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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노사관계 구상이 던진 문제

현장에서 미래를  제10호
채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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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 세 ․ 초 ․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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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노사관계 구상’이 던진 문제


채 만 수 (이사)


‘문민’과 ‘개혁’을 선전하면서도 김영삼 정권은 집권 3년이 지나도록 군사독재가 만들어 논 법률과 제도 안에서 군사독재가 즐겨 쓰던 똑같은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과 자주적 민주적 노동운동을 탄압해 왔다. 그러던 김 정권이 지난 4월 24일 “과거 권위주의와 산업화 시대의 낡은 노사제도와 관행으로는 기업의 번영과 국가 발전은 물론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노사관계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개혁해야 한다”며 ‘신노사관계 구상’(이하, ‘구상’으로 칭함)이라는 것을 들고 나와 억압적인 노동관련법률을 개폐하려는, 노동운동과 관련하여 새로운 정세가 형성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김영삼 대통령은 “21세기를 내다보는 노사관계 개혁은 단순히 법과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관행 등 전반에 걸친 개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번에 추진되는 노사관계 ‘개혁’을 노동법 개정의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정치적 수사(修辭)이자,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 그리고 정부간의 당장의 대치선이 노동관련법의 개정을 중심으로 벌어질 것임을 반어적으로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각계를 대표하는 30여명의 인사로 대통령 직속의 ‘노사관계 개혁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노사관계 개혁’을 벌여 나가겠다지만, 실제적으로는 노동관련법상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개정하려고 하는가 하는 정부의 의도야말로 ‘노사관계 개혁’ 정국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익히 아는 얘기지만, 복수노조 금지나 제삼자 개입 금지,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공무원 및 교사의 노동3권 제한 등 조항의 폐지 및 공익사업장 쟁의 규제 조항 완화와 같은 노동자측의 요구와 변형근로시간제, 근로자파견제 등의 도입, 노동자 해고요건의 완화, 연・월차 휴가나 생리휴가 등 유급 휴가일 수의 축소 혹은 폐지, 법정노동시간외 근무수당 증액률의 인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본측의 요구를 함께 수용하려는 것이 그 의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점 때문에 노・사 양측은 ‘개혁’의 제기를 환영하면서도 벌써부터 “맞바꾸기 식의 노동법 개정은 있을 수 없다”며 일전을 벼르고 있다.

민주노총의 승리와 자본측의 반격

이번 노사관계 개혁 정국의 핵에는 민주노총이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신노사관계 구상’은 외견상 김영삼 정권에 의해서 제기되었지만, 사실은 그간의 민주적 자주적 노동운동의 성과와 현단계에서의 승리를 확인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의 반격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복수노조 금지나 제삼자 개입 금지,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공무원 및 교사의 노동3권 제한 등 조항의 폐지와 같은 노동자측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정부측의 방침의 배경에는, 민주노총이 지난 4월 29일의 ‘설명회’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관련 조항들에 대한 국제노동기구(ILO), 유엔인권위원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강력한 비판과 개정 권고가 있고, 민주노조 진영의 노동법 개정 요구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지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비정상 상태를 오래 지속시키기에는 40만 이상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현실성이 너무나 컸던 것이다. 현행의 노동조합법에 의한다면 ‘법외의 임의단체’를 훨씬 넘어 ‘불법단체’임이 분명한 민주노총의 대표가 ‘구상’이 발표되던 4월 24일의 청와대 노사대회에 적극적으로 초청된 것이 그러한 현실과 정부측의 인식을 웅변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노동법의 개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전향적 개정’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부분의 개정 방침이 현재 민주노총으로 결집되어 있는 민주노조운동, 민주노동운동의 국내외 투쟁의 성과이고 그 승리의 확인임은 누구의 눈에나 명백하다.
한데 그 뿐만이 아니다. 개정 예정인 사항 가운데 명백히 반노동자적이고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부분의 개정 방침, 즉 자본의 반격 자체도 사실은 노동운동의 승리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자본의 반격조차도 사실은 노동운동이 미약했던 동안에는 한국자본의 ‘인간다움’을 거짓 치장해 주던 근로기준법상의 몇몇 조항이 이제 노동운동의 성장과 그에 따른 노동자 권리의식의 신장으로 현실적인 법률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의 이들 규정과 관련하여 자본의 공세는 이미 대대적으로 시작되어, 대개의 언론은 이들 조항을 한국의 근로자들에 대한 ‘과보호’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내리고 있는 그 ‘과보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른바 ‘경쟁 대상국들’이라는 홍콩, 대만, 싱가폴 등을 포함한 동남아 몇몇 국가들의 근로기준법상의 해당 규정들이나 관행이, 그것도 편리한 식으로, 기껏 그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마치 그들 국가의 규정이나 관행들이 ‘적정 보호’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좀 심한 예를 들어, 최근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파키스탄이나 일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의 가혹한 아동노동의 ‘관행’을 제시하면서 아동노동을 금지하고 있는 규정을 아동에 대한 ‘과보호’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신노사관계 구상’과 자본의 신경영전략

이상에서 ‘구상’은 자본의 공세로서의 성격을 갖는 부분조차도 민주노동운동의 승리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구상’ 특히 그 가운데 이 부분은 노동자 권리의식의 신장에 의한 법률의 현실화에 대한 대응 이상의 훨씬 큰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변형근로시간제, 근로자파견제 등을 도입하고 노동자 해고요건을 완화하려는 자본(과 정부측)의 기도는 이른바 ‘유연생산체제’, ‘노동력의 유연화’라고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최근의 경향, 노동과정의 최근의 변화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려는 것으로서, 과로사로 표현되는 일본의 노동과정의 가혹성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을 휩쓸고 있는 고율의 구조적 기술적 실업의 문제가 우리 앞에도 멀지 않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대, 삼성, 대우 등 독점재벌 기업들을 필두로 최근 수년래 이른바 신경영전략이 적극 도입되고 있는 것은 이미 우리도 그 과정의 초입에 들어가 있음을 말한다. 말하자면, 이 부분 자본의 개정 요구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과정을 공식화시키고 그 속도를 촉진시키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기초에 ‘국제화’ 혹은 ‘세계화’로 표현되는 자본간 경쟁의 격화라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시장조건과 디지탈혁명 혹은 극소전자혁명으로 불리는 새로운 자본주의 생산력의 기술적 조건이 있다는 점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른바 노동력의 유연화는 경총이나 전경련 등 이른바 경제5단체, 즉 직접적인 자본가 단체들의 의도 및 지향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들의 이해를 대표하고 있는 정부의 의도이기도 하다. 즉 노사관계를 이른바 신경영전략의 시대에 상응하는 그것으로 개편하려는 데에 이번 ‘신노사관계 구상’의 핵심적 의도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노사관계의 5대 원칙으로 천명된 이른바 ‘공동선의 극대화’, ‘참여와 협력’, ‘노・사의 자율과 책임’, ‘교육 중시․인간 중시’ 및 ‘제도와 의식의 세계화’란 그러한 신경영전략에 의거하여 자본, 특히 독점자본(재벌)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표를 화려한 정치적인 수사로써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점은, ‘구상’이 발표되던 바로 그 현장에서 발제된 사실로 미루어 ‘구상’의 구체적 문제의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배무기 (서울대) 교수의 “세계화 시대의 노사관계 개혁을 위한 제안” 내용이 명백히 해주고 있다. 문제의 발제를 보면, “노동조합은 1987년 6.29를 계기로 크게 성장하고 강력한 사회세력의 하나로 되었으며 많은 것을 획득”했으나 “노동운동은 단기적인 임금인상에만 치중해 왔으며 기업과 국민경제의 중장기 발전에는 관심이 적었고” “임금의 수직상승, 기업 경쟁력의 한계 도달,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저하라는 새로운 여건 아래서 노동조합은 대립과 투쟁의 지속이냐 또는 새로운 활로의 개척이냐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세계화 전략의 차원에서 불신과 대립의 노사관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상’의 의도를 쉽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의 발제에서 배 교수는 말하자면 ‘구상’의 신노사관계의 5대 원칙이 구현되었다고 볼 수 있을 “새로운 노사관계로의 전환 사례와 특징”을 몇 가지 열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가장 두드러진 예는 미국의 기업들”인데, 이들 “미국의 기업들은 1970년대에 제조업 공동화를 경험한 뒤 1980년대에는 위기 극복과 생존을 위하여 경영자 주도로 대립에서 협력으로의 노사관계 전환을 시도”하였고 “종업원 존중, 인간 본위의 경영, 즉 ‘사람’(종업원)에게서 경쟁력을 찾겠다는 결심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드는 구체적 사례의 하나는 제록스 사인데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미국의 제록스(Xerox)회사는 1970년대말 경영위기를 맞아 종업원 존중과 노동조합(을) 동반자로 삼는 경영혁신운동을 폈다. 노동생활의 질 향상(QWL)프로그램, 노사합동연구팀, 교육・훈련강화, 근로자 참가 등을 통하여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는 미국의 통신회사인 AT&T사인데, 역시 그에 의하면 “미국의 에이 티&티(AT&T)회사는 대립관계 극복을 위하여 노사간에 ‘공유가치’에 대한 협약을 맺고 종업원 존중전략을 추진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따라서 ‘구상’이 규범적 사례로 드는 제록스 사나 AT&T의 ‘인간 존중’ 혹은 ‘인간 본위의 경영’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선, AT&T는, 대개의 사람들이 생생히 기억하는 것처럼, 금년 새해 벽두(1월 2일)에 향후 3년간에 40,000명의 종업원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자 월스트리트의 AT&T의 주가는 급등[skyrocket]했다!) 배무기 교수의 발제가 있기 전까지는 내가 오늘 급히 이러한 글을 써야 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제록스 사의 해고 자료는 미처 챙기지 못했는데, 참고로 최근 수년 동안에 IBM은 63,000여 명을, 전화회사들은 150,000명, 항공회사들은 116,000명, 거대 유통회사인 Sears는 50,000명을 해고했다. 물론 이것들이 모두 배 교수가 얘기하는 ‘인간 존중’ 혹은 ‘인간 본위의 경영’을 하는 ‘미국의 기업들’이다.
배 교수가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미국의 기업들’을 새로운 노사관계를 체현하고 있는 예로서 제시하고 있으니까, 그러한 오늘날 미국의 자본주의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
지금 미국에서는 매년 약 3백만 개의 안정적 일자리가 항구적으로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불안정 취업,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는데, 지난 3월 8일 미 노동부는 “지난 2월에 705,0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 12년만에 최고의 일자리가 창출되었고 이에 따라 미국의 실업률은 1월의 5.6%에서 5.5%로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발생했던가? 주가(Dow Jones 지수)는 171 포인트 폭락하여 5년만에 최대 폭의 폭락을 기록했고, 미 재무성 증권의 가격도 9년만에 최대 폭의 폭락을 기록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배 교수는 (따라서 ‘구상’은) “현재 미국 기업의 약 30% 내외가 이미 대립 구도를 극복하고 협력 구도로 전환하였다. 이 과정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기만에 찬 발언인가!
지난해에 미국의 조직 노동자 운동을 대표하는 미국노동총연맹 산업별회의(AFL-CIO)의 지도부가 16년만에 교체되었는데, 자본에 협조적인 구지도부의 투쟁적인 신지도부에 의한 교체가 그 내용이다. 따라서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관계의 변화는 배 교수의 주장과는 그 성격이 전혀 반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이고 전략적인 대응 필요

이러한 상황 앞에서, 먼저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전향적 개정 쟁취 및 개별적 노사관계법 개악 저지’, 혹은 ‘맞바꾸기식 개정 반대’와 같은 당면의 목표를 기필코 달성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서는 4.24 노사대회 참석을 계기로 혹시 움틀지도 모르는 ‘참여와 협상을 통해서’라는 유혹을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과정이 그랬던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대중에 기반한 투쟁을 주(主)에 둠으로써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성격상 대응이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구상’에 대한 노동 쪽의 대응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세계사적인 의의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구조변화, 그것이 초래할 사회적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실천적으로 갖추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정치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그런데 상기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이때의 정치가 ‘노동조합(운동)에 의한 정치운동’의 차원을 넘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전략적인 차원의 노동자 정치운동을 준비해 가야 할 때이다. 한/노/정/연

1996-04-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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