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민중세상: 문화
새해에 하고 싶은 얘기
<외침, 공감>
박선봉 / 민주노총 전 문화국장
문화활동가들과 함께 12월 9일부터 14일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희망의 노래 ‘꽃다지’의 일본 공연과
‘레이버 페스티벌’ 참가가 주요 목적이었지만, 이 기회에 좀
쉬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일본에 대한 막연한 반감도
있고, 일본 노조운동 자체가 체제내화 되어 있고, 거의 죽어
있는 상황에서 배울 게 뭐 있겠느냐고 깔보는 심정도 있었다.
그런 내 생각은 첫날부터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각자 개인의 짐이랑(일행 중에는 이삿짐
정도의 살림살이를 챙겨온 사람도 있었다), 꽃다지 식구들의
기타랑, 일본 활동가들에게 줄 선물이랑, 또 한국에서 팔고
남아서 경비라도 보태려고 가지고 온 T셔츠 등 손에손에 짐을
들고, 끌고, 피난민 행색으로, 전철을 타고, 또 한참을 걸은
후에 1차 목적지인 우에노에 있는 젠토이츠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서 삼각김밥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1차 투쟁에
나섰다. 오늘이 ‘동경 총행동의 날’이라고, 동경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투쟁사업장과 악질적으로 부당행위를
일삼는 사업장을 돌아다니면서 지원투쟁을 하는 그런 날이라고
한다.
순회투쟁단의 일정에 맞춰서 처음으로 우리가 결합한 곳은
후지TV 앞이었다. 동경만에 떠 있는 인공섬인 오다이바에
자리잡은 후지TV 앞에 100명도 채 안 되는 ‘동경 총행동의 날’
참가단이 집회를 하고 있었다. 집회라고 해봤자 우리처럼 무대와
음향을 설치하고 폼나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길가에 나팔
방송차 한 대를 정차시켜 놓고 무대도 없이 연설 위주의 집회를
하고 있었다. 빨강색 깃발을 들고, 빨강색 완장을 두른
참가자들은 순박한 웃음으로 우리들을 반겨 주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5시가 넘었고(동경은 5시면 이미 밤이다), 그들의
순회투쟁은 아침부터 계속되는 강행군이라고 했는데, 막상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구호를 외치고, 연설을 하고, 유인물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40대 이상의 늙은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항의서한을
전달하는데 정말로 후지TV 측에서 항의서한을 받으러 나온
것이다. 양복을 말끔하게 빼 입은 관리자 한 명이 항의서한을
공손에게 받는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12월 10일 토요일. 대충 아침을 해결한 후 복잡한 일본
전철을 타고(일본 전철은 35개 노선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데,
민영화 이후 다른 회사 전철로 갈아 탈 때는 개찰구 밖으로
나가거나, 다른 역에 가서 새로 표를 끊어서 다시 들어와야
했다. 걷기도 엄청 걸을 뿐더러 왜 그리 비싼지. 민영화는 절대
반대다. 우리 문화활동가들은 앞으로 민영화저지투쟁에 무조건
앞장서기로 했다.) 청소노동조합 강당에서 진행 중인
중소노조정책네트워크 총회에 참관을 했다. 일본 내에 있는
중소규모 노조들의 네트워크 조직인 듯했다. 이곳에 모인
노동자들도 역시 대부분이 늙은 노동자였다.
국물도 없는 벤또(도시락)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간부 몇 명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젠토이츠 사무총장인 토리와
시티유니온(city union) 대표인 무라야마, 그 외 2-3명.
젠토이츠는 우리나라로 치면 일반노조나 연합노조와 비슷한
성격의 노조로 3,000명 정도의 조합원 중에 일본인은 500명이고
나머지는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가나가와현에 있는
시티유니온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80% 정도)이고
한국노동자들도 많다고 한다. 그 중에는 불법체류자들도 다수
있고 항만, 건설, 조선노동자들도 많다고 한다. 무라야마 대표의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우리들은 비록 늙었지만
운동을 팔아먹지 않는다. 또 출세를 위한 수단이나 정치인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한 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다. 그게 우리의
자랑이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60년대 광산노동자들이
파업하면서 했던 율동을 직접 가르쳐 주었다. 열정적으로 율동을
가르쳐주느라 강의실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그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12월 11일 일요일. 오늘이 드디어 ‘레이버 페스티벌’이 있는
날이다. 사실은 오늘이 가장 중요한 날이다. 왜냐하면
문화활동가들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컨디션
조절하느라 어젯밤에는 다른 때보다 이른 새벽 2시에 잠을 자지
않았던가. 11시 30분경에 행사 장소에 도착했다. 약간의 연습과
기획회의를 한 후에 역시 국물없는 주먹밥과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이번에는 소주 한 병을 미리 준비한 덕분에
쉽사리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음향이 설치되고 꽃다지의
리허설을 거쳐 오후 1시부터 ‘레이버송 디스크쟈키’라는
프로그램을 했다. 3명이 무대에 올라 일본의 투쟁가요를 해설과
함께 들려주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1시 45분부터 꽃다지 공연
40분, 그리고 2시 30분부터 메인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3분
비디오 상영이 있었다. 투쟁중인 사업장 이야기,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 등을 3분에 맞게 편집한 비디오 총 22편을
3번으로 나누어 상영하였다. 그 비디오를 만든 사람들 중에는
전문가들도 있었지만 나이 지긋한 중년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었다. 상영된 비디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안녕, 사요나라>, <월마트화에 저항하며>, <존바에즈 노래는
언제나>, <어느 우편국장>, <워먼월드 2005 in 한국>, <우고
차베스>, <오키전기 타나카테츠로오의 투쟁>, <할머니의
하라주꾸, 용서할 수없는 "할망구" 발언>, <부르짖는 아스베스트
피해자들>, <나카소네발언과 NHK>, <달리는 남자>, <필리핀
토요타 노조의 투쟁>, <홈리스의 고민>, , <아들의 형편>, <우편국원과 단시>, <유행최첨단,
말년이혼>, <젊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들은 노동조합으로
싸우자!>, <간사이 레미콘 탄압사건>
5시쯤 비디오 상영이 끝나고 청소노동조합 강당으로 옮겨서
6시부터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뷔페식 상차림에 맥주로 목을
축이며, 준비한 사람들과 참가한 사람들의 소개와 소감을 듣는
순서가 끝나고, 드디어 7시부터 한국의 문화활동가들이 준비한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김창곤의 사회로 먼저 ‘벽깨기’ 순서.
한국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벽깨기’와 율동의 달인
신수정이 무대에 올라 ‘해방춤’으로 벽을 깨기 시작했다.
남녀의 벽, 노소의 벽, 국가의 벽, 이념의 벽, 편견의 벽 등
온갖 벽들이 늙은 노동자들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몸짓에 모조리,
산산이 깨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들이 얼굴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 제대로 말을 듣지도
않는 몸을 움직이며 열심히 따라 하는 모습은 차라리
감동이었다.
12월 12일 월요일. 11시경에 국철투쟁단 지지방문을 하러 갔다.
건물 앞에 일렬로 간이의자(낚시할 때 앉는 의자)를 놓고 앉아서
농성과 집회를 하는 투쟁단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들에게 꽃다지의 노래와 민요 몇 곡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지지방문을 마쳤다. 모처럼 일본식당에서 벤또가 아닌
우동과 밥, 그리고 사케(일본 정종)로 점심을 달게 먹었다. 오후
2시경에 젠토이츠 사무실에서 일본 문화활동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문화활동가들이라고 해 봐야 지금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그런 활동가들이 아니라 왕년에 한 가닥 했던,
지금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과 지나간 일본 노동운동 역사를
훑어보고 거기서 문화가 차지했던 위치와 역할 등을 한국 상황과
비교해보는 정도였다. 토론이 한창 진행 중인데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4시가 되니 툴툴 털고 일어서는 그들을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우리는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12월 13일 화요일, 내일 일본을 떠나게 되니 사실상 오늘이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날이다. 저녁에 환송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 음식을 우리가 준비하기로 했다. 5시에 시오미역에서
가토아주머니를 만나 재료를 샀다. 오늘의 메뉴는 주물럭과
잡채, 그리고 부추전과 미역국. 요리사는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신수정과 필기시험만 합격한 박선봉. 나머지는 보조. 2시간
동안 버글버글, 시끌시끌, 우왕좌왕, 지지고 볶다가 드디어 음식
장만이 끝나자 일본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우리가 만든
음식과 일본인들이 집에서 정성껏 만들어 온 음식을 뷔페식으로
차려놓고 환송회가 시작되었다. 차례로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느낀 소감들을 발표하는 순서. 어떤 일본인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한국인들과 주변국 국민들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 고개숙여 사과를 했고, 한국의 노동운동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도록 우리들이 열심히 해달라는 당부,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반성, 이처럼 소중한 교류를 계속
이어 가자는 소망 등이 이어졌고, 조선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통역도 해준 박성일은 끝내 눈물로 아쉬움과 고마움을 전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고, 극히 한정된 만남과 교류였지만 5박
6일의 이번 일본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막연한 적개심만 갖고 있었던 나라, 한때는 지금
한국보다 더 투쟁적이고 무시무시한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 그러나 지금은 철저하게 체제내화
되고, 규격화된 춘투만을 형식적으로 하고 있는 그런 나라, 그
나라에 적어도 노동운동만큼은 우월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도 우리는 투쟁하는 노동조합 조직을 가지고 있다.
총파업도 조직할 수 있고, 10만이 모이는 집회도 조직할 수
있다. 너희들은 그런 걸 꿈이나 꿀 수 있느냐? 아시아의
노동운동은 너희가 아니라 우리가 이끌어 가고 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너희들은 노동운동의 패배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런 마음이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의
노조운동과 노동운동은 일본을 판박이처럼 닮아가고 있지
않은가? 점점 건강성을 잃어가고, 투쟁성도 잃어가고, 계급성도
포기하고, 관료화 되고, 박제화 되고, 관성화 되고, 권력화 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회적합의주의가 공공연하게 판을 치고
있고, 정권과의 연대를 부르짖고 있으며, 투쟁보다도 협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만연해 가고 있고, 의례적인 짜고 치는
고스톱이 한창이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에 일본을 따라 잡을
태세다.
노동운동의 지도자,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어떤가? 그들은
진정으로 이 땅의 노동운동을 위해, 혁명운동을 위해,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한 몸을 바치는 진정한 활동가의 모습인가?
어떠한 경우라도 조합원들을 팔아먹지 않고, 운동을 팔아먹지
않고, 조직을 배반하지 않으며, 일신의 영달을 위해 운동을
이용해 먹지 않는가?
내가 만나본 일본의 노동운동가들, 노조운동의 지도자들,
간부들은 그러지 않았다. 겸손하게, 몇 십 년 동안 꾸준하게,
자기 삶으로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지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피흘려 지켜온 역사를 자신들로 인해 달라지게 할
수 없어서, 정말로 그 길이 올라른 길이라고 확신하기에 40년의
세월을 그렇게 꿋꿋하게, 꾸준하게 지켜오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누가 침을 뱉을 수 있단 말인가? 누가 그들에게
패배자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단 말인가?
한국의 노동운동은 일본의 노동운동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들의 역사를 배워야 하고, 그들의 정신을 배워야 하고, 그들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그길 만이 한국의 노동운동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은 유일한 길이 아닐까? 2006년 새해에는 한국
노동운동의 환골탈태를 기대해 본다. 일본 늙은 노동자들의
조용한 외침에 우리도 마음을 열고 공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