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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본 시사점
 노동운동과 노동법, 그 이론과 역사

현장에서 미래를  제12호
오삼교

특집 2

노동운동과 노동법, 그 이론과 역사

브라질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본 시사점


오 삼 교 (연구위원, 카톨릭대 강사)


정부는 「노사관계 개혁위원회」를 구성하여 개혁의 최후과제라고 불리우는 노사관계법 개정에 나섰다. 문민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으로는 때늦은 느낌이 있는 이 시도를 통해 정부는 복수노조 허용, 3자개입 금지의 폐지, 정치활동 허용 등 후진적 노사관계틀을 개정하는 대신 변형근로제, 근로자 파견법을 새로 도입하려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집단적 노사관계의 개정에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는가 하면 노동조합은 노동력 공급의 유연성을 꾀하는 조치가 노동자의 고용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어 노사간에 열띤 공방이 이미 진행중이다.
본고는 1985년 민주화 이후 노동법 개정의 시도에 있어 노동운동의 성공과 실패가 두루 점철된 브라질의 경우를 중심으로 노동법 개정 과정에 영향을 미친 여러 요인을 검토함으로써 우리의 노동법 개정 투쟁에 시사하는 바를 제시하고자 한다. 향후 노동운동진영의 노동법 개정 투쟁에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브라질 노동법 개정 과정

브라질은 1985년 3월 민주정부가 출범한 이래 일련의 노동개혁을 경험하였다. 신정부는 성립 직후 노동부장관의 주도로 노동조직의 투쟁을 통해 이미 기성사실화된 축출된 노조지도자의 복권, 노조의 운영과 선거의 자율성, 법외 정상노조의 인정 등 일련의 노조 자유화 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제한된 개혁을 제외하고는 정부 주도의 개혁은 지지부진하였다. 파업법은 기존의 권위주의 파업법과 대동소이하여 노동조직의 단합된 반대와 정치 엘리트의 분열로 국회에서 심의되지도 못한 채 사장되었다. 노동조합의 분열을 노린 복수노조의 도입은 기존의 국가조합주의의 기득권 세력인 공식노조의 격렬한 반대와 정치권의 우유부단으로 역시 좌초되었다.
가장 중요한 개혁은 1987년 2월에 시작되어 1988년 10월에 최종 공포된 신헌법제정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노조설립의 자유화가 재확인되었으며 자유주의적 파업조항이 통과되었다. 주당 노동시간의 감소, 24시간 연속가동 산업에서의 업무 교대시간의 감소, 잔업수당 및 휴가수당의 인상 등 여러 가지 노동 복리 조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단일 노조주의와 조합세의 징수를 핵으로 하는 기존의 조합주의 노조조직은 존속되어 복수주의의 도입 시도는 다시 좌절되었다. 사용자의 자의적 해고를 제약하는 고용안정 조항 역시 사용자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었다. 1988년에는 파업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조항을 온건중도 시각에서 법제화한 파업법이 통과되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노동권의 반대를 약화시키기 위하여 시도된 단일노조주의와 조합세의 폐지 역시 의회에서 5년간의 점진적 폐지안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2년내 폐지를 주장한 꼴로르 대통령의 성급한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 결과 브라질은 아직도 조합주의 체제를 존속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브라질의 노동법 개정운동의 경험은 우리에게 풍부한 사례와 시사점을 제공한다. 먼저 브라질의 노동개혁에 영향을 미친 제조건을 검토한 후 우리가 어떠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브라질의 노동개혁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1) 노동계급의 지속적 동원과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권위주의적 법률의 사문화와 현장에서의 투쟁 성과의 축적 2) 보수적 지배층의 응집력 약화 3) 정치권에서의 좌파와 진보파의 제휴 및 중간파의 포용, 보수파 고립화 전략의 성공 4) 노동계의 단결/분열 여부 5) 사용자의 저항 정도 6) 이슈의 도덕적 호소력과 이론적 타당성의 명쾌성 여부 7) 노동계의 로비와 대중적 압력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노동계급의 지속적 동원과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권위주의적 법률의 사문화와 현장에서의 투쟁 성과의 축적

브라질은 1978년 노동자의 대파업이 분출한 이래 1990년에 진입할 때까지 무려 10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노동계급의 동원을 경험하였다. 도시지역에서만 1978년 118건이었던 파업은 1983년 347건, 84년 492건, 민주정부가 출범한 85년에는 619건, 86년에는 1,004건, 87년 2,193건등으로 1982년에서 1987년 사이에 해마다 거의 2배씩 증가하는 기하학적 증가를 보였다.
이러한 지속적인 계급동원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인플레이션의 지속적 증가로 노동자들이 실질임금의 유지를 위해 파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인플레로 인하여 브라질의 전통적 중간계급인 의사, 교사, 교수, 은행원, 국가기업 종사자들이 반정부으로 돌아서 파업증가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1980년대 초 100%정도였던 인플레율은 83~85년간 200%대, 1987년 400%, 1988년에는 1,000%를 기록하여 파업이 단순히 노동자의 계급적 이익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브라질 민중의 생존을 위한 호소라는 인식이 파급되어 파업의 정당성이 확산되었으며, 여기에 중간계급이 참여하면서 파업은 반사회적 행위라는 기존의 인식을 뒤집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당성을 배경으로 합법적 파업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기존의 권위주의적 파업법은 거의 사문화되었다. 1988년 헌법의회에서 통과된 파업조항은 정치적 연대를 목적으로 하는 파업도 가능한 자유주의적 성격의 것이었다. 보수파조차도 법률로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파업을 통한 현장에서의 성과도 노동법 개정의 주요 출발점이 되었다. 헌법의회에서 통과된 주당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의 노동시간의 감소, 24시간 연속 가동산업에서의 노동시간 감축, 잔업수당의 인상 등은 단체교섭을 통하여 이미 실시중인 기업이 많았다. 반면 투쟁의 성과로 뒷받침되지 못한 경영정보의 공유, 회사주식의 공동소유, 복수노조주의 등은 모두 실패하였다.

2) 보수적 지배층의 응집력 약화:

1985년 신정부 성립 후 정부 주도로 시도되었던 복수 노조주의의 도입 실패는 기득권 세력인 보수적 공식노조의 반대도 주요 원인이었으나 정부의 의회 장악 실패에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PMDB(브라질 민주운동당: 구 야당)와 PFL(자유전선당: 구 집권당의 일파)로 구성된 집권연합체인 ‘민주연합’이 의회에서 과반수를 점하고 있었으나 이 연합체의 응집력은 극히 취약하였다. 대통령 Sarney는 원래 군부정권의 지지자로 PFL 당수로써 부통령후보가 되었으며 대통령 당선자인 Tancredo Neves의 갑작스러운 병사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인물이었다. 다수당인 PMDB 지도부는 그를 ‘우연한’ 대통령으로 보고 대통령으로서의 실질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PMDB는 대통령 Sarney를 지지하기 보다는 견제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더구나 브라질의 선거법과 정당제도상 당지도부가 의원의 공천권을 행사하지 못하여 당의 규율(party discipline)은 극히 취약하였다. 당수의 의원 통제력은 극히 미약하였으며 의원들은 필요에 따라 정당을 마음대로 옯겨 다니는 것이 다반사였다. 정당 또한 공동의 이념이나 프로그램으로 결집된 정치집단이 아니라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도구로 인식되었다. 정부 주도의 노동법 개정안이 실패한 것은 이러한 주도적 정치세력의 응집력 결여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의회 지도부는 정부가 송부한 파업법이나 복수노조안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대통령은 이를 추진할 충분한 정치적 지지세력을 갖지 못하였다. 또한 복수노조 도입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것은 친정부적 보수적 노조세력이 아니라 급진적 노동운동세력이라는 점도 Sarney정부의 기반인 보수파의 지지 결집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3) 정치권에서의 좌파와 진보파의 제휴 및 중간파의 포용, 보수파의 고립화 전략의 성공

노동운동권이 선호하는 노동개혁은 주로 헌법의회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정부의 주도력 결여로 의원 개개인의 선호가 중요한 변수가 되었으며 10년이 넘게 계속된 인플레와 정부의 임금통제 등으로 노동계의 요구에 상당한 정도의 사회적 정당성이 확보된 상태에서는 노동자의 고통을 호소하고 이에 대한 반응을 선거에서의 지지여부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한 의회가 보다 유리한 정책 결정 기구였던 것이다. 헌법의회에서 좌파와 PMDB 진보파는 노동권익의 확보를 위해 소위원회의 초안 작성 단계부터 공동보조를 취하였다. 좌파-진보파, 중간파, 보수파가 비슷한 세력분포를 보인 헌법의회에서는 중간파의 포용이 표결에서 승리의 관건이었다. 좌파-진보파 연합은 유연전략을 통하여 비타협적인 보수파의 수정안을 잇달아 패퇴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유연전략이란 노동권의 요구의 핵심을 견지하는 한도내에서 지엽적 사항을 양보함으로써 중간파에게 진보연합이 급진적 위협적 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키면서, 노동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위한 헌법의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노동조직의 적극적이고도 효율적인 로비와 함께 헌법공포 직후에 예정된 지방선거가,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견해를 갖고 있지 않지만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중간파의 향배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반면 보수파는 자파 의원들의 잦은 의회 결석과 일부 비타협적 인사들의 극단적 발언으로 중간파를 끌어 안는데 실패하였다.

4) 노동계의 단결/분열 여부

헌법의회의 심의과정에서 노동자 개인의 복리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조항이나 노조의 권익과 직결되는 문제(파업권)의 심의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경우 노동운동세력은 단결된 지지를 보였다. 반면 노동운동세력의 세력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노조조직의 문제(복수주의 도입)와 공장위원회의 설치는 노동계의 분열로 인하여 중간파의 포용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중간파는 노동조직 전체가 단합된 경우, 노동계 주장의 설득력과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헌법의회에 있어 특히 노동계에 유리하였던 요인은 소위원회 단계에서부터 노동계의 통일된 초안을 제시하여 노조조직에 관하여 CUT는 복수노조주의를 지지하였으나 노동계의 대의회 로비조직인 DIAP가 준비한 단일노조원칙을 포함한 초안에는 서명에 동의하였다. 이는 노조조직에 관하여 세불리를 자인한 CUT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CUT는 후에 따로 복수주의안을 제안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논의의 주도권을 확보하였다는 점이었다. 이에 비해 사용자는 통일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노동계의 초안에 대해 수정안을 제시하는데 그쳐 논의의 주도권을 상실하였다. 더구나 사용자는 각 업종, 규모, 해당 소위윈회별로 관심사항이 각기 달라 사용자의 기본적 권한이라고 생각된 해고권을 제외하고는 단합된 모습을 보이는데 실패하였다.

5) 사용자의 저항의 정도

사용자의 비용확대로 연결되는 노동권익의 확대나 자유주의적 파업권의 통과시 사용자측은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으나 이 때문에 단체행동을 보인 경우는 없었다. 이는 물론 사용자 입장에서 물가인상을 통해 얼마든지 비용을 흡수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하였으며, 파업권 역시 파업의 주요인이 인플레 보전을 위한 임금인상 요구였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구조적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었다는데에 그 배경이 있다. 그러나 사용자의 해고권을 제약하는 고용안정 조항에 대하여는 이를 브라질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여 각지에서 사용자 단체의 집회가 잇다랐으며 브라질 자본가 전체의 동요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동요는 PMDB 진보파가 리드하는 헌법의회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대통령 Sarney와 군부, 보수파 정치인이 재계와 연합하여 반헌법의회, 반민주 연합세력의 태동으로 연결될 우려를 초래하였다. 이에 PMDB진보파는 이 문제에 한하여 좌파와의 제휴를 포기하고 보수파와 연합하여 원래의 고용안정조항을 폐기하고 약간의 추가부담만으로 노동자를 자의적으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동의하였다.

6) 이슈의 도덕적 호소력과 이론적 타당성의 명쾌성 여부

헌법의회에서 중간파의 설득이 표결의 승리에 주요 원인이 되자 이슈의 도덕적 호소력과 주장의 이론적 명쾌성이 중간파 유인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특히 노동권익 문제에 있어서는 지난 20년간 반으로 감소한 노동자의 실질임금, 노동자의 열악한 임금 및 노동조건 등이 중간파의 지지를 유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에는 물론 중산층을 구성하는 교수, 교사, 의사, 국영기업 종사자의 동원이 큰 역할을 하였다. 노동문제는 단순히 일부 하류층의 불만 표출 차원이 아닌 중간층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특히 민주화로 여러 번의 선거가 있게 되어 그 표결 결과가 선거에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와 중간계층의 지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한편 복수노조의 도입문제에 대하여는 중간파를 설득할 수 있는 명쾌한 기준이 부족하였다는 것도 실패의 한 원인이었다. 복수노조 도입파는 노동자의 진정한 대표권을 주요 기준으로 삼은 반면 보수적 단일노조 지지파는 노동자의 단결을 강조하였다. 특히 PMDB진보파의 대다수는 복수노조주의에 반대하는 근거로 노동운동의 분열과 이로 인한 노동계의 세력약화를 강조하였다. 더구나 사용자측이 사용자조합에는 단일노조주의를 노동자조합에는 복수주의를 도입하는 수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단일노조주의가 노동자에 유리하다는 의견을 강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CUT(급진적 노조 정상조직)와 PT(노동자당)가 강조한 진정한 노동운동의 강화는 기층 노동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입각해야 하며 진정한 대표권을 보장하는 복수주의가 장기적으로 노동운동의 강화를 가져온다는 논리는 CUT의 입지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7) 노동계의 로비와 대중적 압력

노동운동세력은 헌법의회 초기단계부터 진보세력의 세불리를 의식하여 공동의 전략을 숙의하였으며 노동계의 대의회 로비단체인 DIAP를 통해 공동의 단일안을 헌법의회에 제시하였다. 노동계의 로비는 사용자측의 무대책에 비하여 적극적이고 조직적이며 체계적이었다. 어느 의원의 평가에 의하면 노동계는 ‘군부’ 다음으로 가장 잘 조직된 로비를 펼쳤다. 중간파의 향배가 중요한 헌법의회에서 이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DIAP는 표결결과를 점수화하여 ‘반(反)민중적’ 정치인을 공개하였으며 CUT는 포스터를 이용하여 고용안정 조항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사진과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을 기입한 대형 포스터를 만들어 이를 배포하였다. 특히 CUT의 포스터 전략은 위력적이어서 헌법의회의 보수파 지도자들도 일부 의원들이 이 때문에 친노동적 표결로 돌아선 것을 인정할 정도였다. 24시간 연속 가동산업에서의 작업 교대시간의 감축시에는 의원 상대의 로비와 함께 수백명의 조합원이 브라질 각지에서 브라질리아로 날아와 의회에서의 시위를 병행하였다.

한국 노동법 개정에 대한 브라질 경험의 시사점

한국과 브라질은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노동법개정에 미치는 영향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선 우리의 경우 지난 수년간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으며 인플레도 10%대에 머물러 있다. 이 점이 노동계급 공동의 생존권 요구에 기초한 동원 전략이 우리의 경우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노동계의 내부 조건뿐만 아니라 사회적 조건 역시 동원 전략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절대 빈곤층의 급감으로 노동자의 고통보다는 범죄, 환경 오염, 교육, 교통, 부패, 정치적 비효율에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물가와 주택 등의 문제는 노동자만의 고통이라기 보다는 비계급적 용어인 일반 서민층 모두의 문제로 인식되어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갈등, 님비현상, 한약분쟁 등 사회적 갈등의 분출에 대한 공동체적 조정 능력의 결여에 대한 한탄이 언론의 단골 메뉴이다. 이는 우리의 경우 노동법 개정의 방향2을 성숙된 민주사회에서의 이익 갈등의 조정과 공동체적 목표의 성취를 위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위상 정립과 역할 수행을 위한 제도적 정비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호의적 여론 형성에 유리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준다.
파업이나 집단행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비록 보수적 여론 형성층의 주도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브라질보다 낮다. 여기에는 물론 한반도에서의 국지적 냉전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대북 관계의 불안요인은 중간층이 쉽사리 노동계의 요구에 동의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경제성장이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주도되고 지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권위주의 정권의 성장과 안정 표방정책이 아직도 상당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사실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계급정치의 확대는 기존의 권력구조나 국제환경의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실정에서 노동개혁을 노동계급의 영향력 확대라는 계급투쟁적 관점에서 제시하는 것은 보수파의 응집과 반격을 초래하여 오히려 불리한 상황에 빠질 우려가 더 크다. 이 점에서 노동개혁은 자본 대 노동의 일대 격전이라기 보다는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실천의 정치적 표현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이룩한 작은 성과의 집적을 기반으로 노동문제를 사회적 관심과 연계시켜 일반 국민과 여론으로부터 노동계의 노동법 개정 방향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기고 들어가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정치 구조상으로도 한국은 대통령 일인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 같은 대통령제하에서도 대통령의 권력이 제약되어 있는 브라질과는 다르다. 의원 개인에 대한 통제력이 약한 다당제하의 브라질에서 대통령의 의회정책은 항상 연방예산과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를 맞바꾸는 후견정치(clientelist politics)의 양상을 띠어왔다. 브라질의 경우는 의회라는 정치의 장이 예비되어 있었으나 우리는 국회 역시 대통령의 의사에 의해 좌우되고 있어 권력 핵심부의 의사와 결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브라질처럼 다양한 정치세력이 이데올로기적 지향에 따라 연합 제휴할 수 있는 가능성도 3김 위주의 인물중심, 지역정서 주도의 정치판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는 그간 시도되어왔던 정당의 창설을 통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진출의 실패에서도 명백하다. 더구나 의원 개개인의 독자적 역할이 극히 한정되어 있어 정부를 건너 뛴 의회를 통한 노동법 개정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이점에서 우리나라의 경우는 권력 핵심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사용자의 저항 논리를 상쇄할 수 있는 호의적 여론의 형성이 노동법 개정의 성공을 위한 관건이 된다. 이 점에서 여론형성층에의 적극적 로비와 노동계의 단합된 의사 표시의 과시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브라질의 경우에 작용했던 변수 중에서 우리의 경우에 이용 가능한 요소는 무엇인가. 먼저 들수 있는 것은 중간파와 중간계층의 유인이다. 잠재적인 반대세력을 잠재적 우군으로 만드는 것이다. 중간파의 설득을 위해서는 로비와 대중적 압력, 대국민 호소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또 다른 요소인 보편적 정의감과 도덕적 호소력에 맞물릴 때 노동운동세력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권력구조가 집중화되어 제도를 통해 정책 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가 적은 나라에서는 반대파의 저항의 정도와 저항에 대한 여론의 향배가 중요하다. 사회운동 조직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우리의 경우 여론은 일부 언론에 의해 쉽게 조작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중간계층의 물질적 이익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가치적 정향에 적합한 설득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다. 억압적 노사관계가 노동자의 반발을 초래하여 노사관계를 악화시켜 왔으며, 이점에서 우리 경제의 경쟁력 약화의 주범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노동법 개정의 방향이 사회 구성원의 공동체적 이익에 어긋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의 민주화와 시민권의 확대, 노사관계의 안정과 성숙화, 그리고 이를 통한 공동체적 삶의 질의 향상에 기여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경쟁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쟁력의 향상에 기여한다는 것을 외국의 사례를 이용하여 입증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중간층의 포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보수파의 응집력 약화 내지는 고립화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보수파가 주도해 온 그간의 성장 중심 정책의 부작용과 사회적 경영 능력의 미개발을 비판함으로써 지식인이나 각계 각층의 진보적 인사와의 공감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재벌을 도구로 한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이 사회의 과두화와 경제력의 집중화를 초래하고, 소비 수준을 기준으로 한 삶의 질의 추구가 공동체적 도덕의 방기와 사회적 참여 기제의 미개발의 근본적 원인이며,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에 기초한 사회관계가 사회적 갈등의 조정능력의 미성숙, 자발적 참여 정신의 부재를 초래하여 공동체적 삶의 질을 저해해 온 주원인으로써 지금까지의 사회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관계의 성립이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주요 과제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노동관계의 자유화를 반대하는 사용자측의 논리가 사회적 경쟁력과 공동체적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근시안적 구시대적 권위주의적 사고에 입각해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보수파의 논리가 우리사회가 지향하는 미래사회의 원리에서 이탈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오늘날 새로운 사회의 비젼인 사회관계의 자유화와 자율화, 공정한 경쟁 규칙의 도입, 자연과의 공생, 사회적 경영능력의 개발, 세계화에 걸맞는 사회적 성숙 기반의 구축을 위해서는 집단적 노사관계의 자율화와 자유화, 노조의 정치활동 허용 등 선진 민주사회의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이미 때늦은 느낌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재벌 중심 경제 체제의 부산물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노동운동 세력이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으며 노동계의 여러 요구가 단순히 노동계급의 편협한 계급적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순 명쾌한 정의관에 입각하여 보여줄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사회의 보편적 정의관에 부합되는 상징이나 논리에 호소하는 것이 설득력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는 점이다. 노사간 평 등의 논리나 부당한 인간적 대우에 대한 저항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노동운동의 지향이 추상적 관념적인 노동계급의 해방이나 사회 구조 개혁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적 정의의 실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다. 추상적 관념적 주장은 지식인에게는 일부 어필할 수 있으나 이론에 대한 냉소적 시각도 적지 않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브라질의 노동계가 노동자의 고통을 중간층 포용의 매개로 삼았다면 한국의 노동권은 중간층의 사회 개혁요구와 연대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지배층인 사용자가 사회 개혁에 어떠한 기여를 하였는지 따져보고 특히 재벌의 대사회적 역기능을 열거, 예증하는 것도 간접적 공세가 될 수 있다.
노동운동 세력이 편협한 계급 이익에 급급하지 않는 미래 창조의 새로운 사회적 주역으로 그려진다는 것은 여타 사회 운동세력과 연대함으로써 정당성의 기반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회의 가치관, 주도적 사회관계의 틀의 형성에 있어 노동운동 세력이 사회적 양극화와 분열의 주도 세력이 아니라 사회적 통합의 주도 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다. 보수적 사용자가 정보화․세계화를 통한 미래 개척의 주인공처럼 그려지고 노동조합 운동이 사회적 갈등과 국제경쟁력 약화의 주범으로 몰리게 되어서는 중간층의 이탈을 초래하여 사용자의 반노동 캠페인을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다.
변형근로제, 근로자 파견제 등의 조치에 대하여는 이들 조치가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가를 객관적 증거와 지표를 사용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로비의 핵심은 스스로의 주장이 왜 객관적으로 타당하며 공동선에 기여하는가를 입증하는 데 있다. 불충실한 자료의 준비나 취약한 설득논리는 노동법 개정같은 공개적 토론이 전제되는 이슈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패배요인이 될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노조 변호사 50여명이 대헌법의회 로비에 동원되었다. 또한 노동자 개인의 복지와 직접 관련되는 이슈인 까닭에 개별 노동자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을 국민정서에 감성적으로 호소하는 것도 대중적 공감의 형성을 위해서 중요하다. 숫자보다는 때로는 이미지가 국민의 정서에 더 어필할 가능성이 클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단결은 브라질의 경우에서 보듯 개혁의 성공을 위한 기초이다. 한국의 노동운동 세력은 그간 온건 보수적인 노총과 개혁지향적인 민주노총으로 양분되어 왔으나 다행히도 최근 노총의 개혁적 입장 표명으로 민주노총과의 공조가 가능한 상황이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나 공개적 토론의 장에서 노동단체의 단결된 입장은 노동개혁에 있어 갈등구도를 노사간의 대립으로 단순화하여 사용자에 대한 포위전략을 구사하는데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론형성층 특히 언론에 대하여 적극적 체계적 로비를 전개함과 동시에 상황에 적절한 대중적 압력을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의 이번 노동법 개정 의도는 OECD 가입과 ILO 이사국 진출을 계기로 집단적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꾀하면서 동시에 노동비용의 감축을 통하여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노동자와 사용자에게 일면 유리하고 일면 불리한 조치는 정부의 지도력이 약할 경우 양자의 적극적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고 반대의 목소리만 높아져 실패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노동법 개정의 정치적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의 시도에 대하여는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한 집단적 노사관계와 개별적 노사관계의 문제를 분리해 처리하는 것이 노동계에 유리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나 여의치 못할 경우의 대처 방안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정부안(案)에 대하여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의 판단은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 노사간의 권력관계에 미칠 영향, 노동자와 사용자 조직의 전반적 상황 판단과 장단기적 손익계산, 조직 내부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세력 관계 등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사가 어떠한 전략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문제의 틀을 제시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노동법 개정은 노사와는 독립적 입장에서 노사의 주장이 우리 사회의 앞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하는 점을 판단하는 여타 사회 세력의 지지 여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세력의 세련된 정치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한/노/정/연

1996-06-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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