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현장에서 미래를 > 노동자세상 > 목록보기 > 글읽기

 
[이정하의 세상이야기] 잘린 손가락

현장에서 미래를  제107호
이정하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은

어머니 생각이 난다. 2004년12월13일 결국 손가락이 잘려 나갈 때 수술실에서 많은 생각이 났다. 그때 왜?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가 듣고 싶었을까? 얼마나 슬퍼하실까? 그놈의 자식 공부한다고 할 때에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결국 공장에서 일하다가 생손가락 잘랐다고……. 얼마나 아플까? 걱정하며 애태우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많이.

잘린 손가락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문병 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것은 이제 내 차례가 왔을 뿐이다. 확률에 의한 사고일 뿐이다. 내가 안 다치더라도 누군가는 늘 상 다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결국 내 잘린 손가락은 자본의 욕심에 의한 저들의 가해가 아닌가? 공사가 마무리되고 다음공사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되었을 것을 그 일주일을 못 참아서 생소한 조선“블록”을 갖다가 일을 시킨 저들(자본)의 지나친 욕심이 사고를 일으킨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닌가?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

또 한 가지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저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서울의 중앙병원 버금가는 울산대학 병원은 또 뭐란 말인가? 심장이식에서 태아배아까지 심지어는 사람도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첨단의학이라고 자랑하는 병원이 이까짓 손가락 하나 제대로 붙이지 못해서 멀리 부산까지 가게 한다는 것은 자본의 이익 창출에만 눈이 먼 울산대학 병원이 의대생 실습실화된 채 자본의 이익창출에만 놀아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

잘난 우리 아들 걱정이 많이 난다. 혹시나 그놈이 이 잘린 손가락의 의미를 이 손가락이 왜? 잘려야 했는지를 알고나 있을까? 그 의미를 제대로 깨우쳐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욱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놈으로 자랄까? 이 험한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놈으로 자랄 수 있을까? 이 손가락을 잘리게 만드는 자본의 저 모순덩어리를 조금이라도 깨우치고 느끼기나 할까? 잘 못되면, 나처럼 이런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나 잘려가며 부모가 알까 두려워 애태우며 살아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많이.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

현장의 그 순진한 조합원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생각난다. 또 얼마나 많은 관리자들이 씹어 제낄까? 그렇게 잘난체하고 거만하더니 결국은 다치고 말았다. 저렇게 우리말을 안 듣더니 봐라 다 저렇게 되는 것이다. 하면서 또 얼마나 험담을 늘어놓을까? 옳지 잘됐구나 하고 이놈 이제야 꼬투리 하나 잡았구나 생각하며 쓴웃음 지을 것은 뻔할 뻔자가 아니겠는가? 아 참담하다 그리고 아 고민스럽다. 지금까지 떠들어오고 설쳐대던 안전 안전은 시설이 문제요 조치가 우선이라고 그렇게 주장하며 지내 왔건만 이놈의 손가락 참 야속하다 참 서글프다.
이놈의 손가락 참 안타깝다.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

현장의 많은 동지들이 생각난다. 그렇게도 아픈 사람이 많아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고 있는 현장에서 나마져 자리를 비우게 되니 얼마나 허전하고 맥이 빠질까? 가뜩이나 선거 패배로 현장의 무관심으로 축 쳐져있을 동지들 생각하면 빨리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질 안으니 혹 나의 경우가 선례가 되어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안 될까? 별 생각도 다 든다. 이번 기회에(시간 있을 때) 무엇 하나 챙겨야 할 텐데 무엇을 하지? 현장에 있을 때는 시간이 없어 안 되는 것 같더니 현장에 있을 동지들 생각하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도무지 손에 잡히질 않는다. 잡힐 듯 잡힐 듯…….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

같이 일하던 우리 늙은 노동자이신 선배님이 생각난다. 현장에 있을 때 정하야! 너는 저들에게 절대 고개 숙이면 안 된다. 너만큼은 절대 저들에게 숙이고 들어가지 마라 그것은 그날부터 저들에게 지는 것이요 저들은 그때부터 잘 대해주는 것이 아니고 더더욱 옥죄어 올 것이다. 너는 우리들의 자존심이다 그것만큼은 지켜야한다. 하면서 매일 매일 내 이름을 연호하며 팔을 흔들어 대시던 선배님이 생각난다. 아! 얼마나 가슴이 쓰렸을까? 그렇지 않아도 같이 일하던 내가 다쳐서 죄스럽고 안쓰럽고 그럴 텐데 저들은 또 그런 사람을 내 병 수발 하라고 병원에 보내다니 저들의 속셈이 무엇인가 의심스럽다 아! 형님이 얼마나 마음 쓰렸을까? 지금도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어 오시는 선배님 아! 다 내 탓입니다. 이 잘린 손가락!

기왕에 잘린 손가락

어차피 잘린 것 무슨 의미라도 있으면 한다. 아니면 무슨 좋게 되는 기회로 삼아 지던지. 욕심 같지만 이것으로 지난날의 내 잘못 지난날의 위선이 싹 가실 수 있을까? 이것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무슨 발전의 계기가 되어야 할 텐데. 좀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5.6일간 잘려나갈 손가락을 바라보며 참 느낀 것이 많다. 의사들은 무슨 자존심이 그렇게 많을까? 왜 그렇게 독할까? 잘못되었으면 잘못 되었다고 하지 굳이 내 손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나 스스로 확인하게 하면서까지 자기들의 자존심을 세워야 할까? 덕분에 내 몸이 죽어 가면 이렇게 썩어가는구나 직접 확인하고 나니 참 허무한 인생이요 참 보잘 것 없는 몸뚱이 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손가락 조금 잘렸는데도 이런데 자기 몸을 통째로 던지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절박 했을까? 다시 한번 열사들을 생각해 본다. 아! 지랄 같은 세상 아!

잘나가던 윤재건이도 죽었다던데…….

2005-05-09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