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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투쟁의 지평을 넓혀가자

현장에서 미래를  제10호
김현우

교육투쟁의 지평을 넓혀가자!



김 현 우 (전국학생운동투쟁연합 교육투쟁국장)



1. 96년 교육정세


1) 자본주의와 교육


자본주의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두 가지 형식의 폭력이 필요하다. 하나는 노동을 계속해서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도구로 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물리적 폭력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라는 한계적 상황을 자연스레 인식하고 받아들이게끔 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현대는 이 두 가지 형태의 폭력이 새로운 전환점을 형성하고 있는 시기라고 보여진다. 신보수주의를 시대적 조류로 해서, 신한국, 신경영 등 산업합리화 정책이 새로운 ‘노동통제전략’으로 가시화 되어 가고 있고, 이를 노동력 수급의 차원과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교육재편은 필수불가결하게 요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교육은 자본주의 착취체제에 흠집을 가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제한적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 자본주의가 이미 계급간 역관계 속에서 부르조아지의 힘의 우위를 인정해주고 있는 상태에서는 교육이 누구의 의도대로 변화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변혁을 앞두고 있는 정세가 아닌 이상 이러한 질문은 상식적인 대답만을 요구하는 겉치레일 뿐이다)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여기에 공히 모든 사람의 고민이 집중점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김영삼은 新교육의 내용을 ‘교육개념에 대한 변화’와 ‘교육과 직업(산업)간의 긴밀한 유대관계 강화’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지배계급의 교육지배방식과 내용이 과거와는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본질적인 내용변화를 수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앞서 표현한 대로 산업경제질서 변화에 따른 교육질서 재편일 따름이며, 교육을 통한 자본창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2) 세계화로 포장된 김영삼의 교육정책


김영삼은 집권 초기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국제분업질서 재편이라는 세계자본주의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적어도 주변국가로의 전락을 피하기 위해 ‘국제화·고통분담론’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80년 중반부터 진행되어오던 한국의 산업구조조정의 연장에서 경영과 산업에 대한 재편을 95년 세계화라는 국민적 이데올로기와 통합시키는 한편 이것을 통해 사회 전반적인 신한국 건설을 ‘(국가)교육에 대한 재편’으로 전진시켜 나갔다. 나아가 위대한 대한민국 건설은 교육과정의 메카니즘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96년은 보다 분주하게 교육에서의 개혁과 세계화를 주장하며 이른바 교육개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95년 5·31 교육개혁안의 주요한 골자인 ‘교육의 상품화’, ‘공교육의 후퇴’로 표현되는 학원의 환경변화는 지난 2월 9일의 2차 교육개혁안에서도 여과없이 투영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다기능공의 육성’이라는 교육이념의 전환을 교육의 상품화로 대체하고자 했던 지배계급의 계획과 의도는 2·9 제2차 교육개혁안에서 ‘교육개념에 대한 변화에 따른 신직업교육질서의 정립’과 ‘교육관계법 제정’, ‘교육체계 변화’, ‘신대학 건설’이라는 슬로건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이것은 교육의 실질적인 주체로 하여금 암묵적으로 자본주의적 질서내에 포섭되기를 유도하는 자본의 치밀한 전략임과 동시에 자본의 위기라는 전반적인 상황의 반증1)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9 교육개혁안은 실질적인 노동과 교육의 합일을 정부기구통합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고 있다. 즉 노동부와 교육부의 기능적 유사성에 기인해 내용적 통합을 추진함으로써 노동력 수급을 상황에 맞게 바꿔나감과 동시에 자본이 요구하는 기능적인 인간형을 창출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실제로 인력부총리제 도입을 통해 ‘인적자원 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제 신설’과 ‘신교육 운동’을 추진할 계획을 강력히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교육은 이미 전통적 패러다임을 넘어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아마 자본주의가 당분간 지속된다면  교육은 그전과는 판이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일 것이 사실이다. 이미 그 징후가 발견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5·31 발표이후 가속화된 대학간 차등화와 대학내 구조조정으로 인해 ‘등록금 인상’과 ‘대학 서열화’, ‘학생 자치공간(과 활동)의 축소’가 진행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초․중․고등 교육과정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2)이 계획으로 입안되었고, 대학정책은 구체적인 신인력 양성을 위한 신대학 건설과 정부기구 개편, 그리고 교육관계법 제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2. 김영삼 정권의 교육정책의 본질


1) 새로운 교육이념의 정립


김영삼 정권은 집권 초기 서구와 미국의 대통령과 수상이 대표적 수식어로 들고 나온 ‘교육대통령’을 표방하였다. 그래서 대통령 직속 부서로 교육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2차례에 걸친 교육개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교육에 대한 강한 집착과 구체적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세계 중심국가 건설이라는 신한국의 완전한 구현을 위해서이다.

「교육개혁위원회」는 미래의  세계문명을 ‘지식 정보사회’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20세기를 ‘산업문명’의 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다가오는 21세기는 ‘정보화·지식사회’라는 점에서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문명사의 대전환의 시기’로 규정한다. 자연스럽게 여기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고, 그것이 다름아닌 세계화였다. 20세기 산업문명의 도래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뼈아픈(?) 과거를 반성이라도 하듯 “교육혁명”이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동원해 ‘세계 중심국가 건설’을 위해 교육이념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이념의 변화 노력에는 앞의 이유와 함께 과도한 교육열과 사교육비의 지출을 들고 있다. 다시말해 교육이념의 제시는 현안 한국교육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의 성격 또한 가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상에서 비롯되는 교육이념이란 다름아닌 이제까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왔던 교육이 이제는 사회적 불량품 양산의 집산지이자 첨단 정보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봉건적 내용과 형식을 탈피하고 있지 못함으로 인해 “고도의 창의력과 높은 품격을 지닌 인간을 요구하는 미래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발돋음 하기 위한 新한국인 양성”을 위한 방향으로 정립되고 있다.

말 그 자체로 보면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을 제고하는 교육은 지극히 옳고 미래지향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가  계급지배와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이고 교육을 이러한 자본주의적 착취체제를 존속시키기 위한 일련의 도구이자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교육이념은 더욱더 개인의 능력과 사회적 지위에 위한 계서제를 강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기 위한, 그리고 이것에 암묵적으로 순응하기 위한 도덕적·법적 가치기준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주입시키는 기능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따라서 ‘신교육이념’이란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의 성장과 자치가 인간의 인권과 결합된 학교를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순응하며 복종하는 질 좋은 기능공을 만들어내기 위한 자본주의적 강령일 뿐이다.


2) 국가의 역할 방기, 민중에 대한 과도한 세부담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의 멀티미디어 정보통신 기술은 앞으로의 교육이 전통적인 교육방식과는 시·공간적으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 따라서 교육에 투자되는 사회적 비용 또한 상승할 것이 당연하고 국가의 정책적, 재정적 역할 또한 중요하게 된다. 이러한 판단하에 정부 또한 현재의 공교육 투자 규모에 대한 재고가 지난 5·31 교육개혁안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고려되었지만 “98년까지 GNP의 5% 교육재정을 확보3)하여 공교육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사교육에 대한 수요를 학교로 흡수”한다는 명시적인 언급만 있을 뿐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95년 말 「간접세 인상」이라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해결하겠다는 괴변만 있을 뿐, 전민중이 납득할만한 대안은 아직까지 부재한 상황이다.


<표 1> 세계대학 교육재정 확보비율

미국(단위:백만불)

구 분

총예산

국가

주

지방

학생

학교 기부금

공 립

105,600

10.2%

41.2%

3.7%

14.4%

30.4%

사 립

60,100

15.8%

2.7%

0.8%

36.9%

43.4%

프랑스(단위:백만프랑)

공 립

38,465

86.8%

3.5%

·

9.7%

사 립

2,118

26.7%

0.6%

·

72.7%

한국(단위:백만원)

국 립

  647,691

60.0%

·

·

34.4%

5.7%

사 립

1,632,905

0.7%

·

·

75.7%

16.3%


김영삼 정권의 공교육비 확충을 위한 대안을 살펴보면 먼저, ‘지방화 교육을 통한 교육자치’를 들 수 있다. 말 그대로 표현하면 “Think globally, Act locally (생각은 세계적 차원에서, 행동은 지역적 차원에서)”으로 대표되는데, 지방화 시대에 학교교육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지방자치 단체가 져야하고, 그에 따라 재정을 포함한 초·중등 과정의 제반 사항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구조가 취약하고 부실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책임을 우선시 한다는 것은 누가봐도 억지일 수밖에 없다. 참고로 타국의 대학 교육재정확보 비율(국·공립, 사립대학)을 보자면 <표 1>과 같다.

다음으로,  사교육에 지출되는 비용을 학교교육으로 흡수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교육개혁을 추진중에 있는데 이는 현재의 추세로 봐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분필 한자루와 녹색 칠판만을 가지고 19세기식 교육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교육은 단기적으로 봐서는 사교육의 질과 효과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94년 사교육에 지출된 비용은 총 17조 4,640억원(85년에 비해 약 10조원 증가, 90년에 비해 5조 3천억원 증가한 금액)으로 GNP의 약 5.8%인데 반해 교육예산은 3.8%인 11조 5,595억원에 불과하다. 국가는 그저 산술적으로 이 양자의 합계금액을 교육재정으로 사고함으로써 사교육비의 학교로의 흡수는 자연스럽게 교육재정난의 해결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민중의 주머니에서 지출되는 막대한 사교육비는 계층간, 계급간 불평등의 심화양상을 노골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고( 정권의 과외 허용은 더욱더 극심한 사교육비 지출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교육비가 간접세 형식을 띰으로 인해 민생권에 대해 심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학설립에 있어 준칙주의’와 학생선발제도 개선을 통해 대학의 자율적인 학사운영4) 정원자율화와 그에 따른 등록금 책정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 대학간 계서제 가속화, 대학의 자의적 등록금 인상을 용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권은 사교육비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학생선발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그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각 대학들의 학생선발 기준을 보면 도저히 학교교육이 따라잡을 수 없는 교과내용들만을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종국에는 과외에 의한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올 초 재경원과 교육부의 대학 등록금에 대한 팽팽한 줄다리기 논쟁은 대학의 재정구조가 얼마나 취약한가에 대한 절대적 반증이라고 보여진다. 이런 상황에서 각 대학들은 무분별한 증원과 학생선발기준 발표를 통해 사교육비 확대 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를 유도하고 있고 대학간 서열화와 계서제를 조장할 위험성을 크게 내포하고 있다. 이는 뿌리깊은 학벌주의의 또다른 팽배를 조장할 것이기에 교육을 통한 민중의 심적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권의 이러한 교육재정 확보방안의 제일의 근거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원리가 그대로 교육에 적용된 것으로서 교육을 받음으로써 그 혜택을 받는자가 교육비용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에는 70년대 대처주의로 시작되는 신보수주의에 따른 국가개입의 축소와 사회적 복지비용의 축소, 그에 따른 ‘작은 정부 강력한 조국 건설’이라는 정책에 그 맥이 닿아 있다. 현재 신보수주의는 세계적 추세로 보여지는데 그 우연성에 중심적 특징에 두기보다 필연적 귀결과정에 분석의 초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90년대 초 사회주의의 몰락이후 자본간의 무한경쟁은 세계경제의 다극화를 낳았고, 각국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독점자본에 대한 막대한 정책, 경제적 지원과 함께 사회복지비용의 축소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독점자본의 거대화와 위성재벌의 형성이 나타나게 되었고 사회복지는 상대적으로 후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그러나 서구의 복지국가 파탄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벌이고자 하는 정권과 자본의 신보수주의는 통계상으로도 그 근거가 미약하다.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복지비용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한국이 최하위권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표 2> 각 국가 예산 중 복지예산 비율

구     분

한  국

스위스

독  일

영  국

미  국

국가 예산중 복지예산 비율

6.38%

63%

47%

46%

 

만약 국가와 자본이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내세우고자 한다면 민중에 대한 시혜를 과장할 것이 아니라 교육의 제일의 수혜자는 국가와 자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자신의 이윤창출을 위해 질좋은 노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자본과 권력 재생산을 위해 교육이념을 공고히 해야하는 지배계급이 교육재정의 1차적 책임을 져야함에도 불구하고 민중에 대한 일방적 고통만을 강요하는 것은 현재의 자본주의와 한국자본이 세계 경제상에서 12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대 재벌을 재외한 모든 재벌과 자본이 그에 따른 위성재벌이거나 지극히 불완전한 절름발이 자본이라는 점에서 거품경제로 이루어진 천민자본주의라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며, 그에 따라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교육비에 대한 민중부담을 자연스럽게 조장하고 있다.

결국 GNP 5% 교육재정 확보라는 것이 국가와 자본의 책임을 방기한 채 독점재벌에 대한 무한정의 지원과 세금 특혜, 간접세 인상을 통한 민중에 대한 이중적 고통의 전가라는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마는 것이다. 또한  사상 초유의 중소기업 부도율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연출하고 간접적 폭력의 형식을 취해가며 교육재편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개혁안의 본질이 여지없이 폭로되고 마는 것이다.


3) 자치권 박탈 ············· 세련화된 간접지배


우리는 교육이라는 공간에서도 스스로의 자치와 자율을 지향한다. 그것이 진정한 개혁이며 교육의 목적이라고 믿는다. 또한 그것이 민중이 진정으로 교육받을 권리이자 실내용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세계화에 맞는 교육의 자치권, 나아가 민중에 대한 교육권 보장이란 결국 정책입안과 결정에 있어 민중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에 따라 집행되는 교육 수단화이자 상품화일 뿐이다. 자본간의 경쟁을 신한국·세계화라는 민족주의로 포장하고 세계 제일의 국민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욕에 찬 열의가 가상도 하지만 교육에까지 적용되는 경쟁과 상품의 논리는 신보수주의의 정책 집행과정에서 노동자·민중에 대한 배제와 통제5)를 전제하는 것과 같이 교육에 있어서도 교육공직자와 학생의 자치권을 전제하지 않은 노동력 상품화만을 조장하고 있다.

초등학교의 학교운영위 신설과 강화는 결국 학교의 재량권에 맞기거나 실행되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그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학교는 운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저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이름만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고 있지 못한 것이다. 대학은 어떠한가. 대학 총장 직선제를 폐기한다는 몇몇 대학 총장의 발표는 대학민주화의 성과로 얻어진 교수협의회를 약화,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학의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서울대법 구상은 유명무실화된 평의원회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 대학구성원 모두의 자치권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어느 때보다 시끄럽게 치러졌던 총선은 교육에 대한 어떠한 공론도 만들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교조의 합법화나 교육개혁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쟁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표 4> 국가별 고등교육비 부담 현황

일본(1991) 단위:십억원

구 분

금  액

국  가

주

지  방

학  생

학교 기부금

국공립

2,472

84.6%

 

15.4%

10.2%

 

사  립

3,503

7.9%

 

0.9%

53.6%

37.6%

미국(1990) 단위:백만불

공  립

105,6000

10.2%

41.2%

3.7%

14.4%

30.4%

사  립

  60,100

15.8%

2.7%

0.8%

36.9%

43.9%

영국(1991) 단위:파운드

사  립

2.668

78.6%

21.4%

 

 

 

프랑스(1991) 단위:백만프랑

공  립

38,465

86.6%

3.5%

 

 

9.7%

사  립

2,118

26.7%

0.6%

 

 

72.7%

한국(1991) 단위:백만원

공  립

  674,691

60%

 

 

34.4%

5.7%

사  립

1,632,905

   0.7%

 

 

75.7%

16.3%


결국 김영삼 정권의 교육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교육과 교육개혁을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시혜를 베풀어주는 것으로 이해하게끔 만들고 있다. 이것은 교육을 자신들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전국민적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기보다 국가와 학교당국의 책임성있는 행동을 강조하는 요구투쟁 수준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다시말해 개선과 개혁이란 이름으로 뭔가를 베풀려고 하는 국가 앞에서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침묵은 더욱더 세련된 지배를 가져올 뿐이다.


3. 노동자운동과 학생운동의 과제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변화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11분의 열사가 만들어졌다. 이 중 학내의 등록금 투쟁과 한국사회 교육구조의 모순 탓에 5명의 학생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열사의 죽음으로 인해 국가와 자본의 전복을 기대하는 심산보다는 전국민적인 문제의식의 공유와 저항하고자 하는 충분한 공론이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보여진다. 우리는 이러한 소중한 계기를 그냥 지나쳐 보낼 수는 없다.

지금은 단순히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구조에 대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로 각인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학과 노동자는 연대해야 하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은 새로운 연대의 내용과 방식을 창출해야 한다. 여기서 교육투쟁의 전망과 과제는 나와야 한다.


1)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은 법과 제도를 통해 누가 시혜를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욕구와 계획에 의해 성장하는 자연스런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교육을 이윤창출과 자본주의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순간부터 제도와 법은 개선과 개혁이란 이름으로 국민을 상대로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을 최선의 목적으로 삼게된다. 그래서 질서와 안정이란 이름으로 통제되고 지배되는 교육의 현실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저항하기 위해서 이러한 발상이 현실이 되어버린 현재를 넘어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2)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전복투쟁으로서의 교육투쟁이 견지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일련의 교육투쟁은 노동자운동과 연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자본의 질서재편 전략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기에 결과는 자본이 의도하는 바대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한 일련의 투쟁에서 노동자 운동과의 연대의 공통분모는 만들어져야 한다.

올 초 금속연맹의 조세관련 투쟁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교육재정이 조세제도의 무원칙한 악용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볼 때 충분한 연대의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대학과 교육의 자치와 자율권이 노동현장에 있어 자본의 직간접적인 폭력을 배제하고자 하는 투쟁과 내용적 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 아래에서는 둘 간의 연대는 지극히 당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자본에 맞설수 있는 광범위한 조직건설이 조직적 과제로 천명되어야 한다.


앞서 서술한 바대로 교육투쟁을 현재의 학생운동만의 고유한 과제로 봐서는 정책적 내용을 전일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이 불가능할 뿐더러, 그리 현명한 판단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교육투쟁을 단순히 대학투쟁으로 국한시키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적으로 대정부 요구투쟁을 전개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며, 맹목적으로 정권타도와 자본주의 질서 전복만을 외쳐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대중을 상대로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공동투쟁을 벌일 수 있는 ‘범국민 대책회의’를 구성해 나가야 한다. 지금 당장에는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한시적인 공동투쟁을 벌이는 것도 힘겨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단기적인 조직적 과제나 목표가 아니라 교육투쟁의 장기적인 전망을 두고서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작업은 필요하리라 본다. 이것을 통해 광범위한 반자본주의 전선을 구축해나가는 행동을 벌여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마치며


끊임없는 파괴와 창조, 그것만이 급진적인 대안일 수 있다.

한번의 요구투쟁과 성과를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대중에게 시혜를 베풀고자 하는 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정초해나가는 작업, 곧 자본주의로 봤을땐 지극히 급진적이고 좌익적인 실천들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급진적 사고와 행동이 대중과 호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은 그들 스스로의 상상력의 지평을 확대하는 길밖에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투쟁의 과제는 급진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출발하지만 스스로의 상상력과 실천에 의해 끊임없이 파괴되고 새롭게 구성되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전진임을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질서에서 자연스럽고자하는 대중에 대한 적극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파악될 수 있다.


대중이 자본주의적 질서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순간부터 문제는 심각해진다. 현재가 그러하다. 자신들의 상식과 사고체계로는 도저히 허락되지 않는 투쟁과 질서, 바로 그것이 교육투쟁이 힘겹고 난해하다고 판단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투쟁이 작아지고, 대중의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작업은 결론적으로 그들 뇌리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상식과 사고체계를 해체하지 않으면 수반되지 못하는 것들이다. 곧 대중을 상대로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학원내에서 지배적인 담론과 질서를 해체한다는 의미이다.

한/노/정/연


1) 세계 자본주의는 노동력 재생산과 화페재생산,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재생산을 통해 자신의 지배헤게모니를 재생산하고 있는 상황에 있다. 여기에 신인력 양성이라는 노동력 재생산은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성장하게끔 강제하는 교육의 원조가 필수적일 수 밖에 없는데, 이런점에서 볼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동적 교육재편은 자본주의가 불안정한 체제유지와 불황이라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당연스런 전술구사로 볼 수 있다.


2) 정부는 대학단계 및 직장에서의 계속 교육으로 이어지게 하기위해 지식,장보사회를 맞아 고교 수준의 교육만으로는 충분한 직업능력을 갖추기 어렵게 됨에 따라 초·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통합함과 동시에 고교와 전문대,전문대와 대학간 연계교육을 강조하고 있고 이를 97년까지 가시화할 방침이다.


3) 정부의 교육재정 확보방안을 보면 연차별 재원조달계획과 국가 지방자치단체의 부담방안으로 되어있고, 교육부문 투자 확충을 위해 사교육비의 공교육비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교육비에 대한 민간투자 유인책이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간접세 인상을 통한 교육재정 확보라는 말은 들어가 있지 않다.


4) 김영삼 정권은 국립대에 대해 특수 법인화를 추진할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정권의 대학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시킨 채 국가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파악된다.


5) 국가 개입의 축소와 효율화를 위해 공공부문에 대한 대량해고와 민영화를 실행하고 있고, 자본간의 경쟁에서는 신경영전략으로 대표되는 극도의 착취방식-작년 박삼훈 열사와 양봉수 열사의 죽음에서 보여지듯이 신경영 전략은 극악한 착취방식을 요구하고 있고, 1분에 58초라는 경이적인 노동시간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을 통해 노동에 대한 통제와 탄압, 민중의 배제를 전제로 세계 일류국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1996-04-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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