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두 언
변혁성 거세를 위한
두날의 칼
오 세 철 (이사, 연세대 상경대학장)
5월 18일 공노대는 ‘96 공동투쟁 승리를 위한 공노대
간부결의대회’를 열고 전임자축소 저지, 임금가이드라인 철폐,
원직복직 쟁취, 직권중재 철폐에 대한 투쟁을 다짐하였고, 6월
2일 공공부문 노조의 조합원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공동투쟁에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금속연맹도
5월 29일부터 6월 5일 사이에 쟁의 발생결의를 집중하고
냉각기간이 끝나는 6월 중순경에 공동투쟁을 벌려나갈 것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 출범 이후 공동투쟁의 성과를 얼마나 거둘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투쟁에 대해 노동부는 즉각
불법투쟁을 엄단하겠다고 선언하고 노사관계 개혁을 틈탄
과격세력의 준동으로 규정하는 종래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마녀사냥이 계속되고 있다.
이 칼날은 이념적 정치집단을 향하고 있으며 변혁적
노동운동과의 연계를 차단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동운동단체나 정치조직은
대부분 이적단체로 몰렸고 나머지는 탄압의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사관계 개혁위원회가 만들어져
‘대립에서 협력관계’로의 전환을 내세우는 신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이 확산되고 있고 이 위원회에 민주노총의 참여를 놓고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탄압과 포섭이라는 자본과 권력의 두날의 칼은 한국적 특수성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세계변혁운동사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던
자본의 보편적 전술이다. 문제는 탄압의 대상과 포섭의 대상의
경계가 신축적이기는 하지만 그 이제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하는
정세적 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그 구분의 잣대는
변혁성이다. 변혁성에 대한 검증은 90년 이후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의 광범위한 확산이 교조주의로부터의 탈출을 빌미로
변혁운동진영에 침투하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종을
이루었던 사람들은 진보적 계열의 지식인과 민족민주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였으며 포스트류의 패러다임을 자신의
사상이론적 무기로 대체시켰다. 언론과 자본의 포섭전술에
영합하면서 신이론으로 선전되었으며 21세기 담론의 참신성으로
추앙되었다. 이들의 자기현시욕구나 세속적 명망성에의 유혹은
변혁운동진영을 매도하는 변신으로 이어졌고 개량화되는
노동운동과 부문운동의 이데올로그로 만들었다. 이제 개량주의의
전도사들은 스스로 실질적 포섭의 주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변혁성이 거세된 개혁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김영삼 정권이
진행시키고 있는 정치, 경제, 교육, 그리고 노사관계 개혁의
이념적 기반이 되고 있으며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계급타협의 신자유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의 전선
구획법은 수구와 개혁의 이분법이며 수구속에는 극우와 극좌를
동시에 포함시키고 있다.
5월 17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법개정과 노사관계
개혁방향’이라는 정책세미나에서 발제된 논문들을 보면 보수,
진보의 생각을 지닌 발표자들을 막론하고 개혁주의의 사상적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변혁성과 투쟁성을 담보로 하지 않은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에의 졸속적 참여는 바로 포섭의 전략에
말려들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오랫동안 계급타협의 역사를
밟아온 유럽의 노동운동도 지속적으로 밑으로부터의 대중투쟁과
계급투쟁의 사상적 보루를 지키고 있는데 이제 전투성과
변혁성을 무기로 쟁취한 우리의 민주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은
자본과 권력의 포섭전략 아래에서 전선이 교란당하고 있으며
체제내화될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 변혁의 가능성 앞에서의 계급타협이 아닌 자발적인
노사협조주의가 자본과 권력의 헤게모니 지배전략과
이데올로기적 노동통제전략에 순웅하는 형태로 진전되는 현재의
국면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로의 순항을 예고하고 있다.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노동자계급이 아니다) 개혁적 국민정당에 대한
제안은 이미 전국연합, 민주노총, 그리고 시민운동세력으로부터
나오고 있으며 97년 대선을 경과하면서 98년 지자체선거, 2000년
총선에서의 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하는 구체적인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선거주의와 의회주의의 깃발을 들고 제도권
보수정치판에 한 세력으로 끼어드는 정치참여는 자본과 권력의
정치적 포섭전략과 맞물려 있다. 경제투쟁에서는 계급타협이,
정치투쟁에서는 개혁세력연합이, 사상투쟁에서는 개량주의가 그
중심을 틀어 잡으며 변혁운동은 서서히 개혁운동으로 소멸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포섭이 아닌 탄압의 칼날이 존재한다.
탄압도 포섭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한 핵심전술이다. 최근에
연속되는 조직사건과 국가보안법 적용에 의한 무더기 구속은
주로 근본변혁을 지향하는 노동단체와 정치단체에 집중되고
있으며 전투적 노동운동 속에서 성장해 온 선진노동자가 그
탄압의 주요 대상이다. 양적으로 소수이지만 우리 사회의
변혁운동을 지도하고 지원해 온 변혁운동세력은 포섭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자본과 정권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 세력을
체제전복세력으로 규정하고 점진적 개혁을 방해하는
폭력세력으로 매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부르조아 개혁세력과
분리해 내고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세력으로 국민들에게
각인시킴으로써 탄압의 정당성을 획득하려고 하고 있다.
공개운동에 대한 전면적 탄압에 대하여 변혁노동세력은
속수무책이다. 구속과 수배로 이어지는 탄압전선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탄압은 단기적
효과만이 있을 뿐이다. 변혁세력의 분리, 제거는 오히려
변혁성을 강화시키는 운동으로 장기화된다. 문제는 수세적
국면속에 파고 드는 개량주의와 자본의 포섭이 더 큰 적이다.
변혁세력과 개량주의세력의 실질적 헤게모니 싸움은 자본과
노동의 끊임없는 적대 속에 진행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변혁성을 거세시키려는 포섭과 탄압의 칼날은 거세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변혁운동세력의 총체적 전략이 요구된다.
포섭에 대한 투쟁은 오직 사상투쟁만이 유일하다. 실질적 포섭의
다양한 양태와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변혁적
노동운동가와 연구자들의 노력과 모든 부르조아 사상과 제도,
그리고 구체적 실천에 대한 전면적 비판과 대안제시가 구체적인
사상투쟁의 내용이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는 바로 그러한 작업을
통하여 사상이론적으로 노동운동에 개입하고, 포섭되거나 포섭될
위험에 처해 있는 우리사회 노동운동을 비판하여 밑으로부터의
변혁성에 의해 상층부가 통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번째는 투쟁적 전선운동을 강화하여 포섭과 탄압에 맞서는
상설공투체를 건설해야 한다. 대중조직의 존재에만 자족하여
대중조직 물신주의에 빠지는 경향은 변혁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소수의 블럭으로 헤게모니 투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에
대중조직에서의 변혁블럭과 변혁적 단체들이 연대하는
투쟁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얼마 전 건설된
「민중운동탄압분쇄와 민주기본권 쟁취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약칭:범대위)를 강화하여
상설공투체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민중연합전선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국가보안법 철폐투쟁도 이 전선을 강화하여
수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세번째로 변혁적 정치운동세력의 단결과 투쟁이다. 정파로
분해되어 각개약진하는 종래의 운동때문에 대중조직의 정치조직
전환론이 대두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투쟁하는 대중과 함께
정치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정파이기주의 극복과 대동단결이
요구된다. 투쟁 속에서의 조직건설이라는 근본원칙을 위배하는
어떠한 정치조직 건설도 변혁운동과는 무관함을 천명하면서
지배계급의 지배연합질서에 한몫 끼려는 정치운동은
「진보」와 「노동계급」의 정치운동이
아니며 오히려 친자본적 경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투쟁성과 변혁성을 밑으로부터 일구어
내면서 투철한 사상투쟁으로 변혁운동을 지도하는 길만이 포섭과
탄압의 두날의 칼을 분쇄하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 모두
명심하자.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