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 세 ․ 초 ․ 점
김영삼 정권 대북정책의 이중성
정 해 구 (한신대 강사, 정치학)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권 등장 직후인 1993년 초 ‘3단계
통일방안’을 발표한데 이어 그 이듬해인 1994년 8월에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함으로써 1988년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발표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보다
진전시켰다. 이에 따르면, 남북통일은 화해·협력, 남북연합,
그리고 통일국가의 3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과정으로 상정되어 있는데, 바로 그 점에서 김영삼
정권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은 북한에 대한 단기적 흡수통일
방안을 배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이 그 동안 실제로 취했던 대북정책은 위의
공식적 통일방안의 첫 단계로 상정되어 있는 화해·협력과는
전혀 다른 대북 강경정책으로 시종일관하고 있다. 즉 북핵
문제로 북미간 갈등이 고조되었을 때 남한정부는 대북한 제재를
주장했던 미국의 강경파들과 거의 입장을 같이 했고,
제네바합의를 통해 북미 핵갈등이 해결됨으로써 북미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던 1994년 10월 이후에도 대북 강경정책을
지속했던 것이다. 그 결과 북미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남북관계는 여전히 경색을 면치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과정을 상정하면서
그 첫 단계로서 화해·협력을 규정하고 있는 김영삼 정권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은 줄곧 대북 강경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단기적인 대북 흡수통일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이러한
실제적인 대북정책과의 괴리가 김영삼 정권의 대북정책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삼 정권의 대북정책이 갖는 이같은 이중성은 현재 대북
강경정책을 지속하면서도 동시에 남북대화를 재개코자 하는
정부당국의 태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근 남북관계의
현안이 되고 있는 대북 쌀지원 문제, 탈북자 문제, 그리고
4자회담 문제 등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대북 쌀지원 문제
올 들어 김영삼 정권의 대북 강경정책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1월 24~25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한․미․일 고위정책협의회 때라 할 수 있다. 이
회담에서 대북정책 조율에 나섰던 한․미․일 3국,
특히 한국과 미국은 대북 쌀지원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이견을
드러내고 있었다. 즉 식량난 등 경제위기로 인해 북한체제가
붕괴될 경우 이를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해칠 중대 요소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은 대북 쌀지원을 주장했던 반면, 한국측은
대북 쌀지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북한의 공식 요청, 남북간
당국자 대화 등 일정한 전제조건을 내세움으로써 정부 차원의
대규모 대북 쌀지원을 사실상 무산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영삼 정권이 미국과의 이견을 무릅쓰면서까지 대북
쌀지원 문제에 있어 강경정책을 고수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가장 커다란 이유는 국내정치적 이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지난 해 6·27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정권은 북한에 15만
톤의 쌀을 무상 지원키로 결정한 바 있었다. 물론 이같은
결정에는 이를 계기로 남북대화를 재개하고자 했던 남한정부의
의도 뿐만 아니라 6·27선거에서 여당의 득표율을 높이기 위한
정부여당의 정략적 의도 또한 강력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의도에서 추진된 대북 쌀지원은 오히려 여당의
득표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것은 “외국에서
사서라도 북한에 쌀을 지원하겠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언급이
농민층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대북 쌀협상 및 수송과정에서
드러난 정부당국의 대북 저자세가 “쌀주고 뺨 맞았다”는 보수
여론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4·11총선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올해 들어 정부여당의
뇌리를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지난 해의 이같은 경험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1월 초 정부와 신한국당의 당정회의는 대북
쌀지원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의 공식 지원 요청, 남북당사자간
협상, 대남비방 중단 등 강력한 전제조건을 내세웠는데,
당정회의의 이같은 결정에는 지난 6·27선거 당시 대북 쌀지원
문제로 인해 약 “1백만 표 이상이 날아갔다”는 여당의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당정회의 직후
하와이에서 개최된 한․미․일 고위정책협의회에서
한국정부가 대북 쌀지원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던 것은
바로 국내정치상의 이같은 이해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내정치상의 정략적 이유에서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하는 정부당국의 이같은 태도가 언젠가는 통일을 이루어야
할 북한에 대해 과연 바람직스러운 행동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북한이 직면한 식량난의 실태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매년 구조적인 이유로 인해 식량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북한이 지난 해 7, 8월 집중적인 홍수피해로
최악의 식량부족 사태에 봉착했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와 같다.
유엔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이번 홍수피해로 북한은 전국토의
75%인 145개 군이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150만 명의
수재민과 6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그 전체 피해액은
15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50억 달러라면 1994년
북한 GNP 추정 212억 달러의 2/3에 해당하는 대대적인 규모이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막대한 수해피해 자체를 넘어 이로 인해
북한주민들에게 심각한 기근사태가 도래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미 일부 보도에 의하면,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실조 현상이
점차 확산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초근목피’로 생계를
잇는 주민들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식량난은 대단히 심각한 위기 상태이며, 외부로부터 대규모의
식량지원이 없으면 이 위기를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이같은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남한정부는 이러저러한
전제조건을 붙여 대북 쌀지원를 회피하고 있다. 물론 그 주된
배경은 정부여당의 정략적 이해임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지난 1990년에 한․소 수교시
남한정부가 그 대가로 소련측에 3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던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에 대해서 그처럼 관대했던
남한정부가 북한에 대해서는 그처럼 인색한 이유는 무엇인가.
참고로 남한정부가 북한측에 1백만 톤의 쌀을 제공할 경우, 굳이
그 비용을 따져본다면 3억 수천 달러 정도가 된다.
향후 통일을 함께 이루어야 할 북한주민들의 절박한 고통에 대해
남한정부가 인도주의적이고 동포애적인 견지에서 적극
검토해봐야 될 대북 쌀지원 문제를 회피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가장 커다란 투자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탈북 문제
잠비아 주재 북한대사관의 3등서기관 현성일부부와 공작원
차성근의 서울 망명 사태, 김정일의 동거녀로 알려진 성혜림
일가의 망명 사태, 평양의 러시아 대표부에서 발생한 조명길
하사의 망명 요구 사건 등 올 1, 2월 일련의 탈북사태가
집중적으로 발생함으로써 북한체제의 붕괴 여부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이외에도 1천 수백 명으로
추정되는 북한주민들이 북한을 탈출, 중국 및 동남아 등을
떠돌고 있다는 보도는 이제 탈북 문제에 대한 대처가 더 이상
미뤄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관측통들은 북한체제의 ‘급속한
붕괴’(crash landing)를 예측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남한정부의 대응 또한 북한체제의 급속 붕괴를 전제로 한 대책을
드러내주고 있다. 즉 최근 탈북사태에 직면하여 남한당국은
북한체제가 급속히 붕괴할 경우에 대비한 ‘급변통합계획’(일명
‘평화계획’)과, 북한이 남침을 감행했을 경우 이를 계기로
북한지역을 수복하고 자유화하기 위한
‘응전·자유화계획’(일명 ‘충무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위에서 검토되었다는 ‘급변통합계획’, ‘응전·자유화계획’
등이 북한에 대한 단기적 흡수통일 전략의 일환임은 분명하다.
물론 이같은 계획은 그것을 적극 추진한다기보다는 우발적
사태에 대비하는 비상대책으로 설명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남한에 대해 흡수통일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북한을 한층 자극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4자회담 문제
한편 대북 쌀지원 문제, 탈북 문제 등에 뒤이어 지난 4월 16일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에 4자회담을
제안함으로써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한미는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추구하는 것은 남북한이 주도해야 하며, 한반도
평화와 관련하여 미국과 북한간의 별도 협상은 고려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다음으로 한미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협정을 이룩하는 과정을 개시하기 위해”,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한국, 북한, 중국 및 미국의 대표간에 4자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이상과 같은 4자회담 제안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제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그것은 가장 직접적으로는 탈냉전의 새로운
상황에서 과거 냉전시대에 맺어졌던 정전협정체제를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대두되었고, 특히 남한을 배제한 채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시도되고 있는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
기도에 대한 대응책에서 비롯되었다.
다음으로 그것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서로 조율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즉 북미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은
강경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남한정부를 배제하는 가운데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그 생존책을 도모하고 있고, 이에 대해 미국 또한
대북한 ‘개입’(engagement)을 통해 북한체제를
‘연착륙’(soft landing) 시키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상의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북미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북미관계의 이러한 진전에 비해, 남북관계는 북핵갈등 이후 전혀
진전되지 못했다. 따라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대북정책상의 한미
공조체제마저 흔들리는 양상이 벌어졌다. 4자회담은 바로 이같은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 차이를 조율, 한반도 평화구축 문제에
있어 관련 당사국들이 함께 논의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끌어들여 4자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에 있어
한미간의 이해가 완전하게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지난
5월 13,14일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2차 한․미․일
고위정책협의회는 북한이 4자회담을 수용하기 이전에 대북경제
제재 완화 등 유도책을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이같은
결정에는 북한의 4자회담 수용을 위해 일정한 사전조치의
필요성을 인정했던 미국에 대해 그 어떤 사전 유도책도
불가하다는 남한정부의 주장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대해 4자회담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키로
결정했다. 아무튼 이제 4자회담의 성사 여부는 미국의 중재 및
조정 노력과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맺음말 : 대북 온건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
대북 쌀지원 문제, 탈북 문제, 4자회담 문제 등 이제까지 살펴본
여러 문제들에 있어 남한정부가 취하고 있는 입장, 즉 대북
강경정책을 시행하면서도 남북대화를 재개하고자 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로 볼 때, 그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선 남한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은 식량난 등 위기에 몰려있는
북한으로 하여금 흡수통일 의혹을 갖게 만들었고, 따라서 자신의
생존책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는 북한은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과의 관계개선에만 전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시켜 주는
것으로서, 이제 남북한 양쪽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된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급속히 증대시키고
있다.
남북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았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증대만을 가져왔던 남한정부의
대북 강경정책, 민족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측면에서도 아무런 실익을 가져오지 못했던 이같은 정책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대북 온건정책을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남한정부의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