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현장에서 미래를 > 연재-기획 > 목록보기 > 글읽기

 
GM대우 창원 비정규투쟁 지역대책위 활동에 대한 평가
 쟁점: 정규직과 비정규직(2) GM대우 창원공장투쟁 사례

현장에서 미래를  제115호
박 훈

쟁점: 정규직과 비정규직(2) GM대우 창원공장 투쟁사례


GM대우 창원 비정규투쟁 지역대책위 활동에 대한 평가


박 훈 / 금속법률원 경남사무소장




이 글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공식적인 평가를 할 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이를 수행할 만한 구조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우창원 공장 비정규직 투쟁 전체에 대한 평가도 아니다. 비정규 투쟁의 일부분인 지역 연대 사업에 대한 것에 한정한다. 난 “GM대우창원비정규 투쟁 지역대책위”(이하 “지역대책위”)의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먼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대우창원 공장의 비정규직 현황에 대해 살펴보자. 이 공장은 마티스, 다마스, 라보를 생산하고 있고, 전체 인원수는 (비정규직 포함) 3,7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 중 정규직 조합원수는 1,400여 명 정도이고, 현장관리자 230명, 사무직 570명, 직접생산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은 1,200여 명, 외국인연수생 120명, 직업훈련생 60명, 공고실습생 120여 명 정도가 있다. 2005년 4월 지회 설립 이후 한때 비정규직 1,200명 중 비정규직 지회에 가입한 조합원 수는 600여 명에 이르렀고 조합비를 내는 노동자는 300여 명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는 100여 명에 지나지 않고 있다.

지역대책위는 8월 26일 금속연맹 정치파업 이후 연맹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대우차 창원지부에서 먼저 제안을 하고 민주노총 경남본부 운영위에서 설치를 결의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대책위가 정식으로 출범한 것은 9월 22일이었는데, 공동본부장 체제로 하여 민주노총 본부장과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위원장이 본부장을 공동으로 맡기로 하였고,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과 민주노동당만 참가하는 투쟁본부 형식이 아닌 연대지원체로서 위상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사내하청 중 비정규직 지회의 주력 부대가 있는 “대정”이 폐업하기로 한 날이 9월 30일이어서 지역대책위의 구성은 시기적으로 너무나 늦어 있었다. 더구나 지역대책위에 참여하기로 한 창원지부에서 지역대책위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일어났고, 결국 창원지부 대의원 대회가 긴급 소집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당시 창원지부 대의원들 중 일부는 “지역대책위가 공투본 아니냐, 2001년도 대우차 사태처럼 공장을 쑥대밭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라는 기가 막힌 문제제기를 하였다. 이에 지역대책위에서는 창원지부 대의원 대회에 참석을 하여 지역대책위의 활동 방향을 설명하고 참가를 구하는 설득 작업을 하였으나 실패를 하고, 오히려 창원지부 집행부가 신임투표를 덥석 받아들이게 된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부치고 온 꼴이었다. 난 지금도 왜 창원지부 집행부가 신임투표를 수용하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신임 받을 확률이 40% 이하라는 것도 잘 알고 있는 마당에 사내하청 비정규직 투쟁의 커다란 한 축이었던 창원지부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를 한 것은 두고두고 비판받을 만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대정 폐업을 앞두고 투쟁의 열기를 고취시키고 있는 시점이었다.

지역대책위는 이 같이 급작스러운 상황 맞이하여 신임투표 철회를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그러나 철회될 리 만무하였다. 한편으로 지역대책위는 GM대우 노동조합 본조에서 협상의 주도권을 쥐게 되자 본조 위원장과 만나 “도급화”를 제외한 어떠한 방식도 받을 수 있음을 제의하였는데, 결국 내용은 폐업 이전의 현 상태 유지라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비정규직 지회는 최소한의 요구조건으로 2년 이상 근무자에 대해서는 정규직화하고 그 이외의 노동자들에게 대해서는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어 지역대책위와는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대정이 폐업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유언비어가 난무하였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대정에서만 85명의 해고자가 생겨났다. 10월 1부터 3일까지는 연휴기간이어서 철야 농성을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회사는 용역 깡패를 고용하였고 농성장을 침탈할 위험성이 농후하였다. 비정규직 지회는 9월 28일부터 4시간 부분 파업을 시작으로 투쟁을 준비하였지만, 그 이전 9월 한 달 동안 내내 별다른 투쟁을 하지 않았다. 파업 등의 투쟁을 하는 경우 오히려 대정 폐업의 빌미만을 줄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작된 4일 동안의 철야 농성은 시간이 갈수록 동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회사측은 천막 2동을 설치할 때 잠깐의 시비를 건 것 이외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물론 철야 농성에 참여한 인원들이 24시간 순찰을 하고 침탈을 대비한 것도 원인이었지만, 회사측은 창원지부 집행부를 제거하는 것에 더 많은 역점을 두었다. 창원지부 사무장이 이 시기에 구속된 것이나 이후 지부장을 구속한 것이나 모두 GM대우의 비정규직 투쟁을 깨기 위한 치밀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구속된 동지들의 범죄혐의 사실은 잔업과 휴일 특근 거부였다. 노동조합 활동에서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잔업 거부 등에 대해 구속하는 사례는 극히 드문 것이었으나 창원 공장 비정규직 투쟁에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연휴 4일 동안의 농성에 지역대책위의 책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참여하였다. 지역에 동원 가능한 인원들을 결집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그 인원은 20~30명에 불과하였다. 창원지부 집행부가 불신임을 당한 사정 속에서 지역대책위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비정규직 지회가 워낙 조직력이 약한 관계로 무엇을 지도한다는 것도 수월치 않는 일이었다. 다만 지역대책위 내부에서도 전면파업으로 계속 갈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 속에 전면파업을 계속적으로 하기로 하고 비정규직 지회를 설득하였다. 그러나 결국 연휴 이후의 전면 파업은 계속되지 못하였다. 비정규직 지회 자체 토론 속에서 전면파업을 철회하여 조합원들이 현장에 복귀하였기 때문이다.

농성장 유지는 계속되었지만 파업이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농성장에 결합하는 조합원 수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때 이후 지금까지 이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12월 중순경에 GM대우 자본은 지회장과 쟁의부장에 대한 구속을 시도하였지만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바람에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지역대책위 활동은 10월 연휴 기간 농성 이후에는 가동하지 않았으므로 활동 시기는 불과 15일 남짓한 것이었다. 따라서 평가를 할 만한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평가가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비정규직 투쟁 중에서 특히 정규직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투쟁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투쟁에 우호적이지 않다면 캐리어 사내하청이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투쟁과 같은 극단적인 충돌 양상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창원지부는 이런 점에서는 매우 자유로웠다. 창원지부 집행부가 신념을 가지고 비정규직 활동을 지원하고 활동가를 발굴하고 지회 설립을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창원지부 집행부는 조합원들에게 결국은 불신임을 당하였지만 창원지부의 활동은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비정규직 지회 설립 이후에는 금속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조직형식상의 문제로 지역연대체 구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가 있는 조직이 없었다. 창원지부는 금속연맹 소속으로 인천에 있는 본조의 한 지부에 불과하였고,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창원지부에 대한 관할권이 없었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투쟁에서 지역연대체의 구성은 필수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그 누가 주도를 하든 지역의 주된 현안 사업으로 삼을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창원 공장의 비정규직 투쟁은 지회 설립 이후에도 지역에 널리 공유되지 않았다.

2001년 볼보 사내하청 투쟁 이후 비정규직 투쟁은 경남지역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투쟁의 규모와 강도 면에서는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큰 것이었음에도 투쟁에 대한 공유 작업은 거의 전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이 지역대책위 구성을 시기적으로 매우 늦도록 하였고 결성 이후에도 이미 벌여진 사태에 대한 수습을 하는 선에서 그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지역대책위는 비정규직 지회의 요구와는 달리 위에서 본 것처럼 요구안을 너무 축소하여 제시하였다. “도급화를 제외한 어떤 방식도 수용”한다는 것은 폐업 이전의 상태로 원상 복구하자는 것인데 실현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GM 자본은 4월에 불법 파견 판정을 받은 이후로 도급화 방안에 대해 여러 가지를 제시하였고, 실제로 이를 이후 지속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마당에 원상 복구는 도급화된 다른 업체에 조합원들을 신규입사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운 이유가 폐업 이전의 원상복구 수준이라면 차라리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았던 것만 못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만 큼 자괴감이 심했다. 그렇다고 조직력이 되지도 않는 비정규지회가 선도 투쟁을 감행한다는 것도 쉽지 않는 것이었다.

아직 창원 공장의 비정규 투쟁은 진행 중이다. 창원 지부 불신임 이후로 별다른 투쟁이 일어나지 않은 채 기약 없는 천막 농성만이 지속되고 있으나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현재의 창원지부 집행부는 전 집행부에 비해서는 비정규직 투쟁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비정규직 지회가 투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평가는 사실 지역대책위 활동에서 평가할 만 것은 아니다. 지역 연대 사업은 투쟁의 주체가 서지 않는 한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따라서 투쟁의 주체였던 창원지부와 비정규직 지회에서 심도 있는 진단과 대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거기에서 또 다른 시작이 있어야 할 것이다.

2005-12-28 18:19:59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