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혁 위한 이론생산과 실천투쟁의 산파역 되길
오 세 철 (연세대 교수, 상경대학 학장)
희망없는 정치에 대한 실망이 대안없는 부르조아 지역정치로
흡입되어 붕당적 보수정치의 깊은 뿌리로 드러나는 순간, 연이어
발생한 삼풍백화점의 붕괴참사는 계급착취를 기반으로 한
한국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동시대의 충격적인 두 사건은 우리사회의 근본변혁의 과제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데 중요한 보기가 될 수 있다.
먼저, 삼풍백화점의 붕괴사고를 통해 우리사회 변혁의 과제를
확인해 보자. 우리는 흔히 부실공사로 인한 대형사고의 원인을
‘업자들의 상혼’과 ‘행정관료조직의 부패’로만 진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분노하고, 또 쉽게
잊어버린다. 즉 삼풍 붕괴참사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우리사회의 처방전은 ‘자본가에 대한
윤리도덕의 강조’, ‘행정개혁’, ‘의식개혁’ 등일 것이다.
조금 더 구조적 분석을 하려는 사람들은 붕괴참사의 원인으로
노태우정권 당시의 주택건설정책, 건설자재부족, 행정명령적
관료체계, 먹이사슬구조 등을 거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당수
시민들은 민선시장에게 많은 기대를 걸 수도 있다. 또 김영삼
정권은 노태우 정권을, 민주당과 자민련은 김영삼 정권을
붕괴참사의 책임자로 지목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권력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한국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과 특수한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한,
즉 자본주의가 변혁되지 않는 한 자본주의체제 내부로부터
잉태되어 표출되는 대형사고의 참상은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지자체 선거를 통해 우리사회 변혁의 과제를
확인해 보자. 지자체 선거 결과, 야당이 다수의 지방의회 의석과
자치단체장을 석권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선거결과가 아니라 소위 야당이 석권한 지방정부가 민주와
진보를 향한 사회발전을 얼마나 이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
또 바로 이러한 사실이 지자체선거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성과로서
쟁취된 것이 아닌 이번 지자체선거는 계급정치의 실현이 아니라
보수정치의 재생산과정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를
출발에서부터 지니고 있었다. 즉 지역기반을 지닌 보수정치세력
사이의 쟁투는 필연적으로 그들 세력의 담합과 이합집산으로
점철된다. 따라서 이번 지자체선거에서 김영삼정권의 참패는
적어도 민자당은 찍지말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보수정치세력 사이의 차별성이 없는 상황(민주당과 자민련의
연대) 아래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민주당이나 자민련, 또는 무소속이 이뻐서가 아니다(물론
지역감정이 착종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민자당, 즉
김영삼정권이 밉기 때문이다. 또 김영삼정권에 대한 반대는
자본가계급정권에 대한 비판과 부정, 이해관계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집단과 개인, 지역감정, 민간독재에 대한 비판 등이
복합되어 나타났지만 이른바 문민정부도
반민중적․반민주적․반민족적일 수도 있다는 실체적
경험이 깔려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
지자체 선거는 민중들의 정치적 욕구의 분출구가 또 다른
보수정치세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한국계급정치의 현실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실현이 유일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에게 의존하려
한다거나, 아니면 양김을 반대하는 개혁정치세력(개혁적
국민정당 등의)을 활로로 생각하는 민중운동내의 기류는 올바른
노동자계급의 정치로 막아내야 한다.
충격적인 두 사건이 우리사회의 근본변혁의 과제를 뚜렷이
해주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95년 상반기 임투가 연대
총파업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진보정치가
개혁정치로 탈색되어 나타나려는 이 시점에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가 출범하게 되었다. 세계자본주의와
한국의 독점자본의 이해가 전일적으로 관철되는 세계질서재편의
흐름 속에서 계급적대의 중심축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전선일 수밖에 없고, 형식적 민주가 실질적 민주로, 개량적
진보가 변혁적 진보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족민주운동의 질서재편은 계급운동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계급적대를 중심에 놓지 않는 모든 사상, 모든
실천과 끊임없는 사상투쟁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러한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전략․전술을
연구하고 계획하는 단위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며, 그래서 본인은
몇 년 전부터 사상투쟁을 중심적 과제로 하는 사상이론연구소의
건설을 제안한 바 있다. 또 이는 우리사회의 변혁운동에서 소위
좌파의 철저한 반성을 기반으로 한 대동단결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연구소가
바로 그렇게 건설되고, 다음과 같은 역사적 책무를 다하기
바란다.
첫째, 변혁적 노동운동의 중심사상을 확고하게 정립하고
자본운동에 계급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연구하여, 그 결과가 실천적으로 변혁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구소 이름에 「이론」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바로 사회변혁의 사상이론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계급의 사상을 중심에 틀어쥐지 않는 한
지식인의 연구모임이나 활동가들의 대안적 일터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더구나 사상투쟁의 조직은 이념연합이나 노선절충이
있을 수 없다. 또한 명망가들의 느슨한 집합체가 되어서도
안된다. 사상적 구심은 그 중심이 확고할수록 힘이 있고 투쟁의
전선이 명확할수록 실천에 동요가 없다.
두번째는 계급대중을 중심에 세우는 연구와 실천을 수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중을 대상화하고 공작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좌파들의 패권주의가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저해하고 총체적
전략수립을 혼란시켰던 주범이었음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변화하는 계급적대의 구체적 실천현장에서 노동계급 대중과 함께
연구하고 실천하는 실천연구소가 되어야 한다. 연구소이름에
「정책」이 지니는 의미는 단순히 대안을 제시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대중과 함께 현장을 변혁시켜나가는 실천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이를 위하여 연구소는
민주노조와 공동주체로서 함께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세번째로 연구소는 사회변혁투쟁의 총체적 계획 속에서
변혁역량들을 결집시키는 하나의 매개고리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변혁세력과 연대세력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파적 이해나 인간관계 때문에 변혁세력의
계급적 단결을 소홀히 하고 오히려 사상투쟁의 대상이 되는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은 총체적 변혁전략 수립에 혼선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투쟁의 역사 속에서
계급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모든 운동세력을 포괄하여
단결시키는 작업은 진행되는 계급투쟁과정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사상투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연구소는 전선의 구획을
명확히 선정해 주고 연결시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지나치게 연구소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정도의 역할도 철저하게 수행하지 못한다면
변혁주체로서 떳떳이 역사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중단없는
단결투쟁으로 사회변혁을 앞당겨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