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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의 총파업 44일간의 총파업투쟁이 되었어야 했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102호
정현진

14일의 총파업?
44일간의 총파업투쟁이 되었어야 했다.


정 현 진
연구원





“역사적인 산별총파업의 깃발이 올랐습니다. 전국의 만여명의 동지가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힘을, 노동자의 단결의 힘을 병원의 악질 자본가들에게 보여줍시다.”

14일의 총파업? 44일간의 총파업투쟁이 되었어야 했다.

연두색 티로 맞춰입은 병원노동자 동지들의 함성이 6월 10일 아침에 울려퍼졌다. “산별총파업 승리하자, 산별 총파업 승리하자!” 언제나 장기파업과 구속, 수배에 시달려야 했던, 전국에 영세사업장의 규모로 퍼져있는 병원이 많아 고립되어 싸우기가 일쑤였던 병원노동자들에게 이번 산별 총파업은 어느 때보다도 신선한 충격과 힘을 불어넣어주었을 것이다. 아마 ‘산별이 아니었다면 어찌 만명의 동지들이 모일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 만명의 동지들을 총파업으로 조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 그 자리는 역사적인 현장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은 만명의 파업대오를 무색케 할 정도로 비판적인 평가를 모면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총파업의 성사와 산별교섭에 희망을 가졌던 동지들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이 글의 전반에서 오히려 그 점은 비판적인 평가의 부분으로 간주될 것이다. 단지 만명, 숫자의 문제가 얼마나 걸려들기 쉬운 함정인지, 그것이 지금의 본질을 가리고 있음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산별과 산별교섭, 그 허와 실을 여실히 밝혀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밝히는 과정이 단지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의 문제만으로, 그/그녀들만의 투쟁의 문제만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2004년 상반기 민주노총의 투쟁의 기조, 그리고 투쟁의 전술들, 경제위기의 공포감에 휩싸여 있는 대중들의 상태,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작, 노무현 정권의 포섭과 배제의 공격 등 상반기를 관통하였던 전반의 문제들을 동시에 고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지점들을 고찰하면서 이 글에서는 다음의 2004년 상반기 투쟁의 계급적 조건들을 고찰하고, 그 속에서 보건의료노조의 투쟁의 의의와 평가를 진행하고자 한다.


1. 상반기 정세의 계급적 조건들
1) 경제위기의 심화, 공포감의 확산
특집Ⅱ• • •

02년 3/4분기부터 시작된 경기침체는 노무현 정권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03년, 04년 상반기까지 내내 회복되지 않았다. 정부경제부처와 한국은행, 사설 경제연구소들은 초기 회복가능성을 점치다가 자신들의 전망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해야만 했다. 이들의 초기 장밋빛 전망의 근거는 대기업들의 수출 주력품목인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의 소수의 독점 사업에서의 경이적인 수출기록이었다. 02년, 03년 현대자동차만 해도 10조가 넘는 매출에 순이익 1조의 경이적인 흑자폭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수출이 내수를 이끌 것이라는 부르주아진영의 주장은 이내 2004년을 거치며 여지없이 깨어지고 있다. 과거 ‘수출증가->설비투자증가->고용 증가->내수산업의 활성화’의 순메커니즘이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자본은 비정규직의 확대, 노동강도의 강화, 실질임금의 삭감, 정리해고의 강화 등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과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생산성의 극대화에 주력하기 있기 때문이다. 800만의 비정규직의 존재 자체가 지금의 자본이 이윤을 어떻게 확보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김대중정권이 경기부양을 위해 단기적으로 취했던 카드정책이 부메랑이 되어 400만의 신용불량자와 몇 백만의 잠재적 신용불량자를 낳았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어 강도, 절도, 유괴, 납치 등 강력범죄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가정 파탄과 해체를 불러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날카롭게 표현하는 것이 ‘일자리창출 없는 경기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일부 대기업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경이적인 흑자폭을 기록하고 있고, 제조업의 경우 03년도 경상이익률은 4.7%로 1974년 4.8%이래로 최대이며, 일본의 3.2%보다 높다. 반면에 인건비 부담률은 한국이 10.3%로 일본의 16.3%보다 훨씬 낮다. 더군다나 상장성 지표인 매출액 증가율은 한국이 6.1%로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4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의 착취율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특히 청년실업률은 8~10%의 상당히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통계청의 실업률 계산은 1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고 실업상태라고 해도 취직을 할려는 의사를 표명하면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아 그 공백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감안한다면 실질적인 실업률은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할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의 50%이상이 해고의 경험을 가지고 있거나 해고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설문의 결과는 이 땅 어디에서도 안정적인 일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다.

대기업 자본들의 경이적인 흑자폭에 반해 민중들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계속 후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6월말 현재 2000년 이후 최저의 임금인상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5.4%로 전년 대비 1.3%가 하락하였고, 민주노총의 통계를 보면 타결임금인상률은 기본급 2.0%~6.7%(총액 5.1%~9.0%)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300인 미만 중소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임금동결 혹은 임금삭감을 받아들인 경우가 84.7%에 달하고(노동부 통계자료) 있다. 이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는 사업장이든 그렇지 않은 사업장이든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으며, 전체 노동자들의 공통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이러한 진행은 대중 사이에 경제위기로 인한 고용불안의 공포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직접적인 고용불안을 느끼는 위치이든, 그렇지 않은 위치이든 이제는 중요치 않다. 내가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이미 대중의 내면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노무현이 경제개혁에 실패하고 있다는 답과 동시에 “그래도 파업을 해서는 안 되지” 라는 상반된 의견이 대중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노무현 정권의 개혁에 대한 환상 유포의 일정정도의 성공과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지속적인 패배로 인한 허무주의와 공포감에 기인한다. 이러한 조건은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작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도록 만들었고, 노동조합은 양보교섭을 선택하게끔 하는 조건으로 작동하였다.

2) 자본가계급의 전방위적인 공격, 자신감을 얻다.
그러나 양보교섭의 선택은 다시 노동자계급의 목을 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을 뿐이다. 대기업자본의 경이적인 수출폭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의 삶은 계속 피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대로 반증해주고 있다. 더 이상 양보교섭을 통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양보교섭은 지금의 상태, 노동과 자본의 계급역관계로 자본에게로 많은 부분 기운 상황에서 자본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일 뿐이다. 양보교섭이 많아지면 질수록 자본가계급의 공격은 더욱 광폭해질 뿐이다.
자본가계급의 공격은 이미 현장수준에서는 많은 부분 안착화되었다. 정리해고, 노동강도, 현장통제, 노조말살 등 현장수준에서의 착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작들은 대부분을 성공하였다. 더군다나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에 성공함으로서 중간관리자에 의한 현장통제를 강화하는 것에까지 성공하였다. 현장의 권력은 일부 대공장을 제외하고는 이미 자본의 손아귀에 넘어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리고 지금 자본과 정권은 현장에서 다시 회수한 자본의 권력을 법제화하고, 제도화하여 안착화하는 것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다. 그것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2003년 11월의 근로기준법 연ㆍ월차 휴가의 축소, 임금할증률 인하 및 초과노동시간 연장, 선택적 보상휴가제도의 도입, 생리휴가의 무급화로 대표되는 개악된 근로기준법의 목표는 일부 대공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노동자계급에서거의 착취율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악된 근로기준법에는 각 단위사업장의 단협을 개악된 안으로 대체한다는 가장 악질적인 부칙안이 포함되어 있어, 결국 이것이 일부 대공장일지라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임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실제 근로기준법의 개악 이후 노동조합의 힘이 살아있는 대공장에서조차 단협의 개악시도가 계속 이어졌고 이것은 그대로 중소사업장에 대한 탄압으로 다시 이어지는 악순환을 그리고 있다.
의 개악이다. 근로기준법의 개악을 통해 자본이 얻고자 했던 것은 명확하다. 현장에서의 노동력 착취를 더욱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주 5일제의 도입으로 잃어버릴 노동일을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의 착취의 강화였다. 주 5일제의 문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을 요한다. 한국의 제조업의 경우 임금체계가 시급제이기 때문에 주 5일제를 도입하더라도 실질적인 노동시간의 축소를 바란다는 것은 어렵다. 시급제의 임금체계안에서는 잔업, 특근의 임금비율이 달라 통상적인 노동시간을 제외하고 잔업과 특근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의 경우 주 5일제의 도입이후 노동시간이 더 길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근로기준법의 개악이후 현장에서의 사측의 단협개악시도들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다. 전국의 수많은 미조직사업장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원래부터 근로기준법 이하의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있었다. 개악된 근로기준법의 초점은 오히려 대공장을 공격하는 것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공장 무력화 공세는 6천만원의 현대자동차 노동자, 4천만원의 서울지하철 노동자라는 노동귀족 이데올로기 공격을 동시에 받으면서 더욱 가속도를 붙였다. 노동귀족 이데올로기는 대중들 사이에 퍼져있는 경제위기의 공포감과 맞물리면서 폭발적인 효과를 드러냈고, 민중들의 삶의 질의 후퇴라는 객관적인 현실 속에서도 파업에 대한 반공적이고 폭력적인 탄압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만들어내었다.
실제 1,000인 이상 대기업(426) 중 6월 현재 20.2%인 86개사가 단협이나 취업규칙을 변경하였고, 이중 73.2%가 개악된 근로기준법을 수용하였다. 결국 근로기준법의 개악과 바꾸었던 주 5일제는 노동자계급의 목을 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을 뿐이다.

이와 같이 자본의 구조조정의 양상은 현장을 장악한 것에 이어 노동의 반격 자체, 단결과 연대의 기반 자체를 거세하는 방향으로, 공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자본은 지금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흐름을 완성하는 시기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저항의 기반 자체를 거세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파상적인 공격이 감행되고 있다. 그러나 실상 이러한 본질은 경제위기라는 토대 속에서 은폐되고 있으며 또다시 고통분담이데올로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지점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2004년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①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 대기업 정규직 임금동결 및 노동조건 조정, 고용유연화 전제로 일자리 창출할 것 합의하겠다고 하며 대공장 죽이기를 진행하고 있다.
② 개악한 근기법에 기초 단협, 취업규칙 변경 공세
③ ‘비정규직 보호’란 미명 아래 파견대상 업무를 모든 업종에 확대하자는 취지의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개정안 연내 입법화. 정부에서 근로자파견을 전 업종으로 확대한다는 것은 간접고용을 늘리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리겠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비정규직에 대한 공격이 아닌 정규직노동자에 대한 도발이다.
④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 소위 ‘노사관계 로드맵’ 연내 입법화
⑤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상층관료의 포섭, 여기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정지도자대표자회의로 적극적인 동참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⑥ 노무현 대통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하며 개혁적 성향을 띠었지만 금새 “시장의 저항과 반발이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노력하자”는 입장으로 돌변, 공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변화하였다.
⑦ 노무현 대통령은 노동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노동부가 다른 부처의 도움을 받아 ‘올해 노사분규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약속을 현실화시켜 줄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이를 위해선 노사정간의 대화와 노사관계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며 “전체적으로 대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여건과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이를 위해 대형 노사분규가 빈발하는 20개사를 선정, 중점 지도하는 한편, 금속․병원․공공부문 ‘노사관계 개선 전문 T/F'를 구성․운영해 분규요인의 사전 해소에 노력할 것을 제출했다.


2. 상반기 투쟁의 전반적 약평
2004년 상반기 투쟁은 분명 악조건 속에서 진행된 투쟁이었다. 경제위기에 대한 공포감 그리고 고용불안에 대한 공포감으로 인해 기층의 대중들은 노무현의 경제살리기 정책의 이데올로기적 공격에 그대로 포섭되어 들어갔고, 여기에 노무현의 개혁적 이미지는 훌륭한 바탕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중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개혁에 실패하고 있다는 의견들이 표출되기에 이르렀지만 노무현 정권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포섭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투쟁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그래도 참아야지,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체념적이고 허무적인 반응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본은 등에 날개를 단 듯 노동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악조건의 문제 이전에 과연 정확한 정세인식과 정확한 투쟁전술을 구사하였는가의 문제를 보아야 한다. 현장에 퍼져있는 패배주의와 허무주의의 근본적인 원인은 악랄한 자본의 공격 보다는 계급투쟁의 지속적인 패배에 더 큰 원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2004년 상반기 투쟁은 낙제점을 벗어나기 힘들다.

민주노총 상층부가 상반기 투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4월 27일 중앙집행위에서 통과된 ‘상반기 총력집중 투쟁계획안'을 보면 알 수 있다. 민주노총은 상반기의 핵심적인 투쟁의 요구로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정규직화 ▲주 5일제의 전면 실시와 일자리 나누기 ▲최저임금 인상(월 766,140)과 연대기금 쟁취 ▲산별교섭쟁취로 선정했다. 그리고 상반기 투쟁은 총 3차에 걸쳐 총력집중투쟁이 전개되었는데, 1차 6월 10일 보건의료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1차 총력투쟁, 6월 29일 완성차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2차 총력투쟁, 7월 21일 궤도 5사 공동파업을 중심으로 하는 3차 총력투쟁이 전개되었다.
민주노총은 과연 이상의 과정에서 무엇을 하였을까? 계획(안)에는 6월 16일 시기집중투쟁과 지역별 집회로 임단협 투쟁전선을 배치하고 6월말 전국상경투쟁을 통해 법제도 개선 및 사회제도개혁를 집중하고 하반기 총력투쟁으로 연결한다고 밝히고 있다. 상반기의 전개를 본다면 미세한 차이는 존재하지만 민주노총의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민주노총은 계획에 입각하여 훌륭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곳에 있다. 문제는 훌륭히(?) 수행한 민주노총의 계획과 활동 자체에 있다.

2004년 상반기는 현장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역동적이어야 할 시기였다. 자본가들은 개악된 근로기준법을 무기로 삼아 대공장을 죽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노동조합의 힘이 아직 현장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일부 대공장조차 단협의 개악을 막아내지 못하는 상황들이 연출되었고, 이는 다시 중소 사업장에게는 ‘대공장도 저러한데 우리가 뭐’라는 식의 인식을 퍼트리기에 충분했다. 현장에서 단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노동과 자본의 역관계를 가장 구체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단협이 개악된다는 것은 곧바로 자본이 현장을 장악하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년 11월 우리가 주 5일제를 얻으면서 받아들였던 근로기준법의 개악안이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을 죽이는 칼이 되어 돌아온 시기가 바로 2004년 상반기였다. 이러한 정세적 급박함 속에서 단지 시기집중집회 몇 번만으로, 그것도 현장을 장악하는 공격적인 파업투쟁이 아닌 거리의 집회 몇 번만으로 어떻게 이겨낸단 말인가? 민주노총이 총력을 기울여 총파업 투쟁을 조직해도 될까말까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단지 달력에 시기집중투쟁을 새겨넣는 것 외에 뚜렷한 대안과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만 이것은 ‘상반기에는 쟁점화, 그리고 하반기에 총력투쟁, 입법과 대중투쟁의 병행’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민주노총은 명확하게 개악된 근로기준법이 현장에 적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총파업투쟁을 조직했어야 했다. 하다못해 시기집중투쟁이라도 정말 집중할 수 있어야 했다. 주 5일제와 신규인력 채용으로 핵심적인 쟁점을 묶을 수 있었던 수많은 투쟁들이 각개분산되어 치뤄지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다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노무현 정권, 그리고 열린우리당에 한나라당까지도 적극적으로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사회적 교섭틀에 대한 문제이다. 최근 이를 ‘사회적 합의주의’라 칭하는데, 노사정의 계급대타협을 통해 경제위기를 돌파하자는 문제의식을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자본의 단협 개악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민주노총은 임단협 투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6월 초에 노사정지도자회의를 먼저 제기하여 적극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계급포섭전략에 화답하였다. 이것은 그나마 어려운 조건에서라도 투쟁을 조직하고자 했던 현장의 동지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민주노총 상층부에서만 드러났던 것은 아니다. 자동차 4사를 중심으로 제기된 사회공헌기금 또한 그 계급적 성격이 자본의 이윤율 회복에 복무한다는 것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은 틀이었다. 정규직의 임금을 동결 혹은 최저인상을 보장하고 이것을 비정규직 처우개선으로 쓰자는 것은 전국의 비정규직 투쟁의 주체들의 의지를 꺾는 행위임에 분명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수동화하고 길들이는 것에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삭감되면 전체 노동자들의 평균적인 임금이 다시 삭감되는 악순환이 그려질 것은 뻔한 그림이다.

민주노총 상층부의 입장에서는 다각도의 교섭틀, 산별 교섭의 정착,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을 통해 제도개선 투쟁을 해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작 우리는 현장의 권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단협은 개악되었고 더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이름으로 자본의 이윤율 회복에 일익을 담당하는 지경까지 나아갔으니 진정 이것이 노동운동의 미래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3. 현 시기 산별교섭의 정치적 의의와 보건의료노동조합의 투쟁
꽤나 먼 길을 돌아 보건의료노조의 투쟁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4년 상반기 투쟁에서, 특히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총파업투쟁을 평가함에 있어 앞서의 논의들은 불필요한 것들이 아니다.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은 단지 단위사업장의 파업투쟁의 의미를 넘어서 앞서의 쟁점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 시기의 노동운동의 주소를 알려 준다고 볼 수 있다. 앞서의 논의들을 바탕으로 보건의료노조의 투쟁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상반기 정세에 대한 인식과 보건의료노동조합의 투쟁의 의의
보건의료노동조합은 2004년 산별총파업을 준비하면서 2004년 상반기를 다음과 같은 정세로 규정짓고 있다.

우리의 산별 총파업투쟁은 ▲4.15 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의회진출을 이룩한 시점 ▲노무현대통령이 탄핵기각 후 복귀하여 새로운 개혁정책을 펼쳐야 하는 시점 ▲새로운 17대 국회가 개원하는 시점 ▲민주노총이 6월 총력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시점 속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우리는 이런 조건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2004년투쟁을 승리로 만들어낼 것이다.
「산별 5대 요구 쟁취와 2004년 투쟁 승리를 위한 철야농성ㆍ간담회 자료」중 발췌
이러한 정세규정은 민주노총의 상반기 정세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에 따른 제도개선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은 이에 기반하여 산별총파업과 산별교섭을 준비ㆍ진행하였다.

그러나 상반기 정세의 핵심적인 계급투쟁의 지점은 국회와 정부의 정치적 지형이 무엇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공격이 무엇을 노리는지에 있어야 했다. 상반기 자본이 사활을 걸고 달려든 것은 일상적 구조조정의 안착화 그리고 이의 법제화와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근로기준법의 개악을 바탕으로 한 각 현장의 단협의 개악시도이다. 여기에 노무현 정권, 그리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까지 가세한 사회적 합의주의 흐름은 민주노총의 적극적 화답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정작 현장의 치열한 계급투쟁의 쟁점은 사그라들고 제도개선과 사회적 합의라는 허울좋은 교섭의 체계만을 만드는 것에만 모든 시선들이 집중되었다. 노무현 정권과 자본의 의도는 명확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완결을 위해 일부 전투적 노동운동의 고립화하고 상층 지도부를 포섭하는 것을 통해 하반기 파견법의 확대와 노사관계로드맵의 법제화를 위한 기반을 닦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산별 총파업은 이러한 흐름에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중요한 대중투쟁이었다. 총력집중투쟁의 첫 번째 구심이었다는 점에서 2004년 상반기 투쟁의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의 투쟁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화와 교섭을 통한 허구적인 개혁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대중투쟁에 기반한 현장의 강화를 보여주는, 계급투쟁의 이해를 실천할 수 있는 투쟁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상층부의 노사정 계급대타협의 흐름에 일침을 가하고, 노동법 개악을 현장에서 막아내는 투쟁을 시작하는 중요한 고리였다. 또한 산별총파업 안에 상반기 정세의 핵심사안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별교섭에만 주요한 목적을 둔 이번 투쟁은 이러한 정세를 완전히 비껴가는 투쟁이 되고 말았다. 이는 단적으로 요구안과 합의안의 문제만을 보더라도 명확하다.

▶3장 5조 연ㆍ월차 휴가 및 연차수당에 대한 조항
① 기존 근로기준법에 따른 월차휴가와 연차휴가를 폐지하고,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적용한다.
② 시행일 현재 재직중인 직원에 대하여 기존 연월차 산정일수에서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한 연차 산정일수를 뺀 일수를 임금으로 보전하되 계산식은 다음과 같이하여. 시행일 기준으로 금액을 확정하여 수당(통상임금에서 제외)으로 보전한다.
“산별교섭 잠정합의안과 지부교섭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투표 간담회 자료”(이하 간담회 자료)에서는 이를 놓고 개악된 근로기준법을 상회하는 합의안을 쟁취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연ㆍ월차 축소에 따른 임금보전과 생리휴가무급화에 따른 임금보전을 합의안에 명시한 것은 하나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담회 자료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개악된 근로기준법을 상회하는”의 문제가 정말 그러한 가이다. 좀더 명확히 이야기하자면 각 지부의 단협을 개악된 근로기준법에 끼워 맞추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물론 개악된 근로기준법이 현장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최대한으로 막아내었다는 일말의 긍정적 평가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존의 단협에서 후퇴된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3장 5조의 2항에서 더욱 심각해진다. 단협의 적용범위를 재직중인 직원으로 한정함으로써 이후 노동조합 내부의 단결의 기반을 상당부분 축소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번 산별총파업을 통해 합의한 1,500여명의 신규인력들은 적용의 범위에서 제외될 것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의 개악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신규인력과 재직중인 노동자들 사이에 벽을 만들어 노동조합의 단결력을 강화하는 데에 큰 장애가 될 것이 뻔하다. 단언컨대 병원자본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단협의 개악을 시도할 것이다. 병원자본의 의도는 뻔하다. 재직중인 노동자들과 신규 노동자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이후 장기적으로 개악된 단협을 더욱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개악된 근로기준법에 상회하는” 합의안이라는 평가는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4장 비정규직 요구와 5장 병원의 사회적 노력
산별합의안에 직접고용비정규직에 대해 4대 보험 적용과 월 1회의 휴급휴가를 쟁취한 것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이후 조직해나가는 데에 있어 하나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몇 가지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이내 그것은 5장의 간접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병원자본의 사용자성 부정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줌으로써 부정되어진다.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에 맞서 줄기차게 싸우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있어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은 가장 절박하고 중요한 투쟁의 요구였다. 이번 산별 합의는 이것을 부정하고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IMF 이후 파견근로의 확대가 비정규직 확대의 가장 근본적인 기반이 되었다. 병원 또한 여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이 횡횡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최근 노무현 정권의 파견법 개악으로 더욱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병원 또한 용역ㆍ파견의 형태로 상당수의 비정규직이 고용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점을 고찰한다면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단순히 직접고용비정규직에 대한 일부분의 처우개선의 문제로 결단코 국한 지을 수 없다. 물론 당장에 간접고용비정규직들을 모두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간접고용비정규직노동자들을 이후에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보건의료노동조합 내부에서 하반기에 예상되는 전 업종으로의 파견법확대 기도에 대해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그 시작 자체를 막고 있다.
이번 파업을 통해 일부 조직력이 살아 있는 지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소중한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이 내포하고 있는 사용자성의 부정은 병원자본의 입장에서 직접고용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화를 일부 허용하더라도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갔다. 앞으로 직접고용비정규직의 비율을 줄이고 간접고용비정규직노동자들을 늘리는 방향으로 현장구조조정을 진행해나갈 것이다. 동시에 노무현은 하반기에 파견법을 대폭 개악하여 병원자본의 이러한 의도들을 현실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간접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이번 입장은 이후 병원자본의 현장구조조정의 방향을 예상하지 못한 처우개선일 뿐이다. 현재 쟁취한 일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성과가 진정 현장권력의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이해와 투쟁의 폭을 간접고용노동자들에 대한 것으로까지 넓혀야 한다.

▶6장 최저임금제
보건의료산업 노동자(산업분류 : 보건업)의 최저임금은 노동부‘매월 노동통계 조사보고서’에 의거한 월 평균 정액급여의 40%를 산업별 최저임금으로 정한다.
최저임금제의 문제는 보다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이 잠정합의한 6월 22일은 민주노총과 중소영세사업장들의 최저임금쟁취 투쟁이 한참일 때였다. 민주노총의 요구안은 “전체 노동자의 정액급여 평균의 50%의 법제화”였다. 그러나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최저임금합의안은 40%에 머물렀으며 이는 그나마 열악한 조건에서 최저임금투쟁을 전개하던 수많은 영세사업장의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더구나 6월 25일에 발표된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보다 못한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은 금액으로 환산하면 시급 2,840원에 월 641,840원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그러나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최저임금합의는 월 616,871원에 해당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금액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결국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최저임금합의안은 굳이 요구안으로 제출하여 합의하지 않았어도 적용될 것이었다.
최저임금투쟁은 전국의 1,400만의 중소영세사업장, 근로기준법도 지켜지지 않는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다. 법정최저임금이 오히려 중소영세사업장의 최고임금이 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은 어떤 식으로도 이러한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적인 평가를 벗어나기 힘들다.

실상이 이러하지만 실제 보건의료노동조합은 상반기 투쟁의 핵심쟁점과 의의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2004년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산별 총파업과 산별교섭에 대한 입장은 간담회 자료를 통해 대부분을 읽을 수 있다. 간담회 자료에서 보건의료노동조합은 이번 산별 총파업과 산별교섭의 성과에 대해 “▲보건의료산업의 첫 산별교섭 ▲새로운 교섭구조 정착 ▲법 개정 이후 실질적인 주 5일제 노사합의 ▲1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위력적인 산별 총파업 전개” 등의 성과를 논하면서 보건의료노조 내부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역사상 커다란 의미를 갖는 교섭과 투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100여개가 넘는 사업장의 지역과 특성, 규모와 조건을 뛰어넘는 단일한 합의안이라는 점과 위력적인 산별 총파업의 성사, 산별총파업투쟁의 합법성을 쟁취한 것은 전례 없는 투쟁의 성과라고 논하고 있다.

정작 그러한가? 정작 위력적인 산별 총파업으로 현장은 강화되었는가? 보건의료노조 자체적인 조직력을 추스르는 것에는 성공하였을지 모르지만 보건의료노동조합은 분명 상반기 정권과 자본의 공격의 핵심적인 키워드인 단협의 개악, 현장에서의 비정규직 확대기도의 문제에 대해 병원자본의 이후의 행보가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투쟁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도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고 합의 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렇게 합의하는 것이 목표였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이다. 이는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산별총파업 동안에 이루어진 전술의 변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2) 교섭을 위해 투쟁이 왜곡되다.
이번 보건의료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의 과정은 전술의 지속적인 후퇴와 교섭안의 후퇴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것도 교섭의 성사를 위해 그러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초기 6월 10일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주요 대규모 병원 사업장을 중심으로 로비점거농성이 진행되었다. 병원자본에게 있어 가장 까다롭게 다가가는 전술은 병원을 직접 점거하는 투쟁일 것이다. 노동자들이 현장을 점거하는 것 만큼 위력적인 파업투쟁은 없다. 그러나 파업이 지속되면서 로비점거 농성은 평화로운 교섭의 성사를 위해 노동조합이 큰 맘 먹고 양보하는 하나의 카드가 되어 버렸다. 6월 14일을 기해 5개 국립대병원과 사립대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던 항의농성투쟁을 교섭의 성사를 위해 중단하게 된다. 파업에 있어 가장 큰 무기를 놓아버리고 만 것이다. 단지 만명의 병원노동자들이 병원을 나와 노천강당에 모여 있는 것, 광화문 집회와 거리평화행진을 벌이는 것이 파업의 주요한 전술로 변화되어 버렸다. 현장을 장악하는 공격적인 파업전술이 아니라 보다 유연화된 파업전술로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16일 사용자측의 교섭결렬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 먼저 17일의 교섭재개를 요청하고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더욱 극대화된다. 총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한 신규인력충원의 요구를 양보하여 4시간분의 추가 인력에 대한 요구로 축소하고 연ㆍ월차 휴가를 비롯한 근로기준법의 개악된 안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안을 제출하였다. 이것은 누가보아도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사용자측의 교섭결렬과 해태에 대해 보다 강도 높은 투쟁의 전술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양보교섭으로 어떻게든 사용자측을 교섭테이블로 나오게 만들면 된다는 식이다. 대중투쟁동력과 강력한 전술에 기반하여 요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교섭의 성사를 위해 정작 중요한 요구와 투쟁이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산별교섭 자체를 목적화 했던 상황, 그리고 산별총파업의 요구와 내용에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라 산별총파업의 합법화에 무게를 두었던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이는 간담회 자료에 극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보건의료노조 스스로 산별 총파업의 합법화를 큰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 14일간의 산별총파업투쟁을 통해 17년간 병원노조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만들고 병원노동자의 파업권을 가로막아온 직권중재를 무력화하고, 합법파업을 쟁취함으로써 자율타결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 이로써 14일간의 산별총파업투쟁을 통해 민형사상, 인사상 불이익을 금지하고, 현장복귀 이후 탄압과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방패를 마련하였다.
「간담회 자료에서 발췌」

그러나 우리 문제를 보다 정확히 하자. 14일간의 총파업을 통해 직권중재를 무력화한 것이 아니라 산별교섭의 온전한 성사를 위해서는 파업의 불법화를 막아야 했고, 이를 위해 전술의 지속적인 후퇴와 요구안의 후퇴가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었던가! 직권중재의 문제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상반기 사회적 합의주의가 강화되고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이에 화답하는 상황에서 직권중재는 노무현 정권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노무현정권은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산별총파업의 전개상황에 따라 직권중재를 통한 탄압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재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만약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산별 총파업이 상반기 투쟁의 분수령이 되어 투쟁의 확장으로 나아가려는 조짐이 조금만 보였다면 노무현은 가차 없이 직권중재를 통한 탄압을 자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의 입장에서는 안심스럽게도 그 이전에 보건의료노동조합 스스로가 투쟁전술의 수위를 낮추고 사용자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요구안을 낮추었다. 노무현정권의 입장에서도 굳이 직권중재를 통한 탄압으로 사회적 비판을 받는 것 보다는 적극적으로 산별교섭을 추진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음을 보았을 것이다. 결국 산별총파업의 합법화는 대중투쟁의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 졌다기보다는 산별교섭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던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지도부의 의도와 노무현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추진의도가 훌륭히 맞아떨어진 것이었을 뿐이다.

3) 서울대지부의 외로운 투쟁과 산별교섭의 정치적 의의
2) 단, 제9장(임금), 제3장(주5일제 노동시간단축) 제1조(노동시간단축), 제5조(연․월차 휴가 및 연차수당), 제6조(생리휴가)는 지부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며, 동 협약 시행과 동시에 지부의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을 개정한다.
「산별 잠정 합의안 10장 2조」
10장 2조를 둘러싼 논쟁은 서울대지부장에 대한 징계논의로 보건의료노동조합 대 서울대지부 사이의 첨예한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10장 2조의 문제는 단순히 합의안의 하나의 문구의 문제로 국한되어 논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번 산별교섭의 성과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이주호 보건의료노동조합 정책기획국장의 말처럼 산별합의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10장 2조의 문제는 바로 중앙의 산별교섭에 대해 지부의 현장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 현장권력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지부의 독자적 파업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아래로부터의 실질적인 민주주의와 투쟁이 가능 할 것인가의 문제를 포괄하는 산별교섭 자체의 문제이다.

산별교섭은 그 자체의 특성상 노동측은 기층 지부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확보해야 하며 자본측은 개별자본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아직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와 경험 속에서는 각각이 완벽한 통제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자본이 산별교섭에 참여하게 되는 가장 큰 목적은 중앙의 협약을 통해 기층 노동조합의 투쟁을 사전에 방지하고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적절한 조절을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자본은 언제나 산별교섭에 임하면서 교섭비용의 증가를 이유로 들며 이중교섭을 거부한다. 중앙교섭을 통해 합의된 사안은 철저히 현장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자본은 산별협상에 참가하게 된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자본은 언제든 교섭을 해태하고 파괴한다. 폭발적인 대중투쟁의 힘을 바탕으로 성사된 산별교섭이 아닌 이상에야 노동과 자본 양측이 산별교섭의 성사를 위해 암암리에 이러한 것들을 전제한다. 이러한 조건은 노동운동의 가장 큰 힘인, 현장권력에 일정정도의 제한을 가하는 것을 전제한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탄압과 구조조정에 대해 즉각적으로 말단의 현장이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기존의 체계와 달리 지부별 파업이 중앙에 의해 승인될 때만이 지부의 파업이 가능한 상황을 연출시킨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산별이라는 체계 그 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내재적인 한계로 단정 짓기는 힘들다. 이러한 흐름은 현 시기 계급역관계,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형태와 성격, 질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대중투쟁의 흐름이 존재한다면 산별교섭은 그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산별교섭 자체의 특성상 다시 무너지고 만다. 만약 산별노동조합이 대중의 강력한 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자본은 오히려 중앙교섭을 해태하고 개별교섭으로의 전환을 강력히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산별교섭은 자본의 입장에서 무언가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 때에 매력을 가질 수 있는 교섭이다. 이러한 지점이 말해주는 것은 노동조합의 조직체계, 교섭체계의 문제는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대중투쟁의 힘과, 강력하고 공격적인 전술의 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것이지 교섭의 체계와 틀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대 지부와 보건의료노동조합 본조와의 공방은 이러한 산별교섭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0장 2조의 문제를 중심으로 벌어진 갈등은 서울대 지부의 독자파업 기간 중에 본조의 지원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번져갔고 결국 이는 현재에 서울대지부장의 징계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상의 과정에서 벌어졌던 논쟁은 현 시기 산별교섭의 정치적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산별노동조합으로서 보건의료노동조합은 지부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산별 중앙교섭이 지부에 철저히 적용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럴 때만이 자본은 산별교섭에 참여할 것이다. 서울대지부와 보건의료노동조합 본조의 갈등과 공방은 산별의 이러한 조직적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논쟁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바라본다면 서울대 지부 파업기간 동안에 보건의료노동조합 본조가 보여주었던 모습들이 이해될 수 있다. 2005년의 산별교섭의 성사를 위해서는 결코 서울대지부와 같은 경우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안심을 자본에게 던져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주노조의 단결력을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한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지 않은가! 보건의료노동조합 본조는 이러한 원칙보다도 산별교섭의 성사와 안착화에 더욱 무게를 두었고, 그러한 관점에서는 서울대지부의 독자파업은 당연히 반조직적이고 대병원지부의 이기주의로 비춰질 것이 뻔하다.

그러나 서울대지부의 입장에서 이번 문제제기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특히 10장 2조로 인해 합의안 제 3장 5조의 연ㆍ월차의 축소와 통폐합 문제에 대한 서울대지부의 문제제기는 이번 산별교섭의 허와 실을 정확하게 바라본 정당한 문제제기였다. 재직노동자와 신규노동자에 대한 단협적용의 범위를 달리함으로써 병원자본이 장기적으로 단협의 개악을 지속적으로 시도할 것이라는 지점을 정확히 바라보았다. 10장 2조의 문제는 상반기 자본의 단협개악시도가 병원에서는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즉, 상반기 자본의 구조조정의 핵심적인 쟁점들을 보건의료노동조합의 파업 또한 그대로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대지부는 독자파업을 통해 병원자본의 단협개악의도를 막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보건의료노동조합 본조는 이에 대해 반조직적 행위라 규정짓고 산별합의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였다. 10장 2조의 문제는 단지 산별합의안을 지부에서 거부하였다는 조직 형식적 논리를 넘어 상반기 자본의 구조조정의 쟁점이 병원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리고 이에 대해 어떻게 투쟁이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보건의료노동조합 투쟁의 전반을 아우르는 문제이다.
실제 병원자본들은 10장 2조의 체결이후 10장 2조를 근거로 들며 지부의 파업들을 불법으로 매도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이는 지부의 조직력과 직결되는 지부 수준의 요구안의 쟁취수준을 끊임없이 하향화 시키려는 병원자본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지부 수준에서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서울대지부와 같은 곳은 철저히 고립, 탄압으로 일관하면서 산별중앙교섭에서 체결된 적절한 수준의 기준을 일괄적으로 현장에 적용, 통제의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전략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지부교섭조차 성사시키기 힘들었던 열악한 조건의 지부들에게 있어서 이번 산별합의안이 병원자본을 강제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산별노동조합 안에서 그것도 보건의료노동조합같이 지부 사이의 조직력과 편차가 심한 조직 안에서 이를 통일해나가는 과정은 과연 어떠해야 할 것인가? 서울대지부와 같이 조직력 있는 지부들이 최전선에서 상향화된 요구를 쟁취하고 이를 다시 조직력이 취약한 지부에서 받아 안아 병원자본에게 공세적인 요구를 걸어가는 것이 보다 타당한 과정일 것이다. 그럴때만이 장기적으로 각 지부의 조직력과 요구안은 상향평준화 될 수 있을 것이며 병원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서 통일적이고 단결된 노동조합의 힘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서울대지부와 보건의료노동조합 본조의 갈등과 공방은 산별교섭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현장통제의 한 방편으로 전락해갈 것인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지부의 독자적 파업권을 보장하고 지부로부터 시작되는 아래로부터의 요구의 상향평준화를 꾀하지 못한다면 산별노동조합과 산별교섭은 언제까지나 교섭의 성사에만 목적을 둔, 언제까지나 다음에는 잘 해보자라는 식의 것이 될 것이 뻔하다.
4.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극복할 것인가?
① 상반기 투쟁은 비판적인 평가를 벗어날 수 없다. 경제위기로 인한 노동운동의 고립이 객관적인 어려움으로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것은 양보교섭과 전술의 후퇴를 통해 대중들에게서 다시 파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을 넘어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상반기 자본의 공격은 더욱 광폭하게 진행되었고 현장조직력을 보유하고 있는 일부 대공장조차 단협의 개악을 막아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우리는 이 문제에서 어느 순간인가부터 ‘유연화된 전술’로 표현되는 전술의 변화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파업=노동자의 학교’ 다라는 명제는 이제 ‘부분파업->파상파업->정상조업->전면파업->부분파업’ 과 같은 유연화된 전술로, 후퇴된 전술로 변화됨으로써 파업은 수동화되고 자본은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의 개악을 바탕으로, 대공장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달려드는 자본에게 과연 ‘유연화된 전술’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② 전면적인 총파업을 조직해도 부족할 판에 민주노총은 사회적 합의주의로 답하고 있다. 계급대타협의 그림을 차근히 그려가고 있다. 과연 사회적 합의주의, 다각도의 교섭틀, 제도개선 투쟁, 입법투쟁은 지금의 자본의 광폭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상반기를 거치며 실천적으로 증명되었다. 대공장죽이기 이데올로기, 단협 개악을 통해 자본은 현장을 직접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 정세의 반전을 꾀할 수 있는 것은 현장에서부터 시작하는 강력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③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상반기 투쟁은 앞서의 ①과 ②의 문제를 비껴갈 수 없는 상반기의 핵심적인 투쟁이었다. 병원자본은 동일하게 단협을 개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악된 근로기준법에 상회하는’ 합의안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전혀 정세를 바라보지 못하는 오판일 뿐이다. 산별교섭의 성사 자체를 목적에 둠으로써 상반기의 핵심적인 쟁점들은 비껴가게 되었으며 상반기 투쟁 전반을 통해 다시 드러났던 양보교섭과 전술의 후퇴가 그대로 반복되었다. 정작 산별총파업의 내용과 요구에 주목 했더라면 병원의 단협 개악에 맞서 가열찬 투쟁으로 화답했어야 한다. 하반기 파견법 확대 기도를 읽었다면 병원자본의 간접고용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성을 투쟁으로 얻어내고 이후 간접고용노동자들에 대한 투쟁의 지반을 확보했어야 했다. 13일의 총파업은 이후 지부교섭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전 지부를 끌어안고 가는 지속적인 총파업이 되었어야 했다. 이 속에서 서울대지부의 투쟁과 같은 실제로 현장을 방어하고 강화하는 투쟁에 집중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산별교섭의 성사’ 라는 달콤한 꿈에 젖어 이후 현장 싸움의 치열한 쟁점들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④ 하반기 노무현정권은 노사관계 로드맵, 파견법 개악을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노동운동 상층부를 포섭하기 위한 노사정 테이블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또 다시 상반기 투쟁을 반복할 것인가? 입법투쟁과 제도개선 투쟁으로 현장의 권력을 다시 노동이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더 이상 양보교섭과 ‘유연화된 전술’로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무리 그러한다고 해도 대기업노동자 이데올로기, 경제위기 이데올로기, 파업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모면할 수는 없다. 그것을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본의 요구대로 파업을 아예 하지 않는 방법 밖에는 없다. 이제는 현장을 장악하는 강력한 투쟁으로 화답해야 한다. 현장조합원들의 수동성과 패배주의를 핑계삼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전술을 통해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투쟁을 기획해야 한다.

⑤ 보건의료노동조합 또한 상반기의 오류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상반기 투쟁에서 놓쳐버렸던 간접고용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하반기 노무현정권의 파견법확대기도에 맞서 강력한 투쟁으로 화답해야 한다. ‘역사상 첫 산별교섭의 성사’ 라는 달콤한 꿈에 젖어 있다가는 어느새 현장은 파견노동자들로 채워질 것이다. 상반기 투쟁의 핵심은 하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다시금 상반기 투쟁의 오류들을 점검하고 하반기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현장의 계획이 필요하다. 파견법을 막아내는 총파업 투쟁이 절실히 요구된다. 한/노/정/연

2004-10-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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