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린 마 당
(국회의원)선거법 개정 논의를 제언하며...
송 태 수 (해외연구원, 베를린자유대학 박사과정)
이번 호 열린마당에는 선거법 개정 문제를 중심으로 송태수 해외
연구원이 보내 온 원고를 싣는다. 필자는 이탈리아 선거법
개정운동을 추진하면서 선거법 개정운동의 배경과 조건, 그것이
끼친 영향 등을 분석하고 있으며, 우리의 조건 속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올 4월 11일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장기표씨가
후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실정치 포기’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내일신문 96/6/26) 장기표씨는 “정치의 어느 구석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기가 어려운 형편”이라며, “앞으로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지역구에 출마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88년에는 민중당 후보로서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는
제도정당의 하나인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경험을 갖고 있는
진보적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장기표씨의 ‘현실정치 포기
선언’은 진보진영이 구체적이면서도 창조적인 방향으로
사고전환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우리의 선거법 개정 논의 활성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즉 현행 전국구의원제를 철폐하고, 대신 전체
의석의 절반을 정당에 대한 투표로 결정하는 (비례대표제)
‘제2기표제’ 도입 선거법 개정 논의를 진보진영이 주도하자는
것이다. 선거법의 개정이 기성 제도 정당구도에 미친 영향이
컸던, 최근의 한 사례로서 이태리의 1991년과 93년 선거법 개정
과정과 기성 정당지형의 변화과정을 살펴 본 뒤, 우리의 올
4․11 선거에 대한 분석 및 선거법 개정 논의의 필요성을
주장 중심으로 간략하게 정리하기로 한다. 이 글은 구체적
논의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문제제기 수준에서 쓰는
것임을 밝혀 둔다.
이태리 선거법 개정과 이태리 선거법과 관련하여 자료추천 및
코멘트를 해준 정병기 연구원에게 감사한다. 이태리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주로 Peter Weber: Wege aus der Krise:
Wahlreform und Referenden in Italien와 Ludger Helms,
Strukturwandel im italienischen Parteiensystem을
참고하였음.
정당구도의 변화
이태리는 1946년 제정된 이후 48년과 56년에 약간의 수정만을
가했던 선거법을 1991년 6월 9일과 1993년 4월 18일 두 차례에
걸친 국민투표를 통하여 개정하였다. 91년과 93년의 선거법
개정이 기존 정당구조(혹은 정당지형) 및 권력구조에 미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커서, 심지어
선거법 개정으로 인하여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했다거나
‘제2공화국이 시작’되었다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할 정도이다.
정치학적 용어로서 ‘공화국’의 구분은 헌법의 개정이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1991년과 93년 선거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결과에 대해서 이러한 용어법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으로 인한 기존 정당구도의 변화를 강조하기
위해서 ‘새로운 공화국’ 혹은 ‘제2공화국’ 등의 개념을
인용하기로 한다. 이태리의 기존 정당구도 및 정치․제도
질서가 붕괴되는 결정적 배경으로 ‘동서 냉전’의 종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물론이다.
이 절에서는 91년과 93년 개정된 선거법 내용과 함께 선거법
개정 논의와 그 구체적 실행이 어떤 정황 속에서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살펴 보고, 다른 한편 선거법 개정이 기존
이태리 정당지형에 미친 영향을 확인해 봄으로써, 의회정치
질서에 선거제도가 지니는 의미를 살펴 보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관계의 변화 및 특히 1990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제2당으로 급부상하는 ‘롬바르다 연합’에서
이후 ‘북부연합’으로 이어지는 정당세력의 급부상 과정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고의 논점을
중심으로 필요한 정도에서 이에 대한 서술을 제한하기로
한다.
기성 정당구도와 ‘이태리식 비례대표제’
이태리 선거제도는 비례대표제를 원칙으로 한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특히 심하게 전사회적으로 표출되던 2차대전 이후 약
10여 년 간에 걸쳐 비례대표제 선거제도가 이태리
의회민주주의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한 바는 인정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태리식 비례대표제’는 ‘효과적인 정권교체를
봉쇄하는 동시에 정치제도 병폐현상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Wolfgang Merkel, Das italienische Parteiensystem im Wandel,
in: Österreichische Zeitschrift für
Politikwissenschaft 1983/12, p.331. 이태리의
기독민주당(DC)에 의한 2차대전 이후의 장기집권 정치체제를
개념화하는 네 가지 모델에 대해서는 같은 글 pp.332-4 참조.
중도-좌파 연합정부에서 공산당이 철저히 배제되는 배경으로는
서유럽 내 ‘반NATO노선’을 강하게 견지했던 이태리공산당을
배격해 온 미국의 역할이 당연히 1차적 요인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이태리식 비례대표제’는 다른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다. 즉 유권자는 한 정당에 대한
투표를 하되, 유권자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리스트 중에서 네
명에 대하여 기표할 수 있도록 했다(‘4중 기표제’). 이러한
투표방식은 첫눈에 볼 때에는 유권자가 정당의 후보리스트에도
직접 영향을 미쳐 의회의 정파구성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정적 요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커다란
선거구의 경우 630여 하원 의석 중에서 54명의 의원이 한
선거구에서 배출될 수 있는 정도로 커다란 선거구도 있었다.
유권자들로서는 오히려 자기가 기표하는 후보자의 당선가능성을
거의 예측할 수가 없었으며, 따라서 구성될 의회에 어떤
정파들이 참여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표상을 가질 수가 없었다.
거대 정당들에 있어서는 후보들이 연합체를 만들어 연합체들
간에 상호교환적인 지지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적인 선거부정 혹은 마피아 세력에 의한
유권자들의 기표행위 통제까지 작용하여, ‘이태리식
비례대표제’의 부정적 결과는 더 증폭되어 나타났다.
지역에서 명망을 누리고 있는 정치인들이 자기가 추천하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의 2, 3, 4번째 지지표를 모아 주는 댓가로
‘돈 가방’이 오고 가는 일이 횡행하는 반면, 이러한 금전에
의한 ‘연줄관계Seilschaften’를 초월해 독자적으로 출마하는
후보들의 당선 기회는 더욱 더 줄어들게 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당선된 의원들은 유권자들에게 고마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당이나 정당내 파벌들에게 고마워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Peter Weber: 앞의 글, p.34. 이 때 ‘파벌’이란 정당
내의 다양한 정파들일 수도 있겠으나,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한
보스정치인 중심의 선거정략적 파벌들도 많았다.
‘이태리식 비례대표제’의 결과는 이미 50년대 말에 이르면
정당들의 파벌들에 따른 분열현상을 더욱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당내에는 다양한 ‘연줄관계들’(지명도
높은 보스 중심의 인맥관계에 다름 아님)이 형성되고 특히
남부이태리에 광범하게 퍼져 있던 ‘귀족-평민
관계Klientelismus’가 의회 내에도 형성된다. 원래
Klientelismus는 로마제정에서 귀족과 그 보호 하에 있는 평민의
관계를 일컬음. 특히 정치적 관계에서는 정당이나 파당의 보스라
할 수 있는 ‘귀족 정치인’과 그의 비호 아래서 정당후보로
공천되는 ‘평민 정치인’ 관계로 나타남. 정치적
Klientelismus에 대해서는 Peter Weber, Der lange Weg zur
Verfassungsreform in Italien, in: Zeitschrift für
Parlamentsfragen, 24/3, pp.474-95참조; 남부이태리의
사회경제적 관계로서 ‘귀족-평민 관계Klientelismus’에
대해서는 Rolf Uesseler, Das politische System Italiens in
der Krise, in: Blätter für deutsche und
internationale Politik, 92/4, p.463-5와 Klaus Bullan, ‘La
Festa e finita!’, in: Sozialismus 91/9, pp.16-7 참조
선거법 개정과 ‘제2공화국’
이태리 정당구조의 발전과정에서 선거법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로 정치학자들에 의해 선거제도의 문제점이
지적되는데, 이들은 유권자에게 부여되는 ‘4중 기표제’의
철폐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장기간
일방적으로 집권해 온 중도 및 (공산당을 제외한) 좌파 정당들의
연합에 의해서 묵살되어 왔다. 선거법 개정에 즈음한 기간
연합정부에 참여하고 있던 정당은 DC (기독민주당: Democrazia
Cristiana), PSI (사회당: Partito Socialista Italiano), PSDI
(사회민주당: Partito Socialdemocratico Italiano) PLI
(자유당: Partito Liberale Italiano)
비록 집권세력에서는 철저히 배제당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공기업에서나 재정부문에서,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TV, 언론,
대학 및 법조계 등에서 일정 정도의 지분을 보장받고 있던
공산당(PCI)도 이러한 논의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91년 ‘4중 기표제’ 철폐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공산당은 선거법
개정안을 적극 지지하게 된다. Klaus Bullan, 앞의 글 p.16
참조
80년대에 들어서 사회의 다방면에서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기 시작하는데, 중도연합정권에 제1당으로 참여하고
있던 기독민주당(DC: 이하 기민당)의 내부에서 선거법 개정을
주장하는 그룹이 형성된다. 기민당 내부에 형성된 이 그룹의
활동은 당의 이미지 문제를 고려한 지도부의 정략적 비호 아래
계속되지만, 이 그룹에 의한 선거법 개정안은 당 내부의
‘연줄관계’에 엮어진 개정반대파에 의해 항상 부결되고 있던
상태였다. 다른 한편 ‘급진당(Partito Radicale)’을 중심으로
한 군소정당들이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는 하나의 세력으로
형성되었다. ‘급진당’은 이미 1973년에 국민투표를 통한
‘특정법 폐지’ 가능성을 활용해 거대 제도정당의 일방적인
국정관철에 제동을 거는 성공경험을 갖고 있었다. 즉 국민투표를
통하여 ‘특정법의 폐지에 대한 가결(헌법 75조)’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조항을 이용 헌법 제75조는 의회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국민대중의 직접적인 의사표현 수단의 하나로 보장되어
있는 조항으로, 국민투표를 통한 특정법(조항)의 ‘폐지’
가능성을 명시하고 있음.
, 국민투표를 통하여 ‘이혼법’의 폐지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선거법에 반대하고 있던 위의 두 그룹은 80년대 말에 서로
내용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즉 ‘정당에 기표하는 비례대표식
선거권’ 외에 유권자들에게 부여되어 있던 ‘리스트에 올라
있는 후보 4명에 대한 기표제’를 국민투표를 통하여 폐지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또 한편 90년 지방자치 선거에서
신생당으로서 ‘롬바르다 연합(Lega Lombarda)’은 19%를
득표하여 제2당으로 급부상하는데, 이후 ‘북부연합(Lega
Nord)’으로 이어 진다. 북부이태리에 기반을 가지고 있는 이들
‘북부연합’세력은 이태리 사회경제에서 ‘귀족-평민 관계’의
문제점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데, 이로
인하여 기성 제도정당(특히 정권에 참여하고 있던 정당들)은
엄청난 득표율 감소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집권당인 기민당 내 비판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선거법 개정
추진 세력은 90년 초에 선거법 개정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다음의 세 가지 목표를 상정하였다. 첫째 하원의원 선거에서
후보 4명에 대해 투표하는 ‘4중 기표제’ 철폐를 통해 정치적
‘귀족-평민 관계Klientelismus’를 종식시키는 것, 둘째 정당의
파편화를 방지함으로써 정당지형을 안정화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거에서 후보자의 인물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선거법 개정을 달성할 것 등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확정,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는
안은 ‘후보 4명에 대한 기표제를 폐지하고 후보 1인에 대해서만
기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태리 정당정치의 가장
커다란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던 ‘귀족-평민 관계’의 제도적
온상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던 ‘후보 4명에 대한 기표제를
개정하자는 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91년 6월 9일 실시되는데,
62.5%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선거참여율에 95.6% 찬성이라는
그야말로 경이적인 결과를 보였다. 공산당, 녹색당 및 기민당 내
비판세력이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찬성했던 반면, 기민당과
정부에 참여함으로써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사회당은 이에
반대한다. Klaus Bullan, 앞의 글, p.16
‘미니(mini)개혁’처럼 보이는 이 선거법 개정은 실제로는
하나의 ‘정치적 폭탄’과 같은 위력으로 작용하는데,
‘선거부정의 악습을 폐절하고 ‘정치적 귀족-평민
관계Klientelismus’로 엮어 지는 ‘연줄관계’의 투기성을
근절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이후 93년 4월 선거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필자) 소선거구제로의 선거법 개정 방향을
잡아주는 조타수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Giampaolo
Pansa, Il Regime pp.140-1 (P.Weber, 앞의 글, p.22에서
재인용)
91년 6월 9일 국민투표 결과 95.6% 지지라는 통계치에서
확인되듯, 여론의 향방이 너무도 분명히 하나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억지로 확인한 기민당은 ‘국가형태 개혁 소위원회’,
‘정부개혁 소위’, ‘선거법 소위’ 및 ‘사회보장제 소위’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1992년 9월). 90년대 초반 대통령이던
코시가는 언론 앞에서 ‘정치구조를 포함한 국가제도들이 ‘난파
직전’에 놓여 있다’는 말을 하지 않고 넘어 가는 날이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고 함. Rolf Uesseler, 앞의 글, p.461 참조
‘선거법 소위원회’는 상원의원 선거에 다수대표제를 도입하는
안을 상정하게 된다. 즉 의석수의 75%를 소선거구제
다수대표제에 의해 선출하고, 나머지 25%를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는 안이었다. 선거법 개정에 대한 투표는 정부 내각에
대한 개정안 및 여타의 소위원회의 최종안 여덟 가지 항목에
대한 국민투표방식으로 93년 4월 18일 진행되었는데, 상원의원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82.7%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도입함으로 인해 기존의 선거구도 완전히
재편되었다.
1993년 4월 18일의 국민투표를 통해서 개정된 선거법은 이태리
정당지형에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 왔는데, 피사대학에
강사로 있는 베버P.Weber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도저히 변할 수 없을 것처럼 안정적으로 보이던
이태리 정당구도는 약 40여 년이 넘는 동안 유지돼 왔다. 이러한
안정된 정당구도 하에서 각 정당들은 이미 구획정리되어 있는
유권자 표밭을 놓고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서로 경쟁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다수대표제로의 급작스런
전환은 전체 정략적 공조체계의 붕괴와 다름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기존의 파편화된 정치적 세력들의 통합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되었다.’ Peter Weber, 앞의 글, pp.25-6
기민당, 사회당, 사민당 내부의 보스중심적 정치문화를 특징짓던
‘귀족-평민 관계Klientelismus’, 즉 정략적 공조체계의 붕괴와
기존의 파편화된 정치적 세력들의 재통합을 거친 후 치러진 올
4월 21일의 이태리 연방의회 선거에서 반세기 동안 지속된
기민당 헤게모니는 종말을 고하였다. 91년 국민투표에 의한,
‘4중 기표제’를 핵심으로 하는 ‘이태리식 비례대표제’의
‘1인 기표식 비례대표제’로의 개정과 93년 최종 확정된,
상하의원 선거에서 75%에 해당하는 의석에 대해서 다수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은 92년 시작된, ‘깨끗한 손들’로 알려진
부정부패 척결 운동과 더불어 결국 이태리 기성 정당구조의
붕괴를 가져왔다. 올해의 선거분석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미래를’, 이번 호, R.무실마니의 글 참조
한국사회에서의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과 진보정당
1. 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나타난 선거참여율 저조
현상(63.9%)은 우리 사회의 보수일색 ‘반쪽’ 정당구도가
국민대중의 분화되어 있는 이해관계를 민주적으로
수렴․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 즉 민주적 기제의
하나로서 정당정치의 실패(Versagen) 혹은 기능마비를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분화되어 있는 이해관계
중에서 그 핵심적인 것은 ‘노동과 자본’ 관계이다.
현재의 보수일색 ‘반쪽’ 정당지형의 지속 내지 온존은
국민대중의 정치에 대한 ‘혐오증’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상호관계 그리고 ‘반쪽’ 정당지형의 급격한
재편 요구로 분출될 수 있다.
현재의 지역주의적 정치구도는 의회민주주의의 한국적
양태(Form)로서, 그 형태변환(Formwechsel)은 지속될 것이다. 즉
‘3김’이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정치의 지역주의화는 ‘차별’
및 ‘불균등’을 자기재생산의 근거이자 결과로 하고 있는
한국적 자유시장경제의 운용질서와 합치되는 것으로서(Inhalt)
자본주의는 노․자관계라는 ‘차별화’를 근본적 내용으로
하며, 지형학적으로 도시-농촌, (제국주의 역사의 현대적
지형화로서) 남-북 문제에서 나타나듯, ‘불균등’ 발전을 그
역사전개의 내용으로 한다.
지역주의적 정치구도는 자기재생산의 물질적 근거를 자체로서
확보하고 있다. 정영태 교수는 ‘계급균열’을
‘지역균열’화하는 기제로서 한국적 정당구조의 작동메카니즘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지역분할적
정치구도를 지탱하고 확대재생산하는 기제는 경제구조나
정치구조 또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분명히 물질적 기초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계급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영남지역이든
호남지역이든 지역주의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 계급(층)은
자본가계급과 쁘띠부르조아계급이며, 노동자계급이나 농민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표현할 수 있는 대안적 프로젝트와
정당.정치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지역에
기초한 차별적 보상구조(reward system)를 극복하려는 자본가와
쁘띠부르조아의 주도를 수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비국가영역의 핵심을 차지하는 경제영역에서는 계급간 갈등과
대립이 주요 갈등구조로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집단과 보수정치인들은 분명한 계급적 이해관계에서
정치적 전략을 채택․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산업사회(industrial society)에서는
정치영역에서도 계급균열이 지배적인데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영역에서 지역균열이 지배적인 이유는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이란 분단정부수립과정에서 형성되고 한국전쟁을 통해
강화된 우익반쪽 정치지형과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경험없는
독재정권의 연속이라는 상황을 말한다.’ (정영태, 노동자의
투표행태-15대 국회의원선거를 중심으로,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11호, pp. 167-8)
‘3김’으로 상징 또는 형상화하는 지역주의적 정치구도는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불균등’이란 내용성을 관철하려 할
것이다. 국민회의 및 자민련의 주도 하에 진행되는 ‘수평적
정권교체’ 논리 역시 또다른 하나의 지역주의적 정치구도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진보정당의 출현이란
이 문제의 목적의식적 해결과 맞물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지역주의적 정치구도가 정책정당의 현실화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의 망국병인 지역주의적 정치구도와
보수일색의 정치구도가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현실에서 지역주의적 정치구도의 진정한 타파는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영태, 앞의 글, pp. 155-6).
2. 지역할거적 정치구도를 극복할 필요성은 다각도에서
대중적으로 설명되어져야 할 뿐 아니라, 이러한 분리주의적
정당정치의 극복 과정은 바로 진보정당의 출현과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의 현행 선거제도에 대한 필자의 문제제기는 바로
이러한 다면적인 것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행 국회의원 선거법은 국민대중들의
정치행위의 준거틀을 지역분할(분열)주의에 묶어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필자는 현재의 주객관적 조건 아래에서
대중적 공론화의 가능성을 고려한 대안의 하나로서 국회의원
의석의 절반을 비례대표제의 원칙에 입각한 정당투표제로
선출하는 방식, 즉 ‘제2기표제’의 도입 필요성을 특히
선거문제와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분석․정리해 보기로
한다.
2.1. 의회주의적인 질서 하에서 대중의 정치행위란 선거를
통해서 가장 집약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선거(특히
국회의원선거)는 정당․후보간 정책 차이가 부재한
상황에서 보수적 제도정당들 간 정략적 지역분열주의를
온존시키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전국구의원제는
제도의 도입 동기부터 이미 집권당의 ‘안정의석 확보’라는
정략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최근의 선거에서
나타나듯이 인물중심적 정당지형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것으로서
‘한국식 귀족-평민 관계Klientelismus’의 제도적 온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인물중심적’ 정치의 폐단은
이미 ‘3김’ 보스정치 그리고 ‘3김’으로 표상화되는
지역할거적 정치구도 고착이라는 현상에서 그 극에 달하고 있다.
‘3김’정치가 국회의원후보(지역구, 전국구 구분할 필요없이)
공천을 받기 위해 금전적 관계가 이루어 지고 있음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국구의원제의 개선은 선거법 개정의 핵심적
대상이 될 수 있다. ① 올해의 4․11 선거 결과 민주당과
여타 3당 간의 전국구의원 의석배분관계에서 분명히 드러 나듯이
정당에 대한 전체 유권자의 지지가 선거결과에 거의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 ② 지역구 직접선거에서 1위 당선자와 2,3위
당선자 간의 득표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 그리고 ③ 유권자의
지지자에 대한 결정 과정에서 ‘사표방지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고, 결국 거대 정당에 대한 ‘차선적’ 지지로 나타나게 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아직도 재야를 정치적 대안세력이 아닌
비판세력으로 보고 사표를 우려한 유권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아쉬워하는 함운경씨의 인터뷰에서도 분명히
나타나듯이 (한겨레신문 96/4/14),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
과정에서 정당기표제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진보진영이
‘대안세력’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80년대 말, ‘민중당’의 ‘전면적인
비례대표제’ 도입 주장은 현재의 유권자로서 국민대중의 정서와
거리가 있다고 보여 진다. 유권자로서 대중의 정치행위는
현실적이다. 진보진영이 ‘대안세력’으로서 자신을 드러 낼 때
대중에게 당선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진보진영이 ‘제2기표제’ 도입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해
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의회의 올바른 기능 회복과 더불어
국정전반에 대한 정책대결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로서
‘제2기표제’ 도입의 필요성을 공론화하는 것이 바로
진보정당의 현실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맥락에서 그 의미는
가중된다. 전체 의석의 절반을 비례대표제에 의해 선출하는
방식으로서 ‘제2기표제’ 도입이라는 선거법 개정은 기존
제도정당 구조에 (이태리의 예에서 살펴 본) ‘정치적 폭탄’과
같은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2.2. 대중적 공론화의 차원에서 볼 때, 위에 지적한 세 가지
문제점은 대부분의 국민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상태이고 쉽게
이슈issue화할 수 있을 것이다. 96년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이러한 논의는 대중적 공감을 확보할 수 있으며, 특히
대안세력으로서 진보정당은 대중정치적 의사형성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장악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 내년의 대선을 겨냥해서
정략적인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국민회의
주도의 (혹은 ‘의원내각제’ 도입 가능성까지도 배제하지 않는
국민회의와 자민련 중심의) ‘2원집정제 논의’ 활성화 전략과
맞물려지는, 이러한 시기적인 계기를 포착해서 진보진영이
주도권을 장악하여 유리한 방향으로 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선거법 개정 논의를 대중적으로 촉발해 나아가면서
진보진영은 국민에게 지금까지 왜곡되어 작동하며 인식되고 있는
의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럴 때에 현재의 ‘반쪽’ 정당구도의 문제점도 정확히 설명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국연합의 추천으로 무소속으로 출마한
함운경씨는 “유권자들이 후보에게 민원을 부탁하는 것이 선거
기간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할
일과 국회에서 할 일을 유권자들이 구분하지 않는 것 같았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한겨레신문 96/4/14).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민원을 부탁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국회의원 후보가
지역개발 공약을 선거공약 1순위로 하는 ‘한국적 의회주의’의
문제점, 이에 영합하여 유권자의 지지를 얻으려는 후보들의
행태와 무관하지 않으며, 이는 결국 지역개발을 가장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당으로서의 ‘집권당 프리미엄’을 인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적 의회주의’의 왜곡된 모습의 한
단면이다.
2.3. ‘제2기표제’ 도입은 현재의 제도정당 내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있다. 특히 민주당과 같은 ‘작은
정당’도 당연히 이 제도를 지지할 것이다. 그 외에도 이러한
선거제도의 도입은 기존의 민주적인 인사들이나 혹은 기층운동에
헌신해 왔던 사람들의 제도정당으로의 진입으로 인한 역량유실의
문제, 민주당에 기대를 걸었고 현재도 민주당에 남아 있는
사람들, 혹은 장기표씨와 같은 ‘현실정치 포기론자들’의
문제를 함께 고려한다면 그 긍정적 효과는 예상보다 크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제2기표제’의 도입문제와 관련한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제도정당과의 공조라는 차원에서 지역구 후보에 대한
‘결선투표제’의 도입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다. 4․11
선거결과를 분석해 보면, 국민회의는 ‘결선투표제’에 대해서
공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드러났듯이
지역구 유권자 4분의 1 지지 밖에 얻지 못한 채 의원으로
당선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문제점을 고려하면 ‘결선투표제’의
도입은 특히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제거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맺음말
작은 변화로서 이태리의 선거법 개정은 기성 정당지형의
분쇄라는 커다란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구체적으로 분석된 바는
아니지만, 프랑스(다수대표제 원칙)에서나 독일(비례대표제)에서
녹색당이 제도권 내에 진입하려는 노력은 거의 같은 시기에
시도됐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녹색당이 더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서 선거제도의 차이도 작용했다고
추정된다. 독일 재야세력(APO)의 의회 진입은 70년대 초반
프랑스 반핵운동세력이 지방의회 선거에 참여하여 좋은 결과를
거두는 것을 확인한 뒤에 이루어 진다. 현재 독일 녹색당은
전국적으로 10~15% 정도의 지지를 받고 있어, 자민당을
물리치고 기민당, 사민당에 뒤이어 제3당으로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반면, 프랑스의 녹색당은 독일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이다.
다수대표제(지역구)와 지역구후보가 전국적으로 얻은 득표수를
전국구의원 의석 배분기준으로 하고 있는 우리의 선거방식은
다수대표제의 부정적 측면으로서의 ‘지역할거적 정치문화’를
더 강화시키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유권자에게
소선거구 후보 1인에 대해서만 투표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소속 의원당선자 및 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의원들이 4․11 선거 이후 신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있는데, 이런 정치인들의 경우 차기 선거에서도
유권자로부터 이에 대한 문책은커녕 오히려 집권당의 비호 아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현행 선거제 하에서 정치인들은
쉽사리 당적을 옮기는 일방통행적인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유권자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정치인을 양산해 내는, 정치인의
오만함이 공인되는 정치제도는 정책 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의
등장과 동시에 무너져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더 많은 논의의
활성화를 위한 제언임을 다시 한 번 밝힌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