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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선거를 돌아본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105호
정은교

전교조 선거를 돌아본다

정 은 교
진보교육연구소




1. 전교조 지형의 변천
이렇게본다 • • •

지난 12월 전교조 위원장 선거에서 이수일 후보가 조희주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다. 전교조 내 활동가그룹을 우파, 중간파, 좌파로 대별하자면 이 선거에서 우파와 중간파 연합이 좌파를 누른 것이다.
전교조는 합법화(1999년) 되고부터 힘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대중 동력이 제대로 붙지 못했던 법외노조 시절의 대부분은 당연히 우파가 주도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합법화 직전, 전망을 확신할 수 없었던 우파는 ‘노조 깃발을 내리자’는 조급한 주장을 펼쳤고, 현실이 그들의 뜻과 다르게 벌어진 탓에 정치적 권위에 큰 손상을 입었다. 조직적 기반이 약했던 중간계열의 김귀식, 이부영, 이수호가 잇따라 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이 같은 우파의 정치적 위신 추락에 많이 덕을 본 결과이다.
89년 전교조 결성기에 사업을 둘러싼 핵심 논란은 ‘합법성 쟁취투쟁을 당장 벌이느냐, 훗날을 기약하느냐’였다. 천5백 대량해직을 무릅쓰고 결연하게 법외노조를 결성하기까지는 전교조에 건강한 투쟁기풍이 살아있었고, 그래서 잠깐은 좌파(투쟁 원칙파)의 목소리가 우렁찼으나 법외노조의 지리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전교조의 주도권은 ‘대중’과 ‘민주대연합’을 중시하는 우파의 수중으로 곧 넘어갔다.
전교조 선거를 돌아본다

95년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안이 입안된 뒤로도 한동안 전교조 내에는 ‘교육개혁’의 흐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짙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우파의 리더였던 유상덕씨인데 성과급 투쟁 이후 그의 노골적인 친정부 입장이 전교조 안에서 설 자리를 잃자 전교조를 떠나 관변의 길로 나아갔다. 이해찬 장관시절 ‘교원정년단축 조치’는 ‘정부의 교육개혁을 긍정하느냐 반대하느냐’ 판단의 혼란을 가장 극심하게 드러냈던 경우다.
좌파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대한 문제의식이 싹틈에 따라 점차 대열을 정비할 수 있었다. 이수호 위원장 시절, 일부 지부를 거점으로 하여 성과급반납 투쟁, 7차 교육과정 반대투쟁에 앞장서서 전교조의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이끌었다. 본부를 차지하지 못한 탓에 7차 교육과정 반대투쟁이 뒷심을 받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나기는 했지만 성과급반납의 대중적 승리감이 좌파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여 03-04년에 최초로 좌파 위원장을 배출할 수 있었다.


2. 좌파의 패인
이번 선거에서 조희주 후보는 41%를, 이수일 후보가 59%를 얻었다. 이 큰 격차는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좌파가 패배했다는 뜻이요, 후보 선택과 선거에서 내건 슬로건, 운동방식의 잘잘못이 끼친 영향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 그러므로 선거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굳어진 ‘판세’를 깊이 따질 일이다.
앞서 잠깐 비쳤듯이, 전교조에는 활동가 그룹이 크게 셋이 있었거니와, 이번 선거에서 우파와 중간파가 아주 흔쾌하게 연합(통합)하여 단일 대오로 선거에 나섰다. 그 결과가 그대로 득표율에 반영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조희주 후보는 지난 2년 전 원영만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얻은 40%만을 그대로 받아온 셈이다. 지난 선거가 3파전으로 치러져서 중간파 지향의 표를 끌어들일 수 있었던 데 반하여, 이번 선거에서는 그 표를 거의 붙잡지 못한 것이다.
중간파와 우파가 연합(통합)함으로 인하여 선거 구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원래 우파는 노동운동에 거리를 두고 교육운동을 내세우는 그룹이었다. 정치적으로는 개혁보수세력에 대한 지지가 뚜렷하여 민주노동당이 올 총선에서 약진한 뒤에야 진보정당 지지로 돌아섰다. 반면에 중간파는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정체성은 뚜렷하지만 당장 ‘대중’의 지지를 얻을 일에만 나서는 대중추수주의 경향을 우파와 공유해 왔다. 2004년 들어와서 우파는 ‘노동조합의 정체성(교육노동운동 지향)’을 문건에서 분명히 언급한 반면, 오히려 중간파가 ‘시민운동 지향’, ‘NGO 지향’을 강조하여 두 세력이 자본체제의 ‘노동운동 포섭’에 기꺼이 화답하는 세력임을 확인해 주었다. “(다른 부문은 모르겠으나) 교육부문에서는 신자유주의 공세가 치열하지 않다. 교육부문만큼은 노무현 정권이 개혁적”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인식이요, “거리투쟁은 군부독재 시절의 유물이다. 학교 밖으로 나서지 말자(연가투쟁 포기)”는 것이 이들의 선거 슬로건이었다. 투쟁보다는 교섭을 대단히 중시하는 이들의 방침은 ‘노사정 합의주의’를 추구하는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의 행보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좌파의 패인은 무엇인가? 첫째, 중간파 지향의 활동가를 제대로 끌어들이거나 중립화시키지 못했다. 좌파가 재집권할 경우 영영 본부를 탈환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파와 중간파 활동가들을 똘똘 뭉치게 했고, 그 시너지 효과로 인하여 이들은 2년 전 선거 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섰다. 두 그룹의 연합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것이 원천적인 패인이다.
둘째, 일반 조합원들의 ‘바닥 정서’가 ‘투쟁하는 지도부’로부터 적잖이 떠나갔다. 전교조는 합법화 이후, 합법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조합원이 급격히 늘었거니와 여전히 파업이 금압된 불구의 교원노조법 하에서 시원하게 단결투쟁의 기풍을 세우지 못한 탓에 조직이 대단히 느슨하다. 투쟁을 꺼리는 중간활동가들이 영향을 미치는 지역에서는 더더군다나 조직이 이완돼 있다. 조합 일에 무관심하고 소극적인(속칭 ‘나이롱’) 조합원이 적지 않다. 그래서 선거판도가 중간활동가들의 입김에 의해 좌우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 조합원들이 그저 ‘거수기’로 시종했다고 보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이다.
‘바닥 정서’의 이반은 여러 면으로 확인된다. 이번 선거에서 ‘교원평가’가 쟁점이 되었는데도 이를 ‘교원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둔감증이 널리 퍼져 있다. “내 문제가 아니라면 관심 없다”는 정규직의 자족적 심리도 만만치 않아서 ‘구조조정 경고’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로 되술래잡히기도 했다. 여전히 직업안정성을 누리는 교원들의 우경화 경향을 우리는 경험으로 확인하고 있는데 더 정밀한 조사 분석이 긴요하다.
노동운동에서는 큰 투쟁의 뒤끝을 다스리지 못해 좌파 집행부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이 있었거니와, 원영만 집행부의 경우도 꼭 그 경우에 해당한다. 2003년 한해 전교조에게 홍역을 치르게 했고, 아직도 마무리 과제를 남겨둔 “학교행정정보시스템NEIS 반대투쟁”이 그것인데 원영만 집행부는 끝끝내 반대(투쟁) 기조를 견지한 덕분에 결국 정부의 후퇴를 끌어내는 자랑스러운 성과를 거두었는데도 조합원들에게서 ‘투쟁을 강요하는 집행부가 싫다’는 불신임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단지 연가투쟁에 나서는 부담만이 아니었다. 평소에 단체행동의 경험을 쌓아본 적 없는 대다수 조합원들에게 ‘네이스 인가를 받느냐, 끝내 거부하느냐’라는 문제는 개개인의 결단을 촉구하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1년이 넘게 네이스 인증거부를 이어가는 동안, ‘그만 싸움을 접자’는 요구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네이스 인증거부가 대다수 조합원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를 안겨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더라면 ‘네이스 투쟁 뒤끝으로 좌파가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판단을 더 일찍이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예견한다 해서 우리가 네이스 싸움을 접을 수 있었을까? 이기든 지든 싸워야할 일이 있고, 진보적 사회운동은 패배를 통해서도 성장한다.


3. 현장조직이 맞닥뜨린 과제
선거 결과는 좌파에게 만만찮은 과제를 남겼다. 성과급 투쟁 때만 해도 신자유주의 반대흐름에 동참했던 중간파 지향의 많은 활동가들이 이제는 ‘정부에 너무 각을 세우지 말자’는 심리로 돌아섰다. 2004년 여름 대의원대회에서는 연가투쟁을 기각했고, ‘대입개혁투쟁’과 ‘교원평가 저지투쟁’을 훗날의 일로 미뤘다. 이들을 어떻게 다시 반신자유주의 전선에로 이끄느냐가 절박한 과제이거니와, 교원평가와 지방직화 프로그램을 사실상 받아들일 채비가 되어있는 신임 집행부 하에서 현장의 역동적인 반대행동을 끌어내는 일이 큰 숙제가 되었다.
한 가지 작은 위안은, 이번 선거를 통해서 좌파의 주체 역량이 다소 탄탄해졌다는 사실이다. ‘활동가 양성의 최대 프로그램은 선거’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젊은 활동가들이 여럿 진출했고, 중간파 지향의 활동가들 일부가 지난 여름 대의원대회 (연가투쟁 폐기) ‘수정안’의 통과에 충격 받아 좌파 대열에 꽤 동참해 왔다. 본부와 서울지부를 내주는 후퇴에도 불구하고, 좌파의 정체성 강화 흐름이 우리의 낙관을 버텨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교조 내에 더 탄탄해진 좌파 대열이 단지 ‘노조 집행부의 재장악’만을 목표로 활동해서는 앞날이 밝을 수 없다. ‘다수의 획득’만 좇다가 원칙을 잊고 속편한 절충으로 흐르지 말라는 법이 없고, 타협적 집행부에 의해 신자유주의 개편흐름에 더 깊숙이 포섭되다 보면 대중의 저항 동력이 더 쪼그라들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교조 내 좌파는 여전히 전교조 사업을 비판적으로 견인하는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되, 진보적 민중운동 전체의 길 찾기에도 꾸준히 함께 나서야 한다. 지역별로 노동 민중운동의 솟아오르는 흐름과 연대에 힘쓰고,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영역에로도 활동의 관심을 넓힐 일이다. 이를테면 학교 내 비정규직 노동자(행정실 직원, 급식노동자)를 돕는 일이나 학생 청소년의 노동권에 대한 관심 등이 그것이다.
다소 안타까운 것은 뿔뿔이 흩어진 노동민중운동의 좌파 세력이 함께 하나로 모일 정치적 전망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교조 내 현장조직도 그럴 때라야 더 힘을 받는다. 좌파의 지리멸렬이 해소되지 못한다면 어려운 정세조건과의 싸움을 버팅길 ‘낙관적 전망’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여전히 ‘노사정 합의주의’에 미련을 보이고 있고, 노동법 개악안을 저지할 동력 형성도 불투명한 2004년 세밑의 시점에서 ‘전망’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한/노/정/연

2005-0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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