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노자관계의 재편과 민주노조운동의 진로
남 구 현 (연구위원, 한신대 교수 사회복지학)
이 글은 필자가 지난 6월 14일 민주노총 주최 정책세미나에
제출한 발제안이다. 내용 수정없이 전문을 게재한다.
1. 무엇보다도 먼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운동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어디에서나 노동조합운동이
발생하는 이유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모순적이라는 데에 있다.
노동조합운동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성에 그 토대를 두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자본에 대립하는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운동의 내용과 형식에 따라 자본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자본의 지양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최대한의 잉여가치(이윤)의 생산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은 무엇보다도 노동력을 구입하여 생산에
투입함으로써만이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노동력 상품의
사용가치는 자기가 가진 가치보다 더 큰 가치의 생산이며,
노동력 상품의 사용과정은 바로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이다.
잉여가치부분이 누구에게 귀속하는가하는 문제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계급간 세력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적인 운동방식에 이미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경제적 투쟁의 불가피성은 이와 같이
내재적으로 주어져 있다. 물론 쌍방이 계약에 대해 인정하고
조건에 합의한다면 커다란 충돌없이 자본관계의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수준에서 합의하더라도 그것이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기본적인 모순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닌 한, 즉 자본관계 자체의 지양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 합의에는 일정 시점에서의 계급간 세력관계가 표현되고 있을
뿐이어서, 세력간의 힘관계의 변화에 따라 쌍방이 새로운
차원에서 모순적으로 대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시 내포하고
있다. 합의는 항상 위기적이며, 파기될 수 있다. 즉, 합의는
대립의 반대물이 아니라 대립의 결과물이자 새로운 대립을 위한
투쟁조건의 변화인 것이다.
자본관계 내에서 자본의 재생산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자본과
모순적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은
자본과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하나의 집단 주체로서 사회적
행동에 나선다는 점에서 노동자는 단순한 노동력 상품의 소유자
또는 판매자가 아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는 전
사회적인 계급관계로서 재생산되어야한다.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이 재생산된다는 것의 의미는 노자간의 관계가 사업장
내에서의 협소한 (경영학적인) 노사관계만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이데올로기적인 전 사회적인 관계로서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노동자 계급은
계급관계로서의 자본관계를 지양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동력이
되며, 나아가서는 하나의 계급으로서 전 사회적인 계급모순을
지양할 수 있는 주체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임금인상, 노동조건의 개선, 노동시간
단축, 소득 분배구조의 개선, 사회보장비의 중대 그리고 이것의
총화로서의 삶의 질 개선은 가장 초보적인 형태의 노동자계급의
요구이다. 물론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노동자운동이
전개되어서는 안될 것이지만, 지금의 민주노조운동이 삶의 질
향상을 넘어서는 지점에까지 착목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민주노조운동이 물론 임금인상, 노동조건개선,
민주노조건설이라는 초보적인 요구를 가지고 투쟁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주노조운동은 비록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 등 소박한 형태로 표현되어 왔으며,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결여하고는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서는
대안사회에 대한 지향성, 즉 노동자 해방과 보편적 인간해방에
대한 지향성 역시 가지고 있다.
또 한가지 고려해야하는 것은 우리에게 삶의 질 향상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제시되는 나라들에서의 삶의 질 향상은 자국
노동자의 제국주의적 전쟁(군사적, 문화적, 경제적인)에의
동원과 다른 나라 노동자의 희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른 나라의
노동자를 희생시키면서 (자본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할
것인가. 자본끼리의 경쟁은 보다 높은 이윤을 향한 자본의 내적
속성이 관철되는 외적 형식이다. 배무기 교수류의 기업내
노사협조주의적인 고능률의 생산조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키든, 분배구조의 조정을 통해 노동자들의 민주적 참여를
유도해 경쟁력을 강화시키든 자본끼리의 경쟁에 노동자들이
동원되는 한, 노동의 생산성은 자본의 생산성으로 전화되고,
어떠한 경우에도 승자는 자본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면에서 매우 선진적이다. 원진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노동자가 대신
희생당하는 것을 반대한 사실이 있다. 지금의 민주노조 운동
진영에서 보여주는 외국인 노동자 및 해외진출 한국자본에
고용되어 있는 외국노동자에 대해 보여주는 연대 움직임 등도
역시 마찬가지 사례이다.
나아가서는 자국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성공한 나라들에서도
계급투쟁이 아직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민주적, 참여적 노사관계의 틀 내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국의 자본과 협조하면서 삶의 질 향상을 이룩해 낼 수
있었지만, 자본의 전지구화 경향에 따라 이제 자본은 자국의
노동자를 내팽개치고(해외투자, 저임의 외국인 노동자 유입),
이제까지 양보해 왔던 것조차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복지국가의 해체) 최근의 예로서는 독일에서는 4백만에
이르는 사상 유례없는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금속노조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고용을
늘린다는 내용의 타협안인 ‘일자리를 위한 연대’ 프로그램을
제안했으나, 올 4월말 콜 총리가 공공부분의 임금을 동결하고
복지혜택을 대규모로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함으로써 다시금
전국적인 파업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새로운 차원의 계급투쟁 및
국제연대가 모색되고 있는 지금의 세계사적 시점에서는 과거
서구 자본주의 노사관계 모델이 우리의 목표지점이 될 수는
없다.
2. 노동자가 사회의 주체로 서고, 보편적인 인간해방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계급관계 및 그것이 세계적으로 외화된 형태인 제국주의 관계의
지양이 전제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또한 운동 주체로서의
노동자 계급 내부의 단결과 일반 민중 또는 시민(중간계급),
나아가서는 온 세계 진보세력과의 연대와; 투쟁과제로서는
경제투쟁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의
결합; 지양 전략으로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사민주의적
전략과 현존 사회주의국가에서의 이행전략의 실패 및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전략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단시일에 해답을 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단지
여기에서 지적될 수 있는 점은 지금의 노사개혁을 보는 관점이
보다 전사회적이고 국제적인 관점 속에서 배치되어야 하며,
그러할 경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당면과제가 다른 맥락
속에서 이해되고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동법 개정 문제는 협소한 의미의 노사관계를
넘어서는 전 사회적 관계로서의 노자관계의 민주화와 관련되어
있다. 노동법의 개정은 노동관련법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
관련법, 정치관련법 등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제법률들과,
나아가서는 노동악법과 함께 우리나라의 소위 권위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반민주악법으로서 끊임 없이 논란이 되어왔던
국가보안법의 폐지 문제와 맞물려져 있는 것이다. 많은 조항들이
노동관련법만 개정해서는 실효성이 없는 경우도 있고,
반민주악법 조항들이 남아 있는 경우 노동법이 아니라 다른
조항을 원용해서 노동자운동을 탄압할 수도 있다.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과거 청산과 소위 역사 바로세우기의 주체라는
차원에서도 노동자가 실질적인 주체로 나선다는 의미가 있다.
사회개혁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같은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다.
복지, 교육, 의료에 더해 환경, 교통 문제도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이며, 실제로 노동자들이 주체로 나서서 이제까지의
시민운동적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야 해결될 수 있는
당면과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경제 민주화 항목이 사회개혁
분야에 포함된다면, 정치분야와 관련된 부분도 역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분야와 관련된 부분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관련해 실제로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지 않은가.
지금 민주노총이 서 있는 지점은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과거
수년간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전국적인 조직적 구심을
형성하는데 성공하였고, 현실적인 힘관계의 변화에 따라
민주노총의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까지 탄압에 대처하면서 건설된 민주노총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합의주의를 실험하면서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단계에 이르른 것이다. 현재 제시되고 있는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론은 내용적으로 볼 때, 이제까지 논란의 대상이었던
노동악법조항을 개정하는 대신 신경영전략적인 노동통제방식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현장을 공동화시키고, 신보수주의적인
‘(자본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다는 의미에서) 작지만
(노동자에게 법 집행을 엄중히한다는 의미에서) 강한 정부’식의
탄압을 병행하면서, 사회적 합의주의의 이름아래
기업별노사협조주의를 강제해 내고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이미 전 사회적인 노자관계의
재편이라는 관점에서 배치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그것이
이제까지 보여왔던 민주성, 계급적 및 전 사회적 연대성을
발전시켜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성장하는가 아니면 지배계급이
바라는 새로운 통제방식에 순응하는가 하는 기로에 서있다고
보여진다. 단순한 노사관계 뿐 아니라 전 사회적인 노자관계의
재편이 불가피한 시점에, 민주노총이 가져야하는 관점은
노사관계 차원에서의 민주화 요구에 약간의 사회개혁적 요구를
담는 차원에서 전사회적이며 국제적인 차원으로 보다 확대되어
전면화되어야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십개의 보기 좋은 강령보다 구체적인
투쟁과정속에 현실이 바뀌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형성된 사회적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의
실천이 보여온 건강함과, 우리나라가 처한 세계적인
제국주의관계 속에서의 위치 - 즉 아직 제국주의 국가의
헤게모니 아래 위치하고 있으면서 부분적으로는 제국주의로서
행세하는 중간자적인 위치 - 는 자본관계 및 제국주의 관계의
지양과 새로운 사회 및 새로운 세계질서의 수립이라는 세계사적
과정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과거 투쟁의 역사적 성과물을 수확하고, 그것을
앞으로의 보다 진전된 투쟁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을 때, 그
가능성은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