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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는 가능한가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합의, 그 결과와 교훈

현장에서 미래를  제11호
조효래

특집 3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는 가능한가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합의, 그 결과와 교훈

조 효 래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1. 머리말

1980년대 동안 이루어진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민주주의로의 이행, 수구세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정치적 맥락을 전제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1975년 독재자 프랑코의 사망과, 1977년 민주정부의 수립, 1982년 사회노동당의 집권이라는 스페인 민주화의 동학은 보통 ‘합의를 통한 민주화’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파악된다. 군부쿠데타 미수 등 수구세력의 저항과 반발에 대항한 민주대연합은 정치적 수준에서 극우세력을 배제한 정치적 타협, 사회적인 수준에서 ‘사회협약’을 통한 계급타협의 형태를 띠고 전개되었다. 모든 정치세력과 사회집단이 정치적 민주화에 일차적인 의의를 부여하였기 때문에, 취약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경제적인 갈등과 대립은 최대한 억제하고자 했고, 국가는 노동과 자본의 계급타협을 조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으로 요약되는 계급타협이 경제적 영역에서의 자본의 지배와 정치적 영역에서의 노동의 지배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강화와 노동계급의 경제적 양보가 교환되는 형태의 계급타협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북구에서의 사회적 합의나 계급타협이 노동계급의 강력한 권력자원을 기반으로 복지국가의 출현이라는 형태로 귀결된 반면,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수구세력의 저항에 직면한 취약한 민주주의의 강화라는 노동과 자본의 정치적 필요에 기초한 것이었다. 따라서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취약한 민주체제를 위협하는 쿠데타와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과 자본의 일시적 휴전의 성격이 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사회노동당의 집권과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진행되고, 사회적 합의로 인한 노동계급의 양보가 보상되지 않는 일방적 희생으로 귀결됨에 따라 사회적 합의는 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하에서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합의의 내용,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어떠한 모습으로 귀결되었는가를 검토하면서, 몇가지 교훈을 도출하고자 한다.

2. 사회적 합의의 과정과 내용

스페인에서는 1977년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5번의 사회협약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협약들은 전국수준의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하부수준에서의 단체교섭의 결과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고, 그 내용은 정부정책의 영역에 해당하는 쟁점들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것이다.
1977년의 몽클로아협약, 1980년의 연맹간거시협약(AMI), 1981년의 전국고용협약(ANE), 1982년의 연맹간협약(AI), 1985년의 경제사회협약(AES) 등이 대표적인 전국수준의 사회협약들이며, 기본적으로 이러한 협약들의 주요한 목표는 임금정책을 통한 인플레의 억제와 노사관계의 제도적 틀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협약들은 예측인플레율에 기초해 단체교섭에서 결정될 임금인상의 범위를 한정하였고, 각 단위노조들의 단체교섭에서 합의된 임금인상률도 역시 사회협약에서 제시된 가이드라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협약주체의 측면에서, 스페인의 사회협약은 정당간의 협약(몽클로아협약), 국가, 노조, 자본가단체의 3자협약(ANE, AES), 노조와 자본가단체간의 중앙협약(AMI, AI, AES) 등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고, 조합의 임금양보에 대해 비임금쟁점(조세, 공공지출, 고용입법 등)에서의 보상을 국가가 보장하고 있다.
사회협약이 다루고 있는 쟁점의 범위에 있어서도 임금합의 외에도 국가기구에의 조합참여(몽클로아협약), 공장수준의 노조지부 설치, 공장교섭(AMI), 구체제하의 조합재산에 대한 국고보상(ANE), 단체교섭의 구조(AI, AES) 등 노사관계의 제도적 틀에 대한 합의와, 노동시간의 단축과 생산성 향상(AMI), 35만명의 고용창출(ANE), 표준노동시간의 40시간으로 감축, 휴가의 확대, 잔업과 퇴직연령의 축소(AI), 조세와 투자기금, 실업수당의 확대(AES) 등 수많은 비임금쟁점에 대한 합의를 포함하고 있다.
최초의 사회협약은 1977년의 몽클로아 협약으로서 경제 및 정치개혁에 대한 약속과 임금억제를 교환한 것이었다. 임금정책과 관련하여, 몽클로아 협약의 핵심은, 임금인상이 과거와 달리 그해의 예측인플레율을 넘지 않는다는 조항이었다. 이것은 임금정책을 반인플레정책의 일부로서 규정한 것이었고 인플레가 급속화하면서, 소득정책은 정부의 최우선적인 목표가 되었다. 이는 보다 많은 경제적 통제가 없이는 정치적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에 의해 추동되었다. 또한 정치적 이행기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몽클로아협약의 주체는 의회내의 좌익과 우익 등 주요정당에 한정되었다. 몽클로아협약에 대한 일반노동자들의 평가는 ‘합리적이다’(25.5%), ‘잘모르겠다’(38.7%), ‘무용하다/유해하다’(35.9%) 등 대체로 부정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의회내 정당들에 의해 합의된 몽클로아협약에 대한 조합의 지지표명은 노동자위원회(이하 CCOO)가 공산당에 종속되어 있으며 조합지도자들이 정치적 협상을 위하여 조합원들의 빵문제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낳았다.
그러나 몽클로아 협약이 만료된 1979년에는 전국수준의 협약이 가능하지 않았고, 오히려 1976년이후 최대의 파업과 노동동원이 이루어졌다. CCOO는 몽클로아협약에 대한 지지가 잘못된 전략이었으며, 그것이 노동계급의 희생에 근거하여 정부의 입장을 강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왜냐하면 1978년의 인플레율은 전 해에 비해 30%에서 17%로 하락하였지만, 실업은 급격히 증대하였고 공공지출은 예산적자의 요인이 되었으며 협약에 따른 사회보장의 내용은 미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사회노동당의 영향하에 있는 노동총동맹(이하 UGT)가 사회노동당의 강력한 압력과 조직강화를 위한 시도로서 새로운 협약에 참여하였고, 1980년 정부는 CCOO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UGT와 기업가단체의 참여하에 지속적인 사회협약(AMI)을 추진할 수 있었다. 정부가 참여하는 포괄적인 정치협약을 주장했던 CCOO와 달리, UGT는 임금과 노사관계 구조에 한정된 노조와 자본만의 AMI협약에 동의하였다. 따라서 AMI협약을 비롯한 새로운 사회협약과 노동기본법의 확정과정은 주로 사회노동당과 UGT, 정부와 사용자단체(CEOE)사이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CCOO도 1981년 쿠테타미수 사건이 발생하자 ‘연대의 플랜’이라는 이름아래 전국고용협약(ANE)에 동의하였다. 전국고용협약(ANE)은 고용에 관한 협약으로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대신에 정부가 고용수준의 유지를 약속한 것이었다. ANE협약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반응이었으며 CCOO를 포함하여 모든 노조는 처음으로 노동계급의 실질임금 감소에 동의하였다. ANE협약의 의미는 정부와 사용자단체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조합들이 서명한 최초의 협약이라는 사실이다. ANE협약을 성공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쿠테타미수 사건이었고, 이 사건은 현재의 민주체제가 대단히 취약하다는 것을 노정하였다. 쿠테타 실패 이후 스페인 국민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민주세력의 통일에 대한 요구였다. 노동조합들도 계급적 이익 특히 경제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는 임금인상과 과도한 노동동원이 민주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취약한 민주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들은 경제적 요구를 자제하고 단기적 희생을 수용했던 것이다.
사회노동당이 집권한 후에도 사회협약은 반복되었고, 1983년에는 CEOE와 UGT, CCOO간의 AI협약이 이루어졌다. 이 협약 역시 명확한 실질임금의 하락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UGT에게 AI협약은 협약전략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CCOO도 역시 좌익정당이 집권한 상황에서 협약을 거부하는 것보다는 참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84년이후 점차 사회노동당 정부의 정책이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강화하게 되고, 시장상황은 노동계급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점차 CCOO는 사회노동당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을 강화했고, 특히 고용문제, 노동시간 감축을 위한 입법과정, UGT의 입지를 강화하는 공장위원 임기연장에 반발했다. 특히 산업합리화 정책과 고용불안은 산업갈등을 크게 증대하였다.
이러한 고용 및 임금조건의 악화와 노동갈등의 빈발에 대해 UGT는 1985-6년의 새로운 사회경제협약(AES)협약이 실질임금의 하락을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던 반면, CCOO는 고용안정을 약화시키는 어떠한 협약에도 반대했다. 따라서 산업갈등의 완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CEOE와 정부, 실질임금의 유지에 관심을 갖고 있는 UGT 사이에 AES협약이 맺어졌고, CCOO는 협약으로부터 철수하였다.
이처럼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민주주의로의 이행과정인 1977년에서 민주주의 공고화의 출발단계인 1985년에 걸쳐 비제도적이고 간헐적인 방식으로 지속되었다. 이 시기동안 전국수준의 사회협약은 주로 참여주체, 쟁점, 배경을 달리하면서도 정부의 입장에서는 소득정책, 노조나 계급정당의 입장에서는 개혁과 민주화를 위한 경제적 양보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3. 사회적 합의의 배경과 조건

중요한 것은 북구와 같이 좌익정당의 장기간 집권경험이 없는 스페인에서, 국가와 노동계급이 이와 같이 지속적으로 사회협약에 합의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스페인과 같이 사회적 합의의 물질적 토대가 허약한 곳에서 사회협약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민주화이행의 정치적 맥락속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민주화 이행은 지역민족주의, 테러리즘, 군사쿠데타의 공포와 같은 정치적 긴장과, 인플레, 실업 등 심화되는 경제위기, 급격한 노동동원과 혁명적 분위기속에서 진행되고, 이러한 상황속에서 체제내 온건파들의 주요한 관심사는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유지였다. 즉 권위주의체제의 붕괴과정에서 나타났던 대중동원과 노동운동의 조직적 동원능력, 그리고 좌익정당들의 민주화 투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고려할 때, 노동계급의 협조없이 원만한 이행프로젝트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정부의 일차적 관심은 노동운동이 정치적 이행을 위협하지 않도록 계급타협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노동운동 내부에서 급진적 경향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양대 노조간의 경쟁을 유인하는 조합다원주의, 전국수준에서의 집중화된 교섭의 구조, 이익대표의 사실상의 독점을 보장하는 노동법 체계, 사회협약을 통한 소득정책 등을 추진했다. 정치적 영역에서의 중도적인 중도민주연합(UCD)과 좌익의 사회노동당(PSOE), 공산당(PCE)간의 정치적 타협은 노동영역에서 국가가 CCOO, UGT 등 양대노조의 권력강화를 보장하는 대신에, 이를 기반으로 노동과 자본간의 사회협약을 추진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던 것이다. 정치엘리트들은 이와 같은 타협과 사회적 긴장의 완화를 통해 정치적 이행을 위한 시간과 여유를 확보하고자 했고, 이것이 사회협약에 대한 국가의 의지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와 같은 위로부터의 ‘협상된 협약’의 정책은 아래로부터의 현실, 즉 노동자들의 온건화 및 작업장수준에서 감지되는 경제위기와 결합된 것이었다. 즉 사회협약은 단순히 노동계급내 정치엘리트들의 정치적 결정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와 노동자들의 온건화의 결과로 대중동원이 불가능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사회적 합의에의 참여라는 결정은 민주체제의 공고화라는 전략적인 목표설정에 기초한 것이지만, 실제로 그것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경제위기로 인한 공장내 노동자들의 온건화때문이었다. 즉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경제위기로 인한 대중동원의 어려움때문에 제도적 수준에서의 협상전략이 보다 효과적이었다. 이것은 일관되게 제도적 협상의 전략을 취한 UGT의 성공과 작업장수준의 대중동원 전략을 취했던 CCOO의 쇠퇴 및 협약에의 참여 등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특히 이러한 상황은 쿠테타와 같은 민주주의의 위기속에서 이미 타협을 선택한 계급정당과 노동조합의 긴밀한 관계, 군부개입으로부터 민주적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조합의 정치적 태도로 인해 사회적 합의에 대한 정치적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우기 이 시기의 자본가들은 정당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이나 임금과 고용 등 경제적 교섭에 있어 노동조합에게 압도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스페인의 산업부르조아들은 국가와의 관계에서 자율적인 공간을 허용받지 못했고 이행과정에서 전국적인 수준에서 통일된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었다. 자본가들은 정치적으로 정당과의 관계가 취약했고, 경제적으로도 급속한 임금인상과 전투적 노동운동의 급진주의에 직면해야 했다. 때문에 민주화 이행과정에서 자본가들의 전략은 소극적인 것이었고, 전투적인 CCOO를 고립시키고 온건한 UGT의 교섭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UGT와의 사회협약에 적극적이었다. 이처럼 스페인에서는 협약의 전제조건으로서 국가, 노조, 자본 등 집합적 주체들이 모두 사회협약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협약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의 측면에서 보면, 국가는 노동조합의 협약 참여에 대한 반대급부를 제공할 수 있는 보상능력이 취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 이를 상쇄시킬 수 있었다. 즉 스페인의 국가는 미래의 경제적 보상에 대한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희생을 정치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신뢰는 몽클로아 협약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댓가로 노동자들의 경제적 양보를 유인할 수 있었고, 쿠데타 이후에는 심화되는 경제위기가 민주체제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이러한 역할을 대신했다. 또한 노동조합(UGT와 CCOO)들은 권위주의체제하에 대한 투쟁과정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도덕적 지도력과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었고, 사실상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법적 체계로 인해서 조합의 권력을 전국수준의 상층부로 집중화하였다. 노동조합의 대표성과 집중화는 일단 타협과 협상의 전략이 선택되자, 그것을 하부에 관철할 수 있는 조직적 능력을 보장했다.
이처럼 신헌법과 노동기본법을 통해서 확립된 양대 조합의 독점적 구조, 정당과 의회에 의해서 추진된 전국적 집중화의 교섭패턴(몽클로아협약)이 사회협약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정치적 긴장과 경제위기에 직면한 민주체제의 정치적 정당성이 협약에 대한 공감과 국민적 합의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조건에서 체제의 정치적 안정이 결정적으로 위협받자 노동조합은 합의의 경제적 비용을 수용하였고 사회협약은 성공할 수 있었다.

4. 사회적 합의의 결과와 손익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정치적으로 순조로운 민주화 이행과 체제공고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점진적이고 합의적 형태의 민주화과정의 초기단계에서 사회협약은 인플레의 감소와 실질임금의 하락을 통해서 경제의 효율성을 크게 증대시켰다. 사회협약은 이행과정에서 노동갈등을 감소시킴으로써, 경제적, 정치적 불안정의 비용을 축소시켰고 경제영역에서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79년 이후의 임금인상률은 소비자물가의 인상률을 넘지 않는 것으로 귀결되었고, 전국수준의 중앙교섭을 통한 소득정책은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애초에 몽클로아협약에 대한 평조합원들의 상당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각 산업과 부문에서의 단체교섭은 사회협약에서 합의된 임금인상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동시에 협약은 노동과 자본의 계급타협이라는 맥락속에서 노동조합의 제도적 참여를 위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체제의 정당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결국 사회협약을 통해서, 정부는 정책효과에 대한 예측과 조정(coordination)능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기업가들은 임금인상이 주어진 한계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으며,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을 통해서는 획득할 수 없는 제도적이고 공적인 영향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사회협약은 사회경제적 갈등이 통제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옴으로써, 노동운동의 온건화와 갈등해결을 위한 민주적 절차의 유용성을 확인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협약을 통해서 노동조합은 정상적인 단체교섭 과정을 통해서는 획득할 수 없는 정부정책 형성영역에서의 권력을 획득했고, 이것은 노조의 이데올로기적 분열과 재정적 취약성을 상쇄하는 역할을 하였다. 전국적인 수준의 중앙교섭은 새롭게 출현한 노동조합연맹들이나 고용주단체들이 하부수준에서의 조직적 구조와 경험있는 협상가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원을 갖고 있는 상층수준에서 협상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것은 하부수준의 교섭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되었다. 사회협약은 노동계급에게는 경제위기하에서 실질임금의 하락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자본가들에게는 산업갈등을 축소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회협약은 인플레억제와 관련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노동계급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실제로 진행된 단체교섭의 결과도 전국수준에서 합의된 사회협약의 인상률을 넘지 않았으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회협약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공되었던 고용확대에 대한 정부의 약속이나 복지의 확충 등은 결과적으로 유야무야되었고,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추진으로 인해 이전시기의 경제적 양보에 대한 보상은 물건너간 것이 되어 버렸다.

5. 맺음말

1977년 몽클로아협약 이후로 1980년 AMI협약, 1982년 ANE협약, 1983년 AI협약, 1985-6년의 AES협약 등 매년 계속된 전국 수준의 사회협약은 기본적으로 민주화과정에서 정부, 정당, 이익집단들간의 일련의 협상을 통한 ‘합의의 정치’의 일부였다. 스페인에서 사회협약의 주요한 특징은 사회협약이 민주화 이행의 정치적 안정이라는 정치적 맥락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민주주의 혹은 민주정부의 수호를 위한 계급이익의 유보를 특징으로 하며, 그 성격상 정치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의 전개과정, 민주화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대표자(좌익정당)의 정치적 지위, 노조와 정당의 관계 변화에 따라 사회적 합의는 대단히 유동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결국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교환의 경제적 토대가 취약한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일단 안정화되고 집권 좌익정당의 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이 노동계급의 희생을 심화시키자 사회적 합의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내용적으로 스페인의 사회적 합의는 임금양보에 대한 반대급부로 정치경제적 개혁 혹은 고용증대에 대한 약속을 교환하는 것이며, 이러한 정치적 교환의 실행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조합에게 정치적 권력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것은 노동의 경제적 양보가 사후에 보상될 것이라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으로서 정부와 자본의 약속이행에 대한 조합의 견제, 감독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이후 노동조합의 조직적 능력과 동원역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정치적으로 강력한 사회노동당의 반노동자적 정책에 따라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과 필요성은 점차 약화되어 갔다. 즉 전국수준의 노동조합의 강력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하부단위를 통제할 수 있는 조합의 조직역량이 감소함에 따라 조합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의존은 점차 약화되어 갔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제적 양보에 대한 사후적 보상(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을 요구할 수 있는 조합의 조직적, 정치적 능력은 사회적 합의의 안정성을 보장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투자를 촉진하고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은 실업증대로 귀결되었고 이를 보상할 수 있는 사회보장이나 직업훈련 등은 제한적이 됨에 따라, 1980년대 중반이후 사회적 합의는 노동계급의 끝없는 양보와 희생으로 귀결되었고, 차후에 양보한 것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짐에 따라 더 이상의 협약과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해졌다. 한/노/정/연

1996-05-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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