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 제 ◦ 노 ◦ 동
브라질 노동운동의 최근 동향과 전망
신 중 현 (한국외국어대학 포르투갈어과)
전형적인 국가조합주의의 통제적 노조조직체계와 강압적
군사정권하에서 태동한 브라질의 신노조운동은 민주적인 노총의
결성과 함께 노동자당(PT)을 통한 정치세력화에도 성공한
구체적인 사례로서 한국에서도 그 운동의 역량과 성과에 대한
많은 소개가 이루어졌다. 노동자당의 룰라(Lula) 후보가 두 번에
걸친 대통령선거에서 보여준 선전은 선거를 통한 좌파정권의
탄생이 가능할 것이냐는 기대와 관심으로 모아졌고 이러한
역량의 밑바탕이 된 노동운동의 제도적 공고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다. 그 뒤 보다 분석적인 연구에서
노동운동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브라질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 강조되었고 한국적 현실과의 차별성을 찾는 보다
내실있는 비교연구로 이어졌다. 그 결과 브라질에서의
노동운동의 경험과 모델이 한국적인 현실에 어느 정도의
적실성을 갖느냐는 문제보다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무게를 두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구체적인 결과보다는 브라질의 노동운동이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제도적 결실을 이루기까지 보여 온 노력과
행위자(노동자)들의 노동운동 역량에 대한 평가와 그로부터
우리의 노동운동의 동인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브라질 노동운동의 최근 동향에 대한 이해 역시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내재적인 다양한 특이성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해야 하나 이 글의 성격상 앞 부분에 대한 것은 기존의
소개된 글들을 참조하기로 하고 주로 90년대 이후의 구조변동의
시기에 나타난 브라질 노동운동의 제도적 변화와 정치적 전략에
촛점을 둔다.
브라질 노동운동의 성장과 변화
세계자본주의의 구조 변동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노동운동의
지속적인 약화를 가져 왔다. 나라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노동자들이 산업 재구조화에
따른 축적체제의 변화로 노동조직의 축소, 대의성 상실, 노조의
관료적 기능화에 따른 주변화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맥락의
차이는 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도 예외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한 성장모델의 변화는
국가조합주의 하에서 철저하게 통제, 또는 배제되어 왔던
노동자계급이 민주화 물결을 타고 진정한 사회세력으로서 자기의
목소리를 내보기도 전에 시장의 논리 앞에 또 한번 굴욕을
맞이하였다. 이런 변화의 추세 가운데서 우리는 유독 브라질의
노동운동이 남미의 대부분의 나라의 경우와 다른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다.
특히 브라질은 ‘잃어버린 10년’으로 지칭되는 80년대의
인플레의 악순환과 장기적인 경기침체, 그리고 9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른 국내산업의 구조조정의 지각변동 속에서
노동운동의 위상은 오히려 확대되었고 노동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위한 활로를 열어 왔다. 이를 우선 시기적으로 크게
구분해 보면 1) 78년 신노조운동의 태동 이후 85년 민주화
이행까지 2) 85년 민주정부 수립 후 신공화국에서 일련의
경제안정화정책의 부침이 계속된 90년 대 초까지 3)그 이후
신자유주의 노선의 본격적인 구조조정과 헤알 정책으로 이어진
현재까지이다. 브라질 노동운동의 활성화는 구조변동의 환경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이를 제도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인플레 억제와 신자유주의 노선을 도입하기 위한 일련의
안정화 정책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함에 따라 정부의 정책에
반대와 임금인상투쟁에 대한 노동운동의 결집과 여론의 수렴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임금투쟁과 파업을 통해
노동자세력의 결집과 제도화의 달성을 이룬 것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나 이 점은 90년대 이후의 구조변동과 확연히 다른
점을 보여준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즉 1)과 2)의 시기는
민주화와 반민주적 노동입법의 철폐를 요구하는 정치적 요구가
병행되었고 민주화 이후에는 정부 및 기업과의 대화 채널에
참여하면서도 임금보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전투적인
노동운동에 주력한 시기였다. 그러나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민주노총의 건설에 이어 투쟁적인 노동운동의 기반이 되는
사업장 노동자 조직의 결성으로 노동운동의 저변을 확대하였고
동시에 업종별 임금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 부문에 따른
중앙집중적 노조조직을 육성함으로써 기존의 국가노조체계에
대안적인 노총의 제도적 위상을 이룬 것도 큰 성과였다.
이 시기에 시행된 대부분의 경제정책들은 외채상환을 위한
긴축정책과 인플레 억제를 위한 임금과 물가동결정책이었으나
그러한 정책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함에 따라 정책의 볼모로
잡혔던 동결임금의 현실화와 인플레 미적용분의 보상 문제는
거의 90년대 초까지의 노동운동의 주요쟁점이었다. 즉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 고용의 보장에 역점을 두었을 뿐 새로운
노동관계의 모색과 보다 폭넓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선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러한 입장이 가져 온 현실은 90년 대선에서
룰라를 패배시킨 꼴로르(Collor)정부가 실시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시행에 대한 노조의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에 입각한 경제구조 변동에 대해 그 현상을
일시적인 정책노선으로 간주했을 뿐 새로운 생산관계와
노동조건의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지 못했다. 이러한
관점은 최근 노동계 내에서도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인식부족과 대안적인 프로그램 개발의 부재를 90년대 초의 가장
큰 전략적인 실수로 인정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제도화와 노조 조직의 변화
신노조운동에 이어 기존의 국가조합주의 노조체계에 대한
독자적인 민주노총의 결성이 이루어졌다. 국가노조체계는 최소
행정단위인 市지역별 직능별 단수노조제와 직장노조의 결성금지,
노동부 통제하의 산업별 노조 조직, 그리고 노조세의 국가
관리와 지급, 그리고 노조에 대한 노동부와 노동법원의
직권조정권과 개입권에 그 바탕을 두고 있었다. 민주노총은 국가
노조체계에 대한 독자적인 노조세력으로 이루어졌으나 기존
국가조합주의 체계에 있던 노조들이 별도로 가입하는 수평적인
연합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 뿐 산별노조의 체계를 처음부터
구성하지는 못했다. 민주노총의 결성과정에서 조직방향과 기존
노조체계에 대한 신노조운동내의 입장 차이로 인해 양대분파로
나뉘어졌다. 기존의 노조조직을 이용하되 노조 조직체계의
개혁을 주장한 CUT(단일노총)와 기존 노조체계의 지도부 장악과
개혁보다는 성과적 노동운동에 역점을 두는 CGT(전노총)로
발전되었다. 전자는 신노조운동이 태동한 상파울로 인근
공업지역에서의 파업을 주요한 무기로 사업장 단위의 조직에
역점을 둔 직접 협상방식을 추진하여 조합원들에 대한 새로운
노사협상의 길을 열어주는 한편, 조직과 노조원의 강한
하부결속을 이루었다. 반면 후자는 주로 기존의 수직적인
노조체계와 관변기구를 통한 협상방식으로 보다 쉽게 실리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나 조직내의 이질성과 협상방법의 차이로
조합원들의 결속을 얻어내지 못함으로써 그 후 많은 조직의
변화를 겪었다.
<그림> 브라질 주요 노총의 형성 과정 1.
노동자계급전국회의(Conferncia Nacional da Classe
Trabalhadora), 2. 노동자계급전국협의회(Coordenao Nacional da
Classe Trabalhadora), 3. 전노총(Central Geral dos
Trabalhadores), 4. 전노맹(Confederao Geral dos
Trabalhadores), 5. 노조세력(Fora Sidical), 6.
노조계급주류(Corrente Sindical Classista), 7.
단일노총(Central nica dos Trabalhadores). 이외에도
독립노조연합(USI:Unio Sindical Independente)이 있었으나
실질적인 노총조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산하 노조수는 1993년
기준이며 CGT3의 경우는 대략적인 수치임.
(산하노조수)
CONCLAT2
(1983)
CGT3
(1986)
CGT4
(1989)
CGT4
736
FS5
(1991)
1,147
CONCLAT1
(1981)
CGT3
(1989)
CGT3
500
CSC6
(1989)
CUT7
(1983)
CUT7
1,917
즉 CUT의 경우 지역별 직장단위의 파업을 주도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기초 조직과 동원에 역점을 두게 되었고 법에
직장노조의 결성이 금지되어 있음에 따라 직장노조의 성격을
갖는 ‘직장위원회’의 결성이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CGT계열은
주로 기존의 메카니즘을 활용한 임금협상을 지향함으로써 보다
친정부적이고 관변적인 노조성향이 강하다는 비난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과 협상의 방식 차이로 선명성을
획일적으로 판가름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각 노조들이 갖고
있는 조직화 수준과 투쟁능력에 따라 협상전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투쟁적인 전략을 통해 보다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노조가 있는 반면, 기존의 협상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노조들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CUT는 산하노조들의 수평적인 연합체를 유지하면서
기초 조직의 활동을 강조하는 분산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CGT는
하위조직보다는 노총의 상위조직에 보다 큰 비중을 가졌다.
CUT의 이러한 조직체계는 기존의 국가노조체계에 대한 대안적인
중앙집중적 조직의 필요성과 업종별 임금 협상에서 노조의
결속를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수직적인 체계로 점차
변모해갔다. 1986년 CUT내의 산하 노조들을 업종별로 조직하기
위한 국(局 : Departamento Nacional)체제가 도입되었으며
은행노조국을 비롯, 금속노조국, 석유노조국이 차례로
결성되었다. 산업업종별로 7개국을 조직하기로 하였으나 노조의
업종 성격에 따라 직종별 국局도 혼재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업종별 局체제의 수직적 제도화 수준은 미약하였으며 CUT 내의
독자적인 노조체계를 이루기 보다는 해당 산업부문 노조들간의
협의체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임금협상이 직종에 따라
월별(data-base)로 구분되어 있어 동일 부문의 노조들의
조직화가 자연적으로 강조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초까지 임금협상이 인플레적용분의 산정문제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즉 업종이나 직종별 협상보다는 주로
중앙노총 차원에서 협의되었고 또 부분적으로는 파업을 통한
사업장노조 중심의 임금협상이 이루어짐으로서 업종별 협상과
조직체계의 제도화의 필요성이 덜 요구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88년 신헌법의 노동 입법에 대한 개정 협의에서 노동부의
노조설립 인가권 및 중재개입권의 삭제, 노총의 결성 금지조항의
삭제와 공무원 노조결성 허용 등을 이룸으로써 보다 민주적인
개혁이 이루졌으나 기존의 조합주의적 국가 노조체계의 골격은
바꾸지 못했다. 92년 꼴로르 정부하의 노동법개정 협의에서도
국가노조체계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노조세, 업종별 1지역
1노조제, 직장노조 허용, 노동법원의 역할 재조정 등에 대한
근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입법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인하여 법개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기에는 기존의
조합주의적 제도가 갖는 유인요소도 있다. 지역단위의 기존
직능별 노조는 단수노조제로 독점적 대의권을 보장받고 또
노조원의 동원 정도에 관계없이 정부로부터 일정한 노조세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제도적 존속이 가능하였다. 이들은
어용노조로 불리웠으며 대부분의 경우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의
요구를 덜 받는 직종부문이었다. 또 노동자들의 동원과 조직화가
어려운 상당수의 노조들은 노사협상이나 임금투쟁보다는
노동법원을 통해 보장된 혜택을 누리는 것이 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전투적인 노동운동에 주력해 온 노조들의 경우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노조 동원력과 협상력을 과신함으로서
국가조합주의의 제도적, 법적 개혁에 주력하지 않았다. 그
이유야 어찌되었건 두 번에 걸친 노동법 개정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조합주의 노동체계를 존속시킨 것은 노동운동계의 큰
실책이었다.
그 후 노동운동은 이에 대한 반성과 함께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여파에 따른 새로운 노사관계의 모색,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노총의 제도적 조직의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
부문협의회와 중위조합주의
92년 자동차 산업부문에서 시작된 부문협의회의 경험과 이에
따른 브라질에서 노사정 관계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살펴보자.
80년대 이후부터 부문협의회가 논의되기까지 브라질의 노사정
관계는 제한적이었으며 사회협약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우선
앞서 구분한 시기별로 보면 민주화 시기에는 과도기 이행을 위한
거국적 정치협의체였던 ‘민주연합’이 사회 제세력들의 대통령
직선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보수화되고 노동자당과 노총들이
이를 탈퇴함으로서 ‘협약’이 아닌 ‘위로부터’의 엘리트적
민주화 이행 모델의 전형으로 평가되었다. 그 뒤 민간정부의
시기에서는 인플레 억제를 위한 일련의 거시경제정책들이 임금과
물가동결에 주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해당사자인 노사정 간의
어떠한 사전 합의도 모색되지 않았다. 물론 경제정책이 실패할
때마다 현상타개를 위한 방법으로 사회협약이 제시되었으나
구체적인 노사정간의 진정한 합의 도출보다는 경제정책의 고갈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유지책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협약의 낮은 전통은 90년대 이후 경제환경의 변화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꼴로르 정부가 시행한 신자유주의 노선의 인플레 정책마저도
실패에 이르게 되자 브라질 경제는 과거와 같은 인플레를 동반한
성장이 아니라 경기침체와 고인플레가 병행되는 전형적인
스테그플레이션이 유발되었고 농업부문의 부진과 GDP마이너스
성장으로 급격한 고용감소 사태가 빚어짐에 따라 투쟁적인
노동운동은 실효를 보지 못했다. 경기침체에 따라 노조의
동원력이 하락함에 따라 노조는 투쟁보다는 전술적 협상
모색이라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노동관계의 정책적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80년대에 걸쳐 브라질 시장에서 독과점지배를
유지함으로써 기업들은 시장의 지배로부터 얻는 이윤을
노동자들과 분배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으나 경기침체와
개방화에 따른 새로운 경쟁은 그런 것들을 더이상 가능케 하지
않았다. 기업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단순기술직
근로자들의 감축과 노동의 생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했고
이는 곧 노사관계, 노동시장, 단체협상의 틀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노동부문은 투쟁적 노동운동에서,
보다 집중화된 임금협상과 노사관계에 기초를 둔 유럽의
사민주의 모델을 대안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임금자유협상제를
골자로 하는 90년대 초의 다원주의 물결은 노동시장의
탈규제화와 분산화된 노사협상에 기초를 둔 시장지향의 미국식
모델을 채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좌절과 압박에 직면한 노조는 신조합주의적인 입장에서
국가의 발전정책과 결부된 산업부문별 협상에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브라질 자동차산업의 상징적인 의미와 특수한
상황이 결부되어 있었다. 노사정의 새로운 관계는 꼴로르 정책
이후 정부가 경제정책에 투명성을 보이고 보다 점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표방함에 따라 새로운 임금협상방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임금협상의 정착은 92년 이후 경기회복으로
기업가들의 협상입지에 보다 여유가 생겼고 기업부문의 역할이
확대됨에 따라 가능했다. 노동자측 또한 실질임금수준의 유지와
고용보장이 덜 심각한 문제로 고려되자 ‘생산성에 대한 보상과
이윤의 참여’의 문제가 개진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시장의 개방으로 산업부문에 따라 산업재구조화의
과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노조는 민영화와 개방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선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서 이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었다.
국가조합주의 노조체계의 대안으로 노총의 보다 집중화된 수직적
조직체계의 변화를 모색해오던 CUT는 자동차산업 부문에서
시작된 부문협의회와 새로운 부문별 노사정간의 임금협상 모델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직종별 局체제를 보다 독자적인
노조체계인 업종별 ‘전국연맹’체제로 전환하였다. 1992년
CUT산하의 금속노조의 전국 총회에서 금속노조 ‘전국연맹’이
결성된데 이어 은행노조와 화학노조의 전국연맹조직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열린 CUT 5차 총회에서 업종별로 18개의
수직적인 중앙노조조직의 결성을 합의했으나 그 조직체계는
노조의 직종성격에 따라 전국연맹(직장위원회, 지역노조,
州연합, 전국연맹의 4단계), 전국연합(직장위원회, 지역노조,
전국연합의 3단계), 전국局(직장위원회와 지역노조의 2단계
연합체)으로 여러 형태를 띄었다. 이는 보다 큰 산업부문으로
묶을 수 있는 업종의 여부와 기존의 노조조직과는 별도로
CUT산하에서 처음 조직된 노조부문의 경우로 구별된다. 다시
말하자면 직종별노조와 업종별노조의 성격이 그 규모에 따라
여러 형태로 혼재된 조직체계이다. 이러한 수직적인 산하
노조기구를 둔 또 다른 이유는 해당 업종별로 주도적인
노조기구를 이룸으로써 기존 CUT에 가입되지 않은 해당 업종의
노조의 가입을 통한 조직확대를 꾀할 수 있는 한편 복수노조제가
시행될 경우에 대비한 노총조직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산업부문의 회생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채택되어진 자동차
부문협의회는 세수혜택을 통한 소비증대와 금융지원, 투자와
생산성향상, 그리고 고용증대와 임금인상을 이루기 위한
다각적인 정책이 노사정의 합의로 이루어졌다. 자동차산업의
부문협의회는 93년 초 최종 합의 되었으며 이러한 성과에
고무되어 93년 하반기까지 24개의 산업부문협의회가
결성됨으로써 중위적인 수준의 노사정 간의 합의를 통한 새로운
조합주의 모델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부문협의회에서는 임금협상에 국한되는 기존의 사업장별
노사관계에 비해 보다 광범위한 정책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또한 부문협의회는 보다 거시적인 산업별 협상수준의 경우에
안게 되는 부문 내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시에 사업장이나
노조 단위의 노사협상체제인 다원주의적 모델이 안게 되는
노조간의 불균형을 수렴할 수 있는 중간 모델로 볼 수 있다.
산업간의 심화되어 있는 이질성과 노동관계의 이중적 구조가
존재하고 있는 브라질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용은 시장위주
일변도보다는 국가와 사회, 보다 좁은 의미로 보면 정부, 기업,
노조의 합의를 통해 현실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과를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부문협의회를 통한
새로운 노사정 모델은 여러가지의 현실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우선 산업부문내의 생산체계의 특성에 따른 부문별 참석
수준이 다양하고, 또 정부의 관련부처와의 정책조율문제,
해당부문의 지역적 분포도, 그리고 산업부문간의 하부
생산체제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수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또 협의회에 참석하는 대표들의 대의성과
합의된 결정에 대한 소속집단의 통제력의 정도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노총조직의 부문별 관련 산하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의사 결정과정의 민주화 문제가 핵심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CUT는 생산현장의 기층 노동자들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입장에서 직장노조의 성격을 갖는 직장위원회의
조직을 확대하고 이들을 다시 관련 부문별로 재조직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효율적인 부문별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업종별 수직체계는 노조의 지지기반의 분산화와 집중화의
전략이 동시에 추진되는 형태로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자동차
부품산업 노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FS와 CGT 등의 다른
노총들은 초기에는 부문협의회의 활동에 소극적인 입장 표명과
함께 참여를 거부하였고 부문협의회가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되자 그 이후에 참석하였다. 이들 노총들은 중심적인 세력을
이루고 있는 몇몇 부문을 제외하고는 산하노조들의 조직화,
노동운동을 통한 기층의 확대와 다양한 부문의 노조들의 결집을
- 과거 임금 협상전략에서 성과적 노조운동에 주력함으로서
실질적인 결과는 얻을 수 있었으나 - 해내지 못했다. 이에 반해
CUT는 선진 노동부문이 사업장단위의 노사협상제에서 노조의
규모와 동원 정도에 따른 협상력의 차이를 인식,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보다 중간 규모의 협상채널, 그리고 이들 부문간의
불균형과 이질성을 보완하고 수렴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동향과 향후 전망
새로운 노사정 모델로 확대되어 가던 부문협의회의 성과는 94년
대통령선거와 이에 앞서 현 까르도주 대통령이 재무장관
재임시에 시행한 헤알(Real) 경제 정책의 여파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헤알 거시경제정책에 대해 노조와 노동자당은 과거
실패한 경제정책들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인식하고 반대입장을
표명하였으며 그 정책의 성과로 까르도주 후보가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다. 이는 94년 말
룰라진영의 대선전략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꼴로르정부의
신경제정책과 까르도주의 헤알정책에 대한 노조와 노동자당의
능동적인 대처방식의 부재는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뚜렷한
인식과 대안을 가지지 못한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부재가 전세계의 좌파진영의 공통된
문제였으나 미시적인 수준에서나마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부문정책의 수립을 위해 마련된 기존의 협상채널과
합의를 인정하지 않고 시장의 자유를 보다 강조함으로써 94년 말
이후 부문협의회의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물론 이는
헤알정책의 신자유주의적인 성격보다는 인플레 안정을 위한
안정화 정책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달러화 태환정책과
고금리를 바탕으로 하는 인플레 억제정책은 수출부문을 비롯,
대부분의 국내산업의 침체를 가져왔고 또 동시에 개방화의
가속화로 95년 상반기부터 심각한 대량 실업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정부의 시장위주의 조정정책에 따른
실업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노사협의에서 과거와 같은 임금협상과
고용유지 등의 단기적인 문제에 논의를 집중하게 되었다. 따라서
산업부문간의 조정메카니즘을 마련하고 부문협의회를 심화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정책협의를 진행시키지 못했다.
또 95년부터 본격화된 헌법개정 논의가 주요 안건으로 부상하게
됨에 따라 부문별 노사협의의 진행보다는 기존의 노사관계의
관련법의 정비에 주력하게 되었다. 노총들은 노동입법의
개혁문제가 사회보장법의 개정과 관련되어 헌법개정이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됨에 따라 거시적 차원의 정책 협의에
주력하게 되었으며 중위적 수준의 부문협의회의 협상은
소강국면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안정화를
위한 거시경제정책의 영향과 기존의 법적․제도적 절차의
정비를 위한 과도기적인 현상으로 보이며 인플레의 문제가
극복되고 내수시장과 수출부문의 성장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
시점에 이르면 부문협의회 논의는 다시 중요한 위치를 점할
것으로 전망된다. 까르도주 정부 역시 경제정책 사안별, 그리고
헌법개정문제에서 노동자당과 CUT 등의 노총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때 사회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시장일변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에만 주력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CUT의 경우 95년 전국총회에서 모든 산하노조의 수직적
조직체계(업종별 전국연맹체제)로 재조직하기로 결의했으며 96년
초 CUT 연례정책 보고회에서 헌법개정이 이루어지는 대로
부문협의회를 통한 새로운 노사정 모델의 정착에 주력할 것임을
밝혔다. 물론 이 체제가 법적지위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사업장노조, 복수노조제 등에 대한 헌법개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브라질의 노동관계에 존재하는 이질성, 혼재된 생산체제 유형,
그리고 다양한 산업부문간의 격차를 고려해 볼 때 다원주의적
질서보다는 시장을 통하되 국가의 중재를 통해서 그런
차이점들이 수렴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문협의회를 통한 중위조합주의 모델은 이러한
차이점을 수렴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이며 노동자들의 참여 속에
노동의 유연화를 이루고 산업부문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노사관계의 성패는
노동자세력의 동원력과 조직화의 문제에도 직결되지만
무엇보다도 국가발전을 위한 노사정 당사자간의 새로운 인식이
중요하며 정책입안자의 의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브라질이 개도국의 현실에 맞는 대안적인 노동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