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 장 ◦ 통 ◦ 신
보호법 제정을 위한
외국인노동자들의 결단
-생존권 투쟁에 국경이 있을 수 없다
예 영 주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사무국장)
“Korea law is bland!(한국은 법이 눈이 멀었다)”, "We want
freedom!(자유를 달라)“
“Release Pasteer Kim Hae Sung!(김해성 목사를
석방하라)”,
“Making the protection law!(외국인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하라)”
여름의 한복판으로 접어들 무렵 외국인노동자들의 투쟁이 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막바지의 절박함으로, 간절한 소망으로, 애타는 희망으로.
이들의 구호를 보면 마치 6~70년대의 노동현장에 와 있는
착각을 하게 된다. 더 심하게는 봉건시대의 농노해방전쟁,
노예제 철폐 등의 시대를 연상케 된다. ‘세계화’의 구호가
귀에 인이 박히도록 난무하고 있는 이 시점에 과연 이 모순된 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한국에서는 법도 없고, 인권도
무시되고, 목사도 여차하면 ‘법대로(?)’ 구속하고, 인권운동이
공권력에 의해 짓밟히는 어이없는 상황이 바로 우리의 코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의 눈에 비친 한국은 너무도
잔인하고 시대착오적인 또한 인간군상이 극과 극을 달리는 -
정부의 무방비, 무정책 속에 노예적 상황으로 내몰리고,
한편에서는 너무도 따뜻한 인권운동집단의 도움을 받는-‘이상한
나라’이다.
명동을 뜨겁게 달구게 된 외국인노동자들의 무기한 농성
- 그 원인과 이유
지난 6월 3일 상담소에 의료상담차 방문오던 외국인노동자
부부가 연행되고, 이에 부당함을 역설하던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의 상임대표 김해성 목사가 구속되었다.
연이어 김해성 목사의 구속에 항의하던 실무자마저 또 구속되는
어이없는 탄압이 이어졌다.
우리는 이 일련의 무력행사를 예사롭게 보지 않으며, 더불어
노동계에 대한 전반적인 위협속에 몇 년동안 의외로 ‘뜨거운
감자’였던 외국인노동자 문제가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본다. 외국인노동자가 국내에 유입되어
영세업체의 인력난을 상당부분 메워가기 시작한 지 길게는
7~8년에 이른다고 볼 때, 아직까지도 관련법규 하나 없다는
것은 인권보호의 측면에서도 상당히 심각한 일이다. 이미 실패한
연수제도의 망령 - 명목뿐인 연수의 강압적인 틀을 반수 이상의
노동자들이 한달 이내에 스스로 거부하고 이탈한다. - 을
부여잡고 그 틀을 악착같이 유지하려하는 정부는 누가 보아도
설득력이 없다.
또한 합법, 불법의 논리속에 항상 쫒기는 신세로 온갖
불이익을 감내해야했던 이들이 자신들의 주체성 확보와 기본권
보장을 위한 움직임을 더 이상 늦츨 수 없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눈과 입이 되어주던 유일한 창구,
외국인상담소가 정부에 의해 침탈되고 상담소의 인권운동가들이
연행, 구속되는 일련의 사태속에 자신들을 옥죄고 있는 쇠사슬을
끊기 위해 몸부림을 시작한 것이다.
세폭의 그림 속에 나타난 외국인노동자의 실태
그림 하나
-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산재왕국의 총알받이가 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처절한 모습이 담겨있다. 손가락이 잘려 피를
뚝뚝 흘리는 친구의 모습, 기계의 일부가 되어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장의 모습, 몸이 아파도 병원비가 턱없이 높아
눈물만 흘리는 모습, 무엇보다도 가족의 부음을 듣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출국절차를 밟으러 갔던 친구가 과도한
벌금으로 김포공항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함과 답답함을 불러 일으킨다.
그림 둘
- 화폭의 한 가운데에 썩은 나무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다. 이
썩은 나무에는 ‘FOREIGNER PROTECTION LAW(외국인노동자
보호법)’ 가지, ‘HUMAN RIGHT(인권)’ 가지, ‘LABOR
LAW(노동법)’ 가지가 썩은 시체마냥 걸려 있다. 이 썩은 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상징적 의미를 던져 준다.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 츨신이라는 이유로 멸시와 차별이
전제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도 마치 양반가의 노비마냥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참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노동기본권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임금떼이기는 밥먹듯 하고
심각한 산재사고가 터져도 5인미만 사업장이거나 산재가입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극히 소규모의 업체라 손가락, 팔다리가
잘려나가도 운명으로 체념해야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유없는 폭행에도 불법체류의 신분으로 단속이 두려워 맞기만
할 뿐이다.
그림 셋
- 이들의 유일한 안식처, 외국인노동자상담소(대부분이
종교단체의 사업으로 성지를 끼고 있다)가 무장한 병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목사님이 잡혀가는 모습이 보인다. 뒤이어 이의
부당성을 성토하며 집회를 개최하고, 명동성당에 들어와
농성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그렸다.
이 세가지 화폭에는 이들의 모든 일상사가 집약되어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들의 모든 희망도 담겨있다. 말로서는 다할 수
없는 끝없는 이야기가 서툰 붓과 칙칙한 색깔 속에 절규하고
있다. 보호법의 조목을 굳이 나열해 설명하지 않아도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한눈에 알 수 있다. 언제까지
한국은 인권이 ‘썩은나무’에 ‘썩은가지’로 매달려 있어야
하는지.
이들의 절규속에 나타난 최소한의 요구
외침 하나, 외국인노동자보호법을 제정하라!
이들의 외침 속에 두드러진 ‘보호법’은 ‘특별우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한 ‘노동자적 권리’를
보장하라는 의미이다. 정부의 변함없는 정책의 골자를 보면
외국인노동자에 대해서 만큼은 실내용은 노동자이되 형식과
권리면에서 노동자임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노동허가를 계속 회피하는 이유는 이들이 오히려 불법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을 유지할 때 오는 반대급부가 합법적 신분을
유지할 때보다 정부측의 입장이나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훨씬
득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연수제도를 고수함으로써
저임금구조의 유지, 각종 노동법 적용에서 오는 혜택에서
제외시켜 조직화, 집단화되는 것을 방지, 출입국 관련
벌금제도의 유지 속에 엄청난 양의 국고환수 등 꿩먹고 알먹고의
논리가 숨어 있다.
관련법이 없음으로 해서 오는 또 다른 폐해는 폭행 및 사기사건
등 개인적인 인격보호에도 심각한 위협이 내재되어있다는
것이다. 사생활보호란 측면에서도 이들은 예외일 수밖에
없다.
외침 둘, 외국인노동자상담소 난입에 대해 공개사과하고
구속자를 석방하라!
상담소 탄압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또한 인권보호
측면에서 상담업무에 전념했던 관계자에 대한 연행, 구속조처도
용납될 수 없다. 정부차원의 정책부재, 안일한 사고 속에 15만
명의 외국인노동자의 현실과 미래가 그 방향을 잃고 있을 때
민간차원의 적극적인 문재해결을 위한 모색은 고무받아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해결모색을 위한 노력은
고사하고 이들의 유일한 창구인 상담소에 가해진 폭력적 탄압은
이 사회의 기본양심조차 흔들리게 하는 위험한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지막 안식처인 상담소에 대한 전면탄압은 이들의
손과 발을 묶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눈과 입마저 틀어 막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법무부의 무원칙적인 강압정책에 의해 발생한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관련 책임자의 공개적인 사과가 즉각 이루어져야
하며, 신병상의 문제도 수반하고 있는 구속자에 대한 석방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된다.
외침 셋, 보호법 제정시까지 불법체류자 사면하라!
불법체류자가 사면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이들에게 억압
일변도로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해왔던 한국정부가 취해야 할
너무도 당연한 선결조치이다. 이들에게 가해졌던 가혹한 폭력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정당한 대우는 물론 인격적 보장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중삼중의 족쇄는 단지
‘불법체류자’라는, 이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규정된
신분에 의해 모든 것이 결과되었다.
이들이 한국경제에 공헌한 바 - 사양산업의 뒷전에 서 있는
영세업체의 인력부족과 중소기업의 안정적 생산구조를 위한
저임금 유지 등 25만 명에 달하는 현장 부족인원의 상당부분을
메우고 있던 점 - 를 본다면 이제는 합법적인 노동허가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는 점에 이유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노동력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마소, 기계 등의 생산도구가 아닌
이상 정당한 노동자적 지위와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이상을 보면 7~8년의 오랜시간 동안 부당하게 가해졌던 이들에
대한 무정책, 일방적 폭력이 길어질 이유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폭력 앞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한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동력인 인간중심의 사고가
배제되어서는 그 생명력이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하는
사람의 자유와 기본권이 존중되고 그 힘을 중심으로 성장의
토대가 이루어질 때 그 사회는 튼실한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토대가 흔들릴 때 상부가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된다 할지라도
오래갈 수 없다. 인간평등, 노동기본권의 보장과 인격적 보장이
전제되지 않고는 공허한 말잔치일 뿐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명동성당 농성장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외국인노동자의
실제상황이 보도된 것 보다도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농성하고 있는 그 자리에는 일년 반 전에 한겨울의
추위와 맞서며 인간임을 부르짖던 모습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변화된 것은 무엇인가? 결론은 ‘없다’이다. 노동자로서의
동등한 대우와 인격적 존중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어떠한 법에
의해서도 침범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정체성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임을 부르짖고 기본권을 보장해 달라는 절규가
한국의 중심도시 서울을 울리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 자신의 양심과 자유와 평등을 뒤돌아 볼 때이다.
바로 코앞에서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무엇보다도
가난한 나라의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이 전제되어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큰소리로 외칠 수 있는가. 우리는 자유롭다고,
우리는 평등하다고,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양심이
살아있는 나라라고. 나의 생존권이 타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인권의 소중함이, 또한 자유와 평등이 타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는 허울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외국인노동자의
전부를 껴안아야 할 때이다. 외국인노동자는 필요한 일부분만을
취할 수 있는 상품이 결코 아니며 우리네와 같은 인류로서
서로의 피와 땀으로 역사의 한 장을 책임져 나가야 할 동료인
것이다. 위에 언급한 이들의 간절한 외침, 작은 소망은 다름아닌
관련입법의 제정이며 이에 준거한 합법적인 지위보장, 합법적인
노동허가만이 지금의 이 파국을 타개해 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다.
정부는 정면해결을 더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더 이상의 편법도
안된다. 지금까지의 과오에 대해 국민과 외국인노동자 앞에
겸허히 사죄하고, 이들의 공헌도를 인정하여 불법체류자의
완전사면과 적법한 절차에 의한 노동허가가 이루어져야한다.
‘무법’의 폭력앞에 7~8년의 긴시간을 무기력하게 당하며
살아온 이들이 정당한 ‘합법’의 신분을 갈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한 사회의 정의는 만인의 인권이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도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놀고 먹는 자의 여유는
가식이며 땀흘리며 노동하는 자의 진실만이 진정 인류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