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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 반! 학습 반!

현장에서 미래를  제102호
김병구

졸음 반! 학습 반!

김 병 구
철도해고자





노동자가 공부한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바쁜 투쟁일정 속에서 학습하는 노조 간부들에게 보내는 주위의 시선 또한 곱지 않다.

나는 행동주의자이다.
91년에 철도에 입사한 이후로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문 닫아 걸고, 오직 지부민주화와 철도노조의 민주화, 철도 사유화정책 저지 등 내 앞에 있는 현안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입사한 지 8년 만에 지부장이 되었고, 그 3년 후에 민주철노가 건설되고, 민주철노 1기 집행부는 2번의 파업투쟁을 통해 철도사유화정책을 지연시켰다. 돌이켜 보건데 15년의 활동기간 동안에 ‘현장에서 미래를’ ‘노동사회’ ‘노동자의 힘’ 등의 노동관련 간행물을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다. 맑스ㆍ레닌ㆍ로자ㆍ그람시ㆍ네그리니 하는 사람들의 책은 더더욱 관심 밖이었고.
노동대학 수강기 • • •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았지만, 대중간부로 활동하는 데는 별 불편이 없었고, 오히려 대중간부로서 승승장구하는 세월이었다. 앞만 보고 내달렸고, 내 앞의 장애물이 나타나면 그것을 치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었다. 외부의 적은 항상 명확했고 그 결과 또한 확연했다.

그러나 이제 ‘모른다는 것’이 무척 불편한 일이 되었다.
2001년 민주철노 건설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눈에 띠기 시작했고, 내 자신과 동지에 대한 실망과 의심, 불신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갈등구조는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하였고, 급기야는 모든 관계를 끊고 운동적 삶을 포기하기 위한 장기간 칩거에 들어가게 하였다. 수색지역에서 벌어진 철도노동자들의 ‘아름다운 현장투쟁’의 세례를 받아 다시 철도현장으로 나오게 되었지만, 이해되지 않는 현실은 ‘알아야 운동할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지난 10여 년간 세상에서는, 노동계에서는, 노동자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사람들이 변했는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이론적 노력이 있었는지를 알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하이에나처럼 게걸스럽게 닥치는 대로 읽고, 듣고, 수집하는 나에게 토요노동대학은 무척이나 좋은 기회이었다. 평소에 남편이 무식한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한 부인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감히 노동자가 대학생이 되었다.
역시 현실은 만만치 않고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갖은 노력을 해도 90분 강의 3교시 중 1시간은 졸음과 싸우느라 기진맥진해진다.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강의를 하시는 강사님들께 항상 미안했는데, 함께 공부하는 금융노동자도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어서 다소 위안은 된다.

졸음 반! 학습 반!

노동대학은 여러 분야의 내용을 옴니버스 식으로 접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다양한 경향의 강사를 함께 접할 수 있어 균형 있는 사고에 도움을 주고 있다. IS그룹에 대한 비판적인 강의를 받은 다음 시간에 캘리니코스의 철학 강의를 듣는 맛은 노동대학의 학습자들만 느낄 수 있는 은근한 기쁨이다.
B반은 맑스주의 경제학ㆍ철학ㆍ정치학 등 기초이론에 대한 학습이 주 내용이다. 반면에 A반은 20C 제국주의와 반세계화 운동, 한국노동운동사, 노동자의 건강, 사회복지정책 그리고 노동현장의 활동가들이 직강을 통해 현실운동진영의 그동안의 운동성과와 이후 전망을 열어가고 있다. 백발이 허연 노 사상가부터 작업복을 입고 현장의 활동성과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젊은 노동자의 생동감 넘치는 강의와 토론의 연속이다. 지난 여름의 살인적 더위를 견뎌 낸 덕택인지 가을로 접어들면서 의식의 지평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노동자는 학습해야 한다.
노동자는 본질적으로 실천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계급의식을 향상시키고, 세상에 대한 이해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세우기 위해서 반드시 학습하고 성찰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습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맹목적 행동주의에 빠지든지, 자본주의적 지배이데올로기에 전염되어 좌초할 가능성이 높다.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노동현장 활동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는 의식의 향상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사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졸음 반의 불량학습자이어도, 갈수록 심해지는 왼쪽 어깨의 근육통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살아 온 세월을 사랑하고, 아직은 사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토요노동대학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변혁의 전망을 열어가는 공부를 하고 있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토요노동대학 관계자 여러분 모두와 노동대학의 주모인 최경희 동지에게 지면을 빌어서나마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해드린다. 한/노/정/연

2004-10-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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