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노동자가 쓰는 노동운동사 5
“어용노조를 뒤집자!”
정병모 / 조선소 노동자
13. 조직부장 이진우
정말 큰일이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상부 단체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금속노련의 승인이 있어야한다고 알고 있었던 우리로서는 하늘이
노래졌다.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봤지만 달리 뾰족한 수는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를 찾아온 현대엔진노조 사람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는지 한숨만 푹푹 내쉬더니 고심 끝에 제안을 하나
한다.
조직부장 이진우가 울산에 온 것이 틀림없고 현대중공업에
노동조합을 만들러 온 것이 틀림없으니 찾으러 나서자고
한다.
한강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자는 것과 다름없는 허황한
얘기에도 귀가 곤두섰다.
이대로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에도 매달린다는데, 별 다른 방법이
없는 우리로서는 서울에서 김 서방을 찾는 것 같은 심정으로
조직부장 이진우를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조직부장 이진우를 찾아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계산도 없이
어두운 밤거리로 패를 나눠 찾으러 갔다.
나와 같이 찾으러 간 사람은 현대엔진노조의 고세흥이란 젊은
친구였는데, 동작도 민첩하고 아는 곳도 많아서 난 정신없이
따라 다녔다.
처음 찾아간 곳은 시청부근에 있는 무슨 ‘장’ 여관이었는데,
자기들이 이진우를 여러 번 만났던 곳인데 그곳에 가면 최소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워낙 경황이 없던 탓에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밤
열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밤늦은 시간 여관에 가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관에 들어가니 일하는 아줌마가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이런이런 사람을 찾아 왔다고 하니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아줌마 표정을 보니 알면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았다.
미심쩍은 마음에 여러 번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하긴 누구더라도 낯선 사람이 밤늦게 불쑥 찾아와서 사람을
찾으면, 가르쳐 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질 여유는 우리는 없었다.
울산 시내를 헤매면서 여관을 몇 군데를 돌아 다녔는지
모른다.
더 이상 찾아다닐 곳도, 찾아다닐 힘도 없을 만큼 헤맸는데도
조직부장 이진우를 찾을 수도 없고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하니
힘이 쫙 빠졌다.
우리가 대충 찾아다닌 것도 아닌데 흔적조차 알 수 없으니
허탈해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고세흥이 어딘가에 전화를 해보더니 태화로터리
부근에 있는 태화호텔로 가자고 한다.
우리와 따로 떨어져서 찾던 다른 팀에게 연락을 한 모양인데,
그쪽 역시 찾지 못한 모양이고 태화호텔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가자고 한다.
울산시내에 있는 큰 여관을 거의 다 뒤졌는데도 찾지 못했으니
마지막 남은 태화호텔로 가면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할 수
있으니 가잰다.
87년 그 당시에는 울산에 변변한 호텔이 거의 없었는데
태화호텔은 2류급 호텔로서 그런대로 괜찮은 호텔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호텔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러 다니는 것을 보긴
봤어도, 신혼여행 때 호텔에 가보았을 뿐인 나로선 생소한
장소였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태화호텔은 늦은 시간이라 그랬는지 한가했다.
커피숍은 때늦은 손님 한둘만 있을 뿐 파장분위기가 역력했고
불도 하나둘 끄고 영업을 마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긴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 손님이 많은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커피 마시러 다닐 시간이 아니라 편하게 잠잘 시간이었다.
호텔 카운터에 가서 정중히 물어봤다.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을 찾는데 급히 만나야 할 일이 있어
찾아왔다. 그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온 것이고 지금
만나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오늘 꼭 만나야 하니 손님 중에
이진우라는 사람 있는지 확인 좀 해주십시오.’
적당히 거짓말을 둘러대면서 이진우라는 사람을 찾아봐주길
부탁했지만 호텔에서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알 수는 있지만 손님을 확인해 줄 수도 없고, 손님이 확인해 준
것이 없기 때문에 가르쳐 줄 수 없단다. 몇 번을 통사정하며
물었으나 끝끝내 듣고 싶은 대답을 듣지 못하고 태화호텔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찾아다니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진우가 일을 하러 왔다면 벌써 노동조합을 만들어졌을 것이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못 찾은 것이라고 편안한 생각을 하기로
했다.
체념을 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엔진사람들과 헤어져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다. 학원에는 아직 몇
사람이 남아 있었다.
사람을 찾아 나선 우리를 기다리다 대부분의 사람은 집으로
갔지만, 워낙 중요한 일이 생긴 탓에 애가 타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밤늦도록 우리를 위해 애를 쓴 엔진사람들이 참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솔직히 표현하면 난 원망하는
맘이 더 컸다.
우리는, 더 정확히 말하면 나와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애쓰던 팀원들은 그동안 현대중공업에 있는 모든 조직을 한곳에
모을 수 있도록 여러 차례 도와달라고 했지만 현대엔진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무 곳이나 먼저 노동조합을 만들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에 모아주지 않았던 그들이 야속했다. 그나저나 다
끝난 일을 원망하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 우선되어야
했다.
하지만 허탈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잠도 제대로 안자고 열심히
준비 했는데 문전에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일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지금 새벽이니 오늘 회사에
출근하면 알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우리도 헤어지기로
했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 결성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은커녕 정신만 더 번쩍 들었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6월 항쟁에 참여하여 거리를 쏘다니던 일, 현대그룹에서 첫
번째로 현대엔진노동조합을 만든 얘기를 듣고서 현대중공업에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울산노동상담소를 찾아가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노동조합을 준비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불현듯 우리가 오늘 찾아다닌 일도 부질없는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났다.
혹시 오늘 누군지 모르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면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회사에서 꼭두각시를 내세워 노동조합을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고 있던 순수한 현장사람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현대엔진 사람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현장사람들이 넓디넓은 현대중공업에 없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다면 참 다행한 일인데.
그 또한 내일 회사에 출근하면 자연스레 알아질 일이었다.
굳이 안 오는 잠을 자려고 애쓸 일 아니라, 출근하면 벌어질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더 급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출근했다.
회사 정문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자전거는 홍수를 이루며 출근길을 메우고 있었고 부스스 잠이 덜
깬 얼굴로 정문을 들어서다 경비대를 보고 흠칫 놀라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사람들도 여전했다.
정문을 바로 앞에 두고 서성이며 몇 분을 지켜봤지만 달라진
상황은 아무 것도 없었다.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탈의실에서도 작업자들의 표정에서 아무
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공장은 그 날도 쌩쌩 잘 돌아갔다. 쉬는 시간에 오가는 잡담도
여전했다.
한번쯤은, 한명정도는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당연히 노동조합에 대한 얘기가 나올 법도 했는데
아무도 노동조합에 관련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알면서 시침을 떼는 것은 아니었고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밤새 염려하던 일이 공연히 고생을 사서 한 기우였나? 일하는
틈틈이 귀를 곧추세우고 뭔 얘기라도 들으려했지만 새로운 애긴
없었다.
점심밥을 먹으려 식당에 올라갔다.
식당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오전의 힘든 노동을
마친 노동자들은 1분이라도 먼저 밥을 먹기 위해 달리기를 하고
은근슬쩍 새치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날 먹은 술 탓에 아침밥을 거르고 왔거나, 힘든 일을 하고
나면 배가 고팠기 때문에 먼저 먹기 위해 달려가듯 쫓아가 줄을
서는 것이 그 당시의 풍경이었다.
잠시라도 멈칫거리거나 여유를 부렸다가 밥을 먹고 나면 바로
일하러 가야 할 만큼 늦어지기 때문에 밥 먹는 것도 전쟁이었다.
휴식공간이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밥을 먹고 난 노동자들은
여기저기 철판에 널브러져 귀중한 자투리 잠을 자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휴식을 취했다.
잠시라도 쉬려면 밥을 일찍 먹어야 했고 12시 ‘땡’ 하기 전에
뛰어가서 줄을 일찍 서야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늘어나는 사람만큼 식당의 숫자가 많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생기는 일이었지만 회사는 식당을 늘리기는커녕 식당 부근을
지키는 관리자를 배치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지금은 개선되어 전혀 없지만 그 당시 식당 풍경은 사람에 대한
차별이 눈에 띨 만큼 있었고 그것이 현장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불만의 하나였다.
현장노동자와 사무실 노동자를 대하는 식당 아줌마들의 태도도
달랐고, 회사임원들은 밥 먹는 곳도 달랐다. 임원들은 식당에서
여사원들이 타다 주는 밥을 먹었고 나오는 반찬도 우리와 다르게
나왔다. 임원들이 밥을 먹는다는 식당에는 가본 적이 없으니
그런 눈꼴사나운 꼴을 보지 못했으나, 현장사람과 대다수 사무실
노동자들이 같이 사용하는 식당에서는 마음 상할 때가 참
많았다.
무슨 못볼 꼴을 본 마냥 깔끔 떨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것이 지금처럼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들고나는 사람이 많았다. 힘든 일에 비해 대우도 형편없었기에
하루살이 마냥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현장에 일을 하려면 여러 가지 공기구들이
필요한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공구가 쇠를 갈아 다듬는
그라인더였다.
직종에 따라 노동자들이 그라인더를 지급받아 사용하는데 일을
그만두고 가려면 공기구를 반납해야 했다. 공기구가 없어지면
월급이나 퇴직금에서 그것을 제하고 준다고 알고 있었기에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식당에도 공구를 갖고 오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기름때 절은 공기구를 둘러멘 그 모양이 사무실
노동자에는 별로였던 모양이다.
특히나 사무실 여성노동자들은 식당에서 남성노동자를 만나면
행여 기름이나 먼지가 묻을세라 전전긍긍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철판의 녹을 방지하기 위해 칠을 한 자주색 페인트가 벗겨지며
묻고 거무칙칙한 쇳가루먼지 묻은 작업복노동자들을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빨리 간다고 간 식당이었지만 늘어 선 줄이 길어 한참을
기다려야 했는데 자세히 보니 나오는 사람마다 유인물을
읽으면서 나오고 있다.
아니 무슨 유인물이지. 밥을 받아들고 앉을 곳을 찾으며
살펴보니 사람들이 유인물을 갖고 오는 곳이 눈에 띈다.
빈자리에 밥을 갖다놓고 얼른 쫒아갔더니 유인물이 한
곳에 수북이 쌓여있다.
큰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경 ‘현대중공업(주) 노동조합 결성’ 축 이라고 된
유인물이다.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라고...’ 할 일이라며 자화자찬으로
시작된 유인물에서는 지난 21일 시내 모처에서 51명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위원장에 권오성이가 선출되었다는 것과
모두 5명으로 임원진을 구성하였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랬구나. 결국 어저께 저녁에 결국 노동조합을 만들었구나.
밤새 찾으러 돌아다녔던 이진우와 함께 만들었구나.
기쁜 마음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갈망하던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데 내 마음은 왜 이럴까? 누가 만들었으면 어떤가.
현장노동자들의 고충과 근로조건을 개선시키고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면 기뻐해야 할 텐데 내
마음이 왜 이럴까?
14. 초대 위원장 권오성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는 않았다. 오히려 현장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아니 체념하는 분위기였다고 할까.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위원장에 선출되었다는 권오성씨를 비롯한 임원진들의 면면을
보고서 대뜸 회사가 꼭두각시를 내세워 어용노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가 바라던 노동조합이 만들어 진것이 아니라, 회사가 먼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허탈감에 사람들이 맥이 빠진
모양이었다.
그동안 모두 말은 안했지만 우리도 누군가 나서서 노동조합을
만들 것이고, 만들어 진다면 노동조합을 통해서 우리의
노동조건이 후생복지가 나아질 것이란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허물어지자 허탈한 모양이었다.
누가 말해준 사람도 없었지만 현장사람들은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의 임원진에 선출되었다는 그들에 대해
시시콜콜 다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노사협의회위원을 지내며 회사의 입맛에
맞는 활동을 해왔고, 그 대가로 회사가 관리하는 목욕탕과
이발소 등의 수익사업을 운영하며 이익을 챙겨온 그들이, 결코
우리를 대표할 수 없을 것이란 점을 알고 있었다.
현장사람들이 그들이 우리를 대표할 수 없는 어용노조라는 것을
확신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현대엔진노동조합결성에서
봤듯이 회사의 감시와 견제가 노동조합의 결성을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 결성을 알리는 유인물을 회사에 있는 모든
식당에 동시에 골고루 갖다 두려면 회사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유인물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없는데도 아무런 제지도 없이 식당에 그대로 있었고, 그 때문에
회사가 만들어낸 어용노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백만 평이 넘는다는 넓은 회사에 수십 개의 식당에 동시에
유인물을 배달하려면, 지금도 서너 시간을 차로 돌면서 나눠줘도
빠듯한, 땀나는 일이다.
하루 종일 생각을 해봐도 대답은 같았다.
어용노조를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가슴만 답답해졌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어림없다’는
현대그룹의 경영방침이 바뀐 것도 아닌데. 우리가 바라던
노동조합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우리 노동자의 의지와 상관없는 어용노조가
만들어졌는데 그대로 인정하고 막연하게 기다릴 수도 없었다.
별별 생각이 다 났다. 어용노조라고는 하지만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으니 그곳에 가입하고 그곳에서 조직을 바꾸면 어떤가
하는 생각도 났지만, 그건 정답이 아닌 것 같았다.
그곳에 들어가서 바꿀 수 있다면 들어가는 것도 괜찮은데. 과연
우리 능력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가입이나 받아줄까?
별다른 뾰족한 묘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동지들이 보고 싶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동조합 결성을 함께 준비해오던 동지들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들을 만나면 뭔가 뚜렷한 해법이 나올 것 같았다.
매일 만나던 우리 아지트에는 평소와 같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얼굴 표정을 보니 모두들 침통한 표정이다. 모두들 하루 종일
마음고생이 많았는지 말수도 적어졌다. 저녁밥도 먹지 않은 채
기다리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각자 현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오는 얘기는 거의 비슷했다.
현장사람들은 어제 만들었다는 노동조합은 어용노조라고 생각해
실망하고 있다는 얘기가 가장 많았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
중에서도 이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으니 우리 모임도 그만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허 참나. 맥 빠지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들은 내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을 나무랄 대안이
없는 탓에 천정만 쳐다봤다.
예상하지 못한 얘기에, 서로에 대한 실망이 너무 큰 탓인지
대안이 없는 탓인지 모두의 말은 점점 작아졌다.
긴 침묵이 흘렀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조성훈씨였다.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한 것은 현장에서 불합리한
대우와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고 노동조합을 통해
우리가 빼앗겼던 권리를 되찾으려는 것인데, 어용노조가
만들어졌다고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뒤를 이어 공무부에서 일하던 동지도 얘기를 한다.
“모두들 현장에서 어용노조가 만들어졌다고 탄식을 한다고
해놓고, 노동조합을 준비하던 우리가 이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안 되는 일입니다. 뭔가 대책을 마련해봅시다.”
여기저기서 참았던 얘기들이 터져 나왔다.
뚜렷한 대안은 없었지만 모두들 여기에서 물러날 수는 없다고
한마디씩 하면서 분위기는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뒤집기
자연스레 모든 사람들의 얘기가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현재의 어용노조를 인정할 수는 없으니 돌파구를 찾기 위해
우리가 뭔가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것으로 얘기가 흘러갔다.
가만히 있자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진실을 밝힐 수 없으니 몸으로 돌파구를
찾자고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지체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결정된 사실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긴 시간을 이야기한 끝에 우리가 노조결성을 하려고 했던 7월
24일에 맞추어 뒤집기를 하자고 결론이 났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 결의를 다시 모을 필요가 있었다.
오늘 우리 모두가 결론을 낸 것에 대한 동의를 묻고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빠져도 좋다는 얘기를 했지만 아무도
빠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어용노조가 결성되었다는 얘기를 듣고서 처음 모였을 때의
나약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결의에 찬 동지들을 보면서
서로서로 힘을 얻어 가고 있었다.
조직에 대한 점검도 다시 했다.
전체 동원 가능한 인원을 최대한 동원해서 전체의 결의를 모을
필요가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내일 회사에 가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오기로 했다.
내일은 노동조합을 준비해오던 사람만 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점검했던 모든 사람을 모아서 우리 아지트인 학원에서 결의를
다지기로 했다.
시간은 하루 밖에 없었다. 내일 점검하고 다음날에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정신없이 바빴지만 마음은 평온해졌다.
두려움은 없었다.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보다 못하랴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서둘러 역할을 다시 정하고 맡은 일을 분담한 뒤 헤어졌다.
사람들이 다 돌아간 뒤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수만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일이 잘못되면 끌려가서 겪을
고초는 겁이 나지 않았지만, 내가 맡은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얘기할 때는 몰랐는데 동지들이 돌아간 뒤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현장은 늘 그대로였다.
아무 일 없었던 모양으로 다들 제 할 일만 묵묵히 하고
있었다.
난 달랐다. 회사에 갔으나 마음이 콩밭에 가 있기 때문인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사전에 얘기해두었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체 상황에 대한 얘기만
하고 저녁에 모이자고 했다.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선선히 그러마하고 대답한다.
퇴근 후 같이 모여 학원으로 가기로 약속을 했다.
위치를 잘 아는 사람들은 혼자서 찾아오겠다고 한다.
안심이 된다. 염려했던 일이 술술 풀리니 어제 저녁 그렇게 속
끓이던 짓이 얼마나 부질없던 일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절로 난다.
이렇게 하면 될 일을, 걱정만 하고 있던 내가 바보였다.
저녁이 되어 학원에 먼저 갔다.
오늘 올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에, 일을 마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갔다.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과연 얼마만큼 사람들이 모일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서 그런지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사전에 노조결성을 준비를 하던 사람들을 따로 모아 점검을
했지만, 얼마만큼 모일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걱정스런 마음은
다 같았다.
그런데 그런 염려는 쉬 사라졌다. 뒤 늦긴 했지만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하나둘 모여들었고 50여명 가량 모였다. 온다고
약속을 했던 사람들 몇몇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저절로 힘이 났다.
처음으로 전체가 모이다보니 누가 누군지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뿐이라 그런지 아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서로들 서먹하긴 했지만 학원에는 활기가 생겼다.
늦은 시간에도 온다는 사람이 있어서 회의를 늦추다가 올만큼
왔다고 생각해서 전체회의를 시작했다. 첫 번째 하는 전체회의라
그런지 다들 숨죽여 쳐다보고 있다.
처음부터 준비해온 우리 모두가 나가서 인사를 했다.
일하는 사업부도 설명하고 하는 일도 설명하고, 같이 온
사람들도 서로 소개했다.
전체에 대한 소개가 끝난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상황을 공유를 하기 위해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하였다.
노동조합을 준비해온 과정과 엊그제 어용노조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밤새 찾아다닌 얘기며 어용노조가 만들어지고, 어제 모여서
우리가 대응해야 할 일에 대해 회의를 했던 내용을 설명했다. 또
현대엔진노동조합과의 연락관계며 현장내의 다른 조직의 동향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거린다.
한참을 망설이다 어제 저녁에 결정한 주요 내용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노동조합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전체를 상황을 따져보면 알 수 있는데, 어제 만들었다는
노동조합은 어용노조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나서서 어용노조에 대한 실상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기로
결정했다.”
모두들 숨죽여 듣고 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다. 개처럼
끌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 생각과 같다고 생각한다. 겁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결정한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싫은 사람은 지금 가도 좋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말을 멈추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린 내일 점심때를 기해서 어용노조의 실상을 알리는
홍보물을 뿌리면서 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현장에서
노동조합을 준비해오던 여러 조직이 있지만 함께 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우리 혼자 하기로 했다.”
사방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다시 말을 이었다.
“내일 12시, 조선사업부 선각 식당에서 행동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사전에 미리 가서 흩어져 있다가 신호를 하면 사방에서
모여들어 홍보물을 뿌리고,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운동장으로 가서 회사를 상대로 어용노조를 퇴진시킬
생각이다.”
말을 마치고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두려움 반 기대 반 하는
표정이다.
더 자세한 설명을 했다.
“플랭카드를 갖고 가면 좋은데 부피가 커서 어려우니 최대한
우리의 생각을 알리는 홍보물을 만들고, 그것을 뿌리면서 큰
소리로 어용노조 물러가라고 고함을 지른다.
혹시 잘못되어 앞에 나섰던 사람이 끌려가는 경우가 생기면
함부로 나서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고 도망가야 한다.
신호는 ‘어용노조 물러가라’로 정했고 내가 하기로 했다. 전체
조합원들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현장 여론은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용기를 내서 결정한대로 한다면 반드시
우리의 힘으로 어용노조를 물리칠 수 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이곳저곳에서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
쏟아진다.
준비를 해오던 여러 사람들이 나서서 쏟아지는 궁금증에 대한
설명을 했지만, 사실 내일 벌어지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러 가지를 다시 확인하고 서로의 역할을 점검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아갔다.
몇몇은 남아 마지막 남은 일을 점검하였고, 난 생애 첫 홍보물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