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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변혁운동의 전략과 전망

현장에서 미래를  제103호
박영균


특 집

             자본의‘위기’와 변혁의 전망

    “한국 변혁운동의 전망과 전략”


자본주의 위기의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경제가 보여주는 장기간의 경기침체, 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 전형적으로 보였던 심각한 경제위기와 격렬한 계급투쟁, 미제국주의의 이라크침략전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신자유주의. 

위기는 그리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바로 우리들의 오늘이 힘에 겹고 내일이 불안하고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1987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완성되어 가는 부르주아민주주의체제는 결코 노동자민중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위기의 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변혁에 대한 전망을 논의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특집은 연구소의 창립9주년 심포지엄 발제문과 토론문으로 구성된다. 발제문“한국 변혁운동의 전망과 전략”은 연구소 내부의 심포지엄 준비팀의 토론을 거치기는 하였으나 연구소의 통일된 의견은 아니며 발표자 개인의 의견이다. 토론자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와 <평등세상을 위한 노동자 민중실천연대>에서 참여할 예정이고, 토론문으로 실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책의 끝부분 자료 <당내사회주의의견그룹을 건설하자>를 참조해보기 바란다.

한국 변혁운동의 전망과 전략

박 영 균

한노정연 연구위원


Ⅰ. 80년대 변혁이론과 혁신의 지점들

1. 80년대 변혁운동을 회고하며

2. 80년대 변혁운동과 ‘혁신’의 과제

    1) 80년대의 사회구성체론과 변혁이론

    2) 경제주의적 함의들

    3) 이데올로기론의 부재와 수동혁명, 그리고 국가론

    4) 80년대의 계급동맹론과 헤게모니론

3. 논쟁의 결산과 변혁이론의 혁신

    1) 변혁이론의 혁신 과제

    2) 폐기되어야 할 것들과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것들

Ⅱ.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변혁 지형의 변동

1.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국제 정세

2. 동북아의 지각 변동과 남북관계

3. 수동혁명과 지배블록의 자유주의적 재편

4. 사회․문화적 변동과 노동자․민중의 상태

Ⅲ. 변혁 운동 지형의 변화와 변혁 운동의 전략

1. 변혁 운동의 전략적 목표

2.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대항하는 변혁운동의 전술

3. 노동자계급의 통일과 단일한 ‘반자본’전선의 구축

Ⅰ. 80년대 변혁이론과 혁신의 지점들

1. 80년대 변혁운동을 회고하며

21세기로 진입한 오늘날 80년대를 회고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뜨겁게 거리를 달구었던,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했던, 한편으로 격렬한 적대와 대치의 순간들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진지함이 과잉되어 있었던 그래서 아직까지 떠나보내지 못한 ‘미완의 장례식’은 오늘날 여전히 살아있는 자로 귀환해 미래의 변혁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87년 6.10 투쟁이 직선제 쟁취라는 ‘미완의 혁명’으로 마무리되어갈 때 사람들은 여전히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 소비에트 연방을 비롯한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전위당 건설 투쟁’의 실패는 80년대에 대한 반동이자 ‘위로부터 강제된 수동혁명’*1)(‘반혁명’)의 과정 속에서 ‘외상’을 간직한 채, ‘맑스주의의 위기와 해체’로 이어졌다.

‘해체’를 말했던 그 누구도 더 이상 80년대의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반성하려 하지 않았다. 상처의 흔적은 깊었고 ‘당파성’,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주의’, ‘혁명’ 등등에 고착되어갔다. 특히 ‘과학적 사회주의’는 이들 기표들을 중첩적으로 결정하는 과잉 긴박된 상징이 되었고 사람들은 ‘일상’과 ‘생활’, ‘욕망’과 ‘금지’, ‘자신의 육체를 향해 작동하는 권력’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주의는 그들에게 금기를 강요하는 권력이자 자신들의 욕망을 억압하는 기표였다. 그리고 80년대 운동에 대한 반동이자 상처에 대한 보상, 그리고 ‘일상으로의 투항’과 ‘반혁명적 수동혁명으로의 인입과정’을 보증해 주는 보증수표였다. 80년대의 과잉 결정된 꿈과 상처는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결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치 그 때의 사랑이 그와 무관했던 잘못된 권력과 과잉된 열정, 이성의 광기였다는 듯이 말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따라서 80년대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80년대의 죽음을 우리는 ‘떠나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유령이 되어 ‘귀환’한다. 오늘날 우리는 80년대를 직시해야 한다. 더 이상 과잉 결정된 기표로서가 아니라 ‘미래의 꿈’을 내장하고 있는, 아직도 땅에 묻어버리지 못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장례식을 위해 우리는 그 때의 열정과 꿈이 비상하고자 했던 미래를 착목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한국의 변혁운동의 전략을 다시 기획하는 여기서 다시 80년대를 반추하는 이유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사회주의로 불리든, 공산주의로 불리든, 또는 코뮨으로 불리든 간에 80년대의 정신은 여전히 그 안에서 흐르고 있다. 그래서 바로 지금 우리는 80년대와 80년대의 외상에 사로잡힌 90년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80년대 변혁운동을 결산하고 새로운 변혁운동의 전략과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

2. 80년대 변혁운동과 ‘혁신’의 과제

1) 80년대의 사회구성체론과 변혁이론

80년대 변혁이론의 기본적인 방법론은 ‘토대에 의한 상부구조의 결정 또는 조응’이라는 관점에 기반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구성체론’이었다. 여기서 이론의 핵심은 생산관계에 근거한 기본모순과 주요모순이다. 기본모순은 한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결정적인 생산관계로서 자본주의에서의 기본모순은 노/자모순으로서 전략적 과제를 부여한다. 반면 주요모순은 기본모순에 의한 운동과정에서 보다 주요하게 현재의 국면을 이끄는 모순으로서 민족모순이나 독점자본/민중간의 모순처럼 전술적 과제를 부여하는 모순들이다. 80년대의 변혁이론은 사회구성체론에 기초하여 계급투쟁의 양상을 분석하고 기본모순과 주요모순을 밝힘으로써 변혁의 내용과 주체, 즉 강령과 변혁의 전략과 전술, 계급동맹과 통일전선의 주체, 범위를 결정했다.

그런데 현재 사회가 자본주의라고 생각했기 기본모순인 노/자모순의 해결이 전략적인 과제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이었다.**2) 따라서 80년대 중반 이후 변혁이론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주요모순의 위상과 성격, 그리고 이에 따른 전략과 전술, 변혁의 주체 동력을 구획하는 ‘혁명의 성격’에 관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변혁이론의 핵심 쟁점은 1) 흔히 ‘종속’에 관한 쟁점이라고 알려진 식민지냐 신식민지냐 탈종속이냐 등을 둘러싼 주요모순의 위상에 관한 논쟁으로, 이것은 기본모순으로서 계급모순과 주요모순으로서 민족모순의 관계와 위상을 결정하는 문제였으며 2) 이로부터 나오는 반제 전선인가, 반파시즘 전선인가 반독점 전선인가 하는 변혁의 주체동력과 계급동맹, 통일전선을 구획하는 문제였다. 따라서 80년대 변혁이론의 주요한 정파들이었던 NL/ND/PD의 핵심 쟁점은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쟁점에 대한 대립과 분리를 통해서 형성되었다. 이들의 쟁점을 단순화하여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3)

 

사회구성체(+사회성격)

혁명의 성격과 과제

혁명의 주체 동력

NL

식민지반봉건사회구성체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

(부르주아혁명)

민족자본, 진보적 지식인, 학생, 농민, 노동자

ND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민족민주혁명(부르주아혁명+사회주의혁명: 2단계혁명론)

자유주의자본가를 포함하는 노동동맹

PD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민족해방반독점민주주의혁명

(반제반독점민주주의혁명)

반독점전선에 기초한 노동자 혁명

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구성체논쟁과 변혁이론논쟁은 NL/ND논쟁에서 PDR로 정리되는 수순을 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DR론 안에서의 분화가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종속의 위상’과 ‘혁명의 성격’에 관한 것이었다. 윤소영은 종속과 독점의 관계를 ‘독점강화 종속심화’ 테제로 정리하면서 핵심쟁점이었던 기본모순과 주요모순의 하나의 운동과정으로 정리하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기본 관점을 정리하였다. 그러나 윤소영-이진경에 의해 대표되었던 PD론은 여전히 ‘종속심화’라는 종속론적 편향을 내포하고 있었다.****4) 88년 3저호황을 계기로 형성된 남한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과 소비에트 연방 내의 개혁파의 대두, 그리고 그들에 의해 제기되었던 제국주의론의 폐기는 곧바로 한국의 사회구성체논쟁에 유입되었다.*****5) 이병천류를 비롯한 상호 의존성 테제의 도입은 ‘종속약화’, ‘탈종속’에 이어 ‘중진자본주의론’, ‘아제국주의론’으로 분화해갔으며 이어 일반민주주의혁명론→혁명론의 폐기, 맑스주의의 해체로 이어졌다.*6)

아울러 혁명의 성격과 주체동력의 범위를 둘러싼 논쟁도 87년 6.10혁명에 대한 지배권력의 반작용인 ‘위로부터의 수동혁명’과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이 맞물리면서 사실상 변혁운동세력의 해체와 흡수가 이루어지고 이와 더불어 소멸해버렸다.**7) 그런데 이런 소멸은 본질적으로 맑스주의-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해체이자 핵심주체동력으로서 노동자계급중심성의 폐기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80년대에 대한 부정과 폐기였다. 사실, 80년대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PDR론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반동성’을 상부구조에 기계적으로 적용한 국가독점자본주의 상부구조=‘파시즘’이라는 경제결정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8) ‘반파시즘 인민전선’이냐, ‘반독점인민전선’이냐 하는 논란도 있었지만 ‘종속론적 편향’과 어울려 PD론은 한국에서의 형식적 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9) 그런데 80년 이후 한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는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 이행하고 있었으며 상부구조 또한 국가권력의 파시즘적 체제에 대한 혁명적 저항이었던 87년 6.10을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수동혁명으로 흡수하면서 지배권력을 형식적 민주주의에 적응시켜가고 있었다. 따라서 ‘종속론적 편향’과 ‘탈독재가능성에 대한 부정’은 역으로 지배계급에 의해 진행되는 ‘위로부터의 수동혁명’에 의해 흡수되었다. 그것은 ‘수구-보수 대 개혁-진보’라는 축으로 이동과 변혁운동세력의 지배권력 내부로의 흡수였다.*****10) 따라서 ‘해체’는 단순히 이론 진영상의 ‘탈’(포스트주의)맑스적 이동뿐만 아니라 80년대의 꿈, 근본변혁적 이상의 상실을 의미했다.

그러나 80년대의 죽음은 ‘미완의 장례식’이었으며 다시 귀환할 수밖에 없는 ‘꿈’의 상실을 의미했다. 96-97년 총파업투쟁은 6.10의 직선제 쟁취에서 멈추어버린 바로 그 지점에서 타올랐던 7, 8월 노동자대투쟁이 이미 역사적으로 예고했던 꿈의 부활이었다. 그것은 90년대 이후 폐기되거나 쓰레기통에 내던져져 있었던 노동자계급 중심성이 한국에서의 변혁운동에서 여전히 중심주체임을 보여주었다. 80년대는 끝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90년대를 넘어 오늘날 변혁의 중심에서 비상을 꿈꾸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80년대에 지식인들의 사고를 부여잡았던 사회구성체와 변혁이론은 여전히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드러내는 모순과 현실의 운동은 그 ‘귀환’을 절박하게 요구한다. 따라서 80년대의 근본변혁은 여전히 오늘날 우리가 출발할 수밖에 없는 변혁운동의 기본적인 준거점이 될 수밖에 없다.


2) 경제주의적 함의들

우리는 90년대를 지나왔다. 오늘날의 현실은 80년대의 오늘이 아니다. 90년대의 실연은 어쨌든 80년대 운동이 낳은 폐해의 온상 위에서 자라난 것이며 ‘탈’, ‘해체’의 운동은 그 안에서 맑스주의의 위기를 폭발시켰기 때문이다. 소위 스탈린주의 또는 경제결정론, 목적론 등등의 비판은 이 폐해 위에서 자라났다. 80년대의 사회구성체론과 변혁이론 논쟁 안에서는 분명히 이 폐해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특히 소비에트 혁명이 당독재로 귀결되는 과정에서의 ‘이성의 화신으로서의 당’이라는 개념 위에는 맑스주의의 역사 지형 위에서 작동해 왔던 권력과 지식의 연계, 배제와 독점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었다.*11) 맑스주의의 근대성!, 이성을 통해서 객관적인 법칙을 파악할 수 있고 이런 법칙 위에서 ‘의지와 실천을 통일’시켜 가는 ‘과학적 사회주의’는 ‘토대에 의한 상부구조의 결정’이라는 경제결정론적 함의들에 의해 오염되거나 결박당했다.**12)

예를 들어 80년대의 개량 논쟁은 항상 한국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 잉여의 문제로 환원되었다. 그러나 개량의 문제는 계급투쟁의 역관계 문제일 뿐, 물질적 토대나 자본이 매수할 수 있는 잉여의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계급투쟁을 분석하는 것으로서의 토대였다. 그럼에도 당시 80년대에는 암묵적으로 '토대→경제→생산력'으로 환원하는 식의 사고에 익숙했으며 그 결과는 언제나 자본주의의 항상적 위기를 되뇌는 것으로 끝나버리곤 했다. 여기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표현하는 계급투쟁의 역동성에 대한 ‘구체적 사고’가 없었다. 따라서 문제는 자본 그 자체의 경제적 모순의 분석에 머무르는 원환적 분석만이 시도되었다. ‘과학은 없었고 미래의 꿈만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미래를 결정’하는 자본의 한계에 대한 이런 분석들은 레닌이 말하는 ‘구체적인 정세에서의 구체적 분석’이 될 수 없다. 자본 그 자체의 경제적 모순은 자본의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 생산의 사회화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과잉축적의 위기 등등은 자본의 사멸과 근본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13) 따라서 그것은 이행의 필요조건을 지시할 뿐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14) 여기서 필연성은 ‘한계의 경계’를 보여주는 것일 뿐 현재의 필연성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것이 이행의 필연성이 되려면 그것은 필요충분조건*****15)으로 전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시간적으로 그것은 현재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미래’를 지시할 뿐이다. 그러나 계급투쟁은 현재를 지시하며 이행의 충분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주체의 기획과 의지를 선취해 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구성체에 대한 파악은 계급투쟁 그 자체에 대한 분석이 목적이며 계급투쟁의 사회․정치․경제․이데올로기적 조건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밖에 없다. 총체성 또한 단순한 4가지 계기들의 나열이나 직선적인 연결, 또는 연역적인 귀결의 방식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장에서 상호작용하면서 모순적으로 결정해 가는 현재의 국면, 계급투쟁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80년대의 혁명적 맑스주의는 여기서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3) 이데올로기론의 부재와 수동혁명, 그리고 국가론

토대→상부구조의 결정은 상부구조를 통해서 노/자모순을 지배코드로 만드는 이데올로기의 역동성을 간과한다. 아울러 국가권력이 대중의 역동성을 흡수해내는 지배헤게모니의 역동성을 간과한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보다 철저하고 구체적인 분석, 국가권력의 지배체계 안에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적 코드화의 과정에 대한 이해의 부재는 6.10이후 한국의 지배권력이 흡수해 가는 ‘반혁명’, ‘위로부터의 수동혁명’에 대한 판단의 오류와 반대급부적인 운동의 흡수와 이탈을 낳았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정권으로 이행 과정에서 ‘민간파시즘’ 등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전제를 깔고 있었다. 따라서 수동혁명이 진행시켜가는 지배헤게모니의 구축과정, 즉 적극적으로 민주화의 열망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포획하면서 시민사회의 장에서 지배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과정은 이전 변혁운동에게 반대급부의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실질적 포섭과 더불어 이데올로기적인 개인들의 재주체화 과정*16)이 동반되었으며 ‘민주화’의 코드는 지배헤게모니 안으로의 흡수를 낳았다. 따라서 80년대의 꿈과 다르게 한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민주화에 대한 반동’으로서가 아니라 ‘수구보수에 대항하는 고립된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장’ 안에서 발전하였다. 90년대 맑스주의의 위기와 해체의 과정에서 시민운동이 성장했고 서구식의 시민사회결여론과 시민사회운동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시민운동으로의 분화와 변혁운동세력 내부의 지배헤게모니로의 흡수가 일어났다. 따라서 변혁운동세력의 제도적 장치 안으로 포획이 이루어졌고 지배헤게모니적 코드 안에서 시민적 주체들의 생산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역으로 80년대의 운동적 주체들의 해체를 동반하였다.

90년대 이후 변혁운동 지형의 변화는 이와 같은 과정을 표현한다. 이미 80년대 후반에 나타나는 경실련으로의 이탈과 더불어 현장 안에서의 ‘정치’의 해체, 민중당을 비롯한 의회정당의 모색과 심지어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의 흡수가 일어났다. 90년대 중반 참여연대, 여성연합, 환경연합, 녹색연합 등이 창립, 발전**17)하고 ‘신사회운동’***18)이 주창되었다. 지배계급의 ‘수동혁명’에 의한 변혁운동의 상층 흡수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다. 지배헤게모니의 재구축과 흡수는 ‘수구보수 대 진보개혁’의 구도와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자유주의 개혁 노선이 맞물리면서 이루어졌다. 87년 이후 한국의 변혁운동세력은 이런 체제의 변동과정, 국가권력의 지배블럭 구축 과정에 대응하지 못했다. 반독재, 반파시즘 등 80년대의 관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국 지배계급의 민주화에 대한 회의 또는 불가능성은 그 역으로 전화하여 민주화에 대한 포섭과 해체를 낳았다. 정치적으로 자본의 헤게모니가 구축되었고 사회적으로 시민운동의 헤게모니가 구축되었다. 아울러 노동운동 내부로도 이런 지배코드의 재전유가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사회개혁투쟁’, ‘사회적 조합주의’, 당-노조의 양날개론 등이었다.****19) 따라서 노동운동의 정치화, 또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80년대식의 비제도, 근본변혁적 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권으로의 인입과 지배권력에 의한 재주체화의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제도화, 체제 내화의 과정은 맑스주의 자체의 이론적 맥락에서 본다면 바로 토대에 의한 결정이라는 국가론 그 자체에 놓여져 있었다. 레닌은 혁명이란 국가권력의 문제라고 했다. 이것은 매우 정확한 표현이다. 그러나 80년대의 국가론은 국가에 대한 도구론적 관점에 기초해 있었다. 물론 맑스주의 안에 이와 같은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 다른 경향 또한 맑스주의 안에는 내재해 있다.*****20) 그러나 80년대의 한국 맑시즘은 국가를 단순히 부르주아계급의 계급지배도구로 본다는 측면에서 국가는 ‘칼’이나 ‘망치’와 같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국가는 누가 그것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되는, 그 자체로는 매우 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다. 적은 명확했고 부르주아 지배체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목표도 명확했다. 부르주아적 지배 계급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의 정치권력체계인 국가권력을 타도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그 국가권력을 사용하여 ‘국유화’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해 가야 한다. 이제 문제가 되는 국가권력을 부르주아로부터 노동자계급에게 탈취하는 효율적인 방법, 전술이다. 피지배계급 일반과 어떻게 동맹과 제휴를 맺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부르주아적 국가권력을 타격하여 부르주아를 패퇴시키고 이를 장악할 것인가의 초점이 되었다. 한국의 부르주아는 근본적으로 반동적이고 파시즘적이다. 변혁론은 전쟁론이 되었다. 문제는 전쟁에서의 전략, 전술처럼 ‘아’의 물리력을 확장해 가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을 접수하기 위해 조직되는 부대는 적의 요새를 장악하고 깃발을 꽂고 우리의 요새로 바꿀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 야전 사령관은 ‘당’이다.*21)

하지만 이렇게 되면 혁명은 매우 단순하고 직선적인 아/타의 관계로 등장한다. ‘아’의 입장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최대한 자신의 지배 하에 쁘띠 부르주아를 끌어들이고 중간 계급을 중립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중립화의 최대 무기는 주요 타격 방향의 설정에 있다. 주요 타격 거점을 지정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우리의 힘을 보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주변의 지역들을 복속시켜 가야 한다. 여기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힘은 바로 ‘아’의 지속적이고 강고한 타격이다. 그리고 이 중심에 ‘아’의 신비화가 또한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 계급에 대한 환상이다. 노동자 계급이 모이고 단결하기만 하면 혁명은 아/타의 단일한 전선으로 구축될 수 있으며 언젠가는 민중들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올바름으로 모일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 체제는 이를 자신의 지배 체계로 그 동안 너무나 잘 포섭해 왔다. 조직된 노동자는 당-노조의 체계 안에서 부르주아 국가권력의 일부로 편입되었으며 그들 스스로 그 안에서 권력을 나누어 가졌다. 오히려 이 속에서 밀려난 존재들은 사회적 약자들, 노인과 여성, 청소년과 장애인, 그리고 노약자와 주변부 계층들이었다. 자본주의적 경쟁체제는 더욱 공고해졌고 ‘합리성’은 ‘시민’의 중립적 코드 안에서 재주체화되었다. 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은 이런 좌파의 헤게모니 전략에서의 약점을 파고들었던 것이고 좌파는 이 변동의 과정에서 무능력했다.


4) 80년대의 계급동맹론과 헤게모니론

아/타의 대립 축을 중심으로 짜여지는 좌파의 변혁전략은 매우 단순한 형태를 뗬다. 특히, 노/자간의 기본모순과 제국주의/식민지라는 주요모순을 통해서 사고되는 변혁이론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했다. 그것은 ‘반독점노동자․민중동맹’, 또는 ‘반제애국동맹’이라는 변혁론으로 귀결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변동, 국가권력의 편제를 매우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의 형성과 구성은 그렇게 단일한 선으로 구획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수동혁명은 피지배계급의 혁명성을 체제 내적으로 제도화해 가는 포획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사회․문화․정치적 역동성을 수반한다. 그러나 70, 80년대의 파시즘체제에서 아/타의 적대선은 명확했다. 반면 90년대 이후 이루어지는 ‘수동혁명’은 이 단일한 적대의 선을 해체한다. 게다가 90년대 이후 사회변동은 사회․문화적 지각 변동을 동반하고 있었다. 이것은 모던과 포스트 모던의 논쟁에서 보듯이 문화적 코드를 이용한 새로운 ‘주체화 생산양식’=권력화의 양식을 동반하고 있었다.**22) 따라서 90년대 이후부터 80년대의 명료한 단일 전선은 흩어지고 지배의 그물망 안에서 포획되어갔다. 흩어지는 적대의 선은 오히려 체제 내화=제도화를 동반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부르주아적 국가권력을 떠받치는 부르주아 ‘사회권력’의 문제는 변혁이론의 혁신에서 ‘핵심적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80년대의 변혁이론은 이와 같은 사회변동을 총체적으로 사유하지 못했다. 그것은 노/자 대립의 단순한 선을 따라 그 위에서 기획되었다. 주요모순은 이런 기본모순에서 운동의 중첩성과 모순의 복수적 선들을 그려주었지만 이 역시 기본모순의 단일한 선 위에서 구획되었다. 특히, 경제주의적 함의들은 자본 자체의 경제적 재생산의 한계에 집중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변혁 전략을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로 남겨 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알뛰세르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영원히 도래하지 않은 최종심급에서의 결정’일 뿐이었다. 80년대의 변혁이론은 노/자를 중심에 놓고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토대 모순에 집중했다. 그리하여 계급동맹이든, 통일전선이든 중요한 것은 토대상의 기본모순에 따른 주적의 설정, 주요공격방향과 주요타격방향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주요공격방향과 주요타격방향은 정세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었다. 주적은 타도의 대상이며 이 때 주적을 향한 핵심 공격 방향이 주요공격방향이며 주요타격방향은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타격을 통해서 중립화 또는 견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80년대의 경우, 자유주의 자본으로 표현되는 중소자본을 주적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주요타격대상으로 할지는 한국의 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종속성과 독점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달라졌다. NL은 식민지성=재벌=매판자본으로 보았기 때문에 애국자본(독점자본 포함)까지를 제휴와 연대의 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서 주적은 미제와 매판자본, 식민지적 권력이며 주요타격방향은 애국자본과 중소자본이며 전선은 반미애국전선이다. 그리고 계급동맹은 노농동맹에 기초하지만 반제(반미) 세력을 아우르는 애국세력 전체이다. 반면 ND는 국가독점과 종속성이 결합되면서 봉건성을 온존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주적은 미제와 반봉건적인 자본가 정권과 독점자본이며 주요타격방향은 중소자본을 포함하는 자유주의자본이다. 계급동맹은 노농동맹이며 헤게모니 전략은 쁘띠부르주아의 포섭과 중소자본의 중립화이며 특히 농민들의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에서 민주변혁동맹이다. PD는 국가독점와 탈식민화된 경제적 종속으로서의 종속과 독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적을 미제=독점=파시즘적 국가권력이며 중소자본은 이런 독점에 의해 분할, 포섭, 해체되기 때문에 주요타격방향은 포섭되지 않은 중소자본과 쁘띠부르주아이며 반독점전략이다. 따라서 80년대 변혁이론의 핵심적 특징은 토대 모순에 근거한 계급동맹과 헤게모니전략이다. 그리고 이 때 헤게모니 확보 전략은 계급동맹을 근거로 한 주요타격방향이라는 전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레닌의 전략과 전술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계급투쟁은 이와 같은 명료한 적대의 선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의 체제 내화 전략, 지배 포섭 전략이 훨씬 더 정교하고 미세하기 때문이다.


3. 논쟁의 결산과 변혁이론의 혁신

1) 변혁이론의 혁신 과제

맑스-레닌과 볼세비키적 전통으로부터 나오는 계급동맹론은 토대상의 기본모순을 중심으로 하여 동맹과 연대, 제휴의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핵심이 되는 것은 노농동맹론이다. 맑스-레닌 시기에 주요모순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은 반봉건적 유제에 의한 이중의 질곡이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혁명이 과제였다. 기본적으로 부르주아혁명의 과제에 속하는 민주주의혁명을 넘어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데 핵심은 소심한 부르주아를 뛰어넘는 사회주의혁명의 동력 확보이다. 이 때 노/자간의 기본모순은 주요모순과 중첩적으로 결정되며 이중적 질곡에 시달리는 농민은 노동자혁명의 주요한 동맹세력이 된다. 1848년 독일혁명에서 맑스는 혁명적 민주주의를 제시하였고 1905년 레닌은 ‘노농동맹’에 기초한 노농독재론을 제시하였다.***23)

나중에 정립되는 통일전선론은 기본모순에서의 타도 대상을 중심에 놓고 피억압계급 일반의 연대와 제휴를 광범한 투쟁의 전선에 따라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단순한 토대의 모순에 기초하는 계급적대뿐만 아니라 지배세력에 대항하는 광범위한 투쟁질서가 구축될 수 있는 역사적 지형이라는 측면에서 제출되었다. 따라서 계급동맹론은 통일전선론의 기본적인 핵을 구성함에도 불구하고 통일전선은 계급동맹을 넘어서 보다 넓은 ‘전선’의 구축을 목적으로 한다. 통일전선론이 계급동맹론과 구분되면서 명료하게 제출되었던 것은 7차코민테른에서의 ‘디미트로프 테제’****24)였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보면 레닌과 맑스 시절의 주요 전략․전술론은 노농동맹을 중심으로 하는 쁘띠부르주아의 포섭이 핵심이었던 반면 7차코민테른 이후에는 ‘반파시즘인민전선’과 ‘반제반봉건애국인민전선’을 중심으로 하는 통일전선의 구축이, 그리고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반독점인민전선’론으로 이동해 왔다.*****25)

80년대 한국의 변혁이론 또한 이런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후진적인 변혁이론은 NL의 통일전선론이었다. 그들은 ‘반제반봉건’에 기초하는 ‘반제(반미)통일전선’을 제출하였다. 반면 ND는 레닌의 1905년 전술적 틀을 모방하여 노동동맹에 의한 부르주아 혁명=민족민주혁명을 한 이후 사회주의 혁명을 하는 2단계혁명론을 제출하였다.*26) PD는 코민테른의 ‘반파시즘인민전선’과 ‘반독점인민전선’ 양자로 나중에 나뉘게 되지만 어쨌든 한국을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는 데에서는 일치했다. 독점자본과 그것에 의한 상부구조의 결정, 즉 국가독점의 반동성=파시즘은 정치권력을 축으로 볼 때, ‘반파시즘인민전선’이, 경제적 토대를 축으로 볼 때, ‘반독점인민전선’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80년대 변혁이론은 국가=부르주아의 지배도구→국가권력의 장악→국유화조치→사회주의의 건설이라는 선정치혁명 이후 사회혁명이라는 관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면 계급동맹론과 통일전선론은 모두다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여전히 플레이하노프에 의해서 가장 먼저 사용되었을 때 가졌던 의미인, ‘지배’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 더 널리 사용되고 있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플레이하노프에 의해 사용되는 ‘지배’의 의미를 넘어선 개념이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단순히 중립계급의 포섭이나 회유를 통한 ‘지배’의 확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배’를 포함하여 ‘윤리적이고 지적인 지도’의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그람시가 경제주의를 비판하고 ‘국가권력’의 개념 안에 ‘물리적이고 억압적인 지배+윤리적이고 지적인 지도’, ‘정치사회+시민사회’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27) 따라서 헤게모니는 역사적인 계급투쟁의 장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지적․도덕적 지도까지를 포함하여 장기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지도성을 구축해 들어간다는 ‘지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는 상부구조상의 계급투쟁과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부르주아의 헤게모니적 지형을 포함하기 때문에 ‘정치혁명 이후에 사회혁명’이라는 관점에 의해 밀려나 있었던 사회혁명을 복원시킬 수 있는 개념이다. 물론 그람시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구분을 명료히 하지 못했고 그래서 ‘시민사회’에 대한 역의 강조와 ‘정치사회’에 대한 부재, 그리고 변혁론에서의 ‘기동전’의 ‘부재’와 ‘진지전’의 ‘독단’이라는 유로꼼에 이용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자본주의 체제가 결코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와 배제, 그리고 타계급에 대한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폭압적 독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하다.

부르주아 국가권력은 봉건 세력과의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장기적인 역사 속에서 피지배계급과의 갈등과 투쟁을 관리해왔던 것처럼 계급투쟁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다. 부르주아 국가권력은 단순히 무장력을 통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라는 광범위한 저변을 가지고 있다. 부르주아는 사회권력을 국가권력의 지반으로 구축한다.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 위에서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을 구축하는 사회의 미시적이고 그물망같은 권력을 형성함으로써 국가권력을 떠받치고 계급투쟁과 그 충격을 사회권력으로 조직하고 재흡수한다. 여기서 사회권력은 사회세력간의 투쟁을 포섭해 가는 국가권력보다 더 저변이 넓은 권력이자 자본주의의 물질적 기초에 토대를 둔 보다 강고한 권력이다. 사회권력은 국가권력보다 강한 물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들을 스스로 부르주아적 개인들로 생산함으로써 내파화하는 권력이다. 따라서 직접적인 물리력은 훨씬 약하지만 대신에 더 유연하고 더 간접적이며 더 은밀하며 더 미시적인 생활 안으로 파고들어 개개의 사람들을 마비시키는 권력이다. 반면 국가권력은 이들 사회권력의 핵심이 응축되어 있는 ‘특정 계급의 헤게모니 안으로 포섭되고 물리적(제도적)으로 응축되어지는 권력’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무수한 혁명적 격변기와 대공황의 격변기에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단 한 번의 민중 봉기로도 그 생명을 다했다. 그것은 현실사회주의 국가권력이 관료에 의해 지배되는 권력으로서, 물질적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는 사회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의 지배자는 피지배계급의 저항에 그대로 노출된다. 따라서 현실사회주의국가의 무기력함은 지배적인 정치권력을 저변에서 묶어 주는,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뿌리박고 있는 사회권력의 부재에서 비롯되며 자본주의국가의 강고함은 국가권력을 향하는 계급투쟁을 흡수하고 제도화하는 사회권력의 유연함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현실 자본주의체제에서의 정치권력은 지배권력이 핵심적으로 응축되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지배체제의 근원적 힘은 아니다. 따라서 현대자본주의 지배권력에서 아/타의 이분법적인 단일 전선은 끊임없이 부르주아적 사회권력의 기반 위에서 해체되고 분산되고 관리된다. 단일한 노/자의 대립축은 투쟁이 모아지고 흩어지는 운동의 중심적인 선으로만 존재한다. 노동자계급 일반에 대한 부르주아 계급 일반의 계급적 전선은 현실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다층적이고 다원적이다. 다층성과 다원성을 만들어 내는 권력은 사회권력이다. 따라서 전선은 단일하게 구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범위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그런데 90년대 초반 시민사회론의 대두와 함께 인구에 회자되었던 ‘일상으로의 투항’(생활정치)은 이 전선의 중심적 축을 무시한다. 그들은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전선의 분산만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의 물질적인 토대 위에서 만개하는 사회권력의 계급성을 보지 않는다. 따라서 부르주아계급의 헤게모니 또는 ‘국가권력의 계급적 지배’를 망각한다. 대신에 사회권력의 차원에서 전선, 그것도 물질적 토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계급적 속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가치중립적인 ‘시민’이라는 환상 위에서 일상과 생활의 운동만을 본다. 노동자는 자본가와 동일한 계급이해가 상호 갈등하는 이익집단으로 설정되며 따라서 ‘노동자계급 중심성’은 없다. 대신에 그들 스스로 제 3자라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보편적인 존재라는 ‘신’(神)화를 만든다.***28) 미시권력에 대항하는 미시적 차원에서의 논의들과 몸을 향해 다가오는 생체권력에 대한 저항에 대한 논의가 만개한다. 한 때 푸코의 논의가 한국의 정신세계에서 ‘유행’이었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관점은 ‘게임’이다.

하지만 사회권력 또는 그람시가 본 시민사회는 근본적으로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접목되어 있으며 이를 자신의 근원적 존재 조건으로 삼고 있는 그런 사회이다.****29) 사회권력과 시민사회는 중립적인 권력 투쟁의 공간이 아니다. 여기서도 여전히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기반을 둔 계급들의 권력체가 지배를 생성하고 구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 테제는 여전히 기각될 수 없는 투쟁 전선에서의 본질적인 축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의 중립성에 대한 관점과 더불어 사회권력, 시민 권력에 대한 중립성이라는 관점 또한 기각되어야 한다. 대신에 변혁의 관점에서 도입되어야 할 것은 노/자 전선을 기본 축으로 하여 접목되어야 하는 다차원적 투쟁의 횡적, 종적 구축이다.

따라서 문제는 이런 다차원적 투쟁의 횡적, 종적 구축을 어떻게 노동자 계급 헤게모니와 ‘대체 권력으로 조직해 갈 것인가’이다. 모든 투쟁은 노/자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 헤쳐지고 퍼져 나간다. 노동자 내부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쁘띠부르주아와 중간계급의 이합집산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자본축적이라는 ‘구심’을 중심으로 하여 퍼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투쟁이 모여지는 구심력은 여전히 노동자계급을 향해 작동한다. 하지만 이제 변혁은 이전과 같은 노/자의 단일 전선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자를 중심으로 횡적, 종적으로 다층화, 다원화되는 투쟁 전선을 노동자계급 헤게모니 하에 구축해 가는 것이다. 다층적, 다원적 투쟁을 노동자 계급 헤게모니 하에 횡적, 종적으로 접목시키고 사회권력과 시민사회에 ‘일상적인 거점’을 확보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여기서 ‘진지전’은 단순한 물리적 충돌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 그 자신이 윤리적이고 지적인 보편계급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는 투쟁을 포함한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구축되는 투쟁이다. 따라서 부르주아적 사회권력에 대항하는 노동자 계급의 일상적인 거점 확보와 포위 전략은 보다 강고하면서 유연한, 노동자계급 자신의 보편계급화와 지도계급으로서의 구성이라는 기획을 포함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혁명의 과정 그 자체가 혁명의 과정이기도 하다.


2) 폐기되어야 할 것들과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것들

80년대 변혁 이론에서 우선적으로 폐기되어야 할 것은 첫째, 국가권력에 대한 접수 전략, 또는 국가권력의 장악 노선이다. 도구론=중립적 관점의 폐기는 다시 두 가지의 새로운 관점을 복원시키는 데, 하나는 국가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며 국가장치라는 물질적 조건을 가진 특수한 기제라는 점이다. 부르주아 국가권력은 그에 걸맞은 국가장치를 발전시킨다. 따라서 부르주아 국가권력은 장악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폐지와 대체의 대상이다. 이것은 부르주아 국가장치라는 물질적 조건에 기반하고 있는 관료제적 장치의 폐기와 직접민주제적인 인민의 실질권력으로서 국가권력의 형성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부르주아 국가권력이 단순한 노/자의 계급투쟁에서 부르주아의 계급지배를 위한 폭압적 통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부르주아 국가권력은 노/자의 계급투쟁을 반영하고 흡수하는 완충작용을 하며 저변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부르주아 사회권력을 통해서 피지배계급의 혁명성을 흡수한다. 따라서 혁명의 본질적인 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임도 불구하고 국가권력의 저변에서 국가권력을 떠받치는 부르주아적 사회권력을 해체하고 대체권력을 형성해가야 한다.

둘째, 그러므로 80년대식의 정치혁명 이후 국가권력을 접수하고 나서 국유화를 한 다음 사회주의로의 이행한다는 관점은 폐기되어야 한다. 현실사회주의에서 문제는 국유화-계획경제가 아니다. 문제는 국유화하는 국가권력의 성격이다. 국가권력이 생산자 자신들의 권력으로서 ‘회계와 통제’를 실시한다면 국유화는 사회화이다.*****30)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부르주아 국가권력을 실질적인 생산자들의 국가권력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생산자들의 국가권력으로 대체하려 한다면 이미 혁명과정에서 대체하는 권력이 생산과 지역현장에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혁명과 정치혁명은 단계적이어서는 안 된다. 사회혁명의 과정 속에서 ‘대체권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사실, 단계적 사고는 보다 직접적인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했던 세력들조차 사회주의로의 ‘이행기’, ‘과도기’(공산주의로의 이행기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하자.)라는 ‘혼란’을 낳았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민족해방민족민주주의라는 과도기를, 레닌은 노농독재에 기반을 둔 혁명적 민주주의의 시기*31)를, 그리고 반독점인민민주주의혁명은 인민민주주의라는 과도기를 설정한 연후에 사회주의를 구획했다.**32) 사회주의 혁명은 국가권력을 접수한 이후에 가능한 혁명 프로그램이었다. 따라서 모든 변혁론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노선으로 집중되었으며 모든 혁명의 과정은 ‘기동전’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부르주아 국가권력은 그렇게 허약한 체제가 아니다. 따라서 사회권력에 대한 장기적이고 강고한 ‘대체권력의 수립’이라는 관점 없이 정치혁명은 곧바로 반혁명, 부르주아국가장치라는 물질적인 조건에 기생하는 관료집단의 부활과 관료화의 위험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 때 취할 수 있는 방책은 보다 강고한 국가주의적 혁명 전략뿐이다. 레닌이 1917년 혁명 이후 국가자본주의와 전시공산주의, 네프를 운용했던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적 권력 기반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은 단계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어야 한다.

셋째, 부르주아 지배체계는 단순한 물질적인 잉여와 매수를 통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르주아 지배체계는 사람들의 욕망과 몸을 통해서 권력을 만들어내고 그들 스스로를 주체로 양산한다. 이것은 곧 문화적 코드, 사회적 코드가 권력의 미시적 촉수 끝에서 사람들의 몸을 파고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체화의 양식, 이데올로기의 작동 양식에 대한 분석이 추가되어야 하며 보편적 계급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의 변혁운동 그 자체가 보편적 가치를 생산하고 구성하며 사회 내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구축해 가는 헤게모니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선적으로 ‘경제적 토대로부터 노/자의 존재성을 규정하고 노동자계급이라는 존재=혁명적 존재로서 노동자계급’이라는 단선적 사유의 폐기를 의미한다. 생산을 둘러싸고서 인간과 인간이 맺게 되는 생산관계는 단순히 생산의 차원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를 노동자로 길러내는 훈육의 체계, 주체화의 양식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는 공장에서 노동자이지만 그가 지역사회 또는 가정, 시장의 구매자, 국가로 귀속되면 다른 주체로 존재한다. 즉, 지역사회에서는 시민으로, 가정에서는 가장 또는 아내로, 시장에서는 물건을 사는 소비자, 국가에서는 공민으로 존재한다. 게다가 노-자의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은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상품계약관계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동자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맞는 코드로 주체화된다. 조합주의, 또는 노동자들의 단사중심, 자기이해중심, 사회적 합의 등은 이와 같은 코드로 주체화하는 양식으로부터 따라 나온다. 자본주의라는 사회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팔아야 한다는 현실 그 자체가 바로 이런 코드화, 주체화의 물질적 기반이며 이데올로기의 토대이다. 따라서 노동자라는 존재=혁명성이 항상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시기에 그들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계급의 본능적인 혁명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본능적 혁명성은 자본의 자기모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사적 소유와 생산의 사회화에 의해 끊임없이 강제될 수밖에 없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결절지점에 서 있는 존재는 노동자 자신이다. 따라서 이 모순이 유발하는 억압과 길들이기, 권력의 작동은 노동자의 몸을 향하고 저항을 낳는다. 계급투쟁 속에서 계급의식은 존재한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성은 평상시에 오히려 더 체제내적이고 자본주의적 의식에 짓눌려 있을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항상적인 자본의 위기가 강제할 수밖에 없는 권력과 저항권력 안에서 폭발하고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자본의 지배, 자본의 주동성 안에서 작동하는 계급의식이다.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인 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직장과 공장에서의 저항이 아니라 사회와 가정, 국가 모든 체계 안에서 다른 주체로 조직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조직화는 단순한 자본주의의 항상적 위기에 대한 폭로와 사회주의 혁명의 선전과 선동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계급 그 자신이 권력의 주체로서, 사회-문화-정치-경제를 포괄하는 범위에서의 해방적 주체이자 자신의 가치를 보편적 가치로 실현하는 역사적 계급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영역의 재주체화가 각 층위의 경중이 없는 등가적인 배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런 전략적 행위도 산출할 수 없다. 이 주체화는 노동자들이 보편적 계급이자 인간해방을 선도하는 계급으로서, 미래사회의 주인이자 권력의 주체로 조직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화의 코드가 시작되는 지점도 그것이 완성되는 지점도 ‘정치’이다. ‘정치적 주체’이자 ‘권력의 주체’로서 자신의 윤리적이고 지적인 가치를 형성해 가야 한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보편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자본’을 넘어서 ‘자본의 밖’에서 수립되는 권력의 주인으로서 피억압인민 전체를 ‘해방’시키는 계급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주체화의 과정은 ‘정치적 코드’로 그들을 주체화하는 조직을 필요로 한다. ‘전위’와 당’은 결국 이런 임무를 부여받은 자들과 그들의 조직이다.***33) 레닌이 ‘전위’를 말할 때 그것의 의미는 단순히 강철처럼 단련된 통일적인 군대로서의 전문가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본래적 의미는 말 그대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투쟁을 앞에서 창조하고 실험하는 역동적인 주체들이다. 어쨌든 이런 의미에서 변혁이론은 단순히 경제적 토대로부터 각 정치세력의 기반을 재단하고 이에 따라 계급동맹을 구획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람시가 말하는 헤게모니 전략-‘역사적 블록’을 형성하는 장기적인 진지 구축 작업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혁명적 정세’를 단순히 기다리면서 한 번의 타격으로 국가권력을 무너뜨리려는 ‘경제주의’적인 혁명관, 그리고 ‘결정론’에 기대어 ‘숙명’을 기다리는 ‘의지’ 없는 변혁운동의 틀을 넘어서는 것이다.****34)

물론 ‘혁명’은 누군가의 의지와 행위를 통해서 자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혁명’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 자신의 산물이고 이런 의미에서 변혁운동의 최종적 결과는 ‘혁명적 정세’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기동전’은 그것을 준비하고 기획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80년대식으로 그것만을 준비하는 훈련의 과정이 변혁운동의 전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혁명’=‘무장봉기’가 아니다. ‘혁명’은 두 개의 충돌하는 세력의 역학관계에 의해 무혈이 될 수도 있고 유혈이 될 수도 있다. 영국의 명예혁명과 프랑스혁명은 이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되었다. 따라서 ‘변혁운동’을 직업적인 전사들의 훈련과정으로만 설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지형, 보다 강력한 세력의 역학관계를 창출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 진지전은 바로 이와 같은 변혁운동의 세력관계를 만들어내는 운동의 일환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미에서 80년대 변혁이론에서 혁신되어야 할 최종적인 지점은 ‘국가권력 접수 전략’이 아니라 ‘대체권력의 구축이라는 전략적 목표 안에서 진행되는 주체의 형성 전략’이 되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단순한 계급동맹 전략이나 통일전선구축으로 이와 같은 근본 변혁의 문제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노동자계급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조직하는 대체권력을 근본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최종 목표 하에서 여타의 전선체운동과 사회운동, 계급동맹 등을 사유해야 한다. 이제, 혁명의 근본 문제는 국가권력을 어떻게 탈취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파괴하고 대체하는 권력과 주체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이어야 하며 여기에 변혁운동의 전략과 전술의 고민 지점이 놓여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근본변혁은 본질적으로 반국가주의적 혁명전략을 함축하면서도 아울러 무정부적이지 않은 생산의 사회화*****35)에 근거하여 형성되는 새로운 권력체제의 기획과 형성 전략이어야 한다.



Ⅱ.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변혁 지형의 변동

1.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국제 정세

오늘날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변혁운동의 지형을 바꾸어 놓고 있다. 80년대의 꿈은 자본의 과잉축적과 자본의 항상적 위기에 의해 소환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자본의 지구화와 더불어 자본 축적의 국가적 체제 정비를 강제하고 있다. 자본의 지구화는 단순한 경제적 차원의 변동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정치-군사적 차원에서의 변동을 함축하고 있다. 우선, 경제적 차원에서 지구화는 제국주의 독점자본간의 평화적 자본축적이 아니라 매우 격렬한 자본간의 갈등을 함축하는 경쟁적인 자본의 지구화이다. 따라서 지역간의 블럭화 경향은 내적으로 제국주의간의 갈등과 대립을 함축하고 있다. IMF-GATT체제의 일괄 관리체계로부터 FTA로 표현되는 지역블럭화로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역공동체의 형성이 가속화되고 있다.

둘째,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세계화’*36)는 이런 자본의 지구화에 ‘지구촌화’라는 윤리,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보편적 가치의 형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추상적인 인류적 가치의 보편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본 지배 이데올로기의 보편화를 의미할 뿐이다. 일국 내적으로는 국가경쟁이데올로기와 효율성의 이데올로기가 시장경쟁체제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면서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보편화되고 있다. 아울러 현재 세계적 차원에서의 보편화는 팍스아메리카나 체제에 의한 미국적 가치를 보편화하는 문화적 제국주의를 함축한다. 따라서 자본의 지구화와 전인류적 가치의 보편성은 자기모순이며 항상적으로 상호충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보편적 가치 그 자체가 계급투쟁의 한 축으로 급속히 전화되고 있다. 보편적 가치는 자본의 보편화, 세계화를 의미하는 반면 노동의 보편화는 인종적, 민족적 차별화 안에서 배제되고 있으며 제국주의적 강탈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다. 따라서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문화와 윤리적 가치의 보편화는 이미 그 안에서 계급투쟁의 계기를 함축하고 있다.**37)

셋째, 정치군사적 차원에서 미-소 냉전체제로부터 탈냉전, 냉전의 와해로 이어진 현재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자본의 전지구적 팽창과 더불어 초국적 독점자본과 제국주의적 자본전략에 기초한 제국주의 내부의 균열과 갈등을 함축한다. EU, 미주자유무역지대,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되는 등 지역 블록화가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 정점에 미국의 대세계전략-군사적 패권전략과 지역 맹주의 봉쇄 전략이 놓여져 있다. 미군의 재배치전략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미군지지의 재편과 주한미군의 재배치 전략-군사적 유연전략과 잠재적 지역 맹주로서의 대중국 봉쇄 전략에 기초해 있다. 현재 동북아에서 진행되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주한미군 재배치는 삼각동맹체제의 재구축을 의미한다.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와 제국주의적 팽창전략은 ‘대테러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팍스아메리카나체제의 재구축이다.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중동에서의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다. 그런데 EU는 유엔의 역할 강화를 주장하면서 ‘미국독주’를 비판하는 등, 미국의 군사적 제국주의에 대한 제국주의 내부의 갈등 또한 잠복해 있다.


2. 동북아의 지각 변동과 남북관계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동북아 전체에서의 변동을 동반하고 있다. 노무현정권의 ‘동북아 허브 구상’은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특히 김대중정권의 ‘6.15선언’은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와 중국의 적극적인 자본주의화와 더불어 진행되는 동북아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노태우정권 때부터 시작된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을 교두보로 하여 자본의 지구화를 통해서 중국, 러시아, 북한을 신자유주의적으로 포섭해 가는 전략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세계 시장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의 지구화를 창출해 가는 것이다. 이에 북한은 미국 주도하에서 진행되는 동북아의 재편으로부터 ‘체제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북한의 ‘핵카드’는 이와 같은 ‘체제생존’을 정치, 군사적으로 보장받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은 80년대 이래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선군정치’와 시장경제의 도입, 그리고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특구지정처럼 신자유주의적 개방을 점차적으로 수용해 가고 있다. ‘핵카드’ 또한 미국의 북한봉쇄를 풀고 경제발전-신자유주의적 개혁, 개방정책을 발전시키려는 북한의 의도와 맞다와 있다.

동북아에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미국의 동북아 패권 전략으로서의 군사적 재배치 전략과 더불어 경제적 차원에서의 신자유주의적 포위, 흡수 전략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영국 수준의 동맹체로 발전시킴으로써 잠재적인 동북아의 맹주로서 중국 봉쇄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일본 중심으로 주한미군을 재배치하고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통한 군사비의 분담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러-중-북-한-일은 유럽과 연결되는 시베리아횡단철도, 그리고 시베리아의 천연자원과 중국의 만주로의 진출에서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 북한은 이런 물류의 연결통로를 확보하는 핵심적인 지역이다. 따라서 북한의 국제적인 실체의 승인은 북방삼각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와 남방삼각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사안이다. 여기서 이해를 달리하는 것은 미국뿐이다. ‘6.15선언’은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따른 동북아의 재편에서 북방삼각과 남방삼각의 이해가 맞물리면서 이루어진, 양체제와 양국가의 실체를 국제적으로 승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6.15선언’은 일각에서 이야기하듯이 ‘통일’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과 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상호 승인하는 선언이다. 즉, 한반도에서의 두 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는 것으로, 두 개의 국가를 하나의 국가로 합치는 통일과 정반대로 분리된 두 개의 국가를 한반도에 승인하는 것이다.***38)

3. 수동혁명과 지배블록의 자유주의적 재편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영역에서 변동을 또한 동반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변동은 80년대 중반 이후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실질적 포섭과 함께 87년의 이후 전개된 ‘위로부터의 수동혁명’의 과정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지배체제 재편과 정치, 사회, 문화적 변동의 핵심적인 출발지점은 87년 6.10이다. 노태우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정권의 형성은 이와 같은 지각 변동의 과정이었다. 민주-개혁으로 상징화되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정권은 이와 같은 미완의 혁명을 반혁명적으로 지배권력 내부로 체제 내화시키는 과정이었다. 2004년 4.15총선은 친일-숭미-수구-보수/정통보수-친미-합리적 보수-민주의 대립에 있어서 후자로의 권력이동을 형식적으로 완성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정권, 소위 80년대 민주화세력이 ‘민주주의’의 신봉자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남한의 독점자본측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자본의 지구화라는 맥락에 맞는 정치체제의 변동일 뿐이다.

과거 재벌독점체제는 국가권력과의 결탁을 통한 경제적 특혜와 수혜를 누렸으며 반시장적 독점성에 근거한 비합리적 게임에 의해 성장한 자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어울리는 경쟁법칙이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적 시장과 환경을 요구한다. 특히 자본의 지구화는 자본 경쟁에서의 국제적 경쟁 규칙과 가치를 요구한다. 따라서 ‘정통보수-친미-합리적 보수-민주’로의 권력이동은 부르주아의 헤게모니 하에서 ‘민주변혁운동’을 수렴, 관리해 가면서 남한의 노동자․민중을 권력 내부로 재주체화하는 부르주아 내부의 권력투쟁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국제 환경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4.15 총선 결과에서 드러난 권력이동은 한국의 역사로 보면 보수-수구-재벌로 표상되는 비합리적인 자본지배권력에 대한 합리적 보수-자유주의-자유시장경쟁으로 표상되는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경쟁 논리적인 자본지배세력으로의 권력이동이다. 한국의 지배체제 재편은 소위 ‘개혁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신자유주의를 도입하고 ‘합리성’과 ‘국가경쟁력’을 통해서 오히려 ‘계급적대’를 지배구조로 흡수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 권력으로의 이동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무현정권의 출범과 4.15총선에서의 열우당의 과반수 의석 장악은 김대중정권 때부터 본격화된 자유주의적 지배블럭으로의 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노태우정권 때부터 신자유주의에 맞춘 코포라티즘의 구축과 94년 이후 시민운동의 급성장과 소위 ‘개혁적 시민운동’의 세력화는 ‘국가경쟁력’과 ‘효율성’, ‘합리성’의 지배코드를 사회권력에 내재화함으로써 체제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39) 자본과 시민운동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은 한국이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아니라 한국에서의 자본주의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본질적으로 한국 사회를 ‘생산기지화’하려 한다. 여기서 공공성이나 ‘복지’의 문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혜 정도로만 사고될 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회권력으로의 시민운동의 재편과 지배블록화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시민운동의 권력을 이용한 노동운동 내부의 압박과 포섭은 다시 노동운동을 지배체제 내로 흡수하는 포획 코드로 작동한다. 97년 민주노총 내의 일부 분파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사회개혁투쟁’은 이런 포획 코드에 의해 지배 블록으로 재주체화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남한에서의 지배블록은 독점적 재벌체제와는 일정한 갈등을 빚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따른 ‘자유주의적 권력’의 축으로 이동하고 있다. 여기서 지배블록은 자신의 헤게모니 하에 시민운동과 일부 노동운동 내의 사회적 조합주의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울러 민족주의와 국민국가적 통합 이데올로기를 이용한 환상적 ‘통일’ 운동에 대한 포섭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을 ‘통일 이데올로기’로 변질시키고 민족자본가 정주영의 ‘소떼 방북’을 신비화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무한 경쟁에서의 민족주의를 부추겨 지배 헤게모니 안으로 포획해 들어가고 있으며 이것은 궁극적으로 변혁운동의 일부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의 민족주의적 코드로 재편해 가는 것이다.


4. 사회․문화적 변동과 노동자․민중의 상태

자유주의는 오늘날 지배 권력이 국민 개개인들을 묶어세우고 재주체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코드이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통해서 ‘세계화’의 보편적 가치를 자본의 가치로 재구조화한다. 그런데 이런 재구조화 속으로 한국 사회의 사회․문화적 변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자유주의는 기존의 재벌체제-지연과 연고주의-정경유착과 비시장적 관행에 대한 ‘해체’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특이하게도 ‘개혁’적이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개혁’이 결국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즉 엄격한 자유경쟁과 시장논리를 추구하면서 한국 총자본의 이해인 ‘국가경쟁력 강화’와 ‘사회 전체의 생산기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의 반동성을 대표한다. 그런데 그 동안 ‘개혁’은 독재와 전통적인 관행에 억눌러 왔던 노동자․농민뿐만 아니라 엄격한 시장 질서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에게도 필요한 ‘개혁’이었다. 아울러 노동자․민중의 사회안전망과 복지체제 구축을 지향하는 세력들도 혈연-지연, 가부장제적 지배구조 안에서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을 해체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이런 모든 세력들은 ‘개혁’이라는 정치적 지형 안에서 공존해 왔으며 이에 따른 계급 적대의 은폐라는 효과를 낳아왔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한국에서의 정치 지형의 변화는 노동자․민중과 지배블록간에 있어서 매우 왜곡된 지배 코드에 의한 재주체화라는 제도화의 경계 지점에 서 있다. 이번 총선에서의 민노당의 의회 진출은 사회 전반적으로 진행되는 좌선회의 결과처럼 보인다. 수구보수와의 대립각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 역사적 의미가 있는 좌선회이다. 그러나 이 좌선회는 결코 계급적인 좌선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왜곡된 권력이동의 지형을 창출한 기반이기도 하다. 잠재적으로 그것은 계급적인 분화를 함축하는 좌선회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와 같은 계급적 분화는 봉합되고 있다. 오히려 현재의 ‘좌선회’는 신자유주의 ‘개혁’(자유주의적인 사회의 재조직화)를 선택하는 ‘좌선회’이다. 물론 이와 같은 좌선회는 단순한 정치․경제적인 영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을 포괄하는 ‘좌선회’라는 문화혁명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소위 ‘세대 차이’*****40)라는 세대별 대립은 오히려 문화적이고 감성적인 차원에서의 대립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가부장제와 연고주의에 대한 대립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하게 신자유주의적인 것이다. 따라서 ‘좌선회’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좌선회’가 아니며 오히려 ‘우선회’이다.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 합리성과 효율성을 지향한다. 따라서 그것은 연공서열제나 연고주의, 그리고 가부장제적인 권위나 위계제와는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철저하게 경쟁과 능력에 따른 시스템을 요구한다. 나이에 따른 위계가 아닌 능력에 따른 위계가, 근무연한에 따른 봉급이 아니라 철저하게 능력에 따른 계약과 봉급을 요구한다. 따라서 소위 노동자․민중들이 표출하고 있는 현재의 분노는 본질적으로 굴절된 ‘우선회’를 함축하는 ‘좌선회’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에 대중의 역동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와 사회 전반에 대한 보편적 이해라는 인식의 확장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중의 역동성은 근본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한계에 놓여져 있으며 ‘반자본’이 아니라 ‘자유주의’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반동성을 함축한다.

이와 같은 굴절은 ‘위로부터의 수동혁명’과 ‘수구보수 대 민주개혁’이라는 왜곡된 지배 코드에 의한 자유주의의 지배 헤게모니 블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배 헤게모니 블록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민중의 삶과 생존권, 생활권을 완전히 파괴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한계에 의해 자기 부정될 수밖에 없다. ‘노동 현장’에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생산의 합리화, 생산성 향상이라는 명분하에 ‘정리해고’와 ‘탄력노동제’, ‘변형근로제’가 지속적으로 도입되었으며 연봉제와 성과급제, 그리고 불안정 노동의 확대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런 노동에 대한 공격은 노동자들을 생산 현장으로부터 배제하거나 축출시키고 그리고 노동 현장에서의 노동조건과 임금조건을 악화시키는데 머물지 않는다. 나아가 그것은 전체 민중의 삶을 절대적으로 황폐화시킨다. 청년실업자의 급증과 노인의 분노는 가장 먼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들어설 수 없는 세대의 분노를 대표한다. 따라서 소위 세대차라는 것은 변화의 속도에서 밀려난 세대와 ‘세계화’라는 보편적 가치의 형성에 따라 ‘탈권위적 코드’로 자신의 현재 분노를 집중시키는 세대 간의 왜곡된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의미할 뿐이다.*41)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떠받치고 그것이 작동하게 하는 것도 현실-자본주의적 무한경쟁이지만 그것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도 현실-자본의 내재적이고 항상적인 위기와 노동배제의 반인간적 착취 시스템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의 작동은 장기적으로 파괴되어 갈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신용불량자 400만, 절대빈곤층 800만, 노숙자 1만, 청년실업자가 300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1/10이 신용불량자이며 빈민이 1/5인 나라에서 ‘삶’은 ‘생존’이다. 하지만 ‘생존’조차도 어렵다. 그리고 그 결과는 45분당 한 명씩 자살하는 ‘자살 공화국’의 수립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위기’에 대응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한국의 노동자․민중만을 공격하고 삶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몰고 온 외형적 결과는 ‘자본 축적 조건의 정비와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한 자본 위기의 극복’이지만 본질적 결과는 노동자․민중의 삶 전체에 대한 파괴이며 노동자계급에 대한 절대적인 배제이다. 따라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생존이냐, 죽음이냐’의 기로에 서 있는 노동자․민중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97-98 총파업 투쟁은 이미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예봉이 향하고 있는 ‘파탄’을 몸으로 예견하고 있었던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 역사적 미래태는 ‘투쟁’이 예지하고 있었듯이 전민중과 노동자계급의 ‘생존적 파탄’에 저항하는 ‘반신자유주의’, ‘반자본’ 투쟁이다.

기간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바꾸어 놓고 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급증은 전세계적 현상이다. 현재 한국의 정규직은 700만 명인데 반해 비정규직인 800만 명이다. 노동자계급에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으며 수많은 파트타임노동자들을 비롯한 불안정노동층이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지배계급이 노동자계급을 분할 포섭하는 핵심적인 포획선이 되어가고 있다. 지배권력은 대공장노동자와 정규직노동자들을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붙이고 양보를 요구한다. 반면 정규직노동자들은 비정규직화하는 현실에 두려워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은 모두다 신자유주의의 노동유연화와 노동배제의 결과이다. 정규직노동자가 해고되고 나면 비정규직노동자로 다시 고용된다. 여기에 두 노동자집단간의 공통의 이해와 존재의 기반이 놓여져 있다. 따라서 계급적 통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계급구성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것이 결코 운동의 주체, 해방의 주체가 정규직노동자로부터 비정규직노동자, 또는 이주․여성노동자와 같은 노/자의 구조적 축으로부터 벗어난 주변층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생존권과 생활권의 방어투쟁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규직노동자들에 비해 보다 중첩적인 억압과 고통을 받기 때문에 강력한 투쟁의 선도적 거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현재 고통을 유발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격’을 창출할 수는 없다. ‘반격’은 노동자계급 전체의 통일적인 투쟁전선의 창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단사와 공장을 넘어선 계급투쟁, 단일한 하나의 계급적 전선을 요구하는 것이자 국가권력에 대한 계급적 요구를 내걸고 싸우는 정치적 성격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도적인 투쟁에 나서는 계급투쟁, 제도화로부터 빗겨나고 현장의 질곡에 저항하여 자발적으로 올라오는 투쟁을 ‘단일한 계급의 투쟁’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여기서 대공장과 조직노동자들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부대이다. 그들은 물리력을 가지고 있고 전국적인 계급투쟁의 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들 또한 비정규직화와 불안정노동으로의 편입이라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조직노동자이냐 아니냐, 또는 대공장노동자이냐 아니냐, 정규직이냐 아니냐의 틀을 벗어나 있는 ‘계급적인 공동이해’이다.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와 본토노동자,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를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해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계급적 분할 통치와 계급투쟁을 교란하는 지배의 책략과 포획은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끊임없이 노동자들 개개인을 개별화하고 ‘생존의 덫’으로 포획하는 것이다.**42) 따라서 계급적 통일을 위해서는 공장과 단사의 이해를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정치화’의 문제이다. 즉,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미조직노동자들을 자신의 이해로 끌어안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전국적인 부르주아와의 투쟁으로 상승 발전시켜야 한다.

여전히 변혁운동의 핵심 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 정규직노동자냐, 비정규직노동자냐, 아니면 조직노동자냐, 미조직노동자냐 하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 선도적으로 투쟁을 시작하는 ‘현장의 투쟁 동력’이 무엇이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 ‘투쟁동력’을 통해서 계급전체의 투쟁으로 전화시키는 ‘정치화’이다. 그것은 각 단사와 공장을 벗어나 전국적인 투쟁을 만들고 조직하는 투쟁체의 복원과 현장권력의 구축이라는 87년 이후 ‘전노협’이 표방했던 민주성과 자주성, 현장성과 투쟁성의 복원이며 그 정신에 따른 ‘평의회적 맹아’의 재발견과 노조의 틀을 벗어나는 ‘평의회적 권력’의 창출이다. 그러나 그 투쟁을 전국적인 투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정치화’로 시작되어야 하며 그것은 ‘전국적 정치조직’을 전제로 한다.



Ⅲ. 변혁 운동 지형의 변화와 변혁 운동의 전략

1. 변혁 운동의 전략적 목표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자본의 내재적이고 항상적 위기를 확대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 자본의 지구화는 자본의 내재적 모순을 전세계적 차원에서 확대 재생산한다. 생산의 사회화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간의 모순 확대와 그것의 경제적 표현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자본의 한계를 보다 더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내고 전세계의 민중과 노동자의 삶을 파괴해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90년대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유행했던 ‘역사의 종언’이자 ‘자본의 역사적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은 외부의 적을 상실했으며 세계 시장을 분할하는 자본 간의 경쟁과 충돌, 무한경쟁이 본격화함으로써 자본의 반인륜성, 반사회성을 보다 더 가시화할 것이다. 자본은 자신의 무한 증식 욕구를 감추는 적절한 지렛대와 균형감을 상실해 가고 있다.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무장한 세계화’는 이와 같은 자본의 폭력성과 반인륜성의 표현이다. 지배 코드로서의 ‘세계화’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의 자기모순을 물질적 기초로부터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자본의 지구화는 자본의 한계를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고 그 경계를 향해 치닫는 기관차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본의 지구화는 노동자․민중의 삶을 지배한다. 인종적이고 민족적 코드가, 그리고 효율성과 합리성의 코드가 개개인들의 삶을 재구성하고, 이에 사람들은 자본의 지배 코드를 내재화하고 그 스스로 이 이데올로기를 실어 나르는 주체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데올로기적 포획의 진정한 실체는 자본의 지배 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그들의 삶 자체, 즉 자본주의라는 사회, 정치, 경제적 구조에 의해 강제되는 생존 기반 그 자체에 있다. 한 동안 지배 이데올로기가 개인들의 삶을 지배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표상하는 현실의 경쟁과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자본 자체의 생존 기반을 파괴해 가는 것은 ‘자본’ 자신이다. 자본의 지구화에 반하는 ‘반자본’, 자본의 세계화에 반하는 ‘반세계화’의 지평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확장될 것이다. 반제국주의와 반전,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요구하는 민중의 투쟁이 이미 시작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변혁 운동은 ‘반지구화’, ‘반세계화’에서 시작하여 본질적으로 ‘반자본’으로 발전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의 신자유주의는 ‘자본’이 강요하는 ‘경쟁’과 ‘시장’이 무엇을 ‘해체’하고 있으며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지를 노동자․민중에게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발전 파업, 열사정국투쟁과 부안 군민들의 핵폐기장 반대 투쟁, 상도동 빈민과 청계천의 극한적인 투쟁의 양상은 그 동안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끊임없이 ‘해체’되어 온 것이 다름 아니라 한국사회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지배 이데올로기로 체화된 습성의 한도를 넘어서 ‘파괴’를 향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이 ‘공동체’의 이데올로기를 회의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애초부터 이데올로기였으며 분열과 투쟁을 은폐하고 지배자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은폐하는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이 은폐된 진실의 말단을 ‘극한적인 투쟁’의 양상 속에서 드러내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반자본’의 공간을 스스로 창출하고 있다. 성과 인종, 계급과 노동의 배제 안에서 ‘반자본’의 공간은 서로 연결되어 가고 있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이윤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자본의 야만성은 다양한 투쟁의 공간을 열고 있다. 비록 노/자 대립이라는 단일한 투쟁의 전선이 명확하게 구획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양한 투쟁의 양식들이 창출되고 있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할과 불안정노동층의 투쟁, 그리고 여성과 인권, 환경 운동으로의 분화는 운동을 매우 다층화, 다원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투쟁의 다층화, 다원화는 얼핏 보기에 분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결국 노동과 자본의 투쟁이라는 중심으로 다시 수렴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다원화, 다층화된 투쟁이란 다름 아닌 자본의 본성, 이윤증식의 욕구를 통해서 스스로 반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자본 자신의 한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투쟁의 다원화, 다층화를 낳는 운동의 원심력은 ‘자본-노동’의 공간이며 따라서 노/자의 계급 전선을 축으로 다양한 운동들이 조성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운동들은 또한 노/자 전선이라는 구심력을 향한다. 여기서 ‘반자본’의 공간이 열리며 ‘반자본’의 대항 권력, 대안 사회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단계 변혁 운동의 목표는 인간 자신을 파괴하는 자본에 대항하는 ‘반자본’,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넘어서는, 자본의 한계가 그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는 자본의 밖에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맑스는 이것을 예견했다. 그것은 자본의 근본적인 내재적 한계가 생산의 사회화와 사적 소유간의 모순이며 생산의 사회화는 생산 수단의 사회화를 요구한다. 따라서 맑스는 ‘자유로운 생산자의 연합’을 자본을 넘어선, 자본의 밖, 자본의 한계가 스스로를 해체시킨 자리에서 대체해 들어오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와 같은 맑스의 사상에 따라 만들어진 사회의 해체와 몰락을 경험하였으며 이에 따라 더 이상의 ‘꿈’을 꾸지 않는다. 그러나 그 꿈의 상실은 좌파의 상실과 80년대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했을 뿐이다. 그 꿈은 반인간적인 자본에 대항하는 우리 고유의 꿈이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자본 추구의 증식욕은 생활 속에서, 삶 속에서 이 귀환을 불러오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국가권력 장악을 통한 정치혁명 이후 사회혁명’이라는 도식을 고집할 수 없다. 자본 밖의, 자본의 한계가 파괴하는 것, 그것을 넘어선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단절의 지점을 사유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한 혁명이 아니라 ‘생산자 연합’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회구성을 위한 권력의 형성을 의미한다.***43) 따라서 선국가권력 장악 후사회혁명, 국유화 이후 사회화라는 과정은 단계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사회혁명을 내포한 정치혁명의 과정 속에서 준비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대체권력 건설’의 관점이며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파괴하고 새로운 국가권력을 형성하고 구성하는 근본변혁의 관점이다. 따라서 전략적으로 새로운 국가권력의 맹아적 형태들, 대체 권력의 사회적 형태들이 변혁운동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목적의식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전략적 관점에서 이것이 자본 넘어서, 자본 이후의 국가권력이다. ‘반자본’은 이 권력의 형성과 구성으로 귀결되는 것이며 이 권력의 형성을 통과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해체해 갈 것이다. 따라서 전략적 목표는 ‘반자본’이 자본의 외부를 새로운 공동체적 권력체, 코뮨으로 조직하는 근본변혁이어야 한다.

사실, 맑스주의 안에서 이 근본변혁을 둘러싼 세 가지의 관점이 공존해 왔다. 하나는 국가권력의 장악 노선 안에 있는 관점으로 국가권력 장악 노선이며 다른 하나는 국가를 부정하는 무정부적 사회변혁의 관점이다. 그러나 양자는 모두다 자본의 한계 지점이 보여주는 자기 파괴와 구성의 원리를 제대로 포착하고 있지 못하다. 전자는 부르주아 사회권력 위에 형성된 부르주아 국가장치와 국가권력의 문제를 보지 못함으로써 결국 부르조아 국가권력 내부로 흡수되거나 체제 내화된다. 반면 후자는 생산의 사회화가 보여주는 자본의 위기, 한계가 파괴하는 변증법을 보지 못하는데, 그것은 바로 생산의 사회화가 공동체 전체를 물질적인 조건에서 서로 묶어주는,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근거이다. 생산의 사회화는 생산체제에 대한 공동체 전체의 관리, 사회구성원의 공동체적 삶의 원리, 정치권력의 형성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지배의 정치학이 아닌 삶의 운영원리로서의 정치학이다. 따라서 후자는 물질적 조건을 보지 않고 환상적인 공동체를 꿈꾸는 공상적 사유이다.

마지막 하나는 생산의 사회화에 부합하는 정치권력, 그렇지만 사적 소유를 국가 소유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국가 소유 자체가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사회적 소유를 내포하는 정치체제의 수립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정치와 경제가 통일된 생산자의 자기 통치원리로서의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이와 같은 국가권력에 대한 혁명의 변증법은 ‘소비에트’****44)와 ‘평의회 운동’*****45) 속에서 좌우편향을 겪어왔다. 레닌은 이 편향에서 ‘현실적인 정치’를 취했다. 그러나 그 또한 좌우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것은 맑스가 프롤레타리아독재를 말하면서도 그 현실적 형태를 파리코뮨*46)의 수립과 더불어 발견했듯이 말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에 대한 폐지와 소멸의 변증법은 근본변혁의 전략적 관점으로 보자면 대체권력의 형성이며 이 대체권력에 의한 기존 국가장치와 국가권력의 대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국가권력의 대체는 국가권력의 형성과 발전이 근본변혁운동에서의 전략적 목표라는 점을 명시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이와 같은 전략적 목표를 더욱 명확히 만들고 있다. 자본의 전지구화는 한편으로 생산의 사회화의 극대화라는 물질적 조건을 창출하고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공동체의 파괴와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전인민적 저항이라는 주체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부르주아 국가권력을 떠받치는 사회권력의 부르주아적 헤게모니는 ‘세계화’의 모순을 증폭시킴으로써 시민운동의 성장과 분화를 촉진할 수밖에 없다. 자본의 공격은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공격하기 때문에 사회권력은 자본의 권력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시민운동의 분화와 대립은 필연적이다.**47) 따라서 사회권력의 차원에서, 그리고 지역과 현장, 공장에서, 부르주아 권력에 대항하는 대체권력의 맹아들은 지속적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동력은 노동자계급이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만이 일관되게 ‘반자본’적일 수 있으며 ‘생산의 사회화’를 체현하고 있는 계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그들 스스로 권력의 주체이자 정치의 주체로서 생산을 통제한다. 게다가 노동자계급은 생산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소비의 주체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대체권력을 발전시키는 운동은 공장과 현장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레닌도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소비에트라고 했으며 그람시도 평의회 사상의 근본적 핵심도 바로 이와 같은 대체권력에 있었다. 그러므로 ‘반자본’의 전략적 목표는 정치-사회-생산-소비 영역에서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대체하는 대체권력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기동전과 진지전은 전술적 운용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변혁 운동은 자본이 열어 놓은 이 공간을 대체권력의 공간으로, 대안 사회를 향한 결집의 장소로도 전화시키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대안, 대체의 ‘반자본’의 지향이 아니라 공공성과 공동선, 그리고 합리성이라는 자본 권력으로의 회귀이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합리적 사회 시스템’의 구축 과정에서 현장노동자들에게 공동 희생과 고통 분담이 요구되고 있고, 그리고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책이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 때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자본에 의해 구축된 현실이다. 따라서 현장에서는 ‘실리주의적 전략’과 ‘생존권 방어와 사수 차원에서의 투쟁’이 마치 현실적인 것처럼 이야기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 그 결과는 ‘생존의 덫’으로 자신을 더욱 옭아매는 것이다. 오히려 여기서 일어나야 할 것은 단절과 초월이다. 그것은 자본을 넘어서야 한다.

공장과 현장이란 곧 자본의 권력에 의해 구축되고 구획된 자본 지배의 장일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장 밖’과 ‘시민 밖’이 우선적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그것이 매우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실제는 가장 현실적인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현상이 ‘현실’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현상’이 가장 기만적으로 ‘본질’을 은폐하고 가상을 조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불충분한 비판인데, 왜냐 하면 공장과 시민사회에서의 투쟁이 ‘자본권력’으로 포획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생존의 조건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공장과 시민 밖’이라는 것이 결코 공장 내부에서, 시민사회 내부에서 스스로 창출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48) 즉, ‘자본의 외부’는 그 밖에서,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근본변혁의 전략적 목표는 자본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공장과 기업을 벗어나야 하며 국민국가의 주권적 이데올로기로 묶는 ‘시민’의 가치중립적 이데올로기 밖으로 벗어나야 한다. 즉, ‘노동운동의 정치화’와 ‘사회운동의 계급화’가 이루어져야 한다.****49) 그러기 위해서 공장과 기업에서 노동자들은 전국적 관점을 가지는 정치집단으로서 그들 스스로를 통치자로, 자율적인 생산의 통제자로 조직해 가야하며 사회운동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 생산의 자기통치원리와 연대하는 소비와 지역공동체의 자기통치권력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평의회 운동은 생산 현장뿐만 아니라 지역운동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국가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적인 감시자, 또는 자기 이해 집단으로서의 협소한 범위를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자기 통치 권력으로서의 현장 거점, 지역 거점을 수립해 가야 한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통치하는 직접 민주적인 훈련의 장이면서, 국가와 제도 밖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창출하는 권력으로 조직화되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제도 안에서의 투쟁이 불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정치의 장을 도외시하는 것은 올바른 전술적 기획이 아니다. 오히려 제도 정치의 장은 대체권력을 형성하는 ‘비제도’의 영역과 더불어 국가를 포위하는 핵심적인 정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국영기업에 대한 반사유화투쟁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계급적 국가장치의 수립 위에서는 사회화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선거-의회전술은 그것이 대체권력을 수립하는 ‘비제도적 투쟁’의 전략적 목표를 수립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포위전략, 그리고 제도권 내의 진지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유효한 전술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방자치제 의회 전술과 국회의원 선거 전술, 대선전술은 여전히 유효한 전술이다. 하지만 이 전술이 수권을 목적으로 할 때, 그것은 부르주아 국가권력에 대한 장악과 이를 통한 이행 전략으로 변질되어 버릴 수 있다. 따라서 ‘비제도적 영역’에서 대체권력 수립에 복무하는 선거-의회 전술과 제도 투쟁이 전술적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2.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대항하는 변혁운동의 전술

자본 밖의 대체권력의 수립이라는 근본변혁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투쟁은 ‘반자본’과 더불어 공간적으로는 ‘국제주의’이자 전술적으로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구성하고 쟁취하는 투쟁이다. 오늘날 주적은 국제독점자본과 국내자본이며 이에 근거한 신자유주의적 관리 통치 권력이다. 과거 ‘반독점 전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왜냐하면 중소자본은 이미 독점자본의 실질적 포섭 안에서 독점자본의 일부로 편입되었거나 계열화되었으며 그들과 이해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중소자본은 신자유주의적 정책들, 예를 들어 노동유연화나 파견법, 변형근로제를 옹호한다. 따라서 중소자본과 독점자본간의 이해 갈등은 이윤 배분의 문제에서 발생할 뿐, 근본적으로 양자는 동반자이며 함께 성장하는 존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주요한 전선은 반독점이 아니라 ‘반자본’이며 전술적으로는 ‘반자본’을 함축하는 ‘반신자유주의 전선’이다.

여기서 신자유주의적 지배블록의 헤게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은 쁘띠부르주아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는 쁘띠부르주아적인 환상에 기초해 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노동조건이 개인주의적인 것처럼 세계도 그런 개인들의 자율성에 기초해 있다는 듯이 상상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마치 모든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난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자신이 자본에 의해 끊임없이 자본가와 노동자로 해체되는 이중성의 표현일 뿐이다. 그들은 자립적인 계급이지 못하며 노/자의 이해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계급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은 유동성이 그들을 항상적인 변혁 세력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함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가치를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 부여잡고 자본에 의해 노동자로 해체되는 자기 존재조건의 불안정성에 저항한다. 따라서 쁘띠부르주아 자유주의는 한편에서 물질적인 존재 조건으로부터 강제되고 다른 한편으로 지배이데올로기의 포획 코드 ‘세계화’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흡수되는 자들이다. ‘시민’은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국민국가 안으로 개인들을 포섭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신자유주의 독점자본에 의한 지배블록은 쁘띠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을 헤게모니하에 포섭했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요타격방향은 쁘띠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다.

근본변혁의 주체는 노동자계급이다. 그러나 헤게모니 전략 없이 지배는 성립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반자본의 저항 전선으로 흡수되는 민중들을 포함하여 부르주아 헤게모니하에 있는 쁘띠부르주아를 타격함으로써 견인하거나 최소한 중립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부르주아 헤게모니를 파괴해야 한다. 사실, 시민운동의 급성장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역사적 맥락으로 보면 복지정책에 대한 공격과 자본의 완전한 수탈체제의 복원을 의미하기 때문에 노동의 배제는 민중 생활고의 파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동체 내의 균열과 갈등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시민운동은 ‘실업극복’, ‘노숙자보호’, ‘국가정책과 경영의 효율성 감시’, ‘환경운동’과 같은 공동체의 보존과 시민적 가치의 옹호를 통해서 이 균열과 갈등을 완화시키는 완충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시민운동은 자유주의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면서 공동체 전체의 ‘효율성’을 옹호하고 공동체의 균열이 아니라 보호하는 측면에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국가의 지배전략에 공헌하는 반동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한편으로 시민운동을 시민사회의 사회 권력화를 통해서 체제 통합적인 동반자로 포섭해 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근본적인 자본의 가치 증식이라는 본질적 한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자의 구심적 전선 또한 복원해 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시민운동’의 분화 또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결국 시민을 배제하고 사회 권력으로서의 ‘시민운동’만을 확대 재편함으로써 사회의 권력으로 안정화되어 가도록 시민운동을 몰아 부칠 수밖에 없다. ‘시민’은 배제되고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재생산된다. 결국 시민운동 세력 내부에서도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대응하는 반자본적-친노동적 접근 또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시민운동의 사회적 헤게모니는 일시적이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노동자대중운동이 ‘현장’에 갇혀 있는 상황, 노동자계급정치의 지연이 불러온 공백을 통해서 사회운동을 ‘시민화’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환경, 여성, 인종 등의 사회운동은 본질적으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에 의해 보다 강화된 모순의 응축 지점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다 더 급진화되고 계급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변혁운동 진영은 보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화’ 전술을 필요로 한다.*****50) 자본의 지구화는 자본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선 자본의 지구화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해체하고 있는 반면 자본주의 지구화는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국가경쟁력강화와 인종적이고 민족적인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노동의 세계화와 민족주의적 틀을 넘어서는 세계주의적 가치에 대한 요구가 필요하다. 자본의 이동은 자유로운 반면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배제되고 있으며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같은 인종적이고 민족적 차별과 민족국가적 이데올로기는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국제주의는 반인종적이고 반민족적인 투쟁과 더불어 전세계적 차원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형성하고 만들어가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여기서 사회운동 세력을 계급화, 적색화해야 한다. 물론 시민운동은 중립적 시민 코드에 의해 반전, 반세계화 투쟁을 단순한 평화 투쟁, 반미투쟁으로 귀결시키는 민족주의적이면서 국가주의적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민운동은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보편적 가치, 세계 시민적 가치를 옹호하는 경향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시민운동은 지배계급과 같은 적대 세력이 아니라 중립화 또는 견인해야 하는 주요타격의 대상이다. 게다가 환경, 인권, 여성, 과학기술 정책들은 근본적으로 자본의 이윤 추구에 의해 끊임없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해치는 영역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반자본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다 보편적인 인류적 가치에 대한 옹호 투쟁은 사회운동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변혁’, ‘자본 밖’의 운동으로 포획하는 전술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국제적 혁명의 정세는 자본의 지구화에 의해 보다 더 강화되고 있다. 현재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자본의 승리로 보인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자본의 지구화는 자본의 항상적인 위기를 전세계적 차원에 확대 재생산하는 것일 뿐이다. 전세계적 차원에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빈곤화의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으며 자본 축적을 위한 반인간적이고 반노동적이면서 반민중적인 억압과 착취는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노/자간의 계급투쟁을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노동자․민중과 자본 사이의 계급투쟁으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야만적인 자본의 세계인가,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인가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의 핵심 주체는 여전히 노동자계급일 수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노동자계급에게 이 역사적 임무가 보다 강력하게 요청되고 있다. 이제 노동자계급은 일국 내에서의 변혁 주체가 아니라 전세계 민중들과 피억압 인민들, 그리고 모든 인종적이고 민족적인 차별을 확대 재생산하는 야만적인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다. 따라서 변혁운동에 부여된 전술적 과제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근거한 국제 노동자․민중동맹의 형성과 반전반제투쟁 전선의 전술적 운용, 그리고 모든 인종적이고 민족적인 차별에 대항하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투쟁이다.

 

3. 노동자계급의 통일과 단일한 ‘반자본’ 전선의 구축

오늘날 계급동맹의 문제에 있어서 과거 노농동맹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물론 농민이 생산자이며 생산현장에 뿌리박고 있다는 측면에서 노농동맹은 다른 계급과의 동맹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반봉건적 유제 때문이 아니라 과잉화된 자본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에 현실이다. 게다가 농업문제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해체하고 있는 토지라는 민족주의적 정서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함정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오히려 농업문제는 사회운동의 차원에서의 접목과 지역운동의 차원에서 대체권력 수립이라는 전략적 목표 하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오늘날 절실히 요구되는 계급동맹의 문제는 과잉 축적된 자본이 분절해 내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통일이며 동맹이다. 특히 노동자계급 내부의 통일과 동맹의 문제는 일국의 범위를 넘어서 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강제하는 노동배제와 생활의 파탄은 일국적 현상이 아니다. 80대 20의 사회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대한 반대 투쟁은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노동자 국제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전까지 국제주의가 당위적 차원에서 요구되는 것이었다면 이제 그것은 변혁운동에서 필수불가결한 필요조건이자 노동자계급의 보편적 가치를 구성하고 만드는 투쟁이다.

국내적으로 노동자계급은 분할 통치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를 포함하는 전세계적 현상이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과학기술혁명’에 기반한 노동 배제와 유연화라는 공세적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800만의 비정규직과 700만의 정규직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과 비정규직의 급속한 확대, 불안정노동층의 급증과 실업의 양산을 낳고 있다. 게다가 지배권력은 이와 같은 계급의 분할을 대공장-대기업-정규직의 분할 포섭을 통해서 지배권력 내부로 체제 내화하려는 책략을 사용하고 있다. 강력한 계급적 통일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투쟁 강령하에 일치단결된 반신자유주의 투쟁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현재의 생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본의 총체적인 공격에 대항하여 ‘계급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실업자와 불안전노동층,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은 모두 다 노동자계급의 동맹자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형제자매들이다. 따라서 핵심은 ‘어떻게 현실의 장벽, 이미 구조화된 자본의 권력을 총체적으로 해체할 것인가’ 이다. 이 ‘해체’ 없이 ‘생존의 원환’은 우리의 삶을 여지없이 압박해 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계급’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그리고 ‘계급’으로 투쟁하기 위해서 새로운 질의 인식과 투쟁을 기획하는 조직적 질서가 모색되어야 한다. 노동 현장으로부터 쫓겨났거나 하루 벌어먹는 불안정한 노동 조건 속에서 암중모색하는 불안정노동자들 모두의 불만과 분노가 의미하는 것은 결국 현장에서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계급이 이들의 문제를 자신의 계급적 문제로 떠안을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51)

둘째로, 자본의 지구화는 제국주의간의 갈등과 투쟁을 함축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전세계적 패권 전략과 지역 공동체간의 대립과 폭발은 항상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제국주의적 착취와 지배에 대한 투쟁이 전개되어야 한다. 아울러 제국주의간의 대립과 갈등은 정치, 군사적 대립과 지배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반제투쟁은 반전투쟁과 함께 전개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반전투쟁은 전술적으로 ‘무장화된 세계화’에 대응하는 투쟁이지만 내용의 본질로 볼 때, 반제투쟁이다. 그러나 반제투쟁은 반미투쟁으로 환원될 수 없다. 제국주의간의 갈등과 경쟁은 비록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대한 대응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제국주의적 대립의 산물일 뿐이다. 특히, 일국 내에서 자행되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이와 같은 국제주의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파괴하고 분절하면서 일국 자본의 지배로 포획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현실론’-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대한 한국 내의 현실론,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으로서의 미군 배치와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현실론, 일본의 군국주의와 중국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의 강화와 동북아 평화에 대한 현실론은 이런 지배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반민중적 이데올로기의 표현일 뿐이다. 오히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필요로 되는 것은 동북아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국제투쟁전선의 구축이며 일국 내에서 자행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반하는 국제 노동자투쟁과 ‘노동권리의 보편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적 코드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반미와 남북관계가 중요하겠지만 이것은 명백한 환상일 뿐만 아니라 자기 모순적이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선택에서 미국만이 전쟁의 화신인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통일, 남북문제도 동일하다. 한반도의 위기는 북한의 ‘생존전략’과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가 대립하는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이다. 북한의 위기 탈출과 북한의 개혁, 개방정책은 이런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포위․포섭 전략 안에 조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6.15공동선언’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통일’로 보는 사람들은 민족주의적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북한에 대한 견인․포섭 전략임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통일’이라는 민족주의에 의한 대국민 포섭 이데올로기를 양산할 뿐이다. 오히려 현시기 전술적인 과제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이다. 6.15 공동 선언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 또는 ‘통일’에 대한 환상적인 지지는 ‘북’을 ‘선’으로, ‘미’를 ‘악’으로 대립지울 뿐이다. 게다가 ‘남’과 ‘북’의 신자유주의는 여기서 면죄부를 부여받을 뿐이다. 북은 더 이상 ‘민주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그 과정은 북의 자본시장경쟁체제로의 편입이다. 그것이 ‘흡수’의 형태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독일 통일이 보여주듯이 노동자․민중 전체에 대한 자본 지배의 강화와 생존권의 파탄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북관계에서 투쟁의 전술적 출발점은 반제반전 투쟁이라는 국제주의라는 큰 틀 안에서 한반도의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특히 이 투쟁은 전술적으로 1민족 2국가 체제를 국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명확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남북 상호간의 헌법 수정과 평화협정 체결, 군축 협상, 한반도비핵화 선언 실질화 등을 실질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이런 평화체제구축 투쟁은 한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본질, ‘자본의 지배’를 여전히 포함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52) ‘통일투쟁’은 ‘민족주의’라는 환상을 유포할 뿐만 아니라 ‘통일’이라는 감상에서 출발하는 운동은 급박한 북한의 흡수통일에 제동을 걸 수 없고 한반도 전체에서의 ‘불행의 먹구름’이 될 ‘흡수통일’에서 ‘반동적 민족주의’로 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시기 통일운동은 북한에 대한 신자유주의 지구화 포섭전략에 대한 투쟁이 되어야 하며 이 때,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대한 투쟁은 ‘평화체제구축 투쟁’과 더불어 국제적인 반제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의 형성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반도 위기’에 대응하는 투쟁은 ‘반전반핵 평화체제 구축’은 본질적으로 반신자유주의, 반지구화 투쟁 전선을 국제적으로 구축하는 동북아 노동자들의 국제 연대 투쟁으로 발전되어야 하며 여기서 남북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구축이 시작되어야 한다.

셋째, 현재 열우당으로 표상되는 ‘개혁’ 세력의 집권은 다름 아닌 합리성과 효율성에 기초한 시장경쟁체제의 구축과 ‘지구화’에 따른 국가경쟁력 강화를 전면화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의 지배 권력이 구축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후 계급투쟁의 중심축은 신자유주의-합리적 자본권력 대 반신자유주의-반자본의 대립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재/민주’의 대립에 정점에 서 있는 ‘호헌철폐’로 시작된 6.10과 ‘민주화’는 더 이상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이전까지 ‘독재/민주’는 계급투쟁에서 진보적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이제 이와 같은 대립은 오히려 반혁명적인 노동자․민중의 체제 내화와 지배구조로의 흡수를 의미한다. 게다가 오늘날 ‘반혁명적인 수동혁명’에서 ‘개혁’과 ‘민주’는 노동자․민중을 흡수하는 직접적인 지배 권력의 코드가 되었다. 따라서 이전에 계급투쟁의 전선을 교란했던 요인들은 더욱 단순화된 반면 ‘체제내화’의 가능성 또한 커졌다.

그런데 이번 4.15총선은 변혁운동진영이 제도권으로의 진입할 수 있다는 ‘희망’과 ‘전망’ 또한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당분간 노동자․민중 운동에서 주요한 흐름을 형성할 것이다. 특히 그것이 ‘할 수 있다’는 점, ‘사표가 아니라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사회 전체를 잠식해 가는 흐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와 같은 ‘좌선회’가 근원적으로 기반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자체라는 점에서 ‘좌선회’의 한계는 계급적대의 새로운 투쟁을 함축하고 있다. 아울러 이 흐름을 타고 진행될 민노당의 성공 또한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좌선회’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53) 특히 이번 민노당의 성공은 현장에서 계급적으로 조직되었던 대중들이 해체되고 실리화된 결과와 의회주의적 환상으로 반신자유주의의 탈출구를 추구해 가는 세력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의회 진출은 본격적인 민노당의 ‘국민정당화’, 또는 ‘탈계급적 제도권 정당’으로의 변화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향후 계급적 진보진영과 자유주의와의 관계가 ‘친화성’을 향할 경우 그것은 ‘노동자계급운동의 제도화’를 낳을 것이며 ‘적대성’을 향할 경우 그것은 ‘반자본’을 함축하는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구축’을 낳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핵심적인 대립의 축은 더 이상 수구보수 대 민주의 대립이 아니며 신자유주의-합리적 보수 대 반신자유주의-계급적 진보의 대립이다. 민노당의 의회진출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는 이 대립의 장을 ‘제도정치영역’에서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민노당의 성격과 ‘어떻게 계급정치의 전망을 열어갈 것인가’의 전략적 차원을 제쳐놓고 본다면 장기적으로 현재의 국면이 계급정치의 소멸보다는 오히려 본격적인 계급정치의 장을 열어놓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노당의 의회 진출은 6.10 이후 진행된 ‘반혁명적인 수동혁명’을 통한 체제내화, 지배권력으로의 재주체화 과정의 산물이고 당-노조의 양날개론에 의거한 ‘제도화’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노당의 당원 비율에서 화이트칼라층과 전문직, 그리고 여성, 학생 등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민노당의 당권을 민족주의 세력이 장악했다는 점, 민노당의 일부 좌파를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의회전략-수권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노당의 한계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민노당을 계급적으로 활용하고 민노당을 제도권에서의 의회전술단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에 조직력을 통한 외부로부터의 강제가 부가되어야 한다. 최근 민노당 활용론, 또는 민노당 입당론, 민노당 의회전술단위로의 인정 등등은 이와 같은 민노당의 정치적 정체성의 한계를 보지 못한 것일 뿐이다. 근본변혁을 위한 전략적 단위의 조직적 독립성과 독자적 건설 없이 민노당에 입당하는 것은 ‘민노당의 의회주의적 환상’이라는 늪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후보의 선출 과정 자체가 당원투표에 의존하는데 당원의 성향이 ‘탈계급적 시민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략적 단위의 건설과 조직적 독립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울러 민노당의 의회선거전술을 민노당의 당원투표라는 독점성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모든 한국의 노동자․민중이 그 스스로 후보자를 선출하는 계급투표방식으로 전환시키는 민노당과의 연합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민노당과 다른 합법적 의회정당을 만드는 것은 사회당의 헌신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경험이 보여주듯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최대한 선거연합, 선거블록을 요구해야 한다. 이런 노력 없는 또 다른 의회정당건설이나 선거의 독자적 참여 대중들에게 ‘분열주의자’의 이미지만 강화할 뿐이다. 문제는 선거공간이 계급대중들에게 차이를 보여주고 ‘정치적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장과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권력을 조직화하고 이 힘을 기반으로 하여 민노당을 강제하고 선거에서의 현장투표에 의한 입후보자 선출을 요구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설사 결렬되어 독자후보 전술을 쓰더라도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

한/노/정/연


*)6.10이후 한국 정치지형의 변화를 수동혁명의 과정으로 서술하고 있는 글은 조희연, 「87년 이후의 ‘수동혁명’적 민주화와 시민운동의 구조적 성격」(맑스코뮤날레조직위원회 엮음, 『지구화시대, 맑스의 현재성2』, 문화과학사, 2002년)을 볼 것. ‘수동혁명’은 그람시가 이행의 ‘국가주의화’로 분석하는 것이다. 우선, 이 개념은 부르주아의 통일적, 지배적인 체제양식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헤게모니론의 연장선상에 서 있으며 둘째, 부르주아지가 노동자계급 및 피억압 인민의 지도자들을 흡수함으로써 피지배계급의 혁명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지배양식을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탈린주의적인 이행 전략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담고 있다. 어쨌든 여기서는 혁명적 정세에 대한 반동으로서 지배헤게모니블럭의 형성과 이데올로기적 포섭, 즉 지도와 지배의 구축이라는 ‘반혁명’적 의미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전의 ‘반혁명’적 개념으로 포함하기 어려운 지도, 즉 도덕적이고 지적인 사회, 문화적 헤게모니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수동혁명’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수동혁명은 6.10에 대응하는 “피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배제하기 위해서 ‘지배계급’이 지속적으로 국가권력을 재조직화하는 행위”(앞의 글, 241쪽)이다. 그러나 그람시의 개념이 기동전 없는 진지전의 의미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크리스틴 부시-글룩스만, 「국가, 이행, 그리고 수동혁명」, 샹탈 무페 편, 『그람시와 마르크스주의이론』, 녹두, 1992.을 볼 것. 그러나 조희연의 글은 반혁명적 지배헤게모니의 창출로 수동혁명을 쓰기 보다는 6.10혁명의 이중성이라는 역사적 한계에 근거한 변혁운동의 분화로 설정한다. 따라서 계급해체의 의미가 보다 강하게 드러나면 결론은 ‘다중’에 대한 검토로 끝난다. 그러나 필자의 입장은 6.10혁명의 ‘미래’를 7, 8월 노동자대투쟁에서 찾기 때문에 정치적 주체로 조직화된 역량의 결여, 주체 역량의 미숙성의 한계로 본다. 따라서 계급의 다원화와 ‘시민운동의 민중화’가 핵심이 아니라 ‘계급의 정치화’가 핵심이며 여전히 시민운동의 분화는 계급적 적대의 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반혁명’, ‘위로부터 강제’라는 개념을 부과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시오.


**)식민지사회구성체론을 주장했던 조류는 이와 같은 기본모순을 사실상 민족모순으로 독자화하고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CNP논쟁 이후 학계에서는 85년 [창작과 비평]에서 이루어진 ‘창비논쟁’과 86년 [산업사회 연구회]에서 이루어진 ‘산사연 논쟁’이 이루어졌다. 사실상 한국에서의 사회구성체 논쟁의 효시이자 출발점은 박현채선생이라고 할 수 있다. 박현채의 국가 독점자본주의론과 이대근, 안병직의 식민지 반봉건 사회구성체론이 대립했는데, 이후 식민지반봉건론으로 다시 정립된다. 이들은 ‘주변부’, ‘사람중심의 방법론’ 등을 사용하여 제3세계의 사회구성체론을 독자적으로 정립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맑스주의 사회구성체론과 다르다. 85년 이후 민족주의적 입장을 강하게 표방했던 민족해방 계열은 ‘사회구성체론’과 ‘사회 성격론’을 구분하면서 식반의 규정을 사회 성격론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박현채선생의 민족경제론에서 예시되었던 것인데 단지 식민지사회만이 강조된다. 이들은 식민지 경제 제도는 ⅰ) 경제, 정치, 문화, 군사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가 미제국주의자들에게 철저히 예속되어 모든 인적 및 물적 자원이 미제국주의자들의 세계 제패를 위한 침략적 군사기지화 정책에 철저히 동원, 이용되고 있으며, ⅱ)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봉건적 생산관계가 인위적으로 결합되어 이에 소상품 경제형태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ⅲ) 착취사회의 온갖 부패성과 사회악이 집대성되어 있는 가장 반동적인 사회경제제도라고 주장한다. 88년 식민지반봉건론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이들은 ‘사람중심의 방법론’(주체사상)에 근거한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이라는 변신을 꾀하지만 실제로 ‘과학적 타당성’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도표는 매우 단순화한 것이며 일반화한 것이다. NL/ND/PD내의 각 정파 안에서도 다양한 사회구성체론과 변혁이론들이 이었다. NL의 주요 흐름도 역사적으로 변화하는데 식민지반봉건사회론에서 식민지반자본주의론으로 나아갔으며 이 내부에서도 반봉건성을 둘러싼 차이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라는데 일치했다. ND는 이정로의 「성격과 임무」에 근거하며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폐기되었다. PD는 내적으로는 매우 다양한 차이들을 가지는 정파들을 가지고 있었다. ‘반제반독점’, ‘반제반파시즘’과 같은 쟁점이 있었고 그 외에도 소소한 분파들이 있었다. 여기서의 주요한 흐름은 윤소영-이진경으로 이어지는 『현실과 과학』, 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이론들이었으며 이들은 한국이 식민지가 아니며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박현채선생의 민족경제론은 ‘사회구성체-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성격-식민지반봉건’이라는 이중의 함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와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이정로의 「성격과 임무」이다. 민족경제론의 논리는 이식된 외자와 매판자본 → 본래적인 민족경제 영역 축소 → 농업의 반봉건성과 지주-소작제의 재생인 반면에 「성격과 임무」는 ‘낮은 생산력’ → 독점자본의 취약성과 불안정성 → 농업의 반봉건성과 지주-소작제의 재생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86-7년 이진경은 「성격과 임무」를 식민지반봉건론에 대비시키면서도 ‘낮은 생산력→반봉건성의 온존’이라는 틀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진경과 윤소영 또한 이런 민족주의적 경향, 또는 종속론적 편향을 완전히 탈피한 것은 아니었다. 윤소영이 주장하는 ‘민족경제론과 국독자론의 결합’과 이진경의 ‘계급지상주의와 민족지상주의의 대립’이 그러하다. 따라서 이 둘의 결합이 “독점강화/종속심화” 테제라는 정식화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양우진(「한국 자본주의 성격 규명을 위한 일 시론: 70년대 중반 ― 80년대 초반의 축적과정의 위기를 중심으로」, 1986)은 이를 쁘띠부르주아 민족주의라고 비판한다. 어쨌든 이것은 근거 없는 비판이 아니었다. 첫째 윤소영의 ‘독점강화/종속심화’의 핵심은 신식민지적 초과이윤 α인데 이것은 식민지론적 편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제국주의적 독점자본은 독점적 초과이윤+α를 영유하게 되지만, 국내의 독점자본은 최악의 경우에 독점적 초과이윤-α 또는 그러한 α를 모두 비독점자본에 전가할 수 있는 경우에라도 기껏해야 독점적 초과이윤만 영유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윤소영의 종속심화란 정치․군사적 관계의 종속에 의해 착취되는 식민지적 초과이윤의 확대이며 그것도 비경제적인 정치, 군사적 착취이다. 그런데 이것은 지속적으로 확대된다. 따라서 수학적으로만 본다면 그것의 종착역은 식민지이이다. 둘째, 윤소영은 다비도프의 종속자본주의론과 브루텐츠의 RD론을 결합한다. 그런데 이것은 종속론적 편향을 가진 논자들이다. 윤소영은 이런 입장에서 오히려 ‘종속심화론’을 비판하는 중위자본주의자들의 논리를 비판한다. 그러나 ‘중위’와 ‘종속’을 구분하는 마이다니크의 논의는 셰이니스와 동일하지 않다. 이것은 국제논쟁사에 대한 잘못된 해석인데, 이에 대한 논의는 이성형, 『라틴 아메리카 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 새길, 1990.를 참조할 것.


*****)제국주의론의 폐기 과정은 페레스트로이카의 ‘개혁파’ 논의 도입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병천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전인류적 가치의 우위’라는 신사고와 더불어 나타난 세이니스, 프리마코프의 논리를 이용하면서 ‘종속약화→아제국주의론으로 나아간다. 상호의존성론은 ‘계급적 가치에 대한 전인류적 가치의 우위’라는 계급투쟁에 대한 상대적 약화와 자본주의 시장체제-제국주의 세계체제 내부로 편입하고자 했던 소위 개혁파의 논리에 근거해 있다. 앞의 각주에 나오는 세이니스는 87년 『노동계급과 현대사회』 誌 4호에 「발전도상국과 새로운 정치적 사고」라는 글을 통해 전통적인 제 3세계론인 신식민지론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면서 제국주의는 더 이상 현대자본주의의 특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이후 논쟁을 가속화했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인민』 誌 88년 5/6호에는 이에 대한 원탁토론이 소개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논자들이 이병천, 박형준, 다소간 다르긴 하지만 한상진, 최장집 등이었다. 이 과정은 한국에서 시민사회론의 등장과 보급 과정이었는데, 이병천은 「마르크스 역사관의 재검토」(『사회경제평론』4집, 한울, 1991.), 「민주주의혁명의 성찰적 전진을 위하여」(『후기자본과 사회운동의 전망』, 의암, 1993), 「민주주의론의 새로운 발전을 위하여: 프롤레타리아독재론을 비판한다」(이병천․박형준 편,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마르크스주의Ⅰ』, 의암, 1992.)에서 맑스주의를 결정론, 목적론 등등으로 비판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론을 폐기한다. 박형준은 「시민사회론의 복원과 비판적 재구성」(이병천․박형준 편,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포스트마르크스주의Ⅱ』, 의암, 1992.)에서 ‘포스트’(탈)적 재구성과 시민사회론의 적극적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논의는 그람시를 자유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보비오(구갑우 외 편, 『마르크스주의의 국가이론은 존재하는가: 보비오논쟁』, 의암, 1992. )와 하버마스의 논의를 도입하여 시민사회의 비판적 기능을 ‘해방적 잠재력’으로 보는 코헨과 아라토(진 코헨, 앤드류 아라토, 「새로운 정치와 시민사회의 재구성」, 한상진 편, 『마르크주의와 민주주의』, 사회문화연구소, 1991.)의 논의에 근거하고 있다. 이병천과 박형준은 코헨과 아라토를 따라 국가, 시민사회, 경제라는 3가지 영역을 나누고 보비오를 따라 탈계급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적인 재검토는 발리바르의 관점에 주로 근거하는 서관모,「국가, 시민사회, 이데올로기」(『이론』, 1993년 가을호.) 와 다소간 전통적인 입장에 근거하는 김세균, 「‘시민사회론’의 이데올로기적 함의 비판」(『이론』, 1992년 가을호.)이 있으며 이들 논쟁들에 대한 총론적인 비교, 평가는 서규환,「‘시민사회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최근 논쟁」(『이론』)을 참조할 것.


**)이 당시 한국의 전위정당 건설 운동의 정점이었던 ‘사회주노동자동맹’이 검거되면서 조직의 와해로 진행되었다. 아울러 이전부터 민중당 운동에 전술적으로 개입해왔던 ‘인민노련’은 소위 범PD로 분류되었던 ‘삼민동맹’과 ‘노동계급’을 통합하면서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을 건설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오히려 전체적인 변혁운동인자들의 해체를 낳았다. ‘한국식의 사회주의’라는 관점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폐기(90년도에 발표된 ‘신노선’)와 탈현장과 탈지하화의 움직임을 낳았고 경실련 운동과 같은 시민운동으로의 투항, 또는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제도 정치운동으로의 변신, 경제난으로 인한 일상인으로 전화 등을 낳았다. 어쨌든 이 과정은 80년대 변혁운동에 대한 ‘반동’이자 이전 변혁운동의 ‘꿈’에 대한 상실, 그리고 이어지는 ‘일상’, ‘제도’, ‘시민’으로의 전화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윤소영의 파시즘론은 ⅰ) 종속이라는 외인론에 근거하여 신식민지파시즘의 성립을 논증하고 있으며 ⅱ) 파시즘을 독점자본주의의 정치적 반동으로서 보편화함으로써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첫째로, 윤소영의 종속심화론은 종속파시즘, 신식민지파시즘을 규정하는 이론적 준거점이 되고 있는 데, 이처럼 파시즘의 성립을 종속이라는 ‘외인론’으로부터 파악하는 논자들이 바로 도스 산토스나 마리니와 같은 ‘종속파시즘론’자들이다. 그런데 이 때의 난점은 종속파시즘이 외적 요인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부의 요인이 배제되고 그것의 내적 계급투쟁이 분석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파시즘은 종속에 근거하는 것이 되고 독점자본이라는 계급적 본질은 은폐되고 만다. 도스 산토스는 윤소영과 동일하게 ‘종속자본주의의 위기’로부터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에 ‘식민지적 파시즘’ 또는 ‘종속파시즘’이 성립한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종속파시즘’이 종속적 발전에 의해 격화된 계급대립의 위기적 상황에서 악순환적으로 배태되기 때문에 부르조아 지배체제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종속적 발전으로부터 필연화되는 파시즘의 길은 포기될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종속자본주의의 위기로부터 성립하는 파시즘에서의 길은 오직 ‘사회주의냐 파시즘이냐’의 두 가지 길의 가능성만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결국 ‘종속적 자본주의의 위기→정치적 위기→종속파시즘→다시 종속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위기’로 악순환되는 종속파시즘에 의한 붕괴를 전제하는 파국론적 관점에서 정식화되고 있는 점이다. 또한 마찬가지의 논리로 ‘초과착취론’에 근거하여 제국주의 독점자본에게 ‘공납’을 받침으로써 가치의 대외유출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고 이에 따라 국내 독점자본은 민중을 매수할 수 있는 물적 기초를 상실함으로써 계속되는 ‘정치위기’를 경험하게 된다고 보는 마리니의 견해도 종속자본주의의 종속적 발전으로부터 파시즘의 영구성 또는 파시즘의 악순환적 재생산을 설명하는 파국론적 관점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윤소영은 파시즘을 ‘금융자본의 정치적 반동’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그의 논의는 파시즘의 계급적 본질에 대한 규정이라면 정당하고 이런 측면에서 마리니나 도스 산토스의 견해와는 위상을 달리한다. 그러나 ‘뉴딜 대 파시즘형의 현상적 차이’라거나 아니면, 또는 파시즘의 본질은 ‘금융자본의 정치적 반동’이라고 규정한다면 파시즘과 뉴딜형의 지배체제의 국가형태적 차이는 단순한 현상적 차이 이상일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종속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로부터 파시즘의 성립을 주장하는 그의 논리와 위배되게 된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독점자본주의 일반의 상부구조라는 보편성만 가질 뿐 뉴딜형과 파시즘형 간에는 단순히 현상적인 차이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시즘은 제국주의국가의 상부구조와 본질상 동일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종속은 신식민지파시즘 규정에서 별다른 성질을 제시해 주는 요인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모순적인 논리에도 불구하고 윤소영은 파시즘형과 뉴딜형의 지배형식에 있어서 질적 차이를 단순히 계급적 본질에 대한 환원론적 규정에 근거한 경제주의적 관점으로 무화시킨다. 따라서 그의 파시즘론은 변혁론과 결합되면서 더욱 기묘해진다. 즉, 종속적 국독자의 종속 파시즘에 대한 변혁이 종속심화에 의한 NLPDR로 규정되어 PDR이 반독점과 결합되고 다시 반파시즘 PDR은 종속심화에 의해 지지받게 된다. 종속적 국독자에서의 파시즘은 항구적인 정치적 상부구조가 되고 독점자본의 반동성은 종속심화와 결합되어 반독점 PDR은 ‘종속적 발전에 의한 파시즘이냐 반독점에 의한 사회주의냐’의 두 가지 길에 놓여 있게 되는 반면에 뉴딜형의 국독자에서는 독점자본의 반동성에 근거한 파시즘(형태상으로 뉴딜형이라고 그도 규정하고 있다) 없는 PDR을 주창하면서 반독점에 의거한 PDR을 주장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고 이 결과는 한국에서의 탈파시즘-위로부터의 민주화에 대한 회의를 양산한다. 이후 전개되는 ‘민간파시즘론’ 등은 이와 같은 효과의 후과이다. 그리고 역으로 ‘위로부터 강제되는 수동혁명’은 ‘허구’라는 강변을 낳거나 아니면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환상을 낳게 되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의 정권 이행 과정은 이와 같은 민주-개혁 코드로 ‘민주화’의 환상으로 운동을 해체해 가는 과정이었다. 물론 이 경우 80년대의 파국론적인 ‘파시즘론’이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역으로 그 환상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이병천, 박형준,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했던 황태연 등은 이후 변혁 운동으로부터 떠나게 되는데, 최장집, 황태연은 김대중정권 때, 박형준은 현재 한나라당으로 들어가 있다. 이외에 수많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의 입당이 행해졌으며 현재 열린우리당은 이후 형성되는 자유주의적 시민운동과 시민화의 경향에 맞물려 있다. 이것은 정확히 그람시의 수동혁명이 지닌 특징인 운동 지도자들을 포섭하는 지배헤게모니구축과 맥락을 같이 한다.


*1)문제의 결절점에는 ‘이성의 화신=당’이라는 개념 규정에 놓여져 있는데, 당은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유일한 진리의 틀을 가진 조직으로서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선취하고 합리적으로 건설하는 조직체이다. 이후 즈다노프주의나 뤼셍코주의(당파성=‘프롤레타리아의 과학’)는 이와 같은 독단적이고 독점적인 진리를 ‘프롤레타리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스탈린적 권력 위에 세운다. 따라서 당파성은 당독재의 관료지배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알뛰세르는 ‘이론적 실천’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이론과 정치를 분리하고자 한다. 그러나 90대 초반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열풍을 일으켰던 푸코는 보다 근원적 지점에서 이와 같은 문제들, 봉쇄된 지점을 폭로한다. 그는 ‘지식과 권력의 연계 효과’를 이성중심주의라는 근대성의 지형 위에 폭로한다.


**) 당시 변혁운동 진영에서 경제에 의한 상부구조의 결정이라는 관점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물론 80년대에 많이 읽었던 『강좌철학』과 같은 경우에는 경제결정론임에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상호작용, 또는 상부구조의 자율성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왔던 정세분석이나 전략․전술론은 천편일률적으로 ‘경제-정치-노동자․민중의 상태’라는 틀을 고수했으며 이데올로기적인 사회문화적 변동이나 노동자 개개인에게 작동하는 ‘생체권력’과 같은 사고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언제나 노동자․민중의 삶 자체가 파괴되고 있으며 자본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개념적 원칙과 상관없이 지배헤게모니 전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없었다.


***)한계 규정은 영어로 외부적 관점에서 보면 limit, 내부적인 영역의 관점에서 보면 boundary에 해당한다. 한계는 그것의 사멸, 파괴의 필연성과 그것의 생존에 있어서 절대적 한계를 지시할 뿐이다. 그러나 운동은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절대적인 한계에 의해 사멸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 그것은 관념적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의 한계일 뿐 현실의 운동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현실의 운동은 다른 요인들과의 복합적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본의 한계는 그 자체로 그것이 절대적인 한계, 수학적으로 추론된 한계일 뿐으로 그 한계를 실제적으로 추론해 낼 수는 없다. 자본의 위기는 그런 한계들이 현실의 다른 요인들과의 충돌 속에서 계급투쟁으로 표현으로 되는 것이다. 경제상 위기의 표현을 ‘혁명적 정세’라 하고 그것이 지배체계 전체에 대한 위기로 전화할 때는 ‘전국민적 위기’라고 한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은 오해하기 쉬우나 실제 필요조건은 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병원이 있기 위해서는 병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병이 있다고 병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땅이 젖어 있다고 반드시 비가 왔기 때문은 아니다. 땅이 젖기 위해 ‘비’는 충분조건이나 그 외에 다른 원인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의 위기는 혁명의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혁명’은 자본의 위기가 아닌 요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본의 위기’가 진행되어야 하지만 거꾸로 ‘자본의 위기’가 있다고 반드시 사회주의 혁명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위기에 대한 ‘한계의 극복’은 ‘전국민적 위기’와 주체역량이 결합되었을 때 현실태로 전화될 수 있다. 레닌의 전위는 이 주체역량에 대한 준비 또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의 필요충분조건은 ‘전국민적 위기’와 ‘주체역량’의 결합이다.


*6)주체는 이데올로기를 실어 나르는 그릇이다. 사람들은 모두다 주체로서 그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재주체화’란 자기 스스로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이든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든 간에 특정한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자기 스스로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식으로 계열화하고 편입함으로써 체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애초 남한에서의 시민운동은 70년대 주로 관변적인 단체였던 반면 80년대에는 재야에 대립적으로 등장한 경실련을 주축으로 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시민운동의 주도권은 변화했다. 89년 이후 경실련 주도하던 시민운동은 94년 “한국시민단체협의회” 결성(35개단체)을 통해서 ‘공선협’ 활동을 주도했지만 그 후 94년 참여연대, 여성 단체 연합회, 민우회 창립과 더불어 99년 4.13낙천․낙선 운동을 통해서 양 조류가 갈라지고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2001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을 결성함으로써 주도권이 바뀌었다. 여성 운동 세력 내부에서도 여협과 여연으로 개편되어 왔다.


***)신사회운동론은 세부적으로는 여러 경향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버마스의 ‘도구적 합리성 비판’과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관점에서 체계의 생활세계 침투를 막는 전략과 서구의 노동자계급의 보수화에 대한 중간계층의 급진화, 탈상품화영역에서의 급진성이라는 관점에서 전개되었다. 특히 일상생활에까지 자본의 침투가 이루어졌다는 관점에서 ‘일상’과 ‘생활’에서의 저항이 높이 평가하고 ‘계급적 특수 이해’가 아닌 ‘보편적 이해’를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 글은 벨델 필즈, 「신사회운동론의 여러 경향과 비판」, 『사회와 사상』, 1991년 가을호. 김호기, 「포스트맑스주의와 신사회운동」, 『경제와 사회』14호, 클라우스 오페, 신사회운동: 제도정치의 한계에 대한 도전」, 한국정치연구회 정치이론분과 엮음, 『국가와 시민사회』, 녹두, 1993. 라클라우․무페,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터, 1990. 참조할 것.


****)현재까지 민주노총의 기치를 형성하고 있는 ‘사회개혁투쟁’이라는 코드는 이와 같은 지배계급의 재주체화와 시민운동의 헤게모니가 노동운동 내부로 침투한 결과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의 계급적인 이해를 양보하거나 포기하고 ‘중립적인 시민’(시민운동의 신화)으로서의 명분과 실리를 취하자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계급운동을 ‘시민화’하는 것이며 ‘지배헤게모니’의 공동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취함으로써 그 스스로 ‘지배블록으로 재주체화’되는 현상이다. 물론 협소한 공장과 단사의 이해관계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적인 공동선’을 나눔으로써 허구적인 자본의 공동체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조직화되기 위해서 전국적이고 피억압인민 일반의 이해를 자신의 헤게모니하에 묶어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개혁’이 아니라 ‘정치화’가 화두가 되어야 하며 ‘지배블록’에 대항하는 ‘역사적 블록’이 구축해야 한다.


*****)맑시즘의 위기와 해체의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방식은 스탈린/레닌-맑스, 스탈린-레닌/맑스이다. 여기서 성역은 일반적으로 맑스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시 맑스를 성역화 하는 것이다. 스탈린은 레닌 안에서 하나의 경향으로 있으며 레닌은 맑스 안에서 하나의 경향으로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주의를 하나의 맑스주의, 강철블록으로서의 맑스주의는 없다. 오히려 맑스-레닌-스탈린은 각 역사적 정세에서의 고유하면서 내재적인 맑스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직 보편화되지 못한, 그러나 잠재적인 경향으로 놓여져 있는 단층들이 있으며 그 경향이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특정한 집단과 조건에 의해 보편화되면 다른 경향의 맑스주의가 생성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볼 때, 맑스주의는 대단히 확장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혁명적 전통에서의 맑스주의는 맑스-엥겔스가 말했듯이, 그리고 레닌이 부언했듯이 ‘역사유물론, 잉여가치론, 프롤레타리아독재론이라고 생각한다.


*1)맑스주의에서의 핵심은 결국은 ‘당’이다. 왜냐 하면 그것이 정치와 경제가 만나는 결절점이자 이론과 실천의 환류 통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레닌적인 당론은 러시아의 특수한 환경이라는 측면과 당 일반론의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그의 논쟁은 이것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 이에 대한 필자의 논의는 [노동자의 힘] 37-46호에 연재되었던 「남한 변혁운동의 현단계와 '당' 개념, 그리고 당 건설 투쟁」을 참조하시오. 어쨌든 이런 당 조직이론에 대한 논의를 논외로 한다면 레닌의 전위정당론은 한국에서 한 측면, 즉 전위의 프로적 성격과 전사적 성격에 주목해서 수용되었다. 이것은 물론 당시 독재권력과의 대치라는 한국의 극한적 대립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권력 접수, 타격은 군대적인 철의 규율과 집단성, 명령-복종의 체계를 일반화하였다. 물론 민주집중제가 있기는 했으나 비밀결사의 점조직은 형태상 정보공개와 환류를 차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규율과 조직체계를 통한 집단성은 조직원의 개인적인 정치 결사의 의미를 약화시킨다.


**)노동자계급을 ‘주체’로 설정할 때의 의미에 대한 논의는 졸고, 「맑스주의의 ‘주체’와 포스트적 전화의 담론들」, 『문예미학』10, 문예미학회, 2002.를 참조할 것. ‘육체’를 통한 의식과 물질의 교통을 철학적 관점에서 정리한 글은 졸고, 「철학의 실천 실천의 철학」, 『지구화 시대 맑스의 현재성 1』, 2003.을 참조하고 ‘포스트’적 문제의식과 이것이 남긴 문제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의 핵심 쟁점들에 대한 논의는 졸고, 「현대세계와그대안(5) 기획연재「포스트 맑스와 맑스, 그리고 이행」, 『진보평론 』, 제17호, 2003.을 참조할 것.


***)레닌의 노농동맹에 기초한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론은 이후 1917년 4월 테제를 기점으로 바뀐다. 1905년 당시 레닌은 반봉건민주혁명을 자본의 미발달, 봉건성의 잔존으로 파악한 반면 4월 테제 이후에는 자본의 발달 독점성에서 찾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농독재론은 1905년의 변혁론이다.


****)디미트로프 테제는 파시즘을 “금융자본의 가장 반동적이며 가장 국수주의적이고 가장 제국주의적인 분파의 공공연한 테러독재”라고 규정함으로써 파시즘 체제를 금융자본과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오류를 범했다. 아울러 전술적인 ‘반파시즘인민전선론’이 이후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 진영테제와 연결되면서 전략적 단위로 급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80년대 당시 이를 둘러싼 논쟁이 『현실과 과학』, 이여형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송주명은 이후 파시즘형과 뉴딜형을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두 가지 다른 정치적 반동의 형태로 나누고 이에 기초하여 반동적인 정치체제의 특수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즉, 톨리아티와 바르가의 논의로부터 유추하여 중위의 종속자본주의적 형태의 특수성이 나타나는 지배체제의 형식으로 파시즘을 규명한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국제 변혁운동의 전략, 전술론은 이후 역사적으로 60-70년 비동맹회의를 축으로 하는 국가자본주의에 의한 민족민주혁명론(NDR), 서구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의한 반독점인민민주주의혁명론(PDR), 중진자본주의와 선진자본주의에서의 일반민주주의혁명(GDR) 등으로 분화되어 왔다.


*6)ND와 PD간의 논쟁은 88년 ‘벼리’ 출판사에서 기획한 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벼리논쟁’에서 시작하여 『‘현실과 과학』과 『노동해방문학』 사이의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중에 국가독점을 단계로 파악할 것인가 특성으로 파악할 것인가 하는 단계/특성론의 논쟁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정로의 반박은 적절하지 못했으며 ‘낮은 생산력→봉건성의 온존, 잔존→민족민주혁명’은 한국의 사회구성체논쟁에서 NL와 PD의 경계선에 놓여 있었다. 박현채선생의 이론을 뼈대만 간추려 맞춘 듯한 논의였지만 그 역사적 성격은 판이했다. 박현채선생의 논의는 한국의 사회구성체논쟁의 산실이자 출발점이었다면 이정로의 논의는 애매모호함의 종착역이자 파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은 이 변혁론을 스스로 폐기함으로써 이 논쟁을 결산하였다.


**)그람시의 국가 개념에는 매우 애매한 문맥상의 임의적 사용들이 있다. 이에 대한 논의는 페리 앤더슨,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율배반」, 김현우․신지욱․허준석 편역,『안토니오 그람시의 단층들』, 갈무리, 1995.를 참조할 것. 그러나 그람시가 시민사회 개념을 물질적인 토대와 무관하게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한 논의는 보비오와 텍시에르의 논의에서 재현되는데, 보비오는 시민사회를 물질적 토대와 완전히 분리시키는 반면 텍시에르는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한 논쟁은 노베르토 보비오,「그람시와 시민사회의 개념」, 쟉크 텍시에르, 「그람시, 상부구조의 이론가」, 샹탈 무페 편, 『그람시와 마르크스주의 이론』, 녹두, 1992.를 참조할 것. 아울러 이 세 논문을 같이 보는 것이 좋음. 그러나 필자는 ‘시민사회’라는 개념이 여전히 공민적, 민족국가적 개념을 함축하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통적인 삶의 터전이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라는 토대와의 결절점에서 생겨나는 상부구조이자 권력의 형성지점이라는 점에서 ‘사회권력’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현재 남한 시민운동에 대한 자칭 좌파의 개입 또는 노동 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 활동은 ‘공공성’이라는 시민 사회의 신화에 빠져 있다. “새로운 세기 사회 운동의 전략적 의의는 이처럼 공공성 담론의 새로운 확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세기 사회 운동 진영이 공유해야 할 가치 덕목은 민주성 자주성 공공성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가치 덕목 위에서 각각의 운동 진영이 이것을 구현하는 방법을 구체화 해 나가야 한다”는 노기연 소장 김상곤의 말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심지어 시민운동 세력은 자신들을 ‘공공성’에 기반한 ‘사회 공적 단체’로, 노조와 농민 단체를 이익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개혁의 동반자적 역할이 수행된다.


****)“한국의 정치인과 관료는 개혁을 추진할 의사와 능력이 부족하다. 이제 기업과 시민단체가 개혁을 주도해야 할 때”라는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근식 이사장’의 말이나, “시민단체활동도 경제논리에 맞게 추진돼야 한다. 시민단체의 도덕성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기업들이 협력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라는 ‘자유기업원 민병균 원장’의 말은 이와 같은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운동 세력이 ‘공공성’과 ‘효율성’, ‘합리성’이라는 신자유주의 파트너로 존속하는 한, 그들 스스로 여전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파트너로 생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물론 시민운동의 근원적 한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사회적 존재 기반이 지닌 한계에 기인한다.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국유화=계획화가 실패의 주원인으로 진단되었다. 따라서 이후 대안은 시장의 개입과 시장과 계획의 조화 등등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진단하는 것이다. 핵심은 국유화=계획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국가권력 그 자체의 성격에 있다. 이에 대한 쟁점과 필자의 입장은 졸고, 현대세계와 그 대안(5) 기획연재「포스트 맑스와 맑스, 그리고 이행」, 『진보평론 』, 제17호, 2003.를 참조할 것.


*1)레닌이 두 개의 단계를 두었는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멘세비키와 비교해 보면 이것은 ‘성장전화론’이라는 하나의 단계 안에서의 두 국면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현실과 과학』으로 대표되었던 PD파의 PDR론은 ‘노동해방문학’과의 논쟁 속에서 보편적인 혁명론으로 격상하는 듯한 과정으로 빠져든다. 이창휘는 레닌의 ‘두 가지 전략과 전술’을 플레이하노프적 한계로 진단하고 PDR로 일반화한다. 이후 서울사회과학연구소는 『사회주의 이론의 실제와 역사』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과도기로서의 PD적 시기를 제시함으로써 보편적인 PDR를 정립한다.


***)레닌의 ‘전국적 정치신문’과 ‘전위’는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노동자계급의 역동성을 담아내는 기제이자 새로운 실험을 창조적으로 만들어가는 운동가로 이해될 수 있다. 당시 러시아에서의 정보 공유는 거의 전무했으며 전국에서 진행되는 투쟁이 환류되지 못했다. 따라서 레닌은 단순한 이론적 지도부로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산개되어 있던 노동자계급의 힘과 역동성을 하나로 묶기 위해 전국적 정치신문을 창안한 것이었다. 따라서 전위조직으로서 당은 노동자계급의 실천과 경험을 하나의 네트워크 체계 내로 소통시키면서 그들의 자생적 혁명성을 생동하는 혁명적 실험으로 만들고 새로운 주체들을 만드는 조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람시는 보르디가와 부하린을 비판하는데 그 주요 논점이 바로 경제결정론에 의한 숙명론에 빠진다는 것이다. 대신에 그람시는 수동혁명에서 보여지듯이 국가가 사회의 헤게모니블록을 형성하는데 대항하여 ‘역사적 블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그람시의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가 가진 장점이 있다. 물론 이것은 크로체적 관념론의 위험성이 있지만 당시 지형상 ‘막대구부리기’로 본다면 그 핵심을 포착해 낼 수 있다. 아울러 그람시의 역사적 블록에서 유기적 지식인의 역할이 강조된다. 그러나 당의 강력한 의지와 지성 이전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급투쟁에 의해 형성되는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대중들의 ‘감성’을 그들 스스로의 실천과 ‘반성’ 안에서 ‘성찰’하고 이론화하는 것이며 레닌의 ‘전위’적 정신에 따라 당 조직의 민주적 소통, ‘실천’적 창조 에네르기의 접목장치를 형성하는 것이다.


*****)역사유물론의 토대 중심성이 해체되면 나타나는 문제는 ‘이데올로기’ 상부구조에 대한 의식적, 욕망적 구조들로 환원된다는 측면이다. 최근 ‘코뮨주의’의 논의들도 이와 같은 자본의 물적 조건-‘생산의 사회화’를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것이 지역자치와 자율공동체 형식만으로 진행되었을 때에는 이미 생산의 사회화가 진행된 현재 상황에서의 사회를 재구성해 갈 수 없다. 아울러 생산의 사회화는 생산 전체에 대한 통제가 전국적, 전체 공동체 차원에서 조직되어야 한다는 점, 즉 계획화의 요소를 핵심 요소로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런 거시적 차원에서 권력과 생산 통제와 지역적 코뮨과 자치-자율의 문제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6)일반적으로는 지구화와 세계화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통용해서 쓴다. 그러나 애초 globerlization은 가치적 의미보다는 자본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지구화’가 보다 적절하다. 그런데 ‘지구화’보다 ‘세계화’를 선호하는 것은 ‘세계 지구촌화’라는 맥루한의 개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의 형성 측면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반세계화’에 비판적이다. 예를 들어 네그리가 그러한데, 이것은 자본의 지구화가 결국 세계화를 낳으며 그런 세계화는 국민국가의 파괴와 세계시민의 형성 등을 낳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의 지구화가 지닌 계급적 토대를 간과한다. 특히 그들은 지구화-세계화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국민국가와 국민국가적 대립에 근거하는 제국주의의 해체를 낳고 ‘제국’의 형성을 낳을 것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세계화’의 윤리적 토양이 형성되는 것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사회포럼’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반세계화운동은 새로운 세계화의 기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그들의 모토는 ‘자유주의 반대’, ‘전쟁 반대’와 같은 계급적 대립의 축과 교차되고 있다. 노엄 촘스키는 2002년에 있었던 세계사회포럼에서 “새로운 인터내셔널이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것은 결국 세계화가 자본의 세계화와 같은 가치가 아닌 반자본적 가치의 형성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졸고, 「보수지배체제와 남북관계」, 『진보평론』, 11월호, 2002. 「한반도위기와 동북아정세」, 『현장에서 미래로』, 84호, 2003.를 참조할 것. 사실, 여기서 한국의 보수지배체제의 변동은 남북관계의 이런 변화와 연동되어 있다. 수구보수-반공세력에게 북한은 양체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따라서 양체제의 승인과 두 개의 국가를 교차승인하는 것은 반공-수구보수세력에게는 권력의 주요한 지렛대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국가보안법이나 반김단체, 친미데모는 이를 반영한다. 또한 이런 측면에서 6.15공동선언 이후의 지각변동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의한 일시적인 평화국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수구보수에게는 ‘위기’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수구보수세력의 헤게모니의 약화와 신자유주의 지배블록으로의 재편을 낳을 것이다.


****)한국에서 시민운동은 매우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공공성’과 ‘공동선’, ‘가치중립적 운동’으로 표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신자유주의와 시민운동의 성장은 같은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의는  조대엽, 「초국적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NGO의 대응」, (사)참여사회연구소․ 민주사회정책연구원 공동심포지엄 주체 ‘전환기의 한국사회, NGO의 역할은 무엇인가?’의 발표문을 참조할 것. 여기서 그는 신자유주의와 NGO질서의 구축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사회의 존립과 세계 시장의 단일화를 구축하는 동반자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본다. 첫째, 지구화된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고 사회 체제 통합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전에는 자본 축적의 정당화를 국가가 담당했다. 하지만 이제 개별 국가를 넘어선 지구화된 자본주의는 NGO에 의해 분점된다. ‘효율성’과 ‘합리성’, 그리고 ‘시민의 자율성’과 ‘시민운동의 공적 기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이와 같은 시민운동의 역할을 보여준다. 둘째, NGO는 지구화된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고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기여한다. 국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시장 개입에 대한 규제의 제거는 국가 축소로 가능하지만 보다 원천적인 장애는 전통적인 가족주의와 연고주의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전통을 해체하고 개인들의 철저한 시장적 신용에 근거한 사회적 합리화가 필요하다. 이것은 국민국가 내적으로 ‘국가 경쟁력 강화’와 ‘개인주의’를 통해서 관철된다. 특히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쟁 체제의 구축은 시장질서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개별국가보다 더욱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WTO와 개별국가보다 더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초국적기업, 그리고 개별국가보다 더욱 광범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NGO(UNDP, 1999)”가 세계화 시대의 삼 주체이다.(졸고,「한국 진보주의의 최근 논의와 방향-노동자계급정치운동의 모색이라는 관점에서」, 학단협 2002년 가을 발표문 중에서.)


*****)‘세대 차이’는 여기서 하나의 문화변동에서의 예일 뿐이다. ‘세대 차이’가 곧 이런 문화변동 또는 문화혁명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대 차이는 보다 근본적으로 세대간에 나타나는 ‘가치’의 차이로서, 신세대가 구세대와 다른 사회,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구세대는 성실, 근면, 집단성 등등이 중요한 반면 신세대는 향유, 소비, 개인 등등을 중시한다. ‘붉은 악마’나 ‘촛불시위’에서 나타나는 현상도 집단적인 조직화는 거부하지만 개인의 행복과 삶을 중시하면서 평소에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보다 많은 돈을 벌어 즐겁게 소비하는 삶을 추구하지만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서는 집단적으로 모이는 행위를 만들 수 있는 이들의 가치 현상을 반영한다. 특히 신세대는 가부장제나 권위주의, 집단화를 극도로 싫어하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런 문화변동은 개인의 삶을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른 책임으로 설정하고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관심을 쏟으며 그러기 때문에 사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증폭된다.


*1) 예를 들어 20-30대와 달리 노인들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서 밀려나는 자신들의 분노를 ‘세대 갈등’과 ‘근대화시대의 코드’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 향수로의 회귀이자 수구보수세력으로의 투항이다. 노인들은 현재의 생존적 위기를 현정권에 대한 분노로 표현하고 ‘한나라당’의 반정부적 투쟁 속에서 근대화의 코드를 결집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들의 수구보수적 성향은 기묘하게도 그들의 수구보수적 코드와 달리 역으로 그 분노의 기반이 신자유주의적인 무한경쟁에 놓여져 있다.


**)지배계급은 이 코드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최근에도 노무현정권은 ‘집단이기주의’로 민주노총과 대기업사업장을 몰아붙였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 ‘분노’는 본질적으로 지배계급이 설치해 놓은 ‘생존의 덫’에 걸려 있는 ‘쥐새끼들의 분노’에 불과하다. 개별화되고 개인화된 생존의 문제 안에서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하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개인들의 분노인 것이다. 분명 ‘분노’에는 객관적 조건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노’의 객관성은 ‘지배계급이 설치해 놓은 덫’이라는 측면에서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전선을 쳐야 하는 동지들 상호간을 분열시키고 불신을 자초하는, 그래서 자신들의 생존을 더욱 자본의 ‘덫’에 옭아매는 것이다. 이 덫은 일반 대중과 노동운동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운동, 심지어 매우 전투적인 노동운동 내부에서조차 존재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간에, 실업자와 조직 노동자들 간에, 그리고 대공장노조와 중․소사업장 노조간에도 존재한다. 게다가 파업투쟁을 하다가도 기업의 어려움을 호소할 때, 상여금 반납, 임금동결 등을 스스로 취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자본의 물질적 지배조건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서의 사회혁명과 정치혁명에 대한 사유와 궤적을 같이 하는 글로 김세균, 「사회변혁과 국가변혁」, 맑스코뮤날레조직위원회 엮음, 『지구화시대, 맑스의 현재성2』, 문화과학사, 2002.를 참조할 것.


****)레닌의 소비에트에 대한 관점은 일관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레닌은 1905년에 국가권력을 형성하는 것은 소비에트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레닌은 1917년 혁명에서 ‘이중권력’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기치 하에서 소비에트 노동자들이 그들 스스로 정치의 주체이자 주인으로 조직되는 투쟁을 전개하며 코닐로프반란 이후 10월혁명을 계획한다. 따라서 그에게 소비에트는 권력의 주체이자 이후 그가 계속적으로 주장하듯이 ‘전국적인 회계와 통제’의 주체였다. 그러나 10월혁명 이후 ‘제헌의회’를 소집하는 것은 대체권력의 관점에서 볼 때 아이러니한데, 왜냐 하면 권력은 이미 소비에트 그 자체이기 때문에 따로 헌법을 수립해야 하는 권력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여전히 부르조아적 대의제의 한계 또는 두 가지 전술에서의 반봉건적 민주혁명론이 남아 있었거나 아니면 소비에트에 대한 확고한 대체권력적 관점이 일관되게 유지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10월혁명 이후 직면하게 되는 국가자본주의적 공산주의노선이 지닌 문제도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평의회운동’은 매우 포괄적으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혁명적 전통에서 사용되는 ‘평의회’는 이탈리아의 공장평의회나 소비에트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1. 노동조합이 실질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체가 되지 못하는 상황, 즉 미발달되었거나 아니면 이미 당-노조로 체제내화된 상태에서 발전하였다. 소비에트는 전자이며 이탈리아의 공장평의회는 후자이다. 2. 평의회의 형태는 각국 나라의 처한 상태에 따라 발전되며 누군가의 고안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평의회의 맹아적 형태는 한국에서의 계급투쟁의 발전 속에서 형성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맹아적 형태들을 찾아내서 조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조직화는 3. 이들 평의회가 공유하고 있는 특성, 즉 대체권력이자 자율통치권력으로서 발전되었다는 점에서 이런 전망 하에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한 때 한국에서 현장조직운동은 전노협운동-노조민주화(소비에트적 특성을 지닌 맹아)에서 96-97총파업 이후에는 당-노조로 이원화하고 제도화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서 형성(이탈리아 공장평의회적 특성을 지닌 맹아)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현재는 노조선거와 집행권력 장악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장조직이 ‘현장권력’의 수립이라는 현장성, 투쟁성과 민주성, 자주성, 그리고 단사와 공장을 넘어서는 전국적인 전망을 갖는 ‘전국성’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평의회적 맹아로 볼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현장조직운동의 새로운 전망과 ‘평의회’적 질서의 구축은 계급투쟁 속에서 새롭게 기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6)대체권력의 핵심적 특징은 이 코뮨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첫째, 의회-집행권력의 일원적 체계이며 둘째, 직접민주적 통치권력이며 셋째, 자치-자율권력이며 넷째, 자기 스스로 무장한 권력, 다섯째, 생산자들의 자기통치원리이다. 따라서 철저하게 반관료적이며 반대의제적인 질서를 갖는 권력이다.


**)2001년 경실련 전사무총장 서경석․이석연의 문제 제기로 본격화하면서 ‘조선․동아․중앙’이 사회적 이슈화했다. 그리고 이것은 ‘시민운동의 위기’로까지 비화되었다. 다른 하나는 김동춘․조희연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 또는 적․녹 동맹의 논의가 제기되고 이에 대한 반대 논의로 민중연대 전정책 실장 정종권의 비판이 제기되었다. ⇒①; 총선연대 활동과 관련된 합법운동/비폭력저항운동, 정치세력화와 관련된 시민운동단체의 선거 참여 문제, 시민운동 단체의 재정 문제와 관련된 정부․기업으로부터의 보조금 문제. ②;김성구를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의 신자유주의적 성격과 관련된 비판/조희연의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적․녹 동맹/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모두 연합하는 계급 연합 정당 건설이라는 맥락에서 제기되는 김동춘. 이 중에서 ①문제는 경실련의 약화에 따른 주도권 다툼이 논쟁의 발단이 되었는데, 최근 경실련은 자신들을 보수세력이라고 규정함으로서 수구보수로 그들의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참여 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비폭력저항운동-시민운동의 선거참여-정부, 기업 보조금에 대한 거부와 자립 재정을 주장하면서 ‘경실련’과의 입장 차이를 명확히 했다. 반면 ②의 문제는 시민운동의 현재적 정황에서 노동운동과의 관계 정립이 핵심적인 쟁점이다. 따라서 ①은 시민운동 내적 차원의 문제이며 ②는 시민운동 외적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현재 시민운동이 처해 있는 객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민운동의 발전’이 ‘세계화 질서에 따른 시민운동의 재편’에 따른 ‘체제내의 흡수를 통한 발전’이 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체제와의 긴장을 통한 발전’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앙일보 산하에 ‘시민사회연구소’의 결성과 개입, 국가의 시민단체보조금 문제, 그리고 국제적으로 기업들의 시민운동에 대한 재정지원 등의 문제 등은 신자유주의 개혁의 동조자로서 시민 단체를 포섭하려는 움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②의 문제는 시민운동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동반자로서 필연적으로 봉착할 수밖에 없는 노/자 대립의 구심력에 대한 대응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라크파병’과 같이 시민운동의 쁘띠부르주아적 기회주의와 노무현정권의 ‘개혁 블록의 형성은 반신자유주의적 전선 안에서 이와 같은 문제는 다시 재현될 수밖에 없으며 분화는 불가피하다. 특히, 불안정노동층, 절대빈곤층의 확산은 시민운동에 이것을 압박하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종종 공장 밖이라는 이 개념이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또는 사회운동적 조합주의’와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좌파 안에서도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적 조합주의는 시민화되고 탈계급화된 운동이다.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자계급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계급이해집단, 이익단체라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운동적 조합주의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이미 제기해왔던 ‘사회적 조합주의’의 다른 맥락에서 제기되는 동일한 흐름이다. 최근 박태주는 사회운동적 조합주의를 “노동운동이 공장문을 벗어나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개혁투쟁’이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흐름처럼 노동자계급에게 시민과 같은 가치중립적이고 탈계급적인 보편이익을 추구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문제는 ‘정치화’이지 이미 자본의 권력 안에서 형성되고 자본의 물적 토대 위에 자리잡고 있는 사회권력의 동의를 창출하기 위해서 탈계급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즉, 공장 밖에서 반자본의 권력을 창출해 가는 의지와 투쟁을 창출해 가는 것이 현재의 질곡을 탈피하는 핵심이다. 여기서 사회운동적 노동운동과 ‘공장 밖의 대체권력 형성’의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는 자본의 헤게모니하에서 사회권력으로 흡수되는 길이며 후자는 자본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반자본의 대체권력’을 형성하는 길이다. 따라서 핵심적 차이는 ‘사회화’인가 아니면 ‘정치화’인가의 개념적 대별성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이와 같은 논쟁의 지형은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의 지형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하나는 시민운동과 의회주의로의 견인이라고 특징지울 수 있는 ‘사회적 조합주의’, 또는 ‘국민파’, 당-노조의 양날개론이며 다른 하나는 노동계급 중심성과 반의회주의적 경향을 가지는 ‘현장파’ 또는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과 노동자계급정치’ 주창 세력으로의 분화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관점은 졸고, 「사회적 조합주의와 사회-정치적 '세력화', 그리고 '국민정당화」,『현장에서 미래를』, 7월호, 2001. 졸고, 「현단계 노동운동과 노동자계급정치의 임무」, 『현장에서 미래를』 10월호, 2002. 등을 참조할 것. 사회적 조합주의는 김유선,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한 제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사회』 제25호, 1998; 「현 시기 민주노총 목표로 사회주의 내걸어야 하나」, 『노동과 세계』 제37호, 1998. 참조할 것.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김동춘,  「한국노동운동의 진로: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의 위상정립 필요」,『노동사회』5월호, 2001.하고 박태주,  「'전투적 경제주의'에서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주의'로: 발전노조의 투쟁에 대한 평가」, 『창작과 비평』, 여름호, 2002.를 참조할 것. 이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들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와 ‘노동자의 힘’ 등에 실린 글들이다. 박성인, 「노동운동의 방향정립을 위한 모색」, 『노동과 세계』 제36호, 1998; 김세균,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운동」,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편, 『경제위기,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운동』, 도서출판 현장에서 미래를, 1999, 이종호,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하여」, 『진보평론』 13, 2002. 그리고 기관지 『노동자의 힘』 등을 참조할 것.


****)‘노동운동의 정치화와 사회운동의 계급화 또는 적색화’라는 슬로건은 두 가지의 전제를 함축한다. 첫째는 그와 같은 정치화를 구축해 낼 수 있는 전국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의 구축을, 둘째는 제도와 비제도적 영역 양자를 넘나들면서 대체권력을 구축해 가는 조직론을 함축한다. 필자는 이것을 ‘비제도적 투쟁정당’이라고 했으며 이에 대한 논의는 [노동자의 힘] 37-46호에 연재되었던 「남한 변혁운동의 현단계와 '당' 개념, 그리고 당 건설 투쟁」을 참조할 것.


*****) ‘보편적 가치’의 형성에 대한 강조가 ‘계급적 가치’에 대한 우위라는 의미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보편적 가치’를 시민운동분파들은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보편적인 가치를 계급적 가치와 배치되는 것으로 사고하는, 즉 계급=이익단체로 설정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 가치는 오히려 계급적일 때에만 보다 철저해질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본’이 인류공동체의 파괴, 환경․인권․여성․인종차별을 중첩적인 이윤추구로 접합시켜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급적 가치’는 반인륜적이면서 반공동체적인 ‘파괴’를 낳는 ‘자본’에 대항하는, ‘자본’을 넘어서는 ‘반자본’을 함축한다. 여기서 계급적 가치는 그 자체로 인류보편적 가치의 지향과 보편화의 핵심적인 투쟁세력의 가치가 될 수 있으며 본질적으로 계급적일 때 보편적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문제들이 모두 다 계급적 모순으로만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여기에 ‘차이와 연대’의 정신이 필요하고 접합의 다차원적인 전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코뮨’적 정신 하에서 접합될 수 있고 횡적, 종적으로 구축되어갈 수 있는 문제이다.


*1)대기업과 중소사업장,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대립과 갈등은 ‘생존의 덫’에 빠져 있다. 신자유주의가 형성시켜 온 현재의 계급투쟁의 물질적 조건은 분명 계급적 단결과 전국민적 저항을 요구하는 것인 반면 그것의 투쟁 형태는 여전히 ‘단사’와 ‘현장’, ‘노조’ 내적 이해관계,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개별화되고 개인화된 ‘생존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계급’으로서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실에서의 실천과 투쟁은 지배계급의 포섭과 분할 전략을 따라 ‘계급의 해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질적인 조건은 분명 ‘계급적 실천’, ‘계급으로의 통일성’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동운동은 이 물질적 조건을 ‘계급적 투쟁’으로, ‘계급적 실천’으로 바꾸어 놓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좌초시키는 근본적인 원인 중에 하나이다. ‘노동자․민중’들의 ‘생존투쟁’은 그것이 ‘계급’적 실천으로 조직화되지 않는 이상, ‘개별, 개인’의 생존이라는 ‘덫’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화체제구축투쟁에서 시민과 ‘개혁세력’은 하나의 전선으로 결집시킬 수 있다. 이것은 한국의 수구보수가 반북, 반공이라는 양체제의 냉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투쟁의 전술적 전선은 ‘반신자유주의국제투쟁’을 함축한다는 측면에서 시민운동의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으로의 이동 없이 전략적으로 같이 할 수 없다. 따라서 전술적인 ‘평화구축투쟁전선’에서 사회운동의 적색화가 모색되어야 한다. 아울러 북한 노동자들의 자기통치와 자율적 결정이 옹호되어야 하며 ‘반신자유주의적 전선의 구축’이 모색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의미는 그 결집된 표는 한편으로 기간 진행되어 온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대중적 공분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유화’의 사회, 문화적 변동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좌선회’라고 표현하였다.


2004-1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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