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와 초점
2005년 가을 프랑스 소요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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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영 /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1. 프랑스가 아닌 모두의 문제
2005년 10월 27일 두 명의 10대 아랍계 청소년이
감전사(感電死)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프랑스 소요사태는 보름
이상 지속되다가 이제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프랑스
공화주의적 통합모델의 실패’, ‘20년 묵은 시한폭탄의 폭발’,
‘이민자들의 분노’ 등의 제목 하에서 보도되는 언론의
기사들은 한편으로 20년 후의 우리의 모습을 경계하고 준비할
것을 주문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 ‘산업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를 통해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10개 나라
이상에서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약 40만 명이 넘는다.
불법 이민노동자를 포함한다면 그 수는 100만 명에 이를 것이다.
현재 대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체불·사기·폭행 등 적지
않은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으며, 한국인들에 의한 각종 차별과
편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그들은 10여년의 기간
동안 지역사회에서 나름대로 경제적, 문화적 기반을 형성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감안한다면 일정한 시점 특히 프랑스와 같이
이민 2~3세대가 출현하여 그들이 사회적 진출을 시도하는
시점에서 그들의 불만이 표출될 가능성은 다분히 존재하고 있다.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현재의 프랑스 소요사태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름 동안 지속된 차량방화 등의 소요 사태는 2004년 마드리드나
올해 여름 런던에서 발생했던 계획적인 테러와는 다른 성격의
우발적인 불만 표출의 사건이었다. 아마도 겉보기엔 몇 년 전
로스엔젤레스에서 있었던 흑인폭동 사건과 유사한 성격이라고 할
것이다. 두 명의 아랍계 청소년이 감전사하면서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집단적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이 우연적 사건의 폭발은
다양한 계기들의 결합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 사건에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다양한 계기들을
‘나열해’봄으로써 이 소요사태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20년의 시한폭탄의 폭발’이라는 신문기사의 제목처럼
단지 20년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은 좀 더 엄밀하게
들여다본다면 200년 이상일 수도 있다. 프랑스 혁명 이래
형성되어 온 프랑스라는 국민국가(nation-state)의 통합의
방식과 국가의 역할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근대의 정치체로서 국민국가 자체가 갖는 한계점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의 시점이 유럽통합이라는
새로운 정치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
복합적일 수 있다.
2.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피해자로서 북아프리카 이민자들
먼저 조금 긴 시간 속에서 아랍 이민자들의 불만표출이라는
해석은 프랑스의 간략한 이민사를 들여다본다면 곧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노동인구의 부족을 겪어 왔던 프랑스로서는
노동인력을 유럽이나 여타의 지역으로부터의 이민을 통해
해결하여 왔다. 사실 6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프랑스가 경제적
호황기에 계속 노동인력 부족 사태를 겪었던 것은 인구의
상당수가 농업에 종사한다는 사실에 기인하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기를 거치면서 기존 봉건귀족과 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토지들에 대한 광범위한 분배와 분할이
이루어지면서 19세기 프랑스는 소규모 자영농의 시대가 되었다.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의 루소적인 ‘소생산자들의 사회’에 대한
꿈 역시 소농(小農)들을 지속시키는데 일조한다. G. Noiriel
(1986). Les ouvriers dans la société
française: XIXe-XXe siècle (Paris: Seuil); S.
Berstein (1999). dir. Les cultures politiques en France
(Paris: Seuil). 현재 유럽연합(EU)의 예산의 40% 이상이 프랑스
농민에 대한 농업보조금으로 지출된다는 사실 역시 프랑스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때문에 프랑스는 필요한 노동인력을 이민을 통해 해결하여
왔다. 첫 번째 이민의 물결은 19세기 동안 진행된 산업의 성장
시기에 주로 이탈리아나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 유입된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약 110만
명 정도의 이민자들이 유입되었다. 이하 이민과 관련한 수치들은
P. Bernard (1993). L‘immigraion (Paris: Le
Monde-Editions)에서 재인용한 것임.
두 번째 이민의 물결은 전쟁을 통해 상실된 노동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주로 이탈리아와
동유럽으로부터 왔다. 1930년대 프랑스 총인구 중 이민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6.4% (270만 명)이었으며, 이것은 프랑스를
미국과 캐나다와 함께 이민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게 하였다.
세 번째 이민의 물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광의
30년’이라는 호황기에 부족한 노동인력을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주요하게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받아들이면서 이루어졌다.
또한 알제리 전쟁이 끝나면서 광범하게 이민노동자들이
유입된다. 현재까지 세 번에 이르는 이민물결을 통해 공식적으로
합법적인 이민인구는 프랑스 전체인구의 6.4%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민자들의 구성의 변화를 살펴보면 1975년 55%를 차지했던
유럽지역의 이민자들이 1990년에는 36%로 상대적 감소를 보인
반면에 북아프리카의 이민자들이 그만큼 증가하였다.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은 합법적으로 약 3백만 명이지만 불법적인 체류자들을
포함한다면 6-7백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번 소요사태의 경우 이민사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북아프리카
이민자들, 특히 이민 2~3세대가 주요하게 불만을 표출하였던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이민의 물결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인종 · 종교 · 문화 등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럽적이라는
의미에서 동질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커다란 어려움 없이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었다면, 북아프리카 지역 출신의
이민자들은 인종 · 종교 ·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유럽문화와 이질성을 지녔고 따라서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민 2~3세대들이 출현하게 되고 이들의
정체성(identity)이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기 시작한다. 그들은
프랑스의 국민교육과 공교육 체계를 통해 프랑스의 시민으로
교육되고 성장하지만, 동시에 부모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종교적
· 인종적 정체성이 그들의 프랑스 공화국에의 통합을 일정 정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부딪히는
장벽은 그러한 정체성의 갈등을 심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이민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2002년 대선에서 시라크 대통령이
재선되고,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함으로써 그동안 사회당 정권
하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급속하게
진행된다. 1995년 겨울 시락의 첫 번째 대통령 임기 시작과 함께
쥐페 총리에 의해 시도되었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그해 겨울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파업에 의해 저지당하였다. 그 후
죠스팽 사회당 총리에 의해 일정한 유보 속에서 서서히
진행되었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2002년 시락 대통령과 우파
내각의 출범과 함께 다시 시작되었다. 시락이 대선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은 기존 좌파 정부의 정책에 반하여 소득세
감면, 공기업의 민영화, 고용창출을 위해 부담하던 국가기금의
축소, 그리고 35시간 노동제의 폐지 등이었다. 이러한 공약은
내각을 담당하는 라파랭 총리에 의해 본격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1990년대 단기간 동안 집권하였던 우파에 의한 개혁은
상대적으로 급격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중점을 두었고, 그것은
계속 노동자와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1995년 겨울 프랑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20여일 이상 계속된 파업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하는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당시 파업을 통해
프랑스 노동자들은 우파 쥐페 총리가 제안한 개혁안을
철회시켰고, 이것을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반세계화
세력들이 결집하게 된다. 광범위한 좌파세력을 결집하여 조직된
대표적인 반지구화 운동조직은 1998년에 결성된
ATTAC(Association pour une taxation des transactions
financièrs pour l'aide aux citoyens. 금융거래에 대한
세금부과를 통해 시민들을 돕기 위한 모임)이다. 1998년 MAI에서
프랑스의 탈퇴, 2001년 토빈세 부과, 2004년 세계 사회포럼 결성
등 다양한 반세계화 운동에서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왔다.
S. Waters (2004). "Mobilising against Globalisation: Attac
and the French Intellectuals". West European Politics. Vol.
27. No. 5.
2002년 시락 대통령과 라파랭 총리에 의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재개됨에 따라 노동자들의 저항 역시 다시 시작된다. 2002년
겨울 철도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7만여 명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공기업 민영화 반대’, ‘사회보장 및 연금혜택 고수’ 등을
외치면서 파업에 돌입하였다. 그리고 이후 매년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반복되었고, 2005년 3월 100만 명에 이르는 민간부문
노동자들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기존의 35시간 노동제 유지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함께 거리로 나섰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주요한 방식은 사회적 안전망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개혁하였던 좌파정권과는 다른 것이었고,
따라서 빈곤계층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이민노동자들이 주요한
희생물이 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의 약화 속에서 빈곤층을
형성하는 이민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프랑스 시민으로 성장한 이민 2~3세대들은 취업이라는
관문 앞에서 이름과 성이 나타내주는 출신성분 때문에 번번이
좌절된다. 2004년 프랑스의 전체 실업률은 10%가 못되지만,
취업희망 계층이 집중되어 있는 20대의 경우 10%를 훨씬 넘고
있다. 더구나 북아프리카계 출신의 경우 16-29세 젊은 층의 경우
40% 안팎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3. 반테러리즘/반이슬람주의 부상(浮上)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휩쓸면서 프랑스 내에서도 중도우파
정당과 좌파 사회당 간의 공약에서 큰 차별성이 나타나지 않고
두 정당 간의 차이가 약해진 반면, 극좌와 극우 정당의 세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80년대 이후 정부는 좌-우를
진동하면서 구성되었다. 사실상 좌/우파 정부의 정책에 있어서
연속성은 존재하였고, 다만 그 정책의 완급에 있어서 차별성만을
보여 왔다. 따라서 프랑스 유권자들의 입장에 좌우를 번갈아
투표를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좌우의
연속성에 대한 불만이 극좌와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의 표시로
드러나면서 상대적으로 그들의 성장을 뒷받침했던 것이다.
사회당과 중도 우파 정당들이 번갈아 정부를 장악하면서 일정한
정책상의 수렴을 보였다면, 극좌와 극우 세력들이 현 시점의
쟁점들을 더욱 분명히 폭로한 측면이 있었다. 유럽통합 과
실업(그 원인 제공자로 이민자라는 극우파들의 분석) 등의
문제에 대해 극좌와 극우의 목소리는 자극적이었다 하더라도
유권자들의 표를 모을 수 있었다.
따라서 좌우 정당의 정책 유사성 속에서 2002년 대선기간 이래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는 테러방지와 치안강화이다. 2001년 9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테러와 2002년 대선 직전의 파리
근교에서의 테러라는 배경 속에서 우파의 치안에 대한 강조는
일정한 설득력을 가졌다. 강력한 대선후보인 사르코지
내무부장관은 경찰권의 확대와 불법행위에 대한 자의적 결정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한다. 2003년 10월 21일 30여개 인권단체와
노조, 사회당 등의 반대성명과 인권침해에 대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사르코지 내무부 장관은 “공공안전이야말로 공화국의
이념”이고, “일부지식인들의 현실을 외면한 반대”라는 주장을
통해 서민들과 외국인에 대한 억압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였다. Le Monde, 2003년 10월 24일자.
사르코지 내무부장관의 강경책은 지난 대선에 나타난 민심의
향방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1월 16일 한
여론조사(실행기관: Ipsos-Le point)에 따르면, 사르코지
내무부장관의 강경진압에 대한 중도우파 및 극우 성향의
프랑스인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사회당 지지자들의 44% 이상이
지지를 보내, 전체적으로 68%가 지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에
따라 내무부장관이자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의 총재인
사르코지는 차기의 강력한 대통령후보를 지목되고 있다. http://www.ipsos.fr/ 다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프랑스의 전반적인 우경화 및 반이슬람주의를 엿볼 수
있다.
확대한 극우세력을 의식하여 일부 이민노동자들을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극우세력의 표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우파 정부의 치안 강화와 그를 통한
불법노동자(사실상 아랍계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공격은 현
시점의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를 일정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드러났던 사건이 바로 ‘히잡
사건’이었다. 2004년 2월과 3월 ‘종교적 상징물을 학교 안에서
드러내 놓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하원과 상원에서 여야의원
대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3월 15일 법’으로 명명되는
이 법은 1989년 9월 파리 북부의 끄레이으(Creil)의 중학교에서
세 명의 무슬림 여학생이 수업시간에 ‘히잡’을 착용했다는
이유에서 추방되면서 촉발되었던 종교에 대한 공화국의 원칙과
관련한 논쟁을 일단락 짓는 것이었다.
‘히잡’ 착용이 처음으로 문제가 되었던 1989년의 경우 당시
교육부장관이었던 사회당의 죠스팽은 세속주의 원칙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학생들의 학업을 위해 퇴학을 반대하였다.
그리고 1989년 11월 27일 결정을 통해 최고행정재판소(le
Conseil d'Etat)는 “종교적 신념을 나타낸다고 믿는 기호들을
착용하는 것이 세속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며”, 선동
등의 목적이 있지 않는 한 학생들을 퇴학시킬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김남국 (2004),「영국과 프랑스에서 정치와 종교:
루시디 사건과 헤드스카프 논쟁을 중심으로」,『국제정치논총』
44집 4호.
하지만 2004년 3월 15일의 법은 가시적인 종교적 상징의
착용만으로도 퇴학시킬 수 있는 요건으로 인정한 것이다. 종교적
상징을 착용했다는 것이 가시적으로 드러났을 때 제재(制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런 행위들은 ‘파행적인 공동체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으므로‘ 공화국의 정교분리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배하는 것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박단 (2005), 「프랑스
공화국과 무슬림 여학생의 교내 히잡(헤드스카프)
착용금지」,『역사학보』 185집.
이 법안에 녹색당과 공산당의 일부를 제외한 우파 정당들과
사회당까지도 모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사회적 분위기의 명백한
전환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사실 1980년대 후반 이후 프랑스 이슬람 조직들은 일반적인
인권단체들의 반(反)인종주의적 정책에 동조하는 단계에서
이슬람의 재조직화와 부흥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인 동원의
성격을 띠기 시작하였다는 점도 프랑스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데 한 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김남국, 앞의
글.
이슬람 여학생이 히잡을 착용하는 경우가 단순히 자신들의
공동체의 문화를 표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 프랑스라는
서구 문화에 대한 거부를 표시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21세기 들어서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는 서구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충돌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2004년에 이러한 분위기가 반영된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프랑스 극우정당들에 의해 사회경제적 상황의
악화 특히 높은 실업과 치안불안의 원인으로 이슬람 이민자들이
지목되고, 이러한 주장이 일정한 영향력을 얻고 있다는 것(지난
대선에 나타난 것처럼)도 좌우정당 정치가들을 변화시킨 이유일
것이다.
이번 소요사태가 진정되면서 프랑스 정부가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정책들은 이전보다 더 강력한 치안정책과
이민정책이다. 사르코지 장관은 의회에서 “폭력 위에 미래가
건설될 수 없다”고 천명하면서 강경방침을 재확인했고,
교외지역에서의 대대적인 범죄소탕령과 그것의 정례화를
선언하였다. 또한 이민법에 있어서도 더 엄격한 방식으로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강경책들이 교외지역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지만, 그 역시 기존
방식의 연장선상에 한정된 것이다. 즉 프랑스의 이민자 정책의
기본적인 원칙은 ‘인종’과 ‘이민자집단’으로서의
불인정이며, 그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개인’ 차원에서의
사회에의 통합이라는 원칙이다.
4. 유럽의 정체성과 ‘문화적’ 인종주의
2005년 5월 27일에 시행된 유럽연합 헌법에 대한 프랑스
국민투표의 결과는 ‘반대’였다. 유럽연합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던 프랑스에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은 유럽연합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유럽에 대한 반대의 의미가
크다. 이미 1995년과 2002년 겨울 우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항하여 대규모 파업을 단행했던 프랑스 노동자들은 현재의
우파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방향의 유럽통합, 즉 신자유주의적
유럽을 원치 않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약화시키면서 단지 상품시장과 노동인력 시장의 확장을 통해
동유럽의 값싼 노동인력을 받아들이고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하려는 것에 대해 제동을 건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계속
제기되어온 유럽연합의 민주주의와 정체성의 결여라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좌파 지식인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문제로서 유럽통합이 유럽을 구성하는 인민들의 의사와
분리되어 브뤼셀의 유럽 테크노크라트들에 의해 의제(議題)가
설정되고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프랑스뿐만 아니라 그 뒤 여러 나라에서 유럽연합
헌법 비준을 위한 국민투표는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여러 나라들의 통합에 대해서는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유럽통합이 미국과 아시아의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이룬다는 점에서 유럽 개별 나라들의
자본축적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동시에 일국적 차원에서 국가를 통해 이루어져 왔던
헤게모니적 전략 즉 국민적 통합의 기능은 일정하게 유럽적
차원에서 진행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른바 ‘유럽적
정체성’의 형성이라는 과제가 그것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만들어진
‘네이션(nation)’이라는 공동체는 분명 일종의 허구적 또는
‘상상의’ 공동체(역사적 기원에 대한 강조, 상징을 통한
정체성의 형성 작업, 애국주의 또는 민족주의를 통한 동원)였다.
이 과정에서 ‘인민적 제도’로서 일반화된 학교는 모국어,
모국의 역사에 대한 교육을 통해 언어적 공동체, 운명공동체라는
국민적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E. Balibar(1992). 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Paris: La
découverte); E. Balibar et Wallerstein, I. (1990),
Race, nation, classe. Les identités
ambiguë̈s (Paris: La découverte).
프랑스의 공화주의적 정체성의 보루로서 학교는 결코 침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또한 인종관념의 상징적 핵심으로서
‘혈통’은 민족공동체를 계급의 경계를 넘어 가상적으로
확대되는 상징적 혈연(학교를 통해 재생산되는 통시적
역사성)과, 친족관계에 근거하는 ‘가족공동체’(국민적
공동체의 기초 단위이자 재생산 단위)로서 표상하게 된다.
민족주의는 이러한 방식으로 재생산되는 민족공동체의
동원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포섭과
배제를 작동시키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프랑스의 공화주의는
‘민족적 공화주의’였으며, 좌우를 막론하고, 국가이익의
방어와 국가안전이라는 명목 속에서 결집되어 있는 것이다. E.
Balibar (2001), Nous, citoyens d'Europe? Les
frontières, l'Etat, le peuple (Paris: La
découverte).
이와 같이 일국적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민족주의를 통한 국민적
통합의 문제는 현 시점에서 유럽적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소요사태와 관련하여 유럽통합의
진행 속에서 점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극우세력들의 강조점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 일국적 형태의 극우민족주의는
유럽통합에 반대하여 왔지만, 그 진행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기존 혈연적 민족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유럽 또는
서구) 문화에 대한 강조가 주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새로운 우파(Nouvelle
droite, New Right)’의 강조점은 인종적인 것보다는 문화적인
것에 주어진다. P.-A. Taguieff (1994), Sur la nouvelle
droite(Paris: Descatres & Cie).
일국적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민족주의적 동원의 방식은 유럽적
차원에서 유럽시민의 동원을 위한 새로운 기제(메커니즘)로
대체될 필요성을 요구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유럽적 역사의
새로운 구성과 유럽적 차원의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다. 민족문화를 넘어선 유럽문화의
확정이라는 과제가 제기되고 구체화되고 있다. 유럽문화의
확정이라는 문제는 새로운 포섭과 배제의 기제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대립항으로서 설정되고 있는 것이
비유럽문화로서 ‘이슬람문화’인 것이다. 9·11테러 이후
지구적 차원에서 형성된 광범위한 반이슬람 분위기가 유럽
안에서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파키스탄인, 독일의
터키인, 그리고 프랑스의 알제리인 등이 유럽문화의 포섭/배제
과정에서 우선적인 배제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현재는 일국적 차원에서 극우세력들에 의해
선언적으로 ‘문화적’ 인종주의의 담론이 재생산되기
시작하지만, 민족주의 담론의 변화과정에서 나타나듯이 그것의
확대재생산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닐 것이다.
5. 글을 마치며
2002년 우파 대통령의 재선과 우파 내각의 출범은 치안 강화와
반테러리즘 정책을 가져왔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가속시키면서
경제적 핍박을 가져왔다. 이것들은 2005년 가을의 소요사태를
불러일으켰던 단기적인 요인들이다. 하지만 좀 긴 시간 속에서
본다면, 이 소요사태는 프랑스 이민사 및 경기변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장기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본다면, 그것은
근대의 정치공동체인 국민국가의 전환과정에서의 위기의 표현일
것이다.
프랑스 복지국가의 개혁과정에서 우파에 의한 가속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광범위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항한다는 측면을 지니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간 복지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그들이 이루어낸 ‘사회적 성과물(acquis social:
사회적 권리를 포함한 다양한 시민의 권리)’을 지켜내려는
방어적 의미에 한정되고 있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발전과정에서 국민의 구성원으로서 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획득하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다른 어떠한 정체성(가장 경쟁적인
것은 계급적 정체성)보다도 시민 그리고 그 집합적 의미에서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왔다. 그리고 그 과정은
광범위하게 국가가 개인들을 국민으로 포섭하고 동시에 배제하는
(타자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현재 노동자의 저항은
자신의 정체성의 재확립과 다양한 연대의 가능성이 열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시민의 권리에
한정지음으로써 복지국가의 수혜자로서의 그간의 사회적
성과물을 지키려는 몸부림에 머물고 있다. 그에 맞추어 유럽적
차원에서 ‘문화적’ 인종주의는 기존 국민국가의
‘민족주의’의 또 다른 형태로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가속되는 세계화 속에서 노동인력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그와
동시에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는 예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국가 시기에 내부적 차이를
제거하면서 외부와의 차별성을 부각하였다면, 이제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차이’는 곳곳에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그
‘차이’는 많은 경우 억압과 배제를 수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