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혁 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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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 • •
(2) 전라도의 산과 물이 시작되는 곳
전라도로 가는 길은 많다. 북쪽에서 호남선 철도,
호남고속도로나 서해안고속도로, 1번 국도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고, 동쪽에서 경전선 혹은 육십년(장수-함양),
팔량치(장수-남원)를, 서남방향에서 배를 타고도 들어갈 수
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과 취향이 다르고 자신을 발견하는
때와 계기가 다르듯 어디를 통해 들어간 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때와 관심에 따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고향 길을 드나들어도 제 고향의 역사와 문화,
풍물을 잘 모르고 이곳저곳 유적들을 거듭 둘러보아도 지방의
문화, 인문지리, 역사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먹고 놀기 위한
행락이나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유람이 아니라면 놀 땐
놀고, 먹을 땐 먹더라도 여행길을 보다 알차게 할 여행방법은
없을까?
최근 우리 사회의 여행문화는 많이 나아졌다. 무엇보다 먹고
마시며 떠드는 행락문화가 대폭 줄어들었다. 나아가 여행지의
문화유산에 대해 미리 정보를 챙기고 때로는 여행가이드,
지역전문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늘고 있다. 여행과 답사를
상품으로 팔거나 동아리 성격의 집단과 모임도 다양해 졌다.
또한 답사를 안내하고 도움을 주는 책들도 널리 출판되고 있다.
특히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씨가 여행문화에 일으킨
바람은 컸다. 읽고 배우고 정보를 찾아가며 더 잘 보기 위해
애쓰는 새로운 답사문화를 일으키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남도답사 1번지로 회자되는 전라도 해남강진을 보았다고 해서
전라도가 눈에 보일 것인가. 답사를 다니는 사람들의 갈증은
여전히 깊다. 지방, 지역의 문화에 한층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없을까. ‘산경표(山經表)’는 이 같은 갈증에 대답해 주었다.
산경표를 누가 편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여암 신경준(旅庵 申景濬, 1712-1781)이 지은
ꡔ동국문헌비고ꡕ의 「여지고」와
ꡔ산수고ꡕ를 토대로 1800년대 초에 누군가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신경준이 편찬한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원 저자, 출판 연대가
표시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1980년 한 고서방에서 이우형씨에 의해 발견됨으로써
비로소 빛을 보게 된 책이다. 산경표는 어떤 다른 문헌보다도
우리의 자연지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난 산경표를 통해서 비로소 우리가 사는 지역과 산하,
인문 지리를 이해하고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이 책은 인간의
가계의 계통과 줄기를 밝혀놓은 족보처럼 우리의 산세를
밝혀놓은 산의 ‘족보’다. 우리나라를 15개 산줄기와 10개의 강
유역으로 나누고, 산줄기와 물줄기의 흐름을 따라 1,650여개의
지명과 1,500여개의 산과 지명을 일목요연하게 표기하였다.
여기서 산경(山經)이란 경락, 경혈이 몸의 기운의 흐름을 나타낸
것처럼, 산(山)의 흐름(經)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산의
흐름은 곧 물(水)의 흐름(經)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한다.
산이 물을 가르기 때문이다. 둘을 합치면 산수경(山水經)이
되겠다. 산과 강, 들과 재를 통해 고을과 고을이, 지역과 지역이
서로 통하고 교환하고 교류했던 과거에는 산경표적인 자연,
지리에 대한 인식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아울러
역사시대 이래 진행된 경제활동, 물적 인적 교류와 교통, 나아가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연지리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임을
의미한다. 산과 물의 흐름을 따라 문화를 읽고 생활문화를
찾아보며 명멸해간 역사에 접근하는 답사는 많은 것을 제공해
준다. 나는 이를 ‘산수경 답사법’이라 이름 붙였다. 이 답사는
깨어진 그릇, 조각난 파편, 지워진 벽화처럼 전해지고 있는
역사와 문화유산들을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로써 포용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산과 물의 흐름을 따라 전라도를 찾아가는 답사의 처음은
전라도의 산과 물이 시작되는 곳일 수밖에 없다. 그곳이
어디일까. 전라북도 장수군이다. 장수군은 시원한 백두대간의
봉우리들과 호남의 산과 물의 흐름, 강이 시작되는 발원샘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답사지다. 인근에는 주논개 유적지, 죽도,
마이산 등 보고 챙길만한 요지도 적지 않다.
호남의 산이 시작되는 곳은 전북 장수군 장계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 경계에 있는 영취산(1,076m)이다. 백두산의 주봉
장군봉(2,744m) 에서 몸을 일으킨 백두대간이 한반도를 가로질러
남쪽 지리산 천왕봉(1,915m)이 가까워질 즈음, 전북 장수군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몸을 일으키면서 전라도의 산과 물이
시작된다. 영취산은 백두대간이 전라북도 무주, 장수를 지나면서
덕유산(1,614m), 남덕유산(1,570m)을 솟구쳐 놓고 함양
백운산(1,279m)을 향해 달리다,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이
시작되는 봉우리다. 영취산에서 시작한 호남의 산흐름은 첫
봉우리인 장안산(1,237m)을 시작으로 수십 개의 봉우리를 이루며
전남 광양까지, 부여 부소산까지 흐른다. 이 이어지는 맥이 바로
금남호남정맥이다. 나는 호남의 산과 물이 시작되는 곳 전북
장수 영취산 인근지역을 ‘호남 답사 1번지’라고 부른다.
영취산을 오르려다 돌아선 적이 있다. 때마침 몰아닥친 여름
폭풍우 때문이었다. 영취산은 주로 무령고개에서 오르는데
이곳에 도착했을 때 비바람이 앞뒤사방으로 방향을 종잡을 수
없이 몸을 때렸고 산으로 오르는 길엔 바람이 마치 신이 난 듯
몰려다니며 녹음방초들을 흔들며 소리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바람으로 오르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산간을 벗어난
들녘에는 해가 비치고 있었는데도. 그 날로부터 7일 후 다시
찾았다. 당시 전라도 답사를 여드레에 걸쳐 계속하고 있었는데
일정의 마지막 날에 다시 영취산을 찾은 것이다. 다행히 연이어
궂었던 날씨가 개었고 마침 그리 멀지 않은 정읍을 지나는
길이었다. 이 때다 싶은 마음이 일었다. 장수군에 가까워지자
흰구름을 머리에 인 백운산과 말의 귀처럼 두 봉우리를 쫑긋
세운 마이산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약간의 날씨에 대한 염려도
남아있었지만 산과 들에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영취산은 무령고개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짧은 코스다.
무령고개는 백두대간의 영취산과 금남호남정맥의 첫 봉우리인
장안산 사이에 나있다. 무령고개에서 영취산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고개 높이는 영취산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지간한 산보다 높은 셈이다.
호남지방에서 경험한 재 중에서 가장 높은 재다. 재가 높은 만큼
영취산에 쉽게 오를 수 있다. 무령고개의 다른 이름으로는
춤출무(舞) 용룡(龍)자를 써 ‘무룡고개‘라는 말도 있다.
영취산을 중심으로 한 대간, 정맥의 기세가 낙동강, 금강,
섬진강을 아우르며 용트림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고개위로 올라가는 길고 깊은 계곡과 고갯길이
마치 춤추는 용의 모습을 닮아 지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된다.
전라북도 장수읍에서 무령고개로 가는 길은 포장되어 있고 남쪽
지지리에서 접근하는 길은 비포장 상태다. 차를 운행하는 데는
불편할지 모르지만 지지리길이 한결 깊숙한 아늑함에 자연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가는 길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에서 장수
인터체인지로 들어가거나, 진안 마이산과 경남 함양을 잇는 26번
도로를 타다 육십령을 넘기 전에 743번 지방도로로 들어오면
된다. 그리고 무령고개 가까운 곳에는 임진왜란때 적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한 논개(論介,
1574-1593)의 생가와 유적지가 있어서 이곳을 안내하는 길안내
표시판을 따라가면 쉽게 무령고개에 닿을 수 있다.
무령고개에는 등산로 안내판과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간이가게가 있다. 가게를 지키는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으면 잘
가르쳐 준다. 평일의 오후 3시를 지난 무령고개는 인적이 없이
조용하다. 가게를 지키는 아주머님과 나뿐이었다. 영취산을 향해
오른다. 설레임이 인다. 여름을 거쳐 온 참나무 등 여러 수목과
억센 풀들이 수차 스쳐간 태풍을 이기고 생기 있게 기운을
내뿜고 있다. 오를수록 호남정맥의 흐름이 완연히 다가오는데
영취봉을 어서 만나볼 마음이 앞서 길을 재촉해 오른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내가 오늘의 첫 방문자라고 말해준다. 연일 내린 비
탓일 게다. 경사가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에는 모처럼 비가 그친
수풀에 거미들이 등산로에까지 거미집을 짓고 먹이사냥 준비를
해놓았다. 거미줄이 산에 오르는 유일한 방해물이다. 지나가면
애써 지어놓은 집이 깡그리 망가질텐데 또 그렇다고 거미줄이
다치지 않게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취산 정상은 물기를
가득 담은 구름에 쌓여있었다. 시야거리는 어림잡아 이삼십
미터. 백두대간의 봉우리들인 깃대봉(1,015m)과
백운산(1,279m)의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이 힘차 보인다. 이
능선을 따라 북으로 가면 백두산에 닿을 것이다. 천지를 만날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러나 난 오던 길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내려오는 길에 보리라던 겹겹의 능선은 벌써
기온이 떨어져 골을 타고 솟아오르는 구름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곳 영취산은 호남지방을 엮는 산 흐름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물이 시작되는 곳이다. 영취산 북서쪽의 물은
금강을 이루고 남서쪽의 물은 섬진강을 이룬다. 영취산 동쪽의
물은 낙동강으로 모아진다. 영취산은 금강, 섬진강, 낙동강
3수계가 모아지고 나누어지는 곳이다. 영취산 봉우리에 내린
빗방울은 동서남북으로 갈 길이 달라진다. 물은 바다에서 다시
만날 때가지 전혀 다른 길을 흐를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의 한
교실의 벗들이 자라 성인이 되어가며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종내에는 죽음의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금강이 시작되는 샘의 이름은 뜬봉샘이다. 무령고개로부터 멀지
않은 신무산(897m) 기슭에 있다. 무령고개에서 743번 지방도를
따라 계곡을 내려가다 19번 도로를 타면 수분치이고 이웃한
수분리 마을에서 오른다. 금강은 이곳 뜬봉샘에서 흐름을 시작해
굽이굽이 흘러 충청도와 전라북도 벌판을 적시고 서해바다로
들어간다. 뜬봉샘이라는 이름에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관련한 설화가 전해온다. 그가 이곳을 지나다가 목이 말라
샘물을 찾으니 봉황 한마리가 산자락을 차고 날며 영롱한
무지개가 떠올라 샘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 봉이 떴다해서
뜬봉샘으로 부르게 됐다는 것인데, 샘의 이름에까지 어울리지도
않은 우상화 작업을 해놓은 셈이다. 한편 금강의 발원지는
밥내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섬진강이 시작되는 곳은 데미샘이다. 위치는 팔공산(1,151m)과
성수산(1,059m) 사이의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상추막이골.
신암리 신암1교 네거리에서 원신암 마을로 들어가 장수읍으로
넘어가는 오계치(870m)를 오르다 고개를 넘기 전 중턱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오른다. 데미샘의 ‘데미’는 전라도 토속어의
변형이 아닌가 생각된다. 샘이 솟아나는 주위는 제법 큰
돌더미들이 넓게 깔려있는데, 전라도 사투리로 모여 쌓여있는
모양을 흔히 ‘더미’, ‘데미’, ‘무데기’ 라고 부른다. 또한
표지판에는 “발원지인 데미샘이 있는 봉우리를 천상데미라
하는데 데미라는 말은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로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천상데미라
불려 왔으며 이 샘이 천상데미에 있다하여 데미샘이라고 이름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표지판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올라
데미샘까지의 거리는 약 7백미터 정도. 짧지도 길지도 않은
거리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에는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이 줄곧 바위틈을 흐르며 소리를 내며 동행한다.
또한 한여름의 절정에 올랐다 이제 가을로 비껴가며 꽃을 피우고
있는 산야초들이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를 경계하는 듯 반기는 듯
실낱같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특히 숲에 가득한 습기를 가득
머금고 무리를 지어 피어있는 8월의 물봉선이 제일 반겨준다.
난 몇 년 전부터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꽃나무를 12달 월별로
하나씩 마음속에 점찍어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정해 둔 꽃나무를 여행 중에 만나면 한 번 더 시선이 가고
보이지 않을 땐 찾으려 애쓰기도 한다. 함께 하는 동행이 있을
때 꽃나무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물봉선은 나의 마음속에 담아놓은 ‘8월의 꽃’이다. 물봉선을
처음 만난 것은 강원도 인제군 신선봉 아래 계곡에서였다.
신선봉은 설악산 국립공원지역에 속해있으나, 설악산과 달리
찾는 사람이 비교적 많지 않아 자연 및 식생상태가 좋은 편이고
계곡 또한 수량이 풍부하다. 그곳에서 간밤의 산의 정기를 가득
담고 눈웃음을 지으며 날 반겨주는 꽃을 만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물봉선이라는 이름을 지닌 꽃이었다. 꽃말은 ‘손대지
마세요(Touch Me Not)’. 물봉선의 씨는 익으면 봉숭아 씨처럼
저절로 터져 씨앗을 흩뿌린다. 씨방에 가벼운 충격을 가하면
당연히 터진다. 꽃말이 식생에 걸맞게 멋있게 붙여졌다. 여름의
산과 시골길에서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물봉선은 마치 소박한
시골 여성의 모습과 정감을 담고 있다. 줄기와 잎은 마치
농사일에 거칠어졌으되 강인한 모습이고, 꽃은 꿈꾸는 듯한
여성의 정감어린 모습이다. 쌍떡잎식물로 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 한국․일본․중국 동북부에 분포한다.
키는 40~80cm로 산골짜기의 물가나 습지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잎은 어긋나고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예리한 톱니가 있다.
8~9월에 꽃이 피며 작은 꽃자루와 꽃대가 아래쪽으로 굽는
모양을 하고 있다. 꽃의 지름은 3cm 정도로 밑 부분에 작은 포가
있으며,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각각 3개이다. 꿀주머니는 넓으며
끝이 안쪽으로 말린다. 수술은 5개이고 꽃밥은 합쳐진다. 열매는
익으면 터지면서 씨가 튀어나온다. 짙은 자주색의 꽃이 피는
것을 가야물봉선,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물봉선이라 한다,
물봉선은 습지나 비탈, 어지간히 메마른 곳에서도 군락을 이루며
잘 자란다. 꽃이 피는 기간이 비교적 긴 3개월 정도여서
조경용으로도 좋다. 물봉선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매우 귀중한
식물자원이다.
데미샘은 바위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온다. 숲 속 바위 너덜을
헤치며 흘러나오는 샘물이 제법 수량이 풍부하다. 설명문에는
이곳 데미샘은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수정같이 맑고 이가
시리도록 차가우며 다른 어떤 샘에서도 맛볼 수 없는 미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되어있다. 샘을 지키며 서있는
표지석에는 ‘섬진강 발원지’, ‘섬진강 오백리 맑고
푸르게’라는 글귀가 새겨있다. 돌 사이에서 솟아나와 흘러가는
모습이 교문을 달음질치듯 빠져나가는 유치원생들 같다.
나무의자에 앉아 담배갑을 꺼내니 여행 중에 짓눌려 갑은
구겨지고 담배는 동강나 있다. 필터를 조심히 다시 꽂아 피워 문
담배연기 속으로 섬진강의 물줄기가 어른거린다. 섬진강이
데미샘에서 시작되어 장수, 진안, 순창, 곡성, 구례, 광양을
흘러 남해 광양만에 이르는 긴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남해에 몸을 푸는 광양포구와 호남정맥이 바다로 빠지기전
이루어 놓은 마지막 봉우리 망덕산(197m)도 피어오른다.
데미샘을 에워싼 숲 속의 정적이 깊고 고요한데 마치 숲 속의
요정과 나란히 친구가 되어 앉아있는 것 같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