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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균 교수의 감정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12호
한노정연

자 료




지난 5월호에 이어 김세균 교수가 작성한 감정서를 싣는다. 국가보안법이 또다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요즈음 전국노운협의 문건을 여러 항목에 걸쳐 꼼꼼하게 분석한 이 글은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참고로 원래 이 글은 지난 6월호에 실을 예정이었으나 지면 사정으로 싣지 못하였다. 이 점 회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2.3.4. 민족자주화의 추구:

노운협은 민족자주화를 자신의 목적으로서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노운협의 공식문건에서는 ‘반외세자주화’, ‘반미자주화’,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간섭 반대’와 같은 용어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노운협은 북한핵 개발 의혹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자 미국의 군사적 압박으로 인해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고 있으며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문건 1.4., 2쪽; 문건 1.5], 2, 13쪽 등 참조) 미국의 한반도 전쟁무기 배치에 반대하고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문건 1.10, 9쪽) 그리고 북미고위급 회담이 진행중일 때에는 일괄타결과 평화회담 개최를 요구하고 있으며([문건 1.7쪽], 북미회담 타결 이후에는 북미합의의 철저한 이행을 촉구하고 한반도에 평화공존적 질서를 정착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문건 1.10], 10쪽) 또한 팀스피리트 훈련과 같은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중단, 한국군에 대한 통제를 보장하는 한미연합사의 해체, 전시지원협정과 같은 불평등협정의 폐기,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및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요구하고 있으며, 제국주의의 문화침투와 문화적 식민주의를 배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문건 1.6., 2,3쪽)
그리고 노운협은 일본의 군사대국화 경향과 관련하여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깊은 경계심을 보내면서 한-미-일 군사공조체계의 구축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앞의 문건,], 2쪽)
나아가 노운협은 WTO체제의 성립으로 인해 경제의 전면적인 개방화 등이 이루어짐으로써 제3세계가 제국주의 경제에 더욱 깊숙히 편입되고 초국적 독점자본의 전일적인 세계지배체제가 구축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문건 1. 9], 1쪽 이하, [문건 1.10], 19쪽 참조) 그리고 개방화-세계화의 압력에 맞서 쌀 및 기초농산물, 금융-서비스 시장의 무차별이고 전면적인 개방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를 제출하고 있다([문건 1.6.], 2쪽]

-. 민족국가가 명실상부하게 주권을 지닌 하나의 국가체제로서 기능하려면 정치, 군사, 경제, 문화의 자주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외세나 제국주의의 지배,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그 방도에 관해 견해의 차이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이의 절실한 요구이자 염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민족자주화를 요구하는 노운협의 요구 역시 그러한 요구와 염원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을 제국주의적인 것으로 보든 아니든, 미국이 한반도에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 주한 미군이 단지 우방지원의 차원에서만 주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미군이 한국군에 대해 커다란 통제권을 행사화고 있다는 점, 한국과 미국이 맺은 조약에 불평등조약의 요소들이 존재한다는 점, 북한 핵의혹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미국 내부에서 북한에 대해 강력한 군사적 응징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대두되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민족적 자주성과 긍지의 회복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나온 노운협의 요구가 북한의 주장을 찬양-고무하거나, 그 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단정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 보다 우월한 상황에서 주한 미군철수의 요구는 그것이 아무리 순수한 동기에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북한의 오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남한의 경제력은 북한을 압도해 오늘날에는 경제력 면에서 (1993년의 경우) 15 대 1 이상의 차이가 나고 그 차이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남한의 군사력은 그간 급격히 증강되고 현대화되어 북한의 군사력을 압도하고 있으며 - 남-북한은 군사비에서 1993년의 경우 남 130억 달러 대 북 22-40억 달러로 차이가 나고 있고 무기의 질적 수준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고 있다 - , 북한이 혹시라도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이 자멸의 길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로 인해 주한미군이 철수한다고 해서 그로 인해 남한의 안보가 위태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노운협이 주한 미군의 ‘즉각적’ 철수가 아니라 ‘단계적’ 철수를 주장하고 있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 한미군사훈련의 중단, 한미 간의 불평등 협정의 폐기,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등은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확립하고 우리나라가 군사적 주권을 명백히 회복하는 데에 긴요한 사항들이라는 점을 우리는 부인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러한 사항들 중에는 팀스피리트훈련의 중단과 같이 이미 실현된 사항들이 있으며, 다른 사항들 역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휴전협정을 평화체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은 이미 우리정부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사항이다. 이 점에서 노운협이 위와 같은 사항들을 주장했다고 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가 그것을 주장하면 괜찮고 노운협과 같은 노동운동단체가 주장하면 안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법을 집행함에 있어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다.

-. 일본에서 오늘날 군사대국화와 군국주의화의 경향이 강력히 나타나고 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과거에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우기 근자에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사실 등에 비추어 보아 실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태이다. 이 점에서 노운협이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주장이다. 그리고 한-미-일 군사공조체제의 구축 시도에 노운협이 반대하는 것 역시 그러한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 감정의뢰된 [문건 1.3]은 북한의 직업총동맹(직총)이 전노협과 노운협에게 남북노동자의 반일 공동투쟁을 제안한 것과 관련하여 직총의 제안에 대한 입장을 정하기 위한 비상중앙집행위원회 소집을 통고하는 문건이다. 그런데 이 문건 만으로는 노운협이 직총의 제안에 동의하여 어떤 공동투쟁을 행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런데 설사 노운협이 직총의 제안을 수용하여 공동행동에 나섰다고 할지라도,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반대하는 것이 우리 민족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고 남한 주민들 자신의 주체적인 요구라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국가보안법 상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지가 의문스럽다. 만일 처벌 대상이 된다고 한다면, 남-북한 당국자 간에 어떤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그 합의도 많든 적든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는 요소를 지닐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행위 역시 북한의 주장에 많든 적든 동조한 행위로서 국가보안법의 처벌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남북한 간의 ‘합의’ 가능성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완전히 봉쇄되고 말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정부당국자 간의 합의는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부당국자의 행위를 법 위에 놓는 것으로서 법 적용의 형평성을 심각하게 깨뜨리는 일이 된다. 따라서 예를 들어 직총의 주장에 동의하여 적합한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북한 측과 접촉하여 일본군국주의에 반대하는 공동투쟁 등을 전개했다고 한다면, 그 행위는 비록 남북한 간의 교류를 규제하는 법의 처벌대상이 될 수는 있을지라도 국가보안법 상의 처벌대상은 될 수 없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 노운협은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체제가 제국주의적 초국적 독점자본의 지배 하에 있다고 보고 있으며, WTO체제의 출범과 더불어 제3세계에 대한 이들 자본의 지배가 더욱 강화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체제를 제국주의적 지배질서로 볼 수 있는가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대체로 보수학계와 선진국 자본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류계 학자들은 제국주의적 지배질서로 보는 데에 반대하고 있는 반면 진보학계와 제3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제국주의적 질서로 규정하는 데에 찬성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성격 등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학문적-이론적 탐구와 논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제국주의적 지배질서로 본다고 해서 그 견해를 법적으로 문제삼는다면, 그것은 현대판 ‘분서갱유’를 저지르는 일로서 사상과 학문의 자유 및 진보적 학문과 견해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반문명적인 권력 횡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본인은 “김영삼정권이 제국주의의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에 전면적으로 ‘투항’하는 것을 통해서 국내 독점자본의 생존을 ‘구걸’하고 있다.”, “국제화가 종속적이라면 세계화는 ‘식민지적’이다” 등과 같은 노운협의 현실 진단([문건 1.9], 2쪽)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오늘날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세계화전략에는 세계자본주의의 변화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세계자본주의체제 내에서 한국 경제의 지위를 상승시키려는 주체적 요구가 기본적으로 대변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세계화의 효과가 국민 모두에게 동등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 개방 등으로 인해 중소자본이나 농민층 등이 커다란 피해를 입고 있으며 외국자본의 한국 진출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되어서는 안된다. 노운협의 주장은 세계화가 가져오고 있는 그러한 이중적 효과가 지닌 문제점을 노동자의 입장에서 강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상과 발전수준을 파악하는 이론들로는 중진자본주의론,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반(半)주변부 포디즘론 등이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자본주의에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중진자본주의론의 경우에도 한국자본주의를 ‘선진’ 자본주의가 아니라 ‘중진’ 자본주의로 보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한국자본주의의 대외적 ‘종속성’이다. 이 점에서, 비록 한국자본주의가 현재 종속성을 탈피하고 있는가, 아니면 한국 자본주의의 종속성이 심화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들이 나오고 있지만, 선진국 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에 대해 행사하는 구조적 지배력 - 이를 진보학계에서는 ‘제국주의’의 경제적 측면으로 파악한다 - 으로 말미암아 한국자본주의가 경제적 종속성을 아직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세계화의 문제와 관련하여 노운협은 ‘종속성의 심화’를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다고 하겠는데, 그것의 강한 표현이 ‘식민지적이다’라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표현이 설사 지나치다고 할지라도, ‘종속성의 탈피’를 염원하는 민족적 의지성은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관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1980년대 이후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척되고, 이로 안해 제3세계의 경제가 세계자본주의체제에 깊숙히 편입되어짐과 더불어 남미대륙과 아프리카대륙의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제적 종속이 크게 확대-심화되고 있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2.3.5. 자주적-진보적 평화통일의 추구:

노운협의 공식 문건들을 검토해볼 때, 노운협은 자주적-진보적 평화통일의 추구를 자신의 이념적 지향성으로서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운협은 노태우정권 하에서는 미국과 정권이 분단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판단 하에서 미국과 노태우정권의 반통일적 정책을 비판하고 있고 있으며([문건 1.3쪽), 김영삼 정권하에서는 미국과 정권이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서 그러한 흡수통일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문건 1.5], 3쪽 등 참조).
그리고 노운협은 통일이 노동자-민중의 진정한 이익에 합치하려면 그 통일은 노동자-민중의 염원을 반영하는 진보적 통일이 되어야 하고, 또한 통일이 진보적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과 기층민중이 통일운동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에서 ‘범민족대회’와 같은 행사에 노동자들이 적극 참여토록 노력하는 한편, (남북의 노동자들이 노동법, 공장제도, 노동조건, 직업병, 산재, 노동자 생활에 대한 상호이해를 괴하고 공장제도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공동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남북노동자들 간의 민중적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문건 1.2], 40쪽 참조).
나아가 노운협은 통일방안으로서는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에 기초한 1국가2체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문건 1.5, 14쪽; [문건 1.6], 6쪽 참조)
그리고 통일이 어디까지나 평화적이고 자주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히는 일체의 행위를 비판하고 한반도의 비핵지대화와 평화군축체제의 수립 및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등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 본인은 정부가 통일문제에서 그간의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인 태도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정권 때부터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노태우정권의 정책을 분단고착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않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본인은 ‘미국이 김영삼정권을 앞세워 식민지적 흡수통일을 추진하고 있다’([문건 1.5, 2쪽 참조])는 것과 같은 노운협의 현실 인식에 찬성하지 않는다. 실제로 흡수통일을 추진한다고 한다면, 그 주체는 남한 정권과 자본이고 미국은 후원자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식민지적’ 흡수통일과 같은 표현은 주한 미군의 존재나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견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핵문제 타결과 경수로 지원 협상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시피, 지금까지 대북정책에서 주도권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지 우리 정부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 모두는 솔직히 시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 노운협이 사용하는 바의 ‘흡수통일’이라는 용어는 남북한 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통일이 아니라, 남한이 지닌 우월한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의거하여 북한을 굴복시키거나 북한 체제의 붕괴를 유도해 이루는 통일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 ‘흡수통일’과 ‘합의에 의한 통일’을 대당으로 놓는 그러한 용어사용법이 과연 옳는가의 문제는 감정서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 . 그런데 남한이 그러한 흡수통일을 추진하면, 불가피하게 남북한 간의 긴장을 고조시켜 전쟁을 불러 일으키거나 남북한 간의 갈등을 첨예화시켜 엄청난 문제들을 야기시킬 것이기 때문에 통일의 추구가 오히려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불행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점은 대체로 시인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은, 우리 정부 내에도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강경파가 있는 반면, (한완상 전통일원장관과 같이) ‘흡수통일에 반대하고 남북합의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온건파도 존재한다고 본다. 또한 적어도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그러한 흡수통일이 아니라 남북한 간의 합의에 기초한 통일이라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이와 관련하여서는 1993년 통일원에서 발간한 [통일백서] 제3절 “3단계 통일방안과 실천정신”에 나오는 다음의 귀절을 참조하라: “통일이 아무리 절실하고 시급하다 하더라도 무력으로 통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대량살상무기가 총동원되는 현대의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뿐이다. 또한 남과 북의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급작스럽게 흡수되는 식의 통일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미국과 김영삼정권이 ‘흡수통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는 노운협의 주장은 일면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의 그간의 대북정책은 ‘흡수통일’정책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을 소지가 많았다 - , ‘흡수통일’에 반대하는 입장은 노운협만의 입장이 아니라, 우리 정부 내의 많은 이들도 찬성하는 입장이며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 통일이 아무리 우리 민족의 절실한 염원이라고 할지라도 통일이 평화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군축체제의 구축,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등은 통일이 평화적 방식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불가피한 전제이다. 그러나 남북한이 경쟁적으로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있고 이러한 군사적 증강의 고삐를 잡을 실마리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평화통일을 위한 민간인 운동이 지닌 중요성은 매우 크다. 평화통일을 위한 노운협의 운동은 그러한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며, 노운협이 주장한 위의 내용들은 민간 차원의 다른 통일운동에서도 이미 무수히 주장되어 온 것들이다.
-. 지금까지 북한은 ‘1민족 1국가 2정부 2체제 하의 고려연방공화국’의 창설을 자신의 통일방안으로 내세워 왔다. 그런데 노운협은 통일방안으로서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에 기초한 1민족 2체제 연방제국가’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를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행위라고 단정지울 아무런 근거가 없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 정부가 왜 연방제 통일국가 창설 방안을 그렇게 반대하고 있는지를 본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연방제 통일국가 방안이 적화통일 야욕을 실현시키려는 북한의 책략에 장단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하는지, 아니면 남한이 ‘흡수통일’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방안이 북한을 통일의 한 당사자로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지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1국가2체제 연방제통일국가 방안을 우리 정부가 주장하고 나올 경우 북한이 오히려 그 방안을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기 위한 책략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해야 할 정도로 북한에 대한 남한의 우위가 명벡해진 오늘날의 상황에서 그러한 우려는 과잉우려에 불과하다. 이와는 달리 후자의 경우라면 이는 ‘흡수통일을 추진할 의사가 없다’고 주장해 온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적어도 배치되는 것이다. 이 양자의 경우가 아니라면, 북한이 연방제 통일국가를 주장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무조건 연방제 통일국가를 반대해야 하며, 그래서 연방제 통일국가를 주장하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행위로서 처벌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둘째, 오늘날 민간 통일운동에 참여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북한 간의 합의에 기초한 통일을 추구하는 한, 1국가1체제로의 통일은 바로 실현하기가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그러한 통일국가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통일국가 형태로서 1국가2체제 연방제 통일국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 노운협이 그러한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더우기 그러한 연방제 통일국가 방안은 공화국연합제에 의한 남북연합단계, 연방제 통일단계 및 완전 통일단계라는 3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통일방안에도 포함되어 있는 통일국가의 제1차적 형태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노운협이 연방제 통일국가안을 주장했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면, 그 안에 공개적으로 찬성한 모든 민간인들은 물론 김대중 야당 총재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법정에 세워야 할 것이다.
-. 본인은 정말 우리 정부가 남북한 합의에 기초한 통일을 추구한다면, 남북한의 화해-협력단계, (2국가 2체제의) 남북연합단계, (1국가 1체제의) 통일국가단계라는 3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우리 정부 역시 남북한의 협의과정에서 2단계로부터 3단계로 넘어가는 중간적 과도기 단계로서 (1국가 2체제의) 연방제 통일국가단계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남한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 본인은 통일이, 노동자-민중의 이익을 보장하는 진보적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노운협의 주장이란 노동자-민중의 권익의 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운동단체인 노운협으로서는 당연히 제출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진보적 통일을 주장할 자유가 그들에게도 당연히 주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본인은 노운협이 대변하는 이념적 지향성과 활동 내용을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 검토해 보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 본 노운협의 이념적 지향성을 노운협 자신은 ‘반제, 반자본 자주적 진보적 민주주의’([문건1.5], 4쪽; [문건 1.10], 6쪽 참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그러한 민주주의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자본주의’(본 감정서 2.3.1. 및 2.3.3 내용 참조)의 다른 이름이다.

2.4. 노운협의 대정부관

노운협은 노태우정권을 전두환정권과 마찬가지로 군사독재체제로 - 이를 노운협은 ‘군사파쇼정권’이라고 부르고 있다 -([문건 1.4], 3, 16쪽) , 그리고 김영삼정권을 민간정부로 보고 있고 또 김영삼정권이 일정하게 개혁을 행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지만, 군부정권이 지니고 있었던 파시즘성을 기본적으로는 유지하고 있는 ‘민간파시즘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문건 1.4.], 16)

-. 과거의 군부정권을 학자들에 따라서는 ‘군부독재체제’, ‘과잉성장국가’, ‘관료적 권위주의국가’, ‘군부권위주의체제’, ‘군부파시즘(또는 파쇼)체제’ 등 다양하게 불리우고 있지만, 국가를 파악하는 시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군부정권을 억압적 독재정권으로 보는 데에는 그 시각들 간에 커다란 차이는 없다. 따라서 노운협이 과거의 군부정권을 군부파쇼정권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그 정권을 잘못 규정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를 위한 범국민적 투쟁에 힘입어 일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대부분의 학자들 역시 노태우정권이 사실상 과거의 군부독재체제를 연장한 군부정권이라고 보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 김영삼정권을 민간파시즘체제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김영삼체제를 민주주의체제라고 보는 학자들 중에도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립이라는 민주주의 규정의 최소 규정조차도 아직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제한적 민주주의’ 체제로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따라서 김영삼정권을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이론적으로 옳은가의 문제를 떠나서 김영삼정권을 제한적 민주주의로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는 그 보다 더 부정적인 견해인 민간파시즘론이 왜 나오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파악이 나오는 가장 중요한 측면의 하나는, 그간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정권 하에서 노동자-민중의 자유로운 사회-정치세력화 등을 가로막는 법률 등이 여전히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삼정권을 민간파시즘체제로 보는 견해가 학계에서는 비록 소수이지만,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견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들 노동자들이 김영삼정권을 민간파시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법정에 세우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그들이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사회로 인식할 수 있게끔 민주개혁을 확대하고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옳은가를 우리 모두가 깊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끝으로 김영삼정권의 그간의 정책이 친재벌적이었다는 것은 노운협 아니라, 경실련을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많은 학자들도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사실이며, 이 점이 김영삼정권의 개혁이 지닌 불철저성이 지적되고 있는 핵심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3. 개인자격으로 발표했거나 좌담한 내용이 게재된 문건들에 대한 감정

이들 문건들에 대한 검토는 앞에서의 논의와 많은 부분에서 중복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하려고 한다.

3.1. [문건 2.1.]에 대한 검토

-. 이 글의 내용은 매우 이론적이며, 노운협의 공식문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용어들도 많이 나오는 그 나름의 독자성을 지닌 글이라고 판단된다. 그런데 본인은 사회를 기본적으로 ‘식민지사회’로서 규정하는 글쓴 이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파악은 기본적으로 주권을 지닌 국가적 공동체인 남한사회의 대외적인 정치적-경제적 종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파악한 견해이다. 그리고 본인은, 글쓴 이의 견해와는 달리, 한국 경제가 그간의 발전을 통해 - 비록 이를 통해 과연 앞으로 국제적 분업구조 상에서의 구조적 종속성으로부터 한국경제가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 국제적 분업체계 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계속 상승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을 쓴 필자의 견해가 북한의 주장을 동조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남한사회를 ‘식민지 반(半)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하고 있는 바, 북한의 대남한사회 파악과 글쓴 이의 견해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1) 먼저 북한에서는 남한사회를 과거와 마찬가지로 완전 식민지로 보고 있지만, 글쓴 이는 본질적으로 식민지사회이지만 완전식민지가 아니라 신식민지 내지 반(半)식민지로 보고 있으며(212쪽 이하 참조), (2) 이에 따라 북한은 남한국가를 미제의 대리정권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글쓴 이는 남한국가를 대리정권인 동시에 ‘총자본을 형성해 ..... 토착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아울러 대변하는 부르주아정권이기도 한’ ’ ‘반(半)식민지적 예속정권’으로 보고 있으며, (212쪽 참조), (3) 북한은 토착자본을 단순한 매판자본으로 보는 반면, 글쓴 이는 단순한 매판자본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물질적 토대와 자기발전의 물질적 기초를 지닌 자본으로 보고 있다(214쪽 이하 참조). 또한 (4) 북한은 남한 사회에서의 반(半)봉건적 생산관계의 온존을 강조하고 있지만, 글쓴 이는 그러한 반봉건적 생산관계는 거의 해체되었다고 파악하고 있다(217쪽 참조)
-.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 논문은 얼핏보면 북한의 대남한사회관을 많이 수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로 북한의 대남한사회관을 비판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쓰여진 글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3.2. [문건 2.2.]에 대한 감정:

이 글의 논지는 노운협의 공식문건에서 나오는 김영삼정권에 대한 평가와 민주대개혁을 위한 주장들의 내용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판단된다.

3.3. [문건 2.3]에 대한 감정:

이 글의 논지 역시 노운협의 공식문건에서 나오는 민족자주화와 민주대개혁의 요구내용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판단된다.

3.4. [문건 2.4.]에 대한 감정:

-. 이 좌담에서 김승호는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화가 확대되어 가는 만큼 반자본주의적인 흐름도 확대되어가고 있다”고 있다고 진단내리면서 현 시기에 나타나고 있는 반자본주의운동이란 “사회주의 운동을 포함하지만 단순히 사회주의 운동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운동이라고 규정내리고 있다.(96쪽 이하) 이처럼 김승호는 반자본주의라는 개념을 현 시기에 세계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정치운동의 흐름이 무엇인가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념을 사회주의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지배가 가져오는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타나는 제반 운동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규정하고 있는 바, 반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나아가 김승호는 현실사회주의문제와 관련하여 “발달된 사회주의라고 해왔던 허구적 이데올로기의 껍떼기가 벗겨졌다”(96쪽)고 말하고 있다시피, 그간의 사회주의체제에 대해 명백히 부정적인 견해를 표시하면서 사회주의에서도 민주주의가 불가피한 요소라고 말하고 있다.(122쪽) 그리고 문성현 역시 기존의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반성이 요구된다는 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122쪽) 그런데 사회주의에 대한 이러한 논의 조차 법적으로 제재를 가한다면, 이는 다른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반문명적인 처사라고 하지않을 수 없다.
-. 김승호는 제국주의의 문제와 관련하여 오늘날에는 정치적 자주성 보다는 초국적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에 더 높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99쪽), 이는 자본주의 일반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제국주의형태’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남한의 경제는 더욱 초국적 자본의 하청게열화, 즉 경제적 식민지의 성격이 분명해지고 있다“(101쪽)는 그의 견해는 시장개방으로 인한 외국자본의 국내진출 등이 지닌 문제점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견해라고 생각된다.
-. 통일방안의 문제와 관련하여, 김승호는 연방제통일을 민민운동진영이 ‘기조적으로’ 찬성하고 있지만, - 그것이 “남북의 체제를 그냥 인정하자라고 하는 의미라면 이것이 갖는 긍정성은 매우 제한적이다”라고 평하면서(105쪽) - “남쪽의 친미파쇼체제도 그대로 인정하고, .... 북한체제가 지닌 ... 민주적이지 못한 부분들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통일이 되어서는 안되며(105쪽), 일방에 의한 일방의 흡수통일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남북민족 전체적으로 일정한 사회적 진보가 이루어지는 통일방식”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105쪽) 그리고 그는 그런 가운데 연방제가 과도기적 통일방안으로 설정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다른 곳에서 그는 “현재의 남북의 체제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 것이 아니라 부분적이라도 진보적으로 바귀어지는 가운데” (1국가2체제의)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통일의 방식으로서 연방제냐 국가연합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적으로 ‘진보적 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이냐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120쪽). 이러한 그의 발언은 그가 연방제통일이냐 국가연합을 거친 통일이냐라는 통일의 방식이 아니라, 통일의 내용 면에서 통일 이전에 남한사회만이 아니라 북한사회의 민주적 개혁도 이루어지는 것을 더욱 중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발언은 그의 통일관이 북한의 통일관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북한사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라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의 이러한 발언은 그의 통일관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 남한사회의 현실에 관련하여 김영곤은 “독점재벌들이 오히려 개방화에 편승하고 근로민중에게 고통을 전담시키고 있는 보수적이고 천민적인 속성에 비추어 볼 때 독점재벌을 해체시켜야 한다는 요구도 필연적으로 나타나지 않겠느냐”(137쪽)고 말하고 있는데, 이 발언은 그가 자본주의 자체를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천민적’ 자본주의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3.5. [문건 2.5]에 대한 감정:

이 내용은 노운협의 공식문건에 나오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에 관한 주장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판단된다.

3..6. [문건 2.6]에 대한 감정:

이 문건은 1994년도 상반기에 있었던 전지협 파업과 관련하여 노동운동이 가야할 방향에 논하고 있는 글로서 노운협의 공식문건에 나오는 현실분석과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4. 기타 문건에 대한 감정:[문건 3.1.]

이 문건은 ‘일제 식민지통치 사죄, 보상과 군국주의부뢀 저지를 위한 노동자대회 참가자 일동’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이기 대문에 이 문건과 노운협과의 관게를 본인으로서는 판멸할 수 없다. 그런데 결의 내용 제4항목에서 북한 직총의 제안을 지지하며 함께 투쟁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에 대한 본인의 판단은 본 감정서 2.3.4.의 서술로 대체한다.

5. 북한은 과연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조직된 반국가단체‘인가?

지금까지의 감정과 관련하여, 본인은 검찰이 북한은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조직된 반국가단체’라고 주장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이와 관련해 본인은, 북한이 그러한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한반도의 북반부에 수립된 하나의 국가적 실체라는 점은 국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이미 우리 정부 역시 인정하고 있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 1960년대말까지만 해도 한국은 북한을 정식 인정하는 국가와의 상호승인과 국교수립 등을 거부해왔다. 이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입장에서 보면 당연하고, 또 정당하다. 그러나 한국은 1993년 말까지 북한을 정식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131개 국 중에서 122개국과 수교관계를 수립했다.
-. 남한과 북한이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에 기초한 통일’에 합의했음을 선언한 1972년 7월 2일의 7.4남북공동선언은 북한정부를 남한정부와 대등한 정부로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진 선언이다. 그리고 1991년 9월 17일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였으며, 1991년 12월 13일에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남북한 당국이 공식체결함으로써 남북 모두가 서로가 주권국가임을 상호 간에 최종적으로 인정했다.
-. 과거의 전두환대통령은 물론 김영삼대통령도 ‘반국가단체 괴수’로 불러야 할 김일성을 ‘주석’이라고 호칭하면서 남북 최고책임자회의 내지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하거나 그러한 회의 내지 회담 개최에 찬성했으며, 비록 김일성의 사망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지만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하고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준비까지 했다.
-. 이상의 논의에 비추어 볼 때 정부가 북한을 이미 사실상의 주권국가로 국내외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검찰이 노운협 등을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했다는 이유를 들어 기소한 것은 엄청난 자가당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6. 결론

지금까지 본인은 감정서를 쓰는 도중에 이러한 감정서를 써 법정에 제출하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서 참담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문민정부가 들어섰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가 대체 얼마만큼이나 민주화되었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적 감정을 토로하기 보다는, 이제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발전을 이룩해야 할 21세기를 눈 앞에 둔 현 시점에서 사법부에게 부탁하고 싶은 몇마디 말을 적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관용’(tolerance)의 정신이다. 관용의 정신은 서구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온 가장 기본적인 원리였으며, 그것이 없는 한 민주주의는 어디에서도 성장하지 못했다. 종교적 차이를 들어 타 종교를 믿는 자들에 대한 억압이 자행되던 시대가 청산되고 어떤 종교를 믿든 국가시민으로 포용한 것이 근대민주주의의 출발이었다면,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확대되어 나감으로써 근대민주주의는 발전했다. 또한 그 속에서 다양한 사상과 학문들이 발전했으며, 그 발전의 혜택은 단지 사상과 학문에게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모두에게로 되돌아갔다. 사상적 차이를 들어 마녀사냥이 행해지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는 질식하고 만다.
다음으로,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국가의 ‘민중통합적’ 정책이다. 군부시절부터 우리 국가는 민중배제적 정책에 너무나 익숙해져 지금도 기층민중의 요구를 불순시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이는 역으로 기층민중의 국가에 대한 불신을 증대시켜 왔다. 그러나 그러한 악순환은 이제 청산되어야 하며, 그 청산을 위해서는 먼저 국가가 민중포용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 문명화되고 문화화된 새로운 민중통합적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가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21세기를 맞이하는 현시점에 사법부에도 새로운 가치관이 넘쳐흐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996년 4월 22일

감정인 김 세 균 (인)
한/노/정/연

1996-06-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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