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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되는 민중운동탄압,우리의 대오를 정비하자

현장에서 미래를  제11호
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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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되는 민중운동탄압, 우리의 대오를 정비하자


김 혜 련(민중운동탄압분쇄와
민주기본권쟁취를 위한 범국민대책위 대책위원)


1. 민중운동탄압의 배경과 특징

군사정권하에서의 민중운동탄압과 현재의 민중운동 탄압양상은 무엇이 다른가? 자본주의체제의 안정적인 기능을 위해 비판세력을 죽이고자 한다는 탄압의 본질은 같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더욱 민중운동탄압을 강화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이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남한사회는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사회다. 87년을 전후하여 국제적인 경제 조건인 3저호황이란 호시절 속에서 남한자본은 자신의 축적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92년을 경유하면서 3저호황이란 국제적 조건이 사라지고, 무역적자가 심화되면서 자본축적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또한 사회주의라는 대립선을 붕괴시키면 선진 제국주의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하는 데 대단히 유리할 것이란 판단으로 사회주의권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조치들을 취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는 거품이었음이 드러났다. 새로운 상품시장으로서 사회주의권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선진 제국주의 간의 경쟁격화는 자본축적에 질곡으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상품시장으로 사회주의권에 대한 기대가 모아졌으나 그 희망이 사라지고 이제 자체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복지정책의 후퇴는 거대한 민중들의 투쟁에 직면하여 일전일퇴를 하고 있다.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새로운 상품시장을 확대할 것이라는 마력은 거꾸로 자본의 재투자를 요구하는 등 세계자본의 축적위기가 더욱 가속화 되었다. 80년대의 포드주의로 대표되었던 대량생산체계는 대량소비를 요구했지만 소비없는 생산의 위기, 평균이윤률의 격감 등으로 새로운 생산체계 및 세계적인 통제양식이 필요함에 따라 WTO체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남한자본으로선 국내적인 자본축적의 위기와 국제적인 악조건이 결합되어 더욱 힘겹다. 주요 4대 산업의 수출은 둔화되고 무역수지 적자 폭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할 수 있는 방안은 다하고 있다는 한탄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속에서 자본의 핵심전략이 생산현장에서는 일명 ‘신경영전략’이란 것으로 90년초부터 드러났던 것이고, 중장기적인 자본축적의 안정적인 청사진으로 제시하는 것이 21세기형 신노사관계인 것이다. 신노사관계의 핵심인 ‘참여와 협력’을 통한 국가경쟁력, 생산성 높이기가 자본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생존의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비판’ 세력이 눈엣가시를 넘어 경제토대를 위협할 수도 있는 세력으로 보이는 것이고 더 이상 크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싹을 잘라내는 과정에서 민중운동탄압은 더욱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밑으로부터 대중의 생존요구와 투쟁을 법과 제도를 위협하는 것으로 포장하여 탄압하고, 자본에 비판적인 조직들은 국가안보를 뒤흔드는 불순세력, 이적단체로 탄압하고 있다.
현재 민중운동탄압은 자본의 생존 전략을 짜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서 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우리가 심도있게 주시해야 하는 현상들이 특히 95년 중반을 지나며 현격하게 드러났다. 예를 들어보자. 70년대와 80년대 초까지 저임금의 노동력 착취를 가능하게 했던 산업구조는 무엇인가? 노동집약적인 사업장을 중심으로 자본축적에 필수인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저임금의 여성노동자들을 유입해야 했다. 이를 위해 농촌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어려운 처지로 고등학교 입학을 못하고 있는 어린 여학생을 ‘산업체 고등학교’ 입학 보장이란 미명 아래 저임금 여성노동을 착취했었다. 80년대는 금속산업의 남성노동을 필요로 했다. 젊고 힘이 넘치는 건장한 노동력을 국가주도로 노동시장에 넘길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 의무제의 병역임무를 산업현장의 노동력으로 대치․보완하는 방법으로 병역특례 노동자들이 양산되었고, 이는 60~70년대의 수법과 똑같았다. 그리고 병역특례노동자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을 때 그들은 ‘노동자’란 일반적인 규정보다 병역 즉 군인이란 논리를 먼저 들이 밀며 병역노동자의 투쟁에 답했고 그 결과가 고 조수원 동지를 죽음으로까지 이끌고 간 것이었다. 민중운동이 붙여준 이름이든, 자임한 문민정부이든 상관없이 김영삼 정부는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 온존하려는 자본주의 정권이라는 성격을 드러낸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널려있다.
조직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자본의 이해에 맞닥뜨려진 모순속에서 자본의 비판적 세력은 위험요소이기 때문에 과거 군사정권이 쓰던 ‘안보’논리와 폭압적기구, 폭압적 법적 제도적 장치를 이용한 전면적인 탄압을 받고 있다. 단적으로 일명 ‘문민정부’란 허상속에서 현재까지 1,500명이 넘는 국가보안법 구속자가 생겼다. 운동주체들은 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세계자본의 확대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면서 사상의 취약성을 드러내 조직들의 몰락과 파편화 과정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공동활동, 공동대응은 필요하나 실질적인 투쟁전선은 약화되었다. 변혁주체의 약한 고리는 자본의 공격대상이 된다. 파편화된 민중운동진영이 부분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뻔하게 드러났다. 노동, 빈민, 대학 등으로 국가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탄압이 확장되었고, 한정된 역량은 공동대응, 공동전선의 설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민중운동 탄압분쇄와 민주기본권 쟁취를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를 설치하게 된 계기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은 우발적 사고에 의한 죽음과 조직수사를 중심으로 한 탄압을 주도했다면 지금은 일선 민중들의 자생적 투쟁에 대한 의도적 살인탄압과 병역특례나 한전에서 보이듯이 죽음에 대한 방조를 일삼고 있다. 95년 초부터 보아 온 죽음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다시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대자동차의 양봉수, 대우조선의 박삼훈, 병역특례 해고자 조수원, 한전 김시자 위원장, 인천 노점상 이덕인, 철거민 신현숙 타살과 더불어 96년 노수석 타살과 줄을 잇는 학생들의 죽음을 보고 있다. 또한 노운협에 대한 이적단체 조작, 김동식 관련 간첩조작 사건, 범민련 간부 무더기 구속, 사노맹 재건을 이유로 한 진보정치연합 회원의 무더기 구속, 중부지역당 조작 건, 한국노동청연대의 조직사건 등 지속적인 조직탄압이 진행되고 있다.

2, ‘민중운동탄압 분쇄와 민주기본권 쟁취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의 활동(이하 ‘민운탄 범대위’)

‘민운탄 범대위’는 96년 1월 19일 한시적인 공동투쟁체로 결성했다. 결성당시 각 조직들의 공통된 인식은 “95년 11월 이후 김영삼 정권의 민중운동 탄압이 광범위하게 자행됨에도 불구하고 고립분산적으로 대응하고 사회여론화도 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민중운동 탄압 분쇄 공동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결성당시 20개의 단체와 10여개 단체의 공동사업의사를 갖고 출범하여, 주요사업 과제와 계획, 대표자회의를 주요 의결단위로 하고 집행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집행체계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주요 사업과제와 계획은 첫째, 홍보 선전을 통하여 국민여론을 형성하는 사업. 둘째, 대중적인 행동을 통해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사업. 셋째, 법 개폐를 범국민적으로 추진하는 사업. 넷째, 탄압으로 구속, 수배되어 있는 양심수들에 대한 지원사업. 다섯째, 국제인권단체들과의 연대사업이다. 안정적인 집행역량의 부족과 재정의 불안정 등으로 구체적으로 진행된 사업은 미약하다. 우선 ‘투쟁소식지’ 신문을 격주 발행하기로 했으나 지금까지 4회에 걸쳐 발행했다. 일일 투쟁상황일지 작성을 통해 일일통신을 가동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대중집회는 다른 사건들과 겹쳐 진행하지 못하고 노수석군의 사망을 앞뒤로한 전국집회에 결합하였다. 그리고 노동절 노동자집회에 민운탄 범대위차원으로 소속단위들이 공동의 대오를 형성하여 참여했으며 사안별 대책으로 국가보안법 피해자대책위를 구성하여 국가보안법철폐와 구속자석방을 위한 명동성당 농성, 노수석군에 대한 독자후보진영의 공동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 등을 하였다. 공동기자회견 이후 총선이 끝난 다음 민운탄대책위가 주관하는 총선평가 토론회를 기획, 집행하였다. 초기 출범 당시에는 5월까지의 한시적인 기간을 설정하여 진행하였으나 현재는 8월까지 한시적 활동기간을 다시 확정하여, 이후 민운탄의 진로와 6,7,8월의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3. 민운탄 대책위의 활동강화와 민중진영에 드리는 제안

현재 민운탄 대책위는 안정적인 집행구조가 없으며 각 조직이 파견한 비상근 역량 2~3인으로 가동되고 있다. 대표자회의에서 논의하고, 역할분담하는 체계로 진행되기 때문에 기획의 안정성도 보장되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세적인 측면에서 공동대응 능력을 갖춰야 하지만 사업기획과 집행구조 없는 활동은 상층 회의체로 전락될 위험도 있다. 또한 현재의 자본가 정부에 대한 공동방어에서 공동투쟁으로 진전되려면 정세인식과 김영삼 정부로 대표되는 자본의 동향에 공동의 태도를 담보할 때 더욱 연대활동이 강화될 수 있다.
제조업 현장에서 곧 닥쳐올 고용불안이 예상되어도 자신의 문제로 닥쳐야 노동자들은 연대를 하는 경우와 비슷하게 각 조직의 운동도 자신이 직접적으로 탄압을 받은 후에야 적극적으로 나선다. 과학적인 운동을 한다는 주체들이 이 같은 현상을 보인다면 무엇이 과학인가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며 실천적인 권위도 상실될 것은 뻔하다.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정치적 활동단위의 사상적, 실천적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지만 현재 조건속에서나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 자본과 노동의 전선이 어디에 쳐져야 하는가가 정세분석이고, 실천적으로 만드는 것이 민중운동 진영의 과제이다. 이 과제를 잘하기 위해서 정치세력화와 공동전선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복무되는 운동이 아니면 결국 자본과 권력에 이득을 주게된다.
강화되는 민중운동탄압에 공동대응하는 것은 자본과의 대립선을 세우는 긴급한 과제이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들의 공동대오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본에 맞서는 민중운동진영의 21세기 노동의 전망,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 총체성 보다 사회주의적 총체성을 우위에 확보하는 것이 대중적 운동의 동력이 될 것이다. 80년대의 사회적 배경과 운동권에 대한 도덕적 신뢰성은 무엇으로부터 온 것인가? 90년대의 사회적 배경과 조직적, 도덕적 실추과정이 변혁운동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를 짚어내는 과정은 우리들에게 진지함과 차분함을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러한 자성들은 주체역량을 재편할 수 있는 사상적, 조직적 무기를 재형성하는 것을 돕게 한다. 어떤 주체들이나, 조직들도 역사의 결과에서 자유롭지 않다.
가장 어려운 위기는 또한 반전을 위한 기회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분리정립은 더욱 구체적인 통일정립을 위한 과정이 전제되는 것이다. 민중운동진영이 통일정립의 지향점을 잃어버린 오류가 있었다면 지금을 공동전선 수립과 더불어 통일정립할 내용과 대오를 정비할 기회로 만들어 갔으면 한다. 한/노/정/연

1996-05-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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