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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투쟁, 찜찜한 성과,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103호
이영수

힘겨운 투쟁, 찜찜한 성과,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이 영 수
평등세상을 위한 노동자 민중실천연대 사무국장




전국에 장기투쟁사업장이 산재해 있다. 100일째 투쟁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수년간 지속되는 장기투쟁사업장이 지역마다 존재한다. 현재 노동운동의 연대 수준으로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것이 사실이다. 임단투 과정에서 산별공동교섭이나, 대각선 교섭을 통해 단위조합의 교섭력의 한계를 넘어보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지만 그 성과는 뚜렷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보건의료산업의 경우처럼 산별교섭에 의해 단위노조의 성과가 유실되는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단위사업장에서 임단투를 진행하는 것도 힘겨운데, 언론을 통해 노동자들의 정당한 임금보전(물가인상에 따른 생활비 따라잡기)요구도 경제살리기에 역행하는 역적으로 몰리고, 투쟁의 성과에 대한 조합원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해 활동가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IMF이후 우리 사회에서 87년부터 시도되어 왔던 노동조합이 임단투를 통해 기업에서 받는 임금을 높이고 기업차원의 복지를 확대하여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시대는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임금인상의 폭도 갈수록 제한되고 있고, 그나마 기업차원의 복지제도도 오히려 축소일로에 있기 때문에 이 전략은 갈수록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증가로 말미암아 사회전체적으로 빈곤과 차별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평등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노동조합운동은 그 빛이 갈수록 바래고 있다.

그러니 운동으로서 노동조합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합운동의 성과를 보장하는 사측에 대항한 교섭력이 날로 저하되고 있다. 조합원 대중의 참여의식은 저하되고, 간부 충원은 갈수록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조합운동의 주체들이 보여주었던 빛나는 열정은 더 이상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노무현을 비롯해 운동권출신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간 놈들이 온갖 논리로 자행하는 노동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중상 모략이다. 대기업이기주의니, 민주노총이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를 배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느니, 경제회생에 관심이 없는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고 있다. 경제파탄의 원인이 무분별한 기업살리기 정책을 펴면서 임금을 비롯한 가계소득을 계속 줄인 것에 있음에도, 이에 대한 효과적인 반론과 단호한 실천을 조직하지 못한 결과, 정권과 보수언론으로부터 수시로 난타를 당하고 있다.

사회적 교섭 운운하며 조합원들을 중앙간부들의 교섭력에 의존하게 하고, 대중투쟁을 제대로 먹히지도 않는 대정부 엄포용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노동운동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이를 충분히 간파하고 있는 현정권은 노동자를 무시하며 이번 파견법 개악과 같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있다.??
우리의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노동조합을 만들다 해고되고, 투쟁 중에 감옥에 가고, 조합간부로서 가족과의 따뜻한 대화도 포기한 채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우리 활동가들은 도대체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가? 어떤 미래를 위해 현실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지사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해서? 사회대개혁을 위해서? 아니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아무도 이렇게 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노협 시절에는 모호하기는 했어도 노동해방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민주노총에 와서는 좀 촌스러운 구호로 취급받았다. 민주노동당이 있는 지금은 노동자 정당이 집권해서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처럼 살고 싶다는 대답도 나올 만 하지만 사실 그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우리 꿈은 무엇이란 말인가?

지향이 없는 운동, 목표가 실종된 운동은 피로감만 쌓이게 할 뿐이다. 오늘의 고생이 당장의 찬란한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전진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이 피로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목표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무엇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한 가운데 이를 대치할 분명한 대안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에 의해 고통 받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IMF공황에 의해 고용 위협에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노동권은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라고 명명한 이 시대의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어떠한 타협도 용인하지 않는다. 오로지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기자본에게 신나는 나라로 돌진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타협의 여지가 손바닥만큼도 남아 있지 않은 현실에서 자본주의를 끝장내겠다고 싸우는 것말고는 답이 없다. 왜냐면 수정자본주의니, 복지사회니 하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식'의 타협책이 가능할 만큼 한국은 부자나라도 아니고, 자본가들은 그런 양보는 꿈도 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국가체제에서 자본가의 양보를 끌어내려고 하는 헛된 노력, 특히 의회에서 몇 되지도 않는 국회의원으로 개량주의적 입법활동에 의존하는 사민주의 방식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올바르지도 않다. 그것은 대중투쟁을 통해 대중을 주체로 세우는 것을 포기하고 이른바 대리의식-의원들이 무엇인가 해 줄 것이라는 의존적 태도만을 양산한다. 혁명운동 역사는 이렇게 성장한 의원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의 혁명적 진출을 억압하고 왜곡해 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의회활동은 대중투쟁에 철저히 복무하는 사회주의 의원활동뿐이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나아가자!
이제 경쟁이 아닌 연대를 차별이 아닌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주의 사회를 향해 나가는 것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시장은 통제되고 무정부의적 시장은 이성적 계획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기 위해서 의료, 교육, 주택, 노후, 육아는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 즉 해고되지 않고, 감옥가지 않고, 노동자들의 결사(노동조합)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노동권이 완전히 실현되고 일할 권리가 전면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세상은 오직 노동자가 권력을 장악해, 세상을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않는 한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는 노동운동의 강화,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강화가 노동운동의 전략적 목표일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길은 우리운동의 약점을 해결하고, 강점을 더욱 확대할 것이다.

지금 우리 노동운동은 다수자 운동으로서 위치를 위협받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격한 증가로 노동자를 포괄하는 계급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보편성을 확신하는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우리사회의 약자로 고통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운동의 한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운동이다. 그러한 노력하에서 노동운동은 모두를 위한 보편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대중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대중투쟁의 관점을 분명히 세운다. 노동운동의 전투성을 복원하는 것은 바로 대중투쟁에서 해결책을 찾고 대중을 주체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각성된 대중의 거대한 투쟁만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의 주된 동력이다. 이렇게 될 때만 노동자 정부가 노동대중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참된 노동자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사회주의 실현을 먼 미래의 과제로 설정하고 당면한 노동자, 민중의 고통을 무시하는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사회주의적 원리의 확대를 통해 노동자, 민중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운동이다. 노동운동이 세상을 책임지고 역사적 임무를 실현하는 운동임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회주의가 제시하는 새로운 사회가 그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과 아울러 당장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현실적 방안임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무상임대주택의 요구, 연기금의 진보적 운용과 같은 개량주의적 요구를 사회주의 강령으로 인도하기 위해??적극 투쟁한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의 문화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는 노동운동이다. 노동자대중의 민주주의적 훈련과 문화적 훈련을 지원하고 육성하는데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이미 노동자대중은 노동조합운동내에서 총회민주주의라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고, 신임투표라는 발달된 소환제를 훌륭히 운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문화를 발달시켜왔다. 최근에는 율동문화라는 새로운 집단적 문화행위를 창출한 바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지 않고 노동자계급은 주민투표, 주민발의제, 주민소환제 등 사회민주주의의 확대에 기여하고 주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노동운동이 민주주의 확대의 주역이 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미 아파트주민회 등에서는 노동조합간부 출신들이 인기가 높다. 깨끗하고 논리적이고 책임성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보편성-노동자계급의 해방이 모든 피업압계급을 해방시키는 특성은 사회 곳곳에서의 지도성과 노동자 공동체의 아름다움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노동조합운동이 모든 노동자대중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지 않는다.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진출은 그 때까지 노동조합이 포괄하지 못한 대중의 참여를 보장하는 공장위원회, 공장평의회 등으로 표현될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는 공장내에 모든 피착취계급을 포괄하는 공장위원회 건설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공장위원회 사상의 보급을 위해 투쟁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현실 노동운동의 주요한 축인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발전에 이해를 갖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공히 개량주의 흐름이 압도적이다. 이런 상태는 조직노동자에게 결국 반노동자의식, 자본가 의식의 침투를 용이하게 해, 갈수록 노동운동을 약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노동당을 사회주의 정당, 노동자계급정당으로 강화, 개조하는 임무와 민주노총의 강령적 수준을 사회주의에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추구할 것이다.??그래서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할 것이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강화는 이를 자신의 임무로 삼고 헌신하는 노동운동내의 주체가 형성될 때만이 실현될 수 있다. 간부가 저절로 충원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주체는 저절로 형성되지 않는다. 강력한 대중투쟁을 통해 사회주의 활동가들은 발굴되고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사회주의 운동을 이해하고 실천할 의지를 갖는 핵심들이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핵심들은 매 시기 사회주의 선동을 수행하며 대중에게 단결의 구심과 지향을 분명히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의 투쟁경험을 보다 높은 수준의 요구로 이끌어 갈 수 있게 한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들은 사회주의 이론을 학습하고, 사회주의 강령을 무기로 노동운동을 실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훈련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학습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사회주의 이념과 강령을 대중적으로 표현하고, 대중에게 심판 받으려는 적극성을 갖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여 대중들에게 사회주의 사회의 열망을 갖게 함으로써 자본가들의 중상모략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우리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당당히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업별 조합운동의 협소한 폭을 뛰어넘고, 진정한 의미에서 전국적이고, 총체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국의 활동가들 사이의 교류와 단결의 폭을 확대하고, 강력한 조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될 때만 사회주의 노동자들은 전국적 관점을 갖고, 업종, 지역을 뛰어넘는 연대의 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책임질 포부를 갖고 있는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와의 투쟁에서 승리하고픈 열망을 가진 노동자는 사회주의 조직운동으로 단결되어야 한다. 역사에서 21세기 초반 수세를 공세로 전환해 마침내 승리를 일군 사람들이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길을 개척했던 자들을 기억하게 하자. 위대한 사상은 초라한 오두막에서 걸어나오고, 영웅적 실천은 패배하지만 좌절하지 않는 뜨거운 심장에서 시작된다. 전국의 현장활동가와 당내 사회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길로 매진할 당내 사회주의 조직의 건설에 당장 착수할 것을 호소한다. 한/노/정/연

2004-1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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