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워라. 지금 철도현장은......”
-철도 04년 특별단체교섭 투쟁의 전망과 관련하여
이 철 의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교육국장
1. 파업패배 1년,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나?
“우리의 단결, 우리도 섬뜩했다.”
해고 10년 만에 나는 복직을 했다. 우리를 잊지 않았던 동료들이
있었고, 지부에서는 조촐한 환영식을 해주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기관사에서 부기관사로, 7급에서 8급으로
강등되어 복직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나이가 있어 적응은 쉽지 않았다. 선로를 배우는 것도, 이런
저런 규정도, 처음 타보는 전기 기관차도 모두 새로웠다. 배우면
잊어먹고, 배우면 또 잊어먹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선배라고 대우해주는 후배 기관사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벌써
고문관으로 찍혔을 것이다. 지금은 부기관사로서 그럭저럭 내
밥벌이는 할 만큼 되었다. 여러 가지로 배려해준 선후배
동료들에게 부족한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표한다.
지금 현장은 • • •
“6.28 파업 때는 우리도 섬뜩했지. 정말 이탈자가 하나도 없는
거야. 야! 우리가 이렇게 단결이 잘 되었나? 이런 식이면 우리도
이길 수 있겠네. 누구나 이렇게 생각했지.” 새로 사귄 동갑내기
기관사가 해준 이야기다.
“아 그런데 X팔, 지부장이나 간부들 얼굴이 이상해지더니
본조에서 갑자기 복귀하라는 거야. 파업 결과는 하나도 나온 게
없고, 하다못해 파업한 조합원들 징계문제에 대해 합의한 것도
하나 없고 그냥 무조건 복귀하라는 거야.” “이게 뭐야,
본조에서 파업하라면 난 안해.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며 말릴
거야. 나만 그런 게 아니여. 우리 사무소 승무원들 다 그래.”
“아, X팔, 하려면 확실히 하던가 아니면 때려 치던가....”
03년 파업패배의 원인
03년 6.28 파업은 완강히 진행되었지만 패배했다. 파업 때
분위기는 전에 있었던 세 번의 파업과 확실히 달랐다.
노동자들은 확실히 배수진을 쳤다. “노무현이 하는 게 장난이
아니다. 이번에는 무조건 길게 갈 것 같다.”는 것이 철도
노동자들의 직감이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파업은 무너졌다.
흔들리는 지도부의 분위기는 금방 지방본부를 거쳐 현장 간부들,
노동자들에게 확산되었고 산개한 대오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노무현 정권은 쾌재를 불렀고 자신감을 가졌다. 그리고 찾아오는
허탈함, 패배의식이 1년 동안 노동조합을 짓눌렀다.
도대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어용세력, 그들은 원래부터 계산에 넣지 않는 자들이었다. 파업
때 분열을 획책한 몇몇 기관차 승무 지부장을 비롯한 기회주의
세력들, 그들은 그동안 거듭된 행동으로 이미 가면을 벗어버린
자들이었다. 그러면 대오를 굳건하게 지키지 못한 민주파 전체가
져야 하는가? 그리고 지도부는 약간의 판단착오에다 오류이지,
지도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하지 않은가.
패배 뒤 누군가 그런 식으로 물타기를 시도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 말을 부정하였다.
그런 정도의 문제는 어느 파업대오든 다 가지고 있다.
기회주의자 없는 조직이 무슨 대중조직인가? 그리고 파업을
위로부터 무너뜨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 그런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철도 민주노조 운동에서 새 출발은
없다.”고 잘라 버렸다.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다가(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싸움에서 밀리고(무조건 “선복귀 후대화”를 외치는 노무현
정권의 강공이 먹혔다.) 마침내 스스로에게도 속고만(선복귀하면
피해가 적을 거야.)지도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03년
철도노조 지도부와 같은 유약한 지도부로 승리할 파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패배의 결과는 참혹했다.
“고양이에게 쥐를 먹지 않기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파업패배의 결과는 참혹했다. 지도부는 구속되고 간부들은
79명이 해고되었다. 재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청심사위원회에서
복직한 사람을 뺀 해고자들의 숫자가 그렇다. 조합비는
가압류되고 파업참여 조합원 전원에게 징계를 선언했다. 결국
평조합원들은 경고장을 받는 것으로 그쳤지만 지도부에 대한
불신은 심각했다. 정권과 철도청은 노사평화선언까지 강요했지만
그것은 물리쳤다. 민주세력은 파업평가나 패배원인을 놓고
분열했고 조합원들에게 믿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정부와 철도청의 구조조정 공세가 밀어 닥쳤다.
02년 2.25파업으로 맺은 합의, 03년 4.20교섭으로 확인했던
단체교섭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핵심부서인 기관사,
수송원에게까지 계약직 채용이 밀어 닥쳤고 마침내 철도청은
03년 11월 총 8,446명을 외주화할 방침을 밝히기에 이른다.
그리고 2004년 말까지 총 7,700여명을 외주화하겠다고 발표한다.
이 모두 “철도에서 비정규직은 점차 줄이며 확대하지
않는다.”는 4.20합의를 뒤집은 내용들이다. 그 뿐이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데 상징적으로 합의했던 열차 사무소
여승무원들의 경우는 어떤가? 조합에 파견된 전임자 1명을
빼놓고 모조리 계약직으로 바뀌었으니 규탄하는 사람의 입이
아플 뿐이다. “합의? 우리는 그런 것 모른다. 억울하면 또
파업을 해 보시지.”하고 비아냥거리는 관리자들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 그 계약직 여승무원들은 올해 말로 모두 해고
예정이다. 철도청은 퇴직금, 정규직 채용 부담이 있는 그들을
모조리 자르고 파견직으로 바꿀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합원들은 민주파를 선택했다.
04년은 노동조합 정기 총선거가 있는 해, 예상대로 세 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그렇게 무대뽀로 투쟁할 시기는 지났다.
노동조합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나는 정규직의 고용은 확실히
지키겠다. 그리고 대화할 때는 확실히 하고, 조합원들에게는
실리를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후보. 큰 파업이
깨지고 나면 언제나 이런 사람이 등장한다. 투쟁이 실패한 뒤
서울 지하철이든 한국통신이든 이런 인물이 노동조합을
장악했다. “6.28파업 패배는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에 따른
오류이다. 역관계를 반영한 것이고 따라서 지도부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는 집행부측 후보, 그는 과거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철도청 측 토론자를 압도해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인물이다. “무슨 소리, 지도부는 투쟁을 배신했다.
배신하지 않는 확실한 지도부를 세우자. 현장에서 노동하며
운동에 복무했던 사람을 찍어 달라.”고 호소했던 이른바
현장후보. 나는 개인적으로 이 후보의 선거 운동원이었다.
그러나 민주파끼리 결선에 오르기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조합원들은 우리를 뺀 두 명을 결선후보로 선택했다.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집행부측 후보를 지지했고 결국 근소한 차이로
그가 당선되었다. 어쨌든 우리는 2000년 직선제 투쟁을 함께
했고, 때로는 서로 비판했으며, 6.28뒤에는 직대 집행부에서
함께 활동한 사이였다.
나는 아직도 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을 정확히 찾지 못하였다.
현장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전체적으로
전투적인 운동노선이 퇴조하고 있었다는 점, 선거나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지부장들의 세에서 절대적으로 밀렸다는
점을 패배원인으로 꼽고 싶다.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서울 지방본부 선거에서 민주파끼리
경선을 벌였는데 생각보다 표 차이를 벌리며 당선되었다. 위원장
선거에서도 서울 지역은 1등을 했기 때문에 이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악의 상황에서 민주파가 이긴 것은 철도운동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노조 민주화 투쟁에서 갖은 고생을 했던 간부들과
노동자들이 그렇게 쉽사리 집행부를 내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세운 집행부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예상이다.
2. 곡절 끝에 또다시 파업을 거론하다.
04년 궤도 공투와 철도
궤도 공투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나는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파업에서 파괴력이 없이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투지가 부족한 지도부를 가지고 이길
수 있는 파업은 없다.”는 것이다. 철도를 제외한 모든 궤도
사업장이 공동투쟁을 벌였지만 그 어느 도시도 지하철이 멈추지
않았다. 멈추기는커녕 혼잡도를 느낄 수도 없었다. 도로교통도
마찬가지였다. 궤도는 물론이고 도로교통에도 많은 타격을
주었던 94년 전지협 파업에 비추어 그 파괴력은 미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파업으로 타격을 주지 못하면 공격적인 전술로
격렬히 대치하는 국면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였다.
파업복귀선언과 동시에 대열이 무너진 것은 03년 철도파업의
재판이었다.
철도는 원래 5월에 치를 선거를 3월에 치렀다. 조기에
조직정비를 마치고 올해 임투전선에 따라붙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철도노조의 행보는 거북이같이 느리기 짝이 없었다.
궤도공투와 철도노조는 분리되었고 공투에서 철도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너지는 공투를 보며 자괴감을 곱씹을
뿐이었다.
구조조정 공세는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그 사이에도 철도청의 구조조정 공세는 지속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검수주기 조정이란 차량정비기간을 늘려서 사람을
줄이는 방법이다. 기관사들의 쉴 시간을 줄여서 사업시간을
줄이고 그것으로 사람을 줄인다. 그 결과 목포에 간 KTX
기장(기관사)은 40분정도 쉬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
개집표를 없애는 일, 그 대신 “정거장에서 커피 자판기를
관리하던지, 하다못해 아이스크림이라도 팔아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중정비는 자회사(코레일 엔지니어링)이나
로템(차량 제작사)로 시험 삼아 넘기고 있다. 신호는 1인 주재
폐지후 기동정비를 하라고 한다.
그 숱한 계획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주 5일제에 필요한
인력 8,938명중 2,000여명만 늘리고 나머지는 감원, 외주,
자회사 등으로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것은 뻔한 일,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정규직이 고용불안에 시달릴 것도 이미 정해진 길이다.
조합원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흔들리나? 그래도
노동조합을 믿고 싸워야 한다는 생각, 노동조합보다 개인적으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엇갈리며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어쨌든 철도를 분할 민영화하고 철도 공사는 껍데기만
남겨두려던 철도사업법의 국회 상정은 일단 연기되었다. 9월
10일 조합원 400명이 급히 집결하여 건교부와 열린 우리당의
철도사업법 입법방침을 규탄하였는데 10월 16일의 운수연대
투쟁결의대회에는 2,500여명의 철도 노동자들이(철도노조 집계)
모인 것이다. 철도 노동자들이 그들의 처지와 신분을 그만큼
불안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라 할 것이다.
정부와 철도청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나?
노동조합이 조직력을 잃었을 때, 그리고 정권과 자본의 공격에
맞서 싸우겠다는 투지를 잃었을 때 합의사항은 휴지조각이 된다.
나는 그동안 몇 번의 파업을 통해서 그것을 깨달았다. 88년 파업
뒤 당시 교통부는 이른바 ‘기관차 승무원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벌였다. 철도 노동자들의 상태가 최악이라는 점은
이미 충분히 밝혀졌고, 제도언론조차 개선하지 않으면 다시
파업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휴일을 주겠다.
근로기준법을 지키겠다. 승진을 확대하겠다.”는 교통부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 시간이 지나고
철도파업이 기억에서 사라질 무렵 그 발표도 흐지부지되었다.
94년 철도, 서울 및 부산지하철 노조가 모인 전지협이 파업으로
향해 치달을 때 철도노조와 철도청간의 특별단체교섭이
이루어졌다. “전기협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은 수용되었다.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할 것”이라는 철도청장의 발표가 있었지만 그
역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02년 2.25파업, 03년 4,20합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직도 교섭결과에 목을 매며
“파업위협으로 교섭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간부들”이
철도노조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딱할 뿐이다.
1년 1조 5천억 원이 적자라는데, 그래서 자구노력을 하라고
한다.
철도가 국영이 아니었다면 벌써 경영권이 넘어갔을 것이다.
화의신청이든 파산선고든 어쨌든 사단이 벌어지고 노동자들은
대규모로 정리해고를 당하였을 것이다.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공무원 신분은 철밥통이다. 철도 노동자들도 그 점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
2004년, 철도는 대략 6천억 원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2004년
철도 예상적자는 물경 1조 5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 한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철도공사 출범 원년인 2005년 6조원, 2010년
14조원, 2020년 36조원의 부채가 쌓인다고 한다. 그래서 철도
노동자들은 사기가 꺾여 있다. 철도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세계
2위인데도(김세호 전 철도청장의 말이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철도 노동자들이 어떤 조건에서
일을 해왔는지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나? 불과 몇 년 안에
파산할 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언론보도가 철도 노동자들에게 호의적일 리가 없다. 그에 따른
정권, 자본 및 언론의 압력과 그에 따른 철도청의 자구노력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면 답은 나와 있는 셈이다. 외주,
비정규직 확대 등 구조조정 공격은 이미 정해진 길인데
철도노조는 어떤 판단을 하고 있을까?
3. 조합은 총파업을 통한 총력투쟁을 결정하였다.
“총파업을 통한 총력투쟁?”
철도노조의 투쟁방침은 “총파업을 통한 총력투쟁”이다. 나는
지금까지 정세를 거슬러 오르며 투쟁해왔던 철도노조 운동이
진정한 위기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바깥쪽이 어떻든 철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전투적인 투쟁을 계속해
왔는데 그 흐름이 결정적으로 꺾이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직선제 투쟁은 파업에 버금가는 탄압 속에서 진행되었다. 2002년
철도 노동자들은 주저하는 지도부를 앞세우며 파업을 감행했다.
2003년 4월, 6월 철도 노동자들은 연이은 파업을 선택했다.
아직도 철도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것이 04년 선거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이라니....”
철도노조에서 제출한 투쟁계획을 일일이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 그 계획은 최근 몇 년간 민주노총의 투쟁계획을 꼭 빼어
닮았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파업을 최후의 선택으로 놓고,
그것을 무기로 해서 교섭력을 강화한다. 정부에서 태도가
불량하면 파업을 할 수도 있는데 정부는 정말 그것을
원하느냐?”는 것이다. 올해는 다른 해와 달라서 철도
노동자들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나는 이런 식의
투쟁방침으로 철도 노동자들에게 파업투쟁을 각오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총파업을 기정사실로 놓고 파업을 조직해도 문제가 있는데 이런
식의 각오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
위력적인 파업을 준비하면 정부는 시간을 벌고자 할 것이다.
“그래, 그래 들어줄게. 그러니까 일단 파업비상을 풀고....”
그랬다가 우리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정부는 우리의 뒷통수를
치고자 할 것이다. 요즘 노조간부치고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화물, 택시하고 진행하는 연대투쟁은 어떤 그림?
10월 16일 대략 1만 명의 노동자가 여의도에 모였다. 화물,
택시, 철도가 연대투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 세조직의
연대투쟁이라면 이런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강부문의 수송에서 철도파업은 타격을 줄 것이다.
수출화물에서 철도와 화물이 묶인다면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화물쪽 수출화물(콘테이너 위수탁)의 조직상태가 좋지
않다고 들었지만 철도와 공동투쟁을 하겠다고 조직하면 회복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시멘트 수송에서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건설경기가 좋지 않다고 하지만 철도와
화물이 묶이면 시멘트는 올스톱이다. 원료든 완제품이든. 그 외
위험품(황산, 질산, 화약을 막론하고)에서 개별자본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파업하면 투입해야 하는
경찰도 역부족이 될 것이다. 대오를 적절히 운용하기만 하면,
아니 무식한 방법으로 “파업하는 우리들을 모조리
잡아가라.”고 배를 내밀어도 연행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을 잡아다 어디다 수용하나? 밥은 어떻게 먹이고,
조사는 어떻게 할 것이며, 최소한 의 물리적인 저항만 하더라도
연행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러면 택시는 무엇을 하나? 택시는 파업하면 개인택시하고
자가용 운전자들만 더 좋아한다고 하니까 모든 차량을 끌고
도로로 나오면 될 것이다. 그러면 고속도로도 막히고 간선도로도
막히고 무엇보다 수도권의 교통이 사실상 마비될 것이다.
국철에서 맡고 있는 1호선 전철의 위력은 사실상 도시철도나
서울 지하철을 합친 위력보다 더 큰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
특전사를 불러다 전철운전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평소 꿈꾸던 운수산업의 파업투쟁이다. 항공이나
버스, 항만이나 선원을 포함하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철도,
화물 공동투쟁의 위력은 이다지 큰 것이다.
공동투쟁은 희망사항인가?
세조직은 아직도 공동파업의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다.
공동파업은 커녕 철도 단독파업의 밑그림도 그리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공동투쟁을 하려면 대개 세 가지 정도 전제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세조직이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고, 또 각자가 그렇게 확신해야 한다. 둘째는 세조직의
지도부 간에 믿음이 있어, 절대로 개별타결하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게 되지 않으면 공동투쟁이
위력적인만큼 집요하고도 과감한(어느 하나의 조직에 파격적인
양보안을 던지는) 정권과 자본의 분리공작에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꾸로 공동투쟁이 우리 조직의 교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내고, 바로 그것을 위해 공동투쟁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소문에 어두운 나까지 세조직이 서로 믿지 않는다고 들었다.
나는 이미 94년에 충분히 경험했다. 공동투쟁이 아니라 철도
단독파업이라 하더라도 어떤 밀사들이 서로 오가는지,
물밑교섭을 만들기 위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 과정에서
심지어 민주노조 운동의 최고 지도부까지 어떤 태도를
보여주는지 하기 싫은 경험을 충분히 하였다.
더구나 지금은 민주노조 운동에서 유력한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
노정권에 들어가 있지 않나? 철도파업에 대한 적응력은 정권은
물론이고 철도청도 충분한 경험과 교훈을 가지고 있다. 정권과
자본은 냉정하기만 하고(그 판단이), 과감하고(03년 6.28때 파업
세시간만에 경찰을 투입했던 연세대를 잊었나?),
총단결하고(열린 우리당하고 한나라당 사이에 그리고 언론까지),
충분히 대비하는데(대체인력의 투입) 우리는 왜 이렇게
순진하기만 할까?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인지.
4. 안개 자욱한 투쟁전망
환절기에는 안개가 낀다.
요즘 중앙선에는 안개가 많이 낀다. 불과 50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눈을 부릅뜨고 달리다보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철도 기관사들은 안개가 끼어도 정시운전을 하고,
안개가 끼어도 전열차가 차질 없이 운행된다. 그래도 열차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면 열차는
최소한의 안전한 거리에서 비상정차를 하게 된다.(물론 예외도
있지만, 예를 들어 갑자기 신호가 바뀌거나 진로가 바뀌면
그대로 대형사고이다.)
철도노조의 투쟁전망도 그야말로 안개 속이다. 투쟁이란 게
속성이 그런 것이지만 갈수록 더 알 수 없는 게 요즘 철도투쟁의
지도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최선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 총력으로 매진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투쟁이다. 상대가 있는 투쟁이고. 노동자의 투쟁이 대부분
불리한 조건에서 벌어지고, 그래서 충분히 준비해도 각각의
국면에서 최선의 판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파업을 한달이나 불과 40여 일 앞둔 (물론 교섭이 잘
안되면 간다는 것이지만, 그 시기도 확정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추정하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시기도 그렇고, 파고를 높이기
위한 준법투쟁 방침도 그렇고, 연대투쟁 방침도 그렇고 그야말로
안개정국이다.
나는 간부이고 대중교육을 맡고 있는 교육담당이라서 어려운
일이 많다. 투쟁전망을 묻는 간부나 조합원들에 대하여 확신을
말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 파업을 가는 겁니까? 가면 이길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까지도 간부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어떡합니까? 좀
속시원하게 말해 주셔야지.” “........ 죄송합니다.”
5.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이틀 동안 원고를 쓰는 사이에 서울 지방본부 주최의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를 마친 심정은 우울하다. 그리고 답답하다. 그
사이, 조합에서는 전부터 파업을 반대하거나 투쟁을 파괴해온
것으로 확인된 간부들 두 명을 끌어 올렸다고 한다. 도대체
어쩌자는 일인지. 이제라도 투쟁을 조직하기로 하면 아직도
여지는 있는데, 부족하나마 시간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정말
작아 보인다. 솔직하게 말해 그동안 “조합원을 조직해서
지도부에게 힘을 주고, 그것으로 해서 투쟁으로 나아간다.”는
실천에 지친 것일까? 모르겠다. 하여간 경험이 많다는 나부터
그렇고 젊은 간부들도 신명이 나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파업을 도대체 왜 하는가? 왜 우리는 모든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고 싸워야 하는 것일까? 다행히 시기가 좋아서 투쟁도
잘하고, 노동조건도 개선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있겠는가?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투쟁이 얼마나 되는 것인지,
더구나 개선을 위해 공세를 취하던 이전과 달리, IMF 뒤 자본의
전방위적인 공격에 밀리기만 하는 지금은 그런 게 가능한
것인지?
나는 지금 국면의 투쟁을 “저항할 것이냐? 아니면 투항할
것이냐?” “저항하게 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을 인정하게 할
것이냐?”하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굳이 한마디
덧붙이자면 “노동자들을 노예로 만들어 개별적으로 생존하게 할
것이냐? 연대하고 단결해서 저항하게 할 것이냐?”라고
생각한다. 그런 차이가 지금 철도뿐 아니라 전체 민주노조
운동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현상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좀더 객관적인 사정을 알고 싶으신 독자들은 뒤에
자료로 첨부한 “04년 특단협 투쟁방침에 대한 서울 지방본부의
의견‘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 자료는 10월 16일
서울지방본부 주최 토론회에서 제출했던 발제문이자
의견서입니다.
.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