ; B. Lutz, Der kurze Traum
immerwährender Prosperität, Frankfurt/New York
1984 ; J. Hirsch/ J. Roth, Das neue Gesicht des
Kapitalismus, Hamburg 1986 ; J. Hirsch, Kapitalismus ohne
Alternative ? Hamburg 1990 ; Ders., Der nationale
Wettbewerbsstaat, Berlin 1995 ; B. Jessop, Regulation und
Politik, in : A. Demirovic u.a. (Hrsg.), Hegemonie und
Staat, Münster 1992 ; W.D. Narr / A. Schubert,
Weltökonomie, Die Misere der Politik, Frankfurt/Main
1994 ; F. Deppe, Politik am Ende des 20. Jahrhunderts,
Supplement der Zeitschrift Sozialismus, 9/1995 ; H. J.
Biueling / F. Deppe, Internationalisierung, Integration und
politische Regulierung, in : M. Jachtenfuchs / B.
Kohler-Koch (Hrsg.), Europäische Intergration, Opladen
1996.
. 이미 조절이론을 통해 정식화된 것처럼 이는 자본주의의
형태위기 혹은 구성체위기로 특징지울 수 있는데, 기존의 구성체
즉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은 이 위기 속에서
쇠락해가고 - 비록 길고도 우발적인 역사과정 속에서지만 -
새로운 구성체의 요소들이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크게 볼 때 과연 어떤 요소와 추동력이 이 격변과
새로운 구성체의 형성을 규정하고 있는가?
-“새로운 축적체제”의 관철. (이는 생산과 행정/계획에서
마이크로 전자기술을 응용한 “유연적 전문화”와
탈테일러리즘적인 노동조직 형태를 통해 이루어진다.)
- 서비스사회 혹은 정보사회로의 전환.
- “삼각(Triade)”(동아시아, 미국, 유럽)에서의 세계경제
지구화의 새로운 단계와 “카지노 자본주의”(S. Strange)의
형성.
- 탈포드주의를 모범적 전형으로 삼는 인성의 사회화. 이를
사회학자들은 “개인화”(벡크 Beck), “탈전통화”(기든스
Giddens)라 부른다.
- “케인즈적 복지 민족국가”의 “슘페터적
효율주의국가”(제솝Jessop) 혹은 “민족적 경쟁주의국가”
(히르쉬 Hirsch와 알트파터 Altvater)로의 전환.
- 세계정치상의 격변. 동유럽 “국가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체제경쟁 혹은 냉전의 종결과 함께 이 변동은 “신세계질서”
혹은 “신세계질서들”이라는 문제를 국제정치에 던지고 있다.2)
이에 관해서는 가령 F. Deppe, Jenseits der Systemkonkurrenz,
Überlegungen zur neuen Weltordnung, Marburg 1991 을
보라.
새로운 구성체의 요소들이 관철되는데 필요한 정치-이데올로기
상의 틀과 조건들은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로 구현된다.
“지구화” 과정은 따라서 객관적으로만, 즉 사회적 정치적
행위자들의 배후에서 이뤄지는 “무언의 강제”로만 관철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로 대립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다수
행위자들이 충돌하는 어떤 “전략과정”과 격렬한 투쟁 및 그
결과인 승자와 패자, 또 그 투쟁과정에서 형성되는 계급세력간의
동맹과 새로운 계급세력의 형성 등에 관해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들은 무엇보다 70년대 초반 이래
특히 북미와 서유럽에서 크게 위축되었던 세계자본주의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활력은 경제에
행사하는 국가의 영향력 (“혼합경제”에서 국영기업)을
축소하고 또한 경제 및 경기정책을 공급정책과 인플레퇴치로
대체함으로써 (“통화주의”), 그리고 사회국가 혹은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노동조합의 권한을 약화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사유화, 탈규제화, 탈국가화가 그 슬로건들인데,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들은 공개적 논쟁과 선거에서 이들을 무기로 하여
자기주장을 관철시켰다.
에릭 홉스바움(Eric Hosbaum)에 따르면 금세기말 현재에도
누적된 산더미같은 문제들로 인해 갈등은 불가피하며 이 갈등은
전근대적 야만으로의 후퇴라는 형태로 전개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관한 광경들을 매일 TV 뉴스를 통해 얻고
있는데, 이 뉴스들은 여전히 다음의 의문, 즉 유럽에서 근대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혹시 저 야만성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홉스바움은 최근 저서
ꡔ극단의 시대ꡕ의 말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짧았던 20 세기는 그 누구도 해결책을 못가진, 혹은 해결책을
가졌다고 주장 조차할 수 없는 그런 문제들을 남긴 채로
종결되었다”.3) E. Hobsbaum, Age of Extremes,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 London 1994, p.558.
그는 위 책의 서문에서 20세기에 이루어진 거대한 변화들이 이
세기가 종결되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그리고 이 갈등이 전개될 형태속에 침투해 있다고 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 거대한 변화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세계는 더이상 유럽중심적이지 않다 2. “인간들 간의
사회관계의 낡은 패턴의 해체”(즉 안소니 기든스가
“탈전통화”라 지칭한 과정4) A. Giddens, Beyond Left and
Right. The Future of Radical Poltics, Cambridge 1994.
) 3. “20세기의 종결시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지구화과정의 가속화와 이에 걸맞는 공공제도 및 집단적인 인간
행동의 무능력간의 긴장이다”.5) 앞의 책 p.14-15
이중 세번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경제의 지구화와 그것이
전통적인 정치제도 특히 민족국가에 미치는 작용이다.
요셒 에써 Jossef Esser가 정식화했듯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핵심 삼각이 점차 “경제적으로는 통합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해체된다”는 데에 현 상황의 역설이 놓여 있다.6)
J. Esser, Die Suche nach dem Primat der Politik, in : S.
Unseld (Hrsg.), Politik ohne Projekt, Frankfurt/Manin 1993,
p.410-411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자본주의발전의 “새로운 질” 즉 새로운 구성체의 규정
요소들에 관해 다룰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지구화 - 초국적 콘째른의 전략
현재 “지구화”라는 개념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원래 이
개념은 초국적 콘쩨른들의 전략 (global sourcing)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구화”란 기업의 모든
중요한 결정과정에서 전세계에 걸쳐 다음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를 의미한다.
- 가장 싸면서도 양질의 노동력.
- 가장 알맞는 공급선.
- 가장 앞선 기술들.
- 가장 유리한 생산입지.
- 최적의 동맹파트너.
- 가장 유리한 판매가능성.
새로운 통신매체로 인해 국제시장은 훨씬 투명해지며 그리하여
국제적인 사업파트너를 찾기가 그만큼 쉬워진다.7) G. Junne,
Integration unter den Bedingungen von Globalisierung und
Lokalisierung, in : Jachtenfuchs/ Kohler-Koch (Hrsg.),
Europäische Integration ,Opladen 1996, p.513 ff.,
여기서는 p.516
하지만 이제 지구화라는 개념은 세계경제와 초민족국가적
노동분업, 그리고 경제적 정치적 행위자들의 전략의 새로운 발전
단계를 지칭하게 되었다. 이 때 중요한 점은 해외직접투자와
상품 및 특히 서비스의 국제무역이 1970년에서 1990년 사이에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사실인데, 이와 함께 특히 국제금융시장
거래와 소위 “외환시장거래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세
주요축이라는 개념을 쓴다면 지구화의 형태는 삼각이라는 개념을
통해 볼 수 있다. 즉 초민족국가적인 경제활동과 금융활동은 세
지역, 즉 북미, 동아시아, 서유럽 (유럽연합)에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새로운 것은 과연 무엇인가 ?
- 기술적으로 우선 교통과 운송 특히 통신체계의 발전을
의미한다. 이로 인하여 지구 위에 멀리 떨어진 지역들이 서로
빠르면서도 직접적으로 (“온라인”) 연결된다.
- 마이크로 전자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 발전이 경제혁신의
기초를 이룬다면, 자본이동이 국제적으로 유연해진다는 점은 그
경제 혁신의 핵심이다. 브레튼우드 체제가 무너진 이후 이루어진
통화시장, 자본시장, 금융시장의 정치적 개방은 세계 전역에
걸친 자본의 유동성을 창출해내었다. 이 유동성은 탈포드주의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자본이동성은
상품교역과 서비스교역이 더욱 자유화되는 것과 맞물려있는데,
최근의 가트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일국적 및 지역적
차원에서의 보호장벽 조치들도 이 시장개방을 제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지역화 경향, 상호경쟁하는
경제블록들(“삼각”)의 형성 경향은 국제화를 이뤄나가는
기본적인 추동메카니즘이다.8) J. Hirsch, Der nationale
Wettbewerbsstaat, p.103
지구화의 주요행위자는 초민족국가적으로 활동하는
콘쩨른들이다. 지금까지 행해진 것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유엔
초국적 기업센터(United National Centre on Transnational
Corporations:UNCTC)>가 실시한 경험적 조사에 따르면, 현재 약
2만의 초국적 기업(TNCs)들이 있고 이들은 약 10만의 자회사를
국외에 두고 있다. 그들은 가속화되는 기술혁신의 중추이다.
또한 이제 전지구상의 시장통합과 사회통합의 새로운 질 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할 정도로 지난 20년간 상품 및 서비스의
무역과 생산의 국제화를 추동한 것도 그들이다. 이들이
세계경제를 재사유화하였고 세계경제를 파편화된 일국 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UNCTC의 보고서 (1988)에 따르면, “이들은 국가간 경계에
교량을 놓았고 최대 규모에 속하는 초국적 콘쩨른의 매출액은
대다수 국가의 각 국민총생산량을 능가한다. 이들의 국외 생산과
생산시설, 노동력 규모는 경우에 따라서는 50%에서 90%를 차지할
정도로 막대하다. 요약해 볼 때 국내외생산을 합쳐 계산할 경우
그들은 전세계 생산량중 놀라운 양을 점하고 있다. 예컨데 가장
큰 600개의 제조업체들이 세계경제 재화생산에 있어 약 1/5 혹은
1/4의 가치창출을 담당한다고 추산된다. 초국적 콘쩨른들이
수출자 혹은 수입자로서 갖는 비중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가령
이들은 미국과 영국 수출 총액의 80%에서 90%를 담당한다.
초민족 국가 대기업들은 또한 국제 자본이동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초국적 은행과 기타 금융업체들은 사실상
독보적으로 국제적인 자금대출을 담당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
활동이 국제적인 까닭에 초국적 기업들은 여유자본을 여러나라
통화들로 보유해 놓는다. 그들은 지난 몇년 사이에 중요한
세계금융시장 참여자가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초국적
기업들은 국외직접투자와 국외 생산에서도 역시 거의 독보적인
존재들이다.”9) J. Esser, Die Suche..., p.412 에서 인용.
이에 관한 상세한 점에 관해서는 W. D. Narr / A. Schubert,
Weltökonomie. Die Misere der Politik, p.39 ff 를
참조.
이와 함께 기업전략도 바뀌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초국적
전략”의 특징은 강한 현지연관성과 이에 수반된 차별화된
제품전략 및 생산전략이다. 중앙집중화를 통한 통합은 더이상
성과가 없다. 이제 통합은 지역화되고 탈집중화된 기업단위들의
네트워크형 의사조율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관리는 큰 틀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즉 개별 기업단위들간의 항상적인 경쟁과
간접통제를 통해 달성되는 것이 정상이다. 콘쩨른의 총괄관리는
이 때 숫적으로 적은,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복잡하고 쉽게 알아
볼 수 없는 경영기구들을 통해 달성된다. 관리상의 문제는
중앙의 통제와 비중앙의 자율성 간의 상호게임, 혹은 콘쩨른
내에서의 협력과 경쟁 간의 상호게임이 억제되는 곳에서
우선적으로 발생한다.10) 이에 관해서는 H. Hirsch-Kreinsen,
Internationalisierung der Produktion, in : WSI-Mitteilungen,
1/1996, p.11 ff 를 참조.
이윤원리와 경쟁이 추동하는 자본주의적 지구화
“지구화”라는 개념은 조심스레 사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물적 강제 Sachzwänge”에의 순응을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유사 자연법칙으로 가정하는 -
이데올로기적 - 신비화를 그 개념이 잘못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즉 지구화가 가진 모순들과 그 한계들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구화”라 지칭되는 현상은 여전히
이른바 G-7 그룹 안에서만, 즉 자본주의 중심부라는 배타적
서클에서만 집중되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지구화는 전세계
모든 지역을 포괄하는 시장 개척과 시장 발전의 새로운 질이라기
보다는, 자본주의 중심부의 경제공간이 서로 보다 밀접하게
결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백년이 넘게 자본주의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세계경제를 지배해 온 그러한 구조가 지구화를 통해
해체된 것은 결코 아니다. 국가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중심부의
지배가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덧붙일 것은, 중심부
및 초국적 기업의 지배 하에 중심부와 주변부, 부주변부의
관계가 새로 정의되고 새로 조직되고 있다). 이렇듯 지구화는
자본주의 중심국에서의 구조 변화를 표현하는 현상이다.”11) J.
Bischoff, Globalisierung, Supplement der Zeitschrift
Sozialismus, 1/1996, p.4.
지구화는 결코 인간의 생활조건과 노동조건 그리고 지구상의
생산관계들이 단일화 혹은 평준화됨을 뜻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이윤원리와 경쟁이 추동하는) 자본주의적
지구화로서 지구화는 “단일화와 파편화의 변증법” (G.
Ziebura)이 새로운 역동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새로운 공간적,
시간적 활동차원을 열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불평등, 차별과 배척, 사회적 분열과 파편화는 그러므로
지구화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나르 Narr와 슈베르트 Schubert는
이렇게 말한다. “불평등의 생산 - 이것이 초국가화 과정의
사회적 핵심이다. 전지구적인 파편화는 ‘올바른 경제정책’으로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우발적인 세계경제 산물이 아니다.
지구적인 생산과정, 서비스과정, 상거래과정, 금융과정은 그
과정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의 산산이 조각난 운명을 마주하고
있다. 세계경제에서 인간들, 기업들, 국가들이 질적으로 다른
출발조건에서 서로 경쟁한다 함은 그 세계경제의 본질중
하나이다. 경쟁자들이 승자와 패자,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
혜택받는 자와 불이익받는 자로 나뉘는 것은 불가피하다.
효율적이냐 아니냐라는 시험에서는 이윤과 권력이라는 척도 외에
다른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용납되지 않는다.”12) W. D. Narr /
A. Schubert, Welökonomie, p.43
그러므로 자본관계 지구화의 새로운 역사적 국면을 말할 때
초국적 콘쩨른, 세계무역과 직접투자, 생산 유착과 기업 흡수 및
기업 합병, 합작회사 등에 관해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지구화”의 새로운 질에 관한 테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
규정들을 덧붙여야 한다.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는
“탈소재화(Entstofflichung)와 탈국경화(Entgrenzung)”로도
특징지울 수 있다.13) 이에 관해서는 J. Neyer, Globaler Markt
und territorialer Staat, in : Zeitschrift für
internationale Beziehungen, 2/1995, p.287 ff를 참조.
- 탈소재화는 (공산품과 원자재, 농산물의 국제 거래에 대해)
서비스의 국제무역이 갖는 비중 증대와 직접투자의 3차산업화에
주목하게 만든다. 새로운 통신기술 (“정보고속도로”)을 통해
지식 집약적인 서비스 또한 상거래와 이전의 대상이 된다.
장기적인 자본결합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업 및 노동집약적
부문들의 해외이전 모델만을 추구하지 않는데, 장기 자본결합의
거의 75%가 이미 금융, 보험, 통신, 무역, 부동산 등과 같은
비소재적이고 지식 집약적인 부문들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때
역시 초국적 콘쩨른들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그들의 생산 및
영업시스템이 전세계적인 기업구조 안에서 거래하는 재화 및
서비스의 총액만도 전체 국제 상품무역액을 넘는다.
- 국제 금융시장의 발전은 상징경제의 자립화로 표현될 수
있다.
- 탈국경화란 단지 국경을 넘나드는 경제과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특히 영토(즉 국가들간의 경계)와 민족국가 그
자체의 전통적인 역할이 그 경제과정을 위한 방향으로
변화하거나 또는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뜻한다. 물론
그 전제조건으로는 앞서 언급했던 과정들, 즉 1) 세계경제에서
초국적 기업들이 갖는 중요성의 증대와 2) 그들의 탈소재화
(서비스와 금융거래를 통한)를 들 수 있다.
민족국가에서 민족적 경쟁국가로
민족국가는 주권의 일부와 특히 경제영역 즉 금융 및
통화영역에서 가졌던 조정능력의 일부를 상실하였다. 바로 이
점이 국가의 행동능력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에 관한 논쟁 -
대단히 치열하게 전개된 - 의 중심테마이다.14) 이에 관해서는
가령 F. W. Scharpf, Die Handlungsfähigkeit des Staates
am Ende des 20. Jahrhunderts, in : PVS, 1991, p.621 ff.를
참조
논란이 일어나는 까닭은, 경제에서의 지구화가 (그리고
탈국경화가) - 언듯 보기엔 역설적이게도 - 정치에서는
민족주의의 재활성화와 함께 등장하고 (특히 소비에트연방과
유고슬라비아연방과 같이 과거의 다민족 제국이 몰락하면서
새로운 국가들이 건설되는 폭력적인 과정이 진행중인 곳에서)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논쟁에서도, 민족국가와
그 주권이 서서히 침식되어 간다는 입장과, 자본주의적
지구화과정의 결과로 민족국가의 역할이 재편되고 있을 뿐이라는
다른 입장이 서로 논란을 일으킨다.15) 이에 관해서는 가령 L.
Panitch, Globalisation and the State, in : R. Miliband / L.
Panitch (Eds.), Socialist Register, London 1994, p.60 ff 와
그리고 B. Jessop, Die Zukunft des Nationalstaates : Erosion
oder Reorganisation?, in : FEG-Studie Nr. 5, Marburg 1995,
p.9-48을 참조.
아무튼 “황금시대”였던 전후시기와 냉전시대에 형성된
민족국가와 자본주의 경제간의 관계는 20세기 말에 구조적인
변동을 겪고 있다. 이미 언급한 지구화 과정은 그 변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전후질서는
“잠든 자유주의 embedded liberalism”(러기 Ruggie)라 부를 수
있었다. 양차 세계대전의 중간시기, 특히 1929년의 세계경제공황
이후 시기에 겪은 세계경제질서 붕괴의 경험은 - 미국이 주도한
- 결론을 이끌어냈다. “잠든 자유주의”란 타협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세계 경제적 통합과정의 역동성에 대한 영토국가의
경제, 재정 그리고 통화정책적 주권의 우위에 대한 승인에
기초한 국제적 자유화와 개별국가적 규제의 동시성”16) J.
Neyer, Globaler Markt..., p.288
을 제도화한 (브레튼우드, IMF 등) 타협이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국내에선 케인즈, 국외에선 아담 스미스(Keynes at home,
Adam Smith abroad)라고 할 수 있다. 세계경제의 전후질서, 즉
자본주의 중심부들 상호관계의 규제라는 황금시대는 바로 이
전제조건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오늘날의 심대한 변동에 관해서 말한다고 할 때, 세계경제위기의
진행과 결과로 인해, 그리고 신보수-자유주의적인 정부들의
정착과 그리고 우리가 방금 언급한 경제적 및 금융적
지구화과정으로 인해 바로 이 구질서가 70년대 이래 점차
해체되고 있으며 또한 그 구질서로 되돌아 가는 것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는 의미에서이다. “낡은”
민족국가들에 대한 “카지노 자본주의”의 영향을
ꡔ파이낸샬 타임즈 Financial Timesꡕ 지는 이렇게
요약한다. “이러한 일은 전례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금융에
대한 통제권을 탈환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
자본거래에 대한 통제와 조정 권한을 재정착시키려는 앞으로의
모든 시도들은 실패할 것이다.... 높은 세금에 기반했던 미국과
유럽의 복지 제도들은 지불 불능상태에 빠진다. 부자들에 대한
과세는 가능한 대안이 아니며, 부자들은 더이상 구태의연하게
앉아서 과세당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17) 앞의 책 p.296에서
재인용.
이 변화가 낳은 중요한 결과중의 하나가 이미 시사했듯이
(케인즈주의적인) 사회국가 혹은 복지국가의 위기로서, 그것은
생산입지 확보, 사회국가적 보장체계의 위기, 사회국가의 이른바
불가피한 “재편”, “노동을 위한 동맹”의 테마가 결합된
형태로 현재 우리가 독일에서 주된 정치이슈로 경험하고 있는
위기이다. 한편으로 지구화와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변형간의
상관관계를 다시 한번 요약해 보자 : 경제행위자들이 가진 더
높은 유동성으로 인해 정치 체계가 가진 개입가능성은 약화되고,
결국 이는 국가가 가진 공공복지 지향적인 기능능력에 대한
위협으로 귀결된다. 생산 입지 유지를 위한 문제들이 정치에서
점점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복지정책적인 목표설정은
밀려난다. 미시경제상의 기술혁신과 거시경제상의 안정성 (물가
상승억제)에만 몰두하는 정치는 노동자와 사용자간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전통적인 임무를 대체해 버렸다. 실업자와 사회
불평등의 극복은 경쟁력이라는 상위목표에 종속된다. 이 새로운
목표설정을 국내정치에서 정당화시키기 위해 정치가들은
국내경제상의 재분배에 대해 대외 경제적 논거를 들면서
국제경쟁력을 유지할 필요성에 호소한다. 그 결과 세계경제는
점차 그 국내사회적인 사회 기반을 상실하게 되고, 국가
공동체의 사회적 이해 관계와 모순되며 그 공동체는 거세지는
경쟁압력과 증폭되는 사회분열화에 노출된다.
민족국가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단지 변형되어
민족적 경쟁국가(der nationale Wettbewerbstaat)로 될 뿐이다.
이런 국가의 “기능논리는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모든
사회분야들을 동원해 사회가 오직 지구적 경재력이라는 목표로
향해 매진하게 하는 것인데, 지구적 경쟁력의 기초는 바로
국제적으로 더욱 유연해지고 있는 자본을 위한 ‘생산입지’의
이윤성이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구 전체를
‘경제전쟁’에 동원하는 일이다. 이 전쟁에서는 민족 자체가
자본주의적 기업으로 파악될 때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 즉
위계적인 구조를 갖추고, 하나의 경제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단일한 이윤중앙부에 소속되어, 매끈하고 효율적으로 기능하며,
권위적으로 지휘되고, 핵심 종업원층과 주변 종업원층, 제한된
공동결정권, 충직한 기술혁신팀, 생산성팀, 품질관리팀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18) J. Hirsch, Der nationale
Wettbewerbsstaat, p.109
모순의 표출과 그 극복의 전망
지구 자본주의의 위기경향은 다음 세 영역에서 표출된다.
- 첫째로, 지구적 화폐 및 금융시장의 점증하는 불안정성 속에는
세계금융체계가 급격하게 붕괴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 둘째로, 격화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파편화는 북의 “부유한”
중심부들에 대해 현실적이고도 잠재적인 위협으로 간주될 수
있고, 이 위협은 이미 지구적인 이민물결로, 그리고 과격한
“반서방” 성향을 가진 소위 근본주의 종교운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 (Clash of
Civilizations)”은 바로 이 위협의 잠재력에 관한 것이다.
- 세째로, 이른바 “지구적 도시들(global cities)"의 좁은
공간에 (결정화시키고 통합시키면서 동시에 분열시키는 작용도
하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중심지로서) 현대적이고 전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금융부문과 서비스부문이 (그들의 수정 궁전 센터들과
함께) 집중된다. 이곳의 일상 생활세계는 PC와 팩스기기,
화상문자 등 간단히 말해 “멀티미디어”로 각인되있다.
“제3세계” 극빈 지역에서 이주해 온 이민 그룹들과 그리고
흑인들의 빈민가가 집중되고 소득격차 (부자와 빈자)가 집중되는
곳도 여기다. 바로 이곳에 또한 사회적, 정치적 갈등 잠재력도
집중되어 있다. 이 잠재력은 여러가지 계기를 통해 (가령
로스엔젤레스) 폭발적으로 분출될 수 있으며 또한 소요와 폭동,
약탈, 특히 인종간, 종교단체간, 이민들간 (흑인 대 유태인,
아시아인 대 기타 등등)의 폭력적인 대결로 나아간다.19) 이에
관해서는 E. Lavon / D. Plehwe, Delaware -Puerto Rico-Los
Angeles : Überlegungen zur Ökonomie, Gesellschaft
und Politik in den Vereinigten Staaten, in : H. J. Bieling /
F. Deppe, (Hrsg.), Entwicklungsprobleme des
europäischen Kapitalismus, Forschungsgruppe
Europäische Gemeinschaften(FEG), Studie Nr.4, Marburg
1994, p.45 ff. ; C. Wex, Die Euro-City und die Regulierung
der Krise, in : ebd., p.81 ff를 참조.
“지구적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경제적
지구화과정의 주요 담지자인 초국적 기업의 대변인들이 주로
그리고 있다. 세계 최대의 경영 자문회사인 맥킨지
(McKinsey)사의 일본지사 사장인 게니찌 오매 씨는 다수 저술을
통해 새롭고 자유로운 세계 경제질서의 멋진 그림을
스케치해왔는데, 이 질서에서는 모든 인간들이 더 잘 지낸다고
한다. 그가 그리는 성장 및 소비 모델에서는 오직 승자만 있을
뿐 누구도 패자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그의 분석이 가진 약점과
동시에 이데올로기적이고 선전적인 기능이 있다). 거기엔
수요행태의 ‘캘리포니아화’와 생산과정의 (토요타주의 및
포드주의의 유산인) ‘토요타화’가 섞여있다. 삼각의 모든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들만이 생존한다. 걸림돌은 오직
정치영역에 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민족국가적인 규제
(아직 “탈규제화”되지 않은)가 자유로운 시장을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민족정부들에게 긴급히 권장하는 것은 일체의
보호무역주의 혹은 기술보호주의 형태를 철폐하여 삼각간의
자유경쟁이 본궤도에 진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의
유일한 임무는 자국민의 편안한 생활에 신경쓰는 일이다. 이는
가장 싸고 또 가장 품질좋은 재화와 서비스를 세계 전역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을 때 달성된다. 규제와 탈규제를 번갈아
도모하면서 시장을 방해하는 정부들은 이제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운전사 역할은 사기업에 맡기고
자신은 뒷자리로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만 그 나라에 가장
성공한 기업과 생산자 - 그것도 최저의 비용으로 -가 있다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20) J. Esser, Die Suche nach
dem Primat der Politik, in : S. Unseld (Hrsg.), Nachdenken
über Deutschland, Frankfurt/Main 1993, p.409 ff., 418-9
(오매 씨 글에 대한 참고문헌도 거기에 있으니 참조)
폴 케네디 Paul Kennedy의 글 「21세기를 향한
준비」에서 우리는, 낙관적인 시나리오와 비관적인
시나리오 각각이 다양한 사회집단 및 계급들의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으며,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지구화과정의
“승자”들의 이해관계를,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패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의
사회경제 발전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며 또한 장래에도 더욱
유리할 것이라고 보는 대기업 (제약산업에서 우주항공분야에
이르는)과 개인 (특히 고부가 가치 서비스부문에서 일하는)이
있다. 이런 전망이 바로 가령 게니찌 오매, 조지 질더 (George
Gilder), 벤 와텐버그 (Ben Wattenberg) 등 많은 낙관적
저작들의 바탕에 깔려 있다. 그 전망에 따르면 인류는 앞으로도
더욱 번영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엔 개발 도상국들의
비참하고 교육받지 못한 수십억 인간들과 그리고 발전된
나라에서의 수천만 비숙련 노동력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전망은
좋을리 없고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다. 이런 관점을 견지하는
쪽이 인구폭발과 환경참사에 관해 비관적인 글을 쓰는
에어리히(Ehrlich)와 월드와치 연구소(Worldwatch Institute)와
기타 사람들이며, 또한 이 관점은 미래의 직업변동과 그 사회적
함의에 관한 가령 로버트 라이히 (Robert Reich)의 작업과 같은
연구들도 촉발시켰다. 언뜻 보기엔 위 둘중 오직 한 방향의
예언만이 올바르지 않을까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한가지
현상의 여러 측면만을 각각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낙관주의자들은 세계의 ‘승자’에만 몰두하고 비관주의자들은
‘패자’의 운명만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둘 다
옳다면 우리가 21세기를 향하는 동안 빈부 격차는 끊임없이
벌어질 것이고 이는 선진국에서 사회적 소요를 야기시킬 뿐
아니라 남북 긴장을 더 커지게 하고 대량이민과 환경파괴를 낳을
것인데, ‘승자’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21) P.
Kennedy, In Vorbereitung auf das 21. Jahrhundert,
Frankfurt/Main 1993, p.423.
결국 핵심적인 이론적 (그리고 정치적) 질문은 “신들린 자의
경주”(미국 경제학자 폴 크룩만 Paul Krugman)를 과연 중지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있다면 어떻게 가능한지와 그 때 축적과정에
어떻게 개입하는 것이 필요한지 (그리고 정치적으로 과연
가능한지) 등이다. 나아가, 사회적으로 (그리고 생태학적으로)
참을 만한 새로운 세계경제질서, 즉 이윤가능성이 아닌 다른
사회적 기준이 척도로 되는 그런 질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어떤 정치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으면
안된다.주22) 이에 관해서는 J. Neyer, Globaler Markt... p.309
; T. Collingsworth et al., Time for a Global New Deal, in :
Foreign Affairs, 73 (1994), No.1, p.8 ff, ; F. Deppe, Ein
neuer Gesellschaftsvertrag - Anmerkungen zu einem
internationalen Krisendiskurs, in : H. J. Bieling / F. Deppe
(Hrsg.) Entwicklungsprobleme..., p.1973 ff.를 참조.
오늘날의 국제체제를 고려할 때, 일국적 영토국가에게는 자신이
전후시기에 국제사회에서 가졌던 것보다도 더 중요한 역할이 이
때 부여된다. 위 질문들에 - 정치의 내용과 목표, 그리고 그것을
담지할 세력에 관해 고려하면서 - 답하는 것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 점이 전반적인 불안과 무기력,
그리고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종말 이후 더욱 뚜렸해진 “넘겨볼
수 없음(Unübersichtlichkeit)”의 한 원인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